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도검무안 20화]
第三章 죽음이 시작되고 (7)
하나, 둘, 하나, 둘……
손과 발을 천천히 움직인다. 어깨를 좌우로 돌리기도 하고, 목 근육도 풀어준다.
천천히, 꼼꼼하게 전신을 풀어준다.
마록타가 보기에는 한심한 노릇이다.
사실 마른 옷을 준비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무인이란 자가 바닷물에 몸 좀 적셨다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쓰겠나. 그 정도는 툭툭 털어버리고 진기 한 번 휘돌리면 되지 않은가.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다 속을 누볐다.
한 여름은 물론이고, 한 겨울에도 바다의 한기쯤은 가볍게 이겨냈다.
보통 사람들에게 겨울 바다는 아주 위험하다.
오늘처럼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이면, 바닷가에서 산책도 못한다.
하지만 그처럼 무공을 익힌 사람들한테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약간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장기적으로는 대책을 세우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싸움을 앞둔 무인이 옷을 갈아입고, 근육을 풀고, 관절을 만지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그가 봐도 한심한데, 우염비는 어떻게 보겠나.
야뇌슬은 그러거나 말거나 달밤에 체조하듯이 온 몸을 꼼꼼히 살폈다.
“임마, 내가 다 창피하다. 그만 해라.”
“뭐가 창피한데?”
“몰라서 묻냐! 너 지금 하는 짓이……”
마록타는 말을 잇다 말고 입을 쩍 벌렸다.
야뇌슬이 몸을 푸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백사장은 한풍에 얼어붙어서 바윗덩어리를 방불케 한다. 모래들이 딱딱하게 얼었다. 밟으면 아직도 파이기는 하지만 여름처럼 푹푹 들어가지는 않는다.
야뇌슬은 백사장을 뛰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몸을 푸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전력을 다해서 질주한다.
저쪽 끝까지 달려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서 치달려간다.
일다경도 안 되어서 야뇌슬은 전신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휴우!”
야뇌슬은 그제야 깊은 숨을 토해내며 멈춰 섰다.
“도대체 지금 뭐하는 짓이야?”
마록타는 정말 몰라서 물었다.
“수건.”
“뭐하는 짓이냐니까?”
마록타가 수건을 건네며 물었다.
야뇌슬은 옷을 벗고 있었다. 물에서 나올 때처럼 옷을 전부 벗어던지고 알몸이 되었다. 그리고 마른 수건으로 온 몸을 닦았다.
“시원하군.”
“그럴 거다. 내가 봐도 시원해 보인다.”
마록타가 새 옷을 건네주었다.
야뇌슬은 태연히 새 옷을 받아 입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부러진 반 토막 검을 허리에 찔러넣었다.
“다 된 거야?”
“다 됐어.”
야뇌슬이 언덕을 쳐다봤다. 잔잔한 눈길, 파도 한 점 일지 않은 바다처럼 고요한 눈빛, 또한 일말의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죽음의 눈빛으로 누이의 무덤에 앉아있는 사내를 쳐다봤다.
내기를 한다면 구 대 일 정도로 우염비가 앞선다.
야뇌슬에게 판돈을 거는 사람은 친인척이나 기적이 일어나서 고배당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일 게다.
아무리 고쳐서 생각해도 승산이 없다.
그렇다고 무인이 싸우겠다는데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떤 싸움은 매우 쉬워 보인다. 또 어떤 싸움은 죽음 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왕왕 생긴다.
싸움에는 변수가 많다.
허나 그것도 어느 정도다. 야뇌슬과 우염비처럼 차이가 현격하게 벌어지면 기적조차도 바랄 수 없다.
‘이십사 무동도 출관하지 못한 몸으로…… 무공 수련도 하지 않고 운기만 해서 뭘 어쩌겠다고……’
마록타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야뇌슬은 언덕을 올라갔다.
화살에 맞아 데굴데굴 굴러 떨어진 곳을 천천히 더듬어 올라갔다.
휘이잉!
바다바람에 거칠게 몰아쳤다.
황소도 날려버린다는 적암도의 바다바람에 맹위를 떨친다.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숨까지 막혀온다.
그는 무덤까지 걸어갔다.
누이의 무덤에는 풀이 꽤 자라있다.
한겨울이라서 긴 풀은 보이지 않지만 풀뿌리가 제법 깊게 박혀있다. 아마도 내년 여름이면 잡초 투성이가 될 것 같다.
“내려와.”
야뇌슬이 차게 말했다.
“후후후! 형한테 반말을 다하고…… 많이 컸다.”
“반말뿐이라고 생각하나?”
“호오! 그렇게 자신 있어?”
우염비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일, 이 년이 문제였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면 야뇌슬은 일이 년 동안 이십사 무동을 칠성출동했을 것이다. 그것만은 틀림없이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다시 일 년…… 야뇌슬이 실전경험을 할 시간이다.
그 정도의 시간만 주어졌다면 두 사람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을 게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야뇌슬에게는 그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십삼, 이십사 무동은 무너졌고, 그 안에 소장되었던 무공비급들은 모두 불타버렸다.
야뇌슬은 오제의 무공도 모두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무동 무공들은 완벽하지 않다. 오제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비중비의 무공을 수련해야 한다.
다른 방법도 있다.
비중비의 무공을 모를 때 택하는 방법인데, 바로 그가 이런 선택을 했다.
뼈를 깎는 각고(刻苦)의 노력!
아는 것을 초극상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야뇌슬은 어느 것도 하지 못했다.
야씨는 오성씨가 아니다. 자신처럼 비중비에는 접근도 하지 못하는 타성에 불과하다. 야씨가 오성과 더불어 귀한 계급을 이루고 있다지만 역시 오성과 같을 수는 없다.
도주의 무공이 부도주보다 약한 것은 당연하다. 전대 도주가 심성을 보지 않고 무공만 봤다면 반란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게다.
부도주는 반란을 용납할 만큼 문약한 사람이 아니니까.
우염비가 야뇌슬을 얕잡아보는 것은 당연했다.
아니, 그런 점들보다 우선하는 게 있다.
무인은 상대를 접하는 순간, 예기(銳氣)부터 감지한다.
내공이나 초식 같은 것은 겨뤄봐야 아는 것이고…… 어떤 종류의 공격을 펼칠 놈인지부터 살핀다. 아니, 그것도 틀린 말이다. 상대를 보기만 하면 나보다 강한 놈이다, 혹은 해볼 만한 놈이다 하는 판단이 선다.
우염비는 야뇌슬을 판단했다. 기껏해야 이삼 초면 꺼꾸러트릴 수 있겠다고.
“내려와라.”
야뇌슬이 두 번째로 말했다.
“꼬마…… 말만 하지 말고 내려오게 만들어야지? 왜? 네 누이도 좋아할 텐데. 네 누이…… 혼인도 하기 전에 애부터 가진 년이잖아. 내가 이렇게 앉아있으면 사내 냄새도 맡고, 또 눌러주니 좋고.”
스윽!
야뇌슬이 반 토막 난 검을 뽑았다.
적암도에는 병기들의 세상이라고 할 정도로 병기들이 많았다. 농기구보다 병기가 더 많았다. 수련용에서부터 실전용까지 용도도 다양했다.
그 많던 병기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거의 대부분 중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가져갔다. 소지할 수 없는 것들, 이미 날이 무뎌진 것들, 부러진 것들은 녹여서 쇠로 만들어 가져갔다.
중원에 들어서면 훨씬 많은 병기들이 필요할 게다.
마록타는 온 섬을 뒤진 끝에 간신히 반 토막 난 검을 찾아냈다. 그것도 가져올 때는 날이 빠지고, 녹까지 슬어서 병기라고 할 수조차 없었다.
마록타가 정성들여서 갈아냈다.
녹슨 부분을 벗겨내고 날도 새로 갈았다.
반 토막이지만 날이 제법 시퍼런 것은 오로지 마록타의 땀과 열성 덕분이다.
“하하하! 검도 구하지 못한 거냐? 내 거 빌려줄까?”
“공격하겠다. 거기서 그대로 있다가 죽던가, 반항하다가 죽던가. 우염비. 넌 오늘 죽는다.”
야뇌슬이 유부(幽府)의 호곡성(號哭聲)처럼 감정 없이 말했다.
얼굴도 침착했다. 나타날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우염비가 누이를 들먹이면서 마음을 격동시킬 때도, 검을 뽑고 마주 선 순간에도…… 그는 냉막했다.
스릉!
우염비가 검을 뽑았다.
야뇌슬의 모습에서 공격을 예상했다.
양쪽 모두 더 이상은 문답무용(問答無用), 오로지 검이 생사를 말해주리라.
우르르르…… 우르릉…… 우르르릉……
천중으로 추켜든 검에서 우렛소리가 울렸다.
만변(萬變)이 일어나 일검으로 모인다. 일검을 뻗어내면 만변이 펼쳐진다.
야뇌슬은 검을 중단(中段)으로 들어올렸다.
파르르르……!
검이 작은 진동을 일으킨다.
미세한 떨림이 검 전체에서 일어난다. 마치 벌새가 날갯짓을 하듯이, 몸과 손은 가만히 있는데 검만 떤다.
“뭐냐?”
우염비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물었다.
오제의 무공 중에 이런 기식(起式)은 없다.
안정, 고요, 일심(一心)…… 어떤 무공을 뒤져봐도 야뇌슬이 보여주는 것처럼 유동(流動), 미동(微動), 경련은 없다.
야뇌슬이 눈살을 가늘게 좁히며 말했다.
“적한테 비기를 묻는 바보도 있군.”
“건방 떨지 마라!”
“그게 이승에서의 네 마지막 말이길 빈다.”
“그렇게 죽기를 소원한다면! 고맙다! 겨울 동안 꼬박 갇혀있을 생각을 하니까 몸서리쳐졌는데!”
우르르릉! 꽈아앙!
천둥이 벼락을 불러왔다.
우염비는 무덤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전광천심을 터트렸다. 아니, 벼락 한 무더기를 쏟아냈다.
그의 검은 한 자루다. 그러나 검에서 쏟아져 나오는 뇌기(雷氣)는 수십 가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