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전 운
호연은 난폭하게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 따라오는 호위 두명은 그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기만 할 뿐 뭐라
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가슴이 터질것 같은 흥분감과 분노가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창룡전은 내 것이 될 것이다!
아만을 정말로 소유하는 것은 용병들이었다.용병들의 가족과 용병들의 친지들이
살고 있는 아만을 정말로 어떻게 해 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어리석
은 착각이었다.아만의 인구 중 용병은 거의 삼분의 일에 해당했다.물론 가족이
용병인 경우도 많아서 열명의 가족이라면 그 중 한둘은 반드시 용병이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십중팔구 창룡전이나 용회랑의 용병연합,혹은 해신정에
속해 있을 것이다.그런 아만이다.
그런 아만이 스스로 성문을 열지않는한 그가 오늘 보고 온 서패후의 무식하고
용렬한 유목집단이 아만을 함락한다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꿈이다.
그는 싸늘한 미소를 짓고 새벽녁으로 밝아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지평선이 끝
나고 산과 계곡이 시작되는 곳에 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만의 공기는 습하고 산뜻해서 사막의 거친 공기와는 비교도 할 수없다.
그는 웃음을 지었다.
아만은 내 것이고 어떤 자도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음에 안들어!"
극뢰가 외쳤다.
이신은 호오 하고는 차를 건네받았다.유목민족 출신의 노예인 염아는 이신의 옆
에서 차를 따르고 있다.그녀는 말을 거의하지않지만 예전 의녀와 함께 있었기때
문에 의술을 알고 있었다.
서패후는 두손을 가볍게 벌리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었다.그는 지금 휘하의 장
수들이 벌이는 이야길 듣고 있는 중이었다.
"그 자의 말은..정말..그놈은 소인배이고 게다가 음험한 배신자놈이야!그런놈을
배후로 두고는 난 절대 싸우지않을 거야!"
극뢰가 말하는 동안 이신이 빙그레 웃었다.
"극뢰님은 자연을 보셨지요? 어떤 여자였습니까?"
극뢰의 얼굴이 조금 변했다.그는 조금은 흥분된 얼굴과 실망한 얼굴 반반으로
그를 보며 술잔을 들이켰다.
"그래,궁금하군,그여자는 금린어를 차지해서 휘하 부하들과 끓여먹었다지?"
서패후가 나직히 웃음을 흘리며 묻자 극뢰의 얼굴이 빨개졌다.
"죄송합니다.주군,금린어를 가져오지 못해서,..."
그의 얼굴이 가볍게 변했다.그는 자신의 얼굴에 마치 주름살처럼 패어지고 갈라
진 흉터를 만지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놈..그 놀라운 검법의...명인이 그녀의 곁에 있다면...아마 호연의 음모도
힘들겠죠."
"극뢰,지금 적을 염려하는 것인가?"
옆에 있던 헌목이 낮은 목소리로 항의하듯이 물었다.
극뢰는 고개를 저었지만 곧 배실 웃었다.
"음..솔직히 말한다면 그녀는 물건이야.자연이라고.청호낭왕 자연.그 별호 그대
로야."
"호오."
이신이 흥미를 보이자 서패후도 몸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어떻길래?"
"으음..그녀는 동패후패와 자신의 부하들,그리고 우리들이 난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나타났습니다.그리고는 그렇게 나타나자 마자 기마병 열 댓정도를 이끌
고 말 그대로 돌격해 오더군요.그녀의 부하들이 뒤에서 고동을 불었고 그 소리
가 귓청을 떨어울렸습니다.먼지가 좌욱해지는 그 동안 동패후패거리들의 앞에
그녀가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그녀는 푸른 전포와 호랑이를 새긴 갑주를 입고
있었는데 손에는 장검을 들고 한 손에는 채찍을 쥐고 있었습니다.그 채찍은 길
이가 얼마나 긴지 그녀의 몸을 뱀처럼 휘감고 있더군요.말 그대로 위풍당당.호
랑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여자였습니다.
투구따위는 쓰지도 않고 짧은 머리를 드러낸 채 고개를 당당히 들고 외쳤습니
다.
'나는 창룡전의 자연이다! 나에게 할 말이 있는가?'
아무도 그녀를 보고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어찌되었든 그 순간에는 말을 걸지
못했죠.저는 그녀가 그렇게 미인일 줄은 몰랐습니다요.키는 저보다 조금 더 크
거나 저랑 비슷할 것 같은데 그렇게 등장하더니 갑자기 자신의 부하들을 향해
외치더군요.
'무엇때문에 싸움을 벌이는가! 이거 참 동패후전이나 서패후전에 면목이 서지않
는군,'
그러더니만 생긋 저를 향해 웃어보였습니다.
그때 멀리서 군세들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는데 분명히 그녀가 단 세마디 정
도 할 시각에 불과했건만 사방 온천지가 순식간에 창룡전의 병사들로 가득찼습
니다. 수가 거의 기천은 될 까요? 여자용병과 남자용병이 뒤섞인 자들로 옷차림
새는 모두 제각각.그러나 모두들 살기를 띄우고 병장기를 치켜 든 모습은 보통
이 아니더군요.
그들이 지르는 소리가 기린성 호숫가를 완전히 장악해버렸고 우리들은 말 그대
로 포위당해 버렸죠.이건 싸움이고 뭐가 아니구나 할 즈음 이신군사께서 재빨리
후퇴하라는 명을 건네주신 겁니다."
"호오."
서패후는 웃으면서 턱을 쥐고 흥미깊은 눈빛을 했다.
"그리곤?"
"뭐가 어찌고 자시고 있습니까? 저나 동패후 패거리나 모두들 멍청하니 퇴각했
고 그녀는 자신들의 부하들 중에 걷기 어려운 부상자하나를 힘들이지도 않고 목
덜미를 잡아 올리더니 자신의 말앞에 태우고 가볍게 말하더군요.
'돌아가자'
그러더니 돌아갔습니다.
정말 힘이 세더군요.장정의 목덜미를 가볍게 쥐어 자신의 말위로 끌어올리더라
구요,"
"단단히 반했군."
하하하 하고 헌목이 웃음을 터뜨렸다.극뢰는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말
했다.
"하지만 사실인걸.그녀는 보통이 아니었어.완전히 압도적이어서 그 자리에 있던
나나 동패후 패거리들 모두가 멍하니 그녀가 가리키는 데로 퇴각해 버렸는걸."
"그 포위된 상황에서는 어쩔 수는 없었지요."
이신이 웃으며 말했다.그러더니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 검선과도 같은 검법의 소유자란 어떤 자입니까?"
"음..믿어지지않을 만큼 젊은 놈이야.나이는 이십대 초반.어깨가 넓고 반듯하게
생긴 놈인데 조금 어벙벙하더구만."
"어벙벙한 놈에게 당했다구?"
"놈의 검이 보검이었어.내 검과 닿자 마자 박살이 나더라구!"
극뢰가 변명했다.그는 주먹을 쥐고 자신의 손아귀를 펼쳐보였고 그 안에 흉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단련해서 마치 나무토막처럼 단련된 그 손이 마치 붉은 선이
간 듯이 주욱 찢어져 있었다.그는 그 손바닥을 들어보이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진짜 무서운 놈이야.날 본 척도 안하고 그냥 가버리더군,낄낄거리면서 말이
야."
극뢰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극뢰의 실력을 아는 자들은 모두 침묵하고 그의 손아귀에 난 흉터를 바라보고
있었다.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검기가 얼마나 강하면 그 손아귀가 그렇게
찢어지고 검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박살이 나서 얼굴에 박히겠는가 싶었다.
"그놈은 거의 인간이 아니었어.그런 놈이 자연에게 붙어있다면? 놈은 최소한 일
당 백의 고수라구,그런 놈이 세상천지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난 개안했어."
그는 솔직히 말하곤 술병을 통째들고 들이켰다.
그의 눈안에 집념과 알수 없는 정열이 불타는 동안 이신은 서패후를 바라보았
다.
"어쩌시렵니까?"
서패후는 턱을 괴고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올리며 뒤에선 전령을 불렀다.
"이봐,.다람을 불러와라."
그가 나가자 마자 서패후는 이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녀를 정말로 아내로 삼고 싶어.만약에 가능하다면 말이지."
"그녀는 야멸차게 거절했다고 하는데.."
헌목이 망설이듯이 중얼거렸다.서패후는 손수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호박색 액체가 흔들거렸다.독한 향기가 피어오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호연을 가차없이 버릴 수가 있지."
그의 눈이 차갑게 변했고 이신은 나직히 말했다.
"그럼..준비하죠."
정훈은 준비하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기민은 휘하의 용병대장들이 각자 포진한 거을 보고 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그
는 가볍게 아만주위의 지도를 펴들어서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탁자의 건너편에는 자연이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느긋하게 앉아있었다.그녀의
곰방대의 연기가 짙어진 것을 하민은 느끼면서 그녀쪽을 돌아보았다.
"탁천공은 뭐라 하지?"
문득 기민이 앞에 선 자신의 부장겸 참모인 도균을 돌아보았다.도균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우리에게 모든 협조를 한다고 약조했죠,당연한 일입니다.아만이 서패후따
위에게 함락당할 수는 없죠."
모두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서패후의 군세는?"
자연이 여지껏 입을 다물고 있다가 물었다.
하민이 재빨리 대답했다.
"모두 그 수는 만칠천정도 됩니다.그정도라면...아만을 함락 시킬 정도는 되지
요."
그의 말에 약간 조용해 졌다.
"그러나 우리의 수도 만만치 않지."
갑자기 누군가가 그 말에 대꾸를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들어선 것은 갑주차림의 호연이었다.그는 뒤에 친위무사 세명
을 거느리고 왔는데 흰 바탕의 붉은 갑주는 과연 그의 평소 복장 대로 화려했
다.자연은 그를보고 낮게 물었다.
"우리의 수가 얼만데?"
호연은 엷은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탁천공의 병력 천오백과 용회랑 잔여군세 이천구백,해신정의 천칠백,그리고 창
룡전의 삼천..그리고 그 외에도 이곳 도시를 지키겠다고 일어난 자유용병들이
최소한 천여명 정도..나쁘지않지.게다가 이곳의 성벽은 요새중에 요새."
그 말에 도균이 미소하면서 동의했다.
"옳습니다."
하민이 미소하면서 자연을 돌아보자 그녀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정말 그럴까? 서패후란 자도 전쟁터에서 뼈가 굵은 자야.맨손으로 일어나서 현
재 서북을 완전 장악한 자이지,그런 자가...아무 승산도 없이 내게 와서 청혼하
고 거절 당한다? 미심쩍은 일이군."
그녀는 담뱃대를 쥐고는 흘긋 호연을 보았다.
호연은 호탕하게 웃음을 짓고 말했다.
"그래서? 창룡전의 자연이 두렵다고 말할 건가? 누님?"
자연은 미소지어 보였다.
여유로운 듯 하지만 싸늘한 눈은 웃고 있지않았다.
"나는 겁장이야,호연,나는 언제나 모든 것을 걱정하지."
새벽녘부터 아만의 거대한 성벽안으로 거주민들이 기나긴 줄을 만들며 들어서고
있었다.성밖의 거주민들은 불안감을 느끼면서 새까맣게 안으로 가족끼리 무리를
지어 성벽안으로 들어섰다.아름다운 호숫가의 전경도 들판에 늘어진 곡식들도
모두 놔두고 그들은 안으로 안으로 피난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피난을 하는 동안 제일 먼저 용회랑의 용병단이 들어섰다.그들
모두가 자유계약의 용병단이었지만 지금 아만에는 그들의 가족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계약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애진은 그들을 맞이하여 말을 달려나갔다.
앞선 사내가 그녀를 보자 마자 가볍게 외쳤다.
"아가씨!"
"상천아저씨!"
그녀가 반갑게 말하자 사십대 중반의 노련한 맛을 풍기는 용병이 껄껄 웃어보였
다.
"이렇게 오랜만에 뵈오니 정말 아름다우시군요."
"그런 말을 하시는 걸 보니 아직 안심이 되는 군요."
애진은 쓴웃음을 짓고 줄지어 선 용병들을 돌아보았다.낯이 익은 자도 있고 낯
선 자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피난민들 중에 어떤 첩자가 끼어있을 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어서 그녀는 조금 불안해졌다.
아만은 인구가 많다.그렇기때문에 방만할 정도로 서로에 대해선 신뢰하고 있었
다.그러나 이들 중 어떤 자가 어디서 왔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것도 난세란 것이다.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자기 자신과 동료들 이외엔 믿을
자가 없는 것이다.그녀는 상천에게 손짓해 그를 가까이 오게 한 뒤에 낮게 물었
다.
"믿을 만한 자들입니까? 아저씨? 그리고 피난민들을 수색해야할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는 압니다."
그는 고개를 그덕이면서 성문앞에 끝없이 늘어선 피난민들의 행렬을 바라보았
다.
"그러나 일일이 확인할 새가 없어요,아가씨."
"그러나,..첩자가 들어올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를 골라낼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이 아만은 철저한 용병들의 도시
였어요.이런 도시에서는 상대를 반밖에는 믿지않습니다.어차피 저기서 경비서는
자들이나 들어서는 우리들 자신이나 혹은..."
그는 피난민들을 바라보았다.
"저 피난민들도 우릴 믿지 못할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얼굴을 숙이고 그늘 진 얼굴을 했다.
"아만이 저 유목민족들에게 점령당한다면 아름다운 서부 제일의 도시 아만은 사
라지는 겁니다.모두 약탈당하고 모두 불태워지겠죠.그게 다들 무서워서 싸우는
것이라고 믿을 수 밖에요..."
『북별궁의 집필실-환상의 노트북(작가연재란) (go FNNINAPA)』 87번
제 목:동방제국기전 27
올린이:ahinshar(박창준 ) 99/05/30 21:22 읽음:111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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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7139
게시자 : 이수영 (ninapa )
등록일 : 1997-11-19 02:06
제 목 : 동방제국기전 27
동방제국기전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