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12화
별동대로 뽑힌 팔십의 인원은 무림맹에서부터 떨어져 나왔다.
1조는 고수 스물다섯에 젊은 후기지수 다섯 명으로 채워졌고, 2조는 젊은 후기지수 스물다섯과 고수 다섯이 자리했다. 3조는 전투력이 가장 떨어지는 스무 명으로 이루어졌다.
이 팔십 명은 각기 조장을 따르지만 또 그들의 위에는 독객이 있다.
별동대가 비밀리에 야밤을 틈타 산속으로 잠입했다.
조그마한 공간에 네 명이 모였다.
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독객과 세 명의 조장뿐이다. 나머지는 이곳에 자리하지 못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지론을 지닌 독객 때문이다.
독객은 커다란 지도를 펼쳐 놓았다.
사천의 구석구석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지도이다. 갈지혁은 팔짱을 낀 채로 지도를 살폈다.
지도에 그려져 있는 붉은색 동그라미는 분명 독황독립문 무리들이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일 게다.
“현재 독황독립문의 힘이 가장 크게 집결된 곳은 이곳과 이곳.”
독객이 막대기로 지도 위에 크게 그려진 두 개의 원을 가리킨다. 그리 먼 곳은 아니지만 또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식량에 탄 독이 성공하지 않자 다시금 자리를 잡고 재정비에 들어간 상태다.
시간 끌기에 나선 게다.
“가장 먼저 이곳을 치려고 하는데.”
그가 가리키는 곳은 본진과 거리가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서도 꽤 되는 인원이 집결해 있는 곳이다.
독객의 말에 갈지혁이 바로 대답했다.
“이긴다고 해도 이쪽 인원의 절반이 죽을 거요.”
“그럼?”
“먼저 보급로를 끊는 게 좋을 것 같소.”
“바로 말인가?”
보급로를 끊기 위해서는 사천과 운남의 경계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도 걸리고 위험 부담도 크다.
혹여나 별동대의 움직임을 알아챈 독황독립문이 기습이라도 감행한다면…….
“다른 잔가지들을 다 치면서 보급로를 끊는 건 불가능하오.”
“이유는?”
“독을 만만하게 보지 마시오. 잔가지들을 치는 것도 그 피해가 적지 않을 거요. 그리고 잔가지들을 치는 동안 정예의 독인들이 보급로를 지키려고 갈 확률도 크오. 보급로를 통해 오는 것은 식량뿐만이 아니오, 독도 남만에서 만들어져서 이동되지.”
갈지혁은 지도를 살펴보면서 말을 이었다.
“식량이야 사천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독은 아니지. 독의 보급로를 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손과 발을 잘라 내는 거라고 생각되오. 독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독황독립문이야말로 우스운 상대지.”
“…….”
독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곰곰이 상념에 잠겼다.
갈지혁의 말이 일리가 있다. 지금 자신들에게 주어진 인원은 백 명이 되지 않는다. 이 인원으로 독황독립문에게 위협을 가해 그들이 황급히 움직이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보급로를 끊으면 독황독립문 자체가 약해진다.
그때 가지를 치는 것이 이쪽의 피해도 덜어지게 된다. 더군다나 점점 조급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갈지혁이 독객의 상념을 깼다.
“답은?”
“……네 판단대로 해 보지.”
“그럼 이동로를 정하는 게 좋겠소.”
“그래.”
현재 독황독립문은 사천성 서창(西昌) 주변에 모여 있다. 그나마 감락(甘洛)까지 치고 올라온 것을 밀어낸 것이다. 그렇지만 서창은 사천에서 중요한 고지다.
운남에서 서창으로 향하는 식량을 보관하는 곳은 반지화(攀枝花)와 덕창(德昌) 이 두 곳이다. 반지화와 덕창에 일차적으로 식량과 필요한 물자들을 모았다가 그것을 이동시킨다.
개중에서 보급로를 끊어야 하는 곳은 서창과 더 가까운 덕창으로 정해졌다.
독황독립문의 눈에 들키지 않고 덕창으로 가기 위해서는 목리(木里)를 지나야 한다.
빙 돌아야 하니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보름, 그 이상이 돼서는 실패다.
마을은 무조건 피한다.
해가 떠 있을 때는 이동하지 않는다.
어두울 때는 단 일각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의 시간을 버려야 했기에 그만큼 더 급히 움직여야 하는 여정이다. 그렇지만 별동대 팔십 명의 인원들은 아무런 불만도 토해 내지 못했다.
별동대가 실패를 하면 무림맹은 풍전등화의 위치에 놓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많은 노고수들도 침묵한다. 젊은 자들은 혈기를 억누른다.
그나마 3조의 인원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비밀리에 약재를 긁어모으거나 해독제들을 만든다.
1조의 인물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다. 그것이 무공이든, 다른 무엇이든 말이다.
2조는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
칠천룡들의 상황이 애매하다. 진검백에게 함부로 대하던 자들은 그에게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그토록 얕보던 자가 화산의 정수를 모두 익혔다고 한다.
묘운과의 비무에서 보여 줬던 압도적인 무위는 아직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해가 뜨자 일행은 바쁘게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추고 몇 명을 제하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경계를 서는 몇 명을 제하고도 잠을 자지 않는 자들이 있다.
별동대를 이끄는 네 명이다.
독객이 덕창의 지형이 그려져 있는 지도를 슬쩍 보면서 말했다.
“오 일, 오 일이면 덕창에 도착하겠군. 운하연, 해독약의 상태는?”
“제법 만들었어요. 하지만 독황독립문에서 어떠한 독을 쓸지 모르니 모든 독을 막아줄 거라고는 장담 못 해요.”
운하연은 솔직하게 말했다.
갈지혁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어떠한 독이라도 문제없다고 호언장담을 했을 게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하면서 그녀는 독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
독을 얕보지 않는다.
얕보면 진다. 이 싸움은 그러한 싸움이다.
독과 검의 싸움.
그냥 싸웠다면 이쪽의 필패다. 그렇지만 운이 좋게 이쪽에는 검뿐만이 아니라 독도 있다.
그것도 갈지혁이라는 든든한 독인이다.
갈지혁의 어깨에는 사황이 나와서 앉아 있다. 맨 처음 사황이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는 독객도 슬쩍 놀랐지만 이내 갈지혁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을 보고 긴장을 풀었다.
그렇지만 내심 신기한 것이 사실이다.
뱀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독객의 눈이 진검백에게로 향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이 가던 사내였다. 그리고 묘운과의 싸움도 두 눈으로 견식했다.
한 번쯤 싸워 보고 싶은 상대. 진검백이 바로 그러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기에 참고 있을 뿐, 언젠가 진검백과 검을 섞을지도 모른다. 무림을 떠났었지만 독객이 무인이라는 증거다. 그는 아직도 무인의 호승심을 가슴에 안고 있다.
독객은 다시금 지도를 살폈다.
몇백 번을 봤는지 모르지만 부족하다. 눈을 감아도 이곳의 지형을 알 정도가 되어야 한다.
기회는 한 번. 실패하면 그 후는 없을지도 모른다.
“승산은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나.”
갈지혁에게 묻는 거다. 침묵하고 있던 그가 대답했다.
“십.”
“성공을 확신하는군.”
“독인과 독왕의 싸움이오. 승산은 당연히 이쪽에 있지.”
독왕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는다. 다른 정파의 인물이었다면 당장 성을 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독객은 그러한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계획도 대충 정해졌다.
물론 다소 무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분명 최소한의 피해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다.
문제는 갈지혁이 스스로가 말하는 것처럼 그만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독객이 다른 셋에게 말했다.
“이제 슬슬 자지. 오늘 밤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까.”
최대한 쉬어야 한다.
사천성 덕창.
최근 독황독립문이 중원으로 밀려들면서 그들에게 점령을 당한 곳이다. 물론 본진은 더 위쪽에 있는 서창으로 향해 있지만 덕창에도 꽤 많은 독황독립문 무리들이 있다.
식량과 물자를 이동시키는 중요한 곳이 바로 덕창이기 때문이다.
운남에서 올라온 것들은 우선 반지화에 도착한다. 거기서 또 식량을 모아서 덕창으로 올린다. 그리고 덕창에서 최종적으로 서창으로 필요한 것들을 이동시킨다.
어찌 보면 덕창은 가장 중요한 거점일지도 모른다.
독황독립문의 물자들을 보관하는 곳은 덕창에서 가장 커다란 상인 단체였던 금구전장(金狗錢莊)이 있던 자리다.
이미 금구전장은 독황독립문의 손에 의해 쫓겨났고, 그곳은 그들의 창고가 되어 버린 것이다.
멀리서 금구전장을 바라보던 독객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다.
거기다가 저들이 무인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독인이라는 자들이다. 독을 수족처럼 부리는 자들. 그렇기에 더 상대하기 까다롭다.
금구전장은 커다란 세 개의 문이 있고, 조그마한 쪽문이 다섯 개가량 된다.
갈지혁이 자신의 계획을 말하기는 했지만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단신으로 정문을 뚫고 들어가겠다는 건 무리인데…….’
독객은 옆에 서 있는 갈지혁을 바라봤다. 그 또한 금구전장을 보면서 무엇인가 계획을 짜는 듯했다.
“정말로 그 계획대로 실행할 텐가?”
“물론이오.”
“무리일 것 같은데.”
“어차피 내가 아니면 저들의 쏟아지는 독을 버텨낼 자도 없지 않소. 괜한 피해는 없는 게 나으니까.”
“그렇긴 하지만…… 백 명이 넘는 자들과 싸워야 할지도 몰라.”
“상대가 몇이든 상관없소.”
독인의 싸움이다.
마음만 먹으면 한 번에 수백에 달하는 자들을 죽일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인.
독인과 독인의 싸움은 강한 한 명으로 인해 좌지우지되기 십상이다. 거기다가 갈지혁은 독뿐만이 아니라 무공에도 능하다. 독, 무공 모든 것이 앞선다.
거기다가 마음만 먹으면 갈지혁은 단화초의 독성을 뽑아낼 수도 있다. 그것은 세상 그 어떠한 것보다도 무서운 무기다.
질 가능성은 없다.
다만 최소한의 피해로 싸움의 종지부를 찍으려는 것일 뿐이다.
“난 독에 대해 잘 몰라. 그래서 갈지혁 자네의 말이 쉽사리 이해가 되지는 않는군. 하지만 독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 그게 맞겠지. 그래도 이건 알아 둬야 할 거야. 지금 실패하면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몰라.”
“실패는 없을 거요.”
“좋아. 그럼 계획대로 행하지.”
갈지혁은 말을 마치고 그대로 몸을 감추기 위해 뒤로 돌아가는 독객을 바라봤다.
저 사내는 참으로 신비한 자다.
자신과 딱히 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번 별동대 일로 처음 만났고, 서로에게 믿음을 줄 정도의 시간을 가지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갈지혁을 모른다면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계획에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 수 있다면 해 보라는 식이다. 독객의 말대로 이번을 놓치면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갈지혁은 금구전장을 바라봤다.
크기가 무척이나 크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을 모아 두었을 법한 곳은 뻔하다.
오늘 밤에 벌어질 작전은 간단하다.
갈지혁이 정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머지 병력들은 전부 뒤쪽과 옆쪽의 조그마한 문을 통해 안으로 잠입한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우면 성공이다.
독 중에서 불과 만나면 위험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만 주의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게다.
‘끝났어.’
갈지혁은 이곳을 점령하는 것이 성공할 거라 확신했다.
덕창까지 오는 동안 적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이상 이 싸움은 끝났다. 갈지혁은 자신이 있었다.
갈지혁이 천천히 걸었다.
밤공기가 차다. 금구전장의 주변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횃불 때문에 꽤 밝다.
갈지혁의 뒤에는 아무도 없다. 갈지혁이 맡은 1조는 지금 독객이 이끌고 옆으로 돈 상태다.
금구전장을 시끄럽게 하면 그때서야 조심스럽게 안으로 파고들 게다.
덕창의 밤은 너무나 조용하다.
독황독립문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사람들은 밤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 탓에 갈지혁은 오히려 더 눈에 들어왔다.
금구전장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자들이 그를 바라보면서 형형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