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23화
배수의 진.
도망칠 곳은 물뿐이다. 그러한 곳에 독황독립문 무리들이 있는 것이다. 정사연합군이 산을 올라서자 독황독립문 무리들이 반대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빠르게 쫓는다!”
선봉에 선 몽원양이 거칠게 풀들을 제치면서 소리쳤다.
어차피 이곳에서 도망친다고 해도 갈 곳은 없다. 그렇지만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고 하지 않던가.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지금이 바로 그래야 할 때다.
그리 높은 산이 아니었기에 정상에 올라서는 것은 금방이었다. 높은 곳에서 보니 한눈에 주변의 경관이 들어온다.
조사대로 배라고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도망칠 곳도 없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왜 이런 곳으로 도망쳤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혹여나 준비해 둔 쪽배를 이용해서 도망치려는 속셈이었다면…… 실수다. 해남파가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혹여 있을 위험에 대비해 선발대가 앞에 나섰고 본진은 그 뒤를 따랐다.
독에 중독되는 자는 없다.
‘이곳이 마지막 싸움터가 될 것이다.’
진검백은 검을 꽉 쥐었다.
갈지혁이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의아하기는 하지만 싸움은 분명 끝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지만 진검백은 내심 불안했다.
갈지혁이 말했던 단화초에 대해 아는 그이기 때문이다.
그는 실없는 소리를 할 사내가 아니다. 분명 그것이 정사연합군에 어떠한 형태로든 다가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현재로서는 나아갈 수밖에 없다.
정사연합군이 다가오는 것을 단리문은 웃으면서 보고 있다.
그에 반해 지운경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단리문을 믿고 이렇게 행동하기는 했지만 차라리 배를 타고 도망치는 것이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사연합군의 위용 탓이다.
만 명이 넘는 자들의 병기가 사방에서 번뜩거린다.
살기만으로도 사람이 죽어 나자빠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단리문은 다가오는 자들을 보면서 불나방을 생각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면서 불을 보고 다가오는 불나방들.
마교가 감숙에 나타나는 바람에 이곳까지 밀렸지만 오히려 그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들을 깡그리 죽일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닌가.
옆에 있는 지운경이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기다리지요. 조금만 더 다가오면…….”
옆에서 겁먹은 표정으로 서 있는 지운경을 보면서 단리문은 내심 비웃음을 흘렸다.
‘한심한 놈! 그러면서 갈지혁을 잡겠다고?’
적이었지만 갈지혁은 단리문을 놀라게 한 자다. 아직 죽지 않았을 테인데 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지금부터 일각 후면 모든 게 끝난다. 중원은 단리문의 것이고 무인들은 씨가 마를 게다.
단지 무림일통이 아니다.
중원이 사라진다. 무인들이라는 것 자체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춘다.
마음만 먹는다면…… 단접과 단화초의 힘으로 황제도 될 수 있다.
정사연합군 모두가 산을 내려와 점점 진격해 오고 있다. 이제는 눈으로도 선두에 있는 자의 모습이 보일 정도의 거리.
일각이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다.
단리문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사방에 숨겨져 있던 자잘한 진법들이 단리문의 수하들로 인해 동시에 깨져 나갔다.
진격해 오던 몽원양은 무엇인가 이상한 낌새에 눈에 힘을 줬다. 사방에서 뭔가 알 수 없는 것들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공중에서 독을 살포할 생각인가?’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뭔가가 이상하다.
몽원양이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을 할 때 담자 대사가 침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비…….”
“나비?”
사람들의 시선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수백 개의 정체불명의 것으로 향했다. 담자 대사의 말대로 사람들의 눈에 그놈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나타난 곳은 한 곳이 아니다.
앞, 옆, 뒤……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하늘을 난다.
“저, 저게 뭐야!”
누군가가 놀라서 소리친다. 뒤로 고개를 돌렸던 자들의 얼굴색이 변한다. 나비가 날아오른 곳에 있던 나무가 녹아내린다. 한눈에 확 보일 정도로 단숨에 나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독!
만 명이 넘는 무인들을 감싼 채로 단접이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들을 노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유는 단 하나.
단접은 단화초를 쫓는다.
그리고 지금 정사연합군이 있는 곳에는 흙과 단화초를 간 가루가 섞여 있다. 단접들은 진에서 풀려나자마자 단화초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맙소사…….
죽음이다. 놈들의 날개에서 떨어지는 독분은 죽음밖에 부르지 않는다. 산을 지키고 있던 거목들이 녹아내린다. 커다란 바위도 마치 거짓말처럼 몸을 감춘다.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차라리 칼을 든 자들이라면 목숨을 걸고 싸워라도 보겠다. 한데 이건 아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독분에 어떠한 수로 대항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냥 독도 아니다.
제아무리 독에 대한 내성이 있는 자라도 이만한 독에 당하고 살 자신이 없다.
이곳에 있는 무인들이 모두 죽는다면 그것은 무림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거였군…… 역시 갈 시주의 말대로 되어가고 있어.’
역시 말렸어야 했다. 물론 지금 이 상황을 겪지 않은 상태에서 담자 대사의 말을 듣지는 않았겠지만…….
그 누가 단접의 날갯짓 아래에서 버틸 수 있겠는가.
진법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이유가 있다.
워낙 은밀한 진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엄청난 소진(小陣)이었기 때문이다.
진법의 크기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미했다. 그러한 진을 수십 개씩 사방으로 분산시켜 두었던 것이다.
죽음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정사연합군을 보면서 단리문의 얼굴에는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피할 곳을 찾고 있지만 그들에게 피할 곳은 없다.
단접의 날개에서 떨어지는 독분…….
끝이다.
모두가 포기한 듯이 웅성거리기만 할 뿐이다. 일부는 아예 눈을 꾹 감아 버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의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단숨에 돌을 녹여 버리는 독분을 뒤집어쓰고 살 생각을 한다는 것이 우습다.
단접의 독분에 의해 하나둘씩 피해를 입기 시작한다.
독분을 들이킨 자는 그대로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고, 몸이 그대로 타버리는 자도 있다.
아비규환의 상황.
진검백은 검을 꽉 쥐었다.
‘아직, 아직이다.’
그가 오지 않았다.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진검백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점점 다가오는 단접 때문에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만 간다. 그런데 진검백의 귀에는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한 명. 그의 모습만을 찾는다.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진검백의 눈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갈지혁!”
제대로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갈지혁임을 예측했다.
진검백의 목소리가 너무나 컸기에 웅성거리던 주변의 사람들도 덩달아 옆을 바라보게 됐다. 그들의 시야에 갈지혁이 들어왔다.
갈지혁이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그가 단접의 독분 아래에서 살아서 걷고 있다는 거다. 시끄럽던 목소리들이 천천히 죽어 간다.
그 한 명이 나타났다고 해서 무엇인가 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습지만 왠지 모르게 입이 닫혀 버렸다.
담자 대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갈지혁이라면…… 그가 나타났다면!
몽원양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내가 갈지혁임을 느꼈다. 사람들의 외침 소리에 시끄러웠던 이곳이 단숨에 숨소리조차 크게 들릴 정도의 공간이 되어 버렸다.
단접의 독분 아래에서 걸어오던 그가 소도를 꺼내 자신의 손목을 쭉 긋는다.
알 수 없는 행동. 그렇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갈지혁의 손목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늘을 날던 단접들이 방향을 바꿨다.
단접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갈지혁이 있는 쪽.
그렇다.
애초에 단리문은 단화초를 갈아서 흙과 섞었다. 단화초 본연의 향기와 상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갈지혁이 흡수한 단화초는 다른 놈들을 먹고 살아난 진짜 단화초다.
갈지혁의 피는 그것만으로도 단화초인 것이다.
미약한 단화초의 냄새를 맡고 날아들던 단접들이 미친 것처럼 갈지혁이 있는 쪽으로 날아든다. 사람들은 급히 단접을 피하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했다.
무진악은 놀란 표정으로 갈지혁을 바라본다.
하늘에서 단접의 독분이 그에게 쏟아져 내린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멀쩡하다. 마치 꽃가루라도 맞는 것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갈지혁은 어딘가로 걷고 있다.
모두가 넋을 잃었다.
갈지혁이라는 존재의 등장으로 사라졌던 희망이 생겨 버렸다.
단 한 명의 존재가 만 명이 넘는 무림인을 살렸다. 그리고 훗날의 중원이 있게 한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침을 꿀꺽 삼키면서 갈지혁을 바라보던 몽원양이 정신을 차렸다.
그가 급히 말했다.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독황독립문의 놈들을 밀어 버리지요.”
“아! 그럽시다!”
몽원양의 말에 무림맹의 수뇌부들도 정신을 차렸다.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라 모두가 정신을 빼앗긴 상태였던 것이다.
급히 몽원양이 소리쳤다.
“독황독립문의 놈들을 밀어 버린다! 간다!”
그의 외침에 갈지혁 때문에 빼앗겼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정사연합군은 다시 병기를 들어 올렸다.
사기가 하늘을 찌른다.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살아났다.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했는데 살았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
그들이 독황독립문 무리들에게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잘 돌아가던 상황이 급변했다.
지운경은 당황해서 옆에 있는 단리문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이, 이제 어떻게…….”
“닥쳐.”
“뭐야?”
“닥치라고!”
단리문의 주먹이 그대로 지운경의 얼굴을 후려쳤다. 뻑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땅에 쓰러졌다.
으드득.
단리문은 이를 갈았다. 부릅뜬 두 눈에서 핏줄이 터졌다. 눈동자가 핏물을 머금은 것처럼 붉다.
여태까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그다. 그렇지만 지금만큼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실패해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단접 때문이었다. 이 단접만 있다면 천하의 누구를 상대한다고 해도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갈……지혁!”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놈이 단접을 몰고 사라졌다.
귀찮은 자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단리문이 준비해 온 모든 것을 망칠 놈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아니다. 이렇게 단접들을 잃으면 단리문은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그가 이를 악문다. 앞에서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정사연합군의 모습이 보인다. 싸운다고 해도 이제는 방법이 없다.
마음을 먹고 싸운다면 많은 자들을 죽일 수 있다. 단리문에게는 무공도 있고 독도 있다. 문제는 이곳에서 싸우다가 죽으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거다.
제아무리 단리문이라고 해도 쏟아지는 만 명의 무공을 받아 낼 수 없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때가 아니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뭘 해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