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도검무안 152화]
第二十四章 가소(可笑) (5)
“난 무재는 아냐. 본가의 무공도 간신히 수련했어. 그러니 다른 무공 같은 건 쳐다보지도 못해. 하지만 생각은 할 줄 알아. 소위 무재라는 사람들보다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더 냉철하게 생각할 줄 알아.. 분석하고 사고하고…… 이게 내 일이야.”
“그래?”
“그래. 오제의 무공을 합일시킨다는 거…… 호호호! 수많은 사람이 생각했던 거고, 나도 생각했어. 그런데 소위 무재라는 사람들은 그런 걸 생각하지 않더라.”
“와빙!”
그는 뜨거운 눈으로 미와빙을 안아갔다.
“저녁에. 지금은 낮이야.”
미와빙이 싫지 않은 눈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네 정체ㅐ가 뭐냐!’
노모보의 눈빛이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방금 희망을 발견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암울한 눈빛이었다.
미와빙! 생각할수록 신비한 여자다.
신뢰삼검에 음도를 섞으면 야뇌슬이 펼친 무공과 흡사한 무공이 된다.
그런 점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오히려 신뢰삼검을 흡수할 수도 있다. 그녀는 음도를 수련하고 있으니, 빠름과 강함만 배가시키면 된다.
자신이 음(陰)을 섞는 것보다 그녀가 양을 취하는 게 빨라 보인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에게 모든 걸 양보했다.
실제로 그녀는 더 이상 무공수련을 하지 않는다. 신뢰삼검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어쩌다가 무공 수련을 해도 여전히 천왕구참도, 음도만 수련한다.
미와빙을 알지 못하겠다.
그녀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겠다.
‘음!’
그는 침음했다.
***
야뇌슬은 귀주성 무인들을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시비조차도 걸지 않았다. 과일에서 썩은 부분만 도려내듯이 도련 무인들만 골라내서 제거했다.
그 덕분에 귀주성 무인들은 야뇌슬이 어떻게 생겼는지 용모조차도 모른다.
헌데 여기서 문제가 일어났다.
도련 무인들이 사라진 자리에 사천 무인들이 들어섰다.
그들은 노기등등했다. 도련에 협력한 귀주 무인들은 마치 죄인 다루듯이 다그쳤다.
“섬놈들 똥구멍 핥으니 좋더냐!”
“병신들, 네놈들이 무인이라고…… 검은 왜 차고 다녀?”
“배알도 없고, 쓸개도 없고…… 숨죽여라. 너희들 입 냄새도 맡기 싫으니까.”
사천 무인들 앞에서 귀주 무인들은 고양이 앞에 쥐가 되었다.
사실 귀주무인들은 사천 무인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들을 상대로 싸웠다. 그들의 뒤에 도련 무인들이 있었고, 그들이 지휘했지만…… 사천과 싸운 것은 사실이다.
곳곳에서 시비가 터졌다.
“일대일로 도전한다.”
“병신, 누가 일대일로 싸운대? 너 그렇게 검을 잘 써? 어디 우리 모두 죽여보지 그래?”
“너희가 감히!”
“섬놈들 똥구멍이나 핥던 놈이!”
도련이 점령했던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은 이미 같은 중원이 아니었다.
군사인 모용아가 공문을 발송했다.
무림 질서를 회복시켜 달라.
귀주 무인들에게 시비를 걸지 마라.
그녀의 말은 마이동풍(馬耳東風), 귓전을 흘러가는 소리에 불과했다.
그녀의 말 한 마디에 돌아서기에는 남무림으로부터 핍박당하던 시절이 너무 길었다.
도련은 공포스럽다.
그들이 달려든다는 건 곧 죽음이었기에 언제나 좌불안석,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다.
이제 그런 압박으로부터 벗어났다.
사천 무림이 귀주무림을 핍박하는 것은 당연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무림에 불안이 조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니,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사천 무림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그들에게는 무림에서 가장 정통이 유구한 문파 십오 개 중에 세 개가 있다.
아미파, 청성파, 사천 당문.
그들이 사천 무림을 주도하며, 사천 무인들의 행동을 일으킨다.
귀주 무인들에 대한 핍박은 실상 그들 세 문파의 핍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 문파는 희생이 많았다.
도련 무인들과 싸우면서 많은 고수가 이 세상을 등졌다. 그러니 그들의 한을 조금은 달래줄 필요가 있다. 그 한을 달래주는 방법이 사람을 죽이는 일만 아니라면 말이다.
무림 군사인 모용아가 그들을 제지하기는 어렵다.
그녀를 군사라 만들어준 무림대파 중에 세 곳이 그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결국 독고금이 사천성에 경고했다.
사천 무림이 불안하면 물자를 조달할 수 없다. 상인을 들여보낼 수 없다.
사천성에도 거상은 있다.
사천은 귀주나 운남에서 천축으로 가는 통로다. 남방 물자가 올라오는 길목이다. 또한 중원에서 만들어진 비단이 서역으로 넘어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중원과 서역을 오가려면 사천을 넘어서야 한다.
산악지형이라서 궁벽하고 외진 곳이 대부분이지만 번창한 상인도 많다.
그들을 차단하면 오히려 대화금장의 손해가 더 많다.
그럼에도 독고금이 이런 발언을 했다.
모용아의 경고에 힘을 실어주는 말이다. 그리고 정말로 여차하면 사천성을 고립시킬 준비까지 갖췄다.
반드시 사천을 거쳐야만 서역으로 가는 건 아니다. 더 윗길, 북천행로(北天行路)가 있다. 운남이나 귀주에서 사천을 거치지 않고 천축으로 가는 길도 있다.
사천성을 배제하려면 얼마든지 한다.
이런 일련의 조처들이 연속적으로 취해진 다음에야 겨우 사천 무림이 진정되었다.
자성론(自省論)도 들끓었다.
우리가 도련 무인들을 죽인 건 아니지 않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지만, 우리가 주인은 아니지 않나. 야뇌슬의 분노가 사천으로 향하면 어쩔 것인가.
야뇌슬이 도련 무인들을 일거에 쓸어내고 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죽음이 생긴다. 그리고 그 죽음은 도련 무인들에게 국한된다.
야뇌슬은 도련 무인들뿐만이 아니라 중원 무인들에게도 죽음의 살성으로 부각되었다.
파앗!
불길 한 조각이 피어난다.
심등은 언제나 가슴에서 불길을 피워낸다. 단전(丹田)이 아니다. 명문(命門)도 아니다. 일정한 혈자리에서 피어나는 게 아니다. 가슴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곳에서 피어난다.
밝은 빛이 온 몸을 지배한다.
육신은 사라지고 밝은 광휘만 남는다.
몸도 마음도 없다. 감각도 없다. 느낌도 없다. 오직 빛만 존재한다. 몸 안에서 응축된 빛이 서서히 온 세상을 향해 번져나간다.
파앗!
일시간, 심등의 빛은 온 세상과 하나가 된다.
심등과 세상을 구분할 수가 없다. 세상이 심등이고, 심등이 세상이다. 그 속에 자신은 없다.
오랫동안 그 상태를 즐겼다.
마치 바다 속을 유영하는 듯한 기분이다. 드넓은 천하를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스스슷!
그의 밝음 사이로 낯선 기운이 근접한다.
순간, 밝음이 일시에 사라지면서 작은 심등 하나만 밝혀졌다.
육신이 되살아난다. 감각이 되살아난다. 몸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의 느낌이 고스란히 감지된다.
그는 심등에서 빠져나왔다.
“킬킬! 구한다고 구해봤는데, 먹을 것이 없어.”
마록타가 토끼 한 마리를 번쩍 들어 올리며 웃었다.
야뇌슬은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심등은 영혼을 정화시켜준다. 피로 물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그는 죽은 사람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죄책감이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지난날에 대해서 후회하는 것은 정말 미련한 짓이다.
행동을 일으키기 전에 심사숙고한다.
물론 이 심사숙고 역시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숙고를 한다. 앞으로 후회할 것인가, 아닌가를 마음에 물어본다. 그리고 스스로 대답을 내놓는다.
마음으로 결정한 일은 그 일이 설혹 잘못된 일이라고 할지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심등이 일러주는 삶의 길이다.
심등은 무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심등이 밝히는 길은 온전한 인간이 사는 길이다.
심등을 일으키면 기감을 읽을 수 있다.
흑조탄궁술을 어린아이 장난감 취급할 수 있는 것도 전부 심등 덕분이다.
부동묘보?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하수(下手)가 쏘아낸 흑조탄궁술에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동수(同手)나 상수(上手)가 쏘아낸 화살은 막을 수 없다. 그 부분은 흑조탄궁술의 창시자인 장설리가 직접 시전해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부동묘보를 펼쳤다면 절대로 흑조탄궁술을 피하지 못했다. 그것은 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오제의 무공을 일통시켰다고 해도 불가능하다.
화살을 피하려면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 않고 피하는 방법은 막는 것뿐이다.
흑조탄궁술을 힘으로 막으려면 천하역사 서너 명이 달라붙어도 모자란다. 그만한 위력이 있기 때문에 중원 무인들이 막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이다.
피할 만한 시간도 주지 않는다.
강함은 빠름과 비례한다. 강하면 강할수록 난폭해지고, 빨라진다.
암혼도와의 싸움에서 저들은 화살 네 대를 동시에 날렸다. 아주 강한 힘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더군다나 저들은 사형이나 사제에게 쏘는 심정으로 쏘았다. 장설리의 부동묘보를 알고 있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쏘았다. 즉, 부동묘보를 알고 있어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이 그렇다.
저들은 그가 쏜 화살을 막지 못했다. 똑같은 흑조탄궁술인데 막지 못하고 절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