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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139화 (13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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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139화]

第二十二章 마을 사람들을 향해서 (5)

그에게서는 날카로움이 풍기지 않는다. 강인함도 엿보이지 않는다. 안광도 부드럽다. 말도 거칠지 않다. 조용조용해서 속삭이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무인이 그러기는 쉽지 않다. 겉으로 겸손한 무인은 많지만, 강인함까지 숨기기는 어렵다. 그들은 부드럽지만 강인하다. 날카로움이 줄기줄기 뻗쳐 나온다.

야뇌슬은 외면과 내면이 모두 부드럽다.

강인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직 부드러운 모습만 보인다.

평범하다. 그저 부드럽다. 무공을 배운 적이 없어보인다. 생전 글만 읽은 서생 같다. 서생들 중에서도 싸움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샌님의 면모가 풍긴다.

사천여호나 명하진인이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게 당연하다.

야뇌슬은 허리까지 숙였다.

“오늘은 정말 피곤해서…… 이만 무례를 범해야겠습니다.”

야뇌슬은 마부가 안내해 준 조용한 객잔에 여장을 풀었다.

원래는 사천성에서 가장 화려한 객전을 구해놓았는데, 야뇌슬이 조용한 곳을 택했다.

허름하지만 사람 눈길이 닿지 않는다. 아니, 사람 눈길이 닿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의 마차가 객잔에 머무는 순간부터, 그곳은 사천 제일의 명소로 탈바꿈했다.

도련 련주와 맞상대한 사람이 왔다.

시교혈랑대 중에 두 사람을 거뜬하게 해치워버린 무인이 왔다. 그가 도련을 밀어내기 위해서 직접 왔다.

그 사실 만으로도 그는 주목의 대상이다.

“술, 차?”

마록타가 말했다.

길을 오는 동안 변한 것은 야뇌슬 뿐만이 아니다. 마록타도 많이 변했다.

그는 무림에 관한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것은 염왕이 할 일이다. 주제넘게 시종이 입에 담을 성질이 아니다.

시종은 시종의 역할만 충실히 한다.

야뇌슬은 이제 누구의 조언을 받을 단계를 넘어섰다.

긴가민가 의심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길을 오는 동안에 일심불광을 여러 번 봤다. 야뇌슬이 운기를 할 때마다 미간 한 가운데서 화려한 불빛이 피어올랐다.

염왕의 시종만이 볼 수 있는 일심불광이다.

야뇌슬의 일심불광이 정점에 이르렀다.

이것이 정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허나 그의 느낌상 이것이 정점일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후부터 그는 무림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어떤 자가 기분 나쁘게 시비를 걸어온다? 예를 들어서 명하진인처럼 막무가내로 무리한 청을 해온다?

예전의 마록타라면 인상부터 찌푸렸을 게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하던 시종의 입장에서 묵묵히 지켜보기만 한다.

야뇌슬이 말했다.

“차.”

“잠시만 기다려. 금방 준비할게.”

마록타가 밖으로 쪼르르 나갔다.

야뇌슬은 창문을 통해서 객잔 밖을 쳐다봤다.

얼핏 봐도 수십 명은 될 듯한 무인들이 이곳저곳에 숨어서 지켜본다.

도인도 많고, 당문도로 보이는 자들도 눈에 들어온다.

저들은 자신을 감시하는 게 아니다. 혹여 무공수련이라도 할까봐, 어떤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한 수 배울 생각으로, 또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서 모여들었다.

‘오늘밤 떠나야겠어. 이곳에 오래 머물렀다가는 귀찮은 일만 일어나겠어.’

모용아의 계획은 이루어졌다.

그가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에 도련의 눈길이 자신에게 집중되었다.

지금쯤 그녀는 동쪽 끝에서 그녀의 계획을 추진하고 있을 게다.

이 정도면 됐다. 이제는 정말로 도련과의 싸움이 남았다.

‘오늘 밤……’

***

삶과 죽음은 하늘의 조화!

죽은 사람은 안타깝지만 산 사람은 계속 살아나가야 한다. 한 자리에 멈춰있으면 안 된다. 가급적이면 계속, 할 수 있다면 죽을힘을 다해서 전진해야 한다.

그들은 야뇌슬을 봤다.

“엄청나게 강해졌군!”

노염백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비록 멀리서 지켜보는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야뇌슬의 무위를 짐작하기에는 어렵지 않다.

그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풍겨낸다.

“염왕이 됐어.”

미와빙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염왕…… 후후! 그럼 우리에게는 노씨, 탁씨, 미씨가 있어. 최소한 삼제는 가능해.”

탁태자가 말했다.

“호호호! 꿈이 너무 야무지시네. 자기가 무슨 옛날 오제라도 되는 줄 아나봐?”

“그렇게 말할 것까지는 없잖아. 예를 들어서 그렇다는 말이지.”

이미 야뇌슬은 자신들의 상대를 벗어났다.

인정하기 싫지만 분명한 사실인 만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확인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실마저도 부인할 만큼 멍청한 무인들이 아니다. 사실을 직시하는 현명함보다는 자존심을 내세울 만큼 미련하지도 않다.

야뇌슬은 확실히 자신들을 앞서나간다.

그는 단지 산택을 한다. 호위 한 명 옆에 두지 않고 편안한 복장으로 한 대의 여유를 즐긴다.

그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치고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적암도 최고 기재는 노모보가 아니라 야뇌슬이었다.

“어떻게 할 거야?”

미외빙이 물었다.

“……”

노모보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꾹 다물고 저녁 산책 중인 야뇌슬을 노려보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해. 우리 모두 죽어줄 용기는 있어. 앞날도 캄캄한데 그냥 콱 죽어버릴까?”

노모보가 한참 만에 말했다.

“넌…… 사람 마음을 비트는데 일가견이 있어.”

“생각할 것도 없는데 고심하니까 그렇잖아.”

“생각할 것도 없다……”

“말해줘?”

노모보는 고개를 저었다.

야뇌슬을 두고 행동을 해야 한다. 나아가든 물러서든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나아가면 죽는다. 물러서면 창피하다.

죽던가, 자존심을 구기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외에 다른 방안은 없다.

나아가서 죽는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들이 야뇌슬에게 죽었다고 해서 안타까워할 사람도 없으려니와 그들의 용기를 칭송해 줄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물러선다는 것도 답답하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처럼 후일을 기약할 수만 있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후일이라는 것이 없다.

도련에서 그들은 외톨박이다.

애초, 도련주는 야뇌슬을 죽이라고 명했다.

그를 죽이고 시신을 가져와라!

도련주의 명령은 간단했고, 단호했다.

그 명령을 따르지 못했다. 별 것 없는 놈이니 죽었으려니 하는 생각만 했다.

그 실수가 커다란 장애로 솟구치고 있다.

지금까지는 겨우 몇 가지 일을 방해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자신의 수족을 잘라버린 원한이 있지만, 사실 도련 입장에서 그 정도는 죽음은 죽음도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진다.

야뇌슬은 도련을 무너트리는 한 축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가 사천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서쪽 끝에서부터 도련을 무너트리겠다는 뜻이지 않나. 중원 무림 편에 서서 도련을 공격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도련에서도 그의 행적을 파악하고 있으니 적절한 대책을 세워놓았겠지만……

이런 일은 처음부터 일어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자신이 적암도에서 야뇌슬을 확실하게 죽이기만 했어도 염왕의 후인이 등장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야뇌슬을 막지 못한다.

자신과 탁태자, 미루극, 노염백…… 거기에 미와빙까지 힘을 합쳐도 야뇌슬 한 명을 이길 자신이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사실이 되었다.

그는 야뇌슬의 검을 잊지 못한다.

그 검을 꺾으려면 미와빙의 음도를 완벽하게 수련해내는 방법밖에 없다. 그 전에 나서는 것은 개죽음에 불과하다. 또 급하게 나설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면서 말했다.

“저놈의 무공을 봐야겠어. 우리보다 몇 길 위라는 건 알지만…… 얼마나 위인지, 염왕의 진신무공이 어떤 것인지……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그래? 그럼 가.”

“가자고?”

“저놈 무공을 정 보고 싶다면 가서 싸워야지 여기서 뭐해. 이렇게 지켜만 보면 저놈 무공을 알 수 있어?”

“……”

노모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만 가. 백날 지켜봐야 소용없어.”

미와빙은 노모보의 마음을 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물러서지 못하는 사내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는 지금 차라리 전격적으로 부딪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게다.

우염비와 왕린의 죽음을 한 동안 잊고 살았다.

그들도 야뇌슬에게 당했다. 하지만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서 ‘죽었구나’하는 생각만 했다.

곡문권과 장타홀은 눈앞에서 죽었다.

그들의 죽음이 우염비와 왕린의 죽음까지 상기시킨다.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지금 나서면 안 된다는 점을 안다. 이제는 무공차이가 너무 현격하게 벌어졌다. 그는 음도를 흡수하지 못한 상태인데, 놈은 염왕의 진전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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