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85화 (185/200)

# 185

10화

갈지혁이 묻자 당려환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이상한 자들만 아니라면 문제는 없을 거야. 누구 생각해 둔 사람이라도 있나?”

“3조를 해독약을 담당하는 자들로 만들까 합니다. 그에 어울리는 사람이 한 명 있지요.”

“운하연?”

갈지혁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 될 것은 없다.

오히려 약선문의 소문주인 운하연이 도와준다고 한다면 무림맹 쪽에서는 쌍수를 듣고 환영할 일이다.

다른 자들도 아닌 독황독립문과의 싸움이다. 갈지혁의 말대로 해독약을 만들어 내는 자들은 꼭 필요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2조는?”

“화산파의 진검백.”

“…….”

당려환은 빠르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검백이라면 쉽사리 될 문제가 아니다.

화산파의 진검백.

낙화검이라고 불리는 대단하지 않은 무인이다. 화산파의 후기지수로 칠천룡의 일인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진검백은 손으로 꼽히는 기재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를 인정하는 이는 없다.

“내가 봤을 때 2조는 젊은 자들이 주를 이룰 게야. 칠천룡들이 만약 이 별동대에 끼려고 한다면 1조나 2조에 속하겠지.”

여기서 또 문제가 된다.

진검백을 2조의 조장으로 만든다면 다른 칠천룡들을 아래로 둔다는 소리다. 문파 간의 자존심 싸움이 될 수도 있고, 그들이 인정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가뜩이나 칠천룡 내부에서도 진검백을 우습게 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실력으로 누르면 되는 일이겠군요.”

“진검백이 그들을 이길 것 같은가?”

“다른 여섯이 모두 덤벼도 진검백이 이깁니다.”

“흐음.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소문으로 듣기로 형편없다던데…… 그렇다면 실력을 숨겼다는 소리군.”

갈지혁은 딱히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다른 것을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 셋을 이끌 자는 누굽니까?”

“그것이…….”

조용한 거처에 한 마리 새가 날아든다.

눈을 감은 채로 잠에 빠져 있던 사내는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

나무를 등지고 있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이는 대략 사십 정도 되어 보인다. 물론 실제 나이는 훨씬 웃도는 자다. 그런데…… 일어나면서 한쪽 소매가 펄럭일 뿐,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

외팔이다.

독객(獨客) 비광백(費曠栢)!

구파일방의 인물이 아니다.

그는 무림에 나타났을 때부터 외팔이었다. 그렇지만 단 한 개의 손으로 펼치는 그의 검은 가히 전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약 십 년간 무림을 유랑하던 그는 이내 모습을 감췄다. 지금의 그는 아내와 함께 조용한 산에서 지내고 있다.

그러던 차에 새 한 마리가 그의 집 앞에 내려선 것이다.

새를 향해 독객이 손을 내밀었다. 바닥에 있던 새가 날아올라 그의 팔목에 올라섰다.

독객은 새의 팔목에 묶여 있는 종이를 꺼냈다.

그는 단숨에 서찰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오래전 연을 맺었던 담자 대사가 보내온 서찰이다.

독객이 서찰을 읽고 있을 때였다. 바구니에 나물을 가득 담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독객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지만 얼굴이 곱다.

아름답게 늙었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중년의 여인이다.

그녀가 독객의 옆에 살포시 앉는다. 여인은 독객의 아내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때가 되었나 봐요.”

“한 번뿐이야.”

무림에서 몸을 뺀 그이지만 단 한 번 담자 대사를 도와주기로 예전에 약조를 했다.

그것을 지키려는 거다.

“갔다 와요.”

“갔다 오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부부 사이로 보기에는 너무나 간단한 인사.

그렇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독객은 등에 검을 찼다. 독객 비광백이 무림에 다시 나타나려고 하는 것이다.

별동대는 빠르게 조직되어 갔다.

무공이 강한 자들을 위주로 뽑기는 했지만 또 고수들이 전부 별동대에 투입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랬기에 반 정도는 고수로, 나머지 절반 정도는 젊은 후기지수들로 별동대를 채웠다. 해독약을 만드는 3조는 무공이 가장 약한 자들로 배정했다.

3조에 주어진 인원은 스무 명.

남은 인원은 무림에서 제법 알아주는 자가 서른 명, 재능 있는 젊은이들도 서른 명 정도다.

1조와 2조가 될 인원을 정하는 일은 조금 미뤄졌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조장들과 이들을 이끌 대주의 정체였다.

세 개 조를 통합적으로 움직일 자는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오래전 무림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독객 비광백이 이들을 맡는다고 했다.

1조의 조장은 갈지혁이다.

그의 독에 대한 지식과 무공 실력은 이미 무림이 안다. 거기다가 이번에 식량에 타져 있는 독을 발견한 사건으로 인해 무림맹 내에서도 그에 대한 생각이 대폭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조의 조장은 약선문의 소문주 운하연이다.

어차피 전투에 나서는 자들도 아니고 그녀라면 해독약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하다.

문제는 역시나 2조였다.

갈지혁의 말을 그대로 전했지만 수뇌부 사이에서도 반발은 적지 않았다.

차마 화산파 장문인 독고문 때문에 대놓고 반대를 하지 못할 뿐이지 그들은 진검백을 2조의 조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른 칠천룡의 대부분이 2조에 배속될 지금, 진검백을 조장으로 만든다니…….

칠천룡의 일인을 2조의 조장으로 만드는 것은 환영이다.

어차피 말만 조장이지 그들은 거의 보조의 역할밖에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젊은이들이 주가 될 조다. 그렇다면 칠천룡 정도가 조장이 되기에 딱 적합하다.

문제는 역시 진검백의 실력이다.

진검백의 실력은 무림에 자자하게 소문이 났다. 좋은 쪽이 아닌 형편없기로 말이다.

그런 그를 따를 이가 과연 누가 있단 말인가. 최소한 칠천룡의 일인다운 실력을 지녀야 하지 않은가. 그런 그에게 자신들의 문파가 자랑하는 후기지수를 수하로 두게 하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화산파의 독고문은 자신이 있었다.

그는 진검백이 실력을 감추고 있음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공고를 내렸다.

칠천룡의 하나가 2조의 조장이 된다. 칠천룡끼리 이야기를 해서 정하든지, 아니면 비무를 펼쳐서 정해도 된다.

방법은 그들 나름대로 정하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당려환과 갈지혁이 미리 자신들끼리 정한 것이기도 했지만 또 무림맹 입장에서는 최근 급격히 하락한 사기를 위한 문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 발표는 시끄러운 파장을 일으켰다.

조직된 별동대가 모두 모이는 날이다.

진검백은 불편한 표정으로 허리에 검을 차면서 옆을 바라봤다. 그곳엔 의자에 앉아 있는 갈지혁이 있었다.

참다못한 그가 말했다.

“귀찮은 일을 벌였어.”

“왜.”

“싸우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진검백이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오늘은 처음으로 대주인 독객 비광백도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2조의 조장을 뽑는 것도 바로 오늘이다.

아마도 꽤 시끄러운 하루가 될 게다.

검을 찬 진검백을 보면서 갈지혁이 말했다.

“네가 다른 놈 밑에 있는 게 보고 싶지 않다.”

“…….”

“너무 오래 참아도 보기 안 좋다.”

“그런가?”

갈지혁의 말대로다. 참기는 참 오래 참았다. 다른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들으면서도 화조차 내지 않았다.

정말 화가 나지 않아서일까?

아니!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적도 많았다. 검을 뽑아 당장에 요절을 낼까 생각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꾹꾹 내리누르면서 참아왔다.

낙화검의 오명이 그를 덮으면서 사람들은 진검백을 잊었다.

그리고 그동안 진검백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미 그때의 진검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치 강한 그가 이곳에 있다.

“가자.”

갈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진검백은 허리에 찬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때가 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 검을 휘두르면 그때부터 다시 진검백은 화산파의 기대주가 될 게다. 여태까지 누리던 자유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진검백은 갈지혁을 바라봤다.

이미 문을 열고 걸어나가는 그의 등은 무척이나 커다랗게 보인다. 참으로 재미있는 인연이다. 자신은 화산파의 인물로 갈지혁을 제압하려고 갔던 길에 그를 만났다.

흥미가 돌아 그의 곁에 있게 되었는데 그게 어느덧 몇 년이라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함께하는 동안 갈지혁은 자유를 찾았다. 그토록 진검백이 갈망하던 자유를 갈지혁은 찾아낸 것이다. 이제 진검백 자신의 차례다. 자신의 검을 들고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찾아야 할 때가 왔다.

‘싸워야 한다면 지금.’

그동안 쌓아 두었던 모든 것을 오늘 풀게 될 게다.

진검백은 갈지혁의 옆에 서서 걸었다. 별동대가 모이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대충 반 각 정도 걷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별동대뿐만이 아니다. 그 외에도 다른 많은 이들이 이곳에 모여서 그들을 보고 있다.

또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장문인들과 가주들도 모습을 나타냈다.

그만큼 이 일이 무림맹에게는 중요한 일이라는 거다.

별동대가 독황독립문을 흔들지 못하면 상황은 점점 불리해진다. 그랬기에 이 별동대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공간을 둘러싼다.

별동대에 뽑힌 사람들은 모두 안쪽으로 모여들었다.

누군가가 갈지혁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갈지혁이다!”

갈지혁의 등장에 많은 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그를 처음 보는 자들이 허다하다.

모두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갈지혁을 바라만 볼 뿐 아무도 선뜻 말을 걸지 못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별동대의 인원이 모두 모이자 담자 대사가 나서면서 말했다.

“나오시게, 독객.”

터벅터벅.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눈이 뒤로 쏠리면서 한 사내를 발견했다.

외팔이 검객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독객이다!”

비록 한동안 무림에서 사라졌었다고는 하지만 한때는 천하제일이라고까지 불리던 검객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처럼 회자되는 것이 많은 꽤 재미있는 인물이다.

독객이 별동대의 중앙으로 들어오면서 슬쩍 갈지혁을 바라봤다.

‘이놈이 갈지혁이로군.’

다른 자들은 관심도 가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에 올 때부터 갈지혁이라는 자에 대해서 궁금했다. 그렇게 갈지혁을 바라보던 독객의 눈이 자연스럽게 그의 옆에 있는 진검백을 스치며 지나갔다.

“음?”

갑자기 독객이 멈추어 섰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 다시금 진검백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독객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문을 품으면서 침묵했다.

가만히 진검백을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자네의 이름은?”

“진검백입니다.”

“화산파?”

“그렇습니다만…….”

“신기한 일이군.”

독객은 말을 마치고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놓고 떠들어댔다. 그렇지만 준비된 단상에 독객이 올라서자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만큼 행동으로 보여 주는 자다.

독객이라면…… 지금의 상황을 타개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갈지혁도 옆에 있으니 더더욱.

“난 독객 비광백이오.”

모르는 이는 없다. 그가 조용히 단상 아래에 있는 수많은 무인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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