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도검무안 98화]
第十六章 일어서는 자 (2)
그녀가 한낱 거지와 아침부터 담소를 나눌 이유가 있는가? 없다. 그가 개방 원로이기 때문에 만나주는 것이다. 자신의 권력 밖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이것을 그녀라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그녀의 권력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폭군이 된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것이 그녀에게는 아주 당연하다.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명령을 받들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몇 명이 죽을 수도 있다.
이번에 도련에 침투하면서 절정무인들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죽었듯이…… 그런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런 게 당연하다.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소용되는 사람이라면 모조리 끌어다 쓴다. 그들의 생명이나 존엄성 같은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부림을 받는 사람이니 부려져야 한다.
이런 생각은 뜯어고치기 힘들다.
그녀가 말했다.
“방주께서 뭐라고 하시나요?”
“엥! 그건 무슨 말인가?”
“요즘 개방도가 부쩍 오가더군요. 사결(四結)이 직접 오는 것도 봤는데, 방주게 친서를 받으신 거죠?”
“허!”
“저도 알만한 것은 알아요.”
“허어! 누가 모른다고 했나.”
취화선개는 얼버무렸다.
방주의 엄명은 이행할 수 없다. 이 여자가 움직이는 걸 막을 방도가 없다.
“할 말이 있기는 했지. 하지만 자네를 보는 순간, 말이 쏙 들어가 버렸어.”
“무슨 말인데요? 괜찮아요. 해보세요.”
“돈 좀 빌려주게. 술값이 떨어져서…… 히히!”
취화선개는 모용아를 찾았다.
독고금이 시교혈랑대에 꽂혀있다. 시선이 오직 그곳만 쳐다보고 있다. 시교혈랑대를 잡고자 하는 마음이 오히려 그들을 놓칠 수도 있다. 모용아는 이런 점들을 헤아릴 게다.
독고금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다. 헌데……
그녀는 출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 가려고?”
“소림사요.”
“소림사? 왜?”
“아무래도 정식으로 군사가 될까 봐요. 그렇지 않고는 힘들 것 같아요. 개방이나 하오문, 기타…… 모든 문파에서 접수하는 정보들을 알아야겠어요.”
“그건 왜?”
“지금은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는데…… 아무래도 도련이 시비를 걸 것 같아서요. 아마도 그렇게 되면 팽행한 균형이 단숨에 깨질 것 같아요.”
모용아의 표정은 심각했다.
취화선개는 하늘에서 복덩이가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런 일이라면 독고금도 데려가는 게 좋지 않아? 같이 가자고 하면 갈 것 같은데.”
“그럴까요?”
“그렇지.”
취화선개를 활짝 웃었다.
머리 좋다는 두 여자가 자신의 꾐에 넘어간 것 같아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
소림사로 가는 길은 순탄했다.
단황신개와 취화선개가 길 안내를 한다. 개방 장로 두 사람이 직접 마차를 타고 같이 동행한다.
그들 앞을 가로막을 사람은 없다.
강북 무림에서 개방 장로의 권위는 지고무상하다.
그들과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다.
하남성(河南省) 여주(汝州).
여수(汝水)를 건너자마자 일단의 검수들이 다가와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취했다.
“화산파(華山派) 육매검(六梅劍)입니다.”
“그래? 흐흐흐!”
단황신개가 안광을 빛내며 여섯 명의 검수를 쏘아봤다.
이들은 도복(道服)을 입고 있지 않다. 등에 검을 매고 있는데, 검수(劍穗)가 없다.
화산파 문인들은 별호에 매(梅) 자(字)를 함부로 넣을 수 없다.
소림사의 십팔관문(十八關門)처럼 화산구곡(華山九谷)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허면 그들에게 장문인이 직접 화산파의 문양이 음각된 매검(梅劍)을 건네준다.
육매검이란 여섯 명의 매검이라는 뜻이다.
그들에게 별호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 백 마디 말보다도 매검이라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
육매검이라는 말에 취화선개도 그들을 봤다.
눈은 고요하고 어깨는 축 늘어져 있다. 온 몸이 방송(放鬆) 상태다. 인위적으로 일으킨 방송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방송이다. 지금 당장 기습을 당해도 흐트러지지 않을 차분함이다.
“화산에 영재가 많다는 소리는 들었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설마 우리를 기다린 건 아닐 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차를 준비해 놨습니다. 저의 마차로 갈아타시죠.”
육매검이 정중하게 말했다.
너희들이 왜? 누가 보냈는가?
목구멍까지 치민 말이다. 하지만 멀리 서있는 마차를 보는 순간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다.
비취빛 대리석으로 만든 마차!
추여룡이 타던 마차가 아니던가.
이들은 소림사에서 왔다. 무림 명숙들이 보내서 왔다. 매검 여섯 명이 겨우 견마잡이가 되려고 왔다.
개방 장로 두 사람을 위해서 이런 마차를 보낼 리는 없고…… 무림이 모용아와 독고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아니할 수 없다.
“흐흐흐! 살다보니 매검의 호위를 받을 때가 다 있군.”
단황신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눈에는 후기지수를 쳐다보는 따뜻함이 담겨있다. 비록 문파는 다르지만 뛰어난 후배를 대하는 마음은 같을 수밖에 없다. 사랑스럽고,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선배님들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여주부(汝州府)와 하남부(河南府)의 경계로 들어섰다.
양 부를 가리키는 표석(標石)이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해준다.
그곳에 말을 탄 세 명의 도인이 있었다.
그들은 마차가 다가오자 말에서 내려 한 손을 가슴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무당파(武當派) 청허(淸虛)입니다.”
“청감(淸鑒)이라고 합니다.“
“청운(淸澐)입니다.”
도복을 입은 세 명의 도인이 정중한 예를 갖췄다.
“너희도…… 소림에서 왔냐?”
단황신개가 눈을 좁히며 말했다.
중원무림의 정식으로 결합된 상태가 아니다. 각대문파 장문인들이 소림사에 모여서 공동으로 발의(發意)하고 있다.
군사는 한 명인데, 수장은 십여 명이나 되는 셈이다.
수장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수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군사가 계획을 내면 동의해주는 절차를 취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계획안 그대로 통과된다.
실질적으로 군사에게 전권을 맡기되, 통제와 감시 역할만 담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무당파 장문인이 보냈냐고 묻지 않고 소림사에서 왔냐고 물은 것이다.
청허도인이 허리를 숙인 채 말했다.
“군사께서 당하셨습니다. 만일이라는 것은 모르는 것, 미천한 힘이라도 보탤까 해서 왔습니다.”
“미천해? 너희가? 이놈들아, 겸손도 지나치면 교만으로 보이는겨.”
“하하! 그렇습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저놈 능구렁이처럼 받아치는 것 좀 봐라. 끌끌!”
단황신개가 기분 좋게 웃었다.
무당파의 청허, 청감, 청운 도인은 일인암자(一人庵子) 생활을 십 년 이상씩 해낸 도인들이다.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홀로 십 년을 보내왔다.
무당파 문도들도 만나지 않고, 장문인도 만나지 않고…… 일절 모든 사람과 단절한 채 말을 잊고 살아왔다.
무당 장문인이 그런 사람들까지 보내왔다.
보나마나 이들은 오기 싫었을 것이다. 일인암자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을 게다.
그래도 왔다. 자신들의 수련보다 무림의 안위가 소중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흘리지 않아도 될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했으리라.
이들은 아주 큰 결심을 하고 무림으로 들어섰다.
어쩌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탈속(脫俗)의 꿈을 접고 무림에 발을 디뎠다.
고맙고, 또 고맙다.
단황신개의 음성 속에는 그런 고마움 잔뜩 묻어났다.
세 도인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모른 척 했다.
“저희가 뒤를 맡겠습니다. 편히 가십시오.”
도인들은 말에 오르더니 마차 뒤로 돌아갔다.
육매검과 세 도인 사이에 반가운 눈길이 오고 갔다. 가벼운 목례도 주고받았다.
“축하해.”
독고금이 흰 이를 활짝 드러내며 말했다.
“아뇨, 제가 축하드려요. 군사님.”
모영아도 방긋 웃었다.
그녀들이 소림사로 향하고 있다는 말이 온 천하에 퍼졌다.
그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안다. 굳이 비밀로 할 사항도 아니고…… 추여룡의 비취 마차는 워낙 유명한지라 멀리서 잠깐만 봐도 알 수 있다.
개방 장로 두 사람, 그리고 두 여인.
그들이 어디에서 움직여서 어디로 가는지는 움직이는 동선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무림 고수들이 그들을 마중나왔다.
화산파 육매검이 왔을 때는 단순한 마중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무당파 삼청도인들까지 나섰다. 추여룡을 대신할 무림 군사로 확정했다는 말과 다름없다.
무림 명숙들이 이토록 재빨리 군사를 임명한 적은 없다.
중원 무림의 안위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략이 뛰어나다는 사람을 시험해 보고 또 시험해 본다. 추여룡은 너무 압도적인 사람이라서 선택이 쉬웠지만…… 사실 그를 선택하는 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견을 내놓았다.
각 문파에서 추천하는 사람, 세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 그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야 무림 군사가 임명된다.
그만큼 군사라는 직위는 대단하다. 수 많은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에 선택하는데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림 명숙들은 앳된 풋내기를 서슴없이 선택했다. 그것도 사내가 아닌 여인, 경륜도 마뜩치 않은 새내기 무인에게 중책을 떠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