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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88화 (88/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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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88화]

第十四章 잠입(潛入) (5)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 그때는 쉬어라.

미와빙은 사지에 힘을 풀고 푹 쉬었다.

노모보까지 앞 마차로 옮겨가게 했다. 그가 옆에 있으면 신경이 분산된다.

사람은 필요성이 있을 때, 행동을 같이 한다. 아무 필요도 없는 사람은 부르지 않는다. 옆에 두지 않는다. 같이 있자고 청을 해도 떨궈버린다.

자신이 시교혈랑대와 함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어느 경우, 어느 상황에서나 툭툭 튀어나오는 지략 때문이다.

지략이 없으면 노모보도 없다.

자신이 계획을 짜내지 못하면, 그 냉정한 사내는 언제든 떠나간다.

네 남자? 웃기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노모보의 마음속에는 독고금이 자리하고 있다. 누가 모를 줄 아는가? 그녀의 영상이 마음을 휘어잡고 있다. 그런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 자꾸 침상으로 파고드는 거다. ‘나는 네 남자’라는 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게다.

사내들의 얄팍한 심리.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노모보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다.

그도 그것을 안다. 알기에 자신만 보면 꼬리를 흔든다. 예뻐해 달라고 재롱을 부린다.

계획, 계략, 지모……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추여룡…… 추여룡을 밖으로 불러내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 방법이……’

목욕을 하고 싶다.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 너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푹 쉬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없다. 지금부터는 차 마시는 시간도 아껴가며 달려야 한다. 그래야 제 날짜에 맞춰서 돌아갈 수 있다.

“국주!”

마차 옆에서 말을 달리던 표국주가 창문 앞으로 왔다.

“소림사 경내 지도 좀 구해줘.”

“알겠습니다.”

표국주가 말을 달려 앞으로 나갔다.

밥도 마차에서 먹고, 잠도 마차에서 잔다. 말은 연결된 마방(馬房)에서 준비한다. 한 시진에 한 번씩 교대하는데, 여덟 필의 말을 교체하는 데만도 일다경이 소요된다.

그렇게 스물네 마리의 말이 교체된다.

어자석에 앉아있는 보표들이나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잠시 땅을 밟을 수 있는 시간이다.

미와빙은 그 시간에도 마차에서 나오지 않았다.

숭산 소림사 지도만 본다.

소림사 경내 건물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추여룡이 거주할 만한 곳을 찾는다.

그런데 없다.

국주가 구해온 게 전부라면, 이것이 소림사의 모든 것이라면…… 장타홀만 있어도 암살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림사의 건물들은 모두 멀찍이 뚝뚝 떨어져 있다. 건물 사이의 공간도 넓다.,

즉, 건물에서 나오면 그 즉시 몸이 드러난다.

암살당하기 딱 좋은 건물 배치다.

물론 화살을 삼백 보 이상 쏘아낼 수 있다는 전제가 붙지만 말이다.

그녀는 소림 방장의 입장에서 소림사를 운영해 봤다.

손님이 오면 어디에 묵게 할까? 손님이 중원 제일의 지자라고 하면 어느 방을 내줄까? 조용해야 할 것이다. 한적해야 할 것이다. 결례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손님에게 변괴가 생겨서도 안 된다. 그러니 소림 무승들이 경계하기 좋은 곳이어야 한다.

소림사에는 그런 곳이 없다.

소림사를 지나 산 깊이 들어가면 암자들이 나온다.

그곳은 조용하다. 한적하다. 추여룡 같은 지자가 머물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경계가 안 된다.

소림사는 외적인 경계에 치중하지 않는다. 경계를 서는 무승이 없다. 만물이 잠들 시간이면 모두가 잔다. 잠을 자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가 잠들게 되어 있다.

소림사는 인간 자체가 경계망이다.

자신은 자기가 지킨다. 그리고 불가의 성역을 침범할 사람이 없다는 믿음도 깔려있다.

추여룡이 왜 이런 곳에 있는 것일까? 설마 누가 자신을 암살할까 하고 태만한 것은 아닌지.

‘미치겠네. 도무지 정보가 없으니……“

모든 계략은 정보를 바탕으로 짜인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추여룡이 무엇 때문에 소림사에 몸을 의탁했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있다면 좀 더 쉽게 생각을 할 수 있을 게다. 차후 계획을 짜기도 용이할 게다.

또 사실 이런 정도의 정보는 시간만 있다면 얼마든지 거머쥘 수 있는 것들이다.

시간도 없고, 인원도 없다.

‘추여룡…… 추여룡…… 추여룡에 대해서 알아야 해! 그 전에는 아무 계획도 세울 수 없어.“

미와빙은 요악한 웃음을 지었다.

특별하게 계획같은 것을 짜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숭산에 도착해서 취해야 할 행동 계획이 차곡차곡 수립되어 가고 있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저기 보이는 저 산이 숭산입니다.”

표국주가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얼추 짐작하기에 삼십 리 정도 남은 것 같다.

날짜는 딱 나흘 걸렸다.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거리를 달려왔다.

“한적한 곳에.”표국주는 ‘한적한 곳에’라는 말의 의미를 안다. 나흘 동안 치달려 오면서 그 동안의 말뜻은 알아듣게 되었다.

석 대의 마차가 인적 없는 곳에 세워졌다.

표국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과 같은 경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시교혈랑대가 약속을 깨고 살검을 휘두를 수 있다.

살인멸구(殺人滅口), 입을 봉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그래도 마차를 세웠다.

모두가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 가족들이 강남으로 이주했다. 도련의 보호를 받고 있다. 사실은 도련의 인질이지만…… 자신들만 죽으면 가족은 안전하다.

미와빙이 마차에서 내리면서 기지개를 쭉 폈다.

노모보도 내리고, 탁태자, 미루극 등 시교혈랑대가 속속 내렸다.

그들은 나흘 동안의 마차 생활이 피곤했는지 허리부터 다독인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 굴신운동도 한다.

미와빙이 표국주에게 말했다.

“조금 더 수고해줘.”

“아, 네. 무슨……?”

“이 길로 마차를 몰고 소림사로 가.”

“네?”

“가서 이실직고해.”

“아니, 저 그건……”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대로 말해. 그럼 보복을 하지 않을 거야. 표국주는 어쩔 수 없었잖아? 검을 목에 대고 협박하는데 말 안 들을 수 있어?”

“네, 네. 하지만……”

“가족들은 염려 마. 강남, 강북 경계선이야 무인들에게나 있지 일반인들에게도 있는 건 아니잖아? 가족은 무사할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시키는 대로 해.”

“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표국주가 연신 허리를 굽혔다.

그는 미와빙이 자신을 생각해서 활로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이실직고하면 시교혈랑대는 독안에 든 쥐가 된다.

당장 강북 무인들이 출동할 것이다. 도주는 힘들다. 아주 길고 힘든 싸움을 하게 된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 그럼 저희는 이만!”

표국주가 두 손 모아 포권지례를 취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팔두마차가 힘차게 달려간다.

저들의 여정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소림사에 들렸다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려면 앞으로도 십여 일은 더 마차를 끌어야 한다.

그렇다. 십여 일에 걸쳐서 와야 할 거리를 나흘 만에 왔다.

“원래 계획에 있던 거야?”

노모보가 멀어져 가는 마차를 보면서 말했다.

표국주에게 소림사로 가서 사실대로 말하라고 할 때, 놀라는 표정이라니.

미와빙은 그 표정을 생각하면서 피식 웃었다.

“아니.”

“그럼 왜?”

“추여룡이 모를 것 같아? 종이품관이 마차를 타고 하북을 질주하고 있어. 그런 보고가 안 들어갔을 것 같아? 관원의 마차니까 만일을 대비해서 수색하지 않았을 뿐이야.”

“그럼 우릴 지켜보았겠군.”

“지금도.”

“그래? 후후! 우릴 지켜보는 놈들이 있다 이거지. 헌데 놀랍군. 난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노모보가 진기를 운기했다.

츠츠츠츳!

그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맹수의 눈과 귀가 암암리에 주변을 훑어나간다.

“나도 어디 있는지는 몰라. 나 같으면 당연히 뒤를 붙였을 테니까. 찾았어?”

“찾았어.”

“생포해줘.”

“생포…… 알아낼 게 있나?”

“고문은 누가 제일 잘 하지?”

“노염백이지 뭐. 고문은 기술로 하는 게 아냐. 독심으로 하는 거지.”

노모보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상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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