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首 풍도귀왕(都鬼王)
-무덤에 들어가다.
시체들 속에서 무림의 전설(傳說)을 만나다.
백골호혼대진은 상고(上古)에서부터 전해온 유서 깊은 것이라 그것이 제대로 베풀어진다면 그 위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비록 제 위력 모두를 발휘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늘의 달을 가릴 만한 위력은 있었다.
음산한 바람이 수십 장을 뒤덮고 안개는 하늘을 가려 천지가 온통 암흑이었다.
탁탑천왕 부자는 그 속에서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살아나 덤비는 시체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진세가 펼쳐지기 전에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한 탁탑천왕은 화를 자초한 셈이었다.
그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역시 한효월의 판단대로 귀수였다.
진을 지휘하고 있던 귀수는 문득 뒤에서 무엇인가가 날아듦을 느끼고는 안색이 달라졌다.
철퍼덕!
그가 머리를 틈과 동시에 옆에 있던 고목에 진흙덩이가 철썩 달라붙었다.
"이건 뭐야?"
주위를 돌아보던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들고 있는 검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둠 속이지만 그것이 진흙덩이임을 아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어떤 놈이……."
그의 눈앞에 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손에 진흙덩이를 든 채였다.
심소옥이었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불쑥 나타난 그녀는 어둠 속에서 귀수를 향해 히쭉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손에 든 진흙덩이를 그에게 던졌다.
희롱의 빛이 역력한지라 귀수는 어이가 없는 가운데 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이놈이……."
그는 말끝을 삼켜야 했다.
한 사람이 불쑥 그의 앞에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차가운 빛 한줄기를 그에게 쳐내고 있었다. 그 속도는 비할 바 없이 빨라서 귀수가 그를 발견한 순간에 그 빛은 이미 귀수의 가슴에 도달하고 있을 정도였다.
귀수의 안색이 돌변했다.
"어떤 놈이야?"
귀수는 놀라 고함치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가 그 자리를 물러나지 않았던 것은 그 자리가 바로 진세의 축을 이루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명에 위협이 느껴지니 그런 것을 돌볼 여가가 없었다.
하지만 번개처럼 1장이나 물러난 귀수의 안색은 돌변했다. 그처럼 빨리 움직였음에도 차가운 빛을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크헉?"
그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차가운 빛은 단검이었다.
그리고 그 단검은 밤하늘을 가르는 전광(電光)과도 같이 사정없이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가 익힌 풍도귀공은 이미 도검을 두려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검은 무인지경의 무쪽을 베듯이 그렇게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
음습한 바람이 장내를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심소옥은 장내를 한차례 훑어보고는 문득 전신을 떨었다.
소름이 오싹 끼쳤다.
스멀스멀 밤안개가 피어 오르는 가운데 어둠 속에 널브러진 수많은 시체들.
그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정말 무덤 속에서 기어나온 시신들, 그리고 그 시신들이 으스러지고 부서져 흩어져 버린 참혹한 몰골들……. 아직도 대법의 영향이 남아 있는 듯 그 시신들이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건 인간 세상이 아닌 거 같네."
어지간한 심소옥도 입을 움켜쥐어야 했다. 구토가 올라왔던 것이다. 심장이 떨렸다.
귀수를 비롯한 귀역칠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한효월의 일검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귀수가 혼비백산 도주하면서 그들 모두가 사라진 것이다.
한효월은 그를 물리치고는 우뚝 서 운기를 조절하고 있었다.
"괜찮은 거야?"
"……."
대답 대신 한효월은 그녀에게 미미하게 웃어 보였다.
'핏! 맨날 웃기만 하냐? 웃는 게 뭐, 멋있는 줄 아나 보지?'
심소옥은 공연히 툴툴거리며 앞에 있는 돌을 쿡, 걷어찼다.
하지만 퍽! 부서지는 그것은 돌이 아니라 사람의 해골이라, 발끝이 해골을 뚫고 들어가 버렸다. 결국 발에 대롱대롱 걸린 해골이라니……
"꺄악!"
심소옥은 혼비백산, 사시나무 떨듯이 세차게 발을 떨어 그 해골을 차냈다.
그런데 그것이 날아가 부딪힌 곳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던 탁탑천왕 관웅.
'윽! 하필이면……!'
평소 그의 성질이 얼마나 개떡 같은지 들어 알고 있던 심소옥은 가슴이 덜컥했다.
하지만 탁탑천왕은 간단히 그 해골을 슬쩍 쳐 넘겼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세를 졌군요!"
어느새 한효월의 앞으로 다가온 관패가 그를 향해 포권한다. 막상 앞에 오니 더 컸다. 그러나 달빛 아래 드러난 그의 얼굴은 뜻밖에도 앳되다. 아직 스물이 되지 않았을 것처럼 보였다. 그 용맹했던 모습과는 달리 얼굴은 순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도움이 되었으니 다행이오. 마음에 두지 않아도 됩니다."
한효월이 마주 손을 잡아 보이자, 옆에서 우렁우렁한 음성이 들려왔다.
"소형제의 도움을 받았군!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봐라. 내가 도와주겠다."
탁탑천왕 관웅이었다.
그의 말에 심소옥의 눈썹이 곤두섰다.
원래 성질이 더러운지라 참지를 못하는 것이다.
"아니, 누가 그 딴……."
그때 한효월이 입을 열었다. 여전히 침착한 음성이었다.
"뭐든지입니까?"
"물론이오! 우리 관가는 한번 뱉은 말은 되돌린 적이 없소! 울 아버님은 천하제일고수이니 말만 하시오."
관패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탕탕 쳤다. 북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탁탁천왕은 못마땅한 듯 아들을 슬쩍 건너 보았다.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라 애지중지 키웠더니 도무지 가리는 게 없고 늘 제 맘대로였다. 되묻는 한효월의 말에 뭔가 불안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인지라 어쩔 수가 없는 일, 그도 크게 고개를 끄떡였다.
"물론이다."
"귀왕과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귀왕…… 풍도귀왕 말이오?"
옆에서 소패왕 관패가 놀라 소리쳐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를 찾아가 왜 시체들을 훔쳐 갔는지 물어보십시오."
"그거야 물어보나마나 아닌가? 귀왕이니 무슨 악독한 귀공을 수련하기 위해서일 테지……."
"그렇지 않습니다."
한효월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관패는 흥미롭다는 듯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 * *
음산한 바람이 휘몰고 가는 가운데, 스산한 달빛이 검은 구름에 끼어 힘겨운 빛을 어둠 가운데 깔아둔다.
그래도 이 어둠 속에 그 달빛이라도 없다면 사물을 어찌 분간할 것인가.
탁탑천왕 부자는 그 어둠 속에 우뚝 서 있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 드러난 그들의 앞에는 거대한 봉분 하나가 우뚝 했다.
그들이 서 있는 이곳은 좀 전까지 그들이 있던 공동묘지에서 4, 50장가량 떨어진 곳이다.
좀 전까지 있었던 공동묘지의 모골이 송연한 광경보다는 그나마 낫긴 하다. 그러나 사방에 버티고 선 석물(石物)에 달빛도 가릴 듯 솟구쳐 오른 고송(古松)들에 둘러싸인 고묘(古墓)가 별로 기분 좋은 광경일 리가 없다.
게다가 벌레 우는 소리 하나 없지 않은가.
"정말이군요……."
탁탑천왕의 아들, 관패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돌사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 오랜 세월을 말하듯 푸른 이끼 가득한 돌사자는 툭 불거진 눈으로 뭔 소리냐는 듯 관패를 노려본다.
그 발치에는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다가 관패가 손으로 쓸자 손에 묻어드는 것은 보일 듯 말 듯한 핏자국. 피임을 알아볼 수 있게 묻는다는 것은 그것이 묻은 지 얼마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럼 이곳인 게로군……. 그렇다고 정말로 무덤 속에서 산다는 겐가?"
관웅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망할, 이걸 어떻게 열지? 정말 통로가 맞긴 한가?"
돌사자를 밀고 당기던 관패가 미간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그들은 귀수가 남긴 핏자국을 따라 여기에 이르렀다. 한효월이 귀수를 죽이지 않은 것은 실수가 아니라, 그러한 뜻이 있어서였다. 그가 남긴 흔적을 따르면 귀왕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그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탁탑천왕은 여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그 흘린 핏자국이 끝난 지점을 발견한 것이다.
"비켜봐라."
관웅이 숨을 크게 들이키면서 손짓했다.
그 의미를 깨달은 관패가 물러서자 관웅은 그 돌사자를 향해 일권을 질러냈다.
쾅!
그의 일권은 가히 만 근의 위력이 있어 석대에 놓여 그 높이가 1장에 이르는 돌사자가 박살이 나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드러난 것은 뻥 뚫린 구멍.
그 구멍 아래로는 아래로 내려간 돌계단이 보인다.
"정말 통로가 있군!"
관패는 서슴없이 아래로 몸을 날렸다.
"이놈아, 무조건 들어가냐?"
관웅이 놀라서 소리쳤다.
"놈들은 우리가 이렇게 쫓아올 건 상상치도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과연 그 늙은이가 이곳으로 들어갔는지 알아봐야죠!"
관패의 웃음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원 망할 놈, 누굴 닮아서 성미가 저렇게 급한지…… 이러니 내가 마음을 놓고 밖에를 내보낼 수가 있나."
관웅은 투덜대면서 안으로 사라졌다.
…….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주위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들었다.
"도무지 겁나는 게 없군……."
심소옥이 중얼거렸다.
"맹룡과강(猛龍過江)…… 힘이 없다면 함부로 뛰어들지 못하지."
한효월이 옆에서 웃어 보였다.
그들은 거대한 봉분이 잘 보이는 고송의 위에 올라가 있었다. 자리가 높으니만큼 주변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아무리 맹룡 아니라, 철룡(鐵龍)이라도 그렇지 상대가 귀왕(鬼王)이라면 탁탑천왕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어쩌자고 그를 충동질해서……."
심소옥이 중얼거렸다.
한효월은 현재 무림의 상태를 탁탑천왕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과연 그 무림고수의 시신도둑과 귀왕이 어떤 관계인지 알아야겠다는 그의 말에 그는 흔쾌히 귀왕을 만나겠다고 하였다.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그와 건곤무적 독고해와는 한 번의 겨룸이 있었다.
그는 그 겨룸에서 수백 초에 이르는 격전 끝에 독고해의 애검인 비룡음에 패배했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패배였으므로 그는 독고해에게 승복을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는 자부심을 가졌던 자신의 무공에 회의를 가지고 폐관수련을 거듭했고, 그러던 중 천하에는 독고해와 어깨를 겨루는 강자가 열이나 있어서 그들을 천하십왕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문의 이산권력을 절정으로 수련하지 못했던 상태에서 독고해와 겨루어서 진 그였다.
하지만 폐관수련 끝에 그는 이산권력을 절정으로 수련했을 뿐만 아니라, 절전(絶傳)되었던 붕권(崩拳)까지 터득하여 이젠 독고해와 겨루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는 앙앙불락(怏怏不樂), 스스로가 다른 천하십왕과 견주어 절대로 지지 않는데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늘 불만이었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다시 독고해를 찾아가지 않은 것은 그의 인품을 인정했기 때문.
그런데 이제 행적조차 찾기 힘들었던 십왕 중 하나인 풍도귀왕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무공광이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우연히 찾아온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과연 여기 귀왕이 있는지 알아보고……."
한효월이 눈을 감았다.
"우리가 찾아갈 만한 시간을 벌어볼 작정이니까, 잠시만 호법을 부탁한다."
"또 쉬어야 해?"
"……."
답변은 없다.
한효월은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운기조식이라고 하자니 자세가 묘하다. 아무리 나무 위에 앉아 있다고는 할지라도 운기조식을 할 때는 대부분 형태가 비슷하다. 그런데 한효월의 자세는 묘해서 한 손으로 자신의 상처 입은 가슴을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단전을 누른 채 쓰다듬고 있었다.
묘하다 싶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한효월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도대체 뭘하는 건지 모르겠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저런 운기 방법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지라 심소옥은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그녀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디선가 괴이한 음향이 들려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정말이다.
음악 소리였다.
그러나 그 음악 소리는 처량하고도 괴기하여 밤에 들으니 절로 소름이 끼친다.
'이게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야?'
절로 가슴이 섬뜩해진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래도 그녀는 맡은 바 책무에다 천생의 호기심을 참지 못해서 머리를 내밀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제 되었다."
그녀가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가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데 갑자기 한효월이 번쩍 눈을 뜨고 말했다.
그가 눈을 뜨고 자세를 바로 함을 본 심소옥은 얼떨떨해졌다. 아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을 뗀 가슴의 상처가 거의 아물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좀 전까지 분명히 피범벅이었고 그로 인해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었는데…….
"어, 어떻게?"
"약이 좋아서 다른 약보다 조금 빨리 상처를 아물게 하지. 이제부터 너는 내가 말한 대로 맹주부로 가서 이곳 사정을 감천형에게 알려주도록 해라."
"나, 혼자 가라고?"
"둘이 다 갈 순 없지 않나?"
한효월이 웃어 보이자 그녀는 미간을 찡그렸다.
"부탁한다."
그녀에게 웃어 보인 한효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래로 훌훌 날아 내렸다. 탁탑천왕이 들어간 그 통로를 향해서.
"……."
심소옥은 한효월이 사라진 통로를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입술을 깨물었다.
"누가 시킨다고 그대로 하면 교호가 아니지?"
그녀는 묘하게 웃었다.
좀 전까지 들려오던 괴이한 음악 소리는 그쳐 있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통로는 고요 속에 묻혀 있었다.
탁탑천왕을 삼켜 버리고는 그저 조용할 따름, 하지만 어디선가 묘한 음악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했다.
통로는 어두웠다.
하지만 입구에서 4, 5장이나 내려온 곳에 위치한 통로는 청석을 붙여 제법 견고하게 축조되어 있었다. 이런 건축을 지하에 하려면, 더구나 남모르게 하려면 대단한 돈이 들었을 터이다.
그러나 한효월은 잠시 살펴보고 이곳이 전대의 왕릉(王陵)임을 짐작케 되었다. 10, 20년 지난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곳이 귀왕의 거처가 맞다면 아마도 왕릉을 개조한 것이리라.
7, 8장가량을 걸어가자 통로가 끝났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곳에는 장명등(長命燈)이 벽에 걸려 있어서 사물을 알아보는 데 어려움은 없다. 게다가 그 통로가 끝난 곳은 타원형의 지하 광장인데 생각보다 넓었다. 얼핏 봐도 너비가 5장가량은 되어 보이는데 사방에 무상귀(無常鬼)와 우두마면(牛頭馬面)의 귀신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정면으로 <陰曺地府>라는 넉 자가 금방이라도 선혈이 떨어질 듯한 붉은 예서(隸書)체로 새겨져 있다.
음산한 불빛 아래 귀상(鬼像)들이 늘어선 지하 광장은 이곳이 과연 인간 세상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 현판 아래 좌우로는 우두마면의 흑백무상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던 듯한데, 지금은 박살이 나서 옆으로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 가운데 있던 문도 가공할 힘에 지진을 맞은 듯 무너져 있음이 보인다.
누가 지나갔는지는 자명한 일.
탁탑천왕이 힘으로 뚫고 들어간 흔적인 것이다.
잠시 주위를 살펴보던 한효월은 미미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구궁팔괘(九宮八卦)의 배열을 따라 건축된 곳이다. 이 문은 경(驚)의 방향이니 이곳을 뚫고 들어간 탁탑천왕은 고생을 면치 못하겠구나.'
경이라 함은 놀람이니, 자연히 길(吉)할 리가 없는 것이다.
잠시 생각을 굴리고 있던 한효월은 박살이 나서 상반신만 남아 있는 우두마면의 귀상(鬼像)이 널브러진 벽으로 다가가 거기 조각된 귀졸(鬼卒)의 혀를 잡아당 기자 옆으로 문이 하나 나타났다.
문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그곳으로 들어서자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바깥에는 장명등이 있어 어둠을 그런대로 밝히고 있었지만 이 통로 안은 암흑이었다. 불을 밝힐 수도 있지만 한효월은 그러지 않았다.
일단 안으로 들어선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뜬 후에 몸을 날렸다. 그 움직임은 바람과 같이 빨랐다.
그가 막 신형을 날린 순간, 그의 앞에서 미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팅팅! 그가 몸을 트는 사이에 그의 옆에 있는 석벽에서 불꽃을 튕기면서 낮은 소리가 일었다. 쇠털처럼 가는 암기류인 듯했다.
신형을 기울여 암기의 공격을 피한 한효월은 한 번 도약하는 순간에 이미 3장을 날아 석벽의 모퉁이에 도달하고 있었다.
슛! 슈슈-
그가 득달같이 날아들자 미세한 기척과 함께 암기가 연달아 날아들었다.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암기의 습격은 누구라도 쉽게 상대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윽!"
하지만 비명을 흘린 것은 한효월이 아니라, 모퉁이에 숨어서 그를 공격하던 흑의인이었다.
통로의 천장을 타고 날아 그의 머리 위에 도달한 한효월이 그를 공격했으므로 그는 한효월이 언제 어떻게 날아들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 순간, 안쪽에서 은은히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하의 통로.
그 안에서 돌연 터져 나온 처절한 비명은 심금을 떨어울리기에 족했다.
한효월은 제압한 자를 버려두고 몸을 날렸다.
그는 이미 이 음조지부의 중심부에 들어와 있었다. 여기에서 공연히 비명이 들릴 까닭이 없었다. 변고가 일어난 것일 터이고 거기에 가면 뭔가 다른 것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통로는 생각밖으로 방대하여 거미줄처럼 지하에 뻗어 있었다.
한효월이 어둠 속에서 통로의 한쪽을 치자 찍찍, 소리와 함께 암문(暗門)이 하나 드러났다.
문이 열리자 바깥쪽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암문의 바깥쪽은 매우 넓어 보였다.
그가 암문을 통해 밖으로 막 나가는 순간에 세찬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득달같이 그를 엄습해 왔다.
전신에 얼룩덜룩한 칠을 했다. 머리에 뿔이 돋은 귀면(鬼面)을 쓴 자가 그에게 상문봉(喪門棒)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낭아봉(狼牙棒)을 휘두르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한효월은 그들로서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맨 앞에서 눈앞으로 다가온 상문봉을 손으로 슬쩍 당겨 낭아봉 쪽으로 밀어버렸다.
항거할 수 없는 힘에 끌려 상문봉이 날아든 낭아봉과 부딪쳤고 그 순간, 땅! 하는 소리와 함께 상문봉에서 돌연 안개가 터져 나왔다. 코끝을 스치는 괴이한 향기와 함께 서로 충돌한 두 사람이 혼비백산해 옆으로 물러나려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한효월이 그들의 혈도를 제압한 것이다.
그자의 상문봉에 숨겨진 것이 독향(毒香)임을 아는 한효월은 암암리에 숨을 멈추었다. 그 자리를 벗어난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나선 이곳도 통로였다.
그러나 좀 전까지와는 달리 서너 명이 한꺼번에 어깨를 나란히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너비에다가 길이가 5장쯤 되는데, 통로의 좌우로 몇 개의 작은 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전면에는 커다란 문이 있는데, 그 위로는 <연혼중지(練魂重地)>라는 네 글자가 예의 핏빛 예서체의 현판에 쓰여 걸려 있었다.
'연혼이라면 제대로 찾아온 모양인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한효월은 옆에 있는 문을 밀었다. 나무에 철을 대서 만든 문은 약간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면서 별 저항 없이 열렸다.
원래 그는 건축의 형식을 살펴본 다음에 비밀 통로를 발견하여 안으로 바로 진입해 들어온 것이다.
문이 열리자 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토가 일어날 것 같았다.
음산한 붉은빛이 무슨 앙금처럼 석실 전체에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석실에 자리한 것은 석관(石棺) 다섯 개.
관 뚜껑은 없다.
석관을 들여다본 한효월은 가슴이 섬뜩했다.
관 속에는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60대의 노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나이를 제대로 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신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는 붉은빛이 도는 끈적한 액체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시체……."
잠시 그를 살펴보던 한효월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정말이었다.
노인은 시체였다.
그러나 과연 시신을 여기다 이렇게 두고 무슨 짓을 한단 말인가.
"청룡장에서와는 다르다. 이자들은 모두 정말 죽은 시체들이다……."
다른 관을 살펴본 한효월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거기에도 또 다른 시체가 누워 있었다.
끈적한 붉은 액체에 잠긴 40대 남자.
한효월은 몸을 날려 다른 방으로 갔다.
거기에도 관 뚜껑이 없는 석관이 있었다. 다만 거기에 있는 것은 하나가 적어 네 개였다.
"음……."
관 속을 들여다본 한효월은 나직이 신음했다.
그럴 수밖에.
그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붉은 액체가 아니라 푸른빛, 전신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는 점도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슴 떨리는 어떤 유혹은 있을 수가 없었다.
젊은 여자가 아니었다.
60대의 노파였다.
그럼에도 의외로 아주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늘어지긴 했지만 젖가슴도 아직은 부풀었고 무공을 익혔던 것인지 아랫배에도 별로 군살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옆의 관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그 관에 누워 있는 시신은 30대 중반의 여자였다. 나이가 젊은 탓인지 몸매가 팽팽했다. 젖가슴도 전혀 처지지 않고 풍만했고 아랫배에도 군살이 없다.
"……."
잠시 망설이던 한효월은 손을 내밀어서 여인의 가슴을 눌렀다. 바로 누웠음에도 팽팽하게 솟은 여인의 젖가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대체 무슨 짓을? 설마 하니 시체를…….
"정말 시체로군. 그런데 피부에 탄력이 있다……."
잠시 그 상태로 여인을 살펴보고 있던 한효월이 중얼거렸다.
언제 죽었을까?
몇 시진 전에 죽은 시신이 아닐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떤 처리를 한 것인지 피부에 아주 미약하나마 탄력이 있었다.
"시신들을 모아서 공연히 이런 일을 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 시신들을 강시화시키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한다는 건가?"
한효월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나이답지 않게 정말 풍부한 견문을 가지고 있었고 아는 것이 많았다. 세상에서 보통 천재라고 일컫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
자연적으로 지음지기(地陰之氣)를 받아 시체에 영(靈)이 부여된 시신, 그렇게 만들어진 강시는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의 세월에 걸려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시신을 강시화시켜서 부리고자 하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무림 중에 있어왔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낸 강시라 할지라도 탁탑천왕과도 같은 고수를 만나게 되면 큰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게 된다. 동작이 굼뜨고 딱딱하여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효용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물론 일반 무림인이라면 다르겠지만.
"설마 환시술(還屍術)이란 말인가?"
문득 한효월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 순간이다.
어디선가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음악인 듯하기도 하고 무슨 귀신이 호곡하는 듯하기도 하고…… 바로 이곳을 들어오기 전에 들었던 그 소리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좀 더 명확하다는 것.
한효월의 신형이 찰나간에 방에서 사라졌다.
밖으로 나온 한효월의 안색이 조금 달라졌다.
분명히 밝혀져 있던 불빛이 약속이나 한 듯이 깨끗이 사라져 버려 암흑천지였던 것이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밝은 곳에서 어둠 속으로 나서게 되면 일시지간 주위를 분간할 수 없는 법이다. 그나마 문 안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이 아니라면 아예 암흑천지일 터이다.
그가 문밖으로 나선 순간, 소리도 없이 한줄기 날카로운 경력이 그를 엄습해 왔다. 암습이지만 지금까지 그를 공격해 왔던 것과는 틀린 차원의 무공!
한효월은 빙글 몸을 돌리는 순간에 그 일격을 피하고 상대의 지척으로 다가서 상대의 손목을 내리쳤다. 질풍과도 같은 속도.
"엇?"
한순간에 자신의 공격이 무산되고 오히려 공격을 받자 상대는 놀란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찰나, 그는 이내 뒤로 물러나면서 소리쳤다.
"혹시 한 꼬마이신가?"
느닷없는 소리에 한효월은 공세를 멈추었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너덜거리는 옷을 입은 사람 하나의 모습을 분간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눈빛이 빛나고 있어서 내공이 이미 상승(上乘) 경지에 이른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독행신개?"
한효월의 중얼거림에 그는 껄껄 웃었다.
"이 늙은이를 아직 잊지 않았군 그래……."
나타난 사람은 정말 뜻밖에도 개방의 독행신개였다. 그는 여전히 비듬이 날리는 쑥대밭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어둠 속에서 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여긴 어떻게?"
"이미 본 방은 귀왕이 이곳에서 시신을 모은다는 것을 알아내고 고수들을 파견했네. 오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끼끼끼…….
고막을 찌르는 돌의 마찰 소리.
연혼중지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돌로 된 그 문의 한쪽이 돌이 끌리는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그러나 그뿐, 안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쏟아져 나올 뿐이다. 다른 변화는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었다.
"……?"
서로 얼굴을 마주 본 한효월과 독행신개, 독행신개가 씨익, 다시금 누런 이를 드러냈다.
"오라는데 안 가면 겁쟁이라고 흉볼 거야. 사내대장부로서 그건 참을 수 없는 일이지!"
말과 함께 그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문 안은 넓은 대청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석청(石廳).
붉은 주단(綢緞)이 깔린 그 대청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단히 밝았다. 무려 10장가량이나 되어 보이는 대청. 그 끝에는 커다란 옥좌(玉座)가 자리했고 길게 아름드리 기둥이 십여 쌍이나 늘어서 당당했다.
그들이 들어서자 좌우에서 귀졸의 모습을 한 자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얼핏 봐도 숫자는 3, 40명이 넘는다.
형형색색의 면구와 괴기한 옷차림을 한 귀졸들이 둘러싸는 것을 보면서 한효월과 독행신개는 태연히 서 있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말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유명판관(幽冥判官)의 모습을 한 중년인. 머리에는 이상한 형태의 관을 썼고, 옷차림도 마찬가지. 얼굴도 푸른빛이 감돌아 청동으로 만든 사람을 보는 듯했다.
한마디로 괴기(怪奇)!
"당신은?"
"나는 풍도귀왕 좌하(座下)의 음명진군(陰冥眞君)이다."
한효월의 물음에 대꾸하던 음명진군의 안색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질문을 먼저하고도 대답을 자신이 먼저 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미묘한 것이라 그것을 깨달은 순간에 음명진군은 한효월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원래 그는 독행신개만 신경을 썼지, 백면서생인 한효월은 안중에도 없었다.
더더구나 반신이 피로 물들어 있으니 중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신경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풍도귀왕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강호상에는 그에 관한 소문은 끊임없이 유전(流傳)되었다. 산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고 죽은 자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정말 염왕(閻王)과도 같은 존재, 그러한 존재를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까?
세상에 나타나지 않으니, 소문은 소문을 더해 부풀었다. 풍도귀부에 삼군(三君)이 있어 그들 개개인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절세고수라는 것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저, 저놈이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분노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귀졸들의 뒤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한효월에게 부상을 입고 도주했던 귀수였다.
"나를 공격한 게 저놈……."
"내가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군……."
그를 발견하자 한효월이 미미하게 웃었다.
그 순간, 석벽 저쪽에서 쿵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고함 소리가 비명 소리와 한데 섞여 은은히 전해왔다.
"네가 오늘 본 망산별부(邙山別府)에 침입한 자들을 이끌고 왔느냐?"
음명진군이 한효월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나는 사람들을 데리고 온 적 없소. 귀왕을 만나기 위해서 여기에 왔을 따름이오."
그의 말에 한효월은 침착히 대꾸했다.
그러한 그의 태도에 음명진군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겹겹이 포위된 상태에서도 태연한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저 나이라면…….
'건방진 어린 놈…… 한 수 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군!'
속으로 생각을 굴린 그는 냉소를 터뜨렸다.
"감히 허락도 없이 별부의 중지(重地)에 침입하여 왕야를 찾다니…… 네놈의 간이 얼마나 큰지 한번 확인해 봐야겠구나?"
마지막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귀졸들이 일제히 한효월을 향해 밀려들었다.
그러자 한효월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에게 덮쳐 갔다.
앞서 오던 자의 곡상봉(哭喪棒)을 움켜잡았다. 곡상봉으로 한효월을 공격하던 자는 어떻게 손을 쓸 여가도 없이 곡상봉을 움켜쥔 채로 옆에 있던 자들에게로 날아가 버렸다. 서너 명이 한꺼번에 쓰러지면서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났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한효월은 이미 기선을 제압하고자 작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십여 명이 그의 손에 의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경악이 유명진군의 눈에 피어났다.
귀졸 하나하나는 분명히 약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절세고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양 떼 속에 뛰어든 사자는 거칠 것이 없는 법이고, 그것은 웅변으로 증명이 되고 있었다.
더구나 정작 한 수 있어 보이는 독행신개는 손도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효월은 찰나간에 비단 폭을 면도날로 가르듯 그렇게 유명진군의 앞에 도달하고 있었다.
"멈춰라!"
유명진군은 고함치면서 한효월에게 일장을 쳐냈다. 장세에서 뼈를 얼릴 듯 소름 끼치는 음풍(陰風)이 일었다.
한효월은 그의 일장을 보면서도 앞으로 전진하는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대신 그의 일장을 맞받아내는 순간에 그가 손목을 비틀자 유명진군의 장세는 옆으로 흘러 버렸다.
"으악!"
한효월을 덮쳐 오던 귀졸 하나가 그 장세에 격중되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장세가 부딪치면 당연히 반탄력이 있다.
하지만 헛손질을 하게 된 유명진군은 한효월이 이미 코앞에 도달해 있음을 보자 대경실색하여 급급히 후퇴했다.
"크크크…… 귀신도 뒈지나? 육실하게 겁은 많네?"
독행신개가 쿡쿡 비웃음을 터뜨렸다.
유명진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효월은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음에도 손을 쓰지 않고 그를 바라보고 서 있을 따름이었다. 그 얼굴에 서린 것은 담담한 미소.
"나는 귀왕을 만나고자 할 뿐이니, 그를 만나기 전에 나로 하여금 독수를 쓰게 하지 마시오."
"아무나 왕야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냐? 망산별부는 본 군의 관장 하에 있으며, 귀왕께서는 여기 계시지 않으니 무슨 일인지 본 군에게 말해라!"
한효월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명진군이 음산하게 소리쳤다. 그 눈에는 살기가 돌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믿을 수가 없군. 나는……."
그때였다.
한효월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연, 고막을 찌르는 괴기한 피리 소리가 석벽을 타고서 다급히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 유명진군의 안색이 돌변했다.
강적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네놈이 이제 보니까 시간을 끌려고……."
그가 이를 갈았다.
그때였다.
"모두 안으로 들게 하라."
어디선가 웅웅 귓전을 맴도는 음성이 들려왔다.
별로 크지 않은 음성인 듯한데도 그 소리는 석벽을 타고 들려와 이내 대전 안을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그 소리를 듣자 유명진군의 안색이 엄숙해졌다.
"문을 열어라!"
그는 조금도 지체없이 손을 휘두르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한효월에게 덤비던 귀졸들이 모조리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돌이 마찰되는 소리가 들리면서 대전 벽의 좌우로 문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이 열리자마자 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고대한 체구를 가진 두 사람이 뛰쳐나왔다. 바로 탁탑천왕 부자였다. 그들은 낭패한 모습이었는데 금방이라도 사람을 쳐 죽일 듯한 태도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효월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엇! 아니, 언제 여기까지 와 있는 거요?"
그를 본 관패가 반가운 빛을 띠며 물었다.
벌써 구면이라는 표정이었다.
그 순간이다.
일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한무리의 사람들이 반대 편, 오른쪽 문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나타나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너는……."
어지간한 한효월도 나타난 사람을 보자 안색이 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나타난 것은 심소옥이었던 것이다. 그녀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독행신개와 같은 다 떨어지고 더러운 오의(汚衣)를 걸친 거지들이었다.
"야호오∼! 안 늦었지?"
한효월을 발견한 심소옥은 활짝 웃으며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는 손을 흔들며 앞으로 나서다가 한효월의 뒤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독행신개를 발견하자 갑자기 안색이 돌변했다.
"망할, 저 노인네가 왜 여기 있는겨?"
투덜거린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금 나온 통로 안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러나 그녀는 들어가던 때보다 더 빠르게 죽는 시늉을 하면서 엉거주춤 끌려 나왔다.
언제 갔던 것인지 독행신개가 그녀의 한쪽 귀를 사정없이 잡아채서 질질 끌고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야, 아아…… 놓고 말해요!"
"놓긴 뭘 놓냐? 언제 또 도망칠 건데? 도무지 뭐가 될라고 그렇게 말을 안 들어 처먹냐? 이 늙은이가 네년 때문에 이 밤에 무덤에서 헤매야 되겠어? 어쩌다 늘그막에 너 같은 교활한 여우를 제자로 둬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
독행신개가 심소옥의 귀를 잡아 흔들면서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아, 아야아……."
한효월은 최소한 그의 중얼거림에서 두 가지 이상을 알게 되었다.
심소옥이 그의 제자이며, 그녀가 말한 교호(嬌狐)라는 별호는 원래가 예쁜 여우가 아니라 교활한 여우[狡狐]였다는…….
'잘 어울리는 별호로군…….'
희미하게 웃던 한효월의 안색이 돌연 굳어졌다.
언제인가부터 괴기한 음악이 대전 안을 흐르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이 망산별부에 들어오기 전에 들었던 그 소리였다.
그 순간이다.
"귀왕…… 전하…… 납시오……."
음산한 음성이 메아리치면서 들려왔다.
쾅쾅!
그런데 그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효월이 들어왔던 문을 비롯해서 탁탑천왕 부자와 심소옥 등이 들어온 좌우의 문이 닫혀 버렸다. 말이야 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이게 뭔 일이야?"
탁탑천왕이 두 눈을 부라리면서 닫힌 문으로 달려가 일권을 내질렀다.
쾅!
탁탑천왕의 이산권력에 부딪힌 돌문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청석(靑石) 조각이 튕겨져 나갔을 뿐,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그 문은 청강석(靑崗石)인데, 붕권을 사용한다면 아마 간신히 부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관이 발동해서 문을 부수는 순간에 목을 내놓아야 할 게다."
냉랭한 음성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놀라 보니, 언제 나타난 것인지 대전의 중앙에 있던 커다란 옥좌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전신에 용포(龍袍)를 걸쳤다.
머리에는 면류관을 썼는데 그 얼굴은 청동빛으로 푸르러 사람의 얼굴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정작 팔자 수염이 길게 늘어진 그의 얼굴은 수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이는 얼핏 보면 40대인 것 같은데, 다시 보면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귀왕……."
그를 본 독행신개가 부지중에 중얼거렸다.
"30년이 지났나? 아직 살아 있다니 구차하고도 질긴 목숨이로군……."
용포인이 독행신개를 보면서 냉랭히 말했다.
"하하…… 원래 구차하고 질긴 건 오래가는 법이니까! 이미 세상을 등진 줄 알았더니 아직도 이곳에서 용케 왕 노릇을 하고 있었구료."
독행신개가 껄껄 웃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 저편에 긴장이 서려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하십왕.
천하의 십대고수라고 불리는 그 존재는 결코 간단히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중 하나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 있는 지금에는 더 더욱.
용포인, 귀왕은 싸늘한 눈빛으로 주위를 쓸어 보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겨우 이 인원으로 본부를 찾아온 건가?"
그는 냉소를 터뜨리더니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수십 년 만에 손님이 찾아온 셈이니…… 그냥 돌려보낼 수야 없겠지. 여기까지 온 이상, 살아서 다시 해를 볼 생각은 당연히 하지 않았겠지?"
그 순간이었다.
"으핫하하하……!"
대전을 진동하는 굉량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상에 천하십왕을 대단하게 여기는지 몰라도 본왕은 안중에 두지 않은 지 오래다. 어디, 뭘로 나를 막을 것인지 한번 내놓아봐라!"
탁탑천왕이 귀왕의 앞으로 나섰다.
귀왕은 싸늘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우물 안 개구리가 무엇을 알까. 지난날 독고해에게 당하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로구나."
그 말에 탁탑천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무덤 속에 숨어 살면서 시체나 훔치는 주제에……!"
말을 하던 탁탑천왕의 안색이 돌변했다.
한 가닥 음유(陰柔)한 기운이 소리도 없이 자신의 가슴을 짓눌러옴을 경각한 까닭이다.
"무슨 짓이냐? 암습이라니!"
그는 대갈일성하면서 앞으로 일권을 질러냈다.
팍!
그의 앞에서 일진 경풍이 맹렬히 회오리치면서 일어났다.
동시에 탁탑천왕은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고 뒤로 반 보쯤 물러났다.
그 광경에 모든 사람들의 안색이 돌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와 귀왕과는 5장이나 떨어져 있었는데도 탁탑천왕과 같은 고수를 간단하게 밀어내니 다시 한 번 천하십왕의 존재를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으핫하…… 좋아, 좋아! 귀왕의 풍도귀공이 어떤지 내 오늘 제대로 알아봐야겠다!"
창피를 당한 탁탑천왕은 천둥이 치듯 광소를 터뜨리면서 귀왕에게로 덮쳐 갔다.
"멈춰라!"
좌우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날아들었다.
"비켜라! 잡놈들!"
탁탑천왕이 고리눈을 부릅뜨고서 양 주먹을 풍차처럼 연달아 쳐내 그들을 날려 버렸다.
탁탑천왕의 이산권력은 강호독보라고 할 만했다. 타고난 천생신력에다가 두터운 공력이 더해져서 거기에 맞서는 사람은 철벽(鐵壁)에 부딪치는 것과 같았다. 창피를 당한 바 있던 탁탑천왕은 격노하여 전력을 다하고 있어서 그 위력은 더했다.
그러나 그가 한 방에 좌우에서 날아든 자들을 날려 버리고 귀왕을 향해 덮쳐 가는 순간, 차가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귀왕이다.
그는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탁탑천왕을 보고 있었다.
"본왕과 싸우고 싶은가?"
"흥! 천하십왕이 별게 아님을 보여주마! 이리 썩 나오너라, 귀왕! 본왕은 오래전부터 오늘을 기다렸노라."
탁탑천왕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 고함쳤다.
"……."
음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귀왕은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관(冠)에 달린 옥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묘한 음향을 울려냈다. 냉소적인 몸짓.
"천하십왕이란 이름을 누가 지은 것인지 아나?"
그리고 질문.
그의 물음에 탁탑천왕은 얼떨떨해졌다.
"무슨 소릴 하는 겐가? 그거야 세월이 지나면서……."
"틀렸다! 천하십왕이란 이름은 오랜 전설(傳說)에서 기인한다. 그 비밀을 알지 못하는 한, 아무나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너 따위가 넘볼 수 있는 이름은 아니지. 너는 자격이 없다."
귀왕이 싸늘히 말했다.
그 말에 한효월의 안색이 조금 달라졌다.
심상히 들어 넘길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것이었기에.
"그렇다면 어디 증명해 봐라!"
탁탑천왕이 고함치면서 일권을 쳐냈다.
그와 귀왕과의 거리는 2장가량에 불과했다.
그의 능력이라면 10장 밖의 사람도 한 방에 핏덩이로 만들 수 있었다. 가공할 권력(拳力)이 일었다. 경기가 폭장(暴張)하면서 대전을 뒤흔들었다.
콰쾅!
폭음이 일었다.
"왓핫하하…… 다시 받아봐라!"
탁탑천왕이 세찬 경기 속에서 천둥치듯이 웃으며 재차 일권을 질러냈다. 좀 전과는 달리 느린 듯한 일권이지만 그 권세(拳勢)에 깃든 힘은 가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붕권이로군."
귀왕이 중얼거렸다.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탁탑천왕의 일권을 받아냈던 귀왕은 차갑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순간, 음산한 기운이 그의 전신에서 일어나면서 푸른 기운이 그를 온통 휘감았다.
"좋아, 좋아…… 이제야 귀왕공이란 건가? 어디 귀왕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볼까?"
탁탑천왕이 크게 웃으며 다시 일권을 내질렀다. 그의 권세가 미치는 곳에 있던 기둥이 수수깡처럼 가운데가 터져 나갔다.
대격전.
가히 풍운변색(風雲變色)의 일대 격전이었다.
탁탑천왕이 천하십왕의 자리를 넘보는 것은 과연 헛소리만은 아닌 듯했다.
"대단하군. 탁탑 노괴(老怪)의 무공이 이젠 화경에……!"
그 대결에서 일어나는 경풍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중얼거리던 독행신개의 안색이 조금 달라졌다.
폭음과 함께 그처럼 날뛰던 탁탑천왕이 갑자기 충격을 받은 듯 뒤로 물러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었다.
눈앞에 귀왕이 다가와 있었다.
귀왕의 손이 거대한 솥뚜껑처럼 커져서 그를 눌러오고 있었다.
"귀왕음부인(鬼王陰符印)!"
신음이 탁탑천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멈추시오!"
순간, 그들의 가운데로 한 사람이 날아들면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윙윙- 위이잉-!
세찬 경풍이 휘몬다.
귀왕은 차가운 표정으로 우뚝 서 있었다.
그의 앞쪽으로는 탁탑천왕이 비틀거리면서 물러나고 있음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옆에서 날아들어 탁탑천왕의 위기를 구해준 사람, 한효월이었다.
"너는 누구냐?"
"한효월이라고 합니다."
한효월이 침착히 대꾸했다.
"독고해와는 어떤 관계냐? 그의 제자……."
귀왕은 문득 말끝을 흐린다.
나이로 봐서는 제자인데, 제자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무공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방금 그는 자신의 절학인 귀왕음부인으로 탁탑천왕의 붕권을 깨뜨렸었다. 탁탑천왕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
그런데 한효월이 옆에서 그것을 방해한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절세고수들의 싸움은 격(格)이 달라서 옆에서 잘못 참견하다가는 살신지화(殺身之禍)를 입게 된다. 그런데 한효월은 그 싸움에 참견하여 탁탑천왕을 구해낸 것이다.
귀왕의 그 가공할 귀왕음부인을 막아내면서…….
그가 귀왕을 막아낸 무공, 그것은 지난날 귀왕이 한 번 본 적이 있던 무공이었다. 건곤무적 독고해가 그 무공으로 고수 열둘을 연달아 패배시키는 것을 아직도 그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놀라 물었다.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당연히 그의 제자가 아니지! 그는 독고 맹주의 사제로서 사형의 뒤를 이어 천하무림을 위해 강호에 나왔소……."
말을 한 사람은 독행신개였다.
"독고해의 사제?"
괴이한 눈빛으로 귀왕이 한효월을 바라본다.
"두 분의 싸움에 끼어들어 미안하지만, 관 가주께서 이곳에 들어온 것은 저의 부탁으로 인한 것이라 두고 볼 수가 없었음을 양해하십시오."
한효월이 단정한 태도로 말했다.
조금은 창백한 듯하지만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태도.
"정말 네가 독고해의 사제냐?"
귀왕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
묘한 눈길로 쳐다보던 귀왕이 다시 물었다.
"네가 오늘 이자들을 이끌고 온 것인가?"
"그렇지는 않지만 내가 여기 온 것은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어서입니다."
"……."
귀왕은 말없이 그를 쳐다본다.
"바깥에서 시체들을 봤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수하들이 사방에서 시신을 훔치는 것도 봤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하는 건지?"
싸늘한 웃음이 귀왕의 얼굴에 떠올랐다.
"이곳은 귀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환시술은 단순히 강시를 연제하는 것과는 틀리지. 지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시도했지만 희생만 남기고 실패했었소."
조금 냉랭해진 한효월의 말에 귀왕의 눈에 놀람의 빛이 떠올랐다.
"아는 게 적지 않구나?"
"귀하가 왜 환시술을 시도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면 귀하는 천하무림맹의 맹주를 암해한 제천교의 배후라는 오해를 벗을 길이 없게 될 것이오. 귀부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그런 일은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겁니다."
"협박을 하는 건가?"
"사실을 이야기할 뿐이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천하에 으뜸. 누가 감히 본왕의 행사에 간섭을 한단 말이냐?"
귀왕이 코웃음 쳤다.
바로 그 순간이다.
"으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진동이 대전을 크게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