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검무안-46화 (46/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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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46화]

第七章 가슴에 칼을 (8)

그는 막아내지 않았다. 신법으로 피했다. 힘껏 내뺄 시간적인 여유는 없었다. 심등으로 볼 수 있다는 것과 몸을 움직여서 피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무영신법으로 간발의 차이만 끌어냈다.

화살이 등을 찢었다. 앞가슴도 찢었다. 허리 요대를 끊으면서 지나갔고, 바지 옆선도 길게 찢었다.

실로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는 그 정도의 시간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저들은 강하다. 아주 강하다. 오제의 무공을 칠 성 이상 터득했다는 것은 초절정고수가 되었다는 뜻이다.

왕포 혼자 나서지 않고 서너 명이 한꺼번에 움직였다면 당하는 사람은 자신이었을 게다.

그는 그런 점을 의식하고 재빨리 몸을 빼냈다.

‘조호이산(調虎移山). 호랑이가 산을 떠나게 만드는 것이 관건. 그 다음은…… 내가 유리하지.’

이 년, 이 년 만 잡자.

이들을 치고 련주를 죽이는 데까지.

두 사람은 텅 빈 창암도 전각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그래도 창암도 무인들을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주들이 빠져나간 공간은 무주공산이나 진배없다.

광동 무림은 중원 무림의 본토가 아니다. 중원 무림에서 광동 무림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정도로 미약하다.

물론 광동 무림에도 무시하지 못할 명가가 있기는 하다.

남해(南海) 해남도(海南島)에 해남파(海南派)가 있다.

아직까지는 적암도와 해남파 간에 충돌은 없다.

적암도가 해남파를 건드리지 않았고, 해남파는 중원 무림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 되었다.

그들이라면 모를까 광동 무림의 여타 무인들로는 무영신법을 알아낼 수 없다.

“여기야.”

마록타가 속삭였다.

두 사람은 왕포의 전각으로 모래에 물이 스며들듯 스르륵 녹아들었다.

第八章 비기 속출 (1)

“옷을 바꿔 입어!”

변복 지시가 떨어졌다.

개발 걸개들은 일시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멀뚱거렸다.

“아, 뭐하고 있어! 어서 옷을 바꿔 입지 못해!”

이번에는 보다 분명한 명령이 떨어졌다.

“벼, 변복이다!”

“변복이다, 변복이야!”

걸개들은 흥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어수선함이 극치를 이룬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개방 걸개가 되면 평생 좋은 옷 한 벌 입어보기다 힘들다. 창암도 고수들이 개방 걸개들을 사냥할 때도 누더기 옷을 고집한 문파다.

걸개들은 흥분해서 사방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에게 변변한 옷이 있을 리 없다. 변복을 하려면 그래도 꿰맨 구석은 없어야 하는데, 그런 옷이 어디 있겠나.

걸개들은 농가로, 산촌으로, 어촌으로…… 옷을 훔치러 갔다.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변복을 명령한 단황신개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클클클! 이미 늦었다. 모두 벼락 맞은 메뚜기처럼 튀어나갔어.”

취화선개가 술을 들이켜면서 말했다.

개방이라고 좋은 옷을 입지 않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개방’하면 유리걸식을 하는 개방도만 생각한다.

다른 개방도도 있다. 깨끗한 옷을 입고 노래나 춤 같은 기예(技藝)를 파는 개방도도 있다.

어떤 사람은 전자를 더러운 옷을 입는다고 해서 오의문(汚衣門)이라고 하고, 후자를 깨끗한 옷을 입는다고 해서 정의문(淨衣門)이라고 하지만 그들 간에 구분은 없다.

“연락은 없어요?”

모용아가 분타주에게 물었다.

“아직……”

“음! 죽었나?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왜 그놈 생사에 신경을 쓰는 거지?”

단황신개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그러게? 그놈이 죽던 말든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 도귀들을 상대해준 점은 좋아. 하지만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그놈이 자기 복수를 한 거고…… 우리가 신경 쓸 이유가 없네?”

아니다. 신경 쓸 이유가 충분히 있다.

그들은 무림 절정 고수다. 초극강 고수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찮은 자는 아니다.

그들의 눈에 야뇌슬과 왕포의 싸움은 싱거워보였다.

초절정고수들의 싸움이 단 일합에 결정되는 경우는 왕왕 있다.

이건 그런 차원이 아니다. 아예 이제 갓 검을 잡은 초심자들의 싸움 같았다. 솔직히 개방도 백의개 두 명을 싸움 시켜도 그 정도의 무위는 떨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창에서 날카로운 경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야뇌슬의 검에서도 살기 같은 것은 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승부가 갈렸다.

이 점이 두 노개를 자극했다.

적암도 무공의 한 단면이 그들 싸움 속에 녹아있다.

이 부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적암도를 상대할 수 없다. 그리고 야뇌슬은 그에게 호의적인, 아니 적대적이지 않은 유일한 적암도 무인이다.

어떻게든 그에게서 단서를 얻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이 개방 걸개에게 변복까지 시켰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런 말을 한 것은…… 모용아 때문이다.

모용아는 일다경마다 한 번씩 분타주를 닦달한다.

연락 없어요?

아직도 소식이……

죽었다는 말도 없죠?

그녀의 호기심은 책사(策士)로써의 한계를 넘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늙은 생강들이 이런 마음을 놓칠 리 있나. 그들은 능글거리면서 모용아를 놀렸다.

“애들이 오면 철수시키자고. 어차피 철수하는 데도 변복은 필요하니까.”

“그렇지? 강서를 뚫는 데는 아무래도 변복이 최고야. 나 개방도요 하고 선전할 필요는 없잖아. 클클!”

그러자 모용아가 무심히 말했다.

“삼십 년 동안 밀봉 보관된 모과주는 무슨 맛일까?”

“헉!”

취화선개가 눈을 부릅떴다.

“휴우! 안타깝네.”

“그, 그놈. 아직 잡힌 거 같지는 않더라.”

취화선개가 급히 말했다.

“그래요?”

“그럼! 지금 혜주가 보통 난리가 아냐. 아예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다니까. 사주들이 직접 나서서 온갖 곳을 뒤지고 다니는데…… 그 놈이 잡혔으면 그 난리를 치겠어?”

“그건 이미 알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애들이 변복하고 있잖냐. 그건 그렇고 그 모과주…… 꿀꺽! 뭐 어떻게 안 되겠냐?”

“호호호! 돌아가는 대로 한 병 내드릴 게요.”

“그, 그래주겠냐? 흐흐!”

취화선개가 입을 쩍 벌리고 입맛을 다셨다.

단황신개도 말을 하지 못하고 모용아의 눈치만 봤다.

모용 가문의 모과주는 술이 아니라 약으로 취급한다. 한 잔에 온갖 시름을 내려놓고, 석 잔이면 뼈와 살이 녹으며, 한 병이면 신선도 부럽지 않다고 한다.

모용아가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호호호!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오로지 그 사람의 생사에만 신경 써 주세요. 더 이상 절 놀리면서 모과주는 없어요. 호호호!”

혜주에서 걸개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대신 낯선 이방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개방 걸개들은 담당하고 있는 구역이 있다.

변복을 할 때, 이 구역은 완전히 솎아진다. 남과 북, 동과 서가 뒤죽박죽 섞인다.

그렇게 해야 걸개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동쪽 끝에 있던 사람이 서쪽 끝으로 가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그들은 다루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저잣거리에 앉아서 자판을 늘어놓았다. 객잔에 투숙하여 여장을 풀기도 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모든 모습들이 보인다.

그들은 두 눈과 두 귀를 활짝 열고 창암도를 주시했다.

***

왕포는 창암도 네 번째 사주다. 하지만 그의 전각에는 비밀이라고 할 만한 서신이나 장부들이 일체 없었다.

“아무 것도 없는데?”

마록타가 이제 어쩌냐는 듯이 야뇌슬을 쳐다보며 말했다.

야뇌슬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창암도로 잠입한 것은 도련의 조직망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싸우기 전에 적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가 창암도에 싸움을 건 것은 전면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창암도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겠지만, 그는 포전인옥(抛磚引玉)의 계(計)를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싸움은 나중에 한다. 우선은 적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도련의 인적 구성은 알고 있다. 하지만 섬 열 개가 무엇이고, 어느 섬에 어떤 사주들이 있고,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도련에 대한 것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알아야 한다. 코흘리개의 볼 위에 묻어있는 밥풀의 개수까지도 알면 좋다.

모든 게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사주와 직접 싸움을 벌이기까지 많은 죽음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작전이 주효해서 스무 명 조금 넘는 사람들이 죽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사주도 죽였다.

생각했던 대로 창암도에 잠입해서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면 이쯤에서 도련에 관한 비밀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어야 한다. 왕포 하면 적암도에서는 상당히 강한 무인이었는데, 그런 그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다.

‘철저한 비밀 통제……’

도련은 적암도 도민들로 구성된 조직체다.

이것은 너무 분명해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숨길 수도 없다. 또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항이다.

그런데 조직 운영은 점조직 형태를 띤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전혀 모른다. 자신과 연관된 사람이 전해주는 밀명 이외에는 모른다. 창암도라는 한 공에서 같이 밥을 먹고 숨을 쉬지만, 서로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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