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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63화 (63/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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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63화]

第十章 너! (5)

쒜엑! 쒜에엑! 쒜에에엑!

남산 일대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친다.

사방에서 불어온 바람이 야뇌슬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무인 한 명과 사주 한 명이 죽는 동안, 열일곱 개 마을에 퍼져있던 사주들이 바람처럼 모여들었다.

일부는 이미 마주하고 섰다. 일부는 아직도 움직이고 있다.

“야뇌슬.”

“정말로 야뇌슬이군. 창암도를 쳤다는 말은 들었지만. 훗! 역시 야뇌슬이야. 그 짧은 시간에 이토록 놀라운 무공을 수련했다니. 탁소민을 죽이는 무공이라.”

수라도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노심백(魯沈伯). 맞아, 노심백이었어. 당신 이름.”

“……!”

수라도주의 안색이 차갑게 굳었다.

그의 나이는 예순에 이른다.

적암도 사람들치고 그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런 점은 부도주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련주와 도주라는 신분차이로 갈라졌고, 그가 모시는 상관이 되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아직도 존중의 예를 잊지 않는다.

련주까지 그런 마당에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어린 것이 이름을 불러대?

야뇌슬이 검에 묻은 피를 흩뿌리며 말했다.

“노심백, 화륜을 꺼내. 겁나면 뒤로 물러나고.”

“훗! 우하하! 하하하하!”

수라도주는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무공만 놓고 볼 때, 그의 서열은 적암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오제의 무공에 달통했을 뿐만 아니라, 오제의 무공을 융합하여 자신만의 절학으로 재탄생시켰다.

그가 십교두가 되지 않은 것은 자존심 때문이다.

련주를 받들기는 한다. 하지만 받드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기왕이면 아주 중요한 부분을 맡고 싶다. 그의 휘하에 들어야 한다면, 장군 역할을 맡아야겠다. 근위병 역할은 못하겠다.

적암도 사람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열 명의 도주들 중에서 십교두보다 무공이 강한 사람을 꼽으라면, 몇 명 정도는 어렵지 않게 열거할 수 있다.

그들이 말을 주고받는 동안 열아홉 명의 사주가 모두 도착했다.

포위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활을 든 자는 세 명이다. 그들은 포위망 밖에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톡톡!

마록타가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는 모용아의 어깨를 두들겼다.

모용아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마록타는 고갯짓으로 가자는 시늉을 했다.

‘지금?’

모용아는 야뇌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눈으로 물었다.

야뇌슬이 포위망에 갇혀 있는데? 저 사람 저대로 놔두면 죽을 것 같은데……

마록타는 그녀의 눈짓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두 노화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뜻을 읽었다고 생각하자 즉시 신형을 쏘아냈다.

스스스스……

그는 수풀 속에 녹아들었다.

감시초소를 지키고 있던 자들 중 몇몇이 자리를 비웠다.

주의태만으로 자리를 비운 것 같지는 않다. 초소 세 개당 한 명씩, 일정한 방식으로 자리를 떴다.

‘초소 운영방식을 알고 있었어.’

겪으면 겪을수록 야뇌슬이 신비롭다.

어느 정도의 충격에 초소 무인들이 자리를 비우는지, 외인이 알 수 있는 방도는 없다. 그런 일은 내부 기밀사항이라서 간자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알지 못한다.

야뇌슬에게 간자가 있을 리 없다.

또한 그는 어젯밤에서야 초소를 봤다. 사전에 연구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이미 초소 운용방식을 알아냈다.

마록타는 빈 처소로 스며들었다.

모용아와 두 노화자도 재빨리 초소 안으로 들어섰다.

마록타는 움직이지 않았다.

재빨리 밖으로 나가서 산으로 치달려갈 줄 알았는데, 몸을 낮추고 대기한다.

‘또 뭘 기다리는 거지?’

“물러서라. 그래도 한 때는 적암도 제일의 기재라는 소리를 듣던 놈이 아니냐. 우염비, 왕린, 왕포, 탁소민. 넷이나 쓰러트린 놈이다.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지.”

노심백이 주위를 물렸다.

중원에 발을 디딘 이래, 사주 사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 암습에 걸려서 죽은 자가 절반 정도로 가장 많다.

그들 대부분이 초기에 죽었는데, 중원 무림의 특성을 잘 몰랐던 탓이다.

중원은 싸움과 비무를 철저히 구분한다.

비무를 할 때는 공명정대함을 따지지만 싸움으로 들어서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문파를 상대로 싸울 때 그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솔직히 사파와 정파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그렇게 함정을 파거나 암수를 쓴 자들은 전부 몰살시켰다.

사주 한 명의 죽음은 문파의 몰락으로 대가를 치르게 했다. 문주 일가는 삼족을 멸함으로서 적암도의 피가 얼마나 고귀한지 똑똑히 알게 해주었다.

다른 스무 명은 결전 중에 사망했다.

일부는 절진(絶陣)에 걸려서 죽었다.

오행검진(五行劍陣), 매화검진(梅花劍陣), 칠성진(七星陣)…… 온갖 진들이 튀어나왔고, 방심한 사주들의 몸통을 난자했다.

이들에게는 복수할 필요가 없다.

절진은 무공의 일부분이다. 뛰어난 절진으로 싸웠다는 건 정정당당하게 싸웠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방법 역시 공정하지는 않다. 다수가 소수를 핍박하는 것이 절진 아니던가. 하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다. 절진이란 다수가 소수를 상대하기도 하지만,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기도 한다.

사실 절진의 효능은 후자에 맞춰져 있다.

다섯 명이 서른 명, 백 명과 싸울 때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서 창안된 것이 절진이다.

절진은 맞상대로 끝내준다.

중원 무인들에게 격살당한 사주들이 있다.

이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무공 대 무공으로 겨뤄서 죽음을 당했다.

그 중 한 명이 세 명의 사주를 죽였다.

사천 당문의 문주인 독심탈존(毒心奪尊) 당효유(唐驍釉).

그는 독과 암기를 썼다.

이것 역시 정상적인 무공은 아니다. 하지만 독문(毒門)을 표방한 당문이기에 무공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인정한다. 그래서 독심탈존 당효유에게는 특명이 붙었다.

- 그를 죽여라. 도민의 복수를 하라. 하지만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결행하라.

도련은 절진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천당문처럼 독과 암기도 쓰지 않는다.

도련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치졸하면서 강력한 것은 연수(聯手)다. 두 명, 세 명이 조를 이뤄서 함께 상대하는 게 가장 강력하다.

사주 세 명을 죽인 당효유에게는 이런 방법조차도 금지되었다.

일 대 일의 승부로 격살하라. 도련의 무공이 사천당문을 누를 수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라.

이것이 사주 세 명을 죽인 자에 대한 예우다.

수라도주는 그런 점을 거론한 것이다.

야뇌슬을 포위했던 사주들의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포위망은 거둬들이지 않은 채 싸움을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사랑! 파라라라랑!

노심백이 화륜을 꺼내 빙글빙글 돌렸다.

그의 화륜 다루는 솜씨는 가히 일절(一絶)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노염백의 화륜은 사납다. 강렬하다. 창암도 사주 노로곤의 화륜은 거칠다. 난폭하다. 반면에 노심백의 화륜은 매우 부드럽다. 손끝에서 쇠로 만든 칼날이 돌아가고 있는데, 마치 종이 바람개비가 소리 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또 한 가지…… 노심백이 보이지 않는다.

실체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가 화륜을 돌리며 서있다. 하지만 물속에 비친 그림자를 보는 것 같다. 살과 뼈로 이루어진 사람이 아니라 텅 빈 허공을 보는 느낌이다.

현현무심공이 정점을 찍고 있다.

지금 그의 무공은 그 옛날 오제였던 현현화륜 노광도에 비해서도 가히 손색이 없을 것이다.

스읏!

노심백의 신형이 유령처럼 움직였다.

그는 화륜을 돌리고 있으면서도 쳐내지 않았다. 먼저 무영신법을 펼쳐서 가까이 다가섰다.

야뇌슬은 즉각 검을 쳐냈다.

쒜엑!

섬력쇄심이 노심백의 미간을 노리고 쏘아진다.

물론 허초(虛招)다. 노심백은 피할 것이다. 그러면 피하는 모습을 보고 실초를 쏘아낸다. 피하지 않는다면? 그럼 말할 것도 없다. 즉시 허초가 실초로 변환된다.

“후후!”

노심백이 옅은 웃음을 흘리면서 화륜 돌리고 있는 손을 쳐들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화륜을 방패삼아 내민다.

이건 상식 밖의 행동이다. 화륜은 손가락으로 돌린다. 빙글빙글 맹렬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방패 역할은 하지 못한다. 수직으로 받치는 힘이 없기 때문에 단번에 부셔진다.

‘피햇!’

왜 그랬을까? 마음에서 불쑥 어떤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검을 거두고 즉시 물러섰다. 순간,

쒜에에엑!

화륜이 불쑥 날아올랐다.

그의 얼굴 앞을 스쳐서 허공 높이 날아오른다.

검을 계속 찔러냈다면…… 그를 치기도 전에 얼굴이 두 쪽으로 갈라졌으리라.

“하하하! 좋군.”

수라도주가 웃으면서 화륜 하나를 더 꺼냈다.

파르르르릉!

다른 한손으로는 하늘로 솟구쳤던 화륜을 빨아들이듯 거머쥐었다.

톡톡!

마록타가 손끝으로 어깨를 친다.

이번에는 당장 그의 뜻을 알아챘다.

그녀가 뒤돌아보며 취화선개와 단황신개에게 눈짓을 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먼저 같으면 이것으로 움직일 준비가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번 더 수화(手話)를 했다.

손을 독수리 형태로 오므린 후, 허공을 가로 날았다.

‘쾌속 질주? 여기서? 사방에 눈들이 있는데…… 괜찮을까?’

당장 의문이 치밀었다.

그들이 처소로 잠입할 때와 지금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처소 안 무인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바깥은 조용하다.

야뇌슬이 소란을 피우는 입구 쪽은 긴장감이 넘치고, 움직임도 빠르다. 사람들도 많이 모여 있다. 하지만 그곳을 제외한 모든 곳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쾌속질주를 하면 당장 눈에 띈다.

마록타가 다시 한 번 수화를 했다.

‘쾌속 질주.’

변함없다. 처소를 벗어나는 즉시 전력을 다해서 질주한다. 물론 가는 방향은 남산이 되리라.

모용아와 두 노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록타는 세 사람의 의지를 확인한 후, 재빨리 움직였다.

쉬이이익!

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쾌속 질주했다.

신법이 완전히 다르다. 흔히 재빠른 사람에게 쏘아낸 화살 같다고 하는데, 그런 말 정도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빠르다.

“가요!”

모용아는 속삭이듯 말하며 신형을 쏘아냈다.

쒜엑! 쒜에엑!

그들은 바람처럼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파랑! 파랑! 파라랑!

화륜 두 개가 장난감처럼 허공을 맴돈다. 잠자리 두 마리가 수라도주의 몸 주위를 배회하는 것 같다.

파라라라랑!

이쪽 손에서 저쪽 손으로 옮겨간다. 몸을 한 바퀴 휘돈 다음 다시 손으로 돌아온다.

현현비격술 중에 무위무(無爲無)라고 일컫는 초식이다.

‘거의 최상이다.’

수라도주는 련주를 능가하지 못한다. 비교조차 하지 못한다. 적암도에서 부도주의 신위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주조차도 부도주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부도주를 노린다면, 수라도주 정도는 가볍게 상대해야 한다.

아니, 싸움에 가벼움이란 있을 수 없다. 어느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요건은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수라도주와 겨뤄서 무승부가 나거나 패한다면 련주와 겨룰 길은 요원해진다.

스읏!

그는 나무 부스러기를 한 움큼 꺼내 쥐었다.

노름방의 골패처럼 작게 잘라진 나무!

“정말 염왕인가……”

수라도주가 중얼거렸다.

적암도에 염왕의 비기는 남겨지지 않았다. 숱한 사람들이 그 작은 섬을 구석구석 뒤졌다. 수백 년의 세월동안 풀뿌리, 돌조각까지 샅샅이 뒤졌다.

염왕의 무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야뇌슬의 무공이 염왕의 무공인지는 확인을 더해봐야 한다. 그가 나뭇조각을 날린다고 해서 염왕의 진전을 이어받았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긴장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파라라라랑!

화륜 돌아가는 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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