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16화
별동대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그들은 무모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적의 심장부를 쳤고, 그것이 너무나 쉽게 성공했다.
연락을 받은 바로는 갈지혁의 압도적인 무위 앞에 독황독립문 무리들이 모두 나뒹굴었다고 한다. 만약 갈지혁을 별동대의 대장으로 만들었다면 무림맹으로서는 큰 골칫거리를 감수해야 했을 게다.
독객이 있는 덕분에 갈지혁이 가져야 할 모든 공들을 다소 분산시킬 수 있다.
독객에게도 서찰을 보냈으니 아마 지금쯤 그들도 회군을 하고 있을 게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제부터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유리해지는 것은 무림맹 쪽이 되어 버렸다.
준비해 온 독이 바닥나면 독황독립문 무리들은 상대가 되지 못한다. 독황독립문이 무서운 것은 그들의 독이지 무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림맹 맹주인 담자 대사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화산파의 장문인인 독고문이 그곳에 있다.
“맹주님, 놈들이 지척에 다다랐습니다.”
“슬슬 준비해야겠습니다.”
이제 격전이 코앞이다.
담자 대사는 깊게 숨을 내쉬면서 합장을 했다.
‘적은 피로 끝날 수 있기를…….’
쉬운 일은 아닐 게다.
무림맹과 독황독립문의 싸움에 끼기 위해 별동대는 바쁘게 움직였다.
오래된 여정 탓에 피로가 쌓이기도 했으련만 그들의 걸음걸이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자신감이 쌓였다.
독황독립문에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하다가 이렇게 그들을 쓸어버렸다.
갈지혁이라는 존재가 있는 이상 독에 대해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버린 거다.
별동대에서 열 몇 명이 죽는 동안 상대는 몇백 명이 죽었다.
독황독립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찼다.
당장이라도 무림맹과 독황독립문의 싸움에 개입하고 싶은 심정이다.
굳이 돌아서 갈 필요가 없었기에 별동대는 최단거리로 움직였다. 은밀할 필요가 없었기에 마을도 가로지르고, 낮에도 활발하게 이동했다.
쉬는 시간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일각이라도 빨리 무림맹의 본진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갈지혁은 일행의 선두에 서서 움직였다.
그의 눈이 주변을 훑으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기습에 대비했다. 그렇게 무림맹이 있는 사천으로 향하던 갈지혁의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저건……?’
벽에 그려진 어린아이의 장난 같은 그림. 그렇지만 그것은 그냥 그림이 아니다.
황금귀 이풍이 갈지혁에게 급히 전할 무엇인가가 있을 때 사용하는 밀마인 셈이다.
갈지혁은 급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몇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젊은 사내, 노인, 바구니를 들고 있는 여인…….
아니, 다 아니다.
갈지혁의 눈에 쪼그려 앉아 돌멩이를 가지고 노는 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기껏해야 열 살 정도 되었을 법한 아이다. 갈지혁이 멈추어 서더니 독객에게 말했다.
“알아볼 게 생겼소. 잠시 여기서 쉬는 게 어떻겠소?”
“알아볼 것?”
무엇이냐고 묻는 거다. 그렇지만 그건 아직 갈지혁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독객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줘야 하는 의무도 없다. 함께 움직이고는 있지만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다.
“그럼 잠시만.”
대답을 듣지도 않고 갈지혁은 옆으로 빠져나왔다.
갈지혁이 그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벽을 타고 옆으로 돌았다. 벽을 돌자 그 앞에는 아이가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돌을 가지고 장난을 치던 그 아이가 말이다.
“아저씨는 공기놀이 좋아해요?”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갈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돌멩이를 그에게 건넸다.
“이거요. 아저씨 가져요.”
“고맙다.”
“그럼 전 갈게요.”
아이가 몸을 돌려 콧노래를 부르면서 점점 멀어진다.
갈지혁은 아이가 주고 간 돌멩이를 바라봤다. 돌멩이뿐만이 아니다. 돌멩이를 주면서 꾸깃꾸깃 접은 종이 한 장도 그의 손에 건네줬다.
그는 종이를 펼쳤다.
얼마나 급한 일이기에 황금귀 이풍이 그 밀마를 사용하였는지 궁금하다.
아마 이 이전에도 황금귀는 계속해서 같은 밀마를 보냈을 게다. 그리고 운이 좋아 갈지혁이 지금 발견한 것일 테고. 운이 없었다면 이 마을도 그냥 지나칠 뻔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보던 갈지혁의 눈이 커졌다.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던 내용이 적혀 있다. 그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단리문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단리문이 왜 독황독립문이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이토록 잠잠하게 있는가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애초부터 독황독립문을 버릴 패로 들고 있었던 게다. 그리고 지금이 그 패를 버려도 될 때라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종이는 일악천이 보낸 편지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해남도에서 벌어졌던 알 수 없는 독에 대해 생각하다가 알아차린 것에 대한 것이다.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다. 놈이 단화초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틀렸었던 거야. 애초부터 놈이 노렸던 것은 단화초가 아닌 단화초가 있어야 사는 단접이었다.’
단화초와는 다르게 단접은 움직일 수 있는 벌레다.
하늘을 나는 단접의 날개에서 떨어지는 독분은 모든 것을 없앤다. 애초부터 단화초를 가지고 단접을 움직이려는 속셈이었던 게다. 그것도 모르고 단화초만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일악천 덕분에 단리문에게 뒤통수를 맞을 뻔한 것을 사전에 알아차렸다.
그 편지에는 단접의 독이 퍼진 방향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 단접의 흔적은 바로 광동성 담강(湛江) 지역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아마 단리문이 그 근방에 진을 치고 단접을 감추어 두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접은 단 하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뒤집으려고 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지금 단리문이 시간을 끄는 이유도 바로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비의 알이 성충까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삼십에서 사십 일.’
단접이 알을 낳게 해 그것을 성충으로 키우는 동안의 시간을 벌려는 거다.
만약 알이 부화해 성충이 된다면 그 숫자는 많아질 게다.
단접이 하늘을 날면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쇠조차도 녹여 버리는 단접의 독이라면 피육(皮肉)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쯤 녹이는 거야 우스운 일이다.
사천으로 가려던 갈지혁의 생각이 바뀌었다.
다른 자들은 몰라도 갈지혁만큼은 지금 광동성 담강으로 가야 한다. 단리문은 이 싸움에 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림맹은 반드시 이기게 될 것이다.
사용할 독이 제대로 없는 이상 독황독립문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종이를 품 안에 넣은 갈지혁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탓에 쉬고는 있지만 모두 떨떠름한 표정이다.
갑자기 마을 중앙에 앉아서 쉬고 있는 것도 우습다.
독객은 갈지혁이 돌아오자 이만 가자는 듯이 일행에게 신호를 보냈다.
쉬고 있던 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갈지혁이 독객에게 말했다.
“잠시 별동대에서 빠져야겠소.”
“그게 무슨 소리냐.”
독객이 갈지혁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더니 별동대에서 빠지겠단다.
지금 갈지혁이 무림맹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는 독객이다. 별동대를 이끈 것으로 이제 무림을 떠날지도 모르는 그이지만…….
“서찰을 한 장 적어 주겠소. 무림맹 맹주께 가져다주면 내가 사라진 이유도 알 거요.”
“흐음.”
무림맹 맹주에게 서찰을 보낸다는 말에 독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알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무림맹 맹주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사전에 무엇인가 대화가 되어 있는 듯하다.
맹주와 관련된 일이라면 독객이 말리기도 뭐하다.
그렇지만 진검백은 독객과 조금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갑자기 어딜 가겠다는 거야?”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 가서 조금 알아봐야 할 게 있어서.”
“그럼 같이 가지.”
“안 돼.”
갈지혁이 딱 잘라 말했다.
단서를 잡았다는 말에 진검백은 단리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게다. 그에게는 단리문에 대한 것을 모두 가르쳐 줘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같이 가서는 안 된다.
“이제 넌 화산파의 진검백이다. 낙화검 진검백이 아니야.”
“…….”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화산파의 얼굴이 될 게다. 진검백은 그만한 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자니까 말이다.
진검백 또한 갈지혁의 말뜻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싸우러 가는 게 아니다. 알아볼 게 있을 뿐이지.”
“젠장, 알았다. 어쩔 수 없지. 이래서 내가 낙화검으로 지내려고 했던 건데…… 네 녀석이 억지로 실력을 보이게 하는 바람에 이렇게 꽁꽁 묶이게 되어 버렸다고.”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정말로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갈지혁의 말대로 지금 진검백은 화산파의 얼굴이다. 함부로 행동할 때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짐에서 종이와 붓을 꺼낸 갈지혁은 그 위에 무엇인가를 적고 나서 그걸 독객에게 건넸다.
“부탁하오.”
“그러지. 갈지혁은 이곳에 남고 나머지는 움직인다. 지금부터 1조는 내가 통제하겠다.”
말을 마친 독객은 갈지혁을 한 번 바라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별동대는 다시금 사천에 있는 무림맹의 본진을 향해 급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갈지혁은 오히려 반대쪽인 광동성으로 향해야 한다.
갈지혁도 몸을 돌렸다.
서둘러 광동성에 가야 한다. 그곳에 단리문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게 놔둘 수는 없지.’
사람의 목숨은 그리 가볍지 않다.
단숨에 쓸어야 한다는 생각에 독황독립문은 초반부터 무모한 공세를 시작했다. 열흘가량을 이동하자마자 쉬지도 않고 무림맹에게 공격을 한 것이다.
그에 반해 제자리를 지킨 채로 쉬고 있던 무림맹은 여유가 있었다.
그들의 공격을 어떻게든 지연시키면서 시간만 끌면 그만인 것이다.
독황독립문이 독을 뿌리면 사천당문이 나서서 그것을 막아 낸다. 사천당문뿐만이 아니라 약선문까지 합세하니 독황독립문의 독의 위력이 많이 약해졌다.
거기다가 그들은 이번 전쟁을 위해 준비한 대부분의 독을 잃어버렸다.
그 독들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그것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했던 물건들이다.
별동대가 며칠만 늦게 왔었더라면 그 독들은 모두 본진에 들어왔을 게다.
운이 나빴다.
하필이면 잠시 독들을 보관하는 그때 별동대가 금구전장을 기습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며칠 동안 미친 듯이 공세를 퍼부었지만 실질적으로 손해는 독황독립문에서 보고 있다. 그걸 알기에 지대익의 표정은 좋지 않다. 단상에 앉은 그가 머리를 감싸 쥐고 신음을 토해 냈다.
“끙.”
“할아버님…….”
옆에 있던 지운경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지대익을 본다. 그렇지만 지대익은 그런 손자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는다.
다 성공했었다.
이제 남만이 아닌 기름진 중원을 독황독립문의 것으로 만들어 보고자 했다. 한데 이게 지금 무슨 꼴이란 말인가.
아주 오래전 중원에 나섰을 때도 울분을 참고 돌아가야만 했다.
그때는 일악천이 변심하면서 그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당시 지대익은 다음번 중원에 올 때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거라고 이를 악물고 다짐을 했었다.
한데…….
지금 또다시 물러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져 버렸다. 중원에 나올 때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독도 문제고 식량도 문제다. 거기다가 별동대라는 놈들이 공격한 곳들은 독황독립문에 꼭 필요한 곳이었다. 독이 없어졌고, 그들이 죽었다.
전력의 칠 할 이상이 줄어든 것이다.
이 상태로 싸움을 해서 승리를 할 거라는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