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도검무안 157화]
第二十五章 삼 년 후에 보자 (4)
덜컹!
련주가 방문을 밀치고 나왔다.
하얀 백삼에 붉은 허리띠, 붉은 영웅건을 맸고, 검은 비단으로 짜인 신발을 신었다.
중원에 나온 지 오래 됐지만 이런 화려한 복색을 입는 건 처음 본다.
“우함하고 장홍주를 불러라. 같이 가지.”
“안 그러셔도 됩니다.”
“아니, 불러. 만사 튼튼한 게 좋아.”
사실,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준비가 끝나 있었다. 련주가 나서면 바로 따라나설 수 있도록 떠날 차비를 끝내놓고 기다린다.
두 사람이 행낭을 짊어지고 나왔다.
련주는 수라도주를 봤다.
빈산릉을 봤다.
왕추, 탁사무…… 그를 호위하던 무인들을 봤다.
련주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걸었다.
***
전 중원이 침묵에 휘감겼다.
“오늘 오전에 강서를 벗어났대.”
“그게 언제 적 이야긴데 그래. 보창(保昌)에서 점심을 먹었다더라. 간단하게 국수 한 그릇 먹고 일어섰대.”
“보창이면 오늘 저녁쯤이면 인화(仁化)에 닿겠네?”
“염왕은 뭐하고 있대?”
“낚시질.”
“아직도?”
“천하태평이야. 낚시질하다가 심심하면 잠자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는 다시 낚시질하고.”
“그 고기 다 잡아서 뭐한대?”
“구워도 먹고, 쪄도 먹고. 술도 꽤 마신다고 하던데?”
“하! 나이도 젊다면서, 배포가 여간 아냐.”
“염왕이 달리 염왕인가.”
사람들은 두 사람을 예의 주시했다.
한 명은 낚시를 하면서 기다린다. 또 한 명은 그를 향해서 천천히 나아간다.
지상 최강의 두 무인이 거리를 좁힌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다. 적과 적이 만나서 무엇을 하겠는가.
모용아는 련주의 비중을 생각해서 그에 대응할만한 별호를 슬그머니 흘렸다.
야뇌슬이 염왕의 후인이다.
오제를 단숨에 제압한 염왕의 맥을 이었다.
이 싸움은 승부를 예단할 수 없다. 경험에서는 련주가 앞서고 무공에서는 염왕이 앞선다. 누가 이길 지는 겨뤄봐야 한다. 어느 누구든 털끝만한 방심을 일으키는 자가 질 것이다.
무림은 이 정도의 소문만으로도 발칵 뒤집혔다.
야뇌슬이 강하다는 것은 안다. 그가 귀주성을 쳤다는 소식에 입만 벌어진다.
헌데 그가 염왕의 진전을 이었다.
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던 사살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야뇌슬의 비중은 단번에 높아졌다.
“동생은 기회를 안 놓쳐. 조심해야겠어.”
독고금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웃었다.
“그럼 언니는 싫어요?”
“아니, 나도 좋아.”
독고금과 모용아는 소문이 확장되는 것을 반겼다.
사실 소무는 모용아가 냈지만 그 소문이 전중원에 급속하게 확산되는 데는 대화금장의 힘이 컸다.
그녀들은 이번 기회에 야뇌슬을 천하제일의 영웅으로 만들 심산이다. 그는 그런 대접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그가 한 일만으로도 이미 영웅이다.
그와 련주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
그 싸움에서 야뇌슬이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무인은 싸움은 승패를 논하는 법이 아니지만, 이번 싸움과 같은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단지 소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승부가 가늠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기든 지든 야뇌슬은 영웅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첫 작업이 이 소문이다.
야뇌슬은 싸우기 전부터 영웅이 되었다.
중원 무림에 그에게 거는 기대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야뇌슬이라면 련주를 물리치고 남무림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사뭇 들떠있다.
이것이 소문의 힘이다.
야뇌슬의 동장, 그리고 도련주의 움직임이 거의 한 시진 단위로 흘러나온다.
대화금장이 손을 쓰지 않았으면 이토록 빠른 전달은 불가능할 게다.
헌데 이제는 대화금장이 손을 쓸 필요도 없다.
그녀들이 개입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의 눈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들이 일부러 소문을 만들지 않아도 도련주의 움직임이 근 반 각 단위로 돌아다닌다.
“곡상 관도를 걷는 중이야.”
“야율촌(“耶律촌)을 지나쳤대.”
“구물에서 물 한 그릇 얻어먹었다던데. 웃으면서 맛이 있다고 말했데? 사람이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더라는 데? 아주 마음씨 좋아 보였대.”
“염왕 곁에 꼽추 있잖아? 그 사람도 무서운 고수래.”
“그걸 이제 알았어? 백랑대 고수들을 열 명이나 죽인 게 그 사람이잖아.”
“어! 들었어?”
“왜 넌 항상 뒷북만 치고 다니냐?”
“아이구야.”
두 호랑이가 만나면 하나는 죽는다.
어느 호랑이가 죽을까?
사람들은 야뇌슬이 이기기를 바라지만 그는 너무 젊다. 그리고 무림에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에 련주는 경험도 풍부하고 무공을 말할 나위 없이 강하다. 수 많은 싸움에서 무서움, 강함이 이미 증명되었다.
련주와 싸워서 생명을 부지한 사람이 없다.
강자존!
누가 되었든 좋다. 강한 자를 나를 베어라. 나의 시신을 딛고 넘어가라.
자신의 수하에게조차 그렇게 말할 정도로 강한 자이다.
야뇌슬이 련주라는 벽을 넘기에는 터무니없이 강해 보인다.
세상은 그렇게 두 사람을 주목했다.
련주는 길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여로를 달랬다.
날씨가 무척 좋다.
덥지도 춥지도 않다. 약간 서늘한 느낌이 들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정신을 더욱 맑게 일깨운다.
“차 드십시오.”
그가 쉬고 있는 동안 우함이 차를 끓여왔다.
련주는 차를 받아서 마셨다.
“좋군.”
언제나 하는 말이다. 차를 마시면서 한 번도 나쁘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설혹 떫은 차를 내놔도 ‘좋다’라는 말을 한다. 그런 말을 해야 맛이 없는 차도 맛있게 마실 수 있단다.
“어떠냐?”
련주가 불쑥 물었다.
“네?”
“네 느낌. 후후! 넌 야수가 아니냐. 본능적인 느낌으로 감지해야지. 이번 싸움…… 네 느낌은 어떠냐?”
“두 가지 대답이 있습니다.”
“두 가지? 후후후! 그래 말해봐라.”
“어떤 대답부터 원하십니까?”
“듣기 좋은 대답부터 듣지.”
“련주님이 이기십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몇 초나 끌 것 같으냐?”
“야뇌슬이 염왕의 무공을 완벽하게 수련했다는 가정 하에, 이십 초 까지는 갈 것 같습니다.”
“흠! 야뇌슬을 그렇게나 높이 봤나?”
“야뇌슬을 높이 본 것이 아니라 염왕의 무공을 높이 샀습니다.”
“음!”
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접전을 벌이면 긴 싸움이 되지 않는다. 서로가 너무나 빠르고 치명적인 절초를 뿜어내기 때문에 싸움 판도도 순간적으로 결정난다.
순간적인 겨룸으로 이십 초!
이것은 누구의 승부도 장담할 수 없는 호선(互先)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이긴다고 말한 것은 그야말로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다.
“다른 대답은 뭔가?”
“모르겠습니다.”
“흠!”
련주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야수가 느낌으로 감지하지 못한다. 그의 정신이 목표를 차지 못하고 빈 허공을 맴돌고 있다.
야뇌슬을 읽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야수가 읽지 못하는 사람!
정신을 읽지 못하다고 해서 반드시 무공이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께름칙한 것은 사실이다.
야수는 련주도 읽어낸다. 련주의 느낌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그런 야수가 야뇌슬을 읽지 못한다? 적암도에서 그렇게 오래 보아왔던 야뇌슬을 알지 못하겠다?
그랬다. 그래서 그는 야뇌슬과 련주의 싸움을 예단하지 못했다. 그래서 염왕의 무공과 련주를 비교한 것이다.
“후후후! 그 놈이 강해지긴 강해진 모영이구나.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강해져도 많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먼저는 읽었더냐?”
“……”
야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야뇌슬이 본련에 침입하여 독고금을 빼내갈 때…… 그때 자신은 속았다. 자신만 속은 게 아니다. 자신의 느낌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장홍주에게 활을 쏘라고 다그치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마록타가 침입했다.
그 덕분에 야뇌슬이 수라도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야뇌슬은 자신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야뇌슬을 전혀 몰랐다.
그때는 그를 읽지 못한 게 아니라 그의 머리에 놀아났다고 봐야 한다.
“후후후!”
련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렸다.
우함은 등골이 쭈빗 섰다.
련주가 그때 일을 힐문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모두가 잊고 있는 사실을 들먹인다. 아니, 련주는 그때 일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야뇌슬의 본단 침입은 그토록 심한 마음의 상처를 남겨놓았다.
련주가 말했다.
“신기가 사라진 건 아닌가?”
“죄송합니다.”
“확실히 신기가 사라졌어. 내 마음도 추측하지 못하고 말이야.”
“네? 아!”
우암이 눈을 부릅떴다.
푸우우우욱!
장검 한 자루가 소리 없이 흘러와 그의 가슴을 찌른다. 깊이, 깊이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