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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12화 (12/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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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12화]

第二章 모두 떠나버린 섬 (5)

턱!

밀실 문을 열기 위해서 안쪽에 있는 손잡이를 잡았다.

바깥과는 달리 안쪽 손잡이는 은폐되어 있지 않다. 문 곁에 있는 손잡이를 위로 들어올리기만 하면 열린다. 그런데,

확!

이유 없이 심등이 밝혀졌다.

운기(運氣)를 하지 않았다. 무공을 펼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볼 일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운기를 하겠나.

그런데 심등이 밝혀진다.

슈확!

단전에 깃들어 있던 진기가 순식간에 심등을 쫓아왔다. 그리고 사지백해로 골고루 퍼져나갔다.

운기를 할 마음이 전혀 없는데, 운기를 하고 말았다.

‘이게 저절로 움직일 때도 있군.’

심등은 본성을 쫓는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 속에서 피어난다.

사후생(死後生)!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 너머에 있는 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의식을 넘고, 꿈을 꿀 때의 무의식조차도 뛰어넘는다. 모든 걸 지나쳐서 더 깊이 들어가면 그곳에 진정한 삶이 있다.

여여양생술에서 말하는 사후생의 참 뜻이다.

자신은 볼일을 마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그런데 본성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곳에 계속 남아서 아직 익히지 못한 무공을 마저 수련하고 싶은 게다.

야뇌슬은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조금만 참아. 오늘 저녁쯤이면 편안한데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때 보자고. 조급하기는. 후후!”

그는 심등을 일으킨 채 문을 열었다.

그르…… 릉!

‘웃!’

무심히 밖으로 걸어 나가려던 야뇌슬은 깜짝 놀라서 우뚝 멈춰 섰다.

노모보, 그리고 그의 사자들!

그들이 폐허가 된 팔좌실을 이곳저곳 뒤지고 있다.

마침 그들도 벽이 움직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엇! 너는!”

“야, 야뇌슬! 네놈이! 풋! 푸하하하! 네놈이 살아있었더냐!”

“이거 쥐새끼 잡으려다 뱀새끼를 잡았네. 하하하!”

그들이 웃어댔다.

창! 창! 차앙!

검을 지닌 자는 검을 뽑았다. 도를 지닌 자는 도를 뽑았고, 화륜을 가진 자는 화륜 네 개를 꺼내 양손에 움켜쥐었다.

슥!

야뇌슬은 팔을 내렸다.

순간, 완전히 열려져 있던 벽이 빠른 속도로 닫혔다.

“어림없어!”

꽈르르르릉!

화륜 네 개가 벼락 치듯 몰아쳤다.

꽈지직! 깡! 깡! 깡!

야뇌슬은 쥐고 있던 손잡이를 분질러서 화륜 한 개를 받아쳤다.

화륜은 돌로 만든 손잡이가 모래처럼 부셔 버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머리를 스치면서 지나갔다.

잘린 옆머리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화륜이 긁고 지나간 상처에서는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다행히도 다른 세 개의 화륜은 밀실 석벽이 막아주었다.

휘리리릭! 까앙!

머리 뒤를 흘러갔던 화륜이 빙글 맴을 돌며 되돌아왔다.

야뇌슬은 수륜압지(收輪押指)를 써서 날아오는 화륜을 잡아챘다.

그도 화륜을 날라고 받을 수 있다. 노염백만큼 절륜하게 던져내지 못할 뿐이지 현현무심공을 바탕으로 한 현현비격술을 깊이 있게 수련했다.

적암도의 화륜은 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형 형태가 아니다.

작게 줄인 대도(大刀)의 날 부분을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란히 세워놓은 것 같은 형태다.

꼭 바람개비처럼 생겼다.

가운데는 동그란 구멍을 뚫려 있고, 그곳에 손가락을 넣어 회전시킨다.

화륜을 받아들 때도 가운데 홈에 손을 끼어 넣어 정지시킨다.

고도의 수련을 하지 않으면 병기를 손에 쥐어줘도 사용조차 하지 못한다.

“으음!”

화륜을 받아든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손아귀에 은은한 통증이 전해진다. 화륜에 깃든 힘이, 잔력(殘力)이 노염백의 내공을 가늠케 해준다.

쾅! 쾅! 꽈아앙!

석벽이 둔중하게 울렸다.

야뇌슬은 소리만 듣고도 누가 벽을 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곱 명의 사자 중에서 천력(天力)을 타고 났다고 일컬어지는 곡문권이다.

그와 미루극은 천왕구도의 일맥을 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사용하는 병기는 완전히 다르다. 미루극은 다소 가벼운 유협도(柳叶刀)를 사용한다. 반면에 곡문권은 장병(長兵)에 속하는 언월도(偃月刀)를 사용한다.

그는 웬만한 장정은 들지도 못할 무게의 언월도를 한 손으로 들고 다닌다. 수련할 때의 모습을 보면 가히 사대천왕이 미친 듯이 화가 나서 날뛰는 것 같다.

더군다나 그는…… 싸움에서는 두 손을 쓴다.

두 손으로 언월도를 잡고 전력을 다해 후려친다.

구중미천공을 쓰지 않아도 돌개바람 소리가 획획 나는데, 초식까지 가미시키면 근접하기조차 겁난다.

그런 천력의 힘이 석벽을 두들기고 있다.

꽝! 꽝! 꽈아아앙!

석벽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가슴에서 피어난 심등이 더욱 환하게 밝혀진다.

위험이다! 가슴이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

야뇌슬은 본능적으로 심등이 왜 밝아지는지 원인을 알았다.

어떤 이유에서건 심등에 불이 켜졌다는 건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본능은 감지하고 있다.

곧 석벽이 부셔진다.

‘여덟 명……’

도저히 상대할 수 없다.

저들 중에 한 명조차도 상대하기 버거운데 여덟 명이나 버티고 있다면 죽음뿐이다.

저들에게서 인정을 바라기는 어렵다. 또 그런 일은 자신 스스로도 거부한다. 죽이고 싶으면 죽여라. 그래, 그것이 좋다. 서로가 냉정하게 돌아서서 죽고 죽이는 삶을 살아가는 거다.

지금 당장은 그가 불리했다. 아주 불리했다.

쾅! 꾸르르릉! 꽈앙! 꾸르르르릉!

타격에 석벽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울림이 커지고 있다. 진동도 오래 간다. 이미 석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야뇌슬은 서고에서 소가죽이나 양가죽으로 만든 책들을 골라 수북이 쌓았다.

일단 저들은 분산시켜야 한다.

팔좌실 밀실은 환기가 잘 된다. 습기를 방지하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시켜 준다. 통풍구가 지하를 통해서 지상으로 뻗어나가 있기 때문이다.

탁탁!

그는 화섭자를 꺼내서 수북이 쌓아놓은 책에 불을 질렀다.

종이에 불이 붙으면서 활활 탔다. 하지만 가죽은 쉽게 불이 붙지 않고 심한 그을음만 냈다.

냄새도 지독하다. 마치 뼛가루를 태우는 듯한 냄새가 난다.

연기와 냄새는 통풍구를 타고 퍼져나갈 것이다.

“이게 무슨 냄새지?”

“뼈를 태우는 냄새 같은데?”

“또 무슨 수작을 벌이는 거야!”

모두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적암도는 그들의 땅이다. 적암도에서 자라는 것은 풀뿌리 하나까지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대해서는 몰랐다. 팔좌실 한 가운데 그들이 전혀 모르는 밀실이 존재했다.

이곳은 뭐하는 곳일까?

아니,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다.

하! 야뇌슬이 살아있다.

전광천심을 정확하게 두들겨 맞았고, 명치에 칼까지 박히고, 적사해 급류에 휩쓸린 놈이 멀쩡하게 살아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놈이 불사신이 아닌 바에야 이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나.

놈은 이곳에서 지난 한 달간을 버틴 것 같다.

자신들이 섬을 샅샅이 뒤지는 동안, 상처를 치료하고 먹고 마시며 편안하게 지냈다.

이런 일은 정말 있을 수 없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이럴 수가 있구나. 그런 지경에서도 살아나는 놈이 있구나. 너무도 멀쩡하게, 태연하게 움직이는 놈이 있을 수 있구나.

부도주가 남으라고 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는가.

놈은 이를 악물고 무공을 수련할 게다. 그리고 때가 되면 살수가 되어서 은밀히 한 명, 두 명 암살할 게다.

그게 무서운 건 아니다.

무림을 살아가다보면 살수 같은 자들은 왕왕 만난다.

그런 자들을 두려워한다면 아예 무공을 배우지 말아야 한다. 시골에서 농사나 지어야 한다.

놈이 야뇌슬이기에 두려운 게다.

놈이 살수가 된다면 일곱 명 중에 한두 명 쯤은 당할 것 같다. 왠지 그런 예감이 든다.

도대체 이곳이 뭐하는 곳인가. 왜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몰랐을까!

꽝! 우르르릉!

곡문권이 두 손으로 언월도를 힘차게 휘둘렀다.

석벽에 금이 쩍 가면서 요동을 쳤다.

이제 한두 번? 길어야 네, 다섯 번만 두들기면 부서질 것 같다.

모두들 병기를 바짝 움켜쥐었다.

놈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놈이 천재라지만 아직은 여물지 못한 벼이삭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놈이 완벽한 죽음의 덫을 한 번 빠져나갔다.

또 다시 그런 실수를 저지를 수는 없다.

“저기 연기가!”

탁태자가 손으로 언덕 뒤를 가리켰다.

연기는 모두 세 군데서 피어올랐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부서진 석문 틈으로 흘러나오는 것과 똑 같은 종류의 연기가 피어났다.

노모보가 턱짓을 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세 명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신형을 띄웠다.

탁태자, 우염비, 미루극.

쉬윗! 스으읏!

사라져 가는 모습이 한 줄기 바람 같이 표홀하다.

곡문권은 잠시 손길을 멈췄다.

저들이 퇴로를 완전히 차단할 때까지 문을 뚫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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