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81화 (181/200)

# 181

6화

담자 대사의 눈이 갈지혁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듯하다. 그때 뒤쪽에서 급하게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9조가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독고문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제법 독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착오였다.

독에 대해 방심을 푸는 순간 사달이 벌어졌다. 이 독을 해독하지 못하면 오늘이 정파 무림이 끝나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모두 담자 대사를 바라봤다.

어서 결단을 내리라는 시선.

가만히 있던 그가 갈지혁을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시주가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담자 대사가 갈지혁을 지그시 바라봤다. 원하는 것이 아무런 것도 없는 자는 오히려 위험하다.

차라리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있다고 대놓고 말했다면 이토록 불안하지는 않을 게다.

“그렇다면 갈 시주는 왜 저희를 도우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도 없고, 이 싸움으로 인해 생기는 이득이 없을 터인데…….”

“중원은 살아남을 수 있지요.”

“중원이 살아남는다? 그것이 왜 갈 시주에게 이득인지 모르겠군요.”

“제가 독왕이 되는 걸 봐줄 사람이 필요해서겠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이지만 좌중의 분위기는 다시 한 번 싸하게 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누가 이 자리에서 독왕이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단 말인가.

무진악이 화를 억누르면서 말했다.

“건방지게 어디서 그런 허언을 내뱉는 게냐. 독왕이라니 그런 게 가능할 성싶더냐?”

“이미 저는 독왕입니다. 남은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일뿐.”

갈지혁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넘친다.

방 안의 분위기는 흉흉하다.

담자 대사는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는 독이 더 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담자 대사와 당려환의 눈이 순간적으로 마주쳤다. 당려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든 일이었지만 담자 대사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아무래도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맹주님!”

몇 명이 비명 섞인 목소리로 담자 대사를 불렀다.

뭔가 더 말을 하려는 그들을 향해 담자 대사는 손바닥을 들어 올려 제지했다.

“그럼 지금 퍼진 독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계신 분 있습니까? 개인적 감정은 추후에 해결합시다. 지금은 독황독립문과의 싸움에 전념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독을 해결할 수 없다면 싸움은 패배로 끝나겠지요. 아미타불.”

독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냐는 말에 모두가 입을 닫았다. 담자 대사의 말대로 현재 상황에서 사천당문이 못하는 일을 그들이 가능할 리가 없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모두가 침묵하자 담자 대사가 갈지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독의 해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말은 수락으로 들어도 되겠는지요.”

“그렇습니다.”

“지필묵(紙筆墨)을 주시지요.”

옆에 있던 종남파의 장문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에게 종이와 붓, 먹을 넘겼다.

갈지혁은 서둘러 먹을 갈고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갈지혁은 방금 전에 이곳에 나타난 사천당가의 사내에게 종이를 건네면서 말했다.

“이렇게 약을 만들어야 하오.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시오.”

“아, 알겠소.”

사내가 급히 달려 나갔다.

자리가 불편했던지 점창파 장문인 소절상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저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자리를 비우지요.”

소절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당파의 무진악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남파의 장문인도, 남궁세가, 진주언가의 가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소 망설이기는 했지만 곤륜의 장문인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이곳에 남은 것은 소림의 담자 대사, 화산의 독고문, 아미파의 성수 신니, 청성파의 엄일성이다.

이곳에 있던 세 개의 세가 중에는 당문만이 남았다.

성수 신니가 가볍게 갈지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예전에 은혜를 입었는데 이제야 인사를 드리는군요.”

점창파와의 일이 벌어졌을 때 갈지혁의 도움을 받았다. 만약 그때 갈지혁이 없었다면 아미파는 전면전을 강행해야 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갈지혁은 그녀의 인사에 고개를 저었다.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입니다.”

“그 행동으로 아미파는 소중한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되었지요. 어쨌든 감사드립니다.”

청성파의 엄일성은 흥미로운 눈으로 갈지혁을 바라봤다. 그는 예전부터 갈지혁이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가 있었다.

얼마나 강하기에 그토록 젊은 나이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그토록 궁금해하던 사내가 있다.

다소 날카로워 보이기는 하지만 미남이다. 얼굴 가운데 긴 검상이 하나 있지만 결코 험악해 보이지 않는다.

그때 입을 닫고 있던 독고문이 갈지혁에게 말을 걸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저도 장문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진검백과 함께 왔는가?”

“그렇습니다.”

“못된 놈! 내가 그리 부를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놈이…….”

화가 난 듯이 소리쳤지만 실상은 서운했던 게다. 그의 눈에는 결코 노한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을 앞세울 때가 아니다.

사실 독고문은 갈지혁의 앞에서 그리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갈지혁을 죽이라는 명을 내리기까지 했던 그다.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자와 한자리에 있으니 내심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갈지혁은 그 사실을 알까? 그의 표정을 보아서는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독고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엄일성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나가자는 신호다. 잠시 갈지혁을 살피던 엄일성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서 시끄러워졌을 무인들을 안심시키도록 하지요.”

갑작스레 독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당황했을 게다. 그리고 혹여 이런 기회를 노리고 독황독립문 무리들이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저도 함께하지요.”

성수 신니도 그들과 함께 방을 벗어난다.

남게 된 것은 담자 대사와 당려환, 그리고 갈지혁 이렇게 셋이다.

셋이 남게 되자 갈지혁은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빠른 시일 내에 이렇게 셋이 한 번 이야기를 나눌까 했는데 기회가 빨리도 찾아왔군요.”

“해 보시지요.”

“단화초라고 아십니까?”

“단화초!”

당려환이 놀란 듯이 소리쳤다. 그렇지만 담자 대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모른다는 뜻을 표명했다.

단화초는 유명하지 않다. 독의 길을 걷는 이들이나 알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이름이다.

당려환과 갈지혁은 이미 사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려환은 내심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담자 대사가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기에 그러십니까?”

“독초입니다.”

“독초라…… 얼마나 지독하기에 당 가주가 그토록 놀라신단 말입니까.”

“단화초는 전설의 독입니다. 그 독이 세상에 드러난다면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그렇습니까? 한데 갈 시주께서 갑자기 단화초의 이름을 꺼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려환과 말을 주고받던 담자 대사가 갈지혁에게 묻는다. 갈지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말했다.

“단화초가 중원에 나타날 겁니다.”

“……허허.”

담자 대사가 헛웃음을 흘린다. 지금 갈지혁의 태도에서는 결코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담자 대사는 단화초가 중원에 나타났다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그는 모르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두가 죽는다고 들었지만 정작 닥치지 않으니 별반 감정이 일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려환은 안다. 그리고 애초에 갈지혁과 대화를 나누어 작전을 짜두기도 했다.

당려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그것이 사실이냐?”

“물론입니다.”

“단화초가…… 중원에…….”

쾅.

의자와 함께 주춤거리던 당려환이 뒤로 엉덩방아를 찧어 버렸다. 그는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한 당려환의 모습에 담자 대사는 내심 불안함을 느낀 모양이다.

“당 가주, 괜찮습니까? 걱정하지 마시지요. 아무리 그래도 방법이야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단화초가 상대방의 손에 있다면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차라리 무조건 두 손을 들고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싸워서는 안 됩니다. 싸우는 즉시 중원에 있는 모든 생명이 없어질 겁니다.”

당려환이 고개를 저으면서 대꾸했다.

담자 대사의 표정도 심각하게 변했다. 독에 대한 자부심은 당문을 따를 자가 아무도 없을 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문의 가주가 이런 말을 내뱉었다.

그가 겁쟁이라서가 아니다.

옛날부터 당문의 가주인 당려환의 패기는 유명했다.

쉽사리 굽히지 않는 대나무 같은 사내로,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사천당문을 잘 이끌어가는 훌륭한 가주로도 소문이 난 자다. 그런 자가 싸우기도 전에 손을 들고 포기하자는 말을 했다.

‘대체 단화초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아까에 비해 단화초라는 독의 위험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이렇게 창백한 표정을 하고 있는 당문의 가주는 처음 본다.

담자 대사가 갈지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시주께서 단화초의 이야기를 꺼낸 건…… 방도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그럴 리가! 단화초는 해독할 방법이 없는 극독이야!”

“단화초의 해독은 분명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독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있지요.”

당려환과 갈지혁의 눈이 마주쳤다.

실상 갈지혁에게 말을 듣기는 했지만 당려환 또한 쉬이 믿을 수 없는 말이다.

그가 거짓을 말한 거라면 당문은 중원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걸 게다.

그렇지만…….

‘믿는다.’

독왕이 되겠다던 갈지혁의 그 눈빛을 믿는다. 그랬기에 당문의 사활을 그에게 걸었다.

“단화초를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은 독황독립문의 문주인 지대익이나 가능하면 했지 그 외에는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지대익 또한 그 위력을 제대로 내기는 힘들 겁니다. 문제는 다른 한 명…….”

“다른 한 명?”

담자 대사가 누구냐고 묻는 듯이 갈지혁을 바라본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슴속에 담아 두었던 이름을 꺼냈다.

“단리문.”

“단리문?”

“현재 중원에 도는 역병은 결코 무시할 게 아닙니다. 그것은 단리문이 만들어 낸 장난이지요.”

“역병까지 그 단리문이라는 자가 돌게 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믿기 어려운 말들이 갈지혁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온다.

담자 대사는 면벽수행에 들어선다는 이유로 세상과 오랜 시간 단절했다. 그렇지만 세상과 등을 돌린 것은 담자 대사 한 명뿐이지 소림 전체가 아니었다.

그런데 알아차리지 못했던 일이다.

단리문이라는 이름도 생소하고, 역병에 대해서도 제대로 들은 것이 없다.

“그리고 놈은 무당파의 무공을 씁니다.”

“무당파? 이거야 원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당려환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갈지혁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얼마 전 무당파에서 독에 의해 참극이 벌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 주범이 바로 단리문 그자일 겁니다.”

“정파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어찌 갈 시주가…….”

딱히 세력도 없는 갈지혁이 어찌도 그리 중요한 정보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소리다. 물론 갈지혁이 그 일을 알아내기 위해 조사를 한 적은 없다.

조사를 했다고 한들 이러한 것들을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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