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권-第一首 겁난도래(劫難到來) (43/113)

대풍운연의 5

第一首  겁난도래(劫難到來)

-참혹한 도살

조운(朝雲)은 죽음의 너울에 허덕이다

 어둠 속에서 불빛이 보였다.

 그들의 앞에 장원(莊園) 한 채가 나타났다.

 야산(野山)에 위치하지만 마차가 드나들 수 있는 길까지 닦아둔 걸 보면 필시 고관대작의 별서(別墅)이거나, 토호(土豪)의 거처일 터.

 한효월과 같이 온 요광성주는 그곳으로 들어섰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망설임없이 후원 담을 넘었고 그런 그들을 맞은 것은 삼엄한 검광으로 무장한 경비였다. 하나 그녀가 신분을 밝히자 그녀는 공손하게 즉각 대청으로 안내되었다.

 화려한 대청은 매우 넓었다.

 거기에는 이미 장명등(長明燈) 아래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요광성주가 안내되었지만 그녀를 쳐다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몇 사람이 그녀를 아는 척했을 따름이다. 그중 몇은 한효월도 익히 아는 제천칠성들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제천칠성의 우두머리인 천추성주도 있었다.

 "무사했구나?"

 그녀를 보자 천추성주가 입을 열었다.

 "몸은 빠져나왔어요."

 그녀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쏠렸다.

 보통의 회합이라면 사형제가 만나게 되면 안부를 묻고 기타 여러 가지 일로 떠들썩할 터였다. 그러나 제천교에서는 그런 일이 없는 듯했다. 그녀가 들어서는 것을 한번 바라보았을 뿐, 거기 모인 사람들은 이내 자세를 바로하고 침묵을 지킬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듯 요광성주는 한쪽 자리에 앉았다.

 한효월은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라 그녀의 뒤에 가 섰다.

 대청 중앙에는 좌우로 열 개씩의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열서너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의자에 묵묵히 자리한 채였다. 그들의 뒤에는 한효월처럼 호위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둘 정도 병풍처럼 서 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그 대청의 중앙에는 빈 태사의 하나가 놓여 있는데 아마도 모인 사람들은 그 의자의 주인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그때, 약간의 소란이 이는 듯하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한눈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북벌후였다.

 그는 매우 낭패를 당한 듯 천으로 손 한쪽을 묶어 목에다 걸고 있는데 피가 배어 나온 상태였다. 옷을 갈아입은 것처럼 보였으나 평소의 그 유유자적하던 태도는 이미 약에 쓸래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어떻게 그런 봉변을 당하셨소?"

 천추성주가 자리에 앉는 그를 보며 물었다.

 그의 물음에 북벌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미 모습을 드러낸 바 있었던 서정후는 물론이고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의 그런 물음은 이미 위로 차원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반발할 자리가 아니었다.

 "죄만(罪萬)하오. 놈들이 간계를 써서……."

 그의 말은 끝맺지 못했다.

 딩딩∼!

 어디선가 기이한 풍악이 울리는 것 같더니 어느새 흑의무사들이 바람처럼 나타나 대청 중앙의 태사의를 호위하듯 늘어섰다.

 일순 긴장감이 대청 안을 누른다.

 "교주님 납시오∼!"

 긴 외침이 여운을 담고 대청을 뒤흔들었다.

 "교주라고?"

 한효월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받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로서는 있기 힘든 실수였지만 실제로 일이 너무 뜻밖이었던 것이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모두 괴이한 빛과 놀람의 빛이 격하게 뒤섞여 있었다.

 순간, 방 안의 장명등에 켜졌던 불빛이 일제히 꺼져 버렸다.

 다른 것보다 불빛이 사라지자 대청 안은 더욱 괴기(怪奇)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순간적으로 침묵이 찾아들었다.

 그때였다.

 "북벌후는 앞으로 나서거라."

 차가운 음성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 말을 듣자 북벌후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는 신형을 일으켰고, 천천히 걸음을 떼어 대청의 중앙으로 나아갔다.

 "변명할 말이 있는가?"

 다시 그 음성이 들려왔다.

 한효월은 그 음성이 들려온 곳을 찾다가 문득 탁탁! 부싯돌 치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빛 한줄기가 대청 중앙에서 일어남을 보고는 안색이 돌변했다.

 대체 언제 나타난 것일까?

 한 사람이 비어 있던 태사의에 언제인지부터 모르게 깊숙이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복면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눈에 서린 정광은 칼날과 같았고, 날카롭게 곤두선 매부리코는 성정이 독함을 짐작케 하는 듯하다. 백발과 흑포는 괴이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그의 좌우에는 흑의인 둘이 제각기 손에 촛불 하나씩을 들고 서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대청 안에는 거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도 일순, 대청에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교주님의 존가(尊駕)를 맞이합니다!"

 대청 안에는 모두 4, 50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일어나 허리를 굽힌 다음, 그 자세로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누구도 감히 몸을 일으키는 사람은 없었다.

 태사의 앞에 우뚝 선 두 흑의인의 손에 들린 음침한 촛불 두 가닥의 밝음은 대청 안을 더욱 기괴한 분위기로 누르는 듯했다.

 '교주가 나타나다니…….'

 한효월은 그들과 함께 무릎을 꿇은 채로 놀라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제천교의 교세는 가공하리만큼 거대했다. 그 전체를 지배하는 제천교주는 어쩌면 사람이 아닌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괴물이나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누구도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제천교의 모든 것은 직접적인 관계자 외에는 수뇌부라 할지라도 다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한 제천교의 교주라는 것은 어쩌면 저 구름 속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그런 머나먼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를 향해 다가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를 찾아낼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렇게 불쑥, 그의 앞에 나타나다니.

 한효월은 긴장된 신색을 감춘 채 은밀히 태사의에 있는 교주를 살펴보았다.

 누구도 감히 얼굴을 들 수 없어서 그가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게다가 요광성주의 뒤에 있는 그의 앞으로는 대청 기둥이 반쯤 그를 가리고 있어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냉혹해 보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을 찾기 힘들었다. 어둠 속이라 더 더욱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으되, 대청을 덮은 어둠을 뚫고서 음산한 한광이 그의 눈에서 일고 있는 듯하였다.

 그는 조용히 나타났지만 그 기도는 대청을 압도하고 남음이 있었다.

 "북벌후, 대죄(待罪)하고 있습니다."

 침중한 음성과 함께 북벌후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 시각 부로 후의 권한을 박탈한다. 집령사자들은 그를 형옥(刑獄)으로 압송하라."

 복면의 흑의인 두 사람이 북벌후에게 다가섰다.

 "불가하오!"

 그들이 다가섬을 보자 북벌후가 반쯤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불가? 감히 항명을 하겠다는 것인가?"

 교주의 눈에서 음산한 빛이 불꽃처럼 일었다.

 "항명이 아니외다! 비록 우리 오방후의 지위가 교주의 아래이긴 하나, 교외의 각 방(各方)을 책임지고 있으므로 아무리 교주이시라곤 하지만 마음대로 처결할 수는 없는 게 교중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삼교주(三敎主)께서는……."

 순간,

 철커덩!

 북벌후의 앞으로 금광이 번쩍이는 물건이 떨어졌다.

 그것을 본 북벌후의 안색이 돌변했다.

 어둠 속에서 금광이 번뜩이는 그 물건은 둥근 테와 같은 것 두 개가 역시 금광이 번뜩이는 사슬로 연결된 것이었다. 얼핏 볼 때는 일종의 수갑처럼 보였다.

 "제천권고(齊天權錮)다. 더 할 말이 있나?"

 "……."

 북벌후는 창백한 얼굴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그의 태도로 보아 저 금빛의 수갑에는 무상(無上)의 권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감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금빛 수갑, 제천권고를 찬 채로 흑의인 두 사람에게 제압당해 끌려 나갔다.

 그가 끌려 나가자 대청 안은 더욱 조용해졌다.

 "당분간, 천추가 북벌후의 자리를 대신한다."

 "명심 봉행하겠습니다."

 천추성주가 머리를 숙였다.

 "이 자리에 칠성이 몇 있는가?"

 "모두 셋입니다."

 천추성주가 답했다.

 "그들과 함께 지금 출동하라."

 천추성주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지금…… 입니까?"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 그들이 다른 곳으로 옮기기 전에 쳐야 한다. 그곳으로는 이미 강령루(降靈樓)의 사람들이 갔으니 최선을 다하라."

 "강령루의 고수들까지 말입니까?"

 천추성주의 눈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한효월은 놀람의 빛이 대청에 번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천마각과 소혼각은 그 지당(支堂)의 사람들을 보내 오래전부터 외부 지원을 하고 있었지만, 강령, 섭생 등 삼루는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었다.

 그런데 그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인가? 대체 누구를 치길래?'

 한효월은 겉으로는 무표정했지만, 실제로는 심각해져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저 교주라는 자는 누구에게도 의논이나 설명은 없이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들어도 무슨 일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은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무슨 일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한효월이 그러니 다른 사람이야 말해 무엇 할 것인가.

 "가벼이 보다가 실수를 한다면 아무리 천추성주가 교주님의 고제(高弟)라 할지라도 예외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명심하라."

 "옛!"

 천추성주가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듣자니 심히 괴이했다.

 흑포노인은 분명히 교주라고 불렸다.

 그런데, 그가 지금 한 말은 또 무슨 의미인가?

 '삼교주…….'

 문득 한효월의 뇌리에 조금 전 북벌후가 말했던 삼교주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럼 저자는 세 번째 교주라는 뜻일까?

 그렇다면 제천교에는 교주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라는 건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교주는 몇이나 있는 것이며, 요광성주는 왜 자신에게 그런 것은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졌지만 이 자리에서 물을 수야 없는 일.

 한효월은 묵묵히 생각을 굴리고만 있을 따름이다.

 그때, 다시 교주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나를 따라 화산으로 간다."

 가벼운 웅성거림이 일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극도로 조심해서 분산하여 움직일 것이며, 각자 책임을 지고 사람들을 인솔하여 오 일 후, 화산 현도관(玄都觀)에서 점호를 받는다. 중간 연락은 서정후가 맡도록. 이상이다."

 교주는 음산한 빛이 쏟아지는 눈을 들어 대청의 사람들을 쏘아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천추성주 또한 일이 끝나는 대로 사람들을 인솔하여 화산으로 집결한다."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까?"

 "그렇다. 지금 이 시간 부로 지벽계(地闢計)가 발동된다!"

 쿠쿵!

 사람들은 가슴속에서 울리는 어떤 것을 느껴야 했다.

 "지벽계는 천붕계(天崩計)에 이어지는 것으로, 원래 제사교주님에게 맡겨진 것으로 아는데 변동이 있었습니까?"

 문득 나직한 웃음소리가 대청을 울렸다.

 흑포노인, 교주가 음산히 웃고 있었다.

 갑자기 대청 안이 싸늘히 얼어붙는 듯했다.

 "본 교에서 금하는 칠금(七禁)에는 위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는 시행만 할 뿐, 절대로 묻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약간 당황한 빛으로 천추성주가 고개를 숙였다.

 "첫날이니 교주의 얼굴을 봐서 넘어가도록 하지."

 말과 함께 교주가 몸을 일으켰다.

 순간 그의 좌우에 있던 흑의인들이 손에 들고 있던 촛불을 껐다.

 삽시간에 대청이 암흑 천지로 변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불이 밝혀진 것은 일각여가 지난 다음이다.

 주위가 밝아졌어도 서로 뭔가를 이야기하고 의논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실 남아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서정후를 비롯한 일행들은 다 자리를 떠난 다음이라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은 천추성주와 요광성주 등을 비롯한 제천칠성뿐이었다.

 "우리도 출발하도록 하지."

 천추성주가 입을 열었다. 그의 음성은 무겁고도 위엄이 서려 있어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입을 연 것은 요광성주.

 "어디로 가는 거죠?"

 "그리 멀지는 않아. 백여 리 밖이니 날이 밝기 전에 도착할 수 있겠지."

 "사형이 먼저 가시고 뒤를 따르면 안 될까요?"

 요광성주가 굳은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천추성주는 복면 속의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건너다보았다.

 "무슨 일이라도?"

 "보시다시피, 급히 오느라고 아무도 데려오지 못했어요. 제가 거느렸던 고수들은 모두 개방과의 싸움에서……."

 "그냥 간다. 어차피 고수가 필요한 것이니 그들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말과 함께 천추성주는 그녀를 스쳐 앞으로 나서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 눈은 한효월을 쏘아보고 있었다.

 "전부터 데리고 있던 자인가?"

 그의 물음은 뜻밖인지라 요광성주는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복면을 쓴지라 겉으로 기색이 드러난 것은 아니다.

 그의 물음에도 한효월은 묵묵히 요광성주의 뒤에 서 있을 따름, 별다른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 북벌후의 동위를 인솔했는데, 그중 한 명이었어요. 개방의 포위망을 함께 뚫었죠."

 그녀의 대답에 천추성주는 잠시 생각을 굴리는 것 같더니 갑자기 불쑥 손을 내밀어 한효월의 손목을 낚아 잡았다. 그의 그 한 손속은 실로 비할 바 없이 빨라 그 어떤 사람이라도 피할 수가 없을 듯했다.

 가히 전광석화!

 미리 알고 방비하고 있었더라도 피하기 어려운 신속무비한 절세의 금나수(擒拿手)였다.

 한효월은 움찔하다가 그의 손을 피해내려 했다. 하지만 상대의 출수가 워낙 신속하여 절반쯤 손목이 잡히고 말았다.

 "무슨 짓이에요?"

 그 순간, 요광성주가 놀라 소리쳤다.

 그러자 천추성주가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의 복면 속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러나 그 눈에는 은은한 놀람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이자가 북벌후의 동위 중 하나였단 말이냐?"

 "그래요."

 "멍청한…… 이런 자를 동위로 둘 정도의 안목이니 황엽에게 당한 것도 무리는 아니로군."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대청을 빠져나갔다.

 "괜찮으냐?"

 요광성주가 한효월을 보며 물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복면 속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천추성주가 느닷없이 손을 쓰는 바람에 무슨 파탄이 드러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예."

 한효월이 짧게 답했다.

 "가자."

 말과 함께 요광성주가 앞으로 나섰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대청을 벗어나고 있었다.

 '조심해요! 천추사형은 비할 바 없이 날카로운 사람이에요. 그가 당신을 유의한다면 우리의 운신은 참으로 힘들 거예요.'

 대청을 나서는 한효월의 귀에 전음이 들려왔다.

 '내가 적절히 대처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한효월이 암중에 전음을 보내 그녀를 안심시켰다.

 손목이 은은히 저려왔다.

 일부러 잡혀주려다가 마지막 순간에 살짝 손목을 틀었음에도 이런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은 천추성주의 공력이 이미 경지에 이르러 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   *   *

 서서히 어둠이 내리는 산길을 따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관도 부근을 따라 달리던 그들은 이제 산길로 접어든 상태였다.

 "잠시 휴식하다가 간다."

 하늘을 올려다본 천추성주가 말했다.

 그들은 이미 팔십여 리는 족히 달려온 다음이었다.

 제아무리 무공의 고수들이라고 해도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조금쯤 지칠 때가 된 상태. 그가 휴식을 명하는 것을 본다면 목적지가 멀지 않다는 뜻일 터이다.

 쉬려고 눈을 감았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하긴 요광성주로서는 무리도 아니었다.

 한효월.

 교중에서 척살 대상 제일호로써 찾고 있는 사람을 데리고 있으니, 만에 하나라도 발각이 난다면 그 죗값을 어찌 치를 것인가. 어릴 때부터 교중에서 자라난 그녀인지라 감히 배반이라는 단어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어찌하다 보니 일이 묘하게 꼬여서 그와 같이 움직인 것뿐이다.

 스스로 그렇게 위안을 삼지만 정작 일이 터지면 말도 안 되는 변명임을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는 그녀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그를…….'

 가늘게 눈을 뜨고 그를 본다.

 그녀와 반 장가량 떨어진 옆쪽 바위에 기댄 채 한효월은 눈을 감은 채 쉬고 있는 듯 보였다. 불안한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대체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불안해하고 있는데…….'

 문득 그런 그의 모습에 부럽기도 하고 화가 치미는 요광성주다. 부지중에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안하냐?"

 옆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천추성주였다.

 그의 물음에 내심 깜짝 놀란 요광성주가 머리를 저었다.

 "근래에 들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그저 이것저것 생각이 많군요."

 "걱정할 것 없다. 천붕지벽(天崩地闢)이 시작되면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오늘 우리가 그들을 쓸어버리면 마지막 거리낌까지 덜어버리게 되겠지."

 "대체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옆에서 물음이 들려왔다.

 다른 한 사람의 성주, 천선(天璇)이었다. 그도 목적지는 모르고 있는 모양.

 "사제들도 알아두는 게 좋겠지. 놈들의 본거지를 발견했다."

 "놈들이라니요?"

 천선성주의 목소리에 의혹이 깃들었다.

 "비적(秘敵)!"

 그 대답에 천선과 요광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놀람에 찬 신음이 새어 나왔다.

 "정말 놈들의 거처를 알아냈단 말입니까?"

 "나도 보고받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부천각(扶天閣)에서 열두 곳의 비선(秘線)을 희생하면서 알아냈다고 하니…… 신빙성이 없다면 총단에서 강령루까지 움직이지는 않았겠지."

 "그렇군요…… 그들이 정말로 있긴 있었군요……."

 천선성주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만 가도록 하자. 늦으면 문책을 받게 된다."

 천추성주가 일어났다.

 그가 일어난다는 것은 휴식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   *   *

 풍광(風光)이 좋은 곳이었다.

 뒤로 산자락을 두르고 있고, 앞으로는 그리 넓지는 않지만 강이 흘러간다. 아마 석양녘이면 금빛 물결이 출렁이는 가운데 뛰어오르는 잉어를 볼 수 있을런지도 모를 마을이다.

 고깃배로 보이는 배도 너덧 척 강가에 묶여 있음이 더 한가롭다.

 아직 밥짓는 연기가 오를 시간도 아니었다.

 강가에 자리한 이십여 호의 마을은 어둠의 나래에 잠겨 평온한 잠에 빠져 있었고, 그 마을 뒤로 펼쳐진 논과 밭이 끝나는 곳에는 한 채의 장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은 지 수십 년은 넘어 보이는 장원은 제법 규모가 있어서 이 마을 유지의 저택임을 짐작케 한다.

 강변 마을은 그렇게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장원 외에 모두 23채의 집이 있으며, 구성원은 어른 아이 합해서 모두 121명입니다. 그중 마흔 이하의 나이를 가진 남자는 모두 49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장원 내에 거처하는 자들은 서른 명 정도로 조사되었는데…… 명확히 확인된 사항은 아닙니다."

 천추성주의 일행을 맞이한 흑의인이 낮은 음성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차가운 눈길은 평온히 잠든 강변 마을을 음산히 노려보고 있었다.

 컹컹…….

 무엇인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것인지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올해 나이 여덟 살인 아호(阿虎)는 하루 종일을 뛰놀아도 지칠 줄 모르는 장난꾸러기다. 그러니 잠에 떨어지면 깨우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아호가 잠이 깬 것은 너무 목이 말라서였다.

 더듬거리면서 물을 찾아 나간 아호는 마당에서 찬물을 한 바가지 떠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아이구, 목말라 디질 뻔했네……."

 입맛을 다시던 아호는 갑자기 옆에 있던 황구(黃狗)가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얌마! 뭐 하는 짓이야!"

 컹, 컹! 으르르…….

 평소라면 꼬리를 말 황구인데 이번에는 다르다.

 아호가 소리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드러내고 앞을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뭐가 있길래 그래? 헉!"

 눈을 꿈벅이면서 앞을 본 아호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어둠 속.

 아직 미명(未明)도 채 찾아오기 전의 그 어둠 속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우뚝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에 흑포가 괴이하게 펄럭이는 검은 그림자의 눈 어림에서는 푸른빛이 어둠을 뚫고 야수의 눈과 같이 빛나고 있었다.

 "누, 누구……!"

 하얗게 질린 아호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순간, 흑포인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러자 황구는 고함치면서 흑포인에게 달려들었다. 본능적으로 어릴 때부터 같이 커온 주인이 위험함을 직감한 탓이었을 것이다.

 캥!

 하지만 외마디 소리와 함께 황구는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어떻게 날아갔는지도 모른 채 아호는 그 흑포인의 손이 피비린내를 풍기며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것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쳐다보아야 했다. 보면서도 피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아무리 담대하다 해도 이제 여덟 살인 꼬마라 공포로 인해 움직일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퍽!

 아호의 머리가 흑포인의 손에 잡히자 깨진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것이 이 강변 마을, 조운촌(朝雲村)에 밀어닥친 참혹한 액겁의 시작이었다.

 한효월이 요광성주와 조운촌에 들어선 것은 그 무자비한 살겁(殺劫)이 시작된 다음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사방에서 번뜩이고 그때마다 여기저기에서 숨이 넘어가는 단말마의 비명이 간간이 들리는…….

 "일대를 모두 수색해! 누구도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천추성주는 마을로 들어서면서 천선성주에게 명령했다.

 그의 수하들이 바람처럼 흩어져 조운촌의 집집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일차로 그 집을 덮쳤던 잔인무도한 흑포인들은 이미 그 마을을 지나 장원을 향해 검은 구름처럼 밀려가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사방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일고 우왕좌왕 집 안에서 뛰쳐나오다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도 무력한 모습들이다. 처음부터 상대가 될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무공을 지니지 않은 자들이 어떻게 악마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된 거예요?"

 그 모습에 요광성주가 물었다.

 "장원으로 간다!"

 스스로도 괴이한지 미간을 찡그리고 있던 천추성주가 대답 대신 장원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따라와요!"

 한효월이 굳은 눈길로 주위를 살피는 걸 본 요광성주가 딱딱한 음성으로 말하면서 급히 그 뒤를 따랐다. 혹시라도 그가 의분(義憤)을 참지 못하고 참견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한효월은 이를 악물고 그 뒤를 따랐다.

 그가 참견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그들보다 먼저 온 흑포인들이 마을을 휩쓸고 장원으로 덮쳐 간 다음이었기에.

 비명이 그 뒤를 따랐다.

 장원은 생각대로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고대광실, 수십 칸의 거대 규모는 아니었지만 전원(前院)과 중원(中院), 그리고 후원(後院)까지 격식을 갖춘 지방 토호의 저택으로 손색이 없었다.

 쾅!

 콰쾅…….

 여기저기에서 벼락 치는 폭음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부서져 나가는 문짝들과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검은 그림자들의 모습은 끔찍한 악몽(惡夢)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건물이 흔들리고 창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벽이 터져 나갔다.

 그러나 괴이하게도 사람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일행 중 가장 먼저 장원에 당도한 천추성주는 굳은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요?"

 상황을 본 요광성주가 물었다.

 "괴이하군……. 부천각에서 이미 사흘 동안 이곳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중얼거리던 천추성주는 괴이한 행색의 흑포인 한 사람이 후원 뜰 중앙에 우뚝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키는 훌쩍 커서 팔척 장신이다.

 하지만 전신이 장작개비처럼 말라서 몸에 걸친 흑포는 그야말로 대나무 가지에다 천을 씌워놓은 듯 바람에 펄럭인다. 거기에 서너 발은 되도록 긴 머리카락이 옷자락과 함께 길게 펄럭이니 그 형상은 심히 공포스럽다.

 천추성주가 다가서자 장원을 둘러보고 있던 괴인이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음산하고도 푸른빛을 띤 눈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며 천추성주를 본다. 마치 시퍼런 비수가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것만 같았다.

 얼굴 또한 푸르도록 창백하여 섬뜩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귀하는?"

 천추성주가 물었다.

 그도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는 듯했다.

 …….

 "왜 아무도 없는 겐가?"

 잠시 천추성주를 쏘아보던 그 흑포괴인이 입을 열어 물었다. 마치 쇳소리를 긁어대는 듯한 음성이었다.

 그의 말투에 천추성주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나도 알지 못하오. 당신의 신분은?"

 "강령루의 제이당주(第二堂主)다."

 그가 딱딱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예의 따위는 아예 무시하는 태도였다.

 그럼에도 그의 신분을 안 천추성주는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삼루는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는다. 오직 교주 한 사람의 명령만을 받는 것이다. 더구나 그중 제이당주라면 더 더욱 간단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때, 흑의인 한 사람이 그들 사이로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천선성주였다.

 "아무도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일반인이지, 강호인이 아닙니다. 무공을 지닌 자의 무공도 보잘것이 없는데……."

 그의 말에 천추성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다 죽었나?"

 "예?"

 "살아 있는 놈이 있다면 다그쳐 봐.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그때였다.

 그들의 앞으로 흑의인 한 사람이 나타났다.

 천추성주를 맞이했던 부천각의 고수였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이 장원 내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낮에까지도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럼 놈들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하늘로 날아갔을 리도 땅으로 꺼졌을……."

 일그러진 음성으로 소리치던 천추성주의 안색이 달라졌다.

 "비밀 통로?"

 신음하듯 중얼거린 그가 다급히 물었다.

 "놈들이 비밀 통로로 도주했다면 찾을 수 있나?"

 "백 리 이내라면 나는 새도 도주할 수 없습니다. 비밀 통로를……!"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장원의 외곽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천추성주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 말에 대답할 사람이 여기 있을 리 없다.

 그 순간, 검은 그림자 하나가 바람처럼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정체 모를 자들이 나타나서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정말인가 아닌가를 물을 필요는 없었다.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것은 사실이었기에.

 창칼이 부딪는 소리가 요란하게 밤을 울리고 비명과 기합 소리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일단의 무림인들이 밖으로부터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함정이었단 말인가?"

 그 광경에 천추성주가 신음을 흘렸다.

 그는 사나운 눈길로 부천각의 고수를 쏘아보았다.

 "어떻게 된 건가! 적을 감시하기는커녕, 적에게 놀아나 오히려 우리를 함정에 빠지게 하다니, 이러고도 살기를 바라나?"

 그의 질타에 부천각 고수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할 말이 없었다.

 부천각(扶天閣)은 말 그대로 제천교의 눈과 귀가 되는 곳이다. 그런데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입이 열 개가 있어도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후퇴시켜! 놈들을 막지 말고 이리 오게 해."

 적의 기세가 강대하여 부하들이 밀리고 있음을 본 천추성주가 지시했다.

 그렇지 않아도 밀리던 제천교의 고수들은 그의 지시에 일제히 썰물처럼 물러섰고, 저항을 받지 않게 된 적은 물밀듯이 장원으로 밀려 들어왔다.

 "저건……!"

 앞선 사람을 본 요광성주가 경호성을 터뜨렸다.

 "아는 자냐?"

 "무림맹의…… 임시 맹주였던 감천형인 것 같군요!"

 중얼거리던 요광성주가 부지중에 뒤에 선 한효월을 슬쩍 보면서 말을 흘렸다.

 "무림맹의 감천형이라고? 놈이 어떻게 여기에…… 설마 비적과 무림맹이 무슨 관련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천추성주가 다가오고 있는 자들을 쏘아보았다.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 4, 50명쯤 되었다.

 그들은 모두 흑의를 입었다. 그중 앞서 발군의 기세로 전진해 오고 있는 대한의 위세는 막강했다. 누구도 그의 손에 들린 패도를 견디지 못하고 급급히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감천형.

 정말 개봉에서 화산으로 자리를 옮겼던 그 감천형이었다.

 '감 사질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것이지?'

 그를 본 한효월도 어리둥절해졌다.

 지금쯤이면 화산대회로 인해서 눈코 뜰 새가 없을 텐데 그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네가 무림맹의 감천형이냐?"

 차가운 음성이 들려와 감천형은 천천히 신형을 세웠다.

 가로막던 자들이 모두 물러나 좌우로 벌려 섰고, 그 가운데 복면인 하나가 우뚝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간단치 않은 기세가 느껴진다.

 그 옆으로는 그가 본 적이 있는 요광성주의 모습과 또 다른 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천인공노할 놈들…… 무고한 양민을 그처럼 학살하다니……."

 감천형이 이를 갈았다.

 그는 이미 조운촌의 참경(慘景)을 보고 온 참이었다.

 하긴 이 장원으로 오려면 그곳을 지나지 않으면 불가능하니 그가 그 참혹한 광경을 보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터였다.

 "너와 비적(秘敵)들이 관계가 있었나?"

 "비적? 무슨 말도 안 되는…… 놈들을 쳐라!"

 감천형이 고함치면서 앞으로 덮쳐 갔다.

 다짜고짜 싸움을 거는 듯 얼핏 보면 무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뭔가 장내가 어수선해 보임을 직감했다. 적은 어딘지 모르게 정돈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밀고 들어온 기세를 살려서 우선 적을 공격해야 했다.

 나머지는 그 다음의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것은 생사를 건 일대 격전일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