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방제국기전-41화 (41/54)

6. 선우의 첫 전투

"푸하하하..."

선우는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막 말을  타고 싸움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그의 휘하에 당연 부하들

이 있을리가 없고,그는 단지  선봉대인 도견의 부대에 섞여 있었을 뿐이었다.그

는 막 피에 젖어버린 장삼을 벗으면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주변에는 그처럼 주저앉아 피로 물든 장삼과 옷가지를 벗어던지는 자들이 줄

지어 있었다.용병들은 한바탕 싸움이 끝나면 곧장 회군해서 장비와 몸을 정돈하

곤 했다.다음 싸움을 위해서 였고 또 한차례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준비

이기도 했다.

그의 옆에 있던 오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정말야,.자네 부친이 북패후라고 하면 말이지,꼭 넣어보자구,자네를 이제

부터 소패후라고 부를 테니까."

"난 그 패후라는 말이 질색인데."

독한 화주가 한 순배 돌았다.

그는 허리에 찬 검을 어루만졌다.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있었지만 눈은  차갑고 분노에 찬 허무감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그는 자연에게 말해서 어느 부대에든 끼어 달라고 했던 차였다.

"왜?"

자연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고 웃음기를 머금은 선우는 가볍게 대꾸했다.

"나도 싸우고 싶으니까."

"개죽음 당하고 싶은게 아니고?"

"죽을 때는 언젠가 죽기 마련.새삼 죽기위해 전쟁터를 일부러 뛰어 다닐리는 없

죠.그러나 지금은 일단은 뛰고 싶은데요."

자연은 그 말을 듣고는 후 하곤 맘대로 해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지도에 열중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선우는 그녀와 헤어져서 곧장 왕수에게 가서 물었다.

"선봉대가 누구야?"

"도견.저기 보이는 사나운 사내."

왕수가 손가락 질을 해보였다.선우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웃통을 벗고 칼과 화살을 점검하고 있던 사내는 복부에는 단단해 보이는 가죽으

로 꼭 싸매고  바지만 입고 있었다.그의 뒤와  옆에 앉은 사내들도 모두 침묵을

지키면서 싸움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가간 선우는 그의 눈에서  살기와 광기를 보고는 몸이 굳어질 정도로 놀랐다.

도견은 그를 흘긋 바라보곤 물었다.

"뭐야? 애송이?"

"나를 받아주었으면 하고.나도 방해는 하지않을 테니까."

도견은 무표정한 안색으로 그를 빤히 보았다.

그의 눈에서 보이는  거의 야수 이상으로 보이는  광기와도 같은 살기는 선우의

몸을 굳어지게 했지만 그는 토를 달지않았다.

"맘대로."

그는 잘라 말하곤 고개를 돌려버렸다.

선우는 말을 한 필 얻어서  자신도 나름대로 준비를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마음

을 바꾸었다.새삼 준비랄 것도 없었다.그저 시키는 대로 가서 움직이면 될 일이

었고 이 싸움은 정확히 말해 그의 싸움이 아니었다.

선우는 모닥불 가까이에 가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낯익은 사내가 그에게 술병을 건네주었고 그는 그것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기이한 허탈감이 밀려와 그의 어깨를 눌러버렸다.

감상에 빠질 건 없었다.그는 자유였고 죽던 살던 그것은 그의 의지였다.

그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갑자기 애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희고 단정한,그러면서도 강인한 고집이 서린 입매.

그녀는 그를 싫어했다.

왜 싫어하는 지 알진  못하지만 그녀는 선우 자신과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성

실하고 굳건하다.그건 그가 가지지 못한 속성이었다.

허긴 성실하고 굳건하면 이제껏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선우는 스스로를 자위했다.

그녀는 연인을 잃은 것일까.

그는 몸을 일으켜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인마들을 바라보았다.

쉴새없이 이 부대가 나가고 저 부대가 들어왔다.

싸움들을 하고 돌아오긴 하지만  그다지 심한 부상을 입은 자도 없었다.이 싸움

이 대체 어떻게 진행 되는 지 아는 사람들은 아마 용병대중에서도 수뇌부들만일

것이다.그러니 선우로선 알 도리가 없다.

언제든 바닥을 기는  졸병들이 전략 전술을 알게  무언가 하고 선우는 비꼬아서

생각하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서 용회랑 소속의 용병들을 이끌고 돌아오는 애진의 모습이 보였다.그녀

는 지쳤지만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그녀의 부대원들 말 엉덩이에 주렁주렁 매달

린 사람의 머리였던 물건들이 부질없이 말 엉덩이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고 있

었다.

사람의 머리는 자연의 말대로 군공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은 목을 베어서 잔뜩  쌓아놓고 있었다.바닥에 널린 무수한 작은 공과 같은

물건들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서기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자들이 나름대로 뭔

가를 기입하고 있었다.기입이 끝난 머리들은 일제히 구덩이 속으로 던져졌다.

"출발하자!"

도견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선우는 재빨리 일어나 말위로 올랐다.그의 차림새

는 그저 보통의 장삼차림이었지만  다른 사람말 대로 등갑으로 만들어놓은 가벼

운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비싼 갑옷을 입을 수  없는 자들이 잘 손질한 대나무

껍질을 연결해서 만든 갑옷이었다.비록 대나무지만 화살은 이 것을 꿰뚫지 못했

다.

첫 전투는 별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접근하여 싸운다라고 하는 단순한 전술이었다.

이것을 전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하는 말이지만.

"와악!"

화살이 등갑에 맞아 튕겨나갔다.검을 든 자들이 일제히 돌진했다.

"죽어라!"

"죽어?"

"악!"

사방에 온통 피바람과 피범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견은 살기로 눈을 벌겋게 한 채 내달리고 있었다.

제일 먼저 조우한 자들은 일제히 병장기를 들고 돌진해왔다.이쪽도 역시 마찬가

지로 돌진했다.도견의 칼이 수평으로 날았다.

피가 뿜어지고 수명의 병사들의 목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선우는 이 싸움속에서  다른 것을 볼 여력은  없었다.그는 그저 할 수있는 한껏

자신을 보호하는 데에 치중했다. 보호내지는 공격의 당위성이 그의 몸안에 녹아

그는 아무런 저항감도 없이,아무런 생각도 없이 병장기를 휘두르는 데만 전념했

다.

눈앞에서 다가오는 자들의 가슴을 찌르고 뒤에서 공격해 오는 자들을 피하며 자

신의 동료들과 헤어지지않도록  안간힘을 쓴다 라고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그는

장수도 아니고 대장도 아니었으며 일개 하나의 병사에 불과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이 아만성 전투라고 하는  거대한 건물의 작은 벽돌정도에

지나지않는다는 것을 선우는 곧 깨닫고 있었다.

"잘도 뒤처지지않았군."

온몸이 지쳐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않을즈음 뒤에서 누군가가 말해주었다.그가

돌아보니 그와 같이 말을 타고 있는 사내가 그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

다.선우는 갈가리 찢어진 장삼쪼가리를 들어보이면서 그에게 물었다.

"다 끝난 건가?"

"하하..아직 멀었어,그러나 우리들은 돌아간다."

그 이름도  모를 병사가 여유있는 웃음으로  말했다.그리곤 선우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넌 아직 처음이지?"

그래라고 선우가 막 대답할 때 사내의 입안에서 갑자기 피가 터져나왔다.

사내의 눈이 충격과  고통으로 부릅떠지는 것을 선우는  입을 벌린 채 바라보았

다.그는 사내가 쓰러지는 것을 얼결에 두 손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등줄기에 꽂힌 화살이 숨이  끊어져 가는 사내의 몸짓에 따라 파르르 흔들

리고 있었다.사내의 멍한 눈이  선우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아직 체온도 따스

한 그 시체를 안고 선우는 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으아아아.."

그는 처음으로 고통과도 같은 분노를 느꼈다.

안아 들고 있는 사내의 몸이 피를 뿜고 그 퀭한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살이 날아들어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 선우는 있었다.

그는 미친듯이 검을 뽑아들고 화살을 쏘아대는 자들을 향해 돌진했다.

전투 3일째.

선우는 피로 얼룩진 몰골을 하고 앉아있었다.

이미 선발대의 대장이란 도견은 놓쳐버렸다.

그의 주변에 있는 자들은 말위에서 떨어진 다섯명의 사내들이었다.

모두 적거나 크게 부상을 입고 있었다.선우의 상처는 찰과상이 전부였다.

그는 잘 기억나지않는 상황을 기억해 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여전히 정신은 멍

했다.모든 것이 명확하지않았다.정신없이 적을 베었고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버

둥거렸다.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이 아무도 없는 벌판에서의 싸움은아무도 알

아주지않는다.그가 몇이나 적을 베었던지 그것에 신경쓰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

선우는 바닥에 늘어져서 쉬고 있는 자들을 돌아보았다.

능숙한 나이든  용병은 둘,나머지 셋은 아직  애송이 티를 벗지못한 선우보다도

어린 자도 있었다.그들 모두가 낙오된 고통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느쪽이지?"

한 사내가 말했고 다른 사내가 그 말을 받았다.

"동쪽,돌아간다."

선우는 기다려 하고 말했다.

사내들의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다.

"걸어서 돌아갈 셈인가?"

"그럼?"

"걸어서 돌아간다면..우린  적어도 사흘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야.기억나지 않

나?"

"그럼?"

"적들의 말을 빼앗을 수밖에 없다구."

"그게 말이 되나?"

흐 하고 한 사내가  비웃었다.그는 이를 갈듯이 선우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물

었다.

"겁에 질려 전투중에도  숨어있었겠지,그러니 상처를 입지않은 거야.그지? 도련

님?"

선우는 갑자기 울컥해졌다.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동안 냉소적으로 이글거리던 감정들이 갑자기 뜨거

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그는 진흙탕 안에  주저앉아있었고 이런 몰골이라도 살아있길 바라고 있는

차였다.그건 그가 여지껏 살아온 것과는 너무나 다른 그런 형태였다.

선우는 차갑게 웃음지었다.그의 몸안에서  다른 것이 튀어 나와 그의 마음을 채

워가고 있었다.

"말 다했어? 적과 싸워 말을 빼앗자는 내 말이 그렇게 겁장이의 말로 들리나?"

그의 말이 차갑게 울리자 그에게  뭐라했던 사내가 입을 다물고 선우를 다시 보

았다.그 자리에 있던 다른 자들도 선우를 다시 본 듯 그를 주시했다.

선우는 천천히 일어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꺽다리 사내를 똑바로 직시했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니까 참겠어.잘  들어.놈들은 이리로 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어떻게 알지?"

"우린 이곳에 계속 숨어있었지? 척후병의 발자국 소리가 몇번이나 들렸었지? 여

긴 놈들도 방어하는 곳이야."

사내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하루에 네번 울린다.그건  바닥에 귀를 대어 보고  있다면 누구든지 알수 있는

일이야."

사내의 눈속에서 웃음과도 같은 것이 떠올랐다.그건 조소는 아니었다.

"그럼?"

"난 말에 대해 잘 모른다.너는 잘 알고 있나?"

선우는 솔직히 물었다.

사내는 뜻밖이라는 듯이  선우를 빤히 바라보았다.그러자 뒤에 앉아있던 다리를

다친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럼 척후를 잡자는 이야긴가?"

"그래."

"나쁘진 않지만 틀림없이 놈들이 따라 붙을 거야."

"그러니까 머리를 모으자고 했어."

선우가 침착하게 말했다.

사내는 흐 하고 웃고는 고개를 그덕였다.

"좋아.해보지,쓸모없는 머리통도 다 끌어모아 해보지."

전투 4일째.

먹을 물도 없다.

척후가 다가오고 있었다.모두  일곱기였다.그들은 일제히 평원을 돌아보고 있었

따.평원에 널린 썩어가는 시체들과  냄새 고약한 까마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석양이 지고 있었고 그 태양은 아만성의 망루탑에 아스라히 걸려있었다.

흙과 모래를 뒤집어 쓴  척후들은 일제히 달리면서 순회하듯이 평원을 가로지르

고 있었다.하루 네번 도는 이 척후들은 일곱기가 한 조로 구성되어 있었고 모두

나름대로는 솜씨있는 자들로 이루어져있었다.

한 기의 척후병이 지나가는 순간 갑작스레 바닥이 튀어 올랐다.바닥에서 튀어나

온 갑작스런 창날에 으악하고 앞선 자가 말위에서 그대로 창날에 꽂혀 나동그라

졌다.그 난데없는 상황에 지나치던 한 기가 홱 돌아서는 순간 창이 홱 날았다.

"으아!"

기수가 창에  꽂혀 나동그라졌고 말은 공포에  질려 날뛰었다.재빨리 그 고삐를

잡아챈 흙투성이의 사내가 나동그라지면서  말고삐를 잡는 동안 그를 발견한 척

후가 홱 돌아서며 칼을 뽑아들고 사내에게 돌진했다.

고삐를 잡고 진정시키느라 버둥거리는  사내의 등뒤로 그의 칼날이 막 내리쳐지

려는 순간 선우는 칼을 집어던졌다.

공기를 찢는 팽팽하는 소리와 함께 척후의 가슴이 꿰뚫려 피가 산산히 공중으로

솟아났다.선우는 달려나가  그의 말고삐를 잡아채려했지만  말은 공포에 길길이

날뛰어 그 고비를 놓치고 말았다.그러나 그 순간 다른 자들이 대신 잡아챘다.살

아남은 척후들은 동료들의 복수를  위해 일제히 달려들어왔고 선우는 이를 악물

고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기마를 향해 돌진하는 말 그대로  무모한 짓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양손에 든 창

날을 곧추 들고 그대로 돌진했다.

"차아아!"

한 명의 척후가 그의 팔을 향해 칼을 휘둘러 피가 튀었지만 완전히 베기엔 얕았

다.선우는 그가 칼을 휘두른 탓으로 창날을 하나 놓쳤지만 그 뒤에 덤벼드는 자

에겐 아낌없이 창날을 꽂아주었다.

그가 팔을 잡고 나뒹굴때 다른 선우의 동료들이 달려들어 나머지를 해치웠다.

선우는 말고삐를 잡고  다가오는 자신의 동료들-전에는 그저 지나가는 병사들에

불과했던 자들을 바라보았다.이젠 전우가 되었다.

팔의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러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마음속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스쳐지나갔다.

그는 킬킬 웃고는 자꾸 웃기 시작했다.

"왜 웃어! 미친자식!"

그를 비웃었던 산발한 사내가 말고삐를 잡고 다가오면서 웃음지어 보였다.

"푸하하하.."

선우가 웃자 그도 웃고 다른 자들도 절룩이면서 웃었다.

"이 자식 하는 짓 봤어? 얼굴은 곱상한 게 완전히 돈 놈이야!"

푸하하하하고 다른 한 명이 선우를 손가락질 하면서 웃어제켰다.

선우는 킬킬 목안으로 웃으면서 말고삐를 잡아 말 위로 올라탔다.그는 부상자의

손을 잡아 끌어  자신의 등 뒤로 매어 달고는  킬킬 대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자신의 전우들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뭐냐?"

"선우."

머리를 산발한 꺽다리는 그를 향해 이를 드러내어 웃어 보였다.

"나는 오수다.애송이."

전투 5일째.

선우는 귀환했다.

『북별궁의 집필실-환상의 노트북(작가연재란) (go FNNINAPA)』 110번

제  목:동방제국기전 2부 7

올린이:ahinshar(박창준  )    99/05/31 17:46    읽음:107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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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7739

게시자 : 이수영   (ninapa  )

등록일 : 1998-02-02 17:43

제  목 : 동방제국기전 2부 7

동방제국기전 2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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