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물을 사랑하는 사나이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대호는 생각했다.
"왜 나는 그녀에게 어린애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지?"
그리고나서 그는 곧 결론을 내렸다.
"세현때문이겠지,그 잔소리꾼."
그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창문을 열었다.
추호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 그였다- 나이가 적어서라든가 경
솔해 보인다던가 하는 -.
창문을 열었을 때 그가 맨 처음 본 것은 새파란 물빛의 장삼을 걸친 남자였다.
그는음침하다기 보단 창백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당장이라도
고꾸라질 듯한 그런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힘은...대호조차 뜨금해지는 그런 것이었다.
창문가에서 그가 내려다 보는 것을 알아 차린 듯 물빛 장삼의 사내가 그를 올려
다 보았다.그의 얼굴에 창백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아직 사십도 채 되지않았을 그 얼굴에는 어딘가 알 수없는 고통과도 같은 고독
감이 배어 있었다.그 힘과 어울리지않아 보이는 허약해 보이는 몸을 보고 대호
는 본능적으로 연민을 느꼈다.
"어이."
대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잘 잤소?"
"그렇소....당신은?"
"나야 잘 잤지.당신 이름 뭐요?"
대호는 창문가에 발을 대고 물었다.그는 창문틀에 두발을 올리고는 뛰어 내릴
준비를 했다.지금 있는 곳은 삼층이었고 아래까지 내려가기엔 귀찮았기때문이었
다.사내는 그런 그의 모습에 조금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도 곧 쓴
웃음과 같은 미소를 억지로 짓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대호는 그에게 손을 휘휘 저어 보인다음 말 그대로 그냥 뛰어 내렸다.
그가 착지하는 순간을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전혀 소리도 나지않게 떨어지는 그 몸놀림과 큰 키에도 불구하고 우아하달수도
있는 그런 몸짓이 그에게 감명을 준 것 같았다.
대호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 작았는데 덕분에 그를 내려다 볼 수있었다.
그리고 대호는 그의 몸 전신에 어린 기운으로 그가 어제 보려다 못 본 마법사라
는 것을 깨달았다.
동방제국에는 마법사라고 불리는 부류와 도사라고 불리는 부류,그리고 신무라고
불리는 부류가 있다.
신무는 물론 신과 교통하고자 하는 능력을 지닌 자들로 흔히 신령이나 귀신을
본다고 말하고 있었고 도사라는 부류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끝까지 추구해서 인
간 이상의 존재,즉 선인이 되고자 하는 집념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리고 마법사는 그 중에 어디에도 끼이지않는다.
마법사는 기술사라는 칭호로도 불린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그 능력에 대해선 개인별로
큰 차이가 있지만 최고의 마법사는 인간을 뛰어넘는 자들이 간혹 있었다.
마법사는 흔치 않았다.도사는 널려 있었고 신무는 간혹 있다.
대호는 상대를 가늠해 보고 있었는데 상대도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음을 곧
깨닫고 그만 두었다.
"난 대호야."
그는 다짜고짜 하대했는데 그게 이상하게 들리질 않았다.
"난 하민이라고 합니다."
그는 조용히 대답했다.
대호가 하대하고 그가 존대했다.
그건 조금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본인들은 이상하다고 생각지않고 있었다.
그 때 하인으로 보이는 늙으수레한 사내가 그들을 발견하고 말했다.
"하민님.지금 전주께서 찾으십니다."
"아아..곧 가지."
"나도 갈래."
대호는 자연을 떠올리곤 싱글 웃으면서 하민의 뒤를 따랐다.
아직 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의 뒤를 따르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민은
마치 그에게 길을 안내하는 기분이 되어 조금 찝찝했다.
그들이 그렇게 걷고 있을 무렵 대호는 연무장 처럼 넓은 뒷 뜰에서 연무를 하고
있는 서넛의 사내들을 발견했다.
그가 발걸음을 멈추고 보고 있는 동안 하민이 그런 그에게 미소를 던지며 말했
다.
"이곳은 연무장이에요."
"그렇군."
대호는 나무고 풀이고 남아나지않은 채 벌건 흙만이 남은 그 뜰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어떤 나무들이 심어져있던 정원이었을 법 했는데 이렇게 텅 빈 땅이 된
이유는 분명 사람들이 연무를 한답시고 이리뛰고 저리 뛰고 한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중앙에는 꿋꿋이 자라고 있는 거목이 하나 있었다.
그 나무는 이리저리 껍질이 벗겨져 있긴 했지만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어른의
아름을 훨씬 넘는 거목으로 그 끝은 까마득하게 높았다.
사내들은 모두 네명이었다.
모두 상의를 벗고 검과 봉,곤등을 휘두르면서 대호가 보든 말든 연습에 열중하
고 있었다.
대호는 어깨를 으슥하고는 다시 하민의 뒤를 따랐다.
하민은 그가 흥미를 보이지않는 것에 조금 실망했다.대체적으로 무인들은 서로
의 기량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법인데 이 대호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않는 듯 했
던 것이다.
그들이 대전에 들어섰을 때는 해가 높이 솟은 아침이었다.
햇빛이 대전 깊숙이 까지 들어와 대전안은 환했다.
어제와는 딴판으로 보였다.
도박장은 보이지않았고 보이는 것은 그저 깔린 융단 뿐이었다.
물론 중앙에 앉아 있는 자연이 제일 먼저 눈에 띄였다.
그녀는 곰방대를 잡고 한 손에는 찻잔을 들고 앉아서 장부를 들여다 보고있다가
대호와 같이 들어오는 하민을 보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하민은 그녀를 보자 고개를 숙이고 깊이 절을 했다.
대호는 그가 절하는 것을 조금 의아롭게 생각은 했지만 다시 자연의 자태에 시
선이 쏠려 그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자연! 정말 아름다와라!"
그는 손을 뻗으면서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고 자연은 그런 그를 무뚝뚝하게 바라
보다가 말고 시선을 돌려 하민을 다시 보았다.
"불러계시었습니까?"
"음...어제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서쪽 기린성이 시끄럽다고 하던데?"
하민이 눈을 번뜩였다.
"그렇습니다.어제 기린성의 호수에 나타난 기이한 물고기때문이랍니다."
그는 한 걸음 다가서서 자연의 앞에 공손히 섰다.
그의 그런 모습은 확실히 그가 그녀의 종복이거나 부하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표
였기때문에 대호는 점점 의아해 졌다.
강인한 마법사들은 이렇게 주종관계를 맺는 일은 드문 일이다.왜냐면 마법사들
대부분이 성격이 비뚤어져서 자신이 최고라고 말하고 있기때문이었다.마법사들
끼리는 극단적인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암투는 사
람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알려져있었다.
대호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이 하민이라는 마법사가 보통수준 이상이라
는 것을 잘 알기때문에 더더욱 기이했다.충성하는 마법사란 본 일이 없었던 것
이다.
"금빛이 나고 무지개빛이 어른거린다는 그 물고기인가? 소문에 의하면 금린어라
고 하더군.그것을 잡기위해 왕후공작들이 다 나섰다는 소문이 자자해."
"네,지금 그것을 잡기위해 관선이 떠 있습니다만 우리측에는 아직 의뢰가 들어
온 사항이 아닙니다."
"맞아.물고기 하나를 잡으려고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아."
자연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금린어를 잡으면...천하의 대세를 잡는다고 합니다.그 때문에 제후들이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지요.현재는 난세중에 난세 아닙니까?"
하민이 조용하고 수척한 얼굴에 드문 정열의 빛을 띄우며 말했다.
자연은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곤 드물게 미소를 띄웠다.
"자넨 그런 상황이 재미있는 모양이군."
"저희 일족으로는 ..기회중에 기회라는 생각도 합니다.창룡전이 비상할 때이기
도 하구요."
자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연기가 뭉개 뭉개 일어났고 대호는 그녀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으며 하민의 눈과 부딪치자 불꽃이 일 정도로 강렬
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좋지못하지."
그녀는 가볍게 말하곤 곰방대를 물었다.
"금린어를 잡으러 가는 자들이 몇이나 되겠나?"
"적어도 여섯방향에서 ..여섯의 제후가.."
자연의 얼굴에 미소가 띄워졌다.
"여섯의 제후중에 누가 금린어를 차지할까?"
"아마도.."
하민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웃음이 띄워졌다.
"그건 갑자기 나타난 신인에게 빼앗길 겁니다."
"호?"
"어제 명상중에 깨달았습니다.이곳 아만에 신인이 등장했습니다.놀라운 일이죠.
선계인이 지상에 나타난 것은 말 그대로...경이로운 일입니다."
자연은 눈쌀을 찌푸렸다.
"선계인이라구? 선인이 이 곳에 왔어?"
"네,기린성의 기운이 그로 인해 선기를 띄우기 시작했습니다.그 신묘한 기운으
로 보아 상대는..."
하민은 대호를 흘긋 보았다.
"수선계의 선인일 겁니다."
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아니 창백해질 뻔 했다.
그는 가슴이 덜걱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이 되어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세현은 대호를 노려보았다.
"뭐라구요?"
"그..마법사가 말이야,.그 마법사놈이 다 뚫어보았다구!"
"방방거리지말아요! 안그래도 정신 사나운데,사형같은 덩치로 떠들어대면 더 정
신없어요!"
세현은 매몰차게 말하고는 팔짱을 끼었다.
그는 심각하게 창문을 노려보았다.
창문밖에는 몇몇의 용병들이 떠들어 대고 있었고 그 중에는 애진의 모습도 보였
다.그리고 마법사의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저정도 마법사가 여기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니! 우리들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아무래도 무리야! 선계에서 알아차리면 우리들은 당장 중징계감이라
구!"
"방방거리지 말라니까요! 지금 이렇게 상황이 된 근본은 ...."
세현은 심각하게 말하면서 팔짱을 끼었다.
"술 탓이었으니까."
대호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그는 고개를 내젓고 슬픈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구,그날 이래로 얼마나 내가 수많은 자들의 비난을 받았는
지 알고 있잖아? 도화공주는 나에게 천년간은 아마 도화주를 주지도 않을 것이
고...을지선녀는..나와는 말도 하지않아.게다가 주선들 모두가 날 미워하고 있
다구!"
"당연하죠! 주선들 대부분에게 금주령을 내리게 한 장본인이 사형이잖아요!"
세현이 잘라 말했다.
"나도 덕분에 덩달아서 금주령을 받았다구요!"
"그러나 넌 여기서 얼마든지 먹어대고 있잖아? 어제만 해도,..그건 맛이 좋은
술이었어."
흥 하고 세현은 아무말을 하지않고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밑에서 애진이 그를 발견하고는 발랄한 웃음과 함께 손을 들어보였고 세현은 억
지로 웃음을 짓고 손을 들어 보였다.
대호가 그런 그를 보면서 말했다.
"넌 나쁜 놈이야."
"시끄러워요."
"애진을 네 얼굴로 희롱하고 있다구."
"그만둬요."
"애진은 너의 정체를 몰라,알게되면 어쩔거야?"
"사형 앞가림이나 하라구요."
세현은 한숨과 함께 쏘아붙이고는 말했다.
"어찌되었든 기린성에 가봅시다.다른 자들도 많이 있겠지만 아마 사부님을 잡을
수있는 것은 우리들 뿐일 테니까."
"그 양반이 정말로 우리에게 잡혀 줄까?"
"눈물로 애원해보죠."
세현이 냉담하게 말했고 대호는 목을 집어 넣고 말았다.
"저쪽이에요."
"무척 붐비는군."
그들은 지금 걷고 있었다.
물론 그들 주위 모든 사람들이 다 걷고 있었다.
물론 걷지않고 뛰는 사람도 있긴 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뛰든 걷든 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들 주변에서 같이 걷고 있다는 것이었다.
병장기를 든 사람들부터 병사를 거느린 관원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자들이 길
바닥을 메우듯이 걷고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군.이들이 전부 왜 온 거지?"
세현이 중얼거렸다.
"기린성의 호수의 낙조를 보러 가는게 아니라 금린어를 잡으러 온 사람들이래
요."
애진이 설명했다.
"금린어? 금빛 비늘의 무지개색을 가진 잉어말이군요."
세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동안 애진이 설명하듯이 말해주었다.
"한...삼사일 되었을 거에요. 이곳의 호수에서 이상하게 물고기가 사라져버렸거
든요.그래서 어부들이 모두 이상하다 하고 있을 즈음 몇몇 사람들이 그 금린어
를 발견했어요.그리고 모든 복인들이 일제히 금린어를 잡는 자가 천하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구요."
"헤에."
대호가 웃음을 터뜨리면서 기묘한 감탄성을 냈다.
세현은 그에게 주의를 주면서 애진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그 것을 잡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무지 많겠군요."
"네.천하에 내노라 하는 제후들이 다 몰려든 모양이에요."
애진이 호숫가를 가리켰다.
호숫가에는 형형색색의 빛깔로 치장한 군세들이 포진해 있었다.
기린성의 호수란 정말 거대해서 바다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는데 그 거대한 호수
위를 까맣게 덮고 있는 색색가지의 군선이 각자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복인들이 뭐야?"
갑자기 대호가 말했고 애진이 미소를 띄웠다.
"점장이요,점장이,."
"쳇,"
대호가 혀를 찼다.
그는 거대한 검을 슬금 슬금 만지면서 애진의 뒤를 따랐다.
애진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손을 들어 보였고 애진은 그들에게 미소를 던져보였
다.병장기를 든 자들과 부채를 들고 한가로운 자들,그리고 어부들이 있었다.
어부들은 그물을 던지거나 배를 낼 생각도 못한 채 넋을 잃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심에 찬 얼굴들이어서 애진은 가슴이 아팠다.
어부로 보이는 굵직한 어깨를 가진 사내가 애진에게 인사를 던질 때 애진이 물
어보았다.
"혹여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긴 머리의 사내를 보지못했나요?"
"몰라.그러나 지금 상당히 곤란해 졌다구요.애진님.이렇게 군세가 포진하면 우
리들은 뭘 먹고 살아요?"
"빵을 구워 그들에게 파세요."
애진이 잘라 말했다.
"에?"
"당신 부인은 상당한 요리솜씨를 가지고 있잖아요? 이곳에 포진한 멍청이들때문
에 생계를 걱정하게 되면 안되죠.당장 빵이나 구워 이들에게 파세요."
어부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해보이더니 흐흐 웃고는 곧 사라졌다.
애진은 낮은 한숨을 내쉬면서 대호들을 돌아보았다.
"배를 빌려 나가 볼까요?"
"아니오,우린 이근처의 어딘가..정자에서 낙조를 기다리죠."
세현이 팔자 좋은 소릴 했다.
애진은 상당히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구경꾼이 붐비는 정자로 올라갔다.
정자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번에도 애진을 아는 사람들이
있어 자리를 양보받았다.그런 것에 감명 받은 대호들은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
다.
애진이 그들을 데리고 정자위에 와 앉았을 때는 막 정오가 지난 오후였는데 이
미 그때 부터 사람들은 바글거리고 있었다.
기린성은 진짜 성도 아니고 성주가 있는 그런 성이 아니었다.
거대한 호수곁에 기린의 형상을 한 거대한 돌산이 있었고 그 돌산을 가리켜 기
린성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이 기린성에는 신수 기린이 거대한 이무기와 싸우다 돌이 되었다는 전설을 가지
고 있었는데 이 거대한 호수는 일설에 의하면 이무기가 흘린 피라고 한다.
사악한 이무기는 악룡으로 승천하려는 순간 선계에서 온 기린에게 옆구리를 찔
렸고 그 피가 강물이 되어 이 호수를 이루었으며 기린은 이무기를 죽이고 나서
힘이 다해 돌이 되어 버렸다는 전설이었다.
그런 전설을 애진이 하는 동안 대호와 세현은 감명깊은 얼굴로 듣고 있었다.
그런 전설을 들어서 인지 이 기린성이라고 하는 거대한 돌산은 정말로 기린처럼
보였고 호수물은 더더욱 검게 보였다.
그런 검은 물속을 무수한 군선들이 그물을 치고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조각배를
가진 어부들이 울상을 짓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애진은 안타까운 얼굴로 서서 분함을 억누르고 있는 호숫가의 어부들을 보고 있
었는데 그녀 자신이 아무것도 해 줄수 없어서 더 고통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용회랑의 주인이면 뭘해.'
그녀는 착잡한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그 때 멀리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일제히 그쪽을 바라보니 갈대수풀 사이에서 뒤지고 있던 군세들 끼리
맞부딪친 모양이었다.
"뭐야?"
"싸움이다!"
사람들이 일제히 그리로 몰리려 할 즈음 정자위에 선 애진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로 가지말아요!"
그녀의 음성은 저렁하게 울렸다.
구경꾼들이 엉거주춤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는 몸을 홱 돌려서 정자의
지붕위로 올라섰다.나비처럼 가쁜한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안력을 돋워 갈대숲을바라보면서 외쳤다.
"저건 제후의 군대끼리 붙은 싸움입니다.틀림없이 피바다가 될 거에요,우리들
관계없는 사람들은 가봐야 눈먼 화살에 맞아 죽기만 할 뿐이에요.모두 뒤로 물
러나시는 게 좋아요!"
사람들은 웅성거렸지만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한 듯 다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마자 갈대숲으로 무수한 화살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아악!"
"아악!"
사람들이 일제히 놀라서 흩어질 때 갈대숲을 에워싸기 위해 다른 군세가 또 왔
다.그들은 약 이백여명 정도로 모두 황색옷을 입고 있고 황기를 들고 있었고 다
른 편에서 붉은 옷에 붉은 홍기를 든 자들이 일제히 달려와 활시위를 당겼다.
갑작스레 전쟁터가 된 터라 구경꾼들이 일제히 달리듯이 뒤로 물러나게 되었는
데 그게 대단한 난장판이었다.
애진은 한숨을 깊게 쉬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두 황,홍의 군세는 갈대숲에서 약 이십여구의 시체를 끌어내고는 서로 싸움을
시작했다.화살이 날기를 멈추고 그 다음은 칼과 도끼와 검의 상황으로 바뀌었
다.그 아수라장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애진이 후우 하고 낙심한 얼굴
로 고개를 떨구었다.
"저들은 누구요?"
세현이 물었고 애진은 그를 바라보며 웃음을 약하게 지어 보였다.
"정말 산에서 내려왔군요,세현님,현재 천하는 대단히 어지럽답니다."
『북별궁의 집필실-환상의 노트북(작가연재란) (go FNNINAPA)』 65번
제 목:동방제국기전 6
올린이:ahinshar(박창준 ) 99/05/30 21:10 읽음:129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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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6996
게시자 : 이수영 (ninapa )
등록일 : 1997-11-01 00:12
제 목 : 동방제국기전 6
동방제국기전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