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首:마계탐색(魔界探索)
-마계를 찾아가다
악마의 탄생(誕生)을 막고자 하다
태백산(太白山)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곳으로 알려졌다.
동서로 길게 누운 이 태백산은 진령산맥(秦嶺山脈)의 주봉이다. 진령은 또 다른 이름으로 종남산(終南山)이라고도 하지만 종남산은 엄밀히 말해 진령의 한 봉우리라고 할 수 있다. 봉우리치곤 너무 넓은 것이 탈이긴 하지만. 이 진령은 황하와 장강의 분수령이 되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그 길게 뻗어난 산맥의 동단(東端)에는 유명한 서악(西嶽) 화산(華山)이 있기도 하다.
산에는 사시사철 눈이 쌓여 있어 고봉의 높음을 웅변한다.
곧 겨울이다.
하지만 태백산은 이미 겨울이다.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 산속에서 계절을 논함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휘이잉…….
휘몰아치는 칼날 같은 바람에 어제부터 흩날리기 시작한 눈발이 몸서리를 치며 이리저리 도망간다. 하지만 눈발이 어디로 도망갈 수 있을 것인가. 사방을 휘돌며 산봉을 휘감고 몸부림을 칠 뿐이다.
까마득히 올려다보이는 산봉.
산정에서 중턱까지 몰아치고 있는 눈보라는 여기에 없다. 살갗을 에이는 듯한 공포스러운 삭풍이 존재할 뿐, 하지만 눈이 없다고 해서 어찌 그 바람을 예사스럽다고 하랴. 뼛골에 스며드는 바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심상치가 않다.
쒸아아앙…… 쓰쓰쓰으…….
귀신이 호곡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악마가 벽을 긁어대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사방을 메아리치니 과연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조차 알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대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는다.
스멀스멀 목덜미로 파고드는 안개는 형체가 있는 것처럼 기괴한 숨결을 불어넣으니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곳에 오려고 하지 않으리라.
"정말 기분 나쁜 곳이군요?"
유성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투덜거렸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검다.
아니, 칙칙한 검은빛이라고나 할까.
"뭔 놈의 안개가 흩어지지도 않고 형체가 있는 것처럼 이렇게 뭉쳐 있다니…… 게다가 이 바람은 정말……."
그의 투덜거림을 들으면서 한효월은 굳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본다.
정말 기분 나쁜 곳이 분명했다.
'평범한 곳이라면 결코 이런 기운을 뿜어낼 수가 없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기는 한데…….'
하지만 목적했던 곳은, 찾던 사람은 찾지 못했다.
어디가 어딘지도 찾기가 힘들다. 이곳에 이르기 위해서만도 태백산에 달려온 다음에 이틀을 소비했다.
"네가 찾아가야 할 곳은 절천애(絶天崖)다. 교장에 아마 마경의 소재가 기록되어 있다면 태백산 천마애(天魔崖)라고 되어 있을
게다. 하지만 천마애라는 이름은 교중에서 마경의 소재로 일컫는 지명일 뿐, 실제로 태백산에 사는 그 누구에게 물어도 알지
못한다. 그곳에서 불리는 이름은 절천애지."
괴노가 알려준 곳이다.
"절천애의 아래에는 마경이 있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그간 숱한 마교의 능인(能人)들이 그곳에 갔었지만 마경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간혹 마경을 찾지는 못했으되, 마기(魔氣)를 얻은 자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모두 미치광이가 되어 마교를 흔들어놓았을 뿐이다.
그런 피해가 계속되자 마경의 소재는 극비에 붙여져 교주만이 알고 교장에 기록해 놓았을 따름이지…….
마경은, 글자 그대로 마경이라 신비롭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이미 네놈은 짐작을 했겠지만 나 또한 마경을 찾기 위해서 그곳을 헤맨 적이 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마경이 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만 한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때가 아니라면 마경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다.
집에 들어가려면 문이 열려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마경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마경이 있는 곳에 있다 할지라도 들어갈 방도가 없음이 정상일 것이다.
과연 지금이 그때일까?
한효월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신만고 끝에 절천애를 찾아왔다.
괴노가 이곳을 찾은 것은 정말 오래된 일이라 이곳을 찾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길이 없기도 했다.
손을 내밀면 자신의 손가락도 보기 힘든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더욱 괴이한 것은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이다. 그 바람은 음습하면서도 칼날과 같아서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아마 금방 병이 나고 말 것 같은데, 그런 바람이 계속 불어옴에도 안개가 걷히지 않고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믿기 어려웠다.
"아무리 봐도 기분이 나빠……."
유성이 중얼거렸다.
무슨 몽환(夢幻)의 세계에 들어온 것만 같다.
그것도 지저 깊숙이 있는 지옥의 문턱 가까이.
태백산은 웅장한 산세를 가진 산이다.
그 상봉은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다.
절천애는 바로 그 상봉의 뒤에 있는 깎아지른 절벽이고 협곡이었다. 굳이 찾아들지 않는다면 아마도 평생을 두고 고심해도 들어갈 일이 없는 그런 곳이었다.
길도 없는 그런 곳을 따라 경공을 전개하여 내려왔다.
그러기를 대충 오백 장은 내려온 것 같으니 어찌 아무렇지도 않겠는가. 이젠 위를 올려다보아도 하늘은 보이지 않고 검푸른 흐름만이 하늘을 대신한다. 그렇다고 해서 칠흑 같은 어둠이 시야를 짓누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음산할 뿐이다.
금방 옆에서 귀신이 피를 흘리며 나타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공포(恐怖)!
유성은 한효월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옆을 보면 바로 옆에서, 뒤를 보면 앞에서, 앞을 보면 뒤에서 귀신이 나타날 것만 같아서였다.
"아직 오지 않았을까요?"
"그랬을 리는 없다."
한효월이 간단히 답했다.
"천무."
한효월이 부르자 천무가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예, 사숙."
"위사들의 거리를 줄여서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게 하고 흩어지지 않도록 해라.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알겠습니다."
천무가 뒤로 사라졌다.
그들의 뒤에는 불과 사오 장가량의 거리를 두고 위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좌우로 길게 늘어져 수색을 하면서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그렇게 전진하지 말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 빌어먹을 곳은 뭐가 이리 음산혀?!"
궁시렁거리면서 소매에 경력을 주입하여 앞을 쓸었던 유성은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졌다.
부릅뜬 눈.
그리고 시뻘겋게 내민 혀가 가슴까지 늘어졌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에 안개인지 얼굴인지 알기 힘든 창백한 피부. 그런 존재가 허공에 둥둥 떠 유성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성이 손을 움직여 안개를 흩트리자 바로 눈앞에서 그를 쏘아보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으랴.
"흐악! 이게 뭐냐!"
놀란 유성이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나는 순간에 '크악!' 괴성과 함께 귀신이 뒤로 튕겨졌다.
"조심해라. 적이다!"
유성의 앞을 가로막은 한효월이 무겁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앞으로 덮쳐 가고 있어서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던 유성은 얼굴이 붉어졌다.
만약 한효월이 손을 쓰지 않았다면 낭패를 당했으리라.
'망할! 이런 창피가 있나?'
이미 한효월은 앞으로 달려갔다. 워낙 안개가 짙으니 금세 모습이 어른거렸다.
"이 엉터리 귀신 놈 같으니!"
유성은 한효월의 일장에 나가떨어진 귀신을 걷어찼다. 귀신은 피를 토한 채로 널브러져 있다가 유성의 발길질에 끙, 하는 신음과 함께 다시 일 장여를 굴러가 버렸다.
"별거도 아닌 놈이……."
혀를 차면서 고개를 돌린 유성은 다급해졌다.
그 잠시의 차이로 한효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망할…… 되는 일이 없……!"
급하게 앞으로 달려가던 그는 음산한 기운이 자신에게로 엄습해 옴을 경각(警覺)하고는 놀라 앞으로 내딛으려던 발로 땅 끝을 찍으며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휘잉~!
뭔가가 방금 자신이 지나가려던 곳을 휘젓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날아간 곳에서 음산한 경력이 유성을 공격했던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은밀한지 잔뜩 긴장한 상태가 아니라면 얻어맞고 나서야 알 정도였다.
"이건 또 뭐야!"
경호성을 지르면서 유성이 손을 뒤집었다.
펑!
폭음이 앞에서 일어났고 유성은 그 충격에 비틀, 뒤로 물러나야 했다. 상대는 뜻밖에도 막강했다.
음산한 바람과 함께 적이 다시 공격해 왔다.
이미 종적이 드러났다고 생각했음인지 전혀 망설임도 거리낌도 없어 보였다. 그러자 적의 위력은 더욱 증강되어 손을 움직일 때마다 음산한 경력이 첩첩이 일어 유성을 옭아맸다.
'네놈이 날 얕잡아본다는 거지?'
내심 냉소를 친 유성은 잇달아 물러나면서 허우적거리다가 갑자기 소매 속에서 단검을 앞으로 찔러냈다.
섬광이 번뜩이면서 단검이 앞으로 무찔러 나가자 삼엄한 검기가 뛰쳐나가서 적의 장세를 잘라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유성이 난데없이 앞으로 뛰쳐 들어와 단검을 휘둘러 검기를 쏟아내자 적은 놀란 빛을 드러냈다.
"한 수가 있는 놈이군!"
냉소가 흘러나왔다.
투박한 음성이지만 그의 음성에는 여유가 있다.
훌쩍한 키에 청포를 걸치고 묘하게 생긴 관(冠)을 쓴 그는 창백한 얼굴이었다. 눈에서는 날카로운 빛이 비수처럼 빛나고 있어서 보기 드문 고수임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의미하듯 뜻밖의 공격을 당했음에도 그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긴 손톱을 칼날처럼 세워 유성의 검세를 막아낼 뿐 아니라 다른 손에서도 날카롭기 이를 데 없는 경기가 뿜어져 나왔다.
"유명조(幽冥爪)!"
그것을 알아본 유성이 놀라 외쳤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태산과 같은 권세가 청포인을 눌러왔다.
"호웃!"
다급한 외침과 함께 청포인이 옆으로 이동하면서 잇달아 소매를 휘저었다. 말은 소매를 젓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의 손톱은 이미 반 자나 되게 길어져서 가위처럼 허공을 휘저었고 음산하고도 날카로운 경력은 자신을 눌러오는 권세에 정면으로 맞서가고 있었다.
파팡!
음산하고도 맹렬한 경풍이 사방으로 밀려났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처럼 짙었던 안개가 서너 장 주위에서 비명을 지르듯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윽……!"
청포인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풍도귀왕의 좌하(座下)의 삼군 중 하나냐?"
일수로 그를 물리친 사람이 우렁한 음성으로 물었다.
천무였다.
그는 당당한 기세와 태도로써 상대를 일거에 누르며 대답을 강요했고 사실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너는 빨리 사숙을 따라가거라. 이자는 내가 처리하마."
그 순간.
스슷!
소리도 없이 천무의 좌우에서 서너 명의 귀영이 솟아나 그를 공격해 갔다.
동시에 청포인도 다시금 그를 공격해 갔다.
"감히 반딧불이 명월과 밝음을 다투려 한단 말이냐?"
천무가 껄껄 웃었다.
동시에 그가 양손을 떨쳐 좌우로 권세를 쳐내자 그 권세에 맞선 귀졸 둘이 단숨에 피떡이 되어 피를 토하고 뒤로 튕겨져 버렸다. 한 주먹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청포인은 가슴이 섬뜩해졌다.
"알았어요. 귀신은 빨리 돌려보내는 게 좋지!"
말과 함께 유성은 전력을 다해 앞으로 쏘아져 가기 시작했다.
"흐흐흐…… 제법 능력이 있다만, 앞으로 간다면 죽음뿐이다."
청포인이 음산히 소리쳤다.
하지만 그 말에 겁을 먹을 천무일 것인가.
"죽음을 겁냈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다. 너나 가서 볼일 보거라."
천무가 앞으로 나서면서 일권을 뿜어냈다.
그의 한 걸음은 정말 기묘하여 청포인은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그냥 맞설 수밖에.
"이제 보니 네놈이 거령신권 천무인 모양인데 감히 본 진군과 맞설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는 음랭히 웃어대면서 세워진 손톱에서 가공할 음풍기(陰風氣)를 뿜어내어 천무에게 맞서갔다. 그가 펼치는 유명조는 풍도귀부의 삼대절학으로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정말 천무가 말했듯이 귀부의 삼군 중 하나인 유명진군인지라 실력이 만만치 않음이 당연했다.
하지만 천무는 코웃음을 칠 따름이다.
쾅!
좀 전과 달리 폭음이 터졌다.
충격을 받은 유명진군은 가슴이 섬뜩해졌다.
천무가 또다시 일권을 쳐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일권에 다시 일권. 또 일권…….
권세는 마치 거대한 태산이 무너지듯이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연달아 사오 권을 받아낸 유명진군은 공포에 휩싸였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놈이 이런 가공할 위력을…….'
급하게 되면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고수라도 다르지 않다. 이미 충격을 받은 그는 대체 이 빌어먹을 수하들이 왜 그를 공격하지 않는지 힐끔 주위를 둘러보다가 안색이 크게 변했다.
소리도 없이 수하들이 쓰러지고 있었고 지옥의 악귀와 같이 그들을 공격하는 자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무슨 타작을 하듯 일방적이었다.
쾅!
"크윽!"
그가 피를 뿜어내면서 뒤로 잇달아 십여 걸음이나 물러났다.
하지만 천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시 다른 손을 휘둘러 일권을 질러내고 있었다. 양손이 마치 풀무와 같이 잇달아 쏟아져 나오는데 그 면면부절함은 가히 천하일절이라 부를 만했다.
말이야 긴 듯하지만 실제로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
콰쾅!
"크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일권을 막아내면서 흐트러진 그를 향해 천무가 사정없이 다시 일권을 그의 가슴에다 내질렀던 것이다. 가슴이 허물어지면서 내장 조각이 섞인 핏덩이가 유명진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찌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가 이처럼 어이없이 쓰러질 줄이야.
그가 튕겨져 나가는 것을 보자 천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모두 흩어지지 말고 내 뒤를 따라라."
전이라면 절대로 쉽게 상대할 수 없었던, 어쩌면 승리조차 장담하기 어려웠을 강적을 쉽게 처리하고도 그의 음성에는 흔들림이 없다. 기쁜 모습도 아니고 너무 당연한 일을 한 모습일 따름이다.
그들이 사라진 곳에는 다시금 안개가 몰려들었다.
한효월은 암암리에 숨을 들이마셨다.
몸을 날리는 와중에 적의 공격이 여기저기에서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미 경지를 벗어난 그의 무공으로는 위협을 느낄 정도가 되지 못했다.
적이, 그것도 귀왕의 수하들이 있다는 것은 바로 이곳에 그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가 제대로 찾아왔음을 말하는 것이라 그의 마음은 급하기만 했다.
"크윽!"
귀졸 하나가 눈을 부릅떴다.
분명히 귀왕의 수하에서 한가락 하는 자일 터이다.
하지만 한효월이 손을 쳐들자 그는 찔러왔던 귀차(鬼叉)를 부여잡고 부르르 떨고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참을 수 없는 구토에 이어 핏물이 그의 입과 코로 흘러나옴을 보며 그는 땅바닥이 일어나 자신의 이마를 치는 것을 느껴야만 하였다.
그런 그의 머리 위를 유성이 날아 넘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한효월이 손을 들고 있음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추어야 했던 것이다.
한효월은 굳은 표정으로 앞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처럼 짙었던 안개는 서서히 걷혀 시야가 회복되고 있었다. 그렇게 드러난 일대는 참으로 괴기하였다. 검고 흰, 음산한 흙과 바위. 거기에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괴목(怪木)들은 서로 엉기면서 덩굴과 같이 바닥을 기고 바위를 타고 절벽을 덮는다.
한효월이 멈춘 곳은 그런 곳의 바위 위였다.
일부러 올라간 것이 아니라 그의 앞에서 길이 끝난 것이고 그 자리에서 한효월은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뜻밖에도 앞으로는 호수였다.
이곳에 그런 곳이 있으리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호수는 컸다. 그런데 물이 실로 괴이하다. 푸르다 못해서 검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촤아아…….
물결이 일지 않는데 어디선가 모르게 물소리가 들린다.
'이노무 계곡은 도대체 뭐 이렇게 생긴 거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 유성이 한효월의 뒤에서 인상을 썼다. 뒤이어 천무의 모습도 나타났지만 그는 그들의 옆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주위를 경계하는 것이다.
호수는 반달 모양으로 퍼져 길을 막았고 너비만 십여 장은 넘었다.
그리고 그 호수의 건너 쪽으로는 다시 희미한 안개가 있어 시야를 가로막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곳보다는 심하진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보다 한효월을 긴장시키는 것은 뭔지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기운!
"마기로군……."
한효월이 중얼거렸다.
"예?"
"마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어쩌면 마경이 정말 열리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천무."
"예, 사숙!"
천무가 앞으로 달려왔다.
"주변을 경계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경계심을 늦추면 안 된다."
"사숙께서는?"
"난 이 호수를 건너가 보겠다."
"혼자 가셔도 되겠습니까?"
"내가 필요로 해서 신호하면 건너오도록 해. 호수의 너비야 십여 장이지만 주변에 바위들이 암초처럼 솟아 있으니 건너오는 데 어려움이야 없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신호를 기다리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알겠다."
한효월은 땅을 박차고 날았다.
그의 신형은 한 번의 도약으로 새처럼 날아 건너편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갔다.
'정말 사숙의 무공은 끝을 모르겠군…….'
그것을 보고 천무가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쿠쿠쿵…….
거대한 진동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긴장된 표정으로 풍도귀왕은 앞을 바라본다.
그의 앞에는 독고경이 허공에 둥둥 떠 있다. 마치 물 위에 누운 것 같은 모습으로 떠 있지만 형체는 서 있는 것이라 허공을 부유하고 있다는 것이 맞을 터이다.
마지못해 그의 명을 따랐던 독고경이었다.
하지만 태백산 경내에 들어서면서부터 사정은 달라졌다. 태백산에 들어서면서 마치 홀린 듯이 무섭게 질주하여 이곳에 당도했고, 그리고는 저렇게 둥둥 떠 부유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마기를 느꼈다면 그 근원을 찾아야 할 것이 아니냐!"
이미 반나절을 기다린 풍도귀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꾸짖었다.
…….
천천히 독고경이 시선을 돌려 그를 본다.
'음!'
그녀의 눈을 본 풍도귀왕은 부지중에 신음을 흘려야 했다.
눈빛이 달랐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 그렇지 않았는데 그녀의 눈빛이 온통 검붉었다. 너무 붉어서 검게 보일 정도라 눈에서 핏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은데 눈에서 가히 혈광(血光)이라 할 핏빛이 비수와 같이 쏟아져 그를 쏘아보는 것이다.
"기다려야 한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기다려야 한다고?"
"그렇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때가 되어야 마경이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이냐?"
풍도귀왕이 소리쳤다.
쿠쿠쿠…… 쿠쿠쿠쿠우우…….
거대한 진동.
그가 오기 전까지는 그리 느낄 수 없었던 진동. 그것은 이제 발 밑을 흔들고 그들이 있는 이 절천애의 비곡을 떨어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확연히 달라진 점. 그것은 설사 세 살 먹은 아이라고 할지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사방에 마기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와 독고경이 있는 곳은 하늘을 가리며 솟구쳐 오른 절천애의 바닥이다. 위로는 까마득한 절천애의 벼랑이 그냥 치솟아 있고 산자락이 좌우로 길게 펴져 있다. 그 뒤로는 그가 건너온 호수가 있었지만 호수를 건너 이곳을 보면 마치 악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형상을 한 곳이었다.
"때가 가까워 오고 있다……. 문이 개방되려면…… 내 몸 안의 마기가 완성되어야 한다. 혼을 불사르고 백을 날려 피를 불러야 비로소 마의 진체(眞體)를 볼 수 있으리라."
뇌리를 파고드는 중얼거림.
풍도귀왕은 음산한 기운이 자신을 끌어들임을 깨닫고 놀라 꾸짖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독고경은 핏빛 광채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보면서 요기롭게 웃었다. 그 웃음은 절가(絶佳)하고도 요악(妖惡)하여 이루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보는 순간에 혼백이 날아간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웃음.
하얀 그 웃음을 머금은 채로 독고경은 요기롭게 말했다.
"피가 필요해……. 너는 마경을 보고자 하지 않느냐? 이제 때가 가까웠다. 마경을 열려면 제물의 피가 필요하다……. 마경을 보고자 한다면 너의 피가 필요해……."
말과 함께 그녀가 양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옷자락이 펄럭이는 가운데 가공할 흡력이 일어나면서 일 장여 밖에 있던 풍도귀왕을 끌어당겼다.
그 힘은 절대로 얼마 전까지의 독고경의 것이 아니었다.
"네 이년! 네년이 감히 누구를 암해하려는 게냐! 본왕은 너의 주인이다! 그것을 잊지 말라. 너는 마경을 열고 마기를 받아들여 그것을 본왕에게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느니, 어떤 경우에도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풍도귀왕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 벽력같이 소리쳤다.
그 소리에는 그가 평생을 기울여 수련한 귀공(鬼功)이 스며 있어 가공할 마기의 침습으로 인해 마녀로서 홀로 존재해 가던 그녀의 뇌리를 온통 헤집어놓고 말았다.
"전달하기 위해 존재라고?"
그녀가 머리를 흔들더니 중얼거렸다.
"그렇다! 너는 본왕의 종이며, 본왕이야말로 마계의 주인이 될 것이고 마경의 마기를 받아들여 영세제일존으로 세상을 지배하며 마교천하를 이루게 될 것이니 너는 절대로 나를 거역할 수 없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풍도귀왕이 소리쳤다.
그의 음성 하나하나에는 치가 떨리는 사기로 충만했고 그것은 그가 이미 펼쳐 두었던 마법의 힘을 되살리기 위해 사용되었다. 천군만마와 싸우는 것보다 힘든 눈싸움!
…….
두 사람의 사이에서 가공할 마기와 사기의 소용돌이가 피어올랐다. 일대의 마기가 더욱 짙어져 펑펑! 이곳저곳이 퍽퍽 갈라지면서 돌덩이들이 튀어 올랐다.
초목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이곳.
일각에 가까운 정말 긴 시간이 흐른 뒤.
독고경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마존을 위한 통로……."
그녀의 입에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풍도귀왕은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 말이야말로 그녀의 뇌리에 심어놓은 그의 지령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너는 본왕의 종이니 영원히 본왕의 수족으로서 천마군림을 위한 생을 살아야 할 것이며 영생하여 천마의 수호신이 되리라."
"천마의 수호…… 세상을 마로 물들이라……."
문득 독고경이 미간을 찡그렸다.
"피가 필요하다…… 마경을 열기 위해서……. 절로 열리기를 기다리려면 앞으로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 마경이 피를 원하고 있다……."
그녀의 눈빛이 풍도귀왕의 뒤에 서 있는 귀부의 고수에게 향한다.
그 눈빛을 받은 귀부의 고수는 놀라 안색이 창백해졌다.
"카아……."
독고경이 괴기한 소리와 함께 그를 가리키자 그를 비롯한 풍도귀왕의 뒤에 둘러서 있던 고수들이 일제히 귀를 틀어막으며 전신을 떨었다.
독고경이 양손을 뻗었다.
"크아악……!"
그가 갑자기 전신을 떨면서 비명을 질렀다.
두 눈을 부릅떴다.
부릅뜬 두 눈에서 핏물이 솟구쳐 나왔다. 아니,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고 함이 옳을 터이다. 벌린 입에서도 코에서도 귀에서도 칠공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왔고 독고경이 가리킨 그의 심장 어림이 터지면서 심장이 튀어나와 담고 있던 핏물을 아낌없이 바닥에다 쏟아냈다.
그런 모습으로 그는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휘청거리면서 독고경에게로 걸어가려고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나서다가 앞으로 쓰러졌다. 그 옆에 있던 자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둘 풍도귀왕이 데려왔던 자들이 그렇게 쓰러졌다.
"사, 살려주세……."
누군가의 신음, 호소가 풍도귀왕에게로 들려왔지만 얼굴을 일그러뜨린 풍도귀왕은 신음을 흘리면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누군가가 해야만 될 일임을 그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그그그…….
괴이한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
그들이 쏟아내는 핏물이 땅바닥에서 흐르거나 고이는 것이 아니라 모래 위에다 흘린 것처럼 남김없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지축을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쿠쿠쿠쿠쿠…….
눈앞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현상이 나타났다.
거대한 소용돌이와 함께 눈앞 절천애의 절벽이 허물어지면서 괴기한 형태의 동굴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검붉은 마기가 줄줄이 쏟아져 나왔고 주변이 온통 붉게 물들면서 공포스러움이 세상에 가득 찼다.
쿠쿠쿠…….
하늘 저 멀리에서 뇌성이 우는 듯하더니 하늘이 어두워졌다.
동굴은 동굴이되, 눈앞에서 절벽이 갈라지자 그 형상은 실로 공포스럽고도 괴이하여 악마가 입을 벌리는 것 같아 보였다. 지축을 울리는 가운데 검붉은 기운이 핏빛 광채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마경(魔境)!"
그것을 본 풍도귀왕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삼켰다.
전설은 있으되,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마경이 정말 그의 눈앞에 그 공포스러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까아아아-!"
독고경이 그 앞에서 전신을 떨었다.
사시나무 떨듯 전신을 떠는 그녀의 몸 전체를 혈광이 감싸고 있었다.
"마기를 받아들이고 있군……."
그것을 본 귀왕이 소리쳤다.
동시에 그는 바람처럼 앞으로 달려가 독고경의 등을 쳤다.
"너는 나의 종이다!"
심혼을 파고드는 외침.
동시에 그는 독고경의 머리에다 손을 얹었다.
"잊지 말거라. 너는 나의 종임을! 천마군림할 이 세상에 유일존은 오직 본왕 혼자임을……. 너는 마교의 유일한 호교신(護敎神)으로서 남게 되나니 네 스스로 마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귀마호혼대법(鬼魔呼魂大法).
천마대법에서 파생되어 발전해 나간 이 대법을 펼치지 않는다면 후일, 독고경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마기를 받아들여 명옥지신을 완성하게 된다면 스스로 마의 종이 되어 누구의 지휘도 받지 않게 되니 이는 전혀, 귀왕이 원하는 바가 아닌 것이다.
마경을 찾는 것은 그 마기를 받아들여서 세상을 지배코자 함이기에.
"꺄아아아……!"
독고경이 두 팔을 쳐들며 기성(奇聲)을 질렀다.
붉은 빛이 파도처럼 그녀에게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것은 모래 속에 물이 스며들 듯이 독고경의 전신으로 빨려 들어간다.
구구구우구우…….
거대한 중얼거림과 함께 동굴의 크기는 더욱 커졌다.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것 같던 동굴이 이젠 코끼리가 들어갈 만하게 커졌다.
쏟아져 나오는 마기의 양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많았다.
"들어가거라! 진정한 마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마경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이것은 마경의 외기(外氣)이니 전신이 마기에 잠기게 되면 비로소 안으로 들어가 마인이 될 수가 있다!"
그녀의 뒤에서 귀왕이 명했다.
"끄으으…… 알…… 았다."
그녀가 휘청거리면서 가공할 마류(魔流)를 뿜어내고 있는 마경을 향해 한 걸음씩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출렁이는 붉은 빛 가운데 소용돌이 속으로. 전신이 공포스러운 혈광에 잠겨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멈춰라!"
천둥치듯 들려오는 호통 소리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