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二首 마녀재현(魔女再現) (94/113)

第二首  마녀재현(魔女再現)

-단서를 쫓다

한효월은 다시 독고경을 만나지만…….

 저 멀리 동정호의 물살이 출렁인다.

 어둠은 주위를 덮었지만 동정호 위에 둥실한 달빛은 사위를 구분하기에는 그리 불편함이 없다.

 농가.

 십여 채의 농가가 있는 작은 촌락.

 스스로는 조어구(釣魚口)라고들 하지만 사실상 이름없는 작은 촌락. 그 어귀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표홀한 신법을 가진 두 사람이야말로 좌백이 있는 곳을 떠난 한효월과 유성이었다.

 주변을 살핀 두 사람은 다시 어둠 속에서 전진하여 마을 뒤에 만들어놓은 작은 사당 앞에 당도했다.

 그러자 사당 안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공자이십니까?"

 농부의 모습을 한 그는 날렵한 움직임이라 한눈에 보통 농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방주께선?"

 "저 숲으로 가시지요."

 농부는 조금 떨어진 숲을 가리키고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그는 말을 끝내고 나타났던 곳으로 사라졌다. 이 자리를 떠난 것은 아니고 몸을 감춘 채로 한효월의 뒤로 누가 따라오는 게 아닌가 감시를 하는 것 같았다.

 "고맙소."

 한효월은 망설이지 않고 유성과 더불어 숲으로 들어갔다.

 "왼쪽으로 계속 들어가십시오."

 그가 숲으로 들어서자 낮은 음성이 숲 속에서 들려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매복한 가운데 주변을 감시하고 있음을 느끼기에 족했다.

 숲으로 들어서 칠팔 장가량을 더 들어가자 대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닌 옥면무영 호일랑이었다.

 "죄송합니다. 방주께선 사정이 생겨서 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옥면무영 호일랑은 한효월을 보면서 고개를 숙였다.

 한효월의 미간이 곤혹으로 굳어졌다.

 "중요한 일이라고 전갈하셨소?"

 "예. 그런데 제천교주와 몇몇 천하십왕이 일제히 움직인다는 첩보가 있어서 그리 가셨습니다. 가신 뒤에 소식을 듣게 되어 몸을 빼기가 힘드신 상태입니다."

 "천하십왕과 제천교주가 같이 움직였단 말이오?"

 "예. 그렇습니다. 대신 제게 말씀하시면 뭐든지 처리하도록 방주님께서 전언을 보내오셨습니다."

 "으음……."

 한효월은 잠시 침음했다.

 원래 그는 감천형을 찾아가기 전에 미리 개방에 연락하여 황엽을 만나자고 했었다. 그리고는 좌백을 떠나 약속한 곳으로 온 것이다. 한데 그가 이곳에 없다니…….

 "무엇이나 다 처리할 수 있겠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개왕 선배님을 만날 수 있게 수배해 주시오."

 "개…… 왕……!"

 옥면무영 호일랑의 전신이 굳어졌다.

 눈이 커진 것으로도 그의 놀람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개왕…… 사조께선 이미 세상에……."

 "계신 걸 알고 있소. 지금 실질적으로 궁가방 고수들을 지휘하는 분이 개왕이라는 것도 알고 있소. 그것에 대한 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말은 그분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오."

 한효월의 말은 간결했고 힘이 있었다.

 강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옥면무영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개왕이 생존해 있고, 그가 움직이고 있는 것은 개방 중에서도 몇 사람만이 아는 극비 중의 극비였다. 아니, 방주 한 사람만 알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옥면무영 호일랑이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건 젖혀두고 아예 만나게 해달란다.

 거기에서 옥면무영 호일랑은 말이 막혔다.

 실존 여부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기정사실화하고 만나게 해줄 것을 요구하니 실존에 대해서 말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결국 그가 하는 말은 질문일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말할 수가 없군요. 하지만 당금 무림 정세에서 어쩌면 가장 큰 변수일 수도 있으니 반드시 그분을 만나야만 합니다. 만약 호 형이 전결(專決)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지금 방주께서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해 주시오. 한시가 급하오."

 한효월의 음성은 완고했고 그의 표정 또한 완강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방주께 의견을 구해보지요."

 "얼마나 걸리겠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조금 위험을 무릅쓴다면 한 시진 내에 답을 들을 수 있겠지요. 낮이라면 한 식경 내에 가능할 수도 있지만 밤이라 아무래도 쉽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전서구 등은 너무 위험도가 큽니다."

 무림에서는 전서구(傳書鳩)를 많이 쓴다.

 하지만 여기에 큰 맹점(盲點)이 있다.

 연락을 하고자 하는 곳에다 전서구를 날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서구를 가지고 간 사람만이 원래 비둘기가 있던 곳으로 비둘기를 보낼 수 있다. 그냥 어디로든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비둘기의 회귀성(回歸性)을 이용한 통신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 또한 열이면 열이 다 돌아간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간에 맹금(猛禽)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고 다른 사고가 생길 수도, 아니면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황엽이 옥면무영에게 전서구를 보내면 몰라도 옥면무영이 황엽에게 비둘기를 보낼 수는 없음이 정상이다.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몰라도 한 시진 내에 답을 들을 수 있다면 역시 개방이라는 찬탄이 나와 마땅했다.

 지금이 야심(夜深)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효월은 그 자리에서 황엽의 회신을 기다리기로 했다.

 옥면무영은 연락을 위해서 그 자리를 떠났다.

 한효월은 눈을 감았고, 유성은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근래에 들어 연속 고수만 만난 터라 자신의 무공이 낮음을 절감하고는 시간만 있으면 무공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번 한효월과의 동행으로 도약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효월이 쉬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주변 경계도 할 겸 해서 유성은 암중에 무공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옥면무영이 돌아온 것은 예상보다 빠른 반 시진 후였다.

 "방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디로 말이오?"

 "지금 이곳에서 백 리가량 떨어진 곳에 계십니다."

 왜 그곳으로 가야 하는지를 물을 필요는 없다.

 그가 올 수 있다면 왔을 것이다. 반 시진이라면 그가 오기에 충분한 시간이니까.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몸을 뺄 수가 없는 상황일 것이니 지금은 그가 그곳으로 가야 했다.

 어둠 속을 세 사람이 몸을 날리고 있었다.

 한효월, 유성, 그리고 옥면무영 호일랑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말만 전해주고 말았을 것이지만 상대가 한효월이니 옥면무영 호일랑이 길을 안내함은 당연했다. 게다가 이 일대의 지리는 그가 잘 알고 있으니 그가 앞서는 것이다.

 뒤따르는 사람이 약하다면 상대를 배려해야겠지만 상대는 한효월이다. 옥면무영은 말 그대로 경공에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 그러므로 그는 마음놓고 경공을 전개하여 달렸다.

 한효월이 자신보다 뒤떨어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성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고 따라오고 있음을 본 옥면무영 호일랑은 놀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시종인 유성조차도 내 경공을 따라올 수 있다니…….'

 암암리에 호승심이 생긴 그는 전력을 다해서 질주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이동 속도는 눈부시게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본분을 잊지 않아 지형지물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적의 눈을 피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개방 방주 황엽은 악양성 외곽에 있다 했다.

 그들은 바람처럼 달렸으므로 순식간에 수십 리를 주파할 수 있었다.

 한데.

 묵묵히 옥면무영의 뒤를 따르던 한효월은 문득 괴이한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가슴이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가슴이 저 혼자 떨릴 리가 있겠는가? 한효월은 손으로 가슴을 더듬었다.

 웅웅∼!

 가슴이 정말 울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슴이 아니라 가슴팍에 매달린 것이 가늘게 진동하면서 기이한 떨림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봉신지약!'

 한효월은 놀란 빛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가슴팍에서 은은한 빛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묘한 떨림이 가슴을 울리고도 모자라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가슴팍에 걸어둔 봉신지약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한효월은 가슴팍에서 은은한 빛이 떠오르다 못해서 봉신지약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들썩거리는 움직임까지 보이자 놀라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공자?"

 유성이 죽어라 한효월의 뒤를 따르다 그가 갑자기 멈추어 서자, 놀라 그를 부르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한효월이 한쪽 손을 쳐든 채로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무슨……?'

 그것을 알 리 없는 옥면무영은 그대로 내쳐 달리다가 괴이한 느낌에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한효월은 그를 따라오지 않고 우뚝 서 있었다.

 이미 거리가 한참 멀어져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놀란 옥면무영은 다급히 되짚어 날아왔다.

 "……."

 굳은 얼굴로 가슴을 움켜쥐고서 주위를 돌아보던 한효월은 옥면무영에게 물었다.

 "혹시, 지금 봉신지약을 지닌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소?"

 "그건 잘 모르겠군요. 악양성 중에 머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쯤은 어떻게 되었는지……."

 "방주께서 계신 곳은 봉신지약과는 관계가 없소?"

 "봉신지약이 아니라, 제천교주를 뒤쫓고 계신 걸로 압니다."

 "음……."

 잠시 침음하던 한효월은 결정을 내린 듯 말했다.

 "잠시만 시간을 내는 게 좋겠소."

 말과 함께 그는 가던 방향과는 다른 동정호 쪽으로 몸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한 공자!"

 뜻밖에 그가 바람처럼 달리기 시작하고 그 뒤를 유성이 따름을 보자 당황한 옥면무영이 급히 소리쳤다.

 '잠깐이면 되오. 소리는 내지 않는 게 좋겠소!'

 전음지성이 은밀히 들려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옥면무영 호일랑은 괴이한 빛이 되어 한효월의 뒤를 따랐다. 이 마당에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음……."

 한효월은 침음했다.

 봉신지약이 갑자기 우는 것을 멈추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왜 봉신지약이 울었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근처에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어야 옳다. 하지만 이제 반응(反應)이 사라졌으니 찾아갈 방도가 없다. 점점 강해지던 반응이 갑자기 잦아들더니 이젠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가까워졌던 어떤 것이 느낄 수 없도록 멀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엇이었을까?'

 또 다른 봉신지약?

 아니면 다른 무엇……?

 무엇이든 간에 종적이 사라진 것은 아쉽다.

 멈춘 채로 주위를 둘러보는 한효월의 눈 저 멀리에 한 채의 용왕묘가 서 있음이 보인다. 작은 용왕묘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어 마치 괴물이 도사린 듯 보인다.

 제아무리 한효월일지라도 저 용왕묘에 방금 전까지 남해용왕과 서역법왕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야 없는 일이다.

 그저 주위를 둘러보다가 포기하고 길을 떠날 수밖에.

 평소라면 일대를 수색하였을 것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황엽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그것이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c#}*   *   *

 어둠 속에 황엽은 우뚝 서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앞쪽에는 십여 채의 농가가 어둠에 잠겨 있다. 악양성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외곽인 이곳, 황엽의 주위로는 기척을 죽인 고수들이 그림자처럼 운집해 있었다.

 "이곳인가?"

 그가 낮게 물었다.

 "예! 어제 빠져나온 가마가 몇 군데를 돌아서 이곳으로 숨어들었습니다."

 황엽은 등 뒤에 선 순찰당 향주(香主) 비각(飛脚) 유칠(劉七)의 보고를 받으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밤하늘 저 멀리 마치 햇살이 떠오를 것처럼 붉은빛이 떠돈다.

 바로 그가 얼마 전에 떠나온 장원이 불타는 것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그 장원이야말로 제천교주가 머물던 곳이었다. 정화의 대군과 그 뒤를 응원하기 위한 개방의 지원이 있었지만 제천교주는 이미 도주한 다음이었다.

 싸움다운 싸움도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외곽에 위치한 장원이라 적은 어둠을 이용하여 모두 빠져나가고 있어 포위한 자들과의 생사결이 어둠 속에서 벌어졌고, 그것은 성동격서(聲東擊西)에 다름이 아니었다. 교주가 그 자리를 벗어나는 시간을 벌기 위한…….

 정화가 어찌 그러한 것을 모르겠는가.

 그는 이내 정예 병력을 휘몰아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황엽은 거기에 동행하지 않고 북로(北路)의 인마만 그 뒤를 따르게 했다. 그리고는 쉬지 않고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다 비밀 거점을 만들다니……."

 주위를 살펴본 황엽은 미미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이미 악양성 일대에 개방의 전력을 투구하고 있었다. 궁가방의 고수들까지 이번 일에 동원한 판이었다. 반드시 제천교주를 잡아내기 위해서.

 그런데 또 한 걸음이 늦었다.

 그런 와중에 들려온 첩보가 어제 은밀히 빠져나간 가마 하나가 이곳으로 숨어들었다는 것.

 도주한 자가 제천교주인지 누군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가마에 태워져 은밀히 옮겼다면 평범한 신분이 아닐 것은 분명하니 이 상황에서 방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앞의 두 집은 일반 농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뒤쪽의 집 중 셋은 버려진 집이고 나머지에는 사람들이 사는 모양인데 우리가 발견한 이후로 아무도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비밀 통로라도 있다는 뜻인가?"

 "만약 적의 비밀 거점이라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비각 유칠이 봉두난발의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옥면무영처럼 경공이 뛰어나다. 그러나 옥면무영과는 달리 험악한(?) 개방인의 원형을 잘 간직한 것이 그였다. 봉두난발에다 떨어진 옷이며 시커먼 얼굴하며 여러 가지를.

 "이곳이 비밀 거점이라면 척후가 있을 텐데?"

 "두 군데 있습니다. 뒤의 숲과 맨 앞쪽의 집. 두 시진마다 한 번씩 교대를 하는 것 같습니다."

 "놈들부터 처리를 해야겠군. 준비는 하고 있겠지?"

 "궁가방의 고수들이 이미 접근해 있습니다. 명령만 내리시면 바로 척후를 없앨 수 있을 겁니다."

 "좋아, 시작해.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

 "옛!"

 낮은 복명 소리와 함께 그의 뒤에 있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방주의 수신호위들만 남겨두고.

 황엽은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이자들이 대체 무슨 꿍꿍이속으로 이렇듯 뜸을 들이고 있는 것인가? 대막사왕은 아예 움직이지를 않고 종적을 감추었다. 이미 본색이 드러난 이상, 제천교와 함께할 수도 있을 텐데 굳이 봉황문을 내세우면서까지 합세하지 않음도 이상하고…….'

 그들처럼 뛰어난 자들이 흩어져 있으면 각개 격파를 당하기 쉽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합치지를 않았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황엽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잠들어 있던 농가에서는 격렬한 싸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뜻밖이군!"

 문득 황엽이 중얼거렸다.

 지금 그가 이끌고 있는 힘은 어떤 강적과도 자웅을 겨룰 만했다.

 그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궁가방 고수들을 앞장세웠다. 그것은 제천교주와도 일전을 겨룰 수 있는 힘인 것이다. 그런 힘으로 기습을 했는데도 단숨에 제압되지 않는다면 적의 힘은 정말 만만한 것이 아닐 뿐더러, 이곳에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숨겨져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격렬한 저항도 잠시, 싸움은 이내 멎고 제일 안쪽 집에서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보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황엽.

 그는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그의 신형은 누가 잡아당긴 듯이 앞으로 쭈욱 미끄러지는 것 같더니 바람처럼 농가를 향해 날아갔다.

 황엽이 그 자리에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싸움이 멎은 상태였다.

 주변 일대는 개방의 고수들이 완전히 장악했다.

 "무슨 일이지?"

 하지만 그 자리에 당도한 황엽은 이상한 기운을 직감하고 물었다.

 "적도(賊徒) 둘이 앞을 사수하는 동안 몇 놈이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습니다."

 "뒷문이 있었나?"

 "뒷문이 있긴 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앞에 있는 집은 십여 호의 농가 중 그래도 기와도 올리고 좀 번듯하게 지은 집이었다. 굳이 뒷문이랄 것은 없더라도 당연히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자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것을 감안하지 않을 개방 사람들이 아니고 적도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더구나 그 뒷문이 나 있는 곳은 개방의 매복이 대기하고 있어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앞쪽 못지않은 악전(惡戰)을 각오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는다?

 "비밀 통로가 안에 있나?"

 "아직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바로 공격해. 그리고 외곽 조는 범위를 더 넓혀서 이곳에서 비밀 통로로 빠져나간다면 어디로 갈 수 있는지 찾아보도록!"

 명령을 내린 황엽은 바로 몸을 날려 농가의 뒤로 향했다.

 쾅!

 겉으로야 개 잡는 몽둥이지만 두 사람이 좌우로 붙어 서서 공력을 실어 문을 치자 그처럼 안으로 견고하게 잠근 문이지만 마치 종잇장처럼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앞에서 그렇게 치고 들어가는 순간에 황엽은 뒷문을 부수면서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큰 집은 아니지만 단순한 농가 형태는 아니고 안쪽으로 마당이 있어 조금 변형된 사합원(四合院) 모습을 한 집에서는 인기척을 느끼기 힘들었다.

 앞문을 부수고 들어선 개방고수들은 바람처럼 방으로 흩어졌고 황엽은 주위를 날카롭게 쓸어보았다.

 몇 개의 횃불이 마당 여기저기에 던져졌다.

 혹시라도 암습이 있을까 하여 사람이 들지 않고 바닥에다 던진 것이다.

 집의 생김을 둘러보던 황엽은 대청으로 향했다.

 중국에서의 대청은 말 그대로 생활 공간이다. 조상의 신위도 거기에 모셔둔다. 다 해야 너비가 일 장쯤이나 되어 보이는 대청은 비어 있었다. 분명히 문을 잠그고 안으로 퇴각했고 격렬한 저항이 있었다고 했는데 지금 여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짧은 시간에 다 어디로 갔더란 말인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토비(土匪)들의 약탈을 대비해서 집 안에 비밀 통로를 만들어두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 말은 이 집 안에 비밀 통로가 있다 할지라도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황엽은 대청에 들어서서 주위를 쓱, 훑어보고는 대뜸 중앙에 마련된 신단(神壇)을 향해 일장을 가했다.

 펑!

 폭음과 함께 신단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아래로 검은 구멍이 드러났다.

 황엽이 눈짓을 하자 그의 뒤를 따르던 수신구룡 중 하나가 들고 있던 횃불을 아래로 던졌다.

 검은 어둠에 잠겨 있던 아래가 불빛에 드러났다.

 깊이는 별로 깊지 않아 일 장가웃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냥 수직으로 뚫린 것으로 보아 밑으로 뚫어 내려간 다음에 다시 옆으로 파 내려간 수직 갱도의 형태를 취한 토굴(土窟)처럼 짐작되었다.

 "제가 먼저……."

 "되었다."

 수신구룡이 앞서려고 했지만 황엽은 망설이지 않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가볍게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은 마치 누가 돌팔매질이라도 한 것처럼 무섭게 밑으로 내리꽂혔다.

 놀란 듯한 경호성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처럼 과감하게 빨리 아래로 내려올 줄은 몰랐다는 의미일까?

 그가 아래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미세한 파공음과 함께 검빛이 그를 향해 찔러들었다.

 황엽은 이미 소매자락에 공력을 주입하여 철판처럼 편 소매로 자신의 앞을 가린 상태였다.

 파파팟!

 기묘한 음향과 함께 날아들었던 암기가 철판처럼 펴진 소매를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그리곤 황엽은 몸을 빙글 돌리는 사이에 앞으로 비스듬히 전진하면서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자신을 공격하는 적에게 일장을 갈겨냈다. 웅장하기조차 한 잠경(潛勁)이 노도처럼 앞으로 쳐 나갔다.

 "으왁!"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적이 튕겨졌다.

 앞쪽으로 길게 뻗은 통로가 보였다.

 어른이 조금 허리를 굽혀야 할 높이. 어둠에 잠긴 곳이지만 방금 던진 횃불의 일렁임으로 인해 희미하게 어둠이 내몰리고 있는 그 자리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음이 보인다.

 급하게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한 사람의 뒷모습!

 황엽은 몸을 날려 그 뒤를 따랐다.

 쉿!

 어둠 속에서 미세한 파공음이 다시 들려왔다.

 "흥!"

 황엽은 냉소를 흘렸다.

 그가 손을 내젓자 소매가 앞으로 쭉 뻗어 나가며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날아오던 쇠털과 같은 암기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강력한 반탄강기에 튕겨져 나간 암기가 오히려 상대를 상하게 한 모양.

 황엽은 채 두어 자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가 있음을 보고 일장을 쪼개냈다.

 팡!

 맹렬한 폭음과 함께 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거꾸러졌다. 그런 그를 타 넘으며 황엽은 주위를 쓸어보았다.

 이미 칠팔 장을 안으로 들어온 참이다.

 그런데도 구불구불한 통로는 아직 이어지고 있었다.

 토굴은 두어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어졌지만 높이는 여전히 낮아 황엽으로서도 머리를 조금 숙여야 될 정도에 불과했다.

 어둠 속에서 한 가닥 빛이 흔들리고 있다.

 검빛이다.

 한 사람이 검을 든 채로 서 있었다.

 길을 막겠다는 표시.

 "상승검수(上乘劒手)로군……."

 그를 보자 황엽은 이내 중얼거렸다.

 상대는 숨어서 그를 영격(迎擊)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묵묵히 검을 빼 들고서 다가오는 그를 노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밟고 지나가야 한다는 의미. 생사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의미에 다름이 아니다. 더더구나 저 냉정한 눈빛이라면.

 잘 벼룬 한 자루의 검을 보는 것만 같다.

 "개죽음이다."

 황엽이 문득 걸음을 멈추면서 말했다.

 "……!"

 어둠 속에 버티고 선 검수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는 전력을 모아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황엽이 다가오는 그 속도에 맞춰서 숨을 가다듬고 기세를 끌어올려 그의 걸음에다 동조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황엽이 결정적인 순간에 걸음을 멈추며 말을 한다.

 극도로 끌어올렸던 기세가 주춤, 무뎌졌다.

 "항복한다면 살려주겠다."

 대답은 없다.

 대신 검이 날아왔을 뿐이다.

 소리도 없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굳이 덤빈다는 것인가?"

 황엽이 싸늘히 질타했다.

 그가 소매를 뒤집자 그의 손에는 어느새 단봉(短棒) 하나가 들려 있었다.

 땅!

 검과 단봉이 마주치면서 어둠 속에서 불꽃을 튕겼다.

 고수들은 무기를 잘 마주치지 않는다.

 무기가 부딪치려는 순간에 이미 변초하여 다른 초식을 펼쳐 내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무기가 마주칠 여가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싸움은 다르다.

 손을 뻗자마자 사정없이 상대의 무기에 자신의 무기를 때려냈다.

 기세에서 밀리지 않고 앞으로 나서기 위해서다.

 그것은 황엽 또한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평범하지 않음을 안 이상, 일단 그의 기세를 꺾어야만 그를 쉽게 처리할 수가 있었다. 그의 기세를 살려주고 그와 오래 싸워야 한다면 결국 그를 처리한다 할지라도 그의 본래 목적을 이루게 해주는 것에 다름이 아니었기 때문에.

 황엽의 무공은 세간에 크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거의 모든 일을 수하들을 시켜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보여주는 무공은 그의 무공이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더 높음을 말하고도 남았다.

 적의 검세를 채 뻗어나지 못하게 쳐낸 황엽은 질풍처럼 앞으로 전진하면서 다른 한 손을 쳐냈다.

 손이 쳐 나감에 따라 은은한 휘파람 소리가 울려 나왔다.

 바로 개방절학인 용음십이수(龍吟十二手)다.

 검을 휘둘러 막으려 하나 검로(劒路)는 이미 단봉에 막혀 있다. 검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막아야 했다.

 펑!

 맞부딪침 소리, 그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절로 튀어나온다.

 "욱!"

 그리곤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그를 향해 황엽은 다시 일격을 가했다.

 짚단처럼 그가 뒤로 튕겨져 버렸다.

 황엽은 거의 찰나라고 할 순간에 일대검수의 위용을 보이고 있던 자를 통과해서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군!'

 그 뒤를 따르던 수신구룡들이 눈을 크게 떴다.

 방주가 이처럼 신위를 발휘함은 그들로서도 처음 보는 일인 까닭.

 그가 마지막 장애였던 모양.

 더 이상 그들을 막는 자들은 없었다.

 한참을 더 전진하자 출구가 나타났다.

 출구는 위로 향해 있었다. 나무로 된 사다리가 놓여 있고 일 장 정도의 높이에 출구가 있었다.

 농가의 뒤는 야트막한 야산이고 숲으로 이어졌다. 수만 년의 태고림이야 아니지만 바람을 막아주고 밤이면 들새들이 깃드는 곳이다. 어둠이 내린 그 숲 속, 커다란 바위 몇 개가 울멍줄멍 버틴 그 숲 한쪽에는 말라 죽어 밑동만 남긴 아름드리 고목(枯木) 몇 그루가 있다.

 소리도 없이 그 고목 중 하나가 묘하게 꿈틀거리는 듯하더니 사람 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의의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음 순간, 그가 바람처럼 앞으로 나섰고 그 뒤를 따라 서너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하나는 커다란 포대 하나를 메고 있었다.

 "빨리!"

 뒤에서 낮은 음성이 들려옴과 함께 앞선 흑의인이 숲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적에게 쫓기는 몸짓이다.

 고목에서 나온 흑의인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 숫자는 모두 해서 여섯 명.

 하지만 앞선 흑의인은 바람처럼 달리는 신형을 멈추어야 했다.

 한 사람이 팔짱을 낀 채로 그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달려가고 있는 길을 막고서. 허름한 옷을 걸친 듯 보이는 그자는 팔짱을 낀 채로 길을 막고 우뚝 서 냉전(冷電)과도 같은 눈빛으로 그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고 있었다.

 "탓!"

 뜻밖의 사태에 앞선 흑의인은 달려가던 여세를 몰아 땅을 박차며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숲 속 길이야 어차피 사람이 많이 다니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작은 길이 생기는 것이지만 무공의 고수들이야 굳이 그런 길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필요하다면 나무를 밟고서라도 지나갈 수가 있는 것이기에.

 뒤의 흑의인들도 그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에 또 한 사람이 우뚝 서 있었던 것이다.

 혹시나 해서 부딪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렇다면 피해갈 수만은 없다. 이미 적에게 들킨 이상 적을 해치우고 도주하는 것이 가장 빠른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앞선 자는 기민하게 판단하고는 그대로 땅을 박찼다.

 그를 발견할 때, 앞선 자와의 거리는 삼 장가량.

 하지만 그가 한 번 도약하자 그 거리는 지척으로 가까워졌고 어둠을 가르는 한줄기 빛은 이미 그자의 목젖 결후(結喉)를 찌르고 있었다. 놀라운 쾌검이었다.

 "빠르군!"

 길을 막고 있던 자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그는 그 자리에서 비키지도 않았다. 막을 생각도 없는 듯 덮쳐 오는 흑의인을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흑의인은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하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터이다. 천하에서 가장 변장하기 쉬운 것이 개방도의 모습이니, 저 허름한 모습을 보고 누가 개방을 연상하지 않을 것인가? 게다가 그들을 쫓고 있었던 자들이 개방이었으니 문답(問答)이 무용(無用)이라!

 살기에 젖어 일검을 내두른 것이다.

 "물러나라!"

 뒤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섬광 한줄기가 옆에서 번뜩임과 동시에 그는 자신의 검을 든 팔이 허공으로 날고 있음을 보아야 했다. 그리고는 그 섬광이 팔을 자르고도 모자라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들고 있음을!

 "함정……!"

 그가 외치면서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때 석상처럼 서 있던 개방도가 손에 들고 있던 타구봉을 앞으로 무찔러 왔다.

 불쑥!

 너무도 느닷없어 보이는 그 공격.

 그 공격은 뜻밖에도 너무도 적절하여 놀라 물러나던 흑의인은 타구봉을 피하지 못하고 가슴을 얻어맞고 말았다.

 "크악!"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이 으스러진 그는 즉사를 면치 못했다.

 달려오던 흑의인들이 그 자리에 멈추었다.

 앞선 흑의인 뒤에는 우두머리인 듯한 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방금 자신의 수하를 쳐 죽인 거지를 쏘아보고 있었다. 수하의 팔을 자르며 날아들었던 도광의 소유자는 보이지 않았다. 필시 저 나무 몸통 뒤에 몸을 숨기고 있겠지…….

 "궁가방이냐?"

 "답은 지옥에서."

 중년의 거지가 타구봉을 쥔 채로 차갑게 말했다.

 어둠 속에서 드러난 그의 얼굴은 험상궂다. 봉두난발에다 말투 또한 기괴(奇怪)하여 사람을 섬뜩하게 하는 기운이 서려 있었다.

 "건방진…… 거지 따위가 감히……."

 흑의인이 음산하게 중얼거리면서 그를 덮쳐 갔다.

 지금 상황에서는 길게 끌수록 불리한 것은 그였다. 어차피 쫓기고 있는 것은 그였기 때문이다. 적이 비밀 통로의 출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기도 했다.

 그가 중년의 거지를 덮쳐 가는 순간에 그의 뒤에 있던 자들은 방향을 틀어 비어 있는 왼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중년거지가 냉소를 터뜨렸다.

 "네 목이나 지킨 다음에!"

 냉소 일발에 검기 일섬(一閃)!

 흑의인의 솜씨는 앞선 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놀란 번개와도 같아 중년거지는 감히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가 타구봉을 휘두르고 다시 옆에서 검이 날아들어서야 평수를 이룰 정도로 상대는 고수였다.

 창! 차창…….

 사나운 드잡이 소리가 도주하는 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놈들이 이렇게 강하다니?'

 힐끔 그쪽을 본 흑의인의 눈에 놀람의 빛이 떠올랐다.

 도주하는 사람들은 약자가 아니었다.

 포대를 보호해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면 이렇듯 도주할 생각도 하지 않을 고수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가로막힐 줄이야.

 네 명이 한 덩어리가 되어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가로막는 거지들의 숫자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도주는 불가능했다.

 바로 그때였다.

 "으악!"

 "으아악……."

 흑의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지들의 진세가 비명과 함께 흐트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흑의인을 공격하던 궁가방의 고수는 심상치 않은 기세가 뒤에서 자신을 엄습해 옴을 느끼고는 놀라 옆으로 물러나면서 수중의 타구봉을 휘둘렀다.

 평범한 일격이지만 시의적절하여 상대를 치면서 일단 옆으로 물러날 수 있는 한 수였다. 강맹하기 이를 데 없는 그 한 수는 상대가 막아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서 그것만으로도 그의 능력이 이미 상승지계(上乘之界)임을 알기에 족했다.

 하지만 괴이한 느낌.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시야에 가득 차는 시리도록 찬 느낌의 손[手]!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한 아름답고 투명한 그 손을 보는 순간에 그는 온몸이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가 손을 보는 순간에 손은 가볍게 그의 가슴을 짚고 지나가 버렸으니까.

 "으악!"

 그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훌훌 그가 튕겨져 날았다.

 피분수를 뿜어내면서.

 한줄기 질풍과도 같이 검은색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그 자리를 지나치는 검은 그림자.

 원군이 온 것으로 생각하고 희색을 띠었던 흑의인들은 들이닥치는 검은 그림자를 보고 안색이 달라졌다. 적과 싸우느라 그새 한 명이 쓰러지고 나머지 세 사람이 한 덩이가 되다시피 하여 포위망을 뚫고 있던 그들은 하늘을 가르며 날아든 검은 그림자를 보는 순간,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원군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녀……!"

 앞선 흑의인의 음성은 채 입에서 다 나오지도 못했다.

 앞쪽에서 비명이 이는가 싶더니 앞에 있던 궁가방 고수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날아갔다. 그리고는 나타난 검은 그림자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그저 눈앞을 가득 채운 것은 시야를 채운 희고 투명한 손뿐.

 "크악!"

 그가 입을 딱 벌렸다.

 가슴이 진흙처럼 무너져 내렸고 그는 허깨비처럼 쓰러졌다.

 그의 뒤에 있던 흑의인의 눈에 공포의 빛이 어렸다. 흑의인은 등에 포대 하나를 메고서 뒤를 따르고 있었던지라 앞의 상황을 그대로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앞에서 그처럼 무섭게 적과 싸우고 있던 조장이 단 한 수에 죽어 나가는 것을 보자 그는 등에 메고 있던 포대를 날아드는 검은 그림자에게로 집어 던지고는 뒤도 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퍽!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뒤통수가 으스러진 채로 앞으로 엎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으으으……."

 하나 남은 흑의인이 공포에 질려 뒤로 뒷걸음쳤다.

 너울너울…….

 암흑의 나래와도 같은 흑의 자락을 펄럭이면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의 눈앞에 떠 있었다. 절고(絶高)한 경공을 시전했다 할지라도 사람이라면 잠시 내려서야 할 텐데 이 검은 그림자는 그렇지 않았다.

 너울너울 허공에 떠 있었다.

 그녀의 발 아래로는 하늘거리는 치맛자락.

 그리고 좀 더 아래 바닥에는 좀 전 흑의인이 죽으면서 내던진 포대.

 "대단하군…… 네가 명옥마녀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맨 처음 흑의인들의 앞을 막았던 거지. 맨손의 그가 앞으로 나선 것이다. 침착하던 그의 눈에도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허공에 뜬 검은 그림자.

 그녀는 얼음처럼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대신 슬쩍 손을 저었다. 아래에 있는 포대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살아 있는 듯 꿈틀, 위로 끌어올려지려 했다.

 "그럴 순 없지!"

 냉소가 옆에서 터져 나왔다.

 섬광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마치 준비하고 있던 작두를 위에서 떨어뜨리는 것만 같았다.

 검은 그림자, 반쯤 얼굴을 드러낸 독고경은 그 기세가 사나운 것을 느낀 것인지 머리카락에 감긴 미간을 찡그렸다.

 소매가 쳐들리고 투명한 옥수가 드러났다.

 귀찮은 표정인 눈에서 살기가 드러났다.

 눈앞으로 장도 하나가 가공할 도광을 뿜어내면서 날아들고 있었다.

 도강!

 도기(刀氣)를 넘어선 기운이 응축된 무서운 기세가 그녀를 향해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손이 뻗어나면서 푸르스름하다 못해 투명한 빛이 일었다. 그 빛은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너울거리면서 일어나 자신을 향해 직격해 오고 있는 도강을 향해 밀려 나갔다. 흡사 그녀의 손에서 푸르스름한 손 하나가 다시 생겨나 밀려 나가는 것만 같다.

 땅! 따당!!

 맹렬한 충돌음이 일었다.

 거치는 모든 것을 다 잘라낸다는 도강이 그녀의 손에서 뻗어난 빛무리에 주춤거렸다.

 모든 것은 찰나였다.

 도강이 섬광으로서 그녀에게 날아드는 순간에 그녀는 손을 뻗어냈고 빛무리가 일어 도강을 쳐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녀의 신형은 누가 잡아당긴 듯이 주욱 자신을 공격한 도강의 주인에게로 날아갔다. 그녀를 공격했던 궁가방 고수의 눈에 경악과 공포가 떠올랐다.

 "멈춰라!"

 방금 전에 말을 했던 맨손의 거지가 양손을 한꺼번에 휘둘러 그녀를 때려가면서 고함쳤다.

 말이야 순서정연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모든 일은 거의 한순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섭게 빨리 진행되어 독고경이 공격을 개시한 순간에 이미 그 맨손거지의 일격 또한 그녀에게 날아들었다.

 그는 궁가방의 삼호칠랑십삼구(三虎七狼十三狗) 중 삼호 가운데 하나인 장개 과대치(過大痴)였다. 원래 개방의 당주 중 한 사람으로 장법에 깊은 조예가 있었는데 개왕에게 끌려 사라진 후에 궁가방 삼호 중 하나가 되었으니 그 무공의 깊음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절세라 이름할 만했다.

 파! 파파팡!!

 맹렬한 폭음과 회오리가 그 자리에서 일었다.

 훌훌……. 독고경이 검은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가 머리를 아래로 한 채 거꾸로 뒤집혀 곤두박질쳤다. 충격을 받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렇듯 무서운 기세로 맨손의 거지, 장개 과대치를 공격해 갈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하군!"

 자신의 공세를 슬쩍, 한 손을 젓는 사이에 무로 돌려 버리면서 무서운 기세를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고 그대로 살려 공세에 싣고 있음을 보고 장개 과대치는 절로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는 크게 한입 진기를 들이마시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수십 년을 고련한 자신의 공부가 과연 명옥마녀의 일격을 감당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해 볼 심산인 것이다.

 "타압!"

 한 손은 반쯤 말아 쥐고 다른 한 손은 그 손을 싸안듯 밀어낸다. 가공할 장경(掌勁)이 형체가 있는 듯 일어 그녀를 향해 밀려갔다.

 "부딪치지 마시오!"

 방금 독고경을 공격했던 추혼도 곽유가 부르짖으며 다시 도를 휘둘러 그녀를 공격해 갔다. 그녀와 한 번 부딪쳐 본 그는 독고경의 일격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장개 과대치의 안색이 돌변했다.

 날아오고 있는 독고경과 눈을 마주했던 것이다.

 뭐라고 형언하기 힘든 힘을 가진 그 눈빛. 요기롭다는 말로 그 눈빛이 형용될 수 있을까? 그 눈을 보는 순간에 장개 과대치는 전신의 모든 힘이 쭉 빠지는 느낌에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그 한순간에 그의 진기가 흩어졌던 것이다.

 "으-윽!"

 그의 입에서 둔중한 비명이 터졌다.

 삼호칠랑십삼구 중 칠랑의 하나인 추혼도 곽유가 후려낸 도강이 독고경의 배후를 쓸어오지 않았더라면 그의 한 목숨은 그것으로 끝이 날 뻔했다.

 그가 비틀거리며 물러날 때 독고경은 냉소를 흘리며, 날아든 추혼도 곽유의 도강을 튕겨냈다. 돌아보지도 않고 한 손을 뒤로 젓는 동작으로.

 쾅!

 갑자기 폭음이 터지면서 장개 과대치가 비틀거리면서 물러났다. 그의 입에서 핏줄기가 장마철 방죽 터진 듯이 흘러내렸다.

 날아들던 독고경의 신형이 문득 주춤거렸다.

 약간의 틈이 생기자 정신을 차린 그가 전력을 다해 다시금 독고경에게 일격을 후려낸 것이다.

 그럼에도 독고경은 그것을 간단히 받아 넘겨 버렸다.

 "와아아-!"

 그제서야 틈을 노리고 개방의 고수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 깨뜨리기, 혈겁의 시작에 다름이 아니었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달려들던 개방의 거지들이 이리저리 튕겨져 나갔다.

 "물러나! 너희들이 상대할 계집이 아니다!"

 장개 과대치가 부르짖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추혼도 곽유와 함께 달려들었다.

 그나마 한순간이라도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그들뿐이었다.

 손을 쓰기 시작하자 독고경은 전혀 사정을 보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검은 옷자락을 너울거리면서 뻗어나면 누구도 죽음의 너울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단말마의 비명이 그 뒤를 따랐다.

 "손을 멈추어라!"

 호통과 함께 장내에 한 사람이 날아들었다.

 콰쾅!

 폭음 일성과 함께 독고경의 일격이 처음으로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흩어졌다.

 차가운 눈빛으로 독고경이 나타난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 손을 가슴에 세우고 독고경을 바라보는 그 사람은 바로 비밀 통로를 벗어난 황엽이었다.

 "장내를 수습하고 나머지는 타구진을 펼쳐 주변을 경계하라."

 독고경을 쏘아보면서 황엽은 굳은 음성으로 명했다.

 "나를 몰라보겠나?"

 황엽이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했다.

 일부러 진기를 돋우어 독고경에게 잘 전달하려는 것이다.

 "……."

 그의 그러한 일성은 불문 사자후와 같은 힘을 가진 것이지만 독고경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듯했다. 그녀는 차갑고 무표정한 눈빛으로 황엽을 쏘아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무표정한 눈 깊은 곳에 한 가닥 살기가 은은히 떠오름을 황엽은 볼 수 있었다.

 "정말 나를 모르겠나!"

 황엽이 소리치는 순간에 독고경은 발동했다.

 어둠의 공간을 가르며 무서운 속도로 삼 장여를 한순간에 이동한 그녀는 예의 명옥수를 뻗어왔다.

 "마교의 명옥수가 천지간에 최고는 아니지!"

 황엽이 호통 쳤다.

 동시에 그는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오른손을 뒤집어냈다.

 그의 손에서 희고 검은빛이 이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그의 손도 독고경과 같이 깎은 옥과 같이 변했다.

 누구도 물러서지 않으면 부딪침밖에 없다.

 더구나 누구도 물러설 수 없도록 무섭게 빠른 독고경의 일격이라면 부딪쳐 진공실학으로 승부를 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정상이기도 하다.

 쾅!

 폭음과 함께 풀 포기가 으스러져 날아올랐다.

 그 범위는 주변 사오 장을 휘감았다.

 쿠쿠쿠쿠…….

 용권풍(龍捲風)이라 해야 할 것인가, 가공할 위력의 일격이 온통 땅을 떨어 울렸다. 지축을 떨게 하는 굉음과 함께 그 범위 내에 있던 나무들이 뚝뚝, 허리가 꺾어져 넘어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실로 가공할 위력이었다.

 "음……."

 황엽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렀다.

 그의 앞에는 세 개의 발자국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지독하군!'

 그가 굳은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반탄의 충격도 충격이지만 그보다는 맞부딪치는 순간에 경력을 타고 거슬러 오르는 괴기(怪奇)한 힘이 더 문제였다. 내력을 부딪치게 되면 자신이 가진 힘을 내뿜어 상대를 치게 된다. 거기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절세라 이름할 고수가 진공 대결을 하게 되면 다른 편법은 허용이 되질 않는다. 그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내력의 대결을 잘 하지 않는다.

 오로지 본신 내공의 후박(厚薄)에 따라 승부가 나기에.

 그런데 이런 맞부딪침에서 쏟아낸 경력을 거슬러 오를 수가 있는 괴기한 공력이 있을 수가 있다니!

 "정말 마공이군……!"

 황엽이 중얼거렸다.

 반면에 독고경은 허공을 너울너울 춤추듯이 움직이면서 경력을 해소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황엽이 우세한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여유를 부릴 여가는 없었다.

 독고경이 다시금 그에게 덮쳐 오고 있었던 것이다.

 방금의 그 놀라운 맞부딪침에도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은 것처럼 허공을 밟으면서.

 그 속도는 전광석화와 같았다.

 "정말 아무도 몰라본단 말인가!"

 황엽이 고함치면서 다시 독고경에게 일장을 쪼개냈다.

 그의 손이 백옥처럼 변하면서 절세의 경력이 노도와 같이 밀려났다.

 "옥현귀진(玉玄歸眞)!"

 창백한 얼굴로 뒤에 물러나 있던 장개 과대치는 그제서야 황엽이 시전한 무공을 알아보고는 놀라 소리쳤다.

 옥현귀진이란 개방에서 잊혀진 무공이다. 그처럼 지옥도의 죽음을 넘나드는 수련을 거친 그였음에도 그 공력만은 재현해 내지 못했었다.

 용음십이수는 개방에서 몇 안 되는 궁극의 초식이다.

 타구봉법은 개방을 대표하는 무공이고 용음십이수는 방주에게 전해지는 호법무공 중 하나다. 타구봉법을 제압할 수 있는 현묘한 변화가 깃든 절세의 무공이었다. 옥현귀진은 바로 그러한 용음십이수에 현공(玄功)을 운용하여 손이 백옥처럼 변하는 것으로써, 그 경지에 이르면 백독(百毒)이 침범할 수 없고, 도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에 적수가 없다 하였었다.

 그런 무공을 방주인 황엽이 시전할 줄이야.

 흰 옥처럼 변한 황엽의 손과 투명한 옥으로 변한 독고경의 손이 어둠 속에서 빛을 뿜어내며 서로 맞닥뜨렸다.

 둘의 손 사이에는 일 장여의 거리가 있음에도 경력이 쏟아져 나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윽……!"

 황엽이 신음을 흘렸다.

 여전했다.

 옥현귀진 신공을 운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괴기한 기운은 독사의 혓바닥과 같이 날름거리면서 그의 손을 타고 올라왔다.

 전력을 다했음에도.

 그때 공중에서 재주를 넘으며 물러났던 독고경이 빙글 방향을 바꾸어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막아!"

 황엽이 소리치면서 덮쳐 갔다.

 주위에 있던 개방제자들이 일제히 파도처럼 그녀를 공격했다.

 그들은 개개인이 아니라 타구진을 형성하여 서로를 보호하고 있어 전과는 양상이 달랐다.

 하지만 독고경에게 있어는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있던 포대를 낚아 잡아챘다. 그리고는 오직 황엽의 공세만이 신경 쓰이는 듯 교구를 트는 사이에 훌쩍 뒤로 이 장여를 물러났다. 그런 그녀의 등과 옆구리를 향해 타구봉들이 쏟아졌다. 타구진이 이미 퇴로를 봉쇄하고 있었던 것이다.

 탕! 퍽퍽!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독고경은 교구를 꿈틀했을 따름이다.

 그녀가 고개를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바람이 불어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날린다.

 옥을 깎은 듯 아름다운 얼굴과 무심하기조차 하지만 또한 살기가 어린 아름다운 눈빛이 드러났다.

 "물러나라!"

 황엽이 달려오면서 다급히 고함쳤다.

 하지만 그 순간에 독고경은 이미 허공으로 떠올랐고 포대를 낚아 잡은 그녀의 나머지 한 손은 맑은 빛을 뿌리면서 그들을 쓸고 있었다.

 "으악!"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꼬리를 물었다.

 타구진이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진세의 변화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멈추지 못할까!"

 고함 소리와 함께 막강한 도기가 그녀의 진로를 막았다.

 땅!

 고막을 찢는 금속성.

 "크으악!"

 비명과 함께 추혼도 곽유가 마치 춤을 추듯이 잇달아 이 장여를 물러났다. 그의 수중에서 세상을 놀라게 하던 추혼도는 이미 반 토막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독고경의 신형은 검은 옷자락을 너울거리면서 그를 쫓고 있었다. 그녀가 스쳐 지나간 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피를 토하며 튕겨져 나간 다음.

 누구도 그녀의 앞을 막을 수는 없어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