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도검무안 126화]
第二十章 부화(孵化)를 위해 (5)
그는 진기를 일으키지 않고 가슴만 본다.
파아앗!
심등이 환한 빛을 뿌린다.
그 불빛만 본다.
심등의 도움을 받고자 하지 않는다. 심등을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눈앞에서 불빛이 피어나니까 무심히 본다. 심등이 흔들리지 않고 곧게 솟구치는 모습을 본다.
그는 무공수련중이다.
저자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곳에서, 무인이 폐관 수련하듯이 이들의 소리로 장막을 두르고 아주 깊은 무공의 묘리를 깨달아가는 중이다.
상관이 없는 것에 상관하지 말라.
“에휴! 이놈의 개미새끼들!”
불평 섞인 음성이 새벽 공기를 가른다.
건너편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는 인상 좋은 중년인이 하는 말이다.
저자거리는 그의 입에서 열린다.
그가 제일 처음으로 시장을 발을 들여놓는다. 그가 제일 부지런하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제일 먼저 나와서 문을 연다. 새벽을 연다.
‘시작인가.’
그는 오늘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많은 유혹들이 마음을 잡아당길지. 심등을 흔들어 놓을지.
무공을 수련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냥 누워만 있다. 앉아만 있다. 두 발 쭉 뻗고 태양볕만 쬔다. 이게 무슨 무공 수련인가.
저 모습은 무공수련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걸 뭐하러.’
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큰돈을 주니 그림을 그린다.
시장거리 거지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림에 담는다.
누워있는 모습, 앉아있는 모습, 저자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배회하는 모습,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서 흙도 털지 않은 채 입에 넣는 모습……
모든 모습을 그린다.
이상하게도 저런 거지를 주시하는 사람이 많다.
개방이 주시한다. 하오문이 주시한다.
그의 모습 속에서 어떤 무공의 요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관심을 보인다.
그도 그럴 수밖에. 그는 야뇌술이다.
그가 하는 일이 무공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깊게 지켜보면 무공수련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떠한 진기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침부터 밤까지 진기 비슷한 것도 흐르지 않는다.
그는 그저 앉아있을 뿐이다.
그런 모습들을 일일이 그린다.
야뇌슬의 하루 일과를 그림으로 정리하면 몇 장 되지 않는다. 최대한 많이 늘려봐야 대여섯 장이면 하루가 소개된다.
그는 그림들을 둘둘 말아서 작은 죽통 속에 넣었다.
“전해 들이시게.”
“고생했소.”
죽통을 받은 자가 소중하게 품에 품고 문을 나섰다.
“그것참…… 저런 그림을 열 냥씩이나 주고 사는 사람이 있다니.”
화공은 문을 닫을 생각이었다.
하루 일과가 끝났다.
그림을 죽통에 넣어서 난생 처음 보는 사람, 바다와 해를 그리는 사람에게 건네주면 그의 일과도 끝난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일 같지도 않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뭔가 큰일을 한다 싶었는데, 지금은 이런 하찮은 일에 자신의 솜씨를 허비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마저 밀려온다.
그런데, 오늘은 문을 닫지 못했다.
“그 그림…… 나도 그려줘.”
아름답게 생긴 여인이 화방을 나서려는 그의 가슴을 밀치며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영업이 끝났습……”
순간, 여인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
그가 감히 맞받을 수 없는 날카로움! 아니, 살기다. 번뜩이는 살기가 토해진다.
‘무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 예, 예. 그, 그려드립죠.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는 오늘 그린 그림을 다시 한 번 그렸다.
“이게 저 자의 하루 일과인가?”
“네, 네.”
“이 그림은 어디로 보내는 건데?”
“……”
화공은 대답하지 못했다. 갑자기 입에 침이 마르고 갈증이 치민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호호호! 됐어. 말하기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돼. 도련인 거 알고 있으니까.”
“헉! 아…… 네, 네. 감사……”
화공은 뭐가 감사한지는 몰라도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열흘에 한 번씩 올게. 저자의 모든 것을 그려놔. 도련에 보고하는 그대로.”
“아, 알았습니다.”
화공이 식은땀을 훔치며 말했다.
중원 땅에 있는 사람이, 중원 무림의 구성을 그려서 도련에게 넘긴다면…… 아마도 몰매맞아 죽을 것이다. 하지만 여인의 모습을 보면 자신을 죽이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여인, 미와빙은 야뇌슬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 또 뭘 하는 거야.’
***
“염왕의 일심불광이군요.”
빈세릉이 말했다.
“음!”
도련주는 신음했다.
일심불광은 수련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수련방법이 수십 가지인 무공이 있다면 믿을 수 있는가. 사실이 그렇다. 소리를 통해서 수련할 수도 있고, 눈늘 통해서 수련할 수도 있다.
일심불광은 내면의 무공이다.
진기로 이루어지는 무공이 아니다. 가슴의 무공이다.
이런 무공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옆에서 불광이 피어나도 모른다.
도련주나 빈세릉도 일심불광을 알지 못한다.
가슴의 무공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지, 어떤 형태로 표현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야뇌슬이 일심불광을 수련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정확하게 알겠다.
“음!”
도련주 노갹충은 신음을 흘리면서 야뇌슬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들을 면밀히 살폈다.
폐인이 그려져 있다. 용모를 알아볼 수 없는 거지가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은 아주 신성하다.
처음 그림은 분명히 거지였다. 하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청정함이 담겨져 있다.
그림은 화공이 그린다.
그는 야뇌슬의 하루 일과를 지켜보고, 그 중에 특이하다 싶은 행동을 붓으로 놀린다.
화공은 자신이 무엇을 그리는지 모른다. 야뇌슬을 보고 그대로 그린다. 그런데 야뇌슬을 보는 마음이 점점 변하고 있다. 화공은 자신의 마음이 변하는 줄도 모른다. 그는 그저 보는 그대로 그린다. 변하는 것은 그림이다.
변화하는 야뇌슬의 모습이 그림에 담겨진다.
처음에는 거지였다. 폐인이었다. 그래서 그림도 그런 느낌밖에 전하지 않는다.
나중에도 거지를 본다. 페인을 본다. 그림도 거지가 그려진다. 하지만 나중에 그린 그림에는 맑음이 내포된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청정함이 묻어난다.
화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야뇌슬에게서 청정함을 보고 있다.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런 느낌도 갖지 않을 터이지만, 야뇌슬이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무공을 모르는 화공은 자신의 본 것을 고스란히 담는다.
무공을 아는 사람은 화공의 그림만 보고도 야뇌슬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야뇌슬의 몸에 서광이 감돌고 있다.
이래서 일심불광이라고 한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부처의 몸에 불광이 어리듯이 환한 휘광이 번져 오른다고 한다.
염왕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염왕을 따르는 종복이, 야복이 그런 말을 했다. 그 말이 오제의 귀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염왕의 무공은 일심불광이 되었다.
야뇌슬의 일심불광이 제대로 깨어나고 있다.
무공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염왕의 무공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이것이…… 일심불광……”
노갹충이 그림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의 눈이, 눈빛이 신묘하게 가라앉았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심유하다.
“죽일 수 있으면 죽여야 합니다. 더 크면 기회가 없습니다.”
“누가 죽이러 갈 텐가. 죽여야 한다면 누굴 보내야 하는가. 빈세릉, 생각나는 이름이 있으면 아무나 말해봐라.”
“……”
빈세릉은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 누가 야뇌슬을 죽일 수 있는가.
일심불광이 피어날 때, 그의 곁으로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살기를 뿜으면 환히 드러난다. 악기를 품으면 즉시 감지된다. 일심불광은 세상의 사기를 읽는다.
나쁜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서는 자, 십 장 밖에서 마음을 들킨다.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다고 해서 그를 쉽게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련주와 정면승부를 벌였던 놈!
일심불광을 터득하고 있는 놈!
그를 제거하려면 도련으로 끌고 와야 한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도련의 고수들이 총력을 기울여서 들이쳐야 한다. 그러면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
그는 점점 강해져간다.
“일심불광이 또 앞을 가로막는군. 후후후! 그놈의 일심불광. 어쩌면 말이야. 그때 놈을 죽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 되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놈을 죽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내 팔 하나, 다리 하나를내놓는 한이 있어도 그때 끝장을 냈어야 해.”
도련주가 고래를 흔들면서 말했다.
빈세릉은 침묵했다.
그런 후회는 그도 갖는다.
야뇌슬이 도련으로 잠입했을 때, 그때 그를 죽였어야 한다. 그렇게 살려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죽을힘을 다해서 찾았어야 한다. 도련주의 그림자들이 다 죽더라도, 도주들이 몰살당하는 한이 있어도 그때 죽였어야 한다.
지금은 그의 힘이 더 커졌다.
실제로 야뇌슬의 효과는 직접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가 있는 한, 중원 무림을 도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미파를 치고, 사천당문을 친다고 해도 한때의 승리뿐이다. 야뇌슬이 검을 들고 들어서면 순식간에 빼앗긴다.
야뇌슬은 단신으로도 그들을 칠 수 있다.
도련이 공들여서 힘들게 빼앗은 땅을 순식간에 빼앗아간다.
야뇌슬을 상대할 수 없는 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일심불광을 깨트려야 한다. 염왕의 무공을 깨트려야 한다.
“방법을 생각해 봐. 이대로는 힘들잖아?”
“일단…… 전 섬에 연락해서 전선을 고착시키겠습니다. 더 이상의 도발은 무의미합니다.”
“그래.”
“당분간은 내실만 다지는 것으로……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오래는 못 기다려.”
“알겠습니다.”
빈세릉이 허리를 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