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도검무안 150화]
第二十四章 가소(可笑) (3)
야뇌슬의 아버지를 죽였다. 어머니를 죽였다. 그의 누이를 죽였고, 그마저 죽이려고 했다.
해변가에서 죽은 사람들은 차지하고. 이미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렸다. 이런 마당에 관계회복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옛날을 떠올렸다.
“참 좋은 시절도 있었다.”
암혼도주가 한 말이다.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죽은 사람들의 명예라도 지켜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가.”
“야망이 있어서 너희를 죽였다. 이게 좋습니다. 그 야망의 색깔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후회하시면 안 됩니다. 또 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후회하지도 않으셨잖습니까?”
“그렇지. 내가 실수했군. 후후후!”
암혼도주가 쓴 웃음을 흘렸다.
생각해보니 그들에게는 후회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칼을 뽑았다. 피를 봤다. 그러며 야망이라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줄곧 싸워왔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 길을 가는 것이 그래도 죽은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될 게다.
“좋다. 우린 야망이 있다. 지금 우린 아주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하하! 봐라! 적암도 그 좁은 섬에서 나온 사람들이 남무림을 장악했다. 봐라!”
“봤습니다.”
“이것이 오제의 힘이다.”
스릉!
야뇌슬이 검을 뽑았다.
백랑도에서처럼 양손에 하나씩 쌍검을 뽑아들었다.
오제의 무공 중에 쌍검을 쓰는 무공은 없다.
야뇌슬의 무공이 오제의 무공에 근원을 둔다면 상대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쌍검을 들어서는 안 되다.
그는 오제의 무공을 벗어났다.
염왕의 무공을 수련했다더니 정말 그런 것인가.
“시작해도 좋으냐?”
“그런 말씀도 접어두십시오. 우리에게는 그런 것을 물을 관계도, 정리도 없습니다.”
“하하!그렇구나. 쏴랏!”
쒝! 쒝! 쒜엑! 쉑!
도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살이 허공을 찢어냈다.
소리는 먼 곳에서 들렸다. 하지만 화살 네 자루는 어느새 야뇌슬을 꿰뚫었다.
퍽퍽퍽퍽!
일시에 화살이 관통당한다.. 그렇게 보였다.
야뇌슬은 움직이지 못했다. 제자리에 선 채로 날아오는 화살을 고스란히 맞았다. 헌데,
퍽퍽퍽퍽!
화살들이 그를 뚫고 지나가 석담에 꽂혔다.
부르르르!
화살 깃털이 심하게 흔들린다. 화살에 실린 진기의 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천력이 실린 화살!
“엇!”
“저, 저! 환시대붕!”
“아냐, 대붕이 일어나지 않았어. 환시, 환시만 일어났어!”
야뇌슬은 십이묘환법 제육초 환시대붕을 유효적절하게 사용했다. 대붕은 일으키지 않고 환시만 일으켰다. 그 때문에 화살이 허상(虛像)을 꿰뚫었는데도 그들의 눈에는 실상이 꿰뚫린 것처럼 보였다.
야뇌슬의 환시가 그들에게 먹혔다.
이 말은…… 야뇌슬이 십이묘한법을 쓸 경우, 대책 없이 죽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허상을 알아낼 방도가 없다.
지금 서있는 야뇌슬은 실상인가, 허상인가. 그가 허상이라면 실상은 어디 있는가. 바로 옆에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자신들 속에 섞여들지는 않았나?
남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비웃겠지만…… 십이묘환법의 무서움이 이런데 있다.
무공 격차가 현저하게 벌어질 경우, 환법은 무슨 일이든 가능하게 만든다.
야뇌슬이 더욱 두려운 것은 십이묘환법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오제의 무공을 모두 알고 있다. 적암도 이십사 무동을 출동한 사람이라면 개략적인 부분은 모두 안다고 봐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무공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들의 예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쒜엑!
등골이 섬뜩해지는 검음이 터져나왔다. 그것도 바로 옆에서 귀청을 울렸다.
“헛!”
“헉!”
그들은 모두들 깜짝 놀라서 급히 몸을 퉁겨냈다.
한두 사람이 움직인 것이 아니다. 열아홉 명 중에 거의 십여 명이 움직였다. 그들 모두가 바로 옆에서 울리는 파공음을 들었다. 자신이 공격당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퍼억!
“커억!”
파육음이 들리고, 비명이 터졌다.
검이 구중미천공의 묘리를 담고 천왕구참도의 후손인 미천우의 가슴을 꿰뚫었다.
“이, 이럴 수가!”
미천우는 눈을 부릅떴다.
“천왕구참도, 그리고 구중미천공. 이만하면 천왕구도의 무공을 제대로 습득한 게 맞습니까?”
미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아주 잘……”
그는 쓰러졌다. 그리고 그와 담소를 나누듯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던 야뇌슬의 모습이 팟! 꺼졌다.
촤라라랑!
화륜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헉!”
이번에도 헛바람을 내지른 무인이 있다. 하지만 먼저 경험이 있어서인지 거의 대부분 제 자리를 고수했다.
야뇌슬은 환시에 이어서 환청까지 흘려낸다. 바로 곁에서 검음이 들릴 리 없다. 자신들을 환벽하게 환상 속으로, 그의 영역으로 밀어 넣었다.
그들은 진기를 끌어올렸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환상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마음을 차분하게, 세성을 또렷하게……
뇌전자창의 십이묘환법이 이토록 놀라운 절기였나?
미천우는 웃으면서 죽었다. 야뇌슬이 전개한 천왕구참도가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 활짝 웃었다.
무공의 주인에게 무공의 성취를 묻는다. 그리고 주인은 아주 잘 수련했다고 만족해한다.
이런 빌어먹을 일이!
촤라라랑! 퍽퍽퍽퍽!
화륜 소리가 지척에서 들린다. 방금 전에도 들렸는데 또 들린다. 방금 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거센 격타음이 일어난다.
“뭣!”
그들은 재빨리 사방을 둘러보았고, 화륜을 머리가 갈라져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은 네 사람을 찾아냈다.
“아!”
암혼도주가 검을 축 늘어트렸다.
지금 야뇌슬은 현현화륜의 무영신법, 뇌전자창의 무풍비류를 고루 섞어서 쓴다. .거기에 신뢰추앙월이라는 혈우마검의 속도까지 가미시켰다.
그를 상대할 수 없다.
그는 이미 세 가지 이상의 신법을 하나로 합일시켰다.
“야뇌슬, 제안을 하겠다.”
스으으읏!
야뇌슬이 땅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마치 빳빳한 비석이 솟구쳐 올라오듯이 그의 모습이 생명 잃은 목석의 모습으로 올라섰다.
이것 역시 환상이다.
“원래 우리가 모인 것은 합공을 취할 생각이었다. 비겁함을 인정한다. 그리고 네 상대가 안 되는 것도 인정한다. 자! 우리를 죽여라! 다만 단 한 번의 겨룸은 인정해다오. 정정당당하게, 네가 원하는 방법으로. 단 한 번만 병기를 쓰게 해다오!”
스스슷!
환청이 사라졌다. 환각도 사라졌다.
야뇌슬이 서있다. 그가 서있던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서있다.
그가 말했다.
“받아들입니다.”
한 명씩, 한 명씩 죽어간다.
궁수가 활을 들 때, 야뇌슬에게도 활이 주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부동명심공을 일으킨다. 흑조탄궁술을 사용하여 활을 당긴다.
탁! 탁!
한 대가 날고, 맞은편에서도 한 대가 쏘아졌다.
일시탈백 장설리에게는 신묘한 신법이 있다. 바로 부동묘보다. 서있는 자세 그대로 약간의 흔들림만으로 상대의 병기나 암기를 피해내는 현묘한 신법이다.
파르르!
야뇌슬이 신형이 바람도 없는데 떨렸다.
맞은편에 있던 궁수도 같은 신법을 펼쳤다.
흑조탄궁술을 피해내는 유일한 방법은 부동묘보밖에 없다. 신형을 움직이려다가는 화살에 맞는다. 몸이 아무리 빨라도 화살보다 빠르지는 못하다.
퍼억!
화살이 상대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가 나가떨어진다. 화살이 꿰뚫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려 이 장이나 붕 떠서 날아간다.
‘다 보고 있어! 다 볼 거야!’
아이는 시뻘게진 눈으로 현장을 지켜봤다.
아비, 노풍기가 화륜에 맞아죽었다. 머리가 반으로 갈려서 바닥에 뒹굴고 있다.
머리에서 누런 뇌수가 쏟아져 나온다. 피가 흐른다.
그는 아비를 쳐다보지 않았다. 야뇌슬만 봤다. 아니,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암혼도주의 말마따나 싸움의 느낌만 감지했다.
‘다 볼 거야!’
***
깊은 침묵이 흘렀다.
야뇌슬은 이미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적암도 무인 이십여 명을 단신으로 눕힐 수 있는 사람은 중원 전체를 통털어봐도 찾을 수 없다.
절대 무신!
그들은 비로소 오제가 염왕에게 무릎 꿇은 과거를 이해했다.
오제의 무공이 강하다는 것은 충분히 입증했다. 많은 무인들이 적수가 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도련이 남무림에서 진격을 멈춘 것은 자체 정비가 필요해서다. 결코 무림의 힘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언제든 밀고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잠시 멈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발목이 잡혔다.
“네 의견을 듣고 싶은데?”
탁좌량이 미와빙을 보면서 말했다.
“내 의견이 중요한가?”
미와빙은 노모보를 쳐다봤다.
언제부터인가 노모보는 말을 잃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는 날이 잦아졌다.
지금도 그렇다. 그는 하늘만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극심한 충격이 회오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