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공자 준하
사방은 어두웠다.
노예들을 실은 달구지가 광장에 그대로 있는 동안 달이 휘영청 공중으로 올라와
횃불을 들고 지키고 있는 사내들 머리위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달구지아래에 찬 공기속에서 떨고 있는 몇몇 노예들은 쇠사슬로 묶여 있었고 그
와중에 대호가 노리는 소년도 끼어 있었다.
달구지안에 들어있는 것은 아마도 종우,정우 형제가 노리고 있는 포일공이라는
자일 것이다.아마 사안이라는 곳에 팔릴 것이 결정되었기에 그들만은 달구지안
에 넣어놓고 나머지 노예들은 저렇게 땅바닥에 앉혀놓은 듯했다.
그런데 이건 경비가 심상치 않다.
마치 오늘 밤 덮칠 것임을 예상이라도 하는 듯이 일반 노예상인이 거느리고 있
던 경비들 이외에도 광장을 수시로 배회하는 군사들이 적지않았다.정말 왕수가
말한대로 이들은 잔당을 뿌리 뽑겠다는 단수 높은 책략아래 있는 듯 했다.
종우가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어쩔거야?"
"내가 일단 경비들을 없애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대호가 물었다.종우는 그를 보더니 물었다.
"그냥 덮친다구?"
"그래.그 쪽이 좋겠어.나는 저 꼬마를 옆구리에 끼고 그대로 사라지겠어,그럼
너희들은 저 달구지를 깨부수고 도망치라구.내가 소란을 떨면 떨수록 너희에게
유리한 거 아냐?"
"지금 경비가 눈에 안보여? 다가가기만 해도 눈에 띄여서 당장에 고슴도치가 될
걸."
정우가 옆에서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그는 아까 부터 대호에게 얻어맞은 것을
약간 불만스레 생각하고 있는 듯 시선이 곱지 못하다.
"괜찮을 거 같은데."
대호가 중얼거렸다.
왕수가 옆에서 속삭였다.
"이봐,대호,그렇게 모든 일이 다 쉬운 것은 아냐."
'그렇지만 모든 일이 다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구."
대호가 대꾸하곤 그는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에?"
"안돼!"
종우가 낮게 외치기도 전에 대호는 벌떡 일어서서 그는 광장가까이로 갔다.그를
발견한 경비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는 그 순간 대호는 거검을 빼어들어서 힘을
모아 검기를 뿌렸다.
"천지뇌락!"
그의 거검이 우우웅 하고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를 내며 땅바닥을 후려갈겼다.
그 순간 콰콰쾅 하고 그의 검이 땅바닥을 찢어 발기면서 그 기운을 이기지못한
지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그 엄청난 검기의 덩어리는 곧장 달구지를 향했으며
그 자리에 앉아있던 노예들도 경비들도 혼비백산해서 모두 옆으로 뛰었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바닥이 우르르 울렸고 사람들이 비명을 올렸다.
"끼악!"
달구지가 마치 장난감처럼 폭삭 두 조각으로 뽀개졌고 그 안에 있던 두명의 사
내들이 대굴대굴 굴러나왔다.
여기저기서 삐익 하고 호각소리가 요란해질 때 대호는 몸을 돋쳐올려 단숨에 공
포에 빠져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려고 애쓰는 노예들에게 다가갔다.
"누구냐?"
"누구야?"
"지진이냐?"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땅이 깊게 갈라져버렸고 달구지는 순식간에 박살이 났으며 주변에 있던 자는 땅
이 뒤흔들리는 굉음으로 다 나뒹굴면서 널부러졌다.
대호는 자신이 바라는 소년의 얼굴을 반히 보았다.
소년은 놀란 얼굴로 그를 빤히 보고 있었는데 대호는 긴 말할 것 없이 소년이
묶여 있는 쇠사슬을 주욱 잡아 끌었다.
그 순간 탱 하고 쇠사슬이 끊어졌고 대호는 길게 볼것도 없다는 듯이 소년의 목
덜미를 잡아 채서 등에 매달고 말 그대로 도망을 쳤다.
그가 도망을 치자 그제서야 그의 움직임을 발견한 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제히
쫑기 시작했다.
"서라!"
"기언가의 잔당이다!"
"잡아라!"
어디선가에서 수백이나 되는 자들이 일제히 튀어나왔고 그들은 미친듯이 대호의
뒤를 쫑기 시작했다.대호는 소년의 몸을 들쳐업고 달렸는데 그 속도는 그의 평
소 속도에 비하면 절대로 빠른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금방 따라
잡지를 못하였다.
대호는 열심히 달려나갔고 병사들은 벌떼 처럼 횃불을 바리바리 들고 그의 뒤를
좆고 있었다.
"기..기가 막혀."
"봐,,봤어?"
종우와 정우가 왕수에게 물었고 왕수는 고개를그덕였다.
"음,..전주의 인척인 거 같던데..과연..과연이군,"
"호오? 창룡전주의 인척?"
"그런 거 같아.전주의 옥패를 가지고 있었거든."
"애진님을 알정도면 무명지배는 아닐 텐데."
"이봐,그렇게 떠들지 말고 할 일을 하자구.저 대호가 경비들을 모조리 끌고 갔
으니 우린 조금 한가한거 아닌가?"
정우가 그들의 옆구리를 꾹꾹 찌르면서 말했고 두 사람은 으음 하고 검자루를
쥐고 전진했다.
남아 있는 노예들은 어안이 벙벙했는데 포일공과 포일공자쪽은 더 어리벙벙했
다.달구지를 박살 낸 것을 보아 자신들을 구원하러 온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기때문이다.
경비들은 땅이 패인 그 모습과 달구지가 박살난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두르고 있
었다.
"대체 그게 뭐였지?"
"나도 몰라."
"무지막지했어.벼락이 치는 가 싶더니 땅이 갈라지다니."
"요괴의 소행일까?"
"말도 안돼,어떤 강력한 마법사가 있는 거 아냐?"
경비들이 그렇게 두엇이서 지껄이고 있을 때 종우와 정우는 발걸음소리를 죽이
고 다가가 그들의 머리를 단숨에 베어버렸다.
"누구냐..아악!"
"누구,..윽!"
그들을 해치우고 나자 종우는 재빨리 멀건히 널부러져 있는 포일공에게로 다가
갔다.
"포일공!"
노인은 눈이 커지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그대는?"
"자아.모시러 왔습니다,."
종우는 노인의 몸을 들쳐 업었고 왕수는 재빨리 포일공자의 발에 묶인 쇠사슬을
끊었다.그는 미리 쇠사슬을 끊으려고 도구를 마련해 온 차였다.
"갑시다!"
"아..아까 그건?"
"우리 동료외다.어서,."
포일공을 업은 종우가 재촉했고 정우가 비슬거리는 공자를 부축하면서 달리기
시작했다.뒤를 따라오려는 노예들의 쇠사슬도 가차없이 끊어버린 왕수는 낮게
외쳤다.
"자아,다들 도망가시오!"
종우는 빨리 따라오지않는 그에게 짜증을 부렸지만 왕수는 태연히 지껄였다.
"다른 노예들을 찾다보면 우리들에게로 추적자들이 덜 오게 될거야.안그래?"
종우와 정우는 입을 다물고 어둠속으로 뛰어들어갔다.
휘영청 밝은 달은 여전히 그들 머리위에 있더니만 그들을 돕는 듯이 곧 구름속
으로 사라져버렸다.
대호는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그는 팽팽 달리면서 이제 슬슬 속도를 높혀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말 그대로 속도를 높혔다.
그의 등에 매달려있는 소년이 비명을 지를까봐 걱정했지만 소년은입을 꾹 다물
고 있다.그는 안심하고 신법을 펼쳤다.
원래 그의 모친 금화선제는 땅위의 꽃을 다스리는 존재로 그역시 숲안으로 들어
오면 그를 당해낼 자는 드물디 드물다.대호가 한걸음을 내딛고 달리면 그의 움
직임을 따라서 숲안의 거목들이 그의 은신에 도움을 주었다.
그의 몸은 말 그대로 일직선의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고 게다가 거의 땅을
밟지도 않았다.그는 이 나무 저나무를 툭툭 밟고 도약하고 있었는데 그 속도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 그의 움직임을 쫑던 병사들은 그를 놓치는것이 당연하다.그
들 모두가 어리벙벙해져서 그를 놓치고 말았다.
대호는 어느정도 달리다가 거대한 나무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달이 구름속에서
벗어나 밝은 빛을 띄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음,이제 멈출까나."
그는 소년의 몸을 커다란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고 자신도 그 옆에 마주 앉았
다.바닥을 내려다 보니 까마득한 수해의 바다.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눈치챌 수
는 없을 것같았다.대호가 앉아있는 이 나무는 무척이나 높아서 다른 것들과는
류가 틀렸다.이 정도면 나무의 정이 보통놈은 아니겠다 싶어서 대호는 나무결을
두들겼다.
"이봐,수신,너 있냐?"
소년은 대호의 행동에 놀라 주시하고 있었다.
소년은 아무리 보아도 대호가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되지않아서 경악하고 있던
차였다.그도 무예를 익힌 몸인지라 신법을 최고로 익히면 당연 상당한 솜씨에
달한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나 대단한 신법은 본 일이 없다.이건 신
법이 아니라 비행술에 가깝지 않은가.
설마 선인이나 도사들이 쓴다는 그 비행술일까 하고 소년이 궁금해 하고 있을
무렵 대호가 다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네가 준하냐?"
"네.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년이 다시 미소를 띄었다.
대호는 흠 하고 그를 아래위로 본 다음에 턱을 만졌다.
"어디로 갈 거냐?"
"네?"
"어디로 갈거냐구.난 너를 구해주는 것만 부탁받았어.그러니까 구해주었는데 넌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구."
준하는 아하 하고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누구에게 부탁받으셨나요? 스승님이십니까? 제가 잡힌 것을 아직 모르시고 계
실 텐데?"
"네 스승이 누군지 난 몰라."
"아,.천산검파의 도사이신 일현님이십니다.모르십니까?"
"몰라.천산검파라면..그래,들은 적은 있다."
대호는 턱을 만지작 거렸다.
그곳의 장문이라는 도사가 가끔 검선각에 놀러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나가면
서 보았기때문에 자세한 것은 모른다.아마 세현은 알고 있을 것이다.천산검파라
면 보통 도관은 아니다.그곳의 장문은 선계에도 자주 드나들어 잘 알려진 얼굴
이었다.
"음..스승님께 부탁받으신게 아니시라면..누구에게 부탁받으셨습니까?"
대호는 소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준하라는 이 소년은 노예상태에서도 웃는 얼굴을 하고 있던 녀석이었다.보통 녀
석은 아니다 싶었다.아무리 대호가 둔해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너는 어릴적에 토지신묘에 가서 놀았다며?"
"?"
준하는 엉뚱한 소리에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토지신에게 부탁받았다.내가 길을 가는데 갑자기 내게 애원하더군,너를 구해달
라고."
준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귀를 의심하듯이 다시 물었다.
"뭐라구요? 누구에게요?"
"네가 조그맣게 사당을 지어준 토지신말이야,네가 어릴 적 그곳에서 놀면서 벗
해주었다고 너를 구해달라고 하던데."
사람을 잘못 구했나 싶어서 대호가 다시 묻자 준하는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대호가 놀랄 때 준하의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사..사람이 아니고...토지신..이라구요?"
그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수 없는 표정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되물었다.
"그래."
"아버진...상당히 선정을 베푸셨는데...저를 구하려 한 사람이..사람들이 아니
라 토지신이라..하하하..."
준하는 왠지 모를 비애감을 느끼는 듯했다.
대호는 그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감을 잘 잡지 못하겠다는 기분이 되어 그를
주시했다.
"토지신이 널 구했다는 게 안믿겨지냐?"
"아뇨.아뇨,...믿습니다.선인께서 절 구해주셨으니까 믿습니다."
대호는 가슴이 뜨금했다.
이녀석이 내가 선인인 것을 어찌 알았지?
준하는 눈물을 닦아내고 그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보였다.
"땅을 가르고 하늘을 나시는 분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 생각했었습니다만..선인
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갑니다.예전에 산에 있을 때 가끔 선인을 본 적이 있었거
든요."
"어떤 선인?"
그렇게 주의심없는 선인이 있단 말인가 하고 대호가 조금 화가 날 무렵 준하가
조용히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가 검을 타고 하늘을 나르는 것을 본 적이 있었어요.저같은
미천한 것이 어찌 선인의 선명을 알수 있겠어요?"
공손한 건지 영악한 것인지 잘 모르겠군 하고 대호는 생각했다.
문득 자신이 타고 앉은 나무의 수신을 불렀다는 것을 기억해낸 그는 다시 나무
등걸을 두들기면서 불렀다.
"이봐! 나와 보라니까!"
준하가 눈을 크게 뜰 때 우아하게 보이는 흰 수염을 가진 푸른 옷을 입은 노인
이 두둥실 갑자기 그들의 옆으로 나타났다.
준하는 너무 놀라서 나뭇가지에서 떨어질 뻔했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고 이 공중
에 나타난 노인을 바라보았다.
"불러계시었습니까?"
노인이 공손히 대호에게 말했다.
대호는 수신에게 물었다.
"이근처에 혈간곡이라는 계곡이 있지?"
"네.있습니다."
"그 곳에 요괴가 산다는데 어떤 놈인지 아나?"
후유 하고 수신이 한숨을 몰아 쉬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상당한 놈입니다.그놈은 요귀로서 인간들의 생기를 빨아 먹는 놈이올습니다."
"뭐?"
"그놈은 원래 선행을 기원하는 기원목이었는데 언젠가 어떤 두 남녀가 불륜을
저지르고 그곳에서 살해당했답니다.그리고 그 시체를 그 나무밑에 파 묻었는
데..그 원한이 나무령과 결합해 요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인령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인령이 요괴화 한 것이지요.인령이 요괴화 하지않는다면 그렇게 잔
악한 놈이 나올리가 없지요."
수신이 고개를 내 저었다.그는 준하를 흘긋 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모든 지상의 생물중에 가장 간악한 것이 인간입니다.그 인간과 결합하여 요괴
가 되면 그건 가장 간악하고 사악한 존재가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대호는 노인네의 말을 무시했다.
"그건 언제나 하는 말이야.늙은이.자넨 여기 서있는지 얼마나 되었나?"
"약...구백년인가 천년인가 된 거 같습니다."
"음.그럼 선적에도 올라가 있겠구만?"
수신이 미소를 지었다.
"네,송령왕께서 올려주셨습니다.이곳 나무들은 꽤 영력이 깊은 편입니다."
"음,좋아.,그럼 혈간곡을 알려줘,나는 동료들과 그곳에서 합류하기로 했으니
까."
"인간들과 같이 가신다면..위험하실 텐데요?"
수신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고 대호는 컬컬 웃어보였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늙은이?"
"금화선제의 아드님이시고 검선중에 한 분이신 것은 알아보았습니다만.."
수신은 걱정스레 그를 보다가 준하를 다시 흘긋 보았다.
준하는 검선이란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 졌다.
"자,잔소리 말고 알려줘.그요괴놈이 원래는 나무라면 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으니까 가볼거야."
"그러십시오...선인님."
수신은 조금은 감탄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사실 대호가 그런 말-책임 운운 한다는 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었지만 어찌되었
든 요지에 가는 시간을 벌어보려는 일념하에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북별궁의 집필실-환상의 노트북(작가연재란) (go FNNINAPA)』 76번
제 목:동방제국기전 17
올린이:ahinshar(박창준 ) 99/05/30 21:15 읽음:117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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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7063
게시자 : 이수영 (ninapa )
등록일 : 1997-11-07 23:44
제 목 : 동방제국기전 17
동방제국기전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