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一觸卽發)
“마마, 탕약을 드실 시간입니다.”
궁인이 황후의 가냘픈 몸을 일으켜 앉혔다. 다른 이가 재빨리 비단 베개를 황후의 등 뒤에 받쳤다. 황후는 새가 물을 마시듯 조금씩 약을 홀짝홀짝 마셨다. 그나마 나아진 것이 이 정도였다. 황제의 침전에 불려갔다 온 이후, 황후는 고열에 시달리며 호되게 앓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목이 부어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겉으로는 황제가 두려워 아무 내색도 하지 못하였지만, 궁인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뒷말이 오갔다. 자객에게 당한 상처가 다 낫지도 않은 황후를 불러들여 어찌나 열렬히 색사를 치렀기에 몸이 도로 악화되었느냐고.
“전하, 황후 전하! 큰일이 났사옵니다.”
간신히 한 모금씩 약을 넘기는데, 시종이 다급히 들어와 황후를 찾았다. 황후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상궁이 눈을 흘겼다.
“마마께서는 지금 탕약을 들고 계신다.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마마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게냐.”
“너무도 급한 일이라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율(栗)에서 사절이 왔사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약그릇을 든 황후의 손이 뚝 멎었다. 그의 모국이었다.
“무슨 일이냐.”
“그, 그것이…….”
자신이 먼저 부리나케 찾아와 놓고, 시종은 바들바들 떨며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덜컥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낯을 굳힌 황후 옆에서 상궁이 대신 앙칼지게 언성을 높였다.
“네 이놈,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마마께서 경을 치셔야 재깍 입을 열겠느냐!”
“율에서 온 사절이……. 황제 폐하께 자신의 나라를 제국의 일부로 복속해 달라고 청하러 왔답니다. 폐하의 최종 허가가 떨어졌다는 소식까지 막 전해 듣고 바로 오는 길이옵니다.”
쨍그랑! 황후의 손에서 약그릇이 떨어졌다. 사기그릇이 산산조각 나고 안에 든 검은 탕약이 사방에 튀었다. 하지만 황후는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율이, 내 나라가……. 제국에?”
“예. 제가 듣기로는…….”
뒤이어 시종이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상세히 고했다.
해단 제국과의 전쟁 이후 율 왕국은 쑥대밭이 되었다. 필사적인 협상 끝에 간신히 휴전 조약을 맺기는 하였다. 음인이자 국왕의 직계 혈족인 13왕자 벽리설영(碧梨雪瑛)을 황제와 혼인시키는 조건이었다.
사실상 왕자를 적국에 팔아 평화를 산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망가진 도시와 황폐해진 논밭을 예전처럼 되돌릴 수 없었다. 지배층들 사이에서 서로 전쟁의 책임을 묻다 내전이 발발했다.
가장 먼저 왕세자가 부왕의 무능을 탓하며 들고일어났다. 그에 따르는 귀족들이 기다렸다는 듯 군사를 일으켰다. 물론 반대 진영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셀 수 없는 양의 피가 흘렀다. 제국과 전쟁을 치른 여파가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다. 서로 죽고 죽인 끝에, 결국 왕좌가 텅 비게 되었다.
치안이 약해진 틈을 타 끊임없이 오랑캐가 국경을 넘어 침략했다.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약탈과 학살을 저질렀다. 더 이상 전쟁의 책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러다간 나라 자체가 없어질 판이었다. 백해무익한 내전 끝에 간신히 살아남은 왕족들과 귀족들은 하는 수 없이 뜻을 모았다. 절대 강자인 제국에 몸을 의탁하여, 식민지가 되어서라도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고.
“아니, 아니야.”
인형처럼 우두커니 앉아 시종의 말을 듣던 황후가 무심결에 자신의 머리를 헤집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벅벅 헝클어뜨리며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무엇 때문에 나고 자란 왕궁을 떠나 이 낯선 제국까지 팔려 왔는데. 무엇 때문에 이역만리에서 온갖 수모와 굴욕을 감내했는데. 대체 무엇 때문에 이날 이때껏 후궁들과 관리들의 멸시를 참고, 황제의 방치를 견디고, 대장군의 칼에 가슴을 베이고도 꿋꿋이 살아남았는데…….
“네가 감히.”
파들파들 떨리던 마른 손이 이불을 움켜쥐었다.
“감히 누구 앞에서 수작을 부리는 것이냐.”
황후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숙이고 있던 시종이 당황하여 고개를 들었다.
“예, 예? 전하, 그게 무슨…….”
“내 심기를 어지럽히려 일부러 지금 찾아온 게지? 내 건강이 좋지 않을 때를 노려 비보를 전해서 나를 해치려고! 내가 타국 출신에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이따위 얕은수에 넘어갈 줄 알았느냐?”
“저, 전하, 말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옵니다! 소인은 그저 한시 빨리 이 소식을 전하께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달려왔사온데.”
“시끄럽다!”
황후가 등 뒤에 놓여 있던 비단 베개를 힘겹게 들어 집어 던졌다. 퍽! 베개가 시종의 얼굴을 후려갈기고 탕약 범벅이 된 바닥에 떨어졌다. 솜을 가득 채워 푹신푹신하게 만든 베개라 아프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 시종이 억울함과 배신감이 어린 낯으로 멍하게 황후를 올려다보았다.
“당장 이 괘씸한 것을 끌어내라. 배후가 누군지 실토할 때까지 곤장을 쳐라. 대해단의 황후를 해치려 하다니, 피가 터지도록 얻어맞아도 싸다!”
황후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항상 너그럽고 유순하던 황후가 처음으로 보인 잔혹한 모습에, 궁인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아무리 홧김에 뱉은 말이라 한들 황후의 명이었다. 아랫사람들로서는 옳든 그르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저는 억울하옵니다. 전하, 황후 전하! 제발 살려 주시옵소서!”
시종은 양팔을 붙들려 처참한 몰골로 질질 끌려 나갔다. 그의 처절한 외침을 못 들은 체하며, 황후는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애걸복걸하는 시종의 비명이 점점 멀어져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곧 궁인들이 분주히 오가며 바닥에 떨어진 그릇 파편을 치우고 탕약을 닦았다. 그 가운데 머리가 산발이 되어 이불만 내려다보고 있던 황후가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억울하다고?”
메마른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왔다.
“정말 억울한 건 나야…….”
* * *
청이 머무르는 황궁 변두리의 외딴 전각은 처음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 황제가 전각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가시나무 울타리를 없애고 청을 밖으로 끌어내면서, 그의 존재를 더 이상 숨기지 않은 까닭이었다.
이 전각은 공식적으로 대장군의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임시로 머무르는 처소가 되었다. 몸이 완전히 낫지 않아 매번 자택에서 황궁까지 오가기 어려우니, 황제가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그를 궁에 머물게 한 것으로.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황제는 자신이 가는 곳 어디든 청을 대동했다. 한창 전쟁 중일 때에도 묵을 곳이 마땅치 않으면 자신의 막사 곁에 임시 막사를 지어서까지 청을 옆에 끼고 다녔다.
청이 이곳에 머무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궁인들은 대장군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황량하던 전각에 여러 가지 물품을 채워 넣고, 소박하지만 품위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장식을 덧대었다.
모든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처리되었다. 온갖 가구와 집기들이 전각 곳곳에 차곡차곡 쌓였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시종들은 기계처럼 묵묵히 제 할 일만 하고 나갔다. 이 전각 안에서 청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황제가 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둘의 관계가 어떻게 뒤틀려 버렸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청은 고작 몇 달 동안 너무도 많이 망가졌는데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물자를 가져온 시종들이 순식간에 떠나고, 그는 낯선 물건들이 가득한 방에 홀로 남겨졌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이질적이었다. 침상에 드리운 하늘하늘한 천개며 반들반들 윤이 나는 자개 장식장, 벽에 걸린 풍경화가 너무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한때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인데.
그는 방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촛대 위에 놓인 향초가 고요하게 타들어 갔다. 촛불 빛으로 발그스름하게 물든 벽에 그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시종이 놓아두고 간 화병에 싱싱한 꽃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생화를 보는 것 또한 몹시 오랜만이었다. 청은 무심코 손을 뻗어 그중 한 송이를 뽑아 들었다. 이슬 맺힌 꽃송이에서 싱그러운 향이 났다.
숨을 깊게 들이마셔 청초한 향을 음미하다 말고, 청은 흠칫 굳었다. 불현듯 황후가 떠오른 탓이었다. 황후는 난초든 꽃이든 나무든 식물이라면 뭐든지 좋아했다. 아랫사람을 시키지 않고 자신이 일일이 물을 줘 가며 가꾸었다. 청이 새로 핀 꽃에 흘깃 시선을 던지면, 잔뜩 들떠서 뺨을 붉히며 꽃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황후가 비록 죽지 않고 살아났다 한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청은 그에게 죄인이었다. 아직도 청의 손길 아래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벌벌 떨던 황후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냥 보드랍고 향긋하던 꽃이 갑자기 몹시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청은 다급한 손길로 화병에 꽃을 도로 꽂아 두려 했다.
“아…….”
아무 예고 없이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고문을 받아 실명 직전까지 갔던 눈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마다 종종 말썽을 부렸다. 그때가 하필 지금이었다. 꽃송이를 쥔 청의 손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어설프게 허공을 휘저었다. 화병이 있을 거라 짐작되는 곳을 더듬는데, 갑자기 큼직한 손이 그의 팔목을 쥐었다.
“헉!”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팔을 잡혔다. 청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놀랐다. 탁한 시야에 어슴푸레하게 금빛 색채가 아롱졌다.
“청아.”
나지막한 목소리가 청을 불렀다. 그는 살짝 벌어진 입술을 다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반 발짝 정도 뒤로 물러섰다.
“청아……?”
황제가 청의 팔을 끌어당겼다. 꽃을 쥔 손을 뺨에 대고 가만히 속삭였다.
“목소리 좀 들려줘…….”
뒤늦게 시야가 천천히 개었다. 황제가 그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웃음기 없이 어둡게 가라앉은 눈이 섬뜩했다.
“폐, 폐하.”
“하아…….”
청의 목소리가 흥분제라도 되는 듯, 황제가 청의 손등에 뺨을 비비며 열 오른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폐하, 저…… 윽!”
청의 말이 도중에 뚝 끊어졌다. 황제가 그의 팔을 잡아 뽑을 듯 거세게 움켜쥔 탓이었다. 힘이 빠진 손에서 꽃줄기가 툭 떨어졌다. 황제는 그를 우악스럽게 잡아끌고 침상으로 향했다. 청은 휘청대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롭게 끌려갔다. 바닥에 떨어진 꽃송이가 성큼성큼 걸어 침상을 향하는 황제의 발에 무자비하게 짓밟혔다.
맞닿은 살갗이 묘하게 뜨거웠다. 황제가 움켜쥔 팔이 타들어 갈 듯 화끈거렸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숨 또한 열기에 젖어 있었다. 당황과 긴장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린 가운데,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다. 청이 다급히 물었다.
“헉, 흐윽, 폐하……. 환열기…… 십니까?”
황제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흐릿하던 불안감이 구체화되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양인과 음인은 환열기에 잉태 확률이 훨씬 높아졌다. 내관을 비롯한 궁인들이 황제와 비빈들의 환열기를 챙기는 데 열을 올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때가 시침을 들어 회임을 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므로.
황제는 청을 황후의 대용품이라 말한 적이 있었다. 황후가 없으니 그 대신 욕구 해소를 위해 청을 범하는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황제의 자손을 가질 수 있는, 그의 정당한 반려인 황후가 이 황궁 내에 버젓이 살아 있었다. 청은 몇 번이고 황제의 씨를 받아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그는 아니었다.
“안 됩니다……. 저는, 안 됩니다. 부디 황후 전하께…….”
“황후를 찾아가라고?”
황제가 처음으로 표정을 바꾸어 피식 웃었다. 다음 순간 그는 청을 잡아끌어 침상에 확 내던졌다. 청은 중심을 잃고 펼쳐진 이불 위에 속절없이 쓰러졌다. 황제는 뱀이 허물을 벗듯 겉옷 허리끈을 풀어 내렸다. 청의 허벅지 사이에 자신의 다리를 끼워 넣고 체중을 실었다.
“폐하!”
청이 다급하게 외쳤다.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맞는 음인의 환열기에 비해 양인의 환열기는 드물었다. 모든 비빈들이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터였다. 황손을 잉태할 수 있는 중대한 시기를 이렇게 낭비할 순 없었다.
황제는 스르륵 풀어낸 비단 허리끈을 팽팽히 당겨 쥐며 잠시 고민했다. 제 손짓 한 번에 맥없이 나자빠진 주제에, 입만 살아서 칭얼칭얼 앙탈을 부리는 게 거슬렸다. 하지만 청의 목소리는 제법 듣기 좋았기 때문에 입을 틀어막기에도 아까웠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기엔 지금 그는 상당히, 아니, 많이 급했다. 열에 들떠 눈앞이 시뻘겋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청의 팔을 확 비틀었다. 양 손목을 움켜쥐고 허리끈으로 침상 모서리에 칭칭 감아 묶었다.
“흐, 악……!”
강제로 꺾인 어깨가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절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황제가 그의 다리를 잡아 벌리며 태연자약하게 물었다.
“이런 걸 설영에게 어찌 하겠나?”
황제가 내뱉는 그 어떤 비난과 폭언보다도, 그 말이 청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마음이 무참히 짓밟혔다. 청의 몸에서 스르르 힘이 빠졌다.
청의 옷자락이 양옆으로 한껏 젖혀졌다. 손목이 침상에 묶여 있어 윗옷을 완전히 벗기지는 못했지만, 벌어진 천 사이로 맨몸이 언뜻 드러나 보이는 것이 더욱 배덕했다.
그의 위에 올라탄 황제가 발그스름하게 홍조가 오른 얼굴로 가만히 입맛을 다셨다. 어떤 뛰어난 화공도 완벽히 재현해 낼 수 없을 것 같은 화용월태(花容月態)였다. 그러나 그 아래 꺼떡꺼떡 머리를 치켜든 성기는 흉악하기 짝이 없었다. 두툼한 귀두가 붉게 달아오르고, 기둥에 굵직한 핏줄이 돋았다. 귀두 가운데 옴폭 팬 구멍에서부터 진득한 액이 새어 나와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청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이성을 잃은 그가, 환열이 올라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가 무서웠다.
황제는 항상 그를 잔혹하고 포악하게 다루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선을 지켰다. 청을 죽기 직전까지 몰았다가 다시 살려 주기를 반복하며 내키는 대로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완전히 절제를 잃은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청을 붙잡아 뱃가죽이 뚫리고 안에 든 장기가 죄다 으깨지도록 성기를 쑤셔 박을 기세였다. 이러다간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 윽…… 흐으.”
팔이 위로 꺾여 구속당한 채, 청이 무의식적으로 황제에게서 거리를 벌리려 했다. 생존 본능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발뒤꿈치로 이불을 힘겹게 밀어내며 몸을 물렸다. 보드라운 이불 위에 자잘한 주름이 졌다.
“어디 가?”
황제가 천진하게 물었다. 그러면서도 툭툭 옷을 벗어젖히는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달아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곧 청의 정수리가 침상 끄트머리에 툭 닿았다. 그래 봤자 위쪽으로 겨우 한두 뼘 올라온 게 전부였다.
“흑, 허억, 헉…….”
공황 상태에 빠진 청이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황제가 나직하게 성마른 웃음을 터뜨렸다.
“쓸데없는 짓을.”
큼직한 손아귀에 발목이 턱 잡혔다. 황제는 청의 발목을 움켜쥐고 아래로 죽 끌어 내렸다. 무력한 몸뚱이가 황제를 향해 질질 끌려갔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직감한 청이 고개를 휘저으며 처절하게 애원했다.
“폐하, 아, 안 됩, 아!”
황제는 청의 발목을 잡아 다리를 확 벌렸다. 몸이 반으로 접혔다. 구멍에 질척하게 젖은 귀두가 닿았다. 안을 풀어 주지도 않고 다짜고짜 처넣으려는 심산이었다.
말뚝 같은 성기가 구멍 위를 숨이 막혀 신음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뻐근하게 짓눌렀다. 굳게 다물려 있던 입구가 무지막지한 압력에 못 이겨 아주 조금 열리는 순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귀두가 안을 쭉 가르며 틀어박혔다.
“아악!”
청의 허리가 허공에 들썩 떠올랐다 떨어졌다. 아랫배에 쾅, 하고 주먹이 꽂힌 것 같은 충격이 가해졌다. 골반이 양옆으로 뜯겨 나가는 것 같았다. 체중을 실어 꾹꾹 밀어붙여도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꽉 조여든 내벽이 침입을 거부했다.
청이 고통을 못 이겨 꼴딱꼴딱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바르작거렸다. 하도 심하게 발버둥을 쳐서 비단 끈에 묶인 손목에 시뻘겋게 피가 맺혔다. 황제는 일단 안에 반쯤 물린 기둥을 힘주어 잡아 뺐다.
“힘 빼.”
“악, 으으, 흑!”
“내 좆 그만 씹어 먹고, 청아, 잠시만 뱉어 봐…….”
청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탓에 성기를 빼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이 움찔움찔 경련하며 물고 있던 기둥을 힘겹게 토해 냈다. 청의 발목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허리를 뒤로 물리자, 벌건 속살이 성기에 맞물려 딸려 나왔다.
청의 안에서 뽑혀 나온 기둥의 절반쯤이 번들번들하게 젖어 있었다. 엷은 핏자국 또한 드문드문 보였다. 귀두가 입구에 걸릴 정도로 빼냈다가 다시 쑥 밀어 넣었다. 이번엔 아까보다 좀 더 깊이 들어갔다.
“흐으…… 헉…….”
1년에 몇 번 오지 않는 환열기인데. 이 귀중한 시기에 황제는 황후나 다른 후궁에게 들르기는커녕, 아무리 정액을 싸질러 봤자 소용없는 청을 붙들고 억지로 성기를 쑤셔 박고 있었다. 그리고 청은 외딴 전각의 좁은 침상에 짐승처럼 묶인 채 황제의 아래에 깔려 있었다. 아무런 결과도 낳지 못하는 무익한 정사를 강요당하면서.
왈칵 서러워졌다. 이유 모를 슬픔과 갑갑함이 치밀어 올랐다. 청이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폐하, 왜……. 제게 대체 왜 이러십니까.”
목이 꽉 메었다. 홧홧하게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숨기려 청은 고개를 확 돌렸다. 손이라도 자유로웠으면 얼굴을 감싸 가렸겠지만 그럴 수조차 없었다.
“헉, 흐으, 저는, 폐하께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황제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울음소리를 한껏 억누르고 가슴팍을 들썩이며 서럽게 우는 청을 지켜보다가, 스르르 몸을 낮추었다.
“헉!”
둘의 상체가 맞닿으며 성기가 더욱 깊이 들어왔다. 한계까지 벌어져 접힌 청의 허벅지가 애처롭게 경련했다. 주제넘는 말을 했다고 황제가 그를 벌할까 봐 뒤늦게 무서워졌다. 청이 부쩍 가까워진 황제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고 덜덜 떨며 시선을 피했다.
“괜찮아.”
황제는 청의 관자놀이에 얼룩진 눈물 자국 위에 입술을 누르며 빙그레 웃었다.
“기대한 적 없으니.”
더할 나위 없이 잔인한 말이었다. 마음이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하게 식었다. 하지만 자기혐오에 빠질 겨를조차 없었다. 청의 위로 몸을 드리운 황제의 목덜미에서 생경한 향이 확 풍겼다.
“헉.”
황제에게서는 항상 시원한 향이 났다. 궁인들이 황제의 모든 의복에 매일같이 정성 들여 향을 입히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향은 그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청으로서도 처음 맡는 것이었다. 이렇게 코를 찌를 정도로 강한 향이면, 황제가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아챘을 텐데.
공기를 타고 들어오는 향이 너무 진했다. 향유 병을 깨트려 내용물을 통째로 들이부은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청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코끝에서부터 가슴속까지 길을 뚫으며 열기가 확 들이닥치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빙빙 돌았다.
“아, 아…….”
소리 죽여 흐느끼던 청이 갑자기 축 늘어졌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멀거니 넋을 빼놓고 있는 데 반해, 안은 움찔대며 성기를 쉴 새 없이 조여 물었다. 황제는 낮게 한숨을 쉬고 청의 발목을 쥔 채 퍽 밀어붙였다.
“읏, 허억!”
반쯤 빠져나갔던 성기가 도로 틀어박혔다. 내벽을 후벼 파는 자극이 청의 정신을 일깨웠다. 어느덧 아까 그 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뒤로는 둘 다 말이 없었다. 황제는 접합부를 빤히 내려다보며 허리를 강하게 치댔다. 벌겋게 성이 난 성기가 쭉 빠져나왔다 다시 틀어박혔다. 젖은 살끼리 붙었다 떨어지며 쩍쩍 소리가 났다. 반쯤 모양을 갖춘 청의 성기가 그의 배 위에서 들썩들썩 흔들렸다. 청이 무심코 허벅지를 오므려 성기를 가리려 할 때마다 발목을 확 당겨 사타구니를 활짝 벌리게 했다.
시야에 들어차는 광경이 제법 흡족했다.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청의 얼굴에 검은 머리칼이 어지럽게 달라붙었다. 양팔이 위로 묶여서는, 맨몸에 구겨진 침의 한 벌만 어설프게 걸치고 다리를 한껏 벌린 채 마구잡이로 쑤셔 박히고 있었다. 거대한 성기가 뒤로 들락날락할 때마다 판판한 아랫배가 음란하게 움찔거렸다.
청의 팔을 묶은 비단 끈이 땀에 젖었다. 축축한 천에 쓸려 손목에 벌겋게 핏자국이 남았다. 황제가 몰아붙이는 대로 청의 몸이 점차 턱턱 밀려 올라갔다.
“아윽!”
들쑥날쑥 내벽을 쑤시던 단단한 귀두가 배꼽 아래쪽을 강하게 쳐올리는 순간, 청이 허리를 확 휘며 펄떡였다. 동시에 침상 끄트머리에 정수리를 쿵 찧었다. 탄탄한 내벽이 성기를 있는 힘껏 쥐어짜 조였다.
“헉, 하아…….”
황제가 청의 종아리를 들어 자신의 어깨에 얹었다. 이를 악물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땀에 젖어 흐트러진 머리칼 아래, 이성을 잃은 다갈색 눈동자가 섬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청의 허벅지를 쥐어 벌리고 같은 각도로 쉬지 않고 퍽퍽 찔러 넣었다. 청의 엉덩이가 연이은 마찰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몇 번이고 치댄 탓에 얼얼해져 감각이 없었다.
“아, 흑, 아아, 악!”
쿵, 쿵, 쿵. 청의 머리가 연거푸 침상 테두리에 부딪혔다. 그러나 황제도 청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없었다. 무자비하게 파고드는 성기가 배 안을 망가뜨렸다. 내벽을 긁어 대고 짓이겼다. 황제가 한 곳을 쾅쾅 찧을 때마다 등허리가 침상에서부터 제멋대로 펄떡펄떡 튀어 올랐다.
황제의 어깨에 얹혀 힘겹게 흔들리던 발이 격한 움직임에 못 이겨 미끄러져 떨어졌다. 다음 순간 청은 스스로의 의지로 다리를 들어 황제의 허리에 힘 있게 감았다. 움찔움찔 떨리는 허벅지가 단단하게 긴장했다. 청은 발뒤꿈치로 황제의 엉덩이를 누르며 고개를 확 젖혔다. 땀이 밴 흰 목덜미가 먹음직스럽게 드러났다.
“아, 아으윽!”
청이 미친 듯이 고개를 휘저으며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토했다. 자의가 아닌 눈물이 한없이 새어 나와 눈가가 짓물렀다. 입가에서도 타액이 줄줄 흘렀다. 내벽이 성기에 꿰뚫려 쫙 벌어진 채 제멋대로 벌름거렸다.
황제는 청의 허벅지를 몇 번이고 고쳐 쥐었다. 손에 땀이 배어 자꾸 미끄러졌다. 살에 울긋불긋하게 손자국이 남도록 힘주어 잡고, 그 사이 드러난 벌건 구멍에 성기를 연달아 처박았다. 푹푹 찔러 줄 때마다 안이 점점 옴쭉대며 좁아졌다.
“헉, 허억, 아, 아……. 아……!”
성기가 끝까지 빠져나갔다 짓쳐 들어와 안을 쾅 때렸다. 청의 등이 퍽 떠올랐다. 바짝 힘이 들어간 등줄기가 곧게 패었다. 황제는 그에게로 상체를 낮추었다. 두 남자의 아랫배 사이에 청의 성기가 꽈악 눌렸다.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꼿꼿하게 서 있던 성기가 비벼졌다. 곧 희끄무레한 정액이 터졌다. 울컥울컥 흐르는 정액이 둘의 배를 적셨다.
황제는 반 뼘쯤 뜬 채로 바들바들 떨리는 청의 허리 아래에 한 손을 넣었다. 그의 상체를 받쳐 품에 확 끌어안으며 다른 손을 위로 뻗었다. 비단 끈에 묶여 벌벌 떨던 청의 손에 따뜻하고 큰 손이 단단히 깍지를 껴 왔다. 마디마디가 절박하게 뒤엉켰다. 땀에 젖은 손을 진득하게 얽는 행위 또한 살을 섞는 것만큼이나 음란했다.
“읏, 크윽……!”
퍽! 마지막으로 황제가 크게 치받아 왔다. 그는 귀두로 내벽 한 지점을 힘껏 누르며 사정했다. 정액이 성기에 빈틈없이 찰싹 들러붙은 내벽을 억지로 벌리고 꾸역꾸역 새어 나왔다. 삽입이 너무 깊었던 탓인지, 사정 또한 몹시 길게 느껴졌다. 정액이 끝도 없이 꿀럭꿀럭 쏘아져 내벽을 적셨다.
“아아…… 윽, 흐읏…….”
목까지 정액이 차오르는 듯한 감각이 거북했다. 청이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발끝으로 황제의 허벅지를 꾹꾹 밀어냈다.
그러나 조금의 쉴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황제가 청의 손목을 묶은 비단 끈을 잡아 찢듯 거칠게 풀어냈다. 청의 안에서 아직도 정액이 질질 흐르는 성기를 확 뽑아내고, 그의 몸을 돌려 엎드리게 했다. 뒤에서부터 목을 움켜쥐고 찍어 눌렀다. 청의 고개가 침상에 거칠게 처박혔다.
“흐윽!”
그는 엉덩이만 어설프게 치켜든 자세가 되었다. 몸에 힘이 빠져 자세가 허물어지려 하자, 황제가 사정없이 엉덩이를 내려쳤다.
“구멍 똑바로 보여 봐. 잘 받아먹었는지 확인해야지.”
청이 흐느끼며 간신히 엉덩이를 올렸다. 격렬한 정사에 피가 몰려 붉어진 구멍이 오물거렸다. 그 사이로 황제가 싸 넣은 정액 한 줄기가 주룩 흘러나왔다.
황제는 그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손가락 세 개를 푹 찔러 넣었다. 자꾸 다물어지려는 구멍을 억지로 벌리자 질척한 안이 뻐끔대며 정액을 내보냈다. 음탕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황제의 머릿속에 다시 뜨거운 안개가 끼었다. 고작 한 번 사정한 것으로 발정이 해소될 리가 없었다.
그는 청의 양팔을 등 뒤로 모아 단단히 쥐었다. 손목에 얼룩덜룩하게 피가 맺혀 참혹한 꼴이 된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성기를 정액 범벅이 된 구멍에 도로 찔러 넣으며 팔목을 확 끌어당겼다.
“흐, 읏!”
그가 당기는 대로 청의 상체가 젖혀졌다. 막 사정을 마친 성기가 다리 사이에서 묵직하게 흔들렸다. 힘겹게 숨을 할딱일 때마다 명치 바로 아래까지 쑤셔 박힌 성기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배가 터질 듯 팽팽하게 땅겨져 버거웠다. 청이 고개를 푹 숙이며 괴로워했다.
이윽고 황제는 뒤에서부터 철썩철썩 소리가 나도록 박아 넣기 시작했다. 한 번 사정했는데도 힘이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아까보다 몸짓이 더욱 거칠었다.
거대한 성기가 안을 찧을 때마다 내벽이, 아니, 아랫배 전체가 징징 울렸다. 청은 황제가 밀어붙이는 대로 흔들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럴 리 없겠지만 황제의 환열이 옮기라도 한 것인지, 어느덧 그의 정신 또한 흐릿해졌다.
* * *
침상에 고꾸라진 청의 골반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황제는 허리를 퍽 쳐올렸다.
“큭……!”
젖은 살끼리 철썩 맞붙었다. 성기를 한계까지 쑤셔 박고 배 안에 정액을 싸 넣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사정이 비로소 끝났다.
그야말로 짐승 같은 정사였다. 황제는 청의 뒤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축축 늘어지는 몸을 붙잡고 끈질기게 박아 넣었다. 그는 집요하게 청의 안을 정액으로 메웠다. 나중에는 성기를 처넣을 때마다 구멍에서 새어 나온 정액이 사방으로 철퍽철퍽 튈 정도였다. 청의 엉덩이가 마찰로 벌겋게 물들고 허벅지 사이로 정액이 물줄기처럼 흘러 질척거렸다.
청은 교합 도중에 깜빡깜빡 짧게 정신을 놓았다. 죽을 것 같다는 말이 몇백 번쯤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굵직한 기둥이 수없이 드나들었던 구멍이 뻥 뚫려 다시는 다물리지 않을 것 같았다. 커다란 귀두가 내벽 저 깊은 곳을 탕 찍을 때마다 눈앞에 뜨거운 불꽃이 피어 이성을 활활 태우고 녹였다.
“흐으…… 윽…….”
청은 침상에 얼굴을 박고 엎드려 숨을 색색 몰아쉬었다. 의식이 가물가물했다. 더 이상 신음도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서 바람 새는 소리만 새어 나왔다.
엉덩이를 치켜든 청의 몸에 힘이 빠져 자세가 무너질 때마다 황제는 그의 엉덩이를 가차 없이 때렸다. 가끔은 머리채를 움켜쥐고 뺨을 올려붙이기도 했다. 청은 그때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미적미적 자세를 바로잡았다. 몇 번의 포악한 정사 끝에 그의 온몸이 피와 멍으로 울긋불긋하게 얼룩졌다.
황제는 반쯤 의식을 잃은 청의 몸을 가뿐하게 안아 올려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 여전히 성기를 청의 안에 박아 놓은 채였다. 여러 번 사정하고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은 성기가 청을 아래에서부터 꿰뚫었다. 내장을 턱 찔러 올리는 감각에 배가 뻐근하게 아팠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 청의 상체가 앞으로 휘청거렸다. 망가진 인형처럼 고개가 푹 꺾이고 사지가 무력하게 늘어졌다. 황제의 팔이 뒤에서부터 뻗어 나왔다. 청의 허리를 단단히 휘감아 쓰러지지 못하도록 했다.
“안 돼……. 벌써 잠들면.”
“크, 헉!”
청의 몸을 고정하기 위한 행위였으나 그저 고통스럽기만 했다. 거대한 성기가 가득 박혀 괴롭던 차에 배를 조이니, 숨이 막히고 속이 메슥거렸다. 황제가 속에 한껏 싸 넣은 정액이 출렁이며 목구멍으로 역류할 것 같았다.
“잔뜩 싸질러 놨으니 이제 틀어막아야지.”
“제, 제발. 제발…….”
청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빌고 또 빌었다. 고개를 숙이고 섧게 흐느꼈다. 산발이 된 머리채가 마구잡이로 흘러내렸다.
그 순간 청의 안에서 황제의 성기가 크게 꿈틀거렸다. 사정할 때와는 다른 감각이었다. 꼿꼿이 곤두선 기둥이 단단하게 부풀어 내벽을 벌렸다.
“악, 흐악!”
청이 사지를 바르작거리며 잔뜩 쉰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허벅지에 총탄이 틀어박힌 채 흙바닥에 쓰러져 범해졌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학습된 공포가 뇌리를 잠식했다.
청은 본능적으로 허겁지겁 황제의 무릎을 짚었다. 그의 다리를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키려 했다. 결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빠져나가려는 심산이었다. 성기를 문 채 황제의 사타구니 위에 앉아 있던 엉덩이가 힘겹게 달싹였다.
그러나 황제가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만무했다.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어 청을 도로 확 앉혔다. 파들파들 떨리는 엉덩이를 성기 위에 대고 강하게 눌러 안을 짓이겼다. 눈앞이 새하얘졌다. 찡하게 뜨거운 전율이 스쳐 지나갔다. 청이 괴롭게 헛구역질을 했다.
“욱……!”
빠른 속도로 팽창한 성기가 배 안을 빠듯하게 메웠다. 오장육부가 위로 밀려나고 청의 아랫배가 육안으로도 보일 만큼 솟아올랐다.
“찢어질 것, 같, 흐으……. 안 돼, 허억, 아, 악!”
“찢어져? 어디가?”
“흐윽, 흑, 너무 커서, 배가…….”
청은 드문드문 끊기는 소리로 고통을 호소하며 울었다. 하도 울어서 빨갛게 짓무른 눈가에 새로이 터진 눈물이 줄줄 흘렀다. 황제는 어린아이처럼 무력하게 울어 대는 청을 어르고 달랬다.
“괜찮아, 청아, 착하지.”
“우욱, 윽!”
그 와중에도 성기는 점점 더 커졌다. 몸을 들썩이며 구역질을 하던 청이 결국 물을 토했다. 위액 섞인 맑은 액체가 그의 턱을 타고 뚝뚝 흘렀다.
그러나 황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청의 아랫배를 감쌌다. 청은 원래도 근육이 우락부락한 편은 아니었는데, 거기다 최근 살이 빠져 무관치고는 체격이 호리호리했다. 판판하던 배가 지금은 황제의 성기를 품고 완만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애라도 밴 것 같군.”
그는 살짝 부푼 복부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청의 안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던 성기를 약간 움직여 보았다.
“흐악……!”
고통스러운 전율이 내벽에서부터 번졌다. 청은 박제된 짐승처럼 뻣뻣하게 굳은 채 흐느꼈다. 한껏 오그라든 발끝이 이불 위를 벅벅 긁어 댔다. 황제는 아픔에 울부짖는 청이 귀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눈매를 휘며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눈물에 젖은 청의 귓가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청의 배를 천천히 어루만지며 허리를 꾹꾹 올려붙였다. 툭툭 건드리는 거나 다름없는 미온적인 움직임이었다. 바윗덩이 같은 성기가 내벽을 살짝살짝 자극했다. 분명 죽도록 아픈데, 당장이라도 배가 뻥 뚫리고 그 사이로 황제의 성기가 툭 튀어나올까 봐 너무도 무서운데. 그 사이에서 묘한 감각이 피었다. 배 안이 꾹 눌릴 때마다 눈앞이 새하얘지고 손발 끝이 곱아 들었다.
“으윽, 헉.”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청의 가슴팍이 가파르게 들썩였다. 성기를 감싸느라 한계까지 벌어진 내벽이 간헐적으로 움찔움찔 떨렸다. 황제가 앞으로 손을 뻗어 청의 유두를 만졌다. 살짝 꼬집고 손끝으로 젖꼭지 끄트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가볍게 누른 채 빙글빙글 돌리기도 했다.
청의 허벅지가 파들파들 떨렸다. 점차 떨림이 심해졌다. 청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젖혀 황제의 가슴팍에 등을 기댔다. 그의 품에 몸을 맡긴 채 성기가 들썩일 때마다 반사적으로 등허리를 펄떡였다.
“황후를 안고 싶었어?”
황제는 연한 색의 유두가 발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부턴가 빳빳하게 서 있는 청의 성기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이런 쓸모없는 자지도 자지라고, 한번 써먹어 보겠답시고 몸이 달아선…….”
유두를 만지작거리던 손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민한 살점을 우악스럽게 잡아 비틀었다. 젖꼭지가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청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비명을 질렀다.
“내가 박아 주는 게 더 좋지?”
“으읏, 흐, 앗.”
“응? 청아…… 대답해야지.”
내벽에 꽉 물린 성기가 집요하게 들썩였다. 청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발뒤꿈치로 이불을 꾹꾹 밀어내며 소극적으로 몸부림쳤다. 발끝까지 잔뜩 힘이 들어가 발등에 뼈대가 도드라졌다.
황제는 청의 유두를 지분거리며 본격적으로 허리를 움직였다. 툭, 툭, 성기를 가볍게 치받아 올릴 때마다 부풀어 오른 아랫배의 형태가 울룩불룩 미묘하게 바뀌었다. 청의 허벅지가 양옆으로 확 벌어졌다 다음 순간 움츠러들었다. 손안에 흥건히 식은땀이 배었다. 청은 고개를 확 젖히며 울음기 섞인 신음을 터뜨렸다. 턱 끝이 파르르 떨렸다.
느릿느릿 구르는 집채만 한 바위에 서서히 깔려 죽어 가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 끔찍한 감각을 피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황제의 성기가 요도를 짓이기고 전립선을 뭉개 놓았다.
“좋지?”
똑같은 물음이 되풀이되었다. 황제의 손끝이 유두를 느릿하게 만지작거렸다. 청이 우느라 눈도 못 뜬 채로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 으읏, 아, 앗, 좋습…… 좋습니…… 윽!”
황제가 청의 허리를 자신의 위에 꾹 눌렀다. 커다랗게 팽창한 성기가 내벽 깊은 곳을 지그시 압박했다.
“흐으…… 악…!”
눈앞이 요란하게 번쩍였다. 지독한 쾌락이 발끝에서부터 미적미적 기어올랐다. 아주 느리게 청의 발목을 휘감고 올라 종아리로, 허벅지로 번졌다. 그러나 꼿꼿이 곧추서 있는 청의 성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정액을 내보내는 길이 황제의 성기에 눌려 막혀 버린 탓에, 그는 사정하지 못한 채 고요한 절정을 맞았다.
“아, 아, 아…….”
차라리 죽여 달라 하고 싶었다.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신경을 잘게 저미는 독약 같은 쾌감에 시달리느니, 구멍이 찢어지고 배가 터지도록 퍽퍽 처박히는 게 나았다.
청은 입가로 흐르는 타액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절정에 몸서리쳤다. 등줄기가 파득파득 경련했다. 엉덩이가 제자리에서 들썩들썩 뒤틀리고, 성기를 버겁게 품고 있던 내벽이 빠르게 수축을 반복했다. 헉, 헉, 하고 목이 졸린 듯한 신음이 연달아 터졌다.
황제가 청의 턱을 잡아 확 돌렸다. 눈꺼풀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 사이로 보이는 눈에 초점이 없었다. 젖은 입술 또한 힘을 잃고 벌어져 있었다. 그는 청이 기나긴 절정에 시달리는 내내 쾌감을 못 이겨 풀려 버린 얼굴을 낱낱이 훑어보았다.
마침내 황제가 결착을 마치고 성기를 쑥 빼냈을 때, 청은 이미 혼절한 후였다. 허리를 안은 팔을 풀어 주자마자 의식을 잃은 청의 몸이 앞으로 풀썩 고꾸라졌다. 밀봉한 병의 마개를 따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그의 뒤에 박혀 있던 성기가 뽑혔다.
구멍은 성기가 빠져나가고 나서도 퉁퉁 붓고 벌겋게 피가 몰린 채 뻐끔하게 벌어져 있었다. 잠시 후 입구가 스르르 오므라들며 희뿌연 액이 비쳤다. 이제껏 잔뜩 싸 넣은 것들이 결착으로 막혀 있다가, 성기가 빠져나가자마자 울컥울컥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 * *
청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숨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황제는 그의 곁에 누워 옆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죽은 듯 눈을 감은 청의 상태는 처참했다. 식은땀으로 귀밑머리가 축축하게 젖고,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입술이 핏기 없이 질린 데 반해 눈가는 빨갛게 짓물렀다. 좋은 말로도 곱고 말쑥하다고는 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목 아래는 더 심했다. 온몸이 황제가 새긴 손자국이며 잇자국으로 얼룩졌다. 끔찍한 고문 끝에 숨을 거둔 사람 같았다.
그러나 황제는 그 얼굴을 보며 서서히 흥분했다. 결착을 끝내고 겨우 잦아드나 싶었던 환열이 다시 들불처럼 타올랐다. 눈앞에 먹구름 같은 열기가 드리웠다. 쿵쿵 거세게 뛰는 심장 박동이 스스로의 귓가에 크게 울렸다.
그는 홀린 듯 웃었다. 흰 뺨에 홍조가 스미고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청의 위에 올라탔다. 멋대로 새어 나오는 거친 숨소리를 억누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낮게 헐떡이며 속삭였다.
“지청, 청아.”
위에서부터 흘러내린 다갈색 머리칼이 청의 귓가를 간질였다. 하지만 혼절한 청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혈색 없는 얼굴이 언뜻 시체처럼 보였다.
“내 청이.”
황제의 손이 청의 뺨을 쥐었다 놓았다. 척척하게 젖은 목덜미를 쓸어내리고 귓가를 매만졌다.
“무정하고 어여쁜…….”
그는 의식 없는 이를 상대로 중얼중얼 말을 걸며 축 늘어진 몸을 소중하게 어루만졌다. 섬뜩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항상 그랬어. 청이 너는 내게만 매몰차게 굴지. 좋다는 말 한 마디를 듣기가 이리도 어려우니.”
미친 사람처럼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하다가, 황제는 제풀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소리 죽여 웃으며 청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부딪쳤다.
“네 몸이 딱딱해지고 손발이 굳으면 너는 내게 더욱 차가워질 테지. 말을 걸어도 대답해 주지 않을 거고, 입을 맞추어도 얼굴을 붉히지 않겠지.”
뒷구멍에 좆을 쑤셔 박아도 아무런 반응을 해 주지 않을 것이고, 너무 아프다느니 배가 찢어질 것 같다느니 하는 깜찍한 앙탈을 부리지도 않을 것이다. 눈 돌리지 말고 나만 보라고 모질게 뺨을 때려도, 다시는 청의 눈동자를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는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끼워 넣은 유리 안구가 있으리라.
그 생각이 황제의 흥분에 더욱 불을 지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황제는 청의 머리맡에 한 팔을 짚은 채 자신의 성기를 쥐었다. 청의 위에 올라타 그를 집요하게 내려다보며 자위했다. 핏줄이 돋은 큼직한 기둥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악다문 잇새로 이따금 낮게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청의 입가에 귀두를 문지르다 입술 사이로 쑥 밀어 넣었다. 말캉한 혀를 짓누르고 목구멍을 벌렸다. 의식 없는 이의 입에 억지로 성기를 쑤셨다. 청은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입 안은 보드랍고 따뜻했다.
황제는 청의 목구멍 안쪽에 성기를 박은 채 사정했다. 질척한 정액이 목을 타고 꾸역꾸역 흘러들어 갔다. 그는 사정 도중에 성기를 쑥 잡아 뺐다. 정액이 질질 새어 나와 청의 얼굴에 묻었다. 뿌연 액체가 뺨과 입가를 흥건히 적시고 심지어는 속눈썹에까지 튀었다.
“하아, 하…….”
사정을 마친 황제는 흐트러진 숨을 골랐다. 그는 따뜻한 손으로 청의 양 뺨을 감싸고 살며시 간격을 좁혔다. 어느덧 코끝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그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한참 동안 청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러다 이내 스르르 눈을 감으며 자신의 정액으로 엉망이 된 입술 위에 입을 맞추었다.
* * *
청은 침상에 걸터앉은 황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허벅지 위에 황후의 발을 올려 두고 조심스레 비단 버선을 벗겼다. 그 아래 드러난 발이 온통 물집투성이였다. 살갗이 벗겨져 난 진물과 피가 버선에까지 스며 있었다.
〈…….〉
그는 무표정하게 한숨을 쉬었다. 부끄러워진 황후가 무의식적으로 발을 빼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발목을 쥔 손은 정중하면서도 완고했다.
황후를 모시는 아랫사람의 소행이었다. 의복과 장신구를 관리하는 궁인이 일부러 황후에게 발에 맞지 않는 작은 신을 신겼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이 으스러지는 듯 아파 눈물이 찔끔 났지만, 제국의 복식을 잘 모르는 황후는 그저 낯선 형태의 신발에 익숙하지 않아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아픈 티를 내면 변두리 소국 출신이라 촌스럽게 군다고 뒷말을 들을까 봐 애써 멀쩡한 척했다.
제국에서 통용되는 미의 기준 중에는 굳은살 하나 없는 희고 매끈한 발이 있었다. 황후의 발이 흉하게 망가지면 황제의 총애를 잃을 거라는 심산이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갓 책봉된 황후에게 수모를 주어 기를 꺾어 놓을 수 있으니 밑져야 본전이었다.
여러모로 저열한 수법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저열한 점은 황후가 주모자를 알고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진짜 의도가 어찌 되었든, 대외적으로는 그저 궁인이 신발의 치수를 잘못 알고 가져온 것뿐이었다. 새로 바꿔 오라는 명을 내리지 않고 굳이 그 신을 꿋꿋이 신은 건 황후 자신이었고. 이 상황에서 그를 벌해 봤자 황후가 아랫사람에게 지나치게 악랄하게 군다는 오명을 쓸 뿐이었다.
황후가 운의전에 기거하게 된 지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벌써 이런 일이 일어났다. 아니, ‘벌써’가 아니라 ‘드디어’라고 해야 할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황후가 불안한 듯 이리저리 시선을 굴리는 와중에, 청은 그저 씁쓸하게 입매를 굳힐 뿐이었다. 새삼 환멸이 났다. 이젠 황궁의 추악한 암투에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저어, 괜찮습니다. 굳이 대장군이 하지 않으셔도. 태의를 부르면 되니까요.〉
〈심려치 마십시오. 야전 훈련이나 장거리 행군을 하다 보면 발에 물집이 잡히는 일은 허다합니다. 이 정도 처치는 저도 합니다.〉
청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덤덤히 받아쳤다. 할 말을 잃은 황후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청은 침상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묵묵히 황후의 발을 치료하는 데 전념했다. 따뜻한 물에 적신 천으로 진물을 닦아 내고 상처에 연고를 발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금군 대장군이 하기에는 너무도 자질구레한 일이었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청은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전하, 황궁은 이런 곳입니다.〉
깨끗이 소독하여 약을 바른 발에 흰 붕대가 감길 무렵, 청이 불쑥 입을 열었다. 쭈뼛쭈뼛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황후가 흠칫 놀랐다.
〈내명부의 수장이 되셨으니 이제 전하껜 이런 일이, 아니, 이보다 더한 일이 숱하게 생길 겁니다. 하지만 아무도 믿으셔선 안 됩니다. 아랫것들이 입 안의 혀처럼 굴더라도, 다른 귀족과 황족들이 친근하게 다가오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마음을 주지 마십시오.〉
〈그럼 대장군도 믿으면 안 되나요?〉
황후가 반문했다. 청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딱 잘라 말했다.
〈예. 안 됩니다.〉
〈…….〉
황후는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물어보았다.
〈황제 폐하는요?〉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청은 그와 시선조차 마주하지 않았다. 질문을 아예 듣지 못한 것처럼,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덤덤한 손길로 붕대를 감을 뿐이었다.
그 당시에 황후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물음에는 기계적으로 꼬박꼬박 대답을 돌려 주던 청이, 왜 그 질문에만큼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는지.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았다.
황후의 조국, 율은 제국의 아래에 완전히 복속되었다. 이제 율의 국왕은 황제의 신하가 되어, 제국의 각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들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었다. 독자적인 연호를 쓸 권한도 법령을 만들 권한도 없었다.
지금껏 황후는 자신의 처지에서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권위도 세력도 없고 친정은 머나먼 변방에 있는 데다 유일하게 의지할 만한 상대인 황제는 그를 방치하다 내킬 때만 찾았으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기구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조국이 멸망하고 나서, 그는 몸소 깨쳤다. 여기서도 더 나빠질 여지가 있음을. 완전히 끈 떨어진 신세가 되어 버린 황후는 말단 관료보다도 못한 처지가 되었다. 적어도 그들은 모두 제국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이제야 알았다. 황제는 단 한 번도 황후를 반려로 여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아무 감정 없는 정략결혼 상대 취급조차도 한 적 없었다. 호칭만 황후일 뿐, 그는 임시로 붙잡아 황궁 한구석에 처박아 놓은 속국의 인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에게 황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약탈자이고 침략자였다. 그는 지금껏 적진의 한복판에서 적군의 우두머리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루 말할 없이 절망스러워졌다.
* * *
황제는 황후가 환열기를 맞을 때면 꼬박꼬박 탕약을 보냈다. 체력을 보충하고 원기를 북돋워 주는 약이라 하였다.
한때는 그것을 애정 표현이라 생각했다. 주위 사람들도 모두 입을 모아 그리 말했다. 황제가 그를 지극히 총애해서, 환열에 시달리다 몸이 축날까 봐 일일이 챙겨 주는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마마, 입에 쓴 약이라 드시기 힘드시지요. 그래도 드셔야 합니다.”
황후는 시종이 건네는 탕약을 힘없이 받아 마셨다. 어느덧 환열기 때마다 황제가 내린 약을 마시는 게 습관이 되었다. 실제로도 약을 마시면 마구 들끓던 욕정이 가라앉고 정신이 맑아졌다. 이젠 약이 없으면 허전할 정도였다.
“손님이 오셨사옵니다. 드시라 할까요?”
“날 찾아올 이가 누가 있단 말이냐?”
문밖에서 시종이 공손히 일렀다. 황후는 지친 목소리로 대꾸했다. 짚이는 사람이 없었다. 황후의 모국이 멸망하고 그에게서 얻을 게 없다는 사실이 황궁에 널리 퍼진 뒤로, 그나마 그를 찾아 주던 몇 안 되는 이들마저 발을 끊었다. 그리고 황제와 대장군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시종이 대꾸하기도 전에 침전 입구에 드리운 주렴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를 보고 황후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형님?”
차분한 녹색 옷을 입은 남자가 방 입구에 서 있었다. 갖은 비단을 아낌없이 써서 화려하게 지은 제국 황실의 옷차림이 아니었다. 다소 수수한 옷감 위에 꼼꼼히 자수를 놓은 율 왕국의 복식이었다.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그리운 의복이었다.
황후는 곧장 상대를 알아보았다. 제국으로 떠나기 전 한 번 보고 보지 못했던 동복형제, 율의 9왕자였다. 그는 곁에 시종들이 있다는 것도, 한창 약을 마시던 중이라는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났다.
“형님, 세상에……. 대체 어떻게 여기에.”
“황후 전하를 뵙습니다. 길이 평안을 누리소서.”
9왕자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제국식 예법이었다. 황후가 깜짝 놀라 그를 말렸다.
“아닙니다, 일어나세요. 형이 동생에게 큰절이라니요.”
“전하는 신의 동생이기 이전에 이 제국의 황후십니다. 마땅히 그에 걸맞은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 여긴 제 침소인걸요. 여기에서까지 예법이니 도리니, 딱딱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네?”
울상이 된 황후가 체통도 잊고 어린아이처럼 졸랐다. 9왕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났다. 아까는 그에게만 정신이 팔려 미처 몰랐지만, 9왕자의 뒤에 한 명이 더 있었다.
“강 대인!”
황후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비명을 터뜨렸다. 그를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돌보았던 어의였다.
“예. 신 강택서, 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그간 무탈히 지내셨습니까.”
“여기까지 대체 어떻게 오셨습니까? 쉴 새 없이 달려도 보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제국으로 가는 사절단에 자원하여 참가했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황궁에서 지낼 듯합니다. 짧으면 몇 달, 길면 몇 년이 될 수도 있겠군요.”
마냥 천진하게 들떠 있던 황후의 낯빛이 굳었다. 그가 말하는 사절단이 무엇인지 이해한 탓이다.
그들은 황제의 앞에 엎드려 애원할 목적으로 먼 길을 왔다. 자신의 나라를 제발 제국에 받아 달라고, 식민지가 되고 노비가 되어도 좋으니 목숨만 부지하게 해 달라고. 그들이 과연 어떤 심정으로 조국을 떠나 예까지 왔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황궁에서 지낸다 함은…….”
“해단과 율 사이를 중재하며 연락책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제국의 지원을 받아 어느 정도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는 여기에 머물러야지요.”
말이 좋아 연락책이지 사실상 목숨을 저당 잡힌 인질 신세나 다름없었다. 율 왕국이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는 순간, 황제는 먼 소국까지 군대를 보낼 것도 없이 바로 이들의 목부터 자를 터였다.
황후는 더 이상 기뻐하지 않았다. 여린 꽃잎 같은 얼굴이 수심으로 어두워졌다. 그것을 민감하게 파악한 9왕자가 애써 화제를 돌렸다.
“말마따나 이런 딱딱한 이야기는 이쯤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니 회포나 풉시다, 아우님.”
침울하게 가라앉으려던 분위기가 간신히 풀렸다. 궁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다과상을 차리러 주방으로 향하고, 인원수대로 비단 방석을 깔아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한데 이 탕약은 무엇인지요?”
강 어의가 침상 옆의 탁자에 놓여 있던 약그릇을 가리켰다. 아까 황후가 마시다 말고 내려놓은 탕약이었다.
황후의 뺨이 발갛게 물들었다. 환열기에 마시는 약이라고 대놓고 말하기엔 부끄러웠다. 하지만 강 어의는 황후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그를 돌보았던 의원이었다. 자신의 기저귀까지 갈아 준 적이 있는 이를 두고 내외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망설임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건, 제가 워낙에 몸이 약한지라……. 기운을 다스리고 체력을 회복하라고, 환열기마다 폐하께서.”
“폐하께서 직접 내리셨습니까? 신이 잠깐 살펴보아도 되겠습니까?”
“예? 예, 얼마든지요.”
그는 한참이나 탕약을 주의 깊게 조사했다. 색을 보고 냄새를 맡고, 흰 천을 꺼내어 몇 방울을 떨어뜨려 보기도 하고, 살짝 맛을 보기도 했다. 마침내 고개를 들었을 때, 강 어의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참담하게 굳어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설마……. 이 약에 독이.”
“아니요, 독은 아닙니다. 오히려 귀한 약재를 듬뿍 넣어 지은 약입니다. 이 조합대로 복용하면 원기 보충에 뛰어난 효능이 있지만, 하도 구하기 힘들어 이대로는 거의 처방하지 않습니다. 천금을 주고도 못 살 최고급품만 썼고, 약효가 최대한 진하게 우러나도록 아주 긴 시간 동안 정성껏 달였군요.”
“한데 어찌하여.”
“제가 말씀드린 ‘원기’라 함은……. 전하, 양기(陽氣)입니다. 불과 물 중에 불이며, 해와 달 중에 해에 가까운 기운입니다. 음인에게는 상극이지요. 특히 환열기를 맞아 음기를 한껏 품은 음인에게는 더욱.”
황후의, 아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모셨던 13왕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어의는 이를 악물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고했다.
“이 약을 꾸준히 드시는 한, 전하께서는 절대 회임하실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복용하신다면……. 평생 회임할 수 없는 몸이 되실 겁니다.”
“그게 무슨……. 이 약은 폐하가 직접 명을 내려서 지은 약인데. 황명을 받아서…… 다른 이들은 절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데…….”
비탄에 잠겨 침묵을 지키던 어의가 불쑥 물었다.
“전하, 폐하께서 단 한 번이라도 전하께 결착하신 적이 있사옵니까?”
“저, 저, 저는……. 전…… 그, 그게, 저는 몸이 약하니까, 그, 그래서, 폐하께서 배려하시느라, 그런 줄로만…….”
얼굴에서 혈색이 죄다 사라진 황후가 안쓰러울 정도로 말을 더듬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이, 초점 없는 눈동자가 그의 답을 대신 전했다.
곧 궁인들이 다과를 내왔다. 그러나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세 사람 사이에 폭풍이 한차례 휩쓸고 간 듯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한참 동안 식어 가는 찻잔만 음울하게 내려다보던 9왕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대해단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는……. 내 아우에게서 황손을 볼 생각이 없으신 거군요. 영원히.”
* * *
“황후 전하께서 드십니다.”
정전(正殿) 문 앞을 지키고 선 내관이 낭랑한 목소리로 고했다. 황후는 궁인의 안내를 받아 조심스럽게 문지방을 넘어 들어갔다. 이곳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제껏 그는 무인도에 고립된 사람처럼 운의전에만 틀어박혀 필수 불가결한 일이 아니면 결코 나오지 않았으므로. 해서는 안 될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순금으로 황룡을 조각한 용상(龍床)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보석으로 만든 신수의 눈이 황후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황후는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 앞에 황제가 앉아 있었다. 금과 옥으로 된 단단한 등받이에 느슨하게 등을 기대고 문서를 읽던 중이었다. 황후가 들어온 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황제는 이렇다 할 반응 없이 상주문(上奏文)만 들여다보았다. 그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오히려 더욱 무서웠다.
황제가 아무런 명도 내리지 않았으므로 황후는 벌받는 시종처럼 정전 한가운데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어야만 했다. 긴 글월을 다 읽고 나서야 황제가 태연자약하게 까딱 턱짓을 했다. 황후는 그의 앞으로 머뭇머뭇 다가갔다.
“그래, 황후. 예까진 어쩐 일이오? 정무에는 티끌만큼의 관심도 없던 사람이.”
“폐하……. 그것이, 그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왈칵 솟구치는 울분을 참을 수가 없어 주위 시선도 개의치 않고 여기까지 한달음에 왔다. 그런데 막상 황제를 마주하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저는, 한 가지만 여쭙고 싶어서 왔사온데.”
변성기가 지났다 하나 음인인지라, 황후의 목소리는 사내치고는 가냘프기 짝이 없었다. 덜 자란 소년 같은 음성이 파들파들 떨렸다. 황제는 심드렁하게 턱을 괴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결국 황후는 고개를 푹 숙이며 쥐어짜 내듯 물음을 토했다.
“왜 저를 황후로 맞으셨습니까? 출신도 보잘것없고 권력도 재력도 없는 저를. 폐하께선 저를……. 연모하지 아니하시지요. 그리고 제가 황손을 낳길 원하시는 것도 아니시고요.”
황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황후의 말에 긍정하지 않았으나 부정 또한 하지 않았다. 사실상의 수긍이었다. 마음이 처참히 짓밟혔다.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두려워졌다. 황제와 시선을 마주하지 못해 바닥만 내려다보는 황후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당장이라도 불벼락이 떨어질 것 같아 너무도 무서웠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꼭 듣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황후는 황제가 버럭 화를 내거나,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불쾌해할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무엄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황제의 반응은 의외였다. 머리 위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황후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황제는 팔걸이에 나른하게 턱을 괸 채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글쎄. 예락이 어디까지 가나 궁금해서?”
“예?”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얼굴에 써 붙여 놓고는……. 그 주제에 내 앞에선 절대 내색하지 않고, 비빈 후보랍시고 이 사람 저 사람 내게 들이밀기나 하고.”
황제는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낯으로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곁에 나밖에 남지 않도록 주위 사람들을 싹 죽여 버리면 포기할 줄 알았는데, 10년이 넘도록 아직까지 그 깜찍한 짓을 하고 있단 말이지. 정말이지 대단한 고집이야.”
그는 말하던 도중에 참을 수 없다는 듯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부드럽게 풀린 시선이 허공으로 비껴나 있었다. 이 자리에 없는 이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러니 황후, 생각해 보시오. 그대 같아도 한번 지켜보고 싶어지지 않겠소? 그 고집, 과연 언제까지 갈지.”
황후는 주춤 물러섰다. 소름이 끼쳤다. 섬뜩한 전율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했다.
높게 솟은 옥좌에 앉은 남자가 한때 애틋하게 그리워했던 자신의 반려로 느껴지지 않았다. 무자비한 적국의 황제로도, 아니, 같은 인간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결코 이럴 수는 없었다. 황후를 책봉하고 후궁에게 품계를 내리는 중대사를 고작 그런 이유로 결정하다니. 자신의 나라에서 평화롭게 살던 황후를 제국까지 끌고 와 그의 인생을 처참히 망가뜨린 것도, 고작 그런 이유로…….
“전, 그래도 폐하께서…….”
격한 감정이 울컥 솟구쳤다. 저도 모르게 뇌를 거치지 않고 말이 튀어나왔다. 황후는 최후의 이성으로 입술을 깨고 말을 참았다. 이 말만은 결코 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뻣뻣하게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뒤돌았다. 허락도 없이 황제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법을 신경 쓸 틈 따윈 없었다. 필사적으로 황제에게서 멀어졌다. 길게 늘어진 비단옷 자락이 신 아래 밟혀 주름이 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허공을 휘저으며 비틀비틀 문을 향해 나아갔다.
황후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몰골로 달아나 모습을 감춘 뒤에도 황제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청을 생각하니 웃음이 멎지 않았다. 그런 걸 이제껏 어떻게 대장군 따위로 뒀나 싶었다. 10년을 참은 것이 신기했다. 진작 발목 하나쯤은 잘라 놓을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결실이 달 것을 알기에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역시나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청이, 곧 죽어도 황제에게만은 무정하게 굴던 청이, 황제가 하사한 칼을 뽑아 황후를 베었다니.
전장에서 보고를 받고 황제는 가장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제 고집을 꺾은 청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얼른 황궁에 돌아가 청을 실컷 예뻐해 줘야지 싶었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순간 이유 모를 살의가 솟구쳤다. 청을 고통스럽게 고문하다가 가능한 한 가장 처참히 죽여 버리고 싶었다. 시체를 잘게 토막 내어 생으로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황제는 처리해야 할 문건을 펼쳤다. 서찰에 빽빽이 쓰인 글자를 읽어 내려가면서도 입가에는 여전히 흐릿한 미소가 남아 있었다.
청은 지금껏 그가 마주한 가장 큰 불운이었다. 청에게 그가 그러하듯이.
* * *
황제가 할 일을 끝마치고 청을 찾았을 때, 그는 침상에서 잠들어 있었다. 곤하게 잠든 얼굴이 마냥 창백했다. 곱게 말려 서책 사이에 끼워 둔 꽃잎 같았다.
최근 청은 줄곧 이러했다. 그가 머무는 전각을 방문할 때마다 열 번 중 일고여덟 번은 잠든 모습만 보여 주었다. 그것도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여야만 희미하게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하게.
처음에는 그 가증스러운 태의가 몰래 청에게 바르던 연고의 약 기운이 남아서 그런가 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청의 잠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예 체질이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사흘 밤낮을 한숨도 자지 않고 군단을 이끌어도 멀쩡하던 대장군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청은 다른 면에서도 조금씩 망가졌다. 무인답게 빠릿빠릿하게 행동하며 딱딱한 말투를 쓰던 청의 말끝이 이따금 힘없이 늘어졌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가끔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기도 했다.
기절할 때까지 목을 조른 게 문제였을까, 머리를 벽에 너무 많이 처박아서 이상이 생긴 걸까. 황제는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는 손수 가져온 자개함을 탁자에 올려 두고 가만히 청을 불렀다.
“예락.”
청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황제는 잠시 기다렸다. 그래도 상대가 반응하지 않자, 무표정으로 손을 치켜들었다. 뺨을 후려갈겨서라도 깨울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청이 부스스 눈을 떴다.
“폐…… 폐하?”
황제는 들었던 손을 태연자약하게 스르르 내리며 살포시 웃었다. 언제 그런 흉악한 생각을 했었냐는 듯 마냥 나긋나긋한 미소였다.
“응.”
“송구합니다, 제가 잠깐 졸았나 봅니다. 언제 오셨습니까?”
청이 잠기운이 덜 가신 얼굴로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탓에 현기증이 도는지 몸이 힘없이 휘청댔다. 황제는 그런 청을 관대하게 지켜보았다. 지금 그는 기분이 상당히 좋은 상태였다. 약 먹은 병아리처럼 꼴사납게 비실대는 것마저 제법 귀여워 보였다.
“예락, 이것을 보아 주겠나?”
그는 손을 뻗어 탁자에 뒀던 자개함을 열었다. 그 안에 보석이며 금붙이며, 온갖 장신구들이 가득했다. 영롱한 광채를 발하는 가지각색의 귀금속 옆에는 화장품이 종류별로 들어차 있었다.
“그대가 골라 봐. 무엇이 가장 어여쁜지.”
“…….”
청의 낯이 처참히 굳어졌다. 비참한 냉기가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타고 올랐다. 가장 먼저 황후가 떠올랐다. 황후에게 선물할 장신구를 골라 달라 하는 건가 싶었다. 너무도 잔인했다.
예전이라면 처참히 짓뭉개진 가슴을 끌어안고 애써 멀쩡한 척 장신구를 골랐을 터였다. 고르기만 했겠는가. 그 장신구를 직접 황후에게 갖다 바치며 참으로 아름다우시다고 덤덤한 찬사까지 늘어놓았으리라. 그러나 지금 청에게는 억지로 멀쩡한 척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러기에 그는 너무 지쳤다.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황제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마음을 아프게 찢어 놓았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설움이 목을 틀어막았다. 청은 치밀어 오르는 괴로움을 눌러 삼키며 눈을 내리깔았다. 숨을 꾹 참고 자신의 발끝만 내려다보았다.
“부탁드립니다. 제게……. 제발, 제게 묻지 말아 주십시오.”
황제는 그 모습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그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철썩! 턱이 부서지는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얼굴이 퍽 돌아갔다. 청의 몸이 충격을 못 이겨 침상에 풀썩 쓰러졌다.
“뭐? 묻지 말라고?”
황제는 낮게 중얼거리며 청이 널브러진 침상 앞에 다가갔다. 맥없이 쓰러진 청의 위로 몸을 기울이고 다시 뺨을 내려쳤다. 아까 때린 곳과 정확히 같은 위치였다.
“요새 좀 예뻐해 줬더니, 그새를 못 참고 또 기어오르지?”
요란한 소리가 연거푸 울렸다. 청은 저항은커녕 방어조차 못 하고 무력하게 신음했다. 감은 시야에 시뻘건 얼룩이 번쩍였다. 뺨이 불로 지진 듯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넌 꼭 이래야 말을 듣지. 곱게 말해선 못 알아 처먹고, 꼭 일을 번거롭게 만들어. 이래저래 참으로 손이 많이 간단 말이야.”
“흐으, 폐, 읏, 폐하…….”
황제는 숙였던 상체를 바로 세웠다. 뺨을 때리느라 흐트러진 소맷자락을 정돈하며 청을 내려다보았다. 소름 끼치도록 무감정한 시선이었다.
“죄, 죄송합…… 죄송합니다. 하겠, 습니다.”
뺨이 퉁퉁 부어오른 탓에 발음이 미묘하게 뭉개졌다. 청이 어렵사리 침상을 짚고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려 했다. 머리가 산발이 되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럼 그대의 안목을 좀 빌리지.”
황제는 꽃처럼 화사하게 웃었다. 그는 침상 위의 청을 번쩍 안아 올려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청이 안을 잘 볼 수 있도록 자개함을 쭉 끌어다 앞에 놓아 주었다.
“어때. 그대 눈에는 어떤 것이 어울릴 것 같은가?”
청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흐트러져 길게 내려온 머리칼 사이로는 악다문 입매와 힘이 들어간 턱선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이윽고 그의 마른 어깨가 조금씩 들썩였다. 그는 황제의 품에 안긴 채 보석이 가득한 자개함을 내려다보며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눈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져 허벅지 위를 적셨다.
“황후 전하께서는…….”
청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을 시작하자마자 울음기가 턱 북받쳤다. 그는 솟구치는 울음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드문드문 말을 이었다.
“피부가 희고…… 입술이 앵두 같으시니, 홍옥이…….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
줄줄 새어 나온 눈물이 턱 끝에 맺혔다 뚝뚝 흘렀다. 파리하던 입술이 눈물에 젖어 붉은 기를 띠었다. 황제는 작게 한숨을 쉬며 그를 고쳐 안았다.
“아니, 예락. 나는 그대에게 무엇이 가장 어울릴지 물은 것인데. 황후가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답에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청은 한참 뒤에나 간신히 반문했다.
“예……?”
“그대는 옛날부터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에 신경을 많이 썼지. 그러니 뭐가 어울릴지 본인이 가장 잘 알 것 같아 물어보았어.”
텅 빈 청의 시선이 삐걱삐걱 자개함에 되돌아갔다. 비녀, 노리개, 목걸이와 귀걸이, 가락지, 눈썹먹과 연지. 모두 곱고 아리따운 비빈들을 위한 것이었다. 청에게는, 칼과 활을 다루던 평인 사내에게는 죽어도 어울리지 않을 터였다.
“이걸……. 제가 쓴다는 말씀이십니까?”
청이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초췌한 얼굴에 분과 연지를 바르고, 검을 잡아 마디가 거친 손에 보석 가락지를 끼워 보았자 어여쁘기는커녕 흉물스럽기만 할 터였다. 여자 역할로 분장한 남사당패의 광대 같은 몰골이리라.
“그래. 하나 걱정하지 말게. 지금 당장 쓰라는 뜻은 아니니.”
황제가 뒤에서부터 가만히 손을 뻗어 청의 얼굴을 건드렸다. 청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굳었다. 온몸의 솜털이 선뜩하게 곤두섰다. 황제의 손가락이 눈가를, 콧대를, 얻어맞아 벌겋게 부은 뺨을, 입술을, 턱을 지나 목덜미까지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이것들은 그대가 죽은 뒤에 쓰게 될 거야.”
청은 황제의 말을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본능적인 공포가 엄습했다. 혈관을 타고 얼음물이 흐르는 듯 몸이 차가워졌다.
“숨이 끊어지고 나면 아무래도 지금만큼은 예쁘지 않을 테지. 입술에 핏기도 돌지 않고, 뺨도 딱딱하게 굳을 테고. 그러니 화장을 하고 장신구를 달아서라도 최대한 곱게 단장해야 하지 않겠나.”
“제가……. 죽습니까?”
멀거니 넋을 놓고 있던 청이 물었다. 다소 얼빠진 것 같은 질문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생각나는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황제는 잠시 뜸을 들였다. 무엇이든 망설이는 법이 없는 그로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이윽고 나지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청이 죽은 뒤에 화장을 하고 장신구를 달겠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 버릴 것처럼 굴다가도 그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황제는 그를 살리고 싶은 것일까, 죽이고 싶은 것일까. 청은 황제의 속내를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항상 그랬듯이.
“한번 자세히 보겠나? 마음에 드는 걸 골라 봐. 그대 손으로 직접.”
황제가 친히 자개함 안에 든 것을 꺼내어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온갖 작고 반짝이고 알록달록한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그, 그게.”
청이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생을 통틀어 자신이 쓸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이었다. 느닷없이 골라 보라 한다 해서 척척 골라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의 표정 변화를 집요하게 지켜보던 황제가 그만 피식 웃어 버렸다. 난처해하는 기색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마저 마음을 동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한쪽 뺨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물로 속눈썹이 축축하게 젖은 점이 더욱 그러했다.
청은 죽어 유리 관 속에 들어가도 예쁠 터였다. 고운 눈매며 단정한 얼굴선, 살포시 다물린 입술은 심장이 멎는다 해서 어디 가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청은 역시 살아 있는 쪽이 더 예뻤다. 너무 예뻐서, 보고만 있어도 머릿속이 흉흉하게 들끓어 올랐다. 손끝과 발끝부터 자근자근 으스러뜨려 씹어 먹고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다 마음을 굳혔다. 그는 정말로, 진심을 다하여 청이 죽지 않길 바랐다. 죽더라도 자신이 죽을 때 같이 죽어야 했다. 청은 그 무엇보다도 사치스러운 부장품(副葬品)이 될 터였다.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청을 대신 하여 황제가 작은 단지를 집었다. 금박을 입힌 뚜껑을 열자 새빨간 입술연지가 드러났다. 황제는 망설임 없이 엄지에 연지를 묻혔다.
“예락, 나를 봐.”
“네? 아…….”
청의 얼굴을 손아귀 안에 쥐고, 손가락에 묻은 연지를 입술에 문질러 발랐다. 청의 입술이 금세 동백 꽃잎이라도 문 듯 붉게 물들었다. 청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가만히 있어야지.”
청은 무심결에 그의 말에 따랐다. 숨조차 멈추고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이내 단단한 손가락이 입술 위를 쓸었다. 손끝에 박인 굳은살이 얼핏 느껴지고, 미지근한 열기가 옮아 붙었다.
선명한 붉은색 연지를 바른 것으로도 모자라 벽옥(碧玉)과 금으로 만든 머리 장식을 귓가에 꽂아 주고 나서야 황제의 손길이 떨어져 나갔다.
“다 되었어. 확인해 보겠나?”
황제는 청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레 웃었다. 자개함 안에 들어 있던 면경(面鏡)을 펼쳐 그의 앞에 대어 주었다.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청은 말을 잃었다. 생기 없이 허연 얼굴에 비해 입술만 이상하리만치 새빨간 빛깔이었다. 풀어 헤친 머리채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청명한 푸른빛 장식이 달려 있었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몰골이었다.
“이상…… 이상합니다. 이건 아닌 것 같…….”
청이 다급하게 시선을 피했다. 거울 속의 자신이 몹시 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턱이 황제의 손에 잡혀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었다.
“제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추하기만 합니다. 폐하, 제발.”
황제는 요지부동이었다. 홀린 듯한 시선이 그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아니. 아름다워.”
청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던 황제의 손끝이 조금 미끄러졌다. 촉촉하게 바른 연지가 엷게 번졌다. 입가에 발갛게 묻어난 흔적을 응시하던 황제가 돌연 고개를 틀어 입을 맞추었다.
“흐읏……!”
입술이 질척하게 맞물렸다. 황제는 자신이 직접 발라 준 연지를 죄다 빨아먹으려는 듯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그는 진득하게 청의 입 안을 헤집으며 옆으로 손을 뻗었다. 가느다란 금목걸이 하나가 손끝에 걸렸다.
황제는 청의 옷자락 속에 손을 넣어 옷깃을 벌렸다. 목걸이를 목에 둘러 뒤쪽의 잠금쇠를 채웠다. 여전히 입술을 떼지 않은 채였다. 손을 내려 판판한 맨가슴을 더듬고 주무르다 유두를 비틀었다. 청이 품 안에서 흠칫흠칫 떠는 것이 느껴졌다.
내키는 대로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던 손이 더 아래로 파고들었다. 이리저리 희롱당한 탓에 옷이 흘러내려 맨어깨가 드러났다. 황제의 손은 어느덧 헐렁한 옷자락을 헤치고 느슨하게 묶인 허리끈까지 풀어 내리며 허벅지 사이로 파고들었다.
황제의 손이 성기를 쥐는 순간 청이 푸득 몸서리를 쳤다. 무심결에 튀어나온 비명마저 황제가 모두 집어삼켰다. 청이 계속 숨을 헐떡이며 달아나려 하자 아예 그를 침대에 찍어 누르고 올라탔다. 한 손으로는 성기를 주무르며 자꾸만 움츠러드는 몸을 끈질기게 붙잡고 혀를 섞었다.
길고 집요한 입맞춤 끝에 마침내 황제가 고개를 들었다. 둘 다 입술이 번들번들하게 젖었다. 청의 입술에는 연지가 희미하게 남아 엷은 붉은 기가 돌았다. 묘하게 음란한 광경이었다.
황제는 자개함 속에 든 금붙이를 잡히는 대로 한 움큼 쥐었다. 하나하나가 집 한 채 값을 하는 귀금속들이 한데 뭉쳐 우수수 딸려 올라왔다. 그것들을 침상에 쓰러진 청의 위에 쏟아부었다. 차르륵! 금속끼리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금가락지와 산호 비녀와 흑요석 팔찌, 황옥 귀걸이와 진주 머리꽂이. 모든 영롱한 것들이 산산이 흩어졌다. 훤히 드러난 맨가슴팍에서 흘러내려 침상을 굴렀다.
“헉……!”
청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 죄다 자잘한 장신구들이라 무겁거나 아프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맨살에 서늘하고 단단한 것이 닿아 놀랐다. 온갖 보석에 둘러싸인 청을 내려다보다가, 황제는 열이 올라 은은하게 붉어진 뺨으로 웃었다.
“원하는 대로 가져. 무엇이든 내줄 테니.”
청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고,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나긋하게 속삭였다.
“모두 그대 것이야.”
* * *
황후의 친형, 율의 9왕자가 옥에 갇혔다.
계기는 너무도 사소했다. 그는 황궁 내의 대로를 지나던 중, 맞은편에서 오던 귀족의 가마와 부딪쳤다. 갈 길을 서두르던 가마꾼들이 모퉁이를 돌아 나오던 그를 제때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9왕자는 제 발로 걷고 있었다. 제국의 황실에서 멸망한 소국의 인질에게 가마를 내줄 리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맨몸이었던 그가 장정 일고여덟 명이 들어야 할 만큼 크고 무거운 가마와 충돌하면 어찌 되는지도 너무도 명백했다.
9왕자는 충격으로 머리에 피를 흘리며 나동그라졌다. 그러나 귀족은 그에게 사과하기는커녕 노발대발하여 길길이 날뛰었다. 하잘것없는 변방의 왕족 나부랭이 주제에 감히 자신의 진로를 방해하고 가마에 흠을 냈다는 것이다.
재판까지 갈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이 이루어졌다. 왕자는 즉시 가마값을 변상하라는 처분을 받았다. 온갖 귀금속과 보석 장식을 덕지덕지 달아 놓은 가마는 저택 한 채 값에 필적했다. 내전을 막 끝내고 급하게 제국에 당도한 율의 사절단에 그만한 재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9왕자는 치료를 받지도 못하고 혼절한 상태로 감옥에 처넣어졌다.
“폐하를, 지금 당장 폐하를 뵙게 해 주세요. 급한 일입니다. 부디!”
정전 앞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친형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를 전해 들은 황후가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얼굴로 달려온 것이었다. 문 앞에 선 관리가 딱 잘라 말했다.
“폐하께서는 지금 이곳에 계시지 않으신 줄로 아옵니다.”
“그럼 어디에 계시지요? 계신 곳을 알려만 주세요. 제가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황후가 안절부절못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본디 낯을 많이 가려 제 처소의 궁인들이 아니면 다른 관리와는 거의 말을 섞지 않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 것을 따질 겨를조차 없었다.
“무슨 용무로 폐하를 뵙고자 하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율의 9왕자 벽리건(碧梨乾)이 제 동복형제입니다. 이번 사절단의 일원으로 제국에 파견되었고요. 지금 9왕자가 부당한 일에 휘말려 하옥되었습니다. 부디 폐하께서 공평하게 시시비비를 가려 주셨으면 합니다.”
“황후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제껏 사무적인 무표정을 유지하던 관리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주 짧은 순간 스쳐 간 표정이었지만,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한심함을 섞은 조롱이었다.
“폐하께서 신하들 사이의 사사로운 다툼까지 중재하셔야겠습니까? 아무리 내명부의 수장이시라 하나, 정도를 지키셔야지 않겠사옵니까? 대해단의 주인이신 폐하께서 비빈들의 사소한 읍소를 일일이 들어주며 정에 휘둘리시다간 황실의 기강이 흐트러집니다. 체면을 잊고 어찌 이리 경거망동하십니까?”
수치로 뒷덜미가 확 뜨거워졌다. 비단 옷소매 아래 움켜쥔 작은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껏 황후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황후라는 직책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에게 아무런 권력이 없다는 것을 황궁 내의 모두가 알아 버린 이상 그 직책마저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다. 겉으로는 황후 전하라 부르며 꼬박꼬박 경어를 쓰고 있지만, 관리의 말투에는 깔아 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폭삭 망해 버린 소국의 왕족 출신인 박복한 음인, 힘없는 허수아비 황후. 지금의 그는 제국의 황족들과 귀족들에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일단은 처소에 돌아가서 마음을 다스리시옵소서. 그 사건에 관한 것은 예부에서 법도에 따라 마땅한 조치를 취하겠지요. 아무쪼록 의연하게 대처하시어 내명부의 모범이 되어 주시길 바라옵니다.”
황후는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하고 힘없이 물러났다. 황제에게 9왕자의 선처를 읍소하기는커녕 그의 옷자락 끄트머리 한 번 보지 못하였다.
그는 이제껏 작은 왕실의 막내 왕자로서 풍요롭고 평온한 삶을 살았다. 주변에 있는 모두가 그를 마땅히 예뻐하고 귀여워했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으면 아바마마와 어마마마, 혹은 손위 형제자매들에게 부탁하면 되었다. 예의 바른 태도로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꺼내면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일에 절박하게 매달려 본 적도, 소중한 것을 잃어 본 적도, 자존심을 버리고 타인에게 머리를 숙여 본 적도 없었다.
평온했던 그의 삶이 제국에 팔려 온 이후로 송두리째 망가졌다. 낯선 환경에 홀로 적응해야 했고, 낯선 사람들의 멸시 속에서 하루하루 지옥 같은 시간을 버텨야 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굴욕이자 절망이었다.
그는 너무도 무력했다. 조국이 멸망하여 끈 떨어진 신세가 되어 버린 이상, 아무도 그를 위해 선뜻 위험을 무릅쓰고 9황자를 옹호하며 나서지 않을 터였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그는 초조하게 중얼거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얼굴에 바른 분이 지워지고 곱게 틀어 올려 치장한 머리가 흐트러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몇 발짝 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궁인들이 불안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전하, 황궁은 이런 곳입니다.〉
그 순간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울렸다.
〈내명부의 수장이 되셨으니 이제 전하껜 이런 일이, 아니, 이보다 더한 일이 숱하게 생길 겁니다. 하지만 아무도 믿으셔선 안 됩니다.〉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이런 때에 떠오르는 것은 자신을 믿지 말라고 딱 잘라 말했던 남자의 말이었다. 날카로운 검을 들어, 황후의 가슴팍과 함께 그가 황제를 향해 품었던 마음까지 통째로 베어 버린 이의 말이기도 했다.
절박한 희망이 싹텄다. 황제는 그를 매몰차게 버렸지만 청은, 그만은 아닐 터였다. 모두가 황후를 배척하고 멸시할 때, 청만은 그에게 사무적인 자상함일지언정 자상한 태도를 보였으므로. 황명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로나마 그를 위로하고 보살피고 다독여 주었으므로.
비록 청과 그의 사이에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일들이 있었다지만, 그래도 청은 황후를 거스를 수 없을 터였다. 황제를 향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연심을 품고 있기에,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황후의 곤경을 모른 체할 수 없을 터였다. 황후가 파악한 청은 그런 자였다. 그가 원망스럽고 한심하고 불쌍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래전 들었던 청의 나직한 목소리 위에 헐떡임 섞인 절박한 신음이 겹쳐졌다.
〈저, 저는, 흐윽, 폐하, 폐하 좆이 좋습니다. 저는 오로지…… 폐하 좆에, 읏, 박히는 것, 만…….〉
얼굴을 가린 손 아래에서 황후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잊어버리자고, 없던 일이라 생각하고 묻어 두자고 다짐했던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손바닥에 묻고 있던 고개를 서서히 들었다. 창백하게 질린 앳된 얼굴에 한계까지 몰린 사람 특유의 묘한 광기가 어려 있었다.
“……으로 가자.”
“예, 마마?”
흘러나온 목소리는 작았다.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궁인이 당황하여 반문했다. 황후는 눈을 꾹 감았다 뜨며 명령했다.
“금군 대장군이……. 지예락이 머무는 곳으로 가자.”
* * *
황제는 자신의 아래에 누운 청을 물끄러미 주시했다. 옷자락이 활짝 열려 가슴은 물론이고 배와 다리 사이까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황제가 끈기 있게 주무르고 문질러 준 탓에 성기가 반쯤 서 있었다.
집요한 시선이 자신의 사타구니에 꽂혀 있는 것을 인지한 순간, 수치심이 확 치고 올랐다. 청이 팔을 뻗어 어설프게 성기를 가리려 했다. 몸을 뒤척이자 말간 맨살에 간신히 얹혀 있던 팔찌와 목걸이 두어 개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뭐 그리 대단한 게 있다고 가리나.”
황제가 성기를 필사적으로 가리는 청의 손목을 잡아떼어 냈다. 마른 손목이 한 손아귀에 들어오고도 남았다.
“헉……!”
청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순간 황제가 손목을 뚝 꺾어 으스러뜨리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청의 손목을 무참히 분지르는 대신 손바닥에 입술을 눌렀다. 고문을 당하며 대못에 꿰뚫렸던 흉터가 손바닥 가운데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자리에 별 쓸모도 없는 좆이 달려 있는 걸 뻔히 아는데, 번번이 참 비싸게도 구는군. 대체 언제까지 낯을 가리려고.”
“흐으, 요, 용서를…….”
그는 마노(瑪瑙) 팔찌를 집어 청의 손목에 걸어 주었다. 손에 힘없이 잡힌 팔목을 이리저리 돌려 영롱한 자태를 감상하다 말고, 황제가 피식 웃었다.
“그래. 용서해 줘야지. 그대 부탁이니 마땅히 그리해야지.”
황제는 다시 청의 성기에 손을 뻗었다. 이번엔 차마 아랫도리를 가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코앞에서 성기를 빤히 들여다보다 귀두를 입에 물었다.
“아, 앗, 흐윽!”
황제는 기둥까지 다 머금지 않고, 귀두만 쭉쭉 집요하게 빨았다. 사탕을 핥아 먹듯 입 안에서 굴리고 혀끝으로 요도 구멍을 질척하게 헤집었다. 혀를 뾰족하게 세워 요도 안의 발간 속살을 퍽퍽 쑤셔 댔다.
말캉말캉한 감촉이 남아 있던 귀두가 황제의 입 안에서 점차 뻣뻣하게 굳어졌다. 혀가 요도를 통해 안으로 파고들 것 같아 무서웠다. 어느덧 청은 완전히 발기했다. 황제의 입술 사이에서 귀두가 스르르 빠져나왔다.
“끝만 몇 번 빨아 준 것뿐인데 벌떡벌떡 잘도 세우는군. 후장이든 좆이든, 구멍 안을 후벼 주기만 하면 다 좋은 건가?”
“아, 아니, 그런 게 아닙…….”
청의 말은 차마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황제가 침상을 구르던 옥비녀 하나를 집어 든 탓이다. 다른 크고 화려한 비녀 아래에 곁다리로 꽂는 용도인지라 쇠젓가락만큼 작고 가늘었다. 언뜻 보면 옥으로 만든 커다란 침 같기도 했다. 저것을 대체 어디에 쓸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혀로는 부족하지?”
황제가 가만히 눈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리고 비녀를 청의 요도에 푹 쑤셔 넣었다.
“흐악!”
차가운 옥이 성기를 거꾸로 거슬러 파고들어 왔다. 한껏 빨고 핥아서 구멍을 적셔 놓은 탓에 삽입이 그나마 수월했다. 그러나 청은 처절한 신음과 함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거북함에 숨이 막혔다.
“아으, 흐, 폐하, 아파, 헉, 아, 아픕…….”
“그런 것치고는 잘만 받아먹는데. 봐, 그대가 하도 질질 싸 대서 비녀가 좆물 범벅이 되었지 않나.”
“흐으, 흣…… 아…… 아, 윽!”
황제는 무심하게 비녀를 움직여 그의 요도를 연거푸 쑤셨다. 청이 허리와 엉덩이를 움찔대며 괴로워했다.
“이런. 실수로 어딜 잘못 쑤시기라도 하면 그대 자지에 곧바로 구멍이 뚫리겠어.”
문득 떠오른 농담을 던지는 듯한 대수롭지 않은 어조였다. 하지만 청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말이었다. 피범벅이 된 비녀 끄트머리가 성기 중간을 뚫고 튀어나온 모습이 상상하기 싫어도 절로 상상되었다.
“써먹을 곳도 없는데, 이참에 아예 잘라 낼까? 깨끗이 소독해서 불에 달군 칼로 한 번에 잘라 낸 다음, 따로 보관해 두는 거야. 좆대가리가 쪼그라들지 않게 모양을 잘 잡아 굳히고…….”
그라면 충분히 실행하고도 남았다. 공포에 질린 청이 초점 없는 눈으로 자신의 성기를 내려다보았다. 빳빳하게 굳은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어찌나 심하게 떠는지 그의 귓가에 꽂힌 푸른 머리 장식에서도 작게 달각달각 소리가 났다.
황제는 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새하얗게 질려서는 곧 죽을 듯이 발발 떠는 청이 귀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농담이었어. 왜 그리 겁을 먹어.”
“폐…… 폐하…….”
“내가 네 좆을 자르긴 왜 잘라. 이 어여쁜 걸 아깝게.”
그를 멍하니 올려다보는 청의 눈에 옅게 눈물이 맺혔다. 황제는 만개한 꽃처럼 웃었다. 연한 색 속눈썹이 드리운 눈매를 곱게 휘며 그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눈물을 조심스럽게 훔쳐 내 주고 아직도 발갛게 부어 있는 뺨을 살살 어루만졌다.
“대장군씩이나 되어선, 어린아이처럼 울기나 하고……. 응?”
사실 청의 성기를 자르는 것을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럼 청은 황후를 비롯한 다른 이들을 안고 싶어도 못 안게 될 테니까. 게다가 청이 생으로 자지가 잘리며 울고불고 비명을 지르고 피범벅이 되어서 실신할 것을 생각하면 몹시 흥분되었다.
그러나 그는 참았다. 그러기에 청은 너무 예쁘고 너무 아까웠다. 잘랐던 것을 붙였다가 나중에 또 자를 수 있으면 모를까, 한 번 심하게 망가뜨리면 다신 돌이킬 수 없으니 평생 소중히 다루어 주어야 했다.
“하아…….”
황제가 달보드레한 한숨을 쉬었다. 청의 위로 몸을 바짝 낮추며 자신의 성기를 쥐었다.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 끄트머리는 이미 선액이 질질 흘러 흥건히 젖어 있었다.
불그스름한 귀두를 구멍에 대고 문질러 액을 묻혔다. 입구가 너무 좁고 작아 삽입이 여의치 않을 것 같자 청의 엉덩이를 우악스럽게 움켜쥐어 벌렸다. 엉덩이 살이 옆으로 당겨지며 꼭 다물려 있던 구멍이 힘겹게 벌어졌다.
“윽!”
몇 번 입구를 꾹꾹 누르며 간을 보다가 불쑥 밀어 넣었다. 여전히 비녀를 청의 요도에 절반쯤 박아 둔 채였다. 비녀가 꽂힌 성기가 덜렁덜렁 맥없이 흔들리는 것을 집요하게 바라보며 깊이, 더 깊이 쑤셨다.
“흐으, 윽…… 헉, 허억.”
충격에 못 이겨 청의 몸이 턱턱 밀려 올라갔다. 자꾸만 달아나려는 몸을 휘감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침상에 깔린 이불이 들썩일 때마다 사방에 흩어진 장신구들이 달그락대며 이리저리 굴렀다.
단단하고 두꺼운 귀두가 안을 쾅쾅 때릴 때마다 성기 뿌리 부분이 저릿했다. 요도가 욱신욱신하게 아파 왔다. 그러나 황제는 비녀를 빼 주기는커녕 그의 성기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황제는 청의 등 아래에 손을 넣어 그의 상체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가쁘게 들썩이는 가슴팍에 도드라진 한 쌍의 유두가 눈을 사로잡았다. 쉴 새 없이 허리를 퍽퍽 쳐올리는 동시에 유두를 머금었다. 입술 사이에 물린 작은 살점을 힘주어 쭉 빨아들였다. 혀로 유륜을 꾹꾹 다지듯 누르다가, 위아래로 툭툭 튕기며 굴렸다. 쭙쭙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났다.
황제는 집요하게 그의 가슴팍에 들러붙어 한참이나 젖꼭지를 빨고 깨물었다. 양 유두에 벌겋게 피가 몰리고 퉁퉁 부어오를 때까지 괴롭히고 나서야 청의 가슴팍 위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술 또한 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입술뿐이랴, 정사의 열기로 달아오른 뺨 또한 은은히 붉었다.
청의 머리맡에 흩어져 있던 귀걸이가 마침 눈에 띄었다. 바다처럼 새파란 빛깔의 청옥이 요요한 자태를 자랑했다. 붉게 부어오른 유두와 푸른 귀걸이를 번갈아 보던 황제가 젖은 입술을 혀끝으로 가볍게 훑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흣, 으읏.”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을 느낀 청이 주춤주춤 몸을 물리려 했다. 황제의 시선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유두가 기분 탓인지 더욱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 내 미처 신경 쓰지 못했어. 머리와 목, 손목, 자지까지 모두 치장했는데, 이곳만 소홀히 하면 그대 젖꼭지가 슬퍼할 테지.”
“아, 안 돼, 폐하, 제발, 거기는…… 큭!”
황제는 청의 목에 걸린 목걸이 줄을 손아귀에 단단히 감아쥐고 확 잡아당겼다. 가느다란 금줄이 목덜미에 파고들었다. 느닷없이 숨통이 틀어 막힌 청이 컥컥대며 괴로워했다. 침상에 널브러진 팔다리가 처절하게 들썩였다.
청을 무력하게 만들어 놓고, 그는 손을 뻗어 청옥 귀걸이를 우아하게 집어 들었다. 공포에 질린 청의 눈이 애처롭게 흔들리며 그의 손끝에 들린 귀걸이를 좇았다. 목이 졸려 입에서는 색색 바람 새는 소리만 나왔다.
극도로 긴장한 내벽이 황제의 성기를 단단히 조여 물었다. 탄력 있게 쭉 빨아들였다가 바들바들 떨며 간신히 놓아주었다. 황제가 저도 모르게 거칠어지려는 숨을 골랐다.
“얌전히 있어. 예쁘게 뚫어 줄 터이니.”
다음 순간 날카로운 순은이 단숨에 유두를 찔렀다. 투두둑 생살 뚫리는 소리가 났다. 유두를 가로로 관통한 귀걸이 끝이 반대쪽 살을 뚫고 나왔다.
“악, 흐악!”
예민한 살점을 통째로 도려내는 듯한 통증에 청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파드득 몸부림쳤다. 쉴 새 없이 꿈틀대는 내벽이 안을 메운 성기를 이리저리 쥐어짜고 꽉꽉 씹었다.
“윽, 흐윽…… 아, 아……!”
“그리 좋은가? 자꾸 졸라 대고. 그대가 하도 보채서…… 내 좆이 끊어지겠어.”
가만히 내리깔고 있던 황제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흉포한 흥분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그는 청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성기를 힘 있게 쳐올렸다. 퉁퉁 부은 유두에 꿰인 청옥이 달랑달랑 흔들렸다. 시뻘겋게 졸린 자국이 남은 목덜미 위로 순금 줄이 차르륵 흐르고, 옥비녀를 품고 덜렁이는 성기 끝에 언뜻 투명한 액이 비쳤다. 제법 흡족한 광경이었다.
“청아.”
성기를 무자비하게 처넣어 안을 쑤시던 와중에, 황제가 부드럽게 풀린 음성으로 채근했다.
“내 이름, 불러 보련?”
청이 숨도 못 쉬고 신음하는 와중에도 절박하게 고개를 저었다. 황제의 성은 국성(國姓)이며 이름은 휘(諱)라 하여 함부로 쓰는 것을 금기시하였다. 멋모르고 당돌하게 굴던 철부지 소년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그는 정식으로 관직을 받은 황제의 신하였다. 그런 무례를 저지를 수는 없었다.
“응? 예전처럼…….”
하지만 황제가 자꾸만 거세게 밀어붙이자 점점 이성이 흐려졌다. 아랫배 위에서 턱턱 흔들리는 성기가, 불로 지진 듯 욱신대는 유두가 그의 정신을 흐리게 했다. 결국 청은 섧게 흐느끼며 입을 열었다.
“무련…… 공자님.”
“응, 청아…….”
안을 들쑤시는 움직임이 더욱 격해졌다. 돌덩이 같은 귀두가 내벽을 쾅쾅 때려 박았다. 황제가 허리를 크게 움직여 퍽 처넣을 때마다 청의 몸 전체가 들썩였다.
“으, 아, 앗, 아!”
지나친 자극을 못 이겨 청의 다리가 허공에 확 떠올랐다. 차마 황제의 허리에 다리를 감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허벅지를 어정쩡하게 벌린 채 후들후들 경련했다.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 읏, 밖에 들릴지도 몰라.”
황제가 가만히 옆을 곁눈질했다. 탁하게 흐려진 청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좇았다. 언제부터였는지 침소의 문이 한 뼘쯤 열려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전각엔 원래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사람이 오지 않았으므로. 바람에 문이 저절로 열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나는…… 들려도 상관없지만.”
청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숨 가쁘게 헐떡이며 그저 그를 멍하니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 이후에도 집요하고 격렬한 정사가 계속되었다. 청은 곧 황제가 했던 말을, 그리고 인적 없이 휑한 문간의 풍경을 잊어버렸다.
* * *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대상이 황제인지 청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간 황궁 외곽의 허름한 전각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그 순간, 표적을 잃은 살의가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황후는 침전의 탁자에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반드시 지예락 대장군을 만나야 한다며 그를 찾아갔다가 아무 소득 없이 돌아온 이후, 황후는 줄곧 저런 상태였다. 시종들이 바짝 긴장한 채 눈치를 보며 탁자에 찻잔을 올려놓았다. 혹여나 불똥이 튈까 제 할 일만 마치고 후다닥 물러섰다.
요즘 그는 극도로 날카로웠다. 궁인들이 실수를 해도 웬만하면 웃으며 넘어가 주던 그가, 지금은 일부러 꼬투리를 잡아 없는 실수도 만들어 내 하루가 멀다 하고 아랫사람을 매질했다.
9왕자는 결국 옥에서 풀려났다. 황후가 자신이 가진 패물을 있는 대로 처분하여 대신 보석금을 치른 덕분이었다. 황후의 처소이니 어느 후궁의 궁보다도 화려하고 웅장해야 할진대, 원래도 소박했던 운의전 안이 한층 더 조촐해졌다.
황후가 그리 큰 희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9왕자는 사지 멀쩡하게 돌아오지 못했다.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도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오래 방치된 탓이었다. 급히 강 어의에게 보여 진료케 했지만, 최선을 다해도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전하.”
황후의 맞은편에서 어두운 낯빛으로 그를 지켜보던 강 어의가 입을 열었다.
“정치에 관여할 수 없는 비빈들이 궁에서 힘을 얻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첫째로는 가문입니다. 본인이 아니어도 부모가, 또는 형제자매가 큰 권력을 쥐고 있거나 재물이 많다면 궁 생활이 훨씬 편해집니다. 둘째는 황제의 총애입니다. 아무리 출신이 보잘것없어도 황제가 아끼는 이라는 소문이 퍼지면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합니다.”
“…….”
“그리고 셋째는 회임입니다. 집안이 미천한 데다 황제의 사랑조차 받지 못했던 후궁들도 황손을 낳아 입지를 다지고 궁의 실세가 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황제의 총애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지만, 자식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 회임할 수 있을까요?”
황후가 음울하게 반문했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였다.
“우선 그 탕약은 그만 드셔야 합니다. 더 드시다간 회임이 문제가 아니라 전하의 건강까지 해칩니다. 그러면 조금은 회임 가능성이 올라갈 것입니다. 하나…….”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다. 현재 황후의 몸 상태로는 매일같이 시침을 들고 환열기 때마다 꼬박꼬박 결착을 한다고 해도 회임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더군다나 황제는 황후에게 회임을 위한 최소한의 행위조차 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연히 아이가 생길 실낱같은 확률에만 기대기에 지금 그들은 너무도 절박했다.
“저는 꼭……. 힘을 얻어야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힘이 없으면 저뿐만 아니라 제 나라까지 위험해진다는 걸요. 그러니 뭐든 하겠습니다. 회임할 수만 있다면. 권력을 얻어 율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제 목숨도 바치겠습니다.”
“그렇다면, 전하.”
강 어의는 긴 침묵 끝에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쉬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찻잔을 들어 연거푸 목을 축였다. 주변을 몇 번이고 둘러보고 궁인들이 모두 물러갔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오래도록 망설였다. 기다리다 못한 황후가 눈빛으로 재촉하고 나서야 속삭이듯 어렵게 운을 뗐다.
“황제의 아이가……. 아니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황후의 얼굴에서 혈색이란 혈색이 죄다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농담이라기엔 도가 지나친 말이었다.
그러나 강 어의의 낯은 비장했다. 결코 잘못 들은 것도 농담도 아니었다. 그는 지금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이었다. 다급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목이 날아갈 대역죄를.
두꺼운 담과 화려한 지붕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제국의 구중궁궐. 그 한복판에서 황후와 강 어의, 두 이방인의 시선이 오래도록 마주쳤다. 마침내 황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 일촉즉발(一觸卽發) :
한 번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듯 몹시 위급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