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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197화 (197/200)

# 197

22화

무진악의 두 눈에 핏발이 선다.

당장에 눈앞에 있는 놈들을 모두 요절을 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천추의 한이다.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무림맹 무인들의 머리를 채울 때였다.

“와아아!”

거대한 소리가 갑작스럽게 들려온다.

옆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하게 됐다. 독황독립문이 또 무슨 짓을 하는 건가 하고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던 담자 대사는 깃발을 보는 순간 주저앉을 뻔했다.

온몸에 힘이 쭉 풀려 버렸다.

마(魔)라는 글자를 깃대에 걸고 그들이 나타났다.

마교다.

마교의 등장은 단숨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무림맹을 밀기 위해 안쪽까지 다가왔던 독황독립문과 옆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마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단숨에 활을 든 마교의 무인들이 앞장서서 시위를 걸었다.

몽원양이 크게 소리쳤다.

“쏴라!”

수백 개의 화살이 하늘을 뒤덮는다.

그리고 화살은 독황독립문의 본진을 덮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기도 했고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다. 쏟아지는 화살은 그대로 독황독립문의 심장부를 가격했다.

그리고 연이어 화살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잠시 멍하니 있던 무진악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이 기회다. 지금의 독황독립문은 당황해서 진이 흐트러졌다. 지금이라면 밀어붙일 수 있다.

“공격한다!”

마교의 등장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간 무림맹의 무인들이 병기를 들고 앞장서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마교의 화살 시위도 멈추지 않았다.

독황독립문의 치명적인 약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적은 인원수가 언제나 문제다. 화살에 독황독립문 문도의 반 정도가 그대로 죽어 버렸다.

새로이 문주가 된 지운경은 지금의 상황에 이를 갈았다.

“이 망할 놈들이!”

마교는 오지 못했어야 한다.

단리문이 모든 배를 불태우게 명을 내렸다고 했고, 또 그것이 성공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놈들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독황독립문의 또 하나의 약점은 바로 정보력이다.

그들에게는 정보력이 없다. 이곳은 중원이고, 또 독황독립문의 문도 수도 적다.

따로 누군가를 빼서 정보원으로 쓸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 탓에 마교가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탓에 지금 이렇게 궁지에 몰린 것이다.

지운경은 궁지에 몰리자 다급해서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못했다. 그는 급하게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단리문! 단리문, 어디 있나!”

지운경이 부르기가 무섭게 단리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화살을 피하며 지운경에게 다가갔다.

그가 다급한 얼굴로 물었다.

“어, 어찌하면 좋겠느냐?”

“광동성으로 가시지요.”

“광동? 그 먼 곳까지?”

“마교까지 개입한 이상 이곳에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광동에 제가 최후의 한 수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무림맹과 마교를 몰살시킬 수 있는 최후의 한 수를.”

“저, 정말이냐?”

“이런 상황에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지금 이곳은 감숙이다. 감숙에서 광동은 엄청난 거리다. 도망친다고 해도 잡힐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독황독립문은 인원수가 적다는 거다.

지운경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전열을 가다듬고 후퇴한다! 전열을 가다듬어라!”

그가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비록 적은 수가 될지라도 살려야 한다. 단리문의 말대로 광동성에 비장의 한 수가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곳까지 가야 한다.

다급해하는지운경을 단리문은 그저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봤다.

지운경은 마교가 이곳으로 온 것을 몰랐지만 단리문은 달랐다. 마교가 장강수로채의 도움을 받아 감숙으로 넘어온 것을 그는 자신의 소식통을 통해 들어서 알았다.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슬슬 독황독립문이라는 패를 버릴 때가 되었지.’

시간은 끌 만큼 끌었다. 이제 단접의 유충들이 모두 성충이 되어서 날개를 폈을 게다.

남은 것은 이들을 광동성으로 끌고 가는 일이다.

그런 단리문의 속내를 모르는 지운경은 속이 탔다.

급하게 남은 인원들을 정비한 지운경은 빠르게 퇴각하기 시작했다. 무림맹의 무인들도 뒤쫓고 있고, 마교도들도 어떻게든 자신들을 몰아내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다행인 것은 다른 무공은 몰라도 경공만은 그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는 거다.

지운경은 긁어모은 인원들과 함께 탈출을 감행했다. 무림맹과 마교가 그 뒤를 쫓고는 있지만 독을 이용하면 거리를 벌릴 수 있다.

땅에서 독기가 올라오게 하는 독들을 마구 뿌려대면서 독황독립문 무리들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무림맹과 마교는 그들이 뿌린 독 때문에 잠시 움직임을 멈춰야 했지만 그것은 전열을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담자 대사는 무림맹의 수뇌부들을 데리고 마교도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쪽에서도 몇 명의 인물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담자 대사십니까?”

“그렇습니다.”

“몽원양입니다.”

“허허, 서찰을 받고 못 올 줄 알았습니다.”

“사실 저희도 그리 생각했는데 서찰을 보내고 나서 바로 수백 척의 배를 구했습니다.”

몽원양의 말에 담자 대사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많은 인원을 옮길 배를 그리 쉽게 구할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의문을 알았는지 몽원양이 말했다.

“아, 갈지혁의 부탁을 받은 장강수로채주 구백룡이 몇백 척의 배를 가지고 저희를 맞이했습니다.”

“갈 시주가?”

담자 대사는 갈지혁이라는 말에 내심 놀랐다.

그의 이름이 나오자 뒤에 있던 무진악도 흠칫했다.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구원을 받은 것이다.

만약 지금 마교의 도움이 없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게다.

이번만큼은 무진악 또한 갈지혁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헛기침을 하면서 다른 곳을 바라봤다.

몽원양이 입을 열었다.

“대단한 자입니다. 한 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좋겠군요. 꼭 술 한잔 해 보고 싶은 사내인지라. 하하!”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무림맹도, 마교도 재정비를 할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예전에는 뒤쫓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사연합군이 도망치는 독황독립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 *

독황독립문은 정사연합군을 피해 쉬지 않고 도망쳤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뿌리를 뽑겠다는 심정인지 정사연합군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 뒤를 쫓았다.

쫓고 쫓기는 목숨을 건 도주다. 만약 독황독립문에 독이 없었다면 그들은 사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잡혔을 게다.

독황독립문의 무리 속에 단리문은 없다.

그는 지운경에게 광동성 담강의 바로 옆에 있는 산지로 도망쳐 오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자신은 먼저 가서 독을 준비해야 한다며 말이다.

더 이상 잡을 끈이 없기에 지운경은 그 말만 믿고 담강을 향해 도망쳤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한 달을 넘게 달렸다.

체력은 바닥이다. 그래도 살겠다는 의지 하나만 가지고 광동성 담강까지 달렸다.

이제는 더 이상 달리라고 해도 불가능할 정도다.

산지가 눈에 보인다. 단리문이 말한 산지라는 것은 바로 저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

목적지가 눈에 보이자 온몸에 힘이 쭉 하니 빠진다.

지금 현재 정사연합군과의 거리 차이는 끽해야 이틀이다. 그들은 독황독립문을 뿌리 뽑겠다는 생각으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다.

인원수가 많아 다소 이동이 느렸기에 아직까지 잡히지 않은 것이다.

이곳에 숨는다고 해도 정사연합군은 금방 이곳을 발견할 것이다. 이백에 달하는 자들이 만들어 낸 흔적을 감출 수는 없다.

지운경은 급했다.

단리문을 찾아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했다.

살아 있는 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선 지운경은 단리문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다.

“단리문! 단리문!”

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목소리로 그를 찾아 나선 지 두 시진가량이 흐른 뒤였다.

“여기입니다.”

“다, 단리문. 헉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지운경이 다가갔다. 그의 얼굴이 헤어졌을 때에 비해 몇 배는 더 수척해진 듯하다.

그만큼 고초가 컸다는 소리다.

지운경은 내심 그가 도망친 것이 아닐까 하며 고민했던 것이 자신만의 생각이었던 것을 알고 다행이라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가 이곳에 있다는 말은 정말로 무림맹과 마교를 싹 쓸어버릴 독이 있다는 소리도 되니까 말이다.

“준비는 다 됐나?”

“물론이지요. 이제 놈들을 환영할 일만 남았습니다.”

단리문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곳이 바로 정사연합군의 묘지가 될 것이다.

정사연합군은 독황독립문을 쫓으면서 의아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도주로가 상식을 벗어난다.

사천에서 운남이 아닌 귀주 쪽으로 움직이더니 광동성으로 빠졌다.

운남으로 빠질 거라는 당연한 상식이 깨져 버린 것이다. 의아하지만 오히려 잘됐다. 남만으로 빠지면 독황독립문을 놓칠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히려 광동 쪽으로 이동했다.

광동에서 도망을 칠 곳은 없다.

끽해야 해남도.

하지만 해남도에는 해남파가 있다. 이미 사전에 그들에게 서신을 날려 놓은 상태다. 혹여 그들이 배를 타는 잔꾀를 부린다면 해남도에 도착하기 전에 박살이 날 게다.

독황독립문이 모여 있다는 담강이 코앞이다. 그렇지만 아직 정사연합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섣부른 움직임에 또 커다란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방심하지 않는다. 독인과의 싸움에서 방심은 패배로 직결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혹여 또 마지막 한 수를 준비해 두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광동성으로 도망쳤다는 사실에서 의구심이 든다.

그리고 담자 대사는 광동성으로 온 것 때문에 찜찜함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바로 단화초와 단접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다.

갈지혁의 말대로라면 광동성에 단리문의 실질적인 세력들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도주한 곳도 바로 광동성 담강이다.

왠지 모를 불안함에 싸움을 피하고 싶었지만 느낌 하나만으로 설득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군다나 지금 정사연합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독황독립문을 아예 중원에서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갈 시주가 나타나야 할 터인데…….’

갈지혁과 대화를 하기 전에는 이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데 막상 광동성으로 사라졌다던 갈지혁은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단접이라는 놈이 나타나 활개를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증거가 없는 지금 그것을 말한다고 해서 먹혀 들어갈 것 같지가 않다.

‘휴, 아무 일도 없기를.’

그저 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리 선발대로 나아가 주변을 조사하고 온 자들이 돌아왔다. 정사연합군에서 가장 민첩한 자들답게 무척이나 빠르다.

“이상 없습니다. 독을 푼 흔적도 없습니다.”

몽원양이 힐끔 담자 대사를 바라본다. 담자 대사는 입을 꾹 닫은 채로 전방을 응시했다. 옆에 있던 무진악이 속이 탄다는 듯이 말했다.

“뭐 하십니까, 맹주님.”

“저희는 출정 준비가 끝났습니다만.”

몽원양도 말을 걸어온다.

그렇다. 이곳까지 와서 퇴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 때문에 구석으로 몰아넣은 독황독립문을 포기하자면 아무도 수긍하지 않을 게다.

“……가지요.”

담자 대사도 마음을 정했다.

“움직인다!”

사방으로 퍼지는 외침. 그리고 정사연합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 명이 넘는 대인원이 몇백에 달하는 독황독립문을 제압하기 위해 움직인다.

담강의 위쪽에 있는 산을 정사연합군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망칠 곳은 없다.

혹 산 아래로 도망을 친다면 그곳은 바로 물이 있는 곳이다. 알아본 바로는 주변의 배가 이쪽으로 온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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