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L]단수지벽(斷袖之癖) 1-무명장야(無明長夜) (1/10)

무명장야(無明長夜)

젊은 태의(太醫)는 침상 옆에 앉아 환자의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 얇고 품이 낙낙한 소맷자락 아래 상처투성이 맨손이 드러났다. 일단 약물에 적신 깨끗한 천으로 살갗을 가볍게 닦아 내어 소독했다.

의원으로 일하며 이런저런 환자들을 보았지만, 그에게조차 눈앞에 있는 이의 용태는 몹시 심각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었다. 아무리 젊고 건강한 상태였다 한들 이렇게까지 몸이 철저히 망가지면 심한 후유증이 남게 마련이다. 아마 이 청년의 남은 생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런.”

얇은 장갑을 낀 손으로 옷깃을 조심스럽게 들추어 목에 난 상처의 상태를 살피다 말고, 의원은 작게 혀를 찼다. 쇄골 부근이 맹수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여린 살 아래 얼룩덜룩한 울혈이 생기고, 피부가 짓이겨지고 살점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다. 옷깃에 피와 진물이 엷게 배었다. 차라리 칼에 베인 상처가 나아 보일 지경이었다.

환부를 보기만 해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본인은 얼마나 아팠을까 싶었다. 의식을 잃고 죽은 듯 누워 있는 환자의 얼굴에 절로 눈이 갔다.

“…….”

하지만 그는 곧 불에 덴 듯 화들짝 시선을 떨어뜨렸다. 웃전으로부터 엄명이 있었다. 감히 저 청년의 얼굴을 필요 이상으로 빤히 쳐다보아서도 안 되고, 맨살을 직접 만져서도 안 된다고. 누구에게도 이곳의 위치에 대해 알리지 말고, 이곳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발설하는 즉시 목숨이 달아날 거라고.

참으로 기이한 명이었다.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태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명에 따랐다. 황궁에 발을 들인 이들은 그래야 했다. 웃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곧 도리고 법도였다.

이 환자 또한 하나부터 열까지 묘했다. 기껏해야 서른, 적게 잡으면 스물셋이나 넷쯤으로 보였다. 얼굴만 보아서는 황도의 아가씨들을 숱하게 울렸을 것 같은 미청년인데, 몸에는 수없이 많은 흉터가 있었다. 술잔이나 붓보다 무거운 건 들어 본 적 없을 것처럼 생겼으면서 손에는 투박한 굳은살이 가득했다.

그러나 황궁 정세에 어두운 그로서는 이 청년이 대체 누군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갓 등용된 말단 신참인 그는 높으신 분들을 직접 뵙고 치료하기는커녕 매일 탕제실에 틀어박혀 약재나 달이는 신세였으므로.

평인 남성이니 후궁은 아닐 테고, 황족이었다면 이렇게 외진 폐가에 홀로 방치되어 있을 리가 없을 테고. 황궁의 암투에 휘말려 희생된 불운한 피해자라면……. ‘웃전’이 태의를 보내 직접 치료하라 명했을 리가 없을 터였다.

“치료나 마저 하자.”

태의는 곧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쳤다. 때로는 궁금증을 품는 것조차도 독이 될 수 있는 법이었다. 쓸데없는 호기심은 접어 두고, 그는 자기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정체불명의 환자를 비밀리에 진료하러 다녀오는 날이면 그는 모든 당직과 잡무에서 제외되었다. 태의원의 수장, 수의(首醫)가 직접 명한 일이니 다른 선배 태의들도 아무런 토를 달지 못했다. 게다가 그때마다 양손에 가득 찰 만큼의 금전이 주어졌다. 이 정도면 말단 태의가 받는 봉급을 훨씬 상회했다. 아무리 신참이라 하나, 그는 전국의 의원들 중 가장 총명하고 유능한 이들이 모인다는 태의원 소속이었다. 그 돈에 입막음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는 환자의 상처에 연고를 살살 펴 발랐다. 직접 만지는 것은 허락되지 않으므로, 자그마한 솜방망이 끝에 약을 발라 톡톡 두드리는 식이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젊은 나이에 참 안됐다 싶었다. 하기야 황궁은 원래 이런 곳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만 화려하고 엄숙해 보일 뿐, 그 뒤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피가 흘렀다. 갓 열 살이 넘은 어린 궁인 아이가 음모에 휘말려 죽어 나가기도 하고, 식솔이 줄줄이 딸린 가장이 하루아침에 목이 잘리기도 했다.

“몇 번을 진찰하러 왔어도 깨어 있는 걸 한 번도 못 봤는데. 벌써 정신은 저승에 간 것 같구먼. 이렇게 몸만 살아 연명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쯧쯧.”

어차피 여긴 그와 환자 단둘뿐인 데다 환자는 의식 불명 상태이니 혼잣말을 해도 상관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느라, 그는 힘없이 감겨 있던 환자의 눈꺼풀이 움찔 떨리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손톱이 뽑혀 나가 시뻘건 생살이 드러난 손가락 끝에 연고를 바르는데, 상처투성이 손이 솜방망이를 느닷없이 덥석 움켜쥐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잔뜩 갈라지고 쉬어 버린 목소리가 들렸다. 혼수상태라 믿었던 환자가 멍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창백한 얼굴 위로 새카만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으아아악!”

태의는 그만 자신의 본분도 잊고 꼴사납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연고가 듬뿍 묻은 솜방망이가 툭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 * *

황제는 굳게 닫힌 나무 문을 열고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렇다 할 가구조차 없는 휑한 방의 한쪽 구석, 덩그러니 놓인 침상 위에 청이 누워 있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 걸음으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청은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살아 있기는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안색이 창백했고,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아 놓았다.

그는 청의 위로 스르르 고개를 숙였다. 점차 간격이 좁아졌다. 길게 드리운 속눈썹 아래, 개암 빛깔의 눈동자가 한 번의 깜빡임조차 없이 청을 응시했다. 잠든 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까지 서서히 다가갔다가, 황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훌쩍 고개를 들었다. 청에게서 희미한 약초 냄새가 났다.

혹시나 태의가 청의 얼굴을 알아볼까 봐 일부러 황궁에서 일한 경력이 짧은 신출내기를 골랐고, 혹여나 더러운 몸뚱이를 청에게 들이밀기라도 하면 곧바로 알 수 있게 일부러 양인을 골랐다. 다른 양인이 내뿜는 역겨운 향이 조금도 묻어 있지 않은 걸 보니 그자는 명을 철저히 지킨 모양이었다.

청에게는 황제뿐이었다. 황제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유능한 책략가이자 황제의 제일가는 충신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무의미한 겉치레일 뿐이었다. 예술과 풍류를 즐기던 명문가의 금지옥엽 도련님은 더 이상 없었다. 그 자리에 인간 같지 않은 무미건조한 낯의 대장군만 남았다.

황제에게 방해가 된다면 제 가족조차 망설임 없이 제거했다. 일에 파묻혀 그 누구와도 깊게 어울리지 않았다. 선황을 끌어내리고 지금의 황제가 자리에 오른 후, 제국은 점차 자리를 잡아 갔다. 하지만 그만큼 청은 점차 피폐해졌고 고립되었다.

“왜 쓸데없는 짓을 했어.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그가 황후를 사랑했다니. 그것도 구애를 거절당하자 눈이 뒤집혀 상대에게 칼을 휘두를 만큼. 처음에는 그저 우스웠다. 우습고 같잖았다. 그런데 곱씹어 볼수록 속에서 뒤틀린 감정이 울컥울컥 치솟았다.

청은 평생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고 황제만을 위해 살면 되었다.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채로, 고장 난 인형처럼 황제만 바라보는 것. 그것으로 족했다. 그런 주제에 감히 다른 이에게 손을 뻗고, 다른 이를 마음에 담았다 말하는가. 그것도 제국의 황후를. 가증스러웠다.

“그냥 죽이는 게 더 나을까.”

황제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청이 죽으면 황후를 연모하니 어쩌니 하는 소리는 더 이상 못 할 테니까. 황후와 환열기를 보내라느니, 후궁들에게도 가끔 찾아가 보라느니 하는 쓸데없는 잔소리도 안 할 거고.

몸에 흠을 남기지 않고 곱게 숨을 끊은 다음,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피와 장기를 싹 빼고 그 자리에 방부제를 주입해서 유리 관에 전시해 놓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옷도 마음에 드는 것으로 내킬 때마다 갈아입힐 수 있고.

유리 관 속에 담길 청을 위해서 비단옷을 지을까? 무슨 색 비단이든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청은 온실 속 화초로 귀하게 자랐던 옛날이나 온갖 고초를 겪은 지금이나 얼굴 하나는 줄곧 고왔으니까. 저 해사하게 잘생긴 얼굴에 속아 청을 얕보다가 그의 칼질에 목이 날아간 자만 해도 두 손으로 다 못 셀 정도였다.

황제는 침상 옆에 우뚝 서서, 혼절한 건지 잠든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곤히 눈을 감은 청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고민이 스르르 흩어졌다. 그는 손을 뻗어 베개 위에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다정하게 느릿느릿 쓸어 보다가, 한순간 머리채를 확 움켜쥐고 고개를 들게 했다.

“예락. 일어나야지.”

청의 파리한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그 사이로 들릴 듯 말 듯 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황제는 가차 없이 손을 휘둘렀다. 우악스레 팽개쳐진 청의 옆머리가 침상 모서리에 퍽 부딪혔다.

“주군이 왔는데 인사도 안 하나?”

“폐, 폐하. 죄송합니다…….”

그제야 청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는 발갛게 달아오른 한쪽 뺨을 추스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비칠비칠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나무 바닥에 무릎을 꿇으려 침상 아래로 내려서는데, 황제가 그를 제지했다.

“굳이 일어날 필요까진 없어. 그대는 환자 아닌가. 아픈 이에게 예를 차리라 할 만큼 무정하진 않아.”

황제는 빙긋 웃으며 관대한 척 아량을 베풀었다. 청은 넋이 나간 듯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깊게 숙였다. 긴 머리채가 앞으로 흘러내렸다.

“성은이 망극합니다.”

“그래서, 그자와는 무슨 이야기를 했지?”

“예?”

반사적으로 대답하긴 했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곧장 파악되지 않았다. 사방이 가시나무로 둘러싸인 이름 모를 전각에 갇힌 후, 청은 줄곧 고열에 시달리며 깜빡깜빡 정신을 놓았다. 여기가 어딘지, 자신은 왜 처형장이 아닌 이곳에 끌려와서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인지. 그런 것들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모든 게 명확하지 않았다. 누군가 옆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드문드문 정신이 들 때면 식은땀 범벅이 된 옷이 보송보송하게 말라 있거나, 진물이 질질 흐르던 상처가 말끔하게 닦여 있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 낯선 의원의 얼굴이 어렴풋이 어른거렸다.

“내가 다시 물어야 하나?”

황제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청은 움찔하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잘못을 빌었다.

“죄송합니다. 신이, 아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말을 섞지 않겠습니다.”

습관적으로 신이라는 말을 썼다가 황급히 고쳤다. 청은 더 이상 황제의 신하가 아니었다. 그의 신뢰를 배반하고 황후를 죽이려 한 극악무도한 죄인일 뿐이었다.

“뭘 그리 사과를 하나. 꼭 못 할 짓이라도 한 사람처럼. 이야기 좀 나눈 게 대수인가? 나는 그저 궁금해서 물은 것뿐인데. 그대가 태의와 무슨 주제로 담소를 나누었는지.”

그는 열이 덜 내려 지끈거리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인적 없이 황량한 전각에서 있었던 일을 황제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겨를조차 없었다. 답이 늦으면 황제가 노여워할지도 몰랐다. 무슨 말을 했었지? 나를 치료하러 왔던 그 의원과 무슨 말을…….

“황후의 안부라도 물었나?”

뭐라도 말을 쥐어짜 내려 힘겹게 달싹이던 청의 입매가 딱 굳었다. 황제의 말을 듣는 순간 기억의 파편이 떠올랐다.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며 혼수상태를 오가던 와중에, 무의식적으로 그리 물었던 것 같다. 황후 전하께서는 어떻게 되셨냐고.

“맞나 보군?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보니.”

“…….”

“안부는 무슨. 황후는 그때 이미 그대의 칼에 맞아 갈비뼈가 으스러지고 오장육부가 갈라졌는데.”

일부러 상대의 죄책감을 후벼 파는 것 같은 노골적인 언사였다. 그렇지 않아도 파리하던 청의 얼굴에서 남은 혈색이 싹 빠져나갔다.

“황후가 안장된 묘 앞에서 참배라도 하고 싶은 건가? 그것도 괜찮겠군. 그대를 원망하며 죽어 간 황후의 시체가 관 안에서 이제 슬슬 썩기 시작했을 테지. 반으로 쪼개진 몸뚱이를 억지로 끼워 맞춰 수의를 입히느라 염습하는 관리들이 꽤나 고생했던 모양이야.”

황제는 끔찍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줄줄 읊었다. 한때 자신의 반려였던 이에 대해 말하는 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태연자약한 태도였다.

“제, 제가……. 저는…….”

청이 이를 악물며 말끝을 흐렸다. 속이 뒤집히고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적나라하게 지적당하자 환멸이 들었다. 그깟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대죄를 범한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당장이라도 죽고 싶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예락, 옷 벗어.”

청이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넋을 잃은 듯 탁해진 눈동자가 느리게 황제를 향했다. 그 표정을 보자 입 안에 맴돌던 갈증이 한층 심해졌다. 눈 안쪽이 확 뜨거워지며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본능이 배 안쪽에서부터 끓어올랐다. 저 겁에 질린 초식 동물 같은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되었다.

이윽고 방 안에 시원하면서도 농염한 향이 가득 찼다. 정욕이 진득하게 배어나는 여향이었다. 음인이면 누구나 그 향에 흠뻑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뒤를 적셨을 정도로. 하지만 청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향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저 경악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도 그랬다. 황제가 검과 비녀를 넘겨준다는 명목으로 가까이 다가가 향을 듬뿍 묻혔는데도, 청은 전혀 눈치재지 못하고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황제가 그런 청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래, 이것도 좋았다. 나쁘지 않았다. 황제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청을 응시하다가, 상대와 눈이 마주치자 살며시 눈웃음을 지었다.

“그대가 황후를 죽였으니, 마땅히 그의 역할을 대신해야지?”

청이 입고 있던 얇은 침의의 허리끈이 풀렸다. 긴 손가락이 다가와 어깨에 느슨하게 걸쳐 있던 옷자락을 툭 밀어 떨어뜨렸다. 천이 어깨와 허리, 엉덩이의 맨살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제 청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차림이 되었다. 의관을 모두 갖춘 황제의 앞에서. 청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지독하게 수치스러웠다.

황제는 잠시 그를 그대로 세워 두고 감상했다. 청은 감은 눈을 차마 뜨지 못했다. 입 안쪽 살을 자근자근 씹으며 모멸감을 견뎠다. 캄캄한 시야 너머로 맨살을 핥는 듯한 집요한 시선이 오르내렸다. 멍이 덜 빠져 온몸이 얼룩덜룩하고, 곳곳에 시뻘건 상처가 있고, 붕대를 덕지덕지 감아 둔 탓에 몹시도 볼품없을 텐데. 중환자에 반병신이 된 평인 사내의 몸이 볼 게 뭐가 있다고, 황제는 청의 나신을 한참이나 샅샅이 훑어보았다.

“직접 넣어 봐.”

황제가 손등으로 청의 뺨을 툭 건드리며 나른하게 채근했다. 청이 반사적으로 흠칫했다.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폭력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폐하, 제발.”

“넣어 보라니까. 아니면 좆을 넣는 것까지 일일이 해 줘야 하는 건가? 저번처럼 내 밑에 깔려서 다리를 벌리고 싶어서?”

“제발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전 폐하의 밤 시중을 들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환열을 해소할 상대가 필요하신 거라면 부디 다른 음인을……!”

“다른 음인?”

황제는 등 뒤의 벽에 상체를 느슨하게 기대며 웃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곧고 반듯하게 뻗은 손마디 사이사이에 검은 머리채가 엉켰다. 황제는 큼직한 손으로 청의 뺨과 옆머리를 감싸 그대로 침상에 처박았다. 청은 제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풀썩 고꾸라졌다.

“예락 그대는 정말이지, 내 화를 돋우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아. 포주라도 된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 내 앞에 들이밀던 버릇을 아직도 못 버렸군그래.”

“큭…….”

“그대가 못 하겠으면, 흙에 묻힌 황후를 끄집어내서 시간(屍奸)을 할까?”

몹시도 가혹하고 잔인한 말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충격에 젖어 침상에 널브러진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청은 비틀비틀 일어났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황제의 겉옷 매듭을 향해 떨리는 손을 뻗었다.

“하겠…… 하겠습니다. 제가…….”

청은 손을 벌벌 떨며 황제의 옷을 하나하나 풀어 헤쳤다. 황제는 어떻게 하나 보자는 태도로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곧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가 퉁 튕겨져 나왔다. 굵직한 기둥이 고개를 치켜들고 뻣뻣하게 일어서서는, 귀두 끄트머리에 맑은 액체가 맺혀 있었다. 청은 어쩔 줄 몰라 그대로 얼어붙었다.

“예락. 구경은 그쯤 하고, 그대 할 일을 해. 보기만 한다고 교합이 이루어지나?”

“…….”

“내키지 않으면 그만둬도 좋아. 나는 굳이 그대가 아니어도 되니까. 썩어 가는 시체에 박는 건 처음인데. 죽고 나서까지도 황후를 끔찍이 총애했던 황제로 역사에 길이 남겠군.”

청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뜨끈뜨끈하게 열이 오른 기둥의 밑동을 붙잡고, 안쓰러울 정도로 떨면서 황제의 위에 다리를 벌리고 올라탔다. 젖은 귀두가 엉덩이 사이를 꾹 눌렀다. 그러나 아무런 전희 없이 무작정 메마른 구멍에 들이민다고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귀두가 꽉 닫힌 입구를 아래에서부터 치받아 오는 탓에,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거북하고 아팠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성기가 삽입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청의 잇새로 괴로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황후를 쓰러뜨려 범할 생각에 발정이 나서 달려들 때는 언제고, 이제 역으로 범해질 처지가 되니 곤욕스러운가?”

“헉, 저는, 결코 그런 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음인의 뒷구멍에 좆질 한번 해 보겠답시고 눈이 뒤집혔지 않나. 저도 꼴에 사내랍시고 자지를 벌떡 세우고. 그렇지?”

“아닙니다…….”

청의 아래턱이 파르르 떨렸다. 황제는 피식 웃고 자신의 위에 어정쩡하게 올라타 있던 청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갖은 고초에 시달린 며칠 사이에 청은 부쩍 야위었다. 그래도 잔근육이 잡혀서 제법 무인 티가 나던 허리가 지금은 확연히 가늘어졌다. 버들가지처럼 호리호리하던 소년 시절처럼.

“그렇지?”

황제가 되물었다. 그와 동시에 허리를 움켜쥐고 아래로 힘껏 내려앉혔다. 뻑뻑한 구멍을 뚫고 귀두가 틀어박혔다.

“흐아악!”

“맞잖아. 그렇지?”

“아니, 아닙…… 헉!”

황제의 손에 다시금 힘이 들어갔다. 청이 괴로워하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우악스럽게 골반을 짓눌렀다. 청이 고통에서 벗어나려 몸을 이리저리 뒤트는데도 성기는 집요하게 박혀 들어갔다.

“그렇지?”

아까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어조였다. 호박색 눈을 요요히 빛내며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황제가 소름 끼쳤다. 그 와중에도 두툼한 귀두가 끊임없이 내벽을 꾸역꾸역 넓히며 파고들었다.

결국 눈물이 터졌다. 청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황제의 시야에 고스란히 드러난 상처투성이 맨어깨와 등이 걷잡을 수 없이 들썩였다. 헐떡이는 숨소리 사이에 울음기가 섞였다.

“네, 흐, 윽, 네…….”

황제는 청의 허리를 휘감아 성기 위에 억지로 눌러 앉혔다. 퍽. 남은 기둥 부분이 무자비하게 꽂혀 들어갔다. 뻐근한 충격이 아랫배 안쪽을 후려쳤다. 서로의 샅이 맞닿은 것이 느껴졌다.

얼굴이 새하얘진 청이 황급히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밭은 호흡이 기도를 넘어가지 못하고 턱턱 걸렸다. 입을 가린 손등 위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황제는 문득 깨달았다. 곧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면서, 제발 그만해 달라고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애걸복걸하면서. 청은 싫다는 말만큼은 끝내 하지 않았다.

“왜 싫다고 하지 않지?”

황제가 청의 팔목을 감싸 쥐었다. 필사적으로 입을 막은 손을 끌어 내리고 재차 물었다.

“응? 왜 그대는, 싫다는 말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아?”

“제게……. 헉, 흐윽.”

배 안 가득 틀어박힌 성기 때문에 제대로 숨을 못 쉬고 있던 청이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희멀건 얼굴이 식은땀으로 척척하게 젖고, 눈가가 벌겋게 물들었다.

“제게 싫다고 할 자격이 있습니까?”

황제는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청이 참담하게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지친 음성으로 쐐기를 박았다.

“싫다고 하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불길한 침묵 끝에 황제가 조용히 대꾸했다.

“그래, 달라지는 건 없지.”

그는 끝까지 쑤셔 넣었던 성기를 단번에 쑥 뺐다. 비좁기 그지없는 내벽에 억지로 물려 있던 기둥이 속살을 죄다 긁으며 빠져나왔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청이 그만 중심을 잃고 이부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황제는 소맷자락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술잔 크기보다도 더 작은 유리병 안에 투명한 기름이 차 있었다. 뚜껑을 열자 향긋한 냄새가 났다. 최음 성분이 있는 윤활유였다. 시침을 드는 비빈들이 혹여나 긴장해서 황제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몸을 데우고 흥분을 고조시키기 위해 쓰였다.

약효가 몹시 강력한 탓에 보통은 다른 향유와 섞어 썼다. 그 정도로도 바짝 굳어 있던 음인을 환열기라도 맞은 것처럼 요염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청을 위해 친히 최음제를 희석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원액이 가득 든 병을 손아귀 안에서 느긋하게 굴렸다.

황제는 청에 한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그의 면전에서 황후를 연모해서 죽였다 어쨌다 지껄이는 걸 이제껏 살려 둔 것만 해도, 다른 이에 비하여 파격적으로 관대한 처사였다. 그러니 이것까진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공포에 질려 벌벌 떨면서도 말을 아끼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청을 보자 심사가 뒤틀렸다. 언제까지 고집을 부리며 고난을 감내하는 수행자 같은 얼굴을 할 건지 궁금해졌다.

“그건…….”

청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최음제와 일반 향유는 겉으로 차이가 나지 않았기에, 그는 유리병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대 말마따나, 그대는 싫다는 말을 할 자격이 없으니까. 그러니 다른 말을 들어 보려고.”

“폐하, 잠, 잠깐, 폐, 헉!”

허벅지가 우악스럽게 벌어졌다. 엉덩이 사이에 차갑고 단단한 것이 닿았다. 거부 반응을 보일 새도 없었다. 맑은 기름이 가득 찬 유리병이 입구에 통째로 꽂혔다.

* * *

침상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열 손가락에 붕대가 칭칭 감긴 청의 손이 이불 위를 바르작대며 기었다. 식은땀이 잔뜩 맺히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 앗, 으응…….”

최음제를 아랫구멍에 꽂아 점막에 직접적으로 쏟아부은 탓에, 약효가 몹시 빨리 돌았다. 몸이 너무 뜨거웠다. 은근한 불길에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특히 약병이 통째로 틀어박혔던 구멍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간지러워졌다.

“흐으……!”

침상에 깔린 이불보에 청의 성기가 쓸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귀두에서 액이 질질 흘렀다. 전신의 감각이 끔찍하게 예민해져서 천이 살갗에 스치는 감각조차 참지 못했다. 청은 젖은 이불에 뺨을 비비며 흐느꼈다.

황제는 그 광경을 무심하게 흘긋 바라보고 의관을 정돈했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풀렸던 허리끈을 다시 조여 맸다. 청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을 발그스름하게 물들이고 침상을 구르며 괴로워하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간지러움이 갈수록 심해졌다. 피부 아래에 용암이 흐르는 듯 괴로웠다. 청은 저도 모르게 스스로의 목덜미를 벅벅 긁어 내리고 할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지독한 가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흐윽…… 하아, 헉, 허억.”

간신히 지혈하여 붕대로 동여매 놓은 상처가 도로 터졌다. 새하얀 붕대 아래에서부터 벌겋게 핏물이 번져 올라왔다. 하지만 청은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듯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해를 반복했다. 자꾸만 숨이 가빠져 가슴이 가파르게 들썩였다.

황제는 권태로운 무표정으로 그를 빤히 주시했다. 그러다 입매만 올려 피식 웃었다.

“별짓을 다 하는군.”

그는 위엄 있고 단정한 황제의 복식 위에 마지막으로 황룡이 수놓인 비단 장포를 걸쳤다. 무미건조한 시선이 청을 향했다. 한껏 달아오른 뺨을, 흠뻑 젖은 눈가를, 하도 깨물고 씹어서 피가 맺힌 입술을 훑었다.

“예락, 그렇게 좋은가?”

“잘못했습니다, 폐하, 제발.”

“제발, 뭘?”

황제가 침상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그는 태연자약하게 손을 뻗어 잔뜩 열이 오른 청의 성기를 툭 튕겼다.

“뭘 해 달라는 거지?”

콰당! 큰 소리가 났다. 청이 반사적으로 푸드득 몸서리를 치며 황제의 손길을 피해 물러서다 그만 침상 아래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땀이 밴 나신에 흰 이불을 어설프게 감은 채, 그는 무력하게 바닥에 고꾸라져 신음했다.

“헉…….”

“읍소를 할 거면, 바라는 걸 똑바로 말해야지. 응?”

“흐, 흐윽. 부디 용서를, 제발…….”

“그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군. 숨도 못 쉬고 울어 대기만 하니.”

황제는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린 듯 수려한 눈매가 일그러졌다. 팔짱을 끼고 청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는 아까까지 청이 널브러져 있던 침상에 털썩 걸터앉았다.

“박아 달라고 해 봐.”

거친 숨이 색색 새어 나오고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옆얼굴을 바닥에 대고 쓰러진 청이 어렵사리 고개를 돌렸다. 기울어지고 일그러진 시야에 황제가 들어왔다. 침상에 앉아 자신을 빤히 지켜보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황제는 엷게 웃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긴 속눈썹이 눈매 위로 사뿐히 드리웠다.

“‘폐하, 구멍 안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부디 좆을 처박아 후장이 헐고 좆물을 질질 쌀 때까지 쑤셔 주십시오’ ……이게 그리 어렵나?”

나긋나긋하고 나른한 목소리를 빌어 음탕한 말이 거리낌 없이 쏟아졌다. 정말로 미친 것 같은데, 이래선 안 되는데, 청은 그 말에 한층 더 흥분하고야 말았다. 황제가 말한 대로 열에 들떠 발씬거리는 구멍을 엉망진창으로 휘저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 뇌리를 잠식했다. 귀두에서 뚝뚝 떨어진 액체가 바닥을 적셨다.

결국 그는 이를 악물고 바닥에 쿵 소리가 나도록 이마를 찧었다.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한 처절한 발악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정신이 나가 황제에게 자신을 범해 달라고 빌게 될 것 같았다. 곧 이마에 시뻘겋게 피가 맺혔다. 황제가 시큰둥하게 턱을 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해서 어느 세월에 숨이 끊어지겠어.”

“폐, 하…….”

“예락 그대는 역시 너무 사람이 물러. 머리를 찧어 죽고 싶은 거라면 확실히 해야지. 사람 목숨이라는 게, 의외로 질기거든.”

숨길 수 없는 음산함이 물씬 풍기는 말이었다. 하지만 청은 그 말뜻을 헤아려 볼 겨를조차 없었다. 그는 황제의 앞에서 알몸으로 쓰러져 있다는 부끄러움도 잊고 몸부림쳤다. 절박하게 헐떡이며 제발, 제발, 하고 의미 모를 애원을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는 결국 배 속을 불사르고 신경을 갉아먹는 지독한 열기에 졌다. 눈이 풀리고 입가에서 타액이 뚝뚝 흘러 떨어졌다. 덜덜 떨리는 손이 스스로의 뒤로 향했다.

“흣, 하윽!”

그는 뜨겁게 달아오른 구멍을 스스로 헤집었다. 그러나 입구 주변을 허겁지겁 더듬는 손길만으로 욕구가 해소될 리 없었다. 눈먼 손으로 어설프게 건드리니 오히려 더 애가 탔다.

“혼자서 뒤를 쑤실지언정 도와 달란 말은 결코 하지 않겠다? 일편단심이란 말이 꼭 어울리는군. 황후와는 어떻게든 붙어먹고 싶어 안달이 났으면서, 내 손길은 끝까지 거부하고.”

“헉……. 윽, 흐읏.”

“황후의 숨이 진작 끊어진 게 아쉬울 따름이야. 그가 살아 이 광경을 직접 봤다면 감격하여 그대에게 마음을 허락했을지도 모르지.”

“아닙니다…… 윽, 저는, 전, 그런 게 아니라.”

반쯤 넋이 나간 청이 흐느끼며 발작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르게 날 것의 심정이 드러났다. 지금 그에겐 더 이상 거짓 연정을 꾸며 내어 연기할 여유 따윈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라면?”

“전 황후 전하를, 연모하는 게…….”

약간은 지루한 듯, 약간은 귀찮아하는 듯한 기색으로 청을 지켜보던 황제의 얼굴에서 모든 표정이 싹 사라졌다. 그는 섬뜩한 무표정으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청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풀숲에 숨어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한껏 숨소리를 죽이고 청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다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입가로 타액을 흘리며 뜨거운 숨을 몰아쉬던 청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팔다리가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최음제의 약효를 견딜 수 없어 정신이 흐려지는 것이었다.

“지청……. 청아.”

그제야 황제가 움직였다. 앉아 있던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나 바닥에 쓰러진 청을 향해 뚜벅뚜벅 다가갔다. 그는 몸을 낮추어 엉망으로 흐트러진 청의 머리채를 망설임 없이 휘어잡았다. 그 상태로 침상을 향해 질질 끌고 갔다. 두피가 뜯겨 나가는 것 같은 통증에, 청은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는 와중에도 괴롭게 신음했다.

“넌 꼭 이렇게 해야 말을 듣지? 처음부터 고분고분하게 따랐으면 되었을 것을. 왜 꼭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서 번거롭게 만들어. 응?”

청이 침상에 내동댕이쳐졌다. 황제는 그를 내려다보며 느긋하게 묶었던 허리끈을 도로 풀어 헤쳤다. 아까보다 조금 여유가 없는 손길이었다. 곧 청의 몸이 강제로 돌려졌다. 엎드린 채 엉덩이가 위로 들렸다. 수치스러웠다. 청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며 저항했다. 그러나 그 순간 옆구리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퍽!

“크, 헉!”

크고 단단한 주먹이 꽂힌 자리에서부터 내장이 죄다 요동치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 청은 한순간 숨을 쉬지 못했다가,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힘없이 고꾸라졌다. 그는 침상에 축 늘어져 엉덩이만 치켜든 자세가 되었다.

“내가 널 친히 도와주겠다는데.”

뒤에서 황제가 가만히 속삭였다. 청은 자꾸만 툭툭 꺾이려는 고개에 간신히 힘을 주어 그를 돌아보았다. 벌겋게 달아올라 눈물범벅이 된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황제는 빙그레 웃으며 뒤에서부터 청의 골반을 붙잡았다. 큼직하고 따뜻한 손이 허리를 쥐어 오는 것만으로도 찌릿찌릿한 쾌감이 일었다. 청이 등줄기를 파르르 떨며 신음했다.

“흐응, 읏.”

“감사 인사는?”

청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서, 성은이 망극합…….”

퍽. 기름으로 질척하게 젖은 입구를 가르고 굵직한 성기가 틀어박혔다. 벌겋게 달아오른 내벽을 한껏 벌리고 들어온 성기가 저 안쪽을 쾅 때려 박았다. 청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한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잔뜩 열이 올라 있던 속살이 벌름거리며 달려들어 성기를 힘껏 조여 물었다.

“흐으, 으, 하악!”

욕구를 해소하지 못해 피가 몰려 검붉어진 청의 성기 끝에서 맑은 액체가 확 뿜어졌다. 허공을 수놓은 액체가 침상에 후두둑 떨어졌다.

아랫배를 뚫어 버릴 기세로 들어찼던 성기가 뒤로 쑥 물러섰다 다시 퍽 처박혔다. 두툼한 귀두가 안을 쭉 긁으며 짓쳐 들어와 전립선을 짓이겼다. 물줄기가 잦아든다 싶은 순간 묽은 액이 다시 쭉 쏘아져 나갔다. 줄줄 흐른 물로 침상이 흠뻑 젖었다.

“아, 아…….”

청이 망가진 기계처럼 신음했다. 입가에서 타액이 멋대로 뚝뚝 흘렀다. 어정쩡하게 벌어진 허벅지가 주체할 수 없이 파들파들 떨렸다. 양 골반이 황제에게 잡혀 있어, 한껏 치켜든 엉덩이를 내릴 수도 없었다.

황제는 결합부를 빤히 내려다보며 힘주어 밀어 넣었다. 발간 구멍이 한계까지 팽팽히 벌어져 기둥을 베어 물고 있었다. 마냥 뻑뻑하게 다물려 있던 내벽이 질척하게 들이부은 최음제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열렸다.

그는 청의 엉덩이 위에 체중을 싣고 찍어 누르듯 박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결국 찌걱 소리와 함께 거대한 성기가 마침내 뿌리 끝까지 들어갔다. 내장에 남은 약 기운이 황제에게까지 홧홧하게 번졌다.

“청아, 고맙다고 해야지?”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뒷덜미를 잡아 침상에 꾹 누르며 명령했다. 청이 컥컥대면서도 시키는 대로 했다. 이성은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감, 헉, 감사…… 합니다.”

“박아 줘서 고맙다고 해.”

“박아, 주셔서, 흐으, 응, 감, 사합…….”

청의 성기가 황제가 뒤에서 턱턱 박으면 박는 대로 허공에서 흔들렸다. 정체 모를 투명한 액체가 잔뜩 분출되고 난 뒤에야 정액이 새어 나왔다. 딱히 사정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꼿꼿이 발기한 성기가 위아래로 요동치며 끊임없이 정액을 질질 흘려 댔다. 뒤에서 한 번 치받을 때마다 허여멀건 액체 방울이 사방에 뿌려졌다.

절정이 끝이 없었다. 단단한 귀두가 우악스럽게 내벽 안을 후비고 찧어 댔다. 청은 숨넘어가게 헐떡이면서도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정신없이 감사 인사를 반복했다. 미끄덩한 내벽을 따라 성기가 쑥 빠져나갈 때는 허벅지를 움찔움찔 떨며 울었다.

황제가 퍽퍽 쳐올릴 때마다 덜렁이는 성기에서 정액이 자꾸만 울컥울컥 넘쳐흘렀다. 자극이 지나쳐서 덜컥 무서워졌다. 이대로라면 몸이든 마음이든 완전히 망가져 버릴 것 같았다.

“흣…… 으윽, 흐, 아아…….”

청은 자극을 못 이겨 달아나려 했다. 이성이 개입되지 않은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뒤에 황제의 성기를 꽂은 채, 자신이 줄줄 흘린 체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이불 위를 무작정 기었다.

“어디 가……?”

“커, 크흑, 헉!”

뒤에서 불쑥 뻗어 나온 황제의 팔이 청의 목을 움켜쥐었다. 무자비한 악력에 숨이 막혔다. 얼마 가지도 못했는데 몸이 도로 질질 끌려갔다.

황제는 집요하게 청의 뒤에 따라붙었다. 청의 등에 가슴을 바짝 밀착한 채로 성기를 박아 넣었다. 혼절하기 직전인 정신과 달리, 청의 몸은 착실히 반응했다. 흐물흐물하게 풀린 내벽은 성기를 우물우물 맛있게도 씹었다.

“제, 발, 폐하, 제발, 하악! 흐, 응, 죽, 죽을 것 같…….”

청이 눈물이 뺨을 흥건하게 적셨다. 그는 축축한 뺨을 이불자락에 비비며 차마 말이 되지 못하는 애원을 되풀이했다. 파들파들 떨면서 어렵사리 치켜들고 있던 엉덩이가 결국 풀썩 떨어졌다. 황제는 그에 맞춰 자세를 낮추고 끈질기게 계속 허리를 치댔다. 땀이 밴 엉덩이와 허벅지가 맞닿아 철썩철썩 소리가 났다.

청은 황제의 아래에 깔려 완전히 널브러졌다. 침상이 질척하게 젖도록 정액을 줄줄 흘려 댄 끝에, 그는 이제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무방비하게 벌어진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만이 쌕쌕 새어 나왔다.

“역시 안 되겠어.”

황제는 그의 배 아래로 팔을 밀어 넣어 하복부를 단단히 휘감았다. 어린아이 팔뚝만 한 성기를 간신히 물고 있던 차에, 배가 확 조여지니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황제의 성기가 내장과 뱃가죽을 죄다 뚫고 튀어나올 것 같아 무서웠다.

“여길 방부제와 솜 따위로 채우기에는 아까우니.”

“…….”

청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는 축 늘어져 있던 몸을 엉거주춤하게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황제가 조금 더 빨랐다.

퍼억! 그는 청을 아주 침상에 찍어 눌러 버리려는 듯 체중을 실어 성기를 콱 처넣었다. 귀두가 배 안 깊숙이 치고 올라왔다. 명치 바로 아래까지 들어찬 것 같았다. 내장이 더 이상 벌어질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생각했는데, 저 안쪽의 내벽이 뚜둑 힘겹게 열렸다.

“으…… 흐으, 아, 흐, 으윽…….”

왈칵 헛구역질이 나고 팔다리가 도로 푹 꺾였다. 그렇게 수없이 정액을 내보냈는데, 성기에서 또다시 희뿌연 물이 줄줄 샜다.

이윽고 내벽 깊은 곳에 틀어박힌 성기가 몇 차례 꿈틀거렸다. 황제와 침상 사이에 끼어 있다시피 한 탓에 아랫배가 압박되어, 배 속에서 정액이 쭉쭉 밀려 나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청은 이불보를 마구잡이로 할퀴고 물어뜯으며 간신히 버티다 끝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여긴 어딥니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던 청이 문득 물었다. 한창 치료를 받던 도중이었다. 셀 수도 없이 난 상처에 일일이 연고를 바르던 태의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여기서 나가면 저는……. 죽습니까?”

청이 재차 물었다. 어쩌면 당연한 물음이었다. 유배지에서 멋대로 달아난 죄인은 마땅히 죽음으로 다스려야 했으므로. 태의는 아무 대꾸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나름대로 무시한다고 한 것 같은데, 표정에서 당황한 티가 역력하게 났다.

그에게 청과 말을 섞지 말라는 명이 떨어졌음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태의는 청을 치료하러 들를 때마다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고 제 할 일만 한 후에 쫓기듯 서둘러 돌아갔다.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처음 그가 의식을 되찾아 태의에게 말을 걸었을 때를. 그때도 태의는 시체가 일어나 말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처럼 기겁하며 무시로 일관했다.

청은 휑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물속에 잠긴 것처럼 시야가 드문드문 뿌옇게 흐려지기에, 애써 눈에 힘을 주었다. 혹독한 고문을 당한 이후로 종종 눈의 초점이 맞지 않을 때가 있었다. 거리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아서 벽에 부딪치고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넘어졌으며, 실수로 물건을 쳐서 떨어뜨리기도 했다.

큰 소리를 내며 딱딱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비틀비틀 일어날 때마다 청은 갈등했다. 그나마 완전히 실명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몰골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것인지. 사실 이미 결론은 나왔다.

“의원님께서는……. 제가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청이 가만히 물었다. 상대방으로부터 대답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은, 혼잣말에 가까운 물음이었다. 역시나 태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저 기계적으로 치료 행위를 계속할 뿐.

황제는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정확히는 죽일 가치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를 아무도 없는 외딴집에 가두어 두고 내키는 대로 학대하고 강간했다. 황후의 죽음에 대한 분풀이를 하듯이, 혹은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는 듯이.

옛 시대의 어느 후궁은 총애를 잃고 난 후 황제가 비단을 하사하자, 황제의 숨은 의도를 눈치채고 그 비단으로 목을 매어 자결했다고 한다. 후세의 사람들은 그 후궁의 기개를 칭송했다. 황제가 죽으라고 직접적으로 명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황제를 끝까지 자비로운 군주로 남게 했다고.

마침내 머릿속이 맑아졌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날 밤, 의원이 치료를 마치고 진료 도구를 챙겨 떠난 후. 청은 텅 빈 방의 풍경을 뒤로 한 채 조용히 전각의 문턱을 넘었다. 별도 달도 뜨지 않는 야심한 시각이었다. 황량한 마당에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독채를 빙 둘러싼 가시나무 울타리가 어스름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서늘한 밤바람이 불자 나뭇가지들이 을씨년스러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도저히 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빽빽하게 뻗은 가시나무 가지 사이에는 출입문도 개구멍도 없었다. 아마 누군가가 드나들 때는 다른 방법을 쓸 것이다. 장정 여러 명을 동원하여 나무를 잠시 뽑아냈다 다시 심는다든가. 무엇이든 간에 혼자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나갈 수 없도록 철저하게 방비했을 터였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자 반 뼘에서 한 뼘 정도 길이로 돋은 가시들이 흉악한 기세를 자랑했다. 끄트머리가 송곳처럼 뾰족해 스치기만 해도 살이 베일 것 같았다.

청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대로 이곳을 무사히 탈출해서 자유를 얻을 가능성 따위는 언감생심 꿈도 꾼 적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

그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울창하게 자라난 나뭇가지 사이로 불쑥 손을 밀어 넣었다.

* * *

밤하늘 아래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흙바닥에 액체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 궤적을 따라 흙이 새카맣게 얼룩졌다. 눈꺼풀에서부터 피가 자꾸 흘러 시야를 가렸다. 청은 괴롭게 숨을 몰아쉬며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소매에 얼룩덜룩하게 핏자국이 묻어났다.

전신에 성한 곳이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피부가 생채기투성이인 것은 물론, 의복 또한 이리저리 베이고 찢겨 엉망이었다. 죄인을 나가지 못하게 심어 둔 가시나무 사이를 맨몸으로 무작정 헤치고 나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허억, 헉, 하아…….”

피가 들어가 흐릿해진 눈을 수차례 깜빡이며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숲이 펼쳐져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어둠의 장막을 뒤집어쓴 채 시야를 가득 메웠다.

여기는 어디쯤일까. 울타리 밖으로 나왔어도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황궁은 웬만한 도시에 필적할 정도로 넓었다. 숲이 있는 곳 또한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황궁 지리에 나름대로 빠삭한 청조차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는 비틀대며 힘겹게 걷기 시작했다. 피에 절어 축축해진 옷자락 끄트머리가 걸을 때마다 질질 끌렸다. 목적지는 어디든 상관없었다. 감시병이든 황제가 심어 둔 하수인이든, 조만간 누군가 청이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아챌 테니.

곧 횃불을 든 병사들이 주변을 샅샅이 뒤져 청을 체포할 터이고, 처형장에 끌려가서는 목이 베일 터였다. 대역 죄인의 몸으로 감히 유배지를 벗어나 도주한 죄로. 아니면 그 전에 과다출혈로 쓰러져 명이 다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거면 충분했다. 황제에게는 단 한 점의 누도 끼치지 않도록, 청이 모든 오명을 뒤집어쓴 채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

자신이 여태껏 살아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한순간의 충동을 못 참고 황후에게 칼을 휘둘렀을 때, 황제가 그를 죽일 가치조차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을 때. 그때 죽었어야 했다. 아무런 쓸모도 없어진 주제에 이제까지 꾸역꾸역 연명해 왔던 것 자체가 또 다른 죄였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끝날 터였다. 이제는, 드디어.

청은 베인 상처에서 올라오는 쓰린 통증을 애써 무시하며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 뒤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타앙! 뜨거운 통증이 섬광처럼 날아와 꽂혔다. 순간 시야가 온통 새하얗게 타들어 갔다. 청은 차가운 땅에 옆머리를 들이받으며 풀썩 쓰러졌다.

“크헉!”

한쪽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허벅지 아래가 통째로 뜯겨 나간 것처럼 아팠다. 옷자락에 검붉게 피가 번졌다. 밤이슬 맺힌 풀 내음과 피비린내가 뒤섞여 흘러들어 왔다.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저만치 먼 곳에 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작은 형체로도 곧바로 알아보았다. 황제였다.

황제는 간편한 사냥복 차림이었다. 황궁 내의 숲에 밤 사냥을 다녀오기라도 한 것일까. 짙은 어둠 아래에서 연한 색을 띤 황제의 머리칼과 눈동자, 흰 피부가 스산하게 도드라졌다.

그는 청을 향해 똑바로 겨누었던 사냥용 장총을 천천히 내렸다. 총구 끄트머리에서 흐린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황제는 종아리까지 자라난 수풀을 헤치고 저벅저벅 걸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흐, 으흑, 으. 아……!”

정수리에서부터 찬물을 확 끼얹은 듯 모골이 송연해졌다. 청은 흙바닥을 벅벅 긁으며 필사적으로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몇 번이고 고꾸라지려는 몸을 억지로 세웠다.

죽음을 각오하였으나,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압도적인 공포 아래 그 결심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저 상대에게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만이 뇌리를 지배했다.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러 나왔으면서, 그는 저도 모르게 황제를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팔다리가 뻣뻣하게 굳고 이가 딱딱 부딪쳤다. 탄환이 틀어박힌 허벅지에서 피가 줄줄 솟구치는 것도 모르고, 청은 숲 쪽으로 무작정 도망쳤다. 피범벅이 된 다리를 절뚝이고 꼴사납게 허우적대며 반은 걷고 반은 뛰었다.

청은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종아리를 타고 줄줄 흘러내린 핏물이 신발을 흥건하게 적셨다. 그가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웃자란 풀잎 위에 신발 밑창 모양으로 시뻘건 발자국이 남았다.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뼈저리게 배운 전투 지침이 떠올랐다. 핏자국과 발자국을 추적하는 것. 상처 입고 도망치는 목표물을 추적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었다.

그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찢었다. 가시나무 울타리를 헤치고 나오며 이미 너덜너덜해진 터라 큰 저항 없이 쉽게 찢어졌다. 축축한 천으로 상처 부위를 대강 지혈하고 신발을 벗었다.

“제발, 제발……!”

청이 신경질적으로 혼잣말을 했다. 손끝이 피에 미끄러져 자꾸 헛손질을 했다. 뜻대로 되지 않자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턱이 덜덜 떨렸다. 잡히면 안 된다는 강박에 휩싸여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곧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피범벅이 된 신을 수풀에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울창한 밤의 숲이 시커먼 아가리를 쩍 벌리고 청을 반겼다. 무저갱의 입구처럼 음산한 풍경을 두려워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그보다 뒤에서 조금씩 거리를 좁혀 오고 있을 황제가 더욱 무서웠다.

이윽고 그는 맨발로 차가운 흙을 밟으며 깊은 숲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벌레 우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음산한 숲속을 하염없이 헤맸다. 이 숲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황제를 피해 마냥 안쪽으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갔다.

“헉, 허억…….”

침의로 입는 얇은 홑옷 한 벌만 걸친 데다 상처에는 피가 끝도 없이 꾸역꾸역 흘렀다. 점차 몸에 오한이 들었다. 눈앞이 캄캄한 것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때문인지 아니면 출혈이 심해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귓가에 스스로의 숨소리가 유독 크게 맴돌았다. 시야가 어지럽게 일렁였다. 그 가운데 흐릿하게 이질적인 소음이 섞여 들었다. 풀과 나무를 헤치고 부스럭대는 소리가 하나 더, 아스라이 먼 곳에서부터 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나 산짐승이 돌아다니는 소리이겠거니 여기기에는 너무 존재감이 뚜렷했다. 뚜벅뚜벅 일정한 보폭으로 걷는 기척이 점차 다가왔다. 거대한 장총이 이따금 바위나 나무 따위에 부딪치며 섬뜩한 소리가 났다.

“예락, 방 안에서만 지내는 게 지루했는가?”

심장이 쿵 떨어졌다. 어느덧 아까보다 기척이 확연히 가까워졌다. 이대로라면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 그대는 원래도 방랑벽이 있었지. 저잣거리니 명승지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걸 좋아했어. 이번에도 숲을 보러 밤 산책을 나온 게지? 그래도 조금만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그랬어. 아직 그대는 환자인데, 성치 않은 몸으로 이 밤에 가긴 어딜 가나.”

황제는 청을 찾아 우거진 나무 사이를 걸으며 나긋하게 중얼거렸다.

“여기저기 흠집이 난 몸을 박제하는 건 내키지 않는데. 적어도 상처가 다 낫고 나서, 제일 예쁠 때 죽여야지. 응? 왜 그리 성미가 급해.”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두려움인지 추위인지 모를 것으로 온몸이 벌벌 떨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철없는 어린 소년처럼 숨바꼭질 노래를 흥얼거리다 말고, 황제는 제풀에 소리 죽여 웃었다. 기묘하게 뒤틀린 천진함이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청은 이성을 잃고 다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그의 눈에 썩어서 텅 빈 고목 줄기가 들어왔다. 어지럽게 뒤얽힌 뿌리며 거대한 밑동 부분에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숨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는 다급히 나무줄기 속에 숨었다. 탄환이 박힌 허벅지에서 끔찍한 통증을 호소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황제의 기척이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그도 청이 어디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저 주변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 같았다.

“지청, 청아. 어디 있어?”

그러다 어느 순간, 황제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 선명히 들렸다. 청이 숨어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였다.

“왜 말도 없이 가 버렸지? 이젠 정말 내게 질렸어? 내 곁에 있기 싫어졌어? 그래서 그런 거야?”

한 점 동요 없이 화사하면서도 음습하게 웃던 제국의 지배자는 어디 가고, 그 자리에 불안에 사로잡힌 청년이 있었다.

“미안해.”

한 자리에 우뚝 멈춘 황제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처음으로, 황제와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하면서도 단언컨대 처음으로 듣는 사과였다. 이끼 낀 나무줄기에 기대어 헐떡이던 청이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나는 혈통부터가 비천해서, 태생이 글러먹은 놈이라 배운 게 없어서……. 너를 내 곁에 잡아 두는 방법을 이것밖에는 알지 못해서 그리했어.”

말끝이 처연하게 젖어 파르르 떨렸다. 금방이라도 꽃잎이 떨어지기 직전의 꽃처럼 애처로웠다.

“네게 나밖에 없듯이 내게도 너밖에 없다는 걸 왜 알아주질 않아. 황후도 문무백관도 후궁도, 그래, 이 나라도. 전부 필요 없어. 나한테는 너만 있으면 돼. 오로지 청이 너 하나만.”

심장이 터질 듯 불안하게 뛰었다. 저도 모르게 목이 턱 메었다. 가슴속을 갈퀴로 후벼 파고 긁어내리는 듯 괴로웠다. 하지만 청은 황제의 절절한 고백을 들으면서도 끝끝내 아무런 기척을 내지 않았다. 요동치는 마음을 몇 번이고 억지로 가라앉혔다.

혹여나 소리가 새어 나갈까 질끈 눈을 감고 옷소매로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찌나 독하게 막았는지, 나중에는 호흡이 모자라 머리가 핑핑 돌고 감은 눈 안쪽에 뻘겋고 퍼렇게 얼룩이 질 지경이었다.

“그러니 청아, 제발.”

황제가 힘없이 속삭였다. 목소리에 초조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청은 덜덜 떨리는 손등에 핏대가 서도록 필사적으로 입을 막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핏물로 척척하게 젖은 옷소매에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윽고 황제의 기척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러나 청은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를 부르는 목소리와 묵직한 발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된 후에도 한참을 그 자세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겨울잠을 자던 도중에 바짝 말라 죽어 버린 산짐승처럼.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실제로는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으나, 청이 느끼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었다. 청은 통증과 어지럼증에 시달리다 드문드문 짤막하게 정신을 놓았다. 그 와중에도 악착같이 기척을 죽인 채였다.

한참을 더 버티다, 나뭇잎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달이 밤하늘 중턱을 넘어갔을 무렵에 몸을 일으켰다. 청은 무성하게 드리워 그를 가려 주고 있던 가지들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절뚝절뚝 걸어 나왔다.

“흐윽…… 읏.”

그새 뻑뻑하게 굳어 버린 관절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억지로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신음이 작게 새어 나왔다.

인적 없는 숲 한복판은 오싹하리만치 고요했다. 온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적막한 기분이었다. 그래, 적어도 잠깐 동안은 그렇게 느꼈다. 청이 몸을 숨겼던 나무 앞에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기 전까진.

숨이 턱 막혔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청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을 하염없이 응시하던 황제가 청의 기척을 감지하고 돌아보았다. 땅에 수직으로 세워 짚고 있던 장총에서 희미하게 철컥이는 소리가 났다.

시선이 마주쳤다. 짐승의 눈을 연상시키는 섬뜩한 금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청을 똑바로 응시하며, 그는 밤에 피는 백합처럼 새하얗게 웃었다.

“그대 신음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단 말이지.”

“아, 아…….”

넋이 나간 청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다친 다리로는 얼마 가지 못했다. 서너 걸음 뒷걸음치다 발이 엉켜 제풀에 주저앉고 말았다. 청은 밤이슬에 젖어 축축한 낙엽 무더기 위에 쓰러졌다.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청은 뒤돌아 어렵사리 팔을 뻗었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하반신을 질질 끌면서 서늘한 흙 위를 기었다.

황제는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필사적으로 달아나려 애쓰는 청의 속도에 맞추어 느릿하게 뒤따라 걸었다. 묵직한 총을 늘어뜨리고 걸은 탓에 총구가 땅에 질질 끌리며 긴 궤적을 남겼다. 그러다 슬슬 지겨워졌다. 황제는 발을 들어 총상을 입은 청의 허벅지를 콱 밟았다.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흐, 아악!”

황제는 긴 화승총을 지팡이 삼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세를 낮추어 몸을 겹치고, 청을 뒤에서부터 끌어안았다. 낮은 목소리가 청의 귓가에 떨어졌다.

“내게서 달아나려 하지 마. 알고 있지 않나.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날 택한 건 예락 그대잖아.”

황제는 그의 몸을 덮다시피 찍어 누른 채 느긋하게 손을 뻗었다. 차게 식은 뺨을 만지다가 턱을 타고 스르르 내려왔다.

“그대가 만신창이가 되어선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데도 필사적으로 숨어 있는 걸 보니, 자꾸 웃음이 나서 참기 힘들었어. 내가 웃어 버리면 모처럼 시작한 놀이를 망치게 될 텐데 말이지.”

단단한 손끝이 도드라진 목젖 위를 덧그리며 맴돌았다. 여차하면 큼직한 손이 목을 비틀어 버릴 것 같아 청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래, 이번엔 제법 재미있었어. 어찌 이런 깜찍한 생각을 다 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런데…….”

엄지로 동맥 위를 지그시 누르고 애무하듯 문질렀다. 청의 아래턱이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파들파들 떨렸다. 황제는 청의 귓불을 가볍게 물었다 놓으며 속삭였다.

“다음번은 없어.”

발버둥을 치든, 그만하라며 울어 대든, 또다시 쓸데없는 저항을 하며 그에게서 달아나려 한다면 철저하게 응징할 생각이었다. 양 발목을 톱으로 썰고 혀를 뽑아서라도 다신 이딴 짓을 못 하도록.

잘려 나갈 발목과 혀가 좀 아까울 것 같긴 했다. 청은 맨발과 혓바닥까지도 예뻤으니까.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핏기를 빼고 잘 말려 보관함에 넣어 두는 방법도 있고, 정 안 되면 아예 생으로 씹어 삼키는 방법도 있었으니. 하지만 지금 청의 꼴을 보니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나무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황제를 발견한 순간에 그의 의지는 이미 꺾였다.

황제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 청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피비린내와 흙냄새, 풀 냄새에 가려져 있던 청의 체향이 희미하게 스며들어 왔다. 군침이 돌았다.

몇 개의 매듭이 풀리고 옷자락이 허물처럼 흘러내렸다. 피로 얼룩지고 군데군데 너덜너덜하게 찢겨 나간 청의 옷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졌다. 어느덧 청은 완전히 나신이 되었다. 황제는 엉덩이 살을 손아귀 가득 움켜쥐고 구멍이 보이도록 벌렸다. 작게 움찔거리는 구멍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스스럼없이 고개를 묻었다.

“흐악!”

엉덩이 사이에 닿는 타인의 숨결에 청이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황제가 빨랐다. 그는 청의 엉덩이를 단단히 붙잡아 고정한 채로 메마른 구멍을 게걸스럽게 핥고 빨았다. 마냥 뻑뻑하던 점막이 조금씩 풀렸다. 구멍 주변이 번들번들하게 젖으며 연홍빛을 띠었다.

입구를 잔뜩 적셔 놓고, 혀를 꼿꼿이 세워 쑥 비집고 들어갔다. 겉과 마찬가지로 안쪽 살도 말캉말캉했다. 질척이는 소리가 나도록 내벽을 문질러 줄 때마다 청이 뚝뚝 끊기는 소리로 애원하다 흐느끼기를 반복했다. 음인처럼 액이 절로 질질 흐르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당한다는 듯 기겁하며 벌벌 떠는 청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황제의 혀로 뒷구멍이 쑤셔지는 기분은 어떠한가?”

황제가 보란 듯이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사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간결하게 하나로 묶어 틀어 올렸던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몇 올 흐트러져 내려왔다. 눈웃음을 치며 만족스럽게 입맛을 다시는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요염했다.

“제국의 주인이 친히 내장 안까지 빨아 주다니. 고금을 통틀어 그 어떤 애첩도, 어떤 정부도 이런 호사를 누리진 못했을 테지. 그것도 감히 황제를 농락하고 배반한 자에게. 그러니 예락, 좀 더 기뻐해도 돼.”

청은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파리하게 질린 입술이 허망하게 몇 번 달싹였지만 그것뿐이었다.

황제는 소름 끼칠 정도로 무감정한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는 뭐라 더 말하는 대신, 앞섶을 풀어 헤치고 핏줄이 툭 불거진 성기를 꺼냈다. 평소보다 어쩐지 조급한 손길이었다. 눈앞에 드러난 엉덩이에 불그스름한 귀두를 툭툭 치고 위협적으로 문지르다가, 번들대는 구멍에 대고 무작정 처박았다.

“헉!”

청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고꾸라졌다. 숨통이 콱 조여 드는 느낌에 입을 벌리자 밭은 숨이 딸려 나왔다. 황제는 살에 손자국이 남도록 엉덩이를 강하게 틀어쥔 채 우악스럽게 몸을 붙여 왔다. 덜 풀린 안이 억지로 벌어졌다. 뚜두둑 하고 내벽이 뜯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기어이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굵직한 기둥을 끝까지 쑤셔 넣었다. 이윽고 얇은 옷 한 장만 깐 흙바닥에 엎어져 있던 청의 몸이 거칠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인적 없는 숲속이라 한들, 사방이 탁 트인 야외에서 엉덩이를 쳐들고 엎드려 짐승처럼 흘레붙고 있다니.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벌어진 사타구니에 철썩철썩 부딪쳐 오는 음낭이 회음을 자극했다. 황제가 깊게 박았던 성기를 힘주어 뽑아낼 때마다 타액에 젖은 속살이 찌걱거리며 조금씩 딸려 나오는 게 느껴졌다. 치욕스러웠다. 맨땅에 청의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흑, 흐, 흐윽…….”

허벅지의 상처에서 솟아오른 피가 반쯤은 말라붙고 반쯤은 꾸역꾸역 흘러내렸다. 지독하게 추웠다. 유일한 온기라고는 자신을 위에서 누르고 있는 황제밖에 없었다.

“아파, 너무…… 아프, 앗, 폐하, 제발.”

결국 청이 서럽게 흐느끼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 모진 고문을 견디면서도 아프다는 소리는 한 번도 하지 않던 이가.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언뜻 보이는 눈은 눈물로 흠뻑 젖은 데다 초점이 없었다.

“…….”

청의 등에 가슴을 맞붙인 채 허리를 치대던 황제가 갑자기 뚝 멈추었다. 구멍 안을 들쭉날쭉 드나들던 성기가 멈추었는데, 안심되기는커녕 오히려 불안했다. 그는 잠시 표정 없는 얼굴로 자신이 낸 상처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입매를 슬쩍 끌어 올려 웃었다.

“총에 맞은 곳이 아픈가? 그래, 그럼 마땅히 치료를 해야지.”

황제는 청의 안에 여전히 성기를 꽂아 놓은 채 태연히 허리춤을 뒤졌다. 이윽고 그는 사냥용 단도를 꺼냈다. 사냥감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바르는 데 쓰는 칼이었다. 좁다란 칼날이 극도로 예리하게 갈려 있었다.

“상처를 이리 보이도록. 치료해 줄 테니.”

뭔가 이상했다. 섬뜩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청이 발작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예락, 이런 때에까지 투정을 부리면 어떡하나.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다리를 영영 못 쓰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만, 으, 흐윽, 제발 그만!”

하지만 황제는 아랑곳 않고 청의 허리를 확 잡아 끌어당겼다. 그의 엉덩이가 자신의 사타구니에 맞닿도록 골반을 잡아 성기 위에 처박으며, 그대로 피범벅이 된 상처에 칼끝을 찔러 넣었다.

“헉…… 아악!”

날카로운 통증에 반응한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황제의 성기를 물고 있는 내벽 또한 확 좁아졌다. 순식간에 수축하며 기둥을 쥐어짜듯 베어 물었다.

“하아.”

황제가 긴 속눈썹을 살포시 내리깔며 만족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바르작대며 칼날을 피해 도망가려는 몸을 억센 힘으로 짓눌러 고정해 놓았다. 그와 동시에 환부에 틀어박힌 칼끝이 살점을 도려내듯 빙글 돌았다.

청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처절하게 경련하며 비명을 질렀다. 또다시 황제의 성기가 습한 내벽에 탄탄히 감싸였다. 파들파들 떨리는 속살이 기둥에 철썩 들러붙어 놓아주지 않았다.

“아, 청아……. 얌전히 있어야지. 응? 자꾸 보채지 말고…….”

황제가 달콤하게 속삭이며 칼을 놀렸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드문드문 열기가 섞였다. 그러나 청에게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생살을 저미는 통증을 참느라 손바닥에 손톱이 깊숙이 파고들고, 의식이 깜빡깜빡 점멸했다.

“흐으, 읏, 윽.”

청의 흰 등이 온통 식은땀으로 젖어 들었을 무렵, 결국 금속으로 된 탄환이 잔뜩 피를 뒤집어쓴 채 굴러 나와 땅에 툭 떨어졌다. 황제는 가늘게 입맛을 다시며 웃었다. 자신의 성기를 뒤로 문 채 무력하게 축 늘어진 청을 보자 오싹할 정도로 기뻤다.

한때는 지체 높은 명문가의 적장자였고 한때는 제국 제일의 무관이었던 남자가 지금은 상처투성이 알몸으로 풀숲에 개처럼 엎드려 그에게 뒤를 내주고 있었다. 단단한 성기 끄트머리로 배 안을 마구잡이로 찌르고 칼로 살을 후벼 파도, 싫다는 소리 한 번 못 하고 무력하게 받아들였다. 눈가가 발갛게 짓무르도록 흐느끼면서.

물이 서서히 끓어오르듯 속에서부터 뒤틀린 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한때 고결하고 순수했던 상대를 밑바닥까지 찍어 눌러 완전히 망가뜨렸다는 데서 오는 쾌감이었다.

처음으로 이 감정을 느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이었다. 단정히 묶었던 머리가 엉망으로 흐트러진 것도 모르고, 눈물범벅이 되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소년을 보았을 때.

〈황자 전하, 뭐든 하겠습니다. 제 목숨을 버리라면 버리고, 사람을 죽이라면 죽이겠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전하께 옥좌를 바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도와주십시오…….〉

황제는 몸을 낮추어 청을 바짝 끌어안았다. 품 안에 갇힌 상대의 목덜미에 뺨을 문지르며 속삭였다.

“청아.”

그는 성기를 길게 뺐다가 퍽 밀어 넣었다. 번들번들하게 젖은 채 귀두 바로 앞까지 빠져나왔던 기둥이 도로 틀어박혔다. 청이 아으윽, 하고 목 안쪽을 울리며 신음했다.

“마지막 기회를 줄까? 내게서 달아날 수 있는.”

“아…….”

청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뭐라 하고 싶었는지는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저 직감적으로 느껴졌을 뿐이다. 황제의 말대로,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앞으로 영원히 그에게서 벗어날 가망이 없으리라고.

하지만 대답하기도 전에 황제의 허리 짓이 갑자기 빨라졌다. 뒤에서부터 철썩철썩 거세게 부딪쳐 오는 바람에 엉덩이 살에 발갛게 자국이 남았다.

“흐읏, 헉, 으으…… 아, 앗!”

판판한 뱃가죽 바로 아래에 귀두가 쾅쾅 부딪쳐 왔다. 탄환을 빼낸다는 명목으로 칼로 살점을 긁어 대면서 잔뜩 고조되어 있던 쾌감에 정점을 찍었다. 황제는 짤막한 신음을 잇새로 흘리며 사정했다.

청은 현실인지 환각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황제의 정액을 받았다. 그의 품에 꽉 끌어안긴 채 정액이 왈칵 쏟아져 나와 배 안을 꾸역꾸역 메우는 것을 적나라하게 느꼈다. 그 순간만큼은 으스스한 밤공기도, 땅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한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 봐. 얼마든지 보내 줄 테니.”

황제는 청을 안았던 팔을 선뜻 풀어 주었다. 목소리가 쾌락의 여운으로 나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배 속에 들어찬 황제의 성기가 아직 빠져나가지도 않았는데, 청은 자꾸만 축축 늘어지는 팔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기어가려 했다. 저도 모르게 나온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황제가 발간 혀끝으로 아랫입술을 훑으며 사르르 웃었다. 속에 들어찬 음습함을 숨길 생각조차 없는 웃음이었다.

“……갈 수 있으면.”

그 순간, 사정을 마치고도 여전히 흉흉하게 발기한 채로 틀어박혀 있던 성기가 강하게 꿈틀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하게 벌어져 있던 내벽을 있는 대로 넓히며, 비정상적으로 크고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다.

“흐, 으악, 아…… 악!”

청의 안에서 성기가 한도 끝도 없이 팽창했다. 배가 뻐근하게 아팠다. 내장이 그대로 터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덜컥 무서워졌다. 청은 덜덜 떨리는 손을 무심코 아래로 뻗었다가 곧 그만두었다. 배를 만졌더니 불룩하게 솟아 있기라도 할까 봐 무서웠다.

뒤늦게 깨달았다. 결착이었다. 상대의 안에 들어찬 정액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양인의 본능에 따라 성기가 크게 부풀어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결착은 항상 음인의 여향에 반응하여 일어났다. 홀로 자위를 하거나 음인이 아닌 다른 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으로는 아무리 해도 성기가 부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에겐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눈앞에 닥친 고통에 몸부림칠 뿐이었다.

결착이 시작되면 음인 또한 양인의 여향에 취해 애액을 줄줄 쏟아 냈다. 처음에는 몸속에서 성기가 팽창하니 조금 불편하지만, 곧 내벽이 질척하게 젖고 흐물흐물 풀려서 아프기는커녕 짜릿한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청은 평인이었다. 한도 끝도 없이 크기를 불리는 성기는 죽도록 고통스럽기만 할 뿐 그 어떤 쾌감도 주지 못했다. 뒷구멍에 무작정 주먹을 처박아 넣은 거나 다름없었다.

골반이 양옆으로 뜯기고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못 견디게 아팠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왜…… 흐윽, 아, 으으, 대체 왜.”

그가 흐느끼며 맨손으로 흙바닥을 벅벅 긁었다. 손가락에 자잘한 생채기가 생기고 손톱 아래에 흙과 자갈이 끼는 것도 모르고, 하염없이 무익한 자해를 되풀이했다.

“가도 된다니까. 응?”

황제가 식은땀과 피 얼룩으로 엉망이 된 청의 뺨에 자신의 뺨을 비비며 속삭였다. 청은 처절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심코 몸을 앞으로 뺐다가, 얼마 가지 못해 내벽에 꽉 물린 성기에 턱 걸렸다.

“크흑!”

한순간에 찾아온 극심한 통증에 시야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거친 숨을 색색 몰아쉴 때마다, 한 번 맥박이 뛸 때마다 잔뜩 부풀어 배 속을 메운 거대한 성기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지만 억지로 참았다. 그랬다간 배 안 가득 들어찬 정액이 목구멍으로 왈칵 토해져 나올 것 같았다.

“아픕니다, 폐하, 흐, 으윽, 너무 아파요. 제발……. 살려 주세요. 살려 주십시오…….”

낚싯바늘에 관통당한 물고기처럼 청은 황제의 성기에 꿰뚫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울었다. 자칫 잘못 움직였다간 내장이 터져 나가고 뱃가죽이 뚫릴 것 같아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왜 그런 말을 해. 말했잖아, 난 그대를 죽이지 않는다고.”

황제의 손이 느릿하게 청의 아랫배를 감쌌다. 피를 잔뜩 흘려 추위에 떨던 청에게 황제의 체온은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느껴졌다. 뻣뻣하게 식어 가던 몸에 절절 끓는 열기가 확 퍼졌다. 굳은살이 있는 크고 단단한 손이 아랫배를 안정적으로 받치고 천천히 어루만졌다. 호흡조차 못 하고 꺽꺽대며 우는 청을 달래려는 듯, 혹은 그의 배 속에 싸지른 정액이 잘 퍼지게 하려는 듯 몇 번이고.

견디다 못한 청이 잡초가 드문드문 돋아난 땅 위에 고개를 툭 떨어뜨리며 혼절한 뒤에도, 상대가 전혀 원하지 않는 일방적인 다정함은 계속되었다.

* * *

힘겹게 눈을 떴다. 초점이 맞지 않아 사방이 온통 뿌옇게 보였다. 언뜻 시야에 들어온 풍경이 익숙했다. 청이 처음으로 갇혔던 가시나무로 둘러싸인 목조 가옥.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휑한 방에 침상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도, 아무 장식 없이 민벽과 맨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것도.

청은 순간 저도 모르게 안심했다. 그 뒤 곧바로 스스로에게 지독한 환멸을 느꼈다. 다시 지옥의 한복판으로 끌려온 것을 안심하다니. 여기에 갇혀 비참한 삶을 이어 가느니, 차라리 그 컴컴한 숲속에서 숨이 끊어지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다음으로 느낀 것은 극심한 갈증이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온몸의 수분이 모조리 빠져나가 버리기라도 했는지, 끔찍이도 목이 말랐다. 청은 버석버석하게 갈라진 입술로 중얼거렸다.

“물…….”

옆에서 작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곧 입가에 물이 담긴 잔이 닿았다. 차가운 물이 입술을 적시자 한층 갈증이 심해졌다. 잊고 있던 욕구가 급격히 되살아났다. 청은 목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힘겹게 입을 벌려 물을 받아 마셨다. 목울대가 움직이며 꿀꺽꿀꺽 소리가 났다. 큼직한 손이 베개와 청의 뒤통수 사이로 불쑥 들어와 그의 머리를 받쳐 주었다.

맑은 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 갔다. 맹물일 뿐인데 감로수라도 되는 듯 달았다. 타는 듯한 갈증에만 사로잡혀 있던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제야 마냥 흐리던 눈앞이 선명하게 개었다. 침상 옆을 지키고 앉은 이가 눈에 들어왔다. 공식적인 자리에 설 때처럼 한 올 흐트러짐 없이 틀어 올리고 면류관을 쓰는 대신, 차분히 풀어 내린 다갈색 머리칼이 느슨하게 묶여 있었다.

그가 누군지 깨달은 순간 정수리에서부터 얼음물을 들이부은 듯 모골이 송연해졌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소름이 쭉 끼쳤다.

“폐…… 폐하.”

“잘도 받아먹는군.”

황제는 청이 깨끗이 비운 잔을 탁자 위에 도로 내려놓으며 빙그레 웃었다. 청의 허벅지에 직접 총탄을 박아 넣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착실하게 만신창이로 만든 주범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수려한 웃음이었다.

청은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사지는 여전히 이불 속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단순히 부상으로 몸이 좋지 않아서라기엔 이상했다. 아무리 힘을 주어 상체를 일으키려 해도, 청의 목 아래는 줄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두껍게 감긴 붕대며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은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진통제 약 기운 아래 둔하게 가라앉은 아픔마저 생생한데. 오로지 움직이는 것만이 불가능했다. 전신의 근육과 힘줄이 죄다 끊어진 것처럼.

“왜…… 이, 이게 무슨.”

청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속눈썹이 애처롭게 파르르 떨리고, 초점 없는 눈동자가 절박하게 허공을 헤맸다.

“독한 약을 썼어. 그대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었거든. 마취 효과가 강해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대신 당분간은 움직이기 힘들 거야.”

“으, 흐윽, 읏……!”

청이 절박하게 고개를 뒤척이며 몸부림쳤다. 이를 악물고 팔다리를 움직여 보려 안간힘을 썼다. 어설프게 몸을 들썩이는 것까진 가능했지만, 중심을 잡을 수 없어 곧바로 픽 쓰러졌다.

“안 되지, 예락. 얌전히 있어야지. 억지로 움직이려 하다간…….”

황제의 손이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긴 손가락이 목덜미를 지나 가슴과 복부를 스치는 순간 청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황제는 아무렇지 않게 급소를 지나 손을 내렸다. 붕대가 칭칭 감긴 허벅지를 손날로 힘 있게 누르며 죽 그었다.

“통째로 잘라 내야 할지도 몰라.”

병세가 악화되면 다리를 잘라야 할 수도 있다는 충고일까, 아니면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면 다리가 잘릴 거라는 경고일까. 어느 쪽이든 섬뜩했다.

“…….”

청은 무의미한 몸부림을 포기하고 전신에 힘을 뺐다. 고개가 툭 꺾이며 시선이 옆을 향하게 되었다. 멍하니 텅 빈 벽을 응시하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황제의 변덕은 청에게 직접 잔을 대어 물을 먹여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보다 더 경악스러운 행위가 이어졌다. 그는 손수 청의 상처에 연고를 발랐다. 청을 인형 들듯 달랑 들어 무릎에 앉힌 채였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양다리가 얌전히 황제의 허벅지 위에 놓였다.

청이 뻣뻣이 굳었다. 더할 나위 없이 불편했다. 황제가 그에게 치욕을 주려고 일부러 새로운 방식으로 몰아붙이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으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황제에게 애원하는 것뿐이었다. 청은 창백하게 질린 낯으로 그를 만류했다.

“폐하, 어찌 이런 궂은일을 손수 하려 하십니까. 아니 될 일입니다. 그러니 부디…….”

“부디?”

황제가 건성으로 대꾸하며 길게 베여 벌건 속살이 드러난 청의 상처를 꾹 눌러 벌렸다.

“으읏……!”

청이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이마에 식은땀이 배었다. 거부 의사를 표하던 말이 힘없이 사그라졌다. 여태껏 수없이 퍼부어진 야만적인 폭력이 그의 의지를 갉아먹고 정신을 꺾어 놓았다. 청은 작은 통증에도 입술을 파르르 떨며 괴로워했고, 황제가 팔을 들어 탁자에 놓인 연고 통에 손을 뻗을 때마다 무심결에 흠칫했다.

“그 꼴을 하고 그대 혼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약통을 입에 물고 팔다리를 질질 끌면서 바닥을 기기라도 할 건가? 그것도 나름대로 볼만하긴 하겠군. 그리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놓아주지.”

황제가 그에게는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약을 바르는 데만 집중하며 태연하게 비난했다. 청이 눈을 내리깔며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이 상황이 몹시도 치욕스러웠다.

청이 작고 가냘픈 여성이나 음인이었다면 제법 어울리는 그림이었겠으나, 그는 애동(愛童) 행세를 하며 황제의 품에 폭 안기기에는 지나치게 훤칠했다. 예전의 그는 다른 이의 무릎에 앉기보다는 다른 이를 무릎에 앉히는 쪽이었다.

다 큰 평인 사내가, 그것도 병든 닭 같은 초췌한 몰골의 사내가 침의 한 벌만 걸친 차림으로 황제의 품에 올라앉다니.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광경일 게 분명했다. 지금 자신의 꼴이 어떻게 보일지, 차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황제의 품에 안기기에 적합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그래, 황후 같은 이가 제격이었다. 팔다리가 가늘고, 살결이 보드랍고, 목소리 또한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곱고 낭랑한 사람.

자신이 직접 칼을 휘둘러 죽여 버린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불현듯 숨이 턱 막혔다. 자조인지 후회인지 미안함인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슴속이 일렁였다. 황제의 오른팔로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베었지만, 황후의 눈물 젖은 얼굴만큼은 그중에서도 뇌리에 깊이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옷깃을 필사적으로 붙들어 오는 희고 가느다란 손도.

“…….”

청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이 참담한 현실에서 잠시만이라도 눈을 돌리고 싶어 어둠 속으로 도피했다. 황제가 그를 관찰하듯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 * *

황제는 전각에 오래 머무르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청의 수발을 들었다. 청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르작대며 애걸복걸하는 것도 모조리 무시했다. 하지만 달리 저항할 방도가 없었다. 독한 약 기운에 흠뻑 절어 있는 탓에, 황제가 가볍게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힘없이 푹 기울어 쓰러졌다. 그는 황제가 없으면 침상 바로 옆에 있는 탁자의 물병에서 물을 따라 마시는 간단한 일조차도 하지 못했다.

끔찍하게 비참했다. 스스로가 몹시 무능하고 보잘것없는, 벌레만도 못한 하등한 생물이 된 것 같았다. 벌레는 적어도 제 먹이를 스스로 찾아 먹을 수는 있으니.

얇은 옷 아래 감춰져 있던 상처투성이 맨몸을 드러내고 타인의 손길을 받는 것도, 갓 태어난 새 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상대가 흘려 넣어 주는 대로 물을 받아 마셔야 하는 것도 수치스러웠지만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폐하, 저.”

황제가 눕혀 놓은 대로 얌전히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청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기어들어 가는 듯 작은 목소리였다. 말끝이 벌벌 떨렸다.

“왜 그러지?”

“저……. 그게.”

청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껏 어찌나 자근자근 씹어 댔는지, 핏기 없이 파리한 얼굴에 입술만이 붉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황망한 시선을 떨어뜨렸다.

“예락, 말을 해야 알지. 응?”

황제는 그를 조곤조곤 얼렀다. 한참이나 망설이고 갈등하던 청이 결국 괴롭게 간청했다.

“나가고 싶습니다.”

“나가다니, 어딜.”

“밖에…….”

“마당이 보고 싶은 건가? 그래, 그러도록 하지. 그대 발로 걷는 건 힘들겠지만, 내가 안아서 옮겨 주면 될 터이니.”

황제는 너그럽게 허락했다. 청이 약에 취해 몸을 제대로 못 가누게 된 이후로 그는 줄곧 묘하게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손수 청의 간호를 하면서도 화사하게 웃었다. 다른 때에 비해 태도가 너무 딴판으로 사근사근해서 오히려 기괴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뇨. 그것이 아니오라, 방 바로 밖에, 혼자서……. 잠깐, 이면 되니까…… 제발, 폐하.”

횡설수설하며 말을 늘어놓는 청의 눈매가 자괴와 굴욕으로 일그러졌다.

“아.”

황제는 드디어 알았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길고 가지런한 속눈썹이 방 안을 밝히는 등불 아래 온화하게 빛났다.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유유히 되물었다.

“소변을 보고 싶다고?”

모멸감이 비수의 형태를 띠고 심장을 푹 찔렀다. 청은 황제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거였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나. 뭘 그리 망설여.”

황제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청을 바깥에 있는 변소에 데려다주는 대신, 그를 침상에 남겨 둔 채 스르르 일어섰다. 곧 청의 앞에 둥그스름한 단지가 하나 놓였다.

“싸 봐.”

“…….”

묵묵히 도자기로 된 요강을 내려다보는 청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렸다.

“자지까지 잡아 달라고?”

황제는 침상에 털썩 걸터앉더니, 청을 번쩍 안아 올려 자신의 다리 사이에 앉혔다.

“그대는 의외로 손이 참 많이 간단 말이지. 이건 해 달라, 저건 하지 말아 달라 칭얼대기나 하고.”

그가 태연하게 팔을 뻗어 청의 옷자락을 풀어 헤쳤다. 자신이 손수 골라 입히고 고름까지 매어 줬던 옷이었다. 앞섶을 서슴없이 열어 젖힌 손이 사타구니에 불쑥 파고들어 왔다.

“폐하!”

청이 기겁하여 반사적으로 허벅지를 확 움츠리려 했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장식장에 전시된 인형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싸 보라니까.”

따뜻하고 단단한 손이 성기를 쥐었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기둥을 주무르고 손톱을 세워 귀두를 가볍게 눌렀다. 장난감 가지고 놀듯 몇 번 가지고 놀다가, 요도구가 요강 쪽을 향하게 잡아 주었다.

안간힘을 써 가며 참고 있던 요의가 점점 한계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황제의 앞에서 소변을 보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청은 어설프게 몸을 뒤로 물리며 황제의 손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등 뒤는 탄탄한 가슴팍으로 막혀 있었다. 졸지에 황제의 사타구니에 엉덩이를 밀어붙이는 꼴이 되었다. 청이 화들짝 놀라 몸서리를 쳤다.

“안 됩니다, 제발, 이것만은……. 용서해 주십시오.”

“못 하겠다고?”

“네, 못, 못 하겠…….”

황제가 한숨처럼 웃었다. 다음 순간 그 미소는 씻은 듯 사라졌다.

“허억……!”

단단한 주먹이 청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청의 상체가 앞으로 확 꺾였다. 황제가 그를 뒤에서 한 팔로 안고 있었던 덕에 침상에서 떨어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크헉, 윽…….”

내장이 커다란 바위에 깔려 죄다 짓뭉개지는 것 같았다. 시야가 까맣게 점멸하고 귓가에서 삐 소리가 들렸다. 그는 한동안 숨을 쉬지 못하고 힘겹게 컥컥거렸다.

“쓸모도 없는 팔다리, 다 잘라 내야 말 들을래?”

황제가 파들파들 떨리는 청의 허리를 붙잡아 단단히 고정하며 태연자약하게 물었다. 갑작스럽게 찾아든 충격에 힘이 풀렸다. 이제껏 아득바득 참고 있었던 것이 무색하게, 성기 끝에서 묽은 액체가 새어 나왔다.

처음에는 똑똑 방울져 떨어지던 것이 곧 물줄기가 되었다. 사방이 조용한 탓에 물줄기가 텅 빈 요강 벽을 때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최근 먹은 거라곤 물뿐이라 색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더할 나위 없이 수치스러웠다.

“쉬이……. 옳지.”

황제는 내내 어린아이를 어르듯 머리를 어루만지고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바로 조금 전 상대의 배에 무자비하게 주먹을 꽂아 넣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름 끼치도록 다정한 태도였다.

육체가 학대당하는 것보다 정신이 짓밟히는 것이 몇 배는 더 괴로웠다. 청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자존심과 긍지가 갈기갈기 찢겼다. 졸졸 새어 나오던 소변 줄기가 점차 잦아들고, 황제가 부드러운 천으로 성기 끄트머리를 꼼꼼히 닦아 준 후에도 청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윽고 벌어진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맨허벅지 위에 눈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흐으, 흐, 흑…….”

꼴사납게 흐느끼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눈물만 흘리다가, 결국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을 헐떡이며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새어 나온 눈물로 뺨과 속눈썹이 흠뻑 젖고 귀밑머리마저 축축해졌다. 살이 빠져 골격이 도드라진 어깨와 길게 풀어 내린 머리채 사이로 드러난 흰 목이 위태롭게 들썩였다.

“청아.”

황제의 손이 뺨을 감쌌다. 청은 반사적으로 작게 흠칫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청아?”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잡아 돌려 이쪽을 보게 했다. 얼굴을 가리는 젖은 머리카락을 걷어 냈다. 눈물로 엉망이 된 청의 얼굴이 드러났다. 낯빛이 파리한 가운데, 울음기로 일그러진 눈매에만 발갛게 물이 들어 있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황제는 문득 고개를 기울였다. 한 손에 다 들어오는 갸름한 턱을 감싸 쥐고 입을 맞추었다. 눈물에 척척히 젖은 청의 메마른 입술에 황제의 입술이 닿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입술이 맞닿아 눌리는 순간에도 둘 다 눈을 감지 않았다. 청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해 넋을 놓고 있었고, 황제는 그런 청을 집요하게 눈으로 좇았다. 아랫입술을 한 번 가볍게 머금었다 놓고, 황제는 조금 더 깊이 파고들었다. 입술을 진득하게 문지르며 뒤얽혔다. 두 남자의 가슴팍이 맞닿았다. 황제가 입고 있는 비단 의복에서 시원한 향이 풍겼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말캉한 혀가 파고들어 멍하니 있던 청의 혀끝을 건드렸다. 자신이 지금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헉.”

청이 죽도록 고통스러워하는 것과 별개로, 황제는 그를 짓밟고 응징하고 죽일 권리가 있었다. 속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청은 일단 황실을 능멸한 대역 죄인이었고, 그는 청의 하나뿐인 주인이었으므로.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형용할 수 없는 섬뜩함이 심장에서부터 혈관을 타고 쫙 퍼졌다. 황제가 헤집어 놓은 입 안이 독액을 머금은 듯 몹시도 썼다. 청은 소스라치게 놀라 있는 힘껏 황제를 뿌리쳤다.

하지만 약물에 절어 있는 몸으로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가떨어진 것은 오히려 청이었다. 그는 침상 아래의 나무 바닥에 어깨를 세게 부딪치며 맥없이 고꾸라졌다.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도 발작적으로 황제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말을 듣지 않는 팔로 힘겹게 바닥을 짚고 몸을 질질 끌었다. 그러다 황제가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뚝 굳었다.

“흐, 으으…… 아, 아…….”

뒤늦게 무서워졌다. 또다시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찾아들었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어금니가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

하지만 황제는 무감정하게 그를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손등으로 느릿하게 입가를 훔치며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청의 시야에서 그의 뒷모습이 사라졌다.

청은 적막한 전각에 홀로 남겨졌다. 병세를 보살펴 줄 사람도, 거동을 도와줄 사람도 없이.

* * *

통증이나 어지러움은 참을 수 있었다. 지하 감옥에 끌려갔다 나온 뒤로 항상 청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던 것들이었으므로. 배고픔도 마찬가지였다. 청은 가시나무로 둘러싸인 전각에 갇힌 이후로 뭔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의원이 달여 온 탕약을 몇 모금 마셨을 뿐이었다. 그것이 지금껏 청을 간신히 연명하게 했다.

하지만 목마름은 견디기 힘들었다. 목을 불로 지지는 듯한 갈증이 시도 때도 없이 그를 괴롭혔다. 그럴 힘만 있다면 자신의 살을 깨물어 흐르는 피라도 마시고 싶었다. 스스로가 몹시도 미개하고 야만적인 짐승처럼 느껴졌다. 침을 질질 흘리며 땅을 기는.

갈증에 시달리다 못해 청의 의식이 점차 흐려졌다. 이대로 조용히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며, 그는 침상 위에 힘없이 널브러져 기나긴 잠을 잤다. 누군가 꺾어 놓고는 깜빡 잊고 버려두고 간 탓에 그대로 말라 죽어 버린 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밤, 황제가 그를 찾아왔다.

황제는 상체를 숙이고 푸르스름한 어둠에 잠긴 청의 흰 뺨을 만졌다. 큼직한 손이 멋대로 얼굴을 만지는데도 청은 미동도 없었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여야만 간신히 희미한 숨소리가 들렸다.

“예락.”

한층 더 수척해진 이목구비를 마음껏 감상한 뒤에야 황제는 손등으로 청의 뺨을 툭툭 쳤다. 잠시 후 청이 부스스 힘겹게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난 눈동자가 화선지 위에 떨어뜨린 먹물 방울처럼 탁했다.

“목이 마른가?”

“네…….”

청이 쩍쩍 갈라진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목이 말라 미칠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지, 지금 맑은 물은 없는데. 맹물이 아니어도 괜찮겠나?”

그는 본능적으로 ‘물’이라는 단어에 반응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눈동자가 스르르 움직여 황제를 향했다. 황제는 말없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체중을 싣고 침상 위에 올라섰다. 비단 허리끈이 뱀처럼 스르르 풀렸다.

“입 벌려. 벌리고, 빨아.”

자꾸만 감기려는 눈꺼풀을 느릿느릿 깜빡이던 청의 입가에 굵고 단단한 것이 툭 닿았다. 끄트머리에 맺혀 있던 맑은 액체가 입술에 묻었다. 청은 그것을 좇아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흉물스러울 정도로 큰 기둥이 입 안에 퍽 처박혔다. 퍼석하게 마른 입술 가장자리가 툭 터졌다. 한계까지 벌어진 턱이 빠질 듯 아팠다.

“컥, 그…… 흐윽, 만……!”

“내 좆물을 마시고 싶다 한 건 그대잖아. 응?”

황제는 청의 위에 올라탄 채 한 팔로 침상 위쪽의 벽을 짚었다. 자세를 잡고 성기를 느릿하게 빼냈다. 귀두를 포함한 기둥 끄트머리가 타액에 번들번들하게 젖어 있었다. 이윽고 다시 콱 찔러 넣었다. 청이 목 너머로 헉, 하고 괴롭게 신음했다.

해쓱해진 청의 뺨 위로 성기의 윤곽이 불거졌다. 부드럽고 습한 입 안의 감촉을 즐기며 성기를 퍽퍽 꽂아 넣을 때마다, 불룩 솟은 뺨의 형태가 울퉁불퉁하게 변하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혓바닥과 입천장으로는 고작 성기 끝부분을 간신히 감쌀 뿐이었다.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황제는 일단 성기를 쑥 빼냈다.

“이 세우지 말고 혀 제대로 움직여. 좆을 그렇게 형편없이 빨아서 어느 세월에 목을 축이겠어.”

그는 곳곳이 버석버석하게 갈라져 피가 맺힌 청의 입술을 엄지로 슥 쓸었다. 엷게 묻어난 피를 습관적으로 핥으며 입술 사이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벌리게 했다.

“후장으로도 잘만 삼키던 걸 입으로 못 먹나? 뒷구멍에 박아 줬을 땐 그리 쭉쭉 빨아먹더니. 아직 목이 덜 마른가 봐?”

입을 도로 다물지 못하도록 손가락을 끼워 고정해 놓고, 한 손으로 젖은 기둥을 쥐고 다시 들이밀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발갛게 드러난 속살에 성기를 욱여넣었다. 미끄덩하게 들어찬 기둥이 혀와 목젖을 지나 목구멍에 박혔다.

“헉, 흐읍, 컥…….”

청은 이불 아래에서 온몸을 괴롭게 뒤틀며 펄떡였다. 성기가 깊이 틀어박힐 때마다 목구멍이 빠듯하게 벌어져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맛있어?”

황제가 살포시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그의 성기로 숨통을 틀어막힌 탓에, 청은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고 창백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새어 나와 입가의 터진 상처에서 나는 피와 뒤섞였다. 희미한 붉은빛을 띤 액체가 턱을 타고 줄줄 흘렀다.

“맛있어?”

곧바로 답이 돌아오지 않자 황제는 그의 뒷머리를 붙잡아 성기 위에 콱 꽂았다. 귀두가 단단히 조여져 있던 목구멍 너머 더 깊은 곳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갔다.

“맛있어?”

아까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물음이었다. 청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뻐근하게 아파 오는 턱을 억지로 달싹였다. 혀에 언뜻 질척한 액체가 묻었다. 황제의 성기에서 새어 나온 선액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혀를 놀려 그것을 핥아 먹었다. 몇 방울 핥은 것만으로도 오랫동안 말라 있던 몸이 수분을 반겼다.

“맛있어?”

황제가 네 번째로 물었을 때, 청은 커다란 사탕이라도 머금고 있는 것처럼 잔뜩 부푼 뺨으로 힘겹게 웅얼거렸다.

“네, 므, 흐윽, 마, 맛…….”

“그래?”

황제는 청의 앞머리를 움켜쥐고 뒤로 콱 젖혔다. 반듯하게 드러난 이마와 고통스럽게 찌푸려진 눈매를 감상하며 깊게 박아 넣었다. 아래에 깔린 청이 눈물범벅이 되어 컥컥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몇 번. 입천장을 쭉 긁으며 들어와 틀어박힌 성기에서 울컥울컥 정액이 뿜어졌다. 점성이 있는 액체가 곧장 목구멍으로 흘러들어 갔다. 무언가를 마시는 게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쓰고 비릿해야 마땅할 정액이 몹시도 달게 느껴졌다. 황홀할 정도였다.

“흐, 크흑!”

그러나 너무 급하게 삼킨 탓인지 느닷없이 사레가 들렸다. 청은 몸을 들썩이며 괴롭게 기침을 했다. 미처 삼키지 못한 정액이 입가로 질질 샜다. 황제는 흥건히 젖은 귀두를 청의 입매에 문질러 정액을 잔뜩 묻혔다. 뺨이 희뿌연 액체로 범벅이 되었다. 심지어 콧잔등과 이마에까지 튀었다.

“예락, 남기지 말고 싹싹 핥아 먹어야지. 모처럼 내가 직접 먹여 준 건데.”

청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다음 순간 그는 홀린 듯 혀를 내밀어 입술에 묻은 정액을 천천히 훑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청은 허겁지겁 정액을 핥다가, 심지어 귀두에 묻어 있던 것까지 빨아 먹었다. 정액이 생명수라도 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혀 놀림은 어설펐지만 그만큼 처절했다.

고요한 방 안이 성기를 핥고 빠는 음탕한 소리로 가득 찼다. 황제가 시선을 내리깔고 달콤한 숨을 내쉬며 웃었다. 우악스럽게 머리칼을 움켜쥐고 있던 손이 어느 순간부턴가 청의 머리를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이윽고 밤하늘에 흐르는 구름이 달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창 너머로 어렴풋하게나마 들이치던 달빛이 사라지며, 사방이 온통 칠흑처럼 캄캄해졌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 무명장야(無明長夜) :

빛이 없는 기나긴 밤. 또는 번뇌에 사로잡혀 헤매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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