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9화
‘끝이 아니야.’
이 독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무림맹의 무인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독황독립문에서 비장의 한 수로 준비한 독이다.
쉽사리 해독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절호의 기회를 놓쳤을 리가 없다.
독황독립문에 이러한 독은 없었다.
아마 이것은……
‘단리문, 네놈의 소행이겠지.’
이 독을 밀어내는 것이 마치 갈지혁 자신과 단리문의 싸움으로 느껴진다.
피부에 닿아 있는 두 손을 통해 독기가 퍼져 오려고 한다.
그렇지만 갈지혁의 몸에서 흐르는 단화초의 독기를 누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갈지혁의 손이 빠르게 남궁삭의 등을 훑고 지나간다. 그의 온몸이 땀투성이로 변했다.
만약 그가 수준이 낮은 무인이었다면 제아무리 갈지혁이 도와준다고 해도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남궁삭은 고수다. 그것이 그의 목숨이 끊어지지 않게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갈지혁의 손바닥이 등의 정중앙을 세차게 후려쳤다.
퍼억!
“크악!”
입에서 고통 어린 비명을 지르며 남궁삭이 한 사발이 넘는 피를 토해 냈다.
그렇지만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쉴 뿐 쓰러지지 않았다. 억지로 버티던 남궁삭이 소매로 흐르는 피를 닦아 냈다.
생사의 고비를 넘긴 탓인지 얼굴이 초췌해 보인다.
짧은 시간에 확 나이가 든 느낌이다.
그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본다. 아직도 그 저릿저릿한 감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분명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조용했던 몸 안에서 한 줄기의 독이 솟구쳐 올라 백회혈까지 솟구쳐 올랐다. 내공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단숨에 독이 온몸을 잠식해 들어가 생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었다.
그때 등을 통해 따뜻한 무엇인가가 흘러 들어와 독기를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남궁삭은 살아 있지 못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있는 갈지혁을 바라봤다.
“……고마우이.”
진심이다.
남궁삭은 진심으로 갈지혁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단지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줘서가 아니다.
만약 갈지혁이 이 독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무림맹은 쑥대밭이 되었을 게다.
싸움은 당연히 무림맹의 패배로 끝났을 것이고.
갈지혁은 무림맹을 살린 것이다.
독황독립문의 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깡그리 버려야 한다. 만약 그가 간자였다면 지금의 기회를 결코 드러냈을 리가 없다.
지금 이 정도의 일이었다면 무림맹의 수뇌부를 섬멸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몸을 비트는 남궁삭을 보면서 대충 상황은 파악했다. 그렇지만 정작 눈을 뜬 그가 갈지혁에게 감사를 표명했다.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동문을 향해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담자 대사가 무림맹의 수뇌부 몇을 데리고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맹주님이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담자 대사의 등장을 반겼다. 담자는 가볍게 합장을 하면서 남궁삭에게 다가왔다.
남궁삭은 몸 상태는 엉망이었지만 억지로라도 일어나서 그에게 예를 표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다고 하던데……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담자 대사는 빠르게 주변을 훑어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나 갈지혁이다. 그가 이곳에 있다. 그리고 땅에는 밥과 은수저가 보인다.
남궁삭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식량에 독이 타져 있었습니다.”
“독!”
“허어.”
담자 대사를 뒤쫓아 왔던 무진악이 놀라서 소리쳤다.
그 외에 다른 이들도 당황스러운 어조로 마차에 가득한 식량들을 바라봤다. 저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라면 아마 무림맹의 피해도 적지 않았을 게다.
“어떠한 독이었습니까?”
“직접 먹어 봤을 때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갈 소협이 밥을 지어서 먹어 보면 안다는 말에 그리해 봤는데…… 지독한 독입니다. 만약 갈 소협이 없었으면 전 죽었을 겁니다.”
어느새 호칭이 소협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담자 대사는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더 주의 깊게 들었다.
남궁삭 정도 되는 자가 해독할 수 없는 독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림맹에서 그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자가 몇인지는 자신할 수 없다.
담자 대사가 갈지혁을 바라봤다.
그러자 갈지혁이 가볍게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안 해도 되겠소. 난 잠시 일이 있어서 물러나도록 하겠소.”
“그리하게. 그리고…… 오늘의 은혜는 내 꼭 갚음세.”
“아니오.”
말을 마친 갈지혁이 진검백과 함께 무리들의 틈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갈 길을 만들었다. 그 와중에도 이 광경을 본 이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갈지혁이 아니었다면 무림맹 무인들의 대부분이 몰살당했을 거라는 둥 이야기가 시끄러워진다.
담자 대사를 따라 이곳에 왔던 당려환의 입가에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작은 미소가 걸렸다.
계획이 모두 성공했다.
담자 대사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남궁삭에게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곳은 조금 그러니…… 저희와 함께 가지요.”
“그러겠습니다.”
말을 마친 남궁삭이 뒤로 몸을 돌려 수하들에게 말했다.
“이 식량들을 엄히 간수하라! 결코 흘러나가는 일이 없도록!”
“알겠습니다.”
남궁삭의 수하들이 독이 든 식량들을 처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잠시 동안 발이 묶였던 자들도 자유를 되찾았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면서 자신들의 목적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깃거리는 당연히 갈지혁에 대한 것이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봤다.
소문은 하루도 되지 않아 무림맹 전체로 퍼질 것은 당연했다.
* * *
무림맹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북쪽에서 가지고 온 식량들에 독이 뿌려진 사건이다. 사전에 알아차렸기에 망정이지 그것이 풀렸다면 무림맹 사람들 대부분이 몰살을 당했을 큰 사건이었다.
사람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밥을 먹을 때도 독에 중독되어 죽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어 버렸다.
분위기가 흉흉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더군다나 이런 식으로 독황독립문이 공격한다면 불리해지는 것은 무림맹이다.
계속해서 음식에 독을 타면 그것을 먹을 수도, 그렇다고 계속 굶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기다가 식수에도 독을 탄다면……
무림맹은 졸지에 무인도에 갇힌 신세가 되어 버린다.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기에 무림맹의 수뇌부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모여서 회의를 했다. 그렇지만 딱히 방법이 나오지가 않았다. 먼저 선공을 펼치기에는 상대가 너무 위험하다.
독인을 상대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까다롭다. 잘못했다가는 선봉에 나선 자들 모두가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답이 하나 나오기는 했다.
무림맹의 수뇌부들이 만들어 낸 것은 바로 별동대였다. 별동대를 따로 운영하여 독황독립문의 팔다리를 잘라 내려는 계획이다.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피해로 적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주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무림맹이 노리는 것은 별동대를 이용해 그들의 식량을 끊어 버리는 거다.
독황독립문은 운남에서 식량을 보급받는다. 보급을 끊어 버린다면 독황독립문이 입을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그렇게 된다면 죽은 듯이 숨을 죽이면서 시간을 보내는 독황독립문이 오히려 조급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는 그들을 먼저 움직이게 만들려는 계획인 것이다.
다행이라면 독인들은 무공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것을 이용하면 적잖은 피해를 줄 수 있다.
문제는…… 그 별동대를 이끌 사람을 뽑는 것이다.
독에 능통해야 하고, 무공도 빼어나야 한다.
사실 무림맹에 그러한 인물이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문제는 섣불리 그 이름을 꺼내지 못한다는 거다. 그 탓에 애꿎게 회의만 길어지고 있는 판이다.
당려환은 짜증이 치밀었다.
몇몇 인물들이 은근히 당려환의 눈치를 본다. 마치 그가 다른 누군가를 내세워 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갈지혁은 큰 공을 세웠다.
무림맹이 괴멸했을지도 모르는 식량 사건을 해결한 것이 바로 갈지혁이다.
그랬기에 대부분이 갈지혁을 좋은 눈으로 보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무당파를 비롯해 몇몇은 그를 고깝게 보고 있다.
담자 대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먼저 갈지혁의 이름을 뱉기도 뭐한 상황이다. 그는 뭔가 애매한 존재다.
분명 무림맹의 큰 힘이 될 수는 있지만 또 함부로 앞에 내세우기가 힘들다.
결국 당려환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며칠 동안 생각해 봤는데…… 갈지혁밖에 없습니다.”
“한데 그는…….”
“그 말고 다른 적합한 자가 떠오르시면 말하셔도 좋습니다.”
없다.
독을 다룰 수 있는 인물이 사천당문을 제하고 그 누가 있느냔 말이다. 하지만 사천당문의 독은 독황독립문에 비해 몇 수 아래다. 갈지혁만이 독황독립문의 독을 막아 낼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애초에 별동대라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갈지혁이 없었다면 말하지도 못했을 계획이다.
전부 갈지혁을 염두에 두었지만 말을 꺼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담자 대사가 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당려환의 거처에 오랜만에 갈지혁이 찾아왔다.
그가 무림맹 소속이 된 이후 이렇게 대놓고 당려환과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사람을 시켜 자신에게 오라고 한 것을 보니 무엇인가 일이 있는 모양이다.
“왔나?”
문을 열고 들어선 당려환의 거처는 조촐하면서도 실용적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우선 앉아.”
당려환은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갈지혁의 건너편으로 다가갔다. 무림맹 수뇌부의 회의에 대해서는 갈지혁도 알고 있다.
비밀리로 한다고 하고 있지만 당려환이 그 일에 대해 갈지혁에게 미리 말해 준 탓이다.
“마침내 결정이 내려졌어. 자네가 별동대를 이끌어야 해.”
“그렇습니까.”
“그런데…….”
당려환이 말을 끈다. 갈지혁이 말해 보라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 당려환이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자네 위에 한 명이 있게 될 게야.”
“그렇군요.”
“역시 자네를 가장 앞에 세우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모양이지.”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갈지혁이 우두머리라면 별동대의 실적이 모두 그의 공으로 돌아간다. 그랬기에 일부러 그 위에 한 명을 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갈지혁의 공을 그만큼 깎아 낼 수 있다. 얕은 수다.
그렇지만 무림맹 딴에는 머리를 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역시 갈지혁이라는 사내가 너무 젊다면서 핑계는 대고 있지만 답은 알 거라고 생각한다.”
“공을 주기 싫다 이거겠지요.”
“그래.”
당려환은 말을 마치고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꺼내서 책상 위에 쭉 펼쳤다. 그 안에는 몇 개의 커다란 글씨들과 자잘한 것들이 적혀져 있었다.
“별동대는 세 개 조로 나뉘어졌어.”
네모난 세 개의 그림을 가리키면서 당려환의 설명이 이어졌다.
“가장 커다란 1조를 자네가 맡을 거야. 한 사십 명 정도의 수하를 받게 될 거고. 나머지 두 개 조는 그 반 정도가 될 거야.”
“2조와 3조는?”
“솔직히 2조와 3조는 크게 기대하지 말도록 해. 전력에 커다란 구멍이 났을 때 잠시 도와주거나 다른 자잘한 일들을 할 거야.”
“2조와 3조는 누가 맡습니까?”
“그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
“제가 정해도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