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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186화 (186/200)

# 186

11화

“무림맹의 맹주이신 담자 대사와의 약속으로 다시 놓았던 검을 들고 나타났소. 최선을 다하겠소. 그뿐이오.”

간단한 인사를 끝으로 독객이 자리에서 내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칠천룡들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2조의 조장을 정하는 것뿐이다.

그것만 정해지면 별동대는 체계적인 움직임이 가능해진다.

앞에 나선 것은 청성파 장문인인 엄일성이다. 그가 단상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2조의 조장은 칠천룡 중에서 뽑으려고 하는데…… 누가 좋겠습니까.”

칠천룡 중 가장 강한 자라면 사람들은 묘운을 꼽는다. 옛날이었다면 화산의 진검백과 묘운을 가지고 이야기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건 옛날의 일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소림사의 묘운이 2조의 조장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군가의 입에서부터 묘운의 이름이 불러지기 시작했다.

“묘운, 묘운!”

그것은 곧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합창처럼 되어 버렸다. 묘운이 빙긋 웃으면서 앞으로 나섰다. 그가 나서자 묘운이라고 소리 높이던 목소리가 사그라졌다.

엄일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 또 나설 사람이 없냐는 듯한 것이다.

“비슷한 동년배의 인물이라면 칠천룡이 아니라도 상관없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묘운의 무위가 무척이나 빼어났기 때문이다. 동년배 중에는 적수가 없으며, 무림에서 알아주는 자들도 싸우기 꺼려할 정도의 실력자다.

괜히 나서서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엄일성은 아무도 나서지 않자 확정하듯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2조의 조장은…….”

“기다리시오.”

묘운이 뽑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갈지혁의 옆에 서 있던 진검백이 앞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웅성거림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자도 아닌 진검백이다. 낙화검 진검백이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는 묘운의 앞에 가서 섰다.

“낙화검 진검백이잖아?”

누군가가 조롱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지만 정작 진검백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엄일성이 진검백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묘운과 싸우겠는가?”

“물론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곳에 나올 이유가 없지요.”

진검백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묘운은 웃고 있지만 살짝 표정이 뒤틀렸다. 다른 자들은 진검백을 비웃었지만 묘운만큼은 언제나 그를 예의주시했다.

그렇게 시들 인물이 아니었다.

분명 비장의 한 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지 않을 게다. 진검백에게 무엇인가가 있다 해도 자신이 진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천재라고 해도 검을 놓고 지낸 세월이 얼마던가. 그동안 두 손에 물집이 잡혀라 검을 휘둘렀던 묘운이다. 패하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묘운이 검을 뽑으면서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그가 진검백을 상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진검백 또한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멍청이…….”

멀리서 둘의 모습을 바라보던 여상희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승부가 뻔한 싸움이다.

굳이 이 자리에 나와서 웃음거리가 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진검백은 검을 쥔 채로 길게 숨을 내뱉었다.

앞에 있는 상대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한동안 감추고 있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제 이 순간 이후로 그 누구도 진검백에게 낙화검이라고 부르지 못할 게다.

비록 검을 빼 들기는 했지만 묘운의 장기는 소림의 권법과 각법이다.

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진검백에게 말했다.

“언젠가 다시 싸우게 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얕잡아 보듯이 말하는 묘운의 말투에도 진검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여태까지 걸어온 자신의 길을 믿을 뿐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마음에 심어 두었던 한 자루의 검을 뽑아내는 일만 남았다.

묘운은 진검백이 자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자 살짝 표정을 구기며 먼저 움직였다. 그의 검이 진검백의 상체를 노리고 발톱을 세운 것처럼 날아들었다.

카캉!

두 개의 검이 맞물리면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간 묘운의 손이 움직였다.

휘리릭!

어마어마한 권력이 쏟아져 나온다.

백 보 밖에 있는 바위도 부술 수 있다는 백보신권(百步神拳)이다. 막 권풍에 휩싸일 뻔한 진검백의 상체가 굽혀졌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주먹.

때를 놓치지 않고 묘운의 발이 움직였다.

항마연환신퇴(降魔連環神腿)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진검백은 옆으로 물러서면서 그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해 냈다.

묘운은 오기가 생겼다.

‘예전의 실력이 남아 있다 이건가!’

그는 질세라 계속해서 발을 움직였다. 항마연환신퇴에서 관음십팔족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질풍처럼 쏟아지는 공격이 진검백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처음엔 언제 진검백이 당할까 하는 마음으로 구경하던 자들의 눈빛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의 대부분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다. 그들이 보기에도 진검백의 움직임은 결코 몇 년간 무공과 떨어진 자의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마음속에서 무공을 지웠던 자의 실력이 이럴 수는 없다.

권(拳), 각(脚), 지(指).

쏟아지는 공격 속에서도 진검백은 여유 있게 이리저리 피하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참지 못한 묘운이 강하게 장을 휘두르자 검으로 그것을 막아 내며 뒤로 물러났다.

거리가 생겼다.

그리고 이제 볼 만큼 다 보았다는 판단도 선다.

“이게 다인가?”

처음으로 진검백이 입을 열었다.

묘운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쉽사리 끝낼 거라고 생각했던 상대의 실력이 너무나 빼어났다. 그리고 지금 그 말투는 더 보여 줄 게 없냐며 자신을 비웃는 듯이 들렸던 것이다.

으득!

이를 악문 그가 막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묘운뿐만이 아니다. 구경을 하던 자들도 모두 쏟아지는 매화 향기에 넋을 잃었다.

매화 향기가 주변을 뒤덮었다.

향기는 진검백의 검에서 시작되어지고 있었다. 이토록 진한 매화 향기라니……

매화 향기가 만 리까지 퍼져 나간다.

여유 있게 상황을 관전하던 화산파 장문인 독고문이 주먹을 움켜쥔 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단한 인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매, 매화만리향!”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마지막 초식인 매화만리향. 펼칠 수 있는 자들은 허다하지만 이렇게 향기를 머금는 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매화만리향이라는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장문인들의 안색도 눈에 띄게 변했다.

낙화검 진검백이…… 매화만리향이라니!

진검백이 움직였다.

스륵.

뭔가가 묘운의 몸을 사방에서 난자하면서 스쳐 지나갔다. 피하려고 했지만 피하지 못했다.

묘운은 가만히 선 채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했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단 일격이다. 그 일격을 피해 내지 못했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 못하면 이 싸움은 패배가 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그러한 묘운의 간절함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타앙!

검이 떨어졌다.

묘운의 몸이 무너지듯이 땅으로 쓰러졌다.

이 싸움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모두 침묵에 휩싸였다.

제대로 진검백의 움직임을 본 자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황스러운 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낙화검 진검백이, 칠천룡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묘운을 단 일격에 무너뜨렸다.

두 눈으로 본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무당파의 청운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면서 소리쳤다.

“이, 이건 잘못됐어! 분명 사술을 쓴 거야! 당장 저놈을…….”

“화산의 매화만리향이다.”

“네놈에게 질 묘운이 아니다!”

“원한다면…… 나머지 다섯이 함께 덤벼도 좋다.”

진검백의 말에 청운의 표정이 새빨갛게 변했다. 무한한 자신감을 보이는 그의 모습이 낯설다. 그렇지만 진검백의 두 눈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진검백은 검을 넣지 않았다.

“덤비려면 누가 나와도 좋소. 별동대 2조의 자리가 탐이 나면 나오시오! 겨우 저런 놈 밑에 있고 싶지 않다면 나오시오! 상대가 누가 됐던 상대해 주겠소. 나는 낙화검 진검백이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 누가 칠천룡의 일인자로 평가받던 묘운을 단 일수에 쓰러뜨린 자를 낙화검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여태까지 실력을 감추어왔던 걸 모두 알게 되었다.

청우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손에서 검을 놓은 네가 어떻게 묘운을…… 믿을 수가 없어…….”

“내가 손에서 검을 놓은 순간, 내 마음에는 검 한 자루가 생겼다. 너희가 손에 든 검을 휘두르는 동안, 난 내 마음에 있는 검을 들었지.”

심검.

마음에 검을 가진 자와 손에 검을 지닌 자가 싸웠다. 승패가 갈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진검백의 수준은 이미 동년배의 누구와도 상대가 될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한 문파의 장로나 문주와 비등한 경지에 올라섰다.

채 서른이 되지 않은 이른 나이에 말이다.

“덤빌 테냐, 청우?”

“…….”

청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묘운이 힘도 쓰지 못하고 패했다. 그리고 사술이라고 우기기는 했지만 그랬다면 장문인들이 먼저 나섰을 게다. 그들이 침묵한 채로 이곳을 바라만 보고 있다.

정정당당했다는 소리다.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다. 괜히 나서서 창피만 당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청우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망설였다.

물러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가서 싸우는 건 더더욱 그렇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이나 했던가.

겨우 진검백이었을 뿐이다.

언제나 얕보고 멸시하던 낙화검 진검백이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믿을 수 없지만…… 현실이다.

그때 놀란 채로 진검백을 바라보던 독고문이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실력을 감추고 있는 건 알았지만 대단하구나.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마지막 초식인 매화만리향에서 이처럼 진한 향기가 퍼진 것이 과연 언제인지 모르겠구나.”

감탄.

그리고 죽어 있던 칠천룡의 일인인 진검백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 독고문이 나선 것이다.

애초에 그가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알던 몇 안 되는 인물이 바로 독고문이었다.

언제까지 숨을 죽이고 있을까 했거늘 드디어 하늘을 향해 비상한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진검백에게로 몰려 있다.

그의 화려한 부활이다.

더군다나 독고문이 나서면서 확인이라도 시켜 주는 듯이 매화만리향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진검백은 도전을 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단상 위에 오르지 않았다. 동년배 중에서는 진검백의 적수가 될 자가 없다.

별동대의 조직이 모두 갖추어졌다.

대장으로는 독객이, 1조의 조장은 갈지혁, 2조는 진검백, 3조는 운하연.

우습게도 별동대의 조장이 모두 한동안 함께 여정을 다니던 세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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