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93화 (193/200)

# 193

18화

단리문과 지대익의 눈이 마주쳤다. 지대익은 움찔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지금 단리문은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단리문은 지대익의 목숨을 취하려는 것이다.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이내 지대익은 정신을 차렸다.

이곳은 사방이 독황독립문의 문도들이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행패를 부린다면 제아무리 단리문이라고 해도 살아 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 단 한 번도 단리문의 제대로 된 실력을 본 적도 없다.

먼저 긴장을 하는 것도 우습다.

지대익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단리문이 성큼 뒤로 물러서더니 이내 몸을 돌려 걸어나간다.

당장이라도 목숨을 취할 것처럼 굴던 자의 행동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아무런 말도 없이 단리문이 사라지자 지대익은 털썩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목이 타기 시작한다.

그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탁자 위에 있는 술을 마셨다. 순간,

“커, 커억!”

무시무시한 고통이 배 아래부터 지지고 올라온다. 몸 안에 있는 모든 장기가 비틀리는 기분이다.

단화초.

언제인지는 모른다. 천막 안에 나타났던 단리문이 독을 푼 것이다.

지대익 또한 대단한 독인이지만 단화초 앞에서는 다른 자들과 매한가지다.

버텨낼 수 없는 지독한 독이 온몸을 엄습한다.

“크, 크르르.”

이상한 소리와 함께 거품을 물며 지대익이 쓰러졌다.

그나마 지대익이기에 이 정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다른 자였다면 당장에 온몸이 터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땅에 쓰러진 지대익은 손톱으로 땅을 긁었다. 흙이 손톱 사이로 들어온다.

손톱이 깨지고 손가락 끝도 찢어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가슴을 움켜쥐고 계속 땅바닥을 긁었다.

살고 싶다.

그런데 단화초의 독은 그러한 지대익의 의지를 꺾어 놓았다.

손가락을 꼿꼿하게 세운 채로 땅바닥을 긁어대던 그의 손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독황독립문의 문주였던 지대익은 그렇게 숨을 거뒀다.

천막 바깥에 있던 단리문은 풀썩 하는 소리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단화초의 독은 정말 대단하다. 지대익 정도 되는 독인을 단번에 죽일 정도다.

죽는 데 걸리는 시각은 정말 촌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짧은 시간이다.

상대가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

지대익이 죽었다.

그렇다면 권력을 잡을 자는 당연히 그의 유일한 혈육인 지운경이다. 하지만 지운경은 다소 머리가 없다.

이용해 먹기는 좋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권력을 다른 자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리문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가 지운경이 권력을 잡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은 바로 재개될 게다.

단리문은 걷기 시작했다.

지운경의 거처로 가서 할 이야기가 많다. 이제 곧 지대익의 죽음을 사람들이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단리문을 생각하지는 못할 게다. 그를 본 이는 아무도 없다.

그처럼 은밀했고, 신속했다.

지운경의 거처에 도착한 단리문은 바로 안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소란이 일 때가 되었는데…….’

아직 지대익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때 지운경에게 모습을 드러내 그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면 범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밝히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기다린다.

그렇게 몸을 감추고 있던 단리문은 주변이 점점 소란스러워짐을 느꼈다. 급하게 이리저리 뛰는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가 지운경의 거처로 들어갔다.

천막 뒤쪽에 몸을 감추고 있던 단리문의 귓가에 안에서 하는 대화가 들려온다.

“무, 문주님이 독살당하셨습니다.”

“……뭐라고?”

쾅!

거친 소리도 난다.

단리문은 천천히 천막 앞쪽으로 걸어나갔다. 때가 됐다. 이제 독황독립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기회가 온 것이다. 막 바깥으로 달려나오던 지운경은 바로 앞에 나타난 단리문 때문에 멈칫했다.

“뭐냐! 당장 비켜!”

“소문주님, 잠시 이야기를 해야 할 게 있습니다.”

“시끄럽다! 네놈과 지금 할 이야기는…….”

“다음 문주 자리에 대한 것입니다.”

“…….”

거칠게 달려 나가던 지운경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는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본 후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옆으로 고갯짓을 했다.

저쪽으로 가자는 신호다.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욕심만 많은 놈.’

지운경은 욕심이 많은 사내다. 그렇지만 그만한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범이었거늘 그 손자 놈은 아직 하룻강아지다.

은밀한 곳에 도착하자 지운경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냐?”

“아시겠지만 지금 문주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급히 가려던 중이었고. 어서 속내를 말해라.”

“당연히 다음 문주는 소문주님이 돼야 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당연하다는 듯이 지운경이 소리쳤다. 다음 대 독황독립문의 문주가 자신이 될 거라는 생각에 한 치의 의심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지운경은 너무 젊다. 한 문파의 문주가 되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걸 핑계로 다른 자를 문주로 추대하려는 자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지운경은 바보가 아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어떻게든 문주의 자리를 잡아야 한다.

“눈빛을 보니 알고 계시는 듯하군요. 그럼 이야기하기 편해지겠습니다. 분명 소문주님을 반대하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도와드리지요.”

“네깟 놈이 뭘…….”

“제가 왜 잠시 동안 사라졌는지 아십니까?”

단리문이 지운경에게 묻는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갑작스럽게 그가 사라져 지대익의 화가 솟구쳤던 건 알고 있다. 지대익도 몰랐던 것을 지운경이 알 리가 없다.

“독을 구하러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준비해 두었던 독들을 구해 냈지요. 이번에 사라진 만큼의 독은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정말이냐?”

“물론이지요.”

거짓말이다.

처음에는 독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무림맹과 대치한 채로 시간을 끌어 주기만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지대익이 남만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금 바로 지운경이 독황독립문을 휘어잡기 위해서는 독이 필요하다.

독이 있으면 다시금 전쟁을 하게 만들 명분도 생긴다.

일거양득이다.

“그리고 전쟁을 해야 합니다. 전쟁을 할 때만큼 절대자의 위치가 견고해질 때도 없지요.”

전쟁은 숙적을 제거하는 데도 좋은 기회다. 전쟁을 핑계로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방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꿀꺽.

지운경은 침을 삼켰다.

눈앞에 있는 유혹이 너무나 크다. 더군다나 그 또한 지금 이렇게 남만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지금 단리문과 손을 잡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좋은 방책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만히 있던 지운경이 손을 내밀었다.

“함께하지.”

“좋습니다. 그럼 전 독을 이곳으로 오게 하지요. 다시 전쟁 준비를 서두르셔야겠습니다.”

“우선 수뇌부들을 모두 모아야겠어. 앞으로의 일과…… 나를 반대하는 자들도 알아봐야겠지.”

“아직은 지대익 문주를 따랐던 자들이 많습니다. 이번 독살을 무림맹의 짓으로 치부하면서 밀어붙이시면 그들은 소문주님의 뜻을 따를 겁니다.”

좋은 방법이다.

지대익을 광적으로 따랐던 많은 자들이 단숨에 지운경의 편이 되어 줄 것이다.

어떻게든 무림맹에 복수를 하겠다고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뜩 이상한 생각이 든다.

단리문의 계획이 딱 맞아떨어진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든다. 지금은 그러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독황독립문의 문주가 되어 무림맹을 중원에서 밀어내야 한다. 단리문의 말대로 준비해 왔던 만큼의 독을 다시 지니게 된다면 싸움은 불가능하지 않다.

단리문을 보며 지운경이 말했다.

“함께 회의에 참석하지.”

“그러지요, 문주님.”

문주라는 말에 지운경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려 버렸다.

독황독립문의 새 문주는 지운경이 될 게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리문이 바라던 바다.

조금만 끌면 된다. 조금만 지나면……

단접의 알들이 성충이 된다.

별동대가 본진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싸움은 끝나 있었다.

무림맹의 분위기는 잔칫집마냥 들떠 있다.

몇십 년 만에 다시 벌어진 독황독립문의 침략을 막아 냈다.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싸움은 끝난 것이다.

독객은 예상보다 빠르게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맹주인 담자 대사를 찾아갔다.

담자 대사는 전쟁이 끝난 후의 일들을 계획하던 중이었다.

홀로 있던 담자 대사는 찾아온 독객을 반갑게 맞이했다.

“잘 지내셨소?”

“소승이야 아무런 일도 없었지요. 독객이 수고해 주신 덕분에 일이 잘되었습니다. 싸움이 예상보다 빨리 끝난 것은 다 별동대 덕분입니다.”

원래 이리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었다.

별동대가 식량과 물자가 있는 곳을 날려 준 덕분에 단숨에 전세가 바뀌었다.

독황독립문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무림맹이 기습을 감행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럼 이만 산으로 돌아갈까 하는데…….”

말을 하던 독객이 품속에 넣어 두었던 서찰을 꺼내 담자 대사에게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갈지혁이 주라고 했소.”

“갈 시주가? 별동대와 함께 오지 않았습니까?”

“중간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서 떨어져 나갔소. 이 서찰을 보여 주면 이해할 거라고 하더이다.”

담자 대사의 시선이 서찰로 향했다. 갈지혁이 갑작스럽게 빠져나갔다는 말이 왠지 그의 신경을 건드린다.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해서 들던 괴이한 기분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담자 대사는 서찰을 펼쳤다.

안에는 갈지혁이 그에게 전하려는 말들이 담겨져 있다. 서찰의 내용을 빠르게 훑어가던 담자 대사의 표정이 구겨졌다.

뭔가 찝찝했던 이유를 알아냈다.

바로 이것이다.

‘단리문이라…….’

그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이 싸움이 너무나 쉽게 끝났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면에는 단리문이라는 존재가 보이지 않아서이기도 했던 것이다.

단화초를 가지고 있다던 단리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천당가의 가주인 당려환조차도 기겁을 했던 그 물건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왜?

설마 단화초까지도 불탔을까?

그건 아닐 게다. 그러한 내용이 갈지혁이 보내 준 이 서찰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계속해서 서찰의 내용을 읽어가던 담자 대사의 눈이 커졌다.

‘단화초가 있는 곳에 산다는 단접?’

처음 듣는 이야기다. 하지만 갈지혁이 간단하게 적어 놓은 단접의 위력에 담자 대사는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쇠조차도 녹이는 독이라니…… 그러한 것을 인간이 뒤집어쓴다면 어찌 될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갈지혁의 서찰에는 믿기 어려운 사실들이 적혀 있다. 단리문이라는 자가 광동성 부근에서 단접을 키우고 있고, 그곳에 아마 실질적인 세력들이 있을 거라는 소식이다.

그것에 대해 조사를 하러 떠난다는 것이 서찰의 주 내용이다.

담자 대사는 고민에 빠졌다. 만약 이 서찰의 내용대로라면 싸움은 끝난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더욱 중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림맹을 이끌고 광동에 간다고 하면 분명 반발이 가득할 터.’

다른 자도 아닌 갈지혁의 의견이다. 반수 이상은 반발하면서 따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담자 대사도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할 만한 사안이다.

만약 이것이 잘못된 정보라면……

문제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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