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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30화 (3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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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30화]

第五章 개방과의 인연 (4)

말 발자국을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다.

말들은 해변에서 나와 단단하게 다져진 땅으로 올라섰다. 자갈과 돌로 야무지게 다져놔서 마차가 지나가도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그래도 추적은 쉽다.

해변에서 단단한 땅으로 올라설 때, 이미 나아갈 방향이 정해져 있다.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올라서기 때문이다. 일부러 반대 방향으로 올라선 후에 말머리를 돌릴 자가 어디 있는가.

마록타는 말이 나아간 방향을 살폈다.

아주 큰 길이다.

이 길로 쭉 따라가기만 하면 노로곤이 간 곳에 이를 것이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다.

걸레나 다름없는 허름한 옷, 그리고 봉두난발한 머리, 꼽추에 바싹 마른 몸.

누구 봐도 질색을 할 용모다.

사실 적암도 사람들은 그를 멀리 했다. 불구라서가 아니라 보기 싫다는 이유로. 혹여 식사 시간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벼락같이 화를 내곤 했다.

밥 맛 떨어진다.

꿈에 볼까봐 두렵다.

귀신은 뭐하는지 몰라. 저런 인간도 안 데려가고.

자괴감을 느끼게 만드는 소리라면 듣지 않은 소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은 중원에서도 반복된다.

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 흉악한 괴수다. 저들 말대로 사람 탈을 썼다고 볼 수 없다.

이래서 야복인가.

어둠 속에서만 활동하는 박쥐처럼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떠돌아야 하는 떠돌이인가.

스스슷!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귀영홀류(鬼影忽流)를 펼쳤다.

길을 따라서 걷다가 사람이 보이면 펼쳐도 되는데, 그러기 싫다. 사람들이 그를 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피한다. 저런 놈들과 어울려 살기 싫어서 자신이 고독을 택한다.

야복의 신법은 두 가지가 있다.

세상 밖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귀영홀류가 있고, 심부름을 잘 하기 위해 빠른 발도 준비한다. 쾌비주(快飛走)라는 신법이다.

이 두 신법 모두 야복에게만 전수된다.

이 세상에서 오직 그만 알고 있는 신법이다.

귀영홀류, 귀신의 그림자마저 멸(滅)해서 허공 속을 흐른다는 뜻이다.

염왕을 그림자처럼 따랐던 야복이 살수(殺手)들의 은신술(隱身術)과 동영(東瀛) 인자(忍者)의 인술(忍術)을 두루 섭렵한 끝에 만들어 냈다는 은영(隱影)의 정화(精華)다.

아! 눈치 챘나?

그렇다. 야복의 무공은 은형신술(隱形神術)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본업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살수청부가 들어온다면 이행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염왕이 지시한다면 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사람을 죽이라고 해도 죽여야 한다. 왜? 명령이니까.

그러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갖춰놓는다.

평생을 살면서 염왕이 야복에게 ‘부탁’이라는 말을 쓸 리는 없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때, 일생에 한 번 뿐이겠지만 염왕이 그런 말을 할 때는 정말 어려운 일을 수행해야 될 것이다.

한 번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평생을 가다듬는다.

스스스스스!

바람이 움직이는 듯…… 보이지 않는 흔들림이 일어났다.

노로곤은 사람을 베었다.

그의 병기인 화륜은 네 개의 칼날이 둥그런 원형에 붙어있는 모습이다.

사람 피를 머금으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마록타는 피냄새를 맡으면서 쫓아갔다. 간혹 길에 한두 방울씩 피가 떨어져 있기도 했다.

바싹 마른 흙이 나오고 말발굽이 찍혀있기도 한다.

‘잘 쫓아가고 있어.’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노로곤은 한적한 길을 지나서 성내(城內)로 들어섰다.

십여 필의 말이 성안으로 들어간 건 분명한데…… 자신은 쫓아갈 수 없다.

‘할 수 없지.’

쉬익!

귀영홀류가 펼쳐지면서 그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아니, 성벽과 흡사한 색이 되었다.

풀숲에서는 풀로, 사막에서는 사막으로, 바다에서는 물로…… 주변의 색과 동화되는 건 은형신술의 기본이다.

그는 성벽을 타넘었다.

이제 말발굽을 쫓는 건 불가능하다. 오가는 사람도 많아서 혈흔을 찾는다거나 피냄새를 쫓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성안에는 좁은 길도 많다. 큰 길도 여기저기로 마구 갈라진다.

노로곤의 종적을 찾을 길이 없다.

쉭! 딱!

허리에 검을 찬 무인은 느닷없이 날아온 일격이 뒤통수를 가격당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눈여겨 볼만한 것이 있었으면 주의했을 게다. 위험하다 싶은 사람이 있었어도 경계했다. 굳이 그런 느낌들이 없어도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즉시 걸음을 멈췄다.

아무리 보잘 것 없다고 해도…… 그래도 검을 패용한 무인이다.

그런 사람이 순박한 농군들이나 당하는 뒷통수 가격을 당하고 무너졌다.

잠시 후, 그가 정신이 차렸다. 하지만 손발의 자유는 이미 사라졌다.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지 않으면 죽는다.”

등 뒤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음성만 들린 게 아니다. 사내는 지독한 악취도 맡았다. 생선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오뉴월에 새우지 썪는 냄새 같기도 하다.

너무 역겨워서 코를 움켜쥘 정도다.

“뒤도 돌아보지 마. 내 얼굴을 보면 넌 죽어. 알겠냐? 키키! 무인이라는 새끼가 뒤통수나 얻어맞고…… 너 검은 뭐히러 차고 다니냐? 크크! 왜? 아니꼽냐?”

“……”

무인은 아무 소리도 못했다.

등 뒤로 진한 살기가 전해진다.

마치 금방이라도 날카로운 쇠붙이로 등을 찔러 버릴 것 같은 예감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등 뒤에 있는 자가 물어왔다.

“아침에 사냥 나갔다 온 새끼들 있지?”

“네?”

“새끼야, 내가 물었잖아. 앞으로 되묻지 마라. 나 피곤해지면 상당히 거칠어진다.”

“네.”

무인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일단 살기에서 눌려버렸다. 마음속에서 죽기 싫다는 생각이 치솟자 살기가 더욱 두려워졌다.

“아침 마실 나갔다 온 새끼들…… 누구누구야?”

“사(四) 주(主)님하고…… 사주님 제자들인데요.”

“제자?”

“네. 질풍대(疾風隊)라고…… 아주 거친 자들이죠.”

“사주라는 놈, 그 새끼 이름이 뭐야?”

“노로곤입니다.”

“나이는?”

“스물일곱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새끼가 사주라고?”

“그렇습니다.”

“노로곤…… 그 새끼가 사주든 나발이든 내가 알 거 없고…… 그 새끼 병기가 륜(輪)이지?”

“마, 맞습니다.”

“좋아. 지금부터 노로곤, 그 새끼에 대해서 읊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아는 대로 읊어. 마음에 들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흐흐흐!”

섬뜩한 죽음의 괴소가 은밀하게 흘러나왔다.

마록타는 개방 걸개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더럽다. 노로곤에 대해서 악의도 가지고 있다. 그들 중에 한 명이 원한을 가진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는 개방도라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생선 썩은 물을 옴 몸에 끼얹었다. 해변에서 맡았던 냄새들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느라고 나름대로 애 많이 썼다.

노로곤에 대해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놈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것처럼 나이까지 캐물었다. 그래야 개방 걸개들인 줄 알게다.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귀주성(貴州省), 광서성(廣西省), 광동성(廣東省), 복건성(福建省), 그리고 강서성(江西省) 일부까지.

도련(島聯)은 남해안 일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들에게 지난 일 년은 폭풍 같은 시기였다. 거칠 것 없이 몰아쳐서 남무림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저항하는 자는 가차 없이 벤다. 투항하는 자는 충실한 노복으로 삼는다.

살아서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죽음 앞에서는 의외로 약해지는 게 사람이다.

그들은 이십 명씩 짝을 이뤄 섬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도(島)!

이십 명이 섬 한 개다.

그렇게 열 개의 섬이 모여서 도련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

이십 명은 섬의 지배자이다. 그들 밑에는 천 명, 이천 명…… 수많은 노복들이 충성을 바친다.

남해안 일대가 모두 장악될 정도라면 그들의 성세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건 그냥 쳐들어가서 결전하지고 할 성질이 아닌데?’

그는 노로곤이 머무르고 있다는 저택을 주시했다.

노로곤은 이십 명으로 이루어진 창암도(蒼暗島)의 네 번째 주인인 사주다.

적암도에서 온 무인들은 주인이 되고, 중원에서 거둔 무인들은 수하가 된다.

당주(堂主)니, 향주(香主)니 하는 직책은 중원 무인들에게 준다.

적암도의 무인들은 일체 그런 명칭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주인이다. 주인 앞에 번호를 매겨서 네 번째 주인은 사주이고, 다섯 번째 주인은 오주다. 그렇게 이십주까지 간다.

이십주에게는 가족이 있다.

부모와 처자식이 적암도를 떠나왔다.

그들은 모두 상도(上島)라고 불린다. 권력을 틀어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또 존경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뜻도 된다.

이십주와 상도, 만인지상이다.

하지만 그들 위에 진짜 만인지상이 있다.

열 명의 도주를 수하로 부리는 자, 부도주! 아니, 지금은 부도주가 아니다. 련주(聯主)로 탈바꿈했다. 도련의 련주야말로 천외천, 만인지상이다.

노로곤이 소속된 창암도라는 명칭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암도……

적암도 인근에 창암도라는 섬은 없다.

있을 수가 없다. 창암은 적암도에서 병기고(兵器庫)를 관장하던 미영추(米映皺)의 아호(雅號)이다.

적암도에서 창암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오직 미영추뿐이었다.

창암도주, 그는 미영추다.

그들이 말하는 섬이란 사람으로 만들어진 인도(人島)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연맹이나, 바다 한 가운에 외롭게 서있는 섬처럼 자신의 영역 안에서는 독자적인 통치를 허락하는 체계다.

그러면 적암도 무인들은 어떤 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는가.

노로곤은 질풍대라는 무인집단을 거느리고 있다.

주인이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게, 혹은 취향에 따라서 중원 무인들을 거둔다. 많게는 이백여 명을 거느린 자도 있고, 수십 명에 그친 자도 있다.

무인 집단의 성격도 주인에 따라서 다르다.

주인과 수하의 관계가 있는가 하면 노로곤처럼 문하(門下)의 개념으로 집단을 꾸리기도 한다.

이들은 그런 부문에서는 완벽하게 자유가 보장된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혈첩(血帖)이 떨어지면 당장 달려가야 한다.

련주가 부른다. 오라고 한다.

이럴 때는 자신이 거둔 모든 수하를 거느리고 출동해야 한다.

이것만은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져도 반드시 지켜야할 절대적인 사항이다.

부도주는 남무림을 석권했다.

일 년 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에 중원에서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연맹을 만들었다.

마록타는 잠시 갈등했다.

노로곤이 거처하는 저택을 염탐해봐? 노로곤이 어떤 자들을 수하로 거뒀는지, 저택 경비는 어떤지 살펴볼까? 창암도에 주인이 이십 명이라는데, 저 저택에는 몇 명이나 있는지…… 아니면 노로곤과 그의 가족만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 많다.

스으읏!

그는 물러났다.

염왕은 노로곤을 추적하라고 했다. 그 이상의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그는 명령 받은 것 이상은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자신의 서툰 행동으로 인해서 염왕의 계획이 어긋날까봐 겁난다.

‘또 보자, 노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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