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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38화]
第六章 도검무안(刀劍無顔) (6)
이 말을 다시 바꿔서 말하면 제일 빠르지도 않고, 제일 강하지도 않다는 뜻이 된다.
신뢰삼검보다 빠른 검이 있을 수 있다. 그보다 강한 검도 있을 수 있다. 무리 상으로만 보면 신뢰삼검보다 점창파(點蒼派)의 사일검법(射日劒法)이 훨씬 빠르다.
그러나 무공이란 빠름이 최선은 아니다.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는 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단순한 빠름은 방어할 수 있다.
신뢰삼검은 단순한 빠름이 아니라서 강한 것이다. 빠름 속에 패력(覇力)이 깃들어 있고, 방어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혈우마검이란 마제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 시신들은 극단적인 빠름에 당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신뢰삼검이 아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한 손으로 턱을 만지면서, 맑은 눈에 광채를 번뜩이면서 생각을 거듭했다.
그녀가 생각에 잠기자 단황신개는 한쪽 구석에 주저앉아 신발을 털었다.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다. 흐름을 깨지 않는다.
한참동안 생각을 거듭하던 모용아가 느닷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이 자와 싸우면 이길 수 있으세요?”
“…… 뭐?”
“혼자서는 힘드실 것 같고…… 취화선개님과 연수(聯手)하면 잡을 수 있을까요?”
“저, 저, 저 계집이 어른을 놀려! 아까는 띄워주더니 이제는 마구 깎아 내리냐! 풋내기 한 명을 두고 어디 하늘같은 개방 장로들에게 연수를 하라고 해!”
“모든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겠어요.”
“어떻게?”
단황신개는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물었다.
이놈은 무력으로 제압할 수 없다. 그리고 설혹 제압했다고 해도 이만한 놈이 입을 열 리 없다. 놈에게서 적암도의 무공을 알아낸다는 계획은 포기해야 한다.
모용아가 말했다.
“이 자는 최소한 장문인 급이에요.”
“무공이? 그렇겠지.”
“개방 방주님, 무당파 장문인, 소림사 방장님……”
“그…… 렇게까지 높이 보는 거냐? 겨우 이놈들을 죽였다고?”
“이들을 죽였다고 해서 그런 게 아네요. 단신으로 창암도를 들이치고 있잖아요. 창암도에는 적암도 도귀 이십 명이 있는데, 그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요.”
“음!”
당금 무림에서 그럴만한 배짱을 지닌 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모용아의 판단이 맞다. 놈은 초극강의 고수다. 그것도 적암도 출신의 고수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적암도 출신!
적암도가 혈풍을 일으킨 후, 당연히 염왕오제에 대해서 조사했다.
그들이 누구와 싸웠고, 어떤 식으로 싸웠고, 어떻게 승부가 났는지 조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조사했다.
자료는 많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안 나왔다. 그래서 어절 수 없이 각 문파에 연락을 넣었다. 자파의 고수가 오제에게 당한 사실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누가 어떻게 당했는지까지도.
한 명, 두 명 자료를 보내왔다.
비사(秘事)라면서 세상에 내놓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씩 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제…… 그들이 싸웠던 무인들은 극강고수다.
오제 역시 그들과 싸울 때는 승부를 장담하지 못했다. 항상 긴장했고, 죽음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그들은 각기 백전백승이라는 신화를 남겼다.
무공이 엇비슷한, 때로는 더 강하다고 판단되는 무인들과 싸워서 모두 이겼다.
지금 그런 일이 중원 무림에서 일어나고 있다.
객관적인 평가로는 분명이 우월한데, 싸움을 하면 진다. 운이 안 따라줬다고 하기에는 그런 일이 너무 빈번히 일어난다.
도대체 오제의 무공에 특별한 뭐라도 있는 것인가?
적암도 출신의 고수가 도귀들은 친다는 데 의미가 크다.
“가요. 그 자의 무공이 어떤지 살펴봐야죠. 정말 그렇게 강하다면…… 호호호! 오늘 잘 하면 보물 하나 얻겠네요.”
모용아가 맑게 웃었다.
***
노도검문 검수들은 반검문 검수 여덟 명이 순식간에 몰살당했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사술이군!”
그들은 한 마디로 단정 지었다.
적암도의 무공으로도 반검문 검수들을 그토록 신속하게 쓰러트리지는 못한다. 적어도 한두 번 정도의 검격(劍擊)은 이루어진 후에야 무력화시킨다.
검도 부딪치지 않는 살상은 있을 수 없다.
반검문의 검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환상 같은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
뜻을 달리하는 적암도 고수.
사주들이 말해준 것은 그것밖에 없다.
한 마디로 너희들 나가서 죽어라 하는 소리와 똑같다. 너희들을 내던져서 놈의 무공을 살펴보겠다는 뜻이다.
“놈의 무공은 사주와 비슷한 정도겠지.”
“아니, 낫다고 봐야 해. 그렇지 않으면 사주들이 당장 나섰겠지. 우리를 내던지는 건 놈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살핀다는 건데, 그건 사주들도 걱정한다는 소리야.”
“어쨌든 검날 위에 사는 인생이니…… 우리가 죽어도 노도검문은 남으니까.”
그들 서른두 명은 검을 들었다.
그때, 반검문 고수 다섯 명이 나섰다.
“우리가 먼저 죽어주지. 우리가 죽는 모습을 보고 참조해. 가급적이면 너희 선에서 끝내라.”
“그래주면 고맙고.”
노도검문 검수들과 반검문 검수들은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들 선에서 끝날 것 같지가 안다. 반검문 검수 여덟 명이 순식간에 당했다면, 자신들 역시 그렇게 당할 공산이 크다.
그들은 길목을 가로막았다.
“아까 그놈들이야.”
마록타가 말했다.
약 반시진 전에 반검을 든 자들 여덟 명을 몰살시켰다.
앞을 막아선 자들은 그들과 닮았다. 검이 닮았고, 검식이 닯았다.
스윽!
야뇌슬은 검을 들어올렸다.
그의 검에는 붉은 피가 묻어있다. 처음에는 선홍빛 선혈이었겠지만, 지금은 검붉은 색으로 변해서 달라붙어있다. 일부는 이미 피딱지가 되기도 했다.
형제들의 피!
스읏! 스스스스!
그들은 재빨리 움직여서 야뇌슬을 포위했다. 그런데!
파앗!
그들이 포위망을 형성하기도 전에 야뇌슬이 신형을 쏘아냈다.
검초는 단순해 보인다. 검을 머리 위로 들어서 비스듬히 사선으로 내리치는데…… 평범하다. 속도도 빠르지 않고, 변화가 스며있는 것 같지도 않다. 설혹 변화가 가미되어 있다고 헤도 이 정도의 빠름이라면 얼마든지 받아칠 수 있다.
야뇌슬의 검을 보자마자 받아쳐야 한다는 생각이 후딱 스쳐갔다. 아니, 그 전에 이미 몸이 반응했다.
쒜엑!
반검을 든 사내가 몸을 화살처럼 쏘아냈다. 순간,
“뭐하는 거야!”
“안 돼!”
이상한 소리가 좌우에서 동시에 들렸다. 그리고,
서걱!
검이 목을 그으며 지나갔다.
야뇌슬은 전면에 있지 않았다. 자신이 쳐나간 곳에서 옆으로 일 보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사, 사술!’
그는 눈을 부릅뜬 채 절명했다.
슈악!
검이 배를 찔러온다.
‘이런 검으로 어떻게?’
신법으로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검이다. 옆으로 몸을 틀면서 환히 드러난 허점, 어깨를 후려쳤다.
피가 튈 것이다.
피가 튀었다. 그의 이마 한 가운데 검이 꽂혔다.
놈의 검은 배를 찔러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마를 노렸다. 한데 왜 배를 찔러오는 것으로 봤지?
‘믿을 수 없어! 사술이야!’
그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절명했다.
노도검문 검수 서른두 명은 반검문 검수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뭐지?”
“사술! 사술이닷! 환각을 이용하고 있어!”
“헛것을 본다는 소리야?”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죽음이 가당키나 해!”
“사술이라면…… 환각을 이용한다면…… 노도망절(怒濤網折)을 쓰자. 모두 다 쓸 필요는 없고…… 우리 열 명은 노도망절로 승부를 결행할 테니까 너희는 보고 있어.”
“노도망절로도 안 되면 할 게 없는데.”
“그게 안 되면 모두 개죽음이야. 되는지 안 되는지 지켜봤다가…… 몰라. 그 다음은 너희가 알아서 해.”
열 명이 검을 들었다.
노도망절은 어부들이 쳐놓은 그물을 거센 파도가 마구 찢어놓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창안된 합공법(合攻法)이다.
사람들은 ‘파도’하면 하연 포말만 생각한다.
거센 파도의 힘은 포말에 있지 않다. 포말은 노도의 부산물이다. 바다 물결을 이끌고 와서 후려치는 힘은 뒤에서 밀어주고, 옆에서 끌어당기는 동력(動力)에 있다.
척척척! 척척척척!
그들은 사열로 늘어섰다.
맨 앞에 한 명, 그 뒤에 두 명, 두 명 뒤에 세 명, 마지막으로 네 명이 섰다.
그들은 앞 사람의 등에 손을 얹었다.
두 번째 줄 두 명은 앞 사람의 어깨 날갯죽지 부근에 장심(掌心)을 댔다. 그리고 빈손으로 검을 잡았다. 왼쪽에 선 자는 왼손으로 검을 잡았고, 오른쪽에 선 자는 오른손으로 검을 쥐었다.
셋째 열도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운데에 있는 자는 검을 뽑지 않고 양손을 모두 얹었다는 점이다. 마지막 열에서는 두 명이 검을 뽑지 않고 등에 장심을 댔다.
“쓸어버린다.”
“걱정 마! 확실하게 쓸어버릴 테니까!”
맨 앞에 선 자가 이를 악물면서 이야기 했고, 뒤에 선 자가 말을 받아주었다.
노도망절은 희생을 요구한다.
전열과 이열은 거의 대부분 죽는다. 지금까지 노도망절을 펼쳐서 앞에 세 사람이 죽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가자!”
선두에 선 무인이 먼저 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