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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194화 (194/200)

# 194

19화

막 고민을 하던 담자 대사는 허겁지겁 천막 안으로 뛰어들어 온 자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독객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 숨을 헐떡이는 사내를 바라봤다.

그가 입을 열었다.

“도, 독황독립문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뭐?”

독객이 놀란 눈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그러자 사내는 더욱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방에 보내놓았던 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독황독립문이 다시금 치고 올라오고 있답니다.”

“허허.”

담자 대사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허허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들의 무기인 독이 얼마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연유로 다시 치고 올라온다는 것인가. 그 말인즉슨 부족했던 독을 채웠다는 말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위험하다. 놈들이 회군을 할 정도의 상황이라면 마교까지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소리다.

“급히 회의를 소집해야겠습니다.”

독객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건만 다소 시간이 걸려야 할 듯하다.

그리고 애초부터 별동대의 대장으로만 쓰려고 담자 대사가 이곳으로 부른 게 아니다. 그저 별동대의 대장 자리 때문이었다면 다른 자들도 넘쳤다.

이렇게 전면전을 펼치게 될 경우 독객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독객(獨客) 비광백.

그리고 그의 또 다른 별호.

독객(毒客) 비광백.

아는 이는 담자 대사뿐이지만 비광백은 독에 능통한 무인이다. 그는 독황독립문과의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다.

상황은 무섭게 반전됐다.

승리에 들떠 있던 무림맹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고 올라오는 독황독립문에게 연신 밀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독이 다시 부활했다.

더군다나 이번에 나타난 독은 해독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라 중독당한 자들이 다시 전쟁터에 나가는 데는 막대한 시간이 소모됐다.

그냥 숫자로만 본다면 독황독립문에 비해 열 배가량은 되는 무림맹이다. 그렇지만 단리문이 준비한 독으로 무장한 독황독립문은 일당백의 위력을 냈다.

갑작스러운 독황독립문의 회군에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가장 커다란 사건은 마교의 출정이다.

독황독립문이 퇴각했다는 말에 출정하려던 무인들을 정리하던 마교가 결국은 움직였다.

독황독립문에 대한 원한은 마교 또한 적지 않다. 그리고 원한 문제를 떠나 정파가 먹히면 마교도 곧 독황독립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정파와 합세를 하여 그들을 몰아내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일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본래의 문파나 세가로 돌아가던 무림맹의 무인들도 급속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한번 기울어지기 시작한 전세는 쉽사리 뒤집기 어려웠다.

사천의 절반을 빼앗겼다.

이대로 간다면 얼마 되지 않아 사천을 버리고 감숙까지 도망가야 할 처지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문제는 사천의 절반을 빼앗겼다는 것보다 독황독립문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거다. 그리고 그 와중에 독황독립문 내부의 일들이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독황독립문 문주인 지대익이 죽고 손자인 지운경이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회군의 이유가 바로 지운경이라는 것이다. 그의 강력한 주장과 함께 엄청난 양의 독이 독황독립문에 전해졌다고 한다.

독의 출처는 처음엔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내 밝혀졌다.

단리문이라는 자가 어마어마한 양의 독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담자 대사는 크게 놀랐다. 갈지혁이 말한 그자가 정말로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나타난 것이다.

갈지혁의 모든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걸 알았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다. 현재로서는 최대한 정면 격돌을 피하면서 독황독립문에 피해를 주는 수밖에 없다.

독황독립문의 치명적인 약점이 바로 적은 머릿수다. 그들의 숫자는 줄고 줄어서 이제 몇백 명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독인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머릿수가 아닌 독의 종류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독을 뿌리기 위해서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무림맹에서 준비한 것은 화살이다.

화살은 먼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장병(長兵)이다.

독의 범위에서 벗어나 공격을 하기 위해 무림맹이 선택한 수단이다.

하지만 독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라서 화살보다 오히려 범위가 넓은 것들도 허다했다.

그나마 화살로 조금씩 피해는 주고 있지만 무림맹 또한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는 형편이다.

우습게도 무림맹이 마교의 도움을 기다리게 되어 버렸다. 그들이 나타난다면 나름대로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림맹과 독황독립문의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을 때였다.

광동성 담강(湛江)에 갈지혁이 나타났다.

뱃길과 어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일악천의 정보대로라면 단접의 흔적이 사라진 곳이 바로 이곳 담강 부근이다.

담강에 들어선 갈지혁은 비릿한 바다 냄새를 맡았다. 이곳에서 해남도는 결코 멀지 않다.

‘해남도에서 이곳까지라…….’

단접을 이동시켰다.

흔적이 끊겼다는 소리는 이 부근 어딘가에 단접을 숨겨두었다는 소리다. 물론 그냥 숨겨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단접이 살았던 곳처럼 진을 만들어서 놈을 감춰두었을 게다.

그냥 두었다면 단접으로 인한 피해가 사방으로 퍼졌을 테니까 말이다.

담강을 일부러 돌아다니면서 현재 분위기를 살폈지만 너무나 평화스러웠다. 무림맹과 독황독립문의 싸움도 광동성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담강은 광동성에서도 거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더더욱 싸움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갈지혁은 마을을 벗어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진을 쳤다면 마을을 벗어난 다른 곳에 쳤을 공산이 크다. 거기다가 단접의 흔적이 이 부근에서 끊긴 것을 보면 분명히 판단은 틀리지 않을 게다.

꼼꼼하게 주변을 살폈지만 딱히 이상해 보이는 것은 없다.

하지만 직감이 계속 말하고 있다. 이 부근에 무엇인가가 있다고 말이다.

갈지혁은 끈덕지게 주변을 찾았다.

자연의 기운이 이상한 곳,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풍기는 곳도 모두 확인했다.

한참을 찾았지만 아무것도 없다.

갈지혁은 커다란 바위 위에 걸터앉은 채로 잠시 주변을 살폈다.

밤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갈지혁은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법에는 생문이라는 것이 있다.

생문이 열리는 시간이 다를 수도 있기에 갈지혁은 이 근방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기다렸던 것이다.

혹여 밤에 생문이 열리는 진법일지도 모른다.

밤이 깊었는데도 갈지혁은 잠을 자지 않고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삼사 일가량이 후다닥 흐른 것 같다.

계속해서 주변을 찾고 있지만 특이한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풍에게서 날아드는 소식은 무림맹이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천의 절반을 빼앗기고 밀려간 걸로 모자라 이제는 거의 감숙까지 물러났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교가 무림맹을 돕기 위해 신강을 넘어 청해 부근에 이르렀다는 거다.

이동하는 속도를 생각해 본다면 아마 그들은 사천이 아닌 감숙으로 향해야 할 게다. 지금의 무림맹으로서는 독황독립문을 막아 낼 방도가 없다.

독을 경시한 결과다.

독에 그렇게 당해 놓고도 무지했고, 또 독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독에 대한 재능이 있는 자들은 공적으로 몰아 추살했다.

독인이 없다.

독황독립문과 싸우기 위해서는 독인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독인이라고 할 만한 자들을 모두 중원 바깥으로 쫓아냈거나 죽였으니 이렇게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

독인은 무인이 잡는 게 아니다.

독인은 독인으로 잡았어야 한다.

뭐 지금에야 후회해도 늦었지만 말이다.

마교가 도움을 주러 오지 않았다면 갈지혁이라도 위로 올라갔어야 했을 판이다.

마교의 등장은 갈지혁에게도 큰 다행이었다.

익숙하게 마을을 돌던 갈지혁의 옆을 두 명의 사내가 스치고 지나간다.

아무 생각 없던 갈지혁이 갑자기 멈칫하고는 뒤를 돌아봤다.

방금 전 스치고 지나간 두 사내 때문이다.

‘독 냄새.’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면 모를까 갈지혁의 코까지 피해갈 수는 없다. 방금 전 그 둘에게서는 독 냄새가 났다.

이 근방에 독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독황독립문은 애초에 광동성을 지나가지도 않았다.

그런 곳에서 만난 독인이라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찾았다.’

단리문의 수하들이다. 이곳에서 단리문의 명을 받들고 움직이는 자들이 바로 저 둘일 게다.

갈지혁은 몸을 돌려 적당한 거리를 벌린 채로 두 사내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급한 일이 있는지 둘은 어딘가로 급하게 가고 있는 듯했다.

혹여 운이 좋다면 이대로 단리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게다. 지금 들은 정보로는 그가 나타나면서 독황독립문이 다시금 무림맹에 공격을 시작했다고 하니 이곳에 있을 리는 없다.

목적은 단리문이 아닌 단접이 있는 위치다.

독인으로 보이는 두 명이 향하는 곳은 평소 갈지혁도 자주 지나치는 객잔이다. 두 사내가 객잔으로 들어가자 갈지혁도 태연하게 그 뒤를 쫓았다.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두 사내의 모습을 갈지혁은 놓치지 않았다.

자리에 가서 앉은 둘은 간단한 음식을 시킨다.

‘식사를 하러 온 건가.’

갈지혁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둘을 살피면서 간단한 소면을 시켰다. 그때 두 명을 살피던 갈지혁의 눈에 이상한 장면이 보였다.

둘 중 한 사내가 아래로 내려뜨린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무엇인가를 점소이의 손을 향해 쏘아 보냈다.

너무나 은밀했기에 갈지혁도 자세히 보고 있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태연하게 날린 것을 잡은 점소이는 그대로 주문을 듣고는 주방으로 사라졌다.

‘서찰 같았는데…….’

분명 서찰이었다. 아마 어딘가로 전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갈지혁은 눈앞에 놓인 소면을 먹으면서도 그 둘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폈다. 하지만 서찰을 전한 것 외에는 딱히 수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두 사내가 일어나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갈지혁도 덩달아 뒤쫓아 밖으로 나갔다.

둘은 또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한다.

기척을 감추고 계속해서 쫓았지만 그들은 처음 만났던 곳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다른 객잔에 도착한 둘은 그대로 올라가더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갈지혁은 그들이 들어간 방을 확인한 후에야 객잔을 벗어났다.

그는 객잔 근처 으슥한 곳에 몸을 숨겼다. 예민한 감각이 객잔 주변을 철통처럼 감시했다. 그렇지만 객잔에 들어간 후로 둘은 다시 나오거나 하지 않았다.

갈지혁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세 시진가량이 흐르고 나서야 갈지혁은 객잔을 향해 움직였다. 지금쯤이면 잠에 빠져 있을 게다.

물론 잠에 빠져 있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그 둘 정도 제압할 방법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문제는 놈들이 지니고 있을 독단이다.

입 안에 분명 자살용으로 독단을 하나씩 물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채 반응하기 전에 제압해야 한다.

알고 있는 비밀을 불게 만드는 독도 있다. 제압만 한다면 그 후에 놈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전에 독황독립문 무리들에게 사용했던 환시독을 꺼내 든 갈지혁이 객잔을 올려다봤다.

아까 전 둘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방은 어둡다.

갈지혁의 몸이 허공을 날아올랐다.

단숨에 이층 벽에 매달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갈지혁은 천천히 옆으로 이동하여 방 안을 살폈다.

안은 어두웠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둘 중 하나는 잠에 빠져 있고, 나머지 하나는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단숨에 제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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