소설리스트

독왕전설-180화 (180/200)

# 180

5화

그때 문밖에 서 있는 자가 말했다.

“갈지혁이라고 합니다.”

“뭐…… 라고?”

“들어가겠습니다.”

대답도 하기 전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 머리를 틀어 올린 사내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 한가운데 긴 검상을 가진 사내. 그리고 차갑지만 열정적인 눈을 지닌 자.

점창파 장문인 소절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너, 너는!”

“이놈이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무진악이 그대로 검을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앉아 있던 담자 대사가 입을 열었다.

“모두 멈추시지요.”

담자 대사의 멈추라는 말에 모두가 멈췄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승복한 눈빛이 아니었다.

담자 대사가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지혁이 앞으로 다가오면서 입을 열었다.

“소림사의 방장이십니까.”

“소승이 소림사의 방장인 담자가 맞기는 합니다만…… 시주가 정말 갈지혁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안에 들어오셨는지.”

애매한 질문이지만 어떻게 주변을 지키는 자들이 있는데 들어섰냐는 거다.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까지 무사히 들어왔단 말인가.

“다들 푹 자고 있을 겁니다.”

“…….”

바깥에 있는 자들은 일류 이상의 무인들이다.

그들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독에 중독되었다는 소리다. 그만큼 엄청난 독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감히 네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고개를…….”

무진악이 이를 갈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언제라도 검을 뽑아서 갈지혁의 목을 내려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진악이 더 뭐라고 하려고 할 때였다.

참고 있던 아미파의 장문인이 나섰다.

“무 장문인, 그만 하시지요.”

“뭘 그만 하라는 거요? 지금 눈앞에 있는 저놈은 갈지혁이란 말이오! 무림공적 갈지혁!”

성수 신니(聖手神尼)가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 것일 겁니다. 들어는 봐야지요.”

“대체 듣기는 뭘…….”

“제가 없으면 무림맹은 독황독립문에게 패합니다.”

갈지혁이 무진악의 말을 자르면서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장문인들의 얼굴 표정이 각양각색으로 변했다. 대부분이 얼굴에 노기를 띤 채로 갈지혁을 노려봤다.

일부만이 갈지혁을 바라보며 무슨 뜻이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찬물을 끼얹으려고 해도 유분수지…….”

“방금 전 이곳을 지키는 무인들을 모두 잠들게 하고 들어왔습니다. 이의 있으십니까?”

“…….”

“죽이려고 했으면 지금 저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틀립니까?”

맞는 말이다.

죽은 듯이 잠에 빠진 자의 목을 베는 것은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가만히 있던 당려환이 계획대로 나섰다.

“우리 사천당문을 무시하는 건가?”

“사천당문은 분명 대단하지요. 하지만…… 중원의 독과 독황독립문의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아무리 사천당문이라도 해독하지 못하는 독이 수십 가지입니다.”

그 순간 비꼬는 듯이 무진악이 말했다.

“그럼 네놈은 독황독립문의 독을 안다 이거냐? 대단하군, 그곳에 숨어들어 독이라도 배웠더냐?”

“전 독황독립문의 문도였으니까요.”

너무나 태연하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에 좌중은 마치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갈지혁이 내뱉은 말은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는 독황독립문의 인물이다. 그리고 지금 무림맹이 싸우고 있는 상대가 바로 독황독립문이다.

“이이! 더는 못 참겠군!”

가관이다.

무림공적으로 모자라 독황독립문의 인물이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이리도 오만방자하단 말인가. 무진악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무진악은 누가 뭐라고 만류하기도 전에 검을 움직였다. 그렇지만 날아드는 검을 갈지혁은 손으로 받아쳤다.

단숨에 손이 잘려 나갈 거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득 찼을 때였다.

콰앙!

검과 손바닥이 부닥쳤는데 기이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무진악의 몸이 그대로 뒤로 나뒹굴어 버렸다.

사람들은 멍한 눈으로 갈지혁을 바라봤다.

내력 싸움에서 이겼다. 저렇게 젊은 사내에게 무당파의 무진악이 내력에서 밀린 것이다.

자리에서 튕기듯이 일어난 무진악의 입가가 비틀렸다.

눈은 독기로 가득 찼다.

그리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자존심이 뭉개졌다. 저런 어린놈에게…….

도저히 내력으로 밀렸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는지 무진악이 소리쳤다.

“더러운 사술을 쓰다니!”

“사술이 아니오.”

“사술이 아니면 이 더러운 힘은 무엇이란 말이냐!”

“나의 스승님을 욕되게 하지 마라!”

그 말에 갈지혁 또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기세에 무진악은 움찔해 버렸다.

갈지혁의 두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무당파 장문인인 무진악이라고 해도 갈지혁의 기세는 그리 쉽사리 받아넘길 게 아니었다.

“내 이 내력은 나의 스승님께 받은 것이다.”

갈지혁이 좌중을 훑어본다.

그가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스승님을 욕되게 하는 자는 그 누가 됐든 이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을 겁니다.”

“건방…….”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종남파의 장문인이 멈칫했다.

갑작스럽게 숨이 막혀 오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이 온몸의 혈도를 돌고 있다.

잠시 방 안에 침묵이 맴돌았다.

긴 침묵을 깬 것은 담자 대사였다.

“스승의 함자를 물어봐도 되겠는지요?”

“일악천 어르신입니다.”

“일수만독! 시주가 그의 제자였단 말입니까?”

평소에 놀라지 않기로 소문난 담자 대사조차도 그 말에는 기겁을 한 듯했다. 그리고 놀란 건 담자 대사뿐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정도라면 일수만독 일악천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단신으로 전 무림을 상대했던 그를 어찌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갈지혁이 갑작스럽게 상의를 젖혔다. 그의 행동에 무림맹의 수뇌부들은 당황했지만 이내 몸을 돌린 갈지혁의 등에 어떠한 글자가 박혀 있는 걸 확인했다.

파문(破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의 등에 고정된 것을 느낀 갈지혁은 윗옷을 입으면서 말했다.

“제 나이 열여덟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독황독립문에서 파문당한 저는 어떠한 곳에 버려졌지요. 그곳에서 전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일수만독인가 봅니다.”

갈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그날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떨린다. 만약 자신이 일악천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주고서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갈지혁이 살아오면서 만난 그의 가장 소중한 사람.

“독황독립문은 나와 스승님을 버렸습니다. 그들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은 제가 더 심할 것입니다.”

“……그래도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시주.”

담자 대사가 말했다.

아무리 독황독립문에 대한 한이 깊다고 한들 쉽사리 지금 갈지혁을 무림맹의 일원으로 받아줄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 지금 그러한 일이 벌어지면 내부에서도 말이 많아질 것이다. 분명 갈지혁이라는 인물의 능력은 탐이 난다. 그렇다고 해서 내분이 일어나는 건 이쪽에서 바라는 상황이 아니다.

그때 바깥에서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문 바깥에 선 자가 숨을 헐떡이면서 소리쳤다.

“도, 독입니다! 독이 퍼졌습니다!”

“뭐?”

자리에 앉아 있던 자들이 모두 일어났다.

동시에 시선은 갈지혁에게로 향했다. 마치 네가 그런 것이 아니냐는 듯한 시선이다. 그렇지만 정작 갈지혁조차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담자 대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문을 열고 당문의 인물 하나가 쓰러지듯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가슴을 움켜쥔 채로 급하게 숨을 쉬었다.

당려환이 입을 열었다.

“대체 누가…….”

“도, 독황독립문입니다. 남만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나타나 갑작스럽게 독을 뿌리고 사라졌습니다.”

“놓쳤다는 게냐?”

화산파 장문인 독고문이 물었다.

당문의 무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동시에 사람들의 눈빛도 곱지 않게 변했다.

“대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깟 놈들 하나 못 잡는단 말이냐.”

“사실……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뭐?”

“3조가 모두 쓰러졌습니다.”

현재 무림맹의 무인들은 조 단위로 나뉘어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한 개 조의 인원은 대략 백여 명이다. 그런데 그 백여 명에 달하는 자들이 모두 쓰러졌다는 거다.

“당문에 해독약들이 있지 않더냐!”

“그게…… 너무 생소한 독입니다.”

당문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당히 머뭇거리는 것이 말을 하는 것을 꺼려하는 듯하다.

당연한 일이다.

사천당문이 모르는 독이라면 정파에서는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소리다.

사람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여태까지는 비등비등한 상황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소림과 무당이 개입하면서 이쪽으로 승부의 추가 기울 거라고 판단했었다.

한데 갑자기 해독할 수 없는 독이 나타났다.

소림과 무당이 개입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때 가만히 있던 갈지혁이 당문의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증세는?”

“그것이 몸에 붉은 반점이 드러나고, 목덜미 부근에 오돌오돌한 것이 나고…….”

“손목은 딱딱한 나뭇가지처럼 굳었겠지.”

갈지혁의 한마디에 당문의 무인은 놀란 듯이 그를 바라봤다.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일을 이 사내가 말한 탓이다.

“그걸 어떻게…….”

“남만부시독(南蠻腐屍毒)이군.”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내뱉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갈지혁에게 쏠려 있는 상태다. 눈으로 보지도 않고 상태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 말은 곧 해독약을 만들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누구도 섣부르게 먼저 갈지혁에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러한 적막을 깬 것은 당문 가주인 당려환이다.

“남만부시독이라는 것을 해독할 줄 아나?”

“남만의 독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남만부시독을 제하고도 몇 가지 준비한 것이 더 있겠지요. 장담하건대 남만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그 독을 해독하지 못합니다.”

“끄응.”

당려환이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지금 연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그의 표정을 본 다른 이들의 얼굴 또한 침울하게 변할 정도였다.

당려환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담자 대사를 바라봤다. 그 또한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속으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는 듯해 보였다.

그때 당려환의 귀로 누군가의 전음이 흘러들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당 가주.”

‘왔다!’

담자 대사의 전음이다. 그는 지금 당려환에게 의견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은 곧 반 이상은 넘어왔다는 소리다. 여기에서 조금 힘을 실어 주면…….

하지만 서둘러서는 안 된다.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을 풍기게 되면 그 순간 일이 틀어질지도 모른다. 당려환은 침착하게 행동했다.

“갈지혁을 지금 우리 편에 넣는다고 하면 소란이 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는 반대를 해야겠지만…… 그 독들을 해독하지 못하면 싸움은 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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