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도검무안 114화]
第十八章 슬픈 해후(邂逅) (5)
그는 장타홀을 쳐다봤다.
‘뭐해? 빨리 안 쏴?’
그의 시선 속에 재촉이 담겼다.
장타홀은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세상일에 관심도 없고, 바위에서 튀겨지는 화살더미도 모르겠고…… 눈을 감고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는다.
눈을 감고 본다. 거리를 잰다.
스읏! 타악!
활이 허공으로 들려진다 싶더니 검게 변한 오른 손이 화살 한 대를 탁 튀겨냈다.
쒜에에엑!
화살이 허공 높이 솟구쳤다.
상대를 향해 날아가는 게 하나다. 하늘을 꿰뚫어 버릴 듯이, 천신의 엉덩이를 맞추겠다는 듯이 하늘로 곧게 뻗어 올라간다.
“맞게 쏜 건가?”
곡문권이 중얼거렸다.
물론 맞게 쏘았다. 장타홀의 궁술은 적암도 제일이다. 지금까지 활을 쏴서 맞추지 못한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혀 엉뚱한 곳을 향해 쏠 때면 정말 과녁을 맞추기나 할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잠시 후,
쒜에엑!
하늘에서 마치 번개가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커어억!”
멀리…… 이십 장인지, 삼십 장인지 모를 곳에서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렸다.
화살 한 대에 한 명!
스읏!
장타홀이 묵묵히 활에 화살을 걸었다. 그리고 곡문권을 쳐다본다.
“또?”
“할 수 있는 데까지.”
“저놈들이 또 속을까.”
“두어 번 정도는 더 속을 거야.”
“속는 게 아니라 봐주는 거겠지. 그 다음에는 여지없이 벌질을 만들 거고.”
곡문권이 허공을 손가락질 했다.
맞는 말이다. 그들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전후좌우 사방이 바위로 꽉 막혔다. 딱 한 군데, 허공만 환하게 뻥 뚫렸다. 하늘까지 막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허공에서 화살이 쏟아지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첫 화살에 목숨을 잃는 것이다. 여기저기 팔 다리 같은 곳에 푹푹 찔리다가 결국 죽게 된다면 너무 아프지 않나.
그런데 저들은 왜 허공으로 화살을 쏘지 않지? 흑조탄궁술을 보기 위해서 쏘지 않는다.
저 자들은 궁술 문파다. 활의 문파다. 활을 주특기로 삼는 문파다. 그런 문파에서 그 유명한 흑조탄궁술을 구경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저들은 기다리고 있다.
자, 흑조탄궁술을 써봐라. 너희 마음껏 써라. 어디, 얼마나 뛰어난 궁술인지 살펴보마.
저들은 장타홀의 흑조탄궁술을 지켜보고 있다. 그가 활을 날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희생은 생각하지 않는다.
운이 나빠서 한두 명 죽을 수는 있겠지만, 철저하게 방비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희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헌데 죽는 사람이 나왔다.
앞으로 한 명, 두 명…… 화살을 쏠 때마자 죽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때는 생각이 바뀔 것이다. 그때는 생각할 것도 없이 무조건 살수를 쓸 게다.
“자, 간다!”
곡문권이 말을 하면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순간
쉐에에엑! 쒜에에에엑!
이번에도 어김없이 화살이 날아왔다.
장타홀처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화살이 아니다. 옆에서 옆으로, 일직선으로 쏘아대는 화살이다. 확실히 저들은 아직 자신들을 죽일 생각이 없다.
장타홀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어렸다.
“후후! 방패를 들었군.”
“방패?”
곡문권은 귀신을 본 듯한 얼굴로 장타홀을 쳐다봤다.
자신도 귀를 기울여서 들어봤지만 화살 날리는 소리밖에 듣지 못했다. 쏘는 소리가 아니다. 날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하물며 방패 같은 것을 들어 올리는 소리는 더더욱 감지하지 못했다.
장타홀이 활을 들어올렸다.
스읏!
검게, 아주 검게 변해서 먹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손이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탁! 쒜에에엑!
드디어 화살이 허공으로 쏘아졌다.
곡문권은 혀를 내둘렀다.
장타홀의 궁술을 많이 봤다. 같이 자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본 무공이다.
이 화살은 바위를 꿰뚫는다. 해표가 되었던 고래가 되었든 단숨에 관통시켜 버린다. 방패나 철갑도 꿰뚫는다. 어떤 것으로 육신을 보호해도 결국은 뚫린다.
방패를 들었다고? 저들도 당할 게다.
쒜에에에엑!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화살 한대가 번개처럼 번쩍 거리면서 떨어졌다.
처음에는 미약한 소리, 허나 점점 온 세상을 진동시키는 파공음!
허공을 찢는 소리!
“후후후!”
곡문권은 웃었다. 저 화살…… 그가 익히 보아오던 화살이다. 장타홀이 자랑하는 흑조탄궁술의 정화다.
타악!
“컥!”
지극히 짧은 단발마가 울렸다.
비명을 지른 자는 두꺼운 방패로 하늘을 가렸으리라. 화살이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 지도 모르다. 하지만 설마 방패가 뚫리랴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화살이 지척에 이르렀을 때는 정말로 천둥이 몰아치는 것 같은 소리를 듣는다.
그는 그때에서야 뭔가 잘못 되었는다는 것을 감지한다.
위험!
죽음의 공포가 밀려온다. 아니, 죽음까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크게 다치겠구나 하는 생각만 한다.
피해야 하나? 피할 시간이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미 너무 늦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화살을 피할 수 없다. 그만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화살은 방패 위로 떨어진다.
방패를 뚫고 내려와 그 밑에 숨은 자를 꿰뚫는다.
아주 순식간이다. 몸에 틀어박히는 것이 아니다. 꿰뚫어 버린다. 관통시켜 버린다.
몸을 뚫고 나간 화살이 땅에 박혀 있을 게다.
꼬리 끝에 달린 하얀 깃털이 피로 핏물을 머금고 요사하게 흔들거릴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소름이 쫙 끼친다.
더 이상 상대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이 그랬다. 이런 활에 맞으면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타홀과 싸울 때는 거리를 주면 안 되다. 이건 철칙이다. 적암도 사람들은 모두가 다 안다. 일시탈백 장설리의 후인과 싸울 때는 절대로 거리를 주면 안 되다. 일족일도(一足一刀)의 거리에서 싸워야지 활의 거리에서 싸우면 당한다.
저 놈들은 이제야 그런 기본을 알았을 게다.
“크크큭!”
곡문권은 기분이 좋아서 웃었다.
자신들은 죽겠지만 그래도 적암도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준 것 같아서 만족한다.
“이리로 화살이 날아오면 몇 대나 막을 수 있어?”
장타홀이 물었다.
곡문권이 언월도를 꽉 쥐며 말했다.
“글쎄? 한 이십여 시? 삼십여 시? 그 이상은 무리야.”
“흠! 겨우 두어 명인가.”
장타홀이 다시 활에 시위를 걸었다.
곡문권이 화살을 막아내는 동안 그가 날릴 수 있는 화살의 수는 겨우 두어 대박에 안 된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졌다가 끝날 싸움이다.
자신들은 죽을 것이고, 저들은 두어 명의 희생자를 낼 게다.
그는 많은 화살을 가졌다. 열 명, 스무 명을 죽일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다 쓰지 못하고 죽는다.
이것이 시교혈랑대의 최후인가.
“흑조탄궁술…… 대단하군.”
“아까워.”
그들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화살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것은 진기의 힘이다. 하지만 방향이 틀어져서 내려올 때는 진기의 힘이 소멸된다. 그때부터는 중력의 힘이 영향력을 행사한다.
떨어져 내리는 화살, 그 속에는 어떠한 진기도 내포되어 있지 않다.
헌데 흑조탄궁술은 다르다.
떨어져 내릴 때도 진기의 힘이 깃들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기로 조절한다. 화살을 올렸다가 방향을 바꿔서 떨어트릴 때까지 온전하게 진기가 깃들어 있다.
바위를 뚫을 수 있는 힘, 방패를 관통하는 힘이 거기서 나온다.
대부분의 궁문에서 쏘아대는 화살은 방패에 가로막힌다. 방패를 뚫을 수 있는 화살은 얼마 없다. 거기에 거리까지 멀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거리가 삼십 장이다.
이만한 거리에서 방패를 뚫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정녕 놀라운 일이다.
궁술을 알기에 상대의 궁술이 더욱 돋보인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앗! 하고 놀라고 말면 그만이지만,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경악스럽다.
그래도 이젠 끝낼 때가 되었다.
벌써 문도가 두 명이나 살상되었다. 죽지 않아도 될 자가 흑조탄궁술을 보겠다는 열망 때문에 죽었다.
궁천문주가 말했다.
“끝내라.”
“넷!”
그들은 특별히 제조된 강전을 꺼내들었다.
그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화살에 진기를 싣지 못한다. 그래서 중력을 더 키우기 위해 묵직한 강전을 쓴다. 밑으로 떨어질수록 더욱 빨라지고, 강해지도록 특별히 고안된 강전이다.
이 강전이면 흑조탄궁술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장타홀은 평범함 화살을 쓰고, 자신들은 특별히 고안된 강전을 쓰지만 효과는 동일하다.
그렇다. 저쪽은 무공을 발전시켰고, 자신들은 활을 발전시켰다.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 없다.
양쪽 문파가 싸운다면 공멸이 있을 뿐이다.
스으읏!
화살이 하늘을 향했다.
***
저벅! 저벅! 저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검을 빼서 축 늘어트리고, 마치 넋 잃은 사람처럼 무턱대고 걸어온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사람들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분명히 넋이 빠졌다.
이대로 곧장 걸어오면 활을 뜬 궁수들과 부딪친다.
천천히 걸어오기 때문에 당장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을 향해서 거침없이, 그것도 검을 뽑은 상태로 걸어오는 걸 봐서는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들은 일단 화살을 쏘지 못했다.
“뭐야?”
궁수들이 새로 나타난 자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