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
오래간 어둑하던 하늘이 맑게 갰다. 기간은 예년보다 줄었지만 짧고 굵은 우기였다.
율은 문득 옆자리가 허전하여 잠에서 깼다. 요 근래 내도록 안아 주던 이가 없었다. 나간 지 한참 된 듯 서방 누워 있던 자리가 서늘했다.
“치…….”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안아 준다고 했으면서.
어여쁘다, 기특하다 쓰다듬던 놈이 양물 두 개 넣자마자 쌩하니 내빼? 만족했다 이거니?
자글자글 구겨져 성한 곳 없는 금침은 금원후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증거였다. 실컷 살 섞고 씹물 지려 꿉꿉한 냄새가 나야 정상인데, 냄새는 물론 끈적임도 전무하여 구겨진 흔적으로만 그를 더듬을 수 있었다.
율은 이내 기지개를 켰다. 고통은 없어도 전신이 뻐근했다. 그러고 보면 이것도 퍽 신기한 일이다. 매번 요란한 색사를 벌이는데 어찌 이리 멀쩡한고.
‘특히 어제는…….’
뽀얀 얼굴에 분홍 꽃물이 번진다.
그 상놈과 얼마나 뒹굴고 놀았는지 설령 하늘은 몰라도 이 몸은 안다. 그의 정 받아 낱낱이 새긴 장본인이므로. 하나 넣으라는 구멍에 대물을 두 개나 들였으니 필시 내일은 누워 지내리라, 예견했더랬다.
“심하긴 했어. 으……. 아직도 벌어져 있는 것 같네.”
차마 밑은 못 만지겠고 아랫배만 연신 문질렀다. 이물감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불편함으로 따지자면 처녀 따인 다음 날보다도 심했다.
그래도 모처럼 날이 갰는데 계속 벌거숭이 신세일 순 없지. 찌뿌둥한 허리를 툭툭 두들기며 상체를 일으킨 율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으응?”
거리꼈던 느낌이 무색하게 아래로 손을 가져갔다. 말랑한 감촉 대신 딱딱한 것이 닿았다.
“이게 뭐…… 어?”
이물감이 단지 기분 탓이 아니었단 말인가. 율은 무릎을 세워 가랑이를 벌렸다. 혼자인데도 묘하게 수치스러운 자세였다.
“이 녀석이…… 무슨 짓을 해 놓고 간 거야.”
꿍얼꿍얼. 민망함에 고개를 돌리고서 꾸역꾸역 보지 벌린 것을 빼냈다. 정확히 무슨 모양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운데 살 벌어진 느낌이 점점 확연해졌다.
“으…….”
주르륵, 딱딱한 막대가 속을 미끄럽게 긁으며 빠져나간다. 마르지 않은 좆물이 덩달아 줄줄 새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으앗!”
마침내 완전히 빼낸 막대를 확인한 율이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털었다. 축축하게 젖어 똘똘 구르는 그것, 모형 좆이라. 보아하니 누군가의 자지를 본뜬 흉측한 놈이다.
율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낯으로 씩씩거렸다.
“이…… 이, 금원후!”
망할 녀석, 돌아오기만 해 봐!
그럼 그렇지. 호색한 녀석이 하루아침에 변할 리가 없지!
작은 주먹 움켜쥔 채 부들부들 떨던 율은 끊임없이 콸콸 새는 좆물을 아연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사람이 너무 기가 막히면 뜬눈으로 기절할 수 있음을 몸소 깨우쳤다.
***
“……거라, 이후는……가……테니.”
“예에, 전하.”
머리맡이 수선스럽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천을 꼭 짜는 소리, 옷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차가운 손.
뺨을 시원하게 얼리는 손길이 부드럽다. 율은 잠결에도 그 느낌이 기분 좋아 갸르릉거리는 고양이처럼 볼을 비볐다.
그러자 후다닥 도망가 버리는 손. 순간 그게 왜 그리 아쉬운지, 게으르게 고롱대려던 맘이 싹 가시고 잠마저 약간 달아났다.
묵직한 눈꺼풀이 깜빡깜빡, 어여쁜 금안이 홀연히 드러났다. 느릿느릿, 시야 근처에 자리 잡은 이를 파악한다.
“……!”
벌떡!
언제 드러누워 있었더냐? 비단 금침을 박차고 일어난 율이 쌍심지를 켰다.
“너, 너어……!”
드디어 나타났구나! 냉큼 아침의 만행을 지적하려던 율이 본능적으로 멈칫했다.
뭔가…… 달라.
검은 머리에 금안, 단정하면서도 곳곳에 화려한 장신구를 매단 차림새. 필시 눈에 익은 낭군의 모습이 맞는데…… 이 낯선 느낌은 뭐지?
주변이 어두워서 그런가, 아니면 말없이 내려다보는 게 익숙지 않아서 그런가. 전자여도, 후자여도 일리가 있다.
어느새 밤이 이슥해 컴컴한 거처엔 침침한 등잔 불빛 하나가 전부였다. 그것도 율이 켠 게 아니라 이 작자가 켠 것이었다. 율은 일부러 방을 어둡게 유지하느라 아무런 불빛도 두지 않았었다.
‘그야 녀석이 안 오니까…….’
아침에 그리 기절하기도 잠시, 율은 퍼뜩 깨어나 침구를 정리했었다. 그런 다음 부리나케 뒷산 연못으로 달려가 흉물을 뽀득뽀득 씻었다.
당연히 맘 같아선 거기다 확 던져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호색한이 호색한답게 첫 선물을 좆 방망이로 하였다 싶어 도로 가져와 잘 숨겨 놓았다.
그러고는 온종일 잠들려 노력했다. 꿈에서라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를 품은 채.
결론만 말하자면 금원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꿈도 꾸지 않은 캄캄한 잠이었다.
내내 서운케 하던 이가 비로소 왔구나. 너른 가슴 퍽퍽 때리며 앙탈 부려야 하는데 때아닌 낯가림에 율은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사내가 한 손을 뻗어 율의 뺨을 조심스레 감쌌다.
“……형님.”
나직한 한마디. 율의 턱이 멍하니 떨어졌다.
이 목소리, 이 다정함.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 금후?”
“형님.”
화아악, 찰나 등잔불이 횃불처럼 타오른 것 같다. 그만큼 어둠에 흐렸던 이목구비가 낱낱이 보였다.
어찌 헷갈렸더냐. 이리 다른데.
“세상에…… 너 맞니? 언제 돌아온 거야?”
귀하디귀한 사람.
율이 업어 키운 동생, 금후가 왔다.
지엄하신 황제 폐하 명령으로 전장에 나간 지 어언 세 해. 소년미가 남아 있던 얼굴은 어느새 단단히 여물어 완전한 사내가 됐다.
율은 신기한 눈으로 아들 같은 동생을 휘휘 돌아보았다. 눈 코 입을 만져 보고 목도, 가슴팍도 조심조심 눌러 본다. 그럴수록 멋쩍어하는, 그나마 익숙한 그 표정이 아니었다면 ‘게 누구요’ 하고 되물었으리라.
걷지도 못하는 아기 때부터 기른 녀석이 이렇게 장성했구나. 새삼 감개무량하여 율은 딱딱한 턱을 가만가만 쓸어 보았다.
“우리 후야…… 너 맞구나. 잘 왔다, 정말 잘 왔어. 다친 덴 없고?”
“예. 무탈히 다녀왔습니다. 형님이야말로…… 아프셨다구요.”
다부진 손이 율의 뺨을 거쳐 어깨로 내려왔다. 율은 그 손을 잡으며 배시시 웃었다. 우기 내내 박혀 있었던 게 아프다고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그저 날씨를 타는 것뿐이었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이는 율을 미워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으레 아프다고 인식했다.
이번에는 실제로 아프긴 했지. 구멍이.
물론 그 점을 밖으로 드러낼 순 없어 율은 방싯방싯 웃기만 했다.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그보다 여기 있어도 돼? 폐하께서…….”
“뵙고 왔습니다. 정식 보고는 내일 이른 오전에 드리기로 했고요. 사실 놀래 드리려 조용히 왔사온데…… 형님께서 병상에 누우셨다고 하여 아우 심정이 어찌나 철렁하였는지 모르실 겁니다.”
“으음…….”
“쫓아내시렵니까?”
단숨에 거리를 좁힌 사내가 율을 보듬었다. 율은 깜짝 놀라 시선을 내리깔았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봐선 안 될 것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쫓아내시렵니까’ 묻은 후야의 눈빛이 무척 묘해서…….
오히려 이리 껴안는 행위 자체는 이상한 바 아니었다. 율도 허구한 날 아기를 품에 안고 다녔다. 행여나 귀한 마마 다칠까, 비루한 몸뚱이 방패로 씁시오 하고 고기 방패를 자처했었다.
이제 그 아이가 저보다 곱절은 커졌으니 똑같이 안아도 모양새가 다르게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
율은 원후만큼이나 커다란 육체에 안겨 낭군을 떠올렸다.
‘자라니까 몰라보게 닮았구나.’
금원후의 어린 시절에서 동생을 발견했던 날, 어쩌면 짐작했다. 동생이 완숙한 어른이 되면 금원후의 외양과 흡사하겠다 하고.
동생에게서 서방 찾는 꼴을 보아하니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율은 속으로 제 머리통을 연신 쥐어박았다. 반가운 내 아이가 돌아왔는데 이 멍청이, 보지만 따먹고 떠나간 그 사람 망상뿐이구나.
“형님…… 아우, 돌아갈까요?”
“응? 아, 아니야. 내가 널 어찌 쫓아내니. 귀하신 몸 여기저기서 찾는 이 많을 터라 걱정되어 그러지.”
금후가 말없이 율의 등을 쓸었다. 가만가만 쓰다듬는 손길은 기실 손가락에 걸리는 기나긴 머리 타래를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이상하진 않다고 하나 다소간 어색하여 율은 꿈지럭거렸다. 그간 한 사내 품에 안긴 버릇이 들어 몸이 절로 다른 품을 내외했다. 그걸 알고 또 속내로 제 머리통 퍽퍽 때리는 전하시다.
그쯤 하여 율은 궁금증이 도졌다.
‘이 아인 혹시 대리 목숨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모를 수도 있다. 대신하여 죽을 존재가 있음은 기밀 중의 기밀. 황제가 독선으로 준비했다면 태자에게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태자는 본디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었다. 불의를 참지 못하여 그 점에서는 어릴 적부터 황제와 부딪치기도 여러 번이었다. 폐하께 대들면 아니 된다, 율이 아무리 달래도 납득하지 못하면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성미라 딱 그때만 형님 전하 속을 다 태웠다.
그러한 태자마마, 누군가 자길 대신해 죽을 운명으로 자랐다 들어 봐라. 당장에 뛰쳐나가 황제와 언쟁 벌이리라. 그 언쟁이 번잡하여 황제가 숨겼다 하면 당사자도 모르는 비밀 완성이다.
결국 오늘은 만나지 못하게 되나……. 어디 있는지 알면 몰래 찾아가기라도 할 텐데.
금원후의 거처는 율도 정확히 몰랐다. 규율인가 하여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다만 이 아이가 대리 황자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 같으면 물어볼 요량이었다.
“형님.”
“……응?”
그때 태자가 율을 놓아주었다. 침침한 불빛 아래 두 쌍의 금안이 마주했다.
“형님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으십니까?”
“으응?”
갑자기?
아니, 정확히는 시기의 문제일 뿐 내용 면에서 갑작스럽지는 않았다. 예전에도 어린 아우는 율에게 종종 이 궁을 나가고 싶진 않은지, 성혼하는 건 어떨지 묻곤 했으므로.
태자의 낯은 심각했다. 율은 딱딱하게 굳은 미간을 콕 눌러 풀어 주고 싶었다.
“실은…… 요현궁에 도달했을 때 나와 보는 이가 없더군요.”
“아…….”
율이 머쓱함에 시선을 피했다. 아랫것들이 하필 이때 제집 지키지 않고 나돌아 다닌 모양이었다. 그리된 지는 제법 되었다.
심해진 계기는 아마도 우기 때. 도통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주인이 짜증스러웠는지 저마다 제 일 찾아 떠났더랬다. 오늘 낮에 어렵사리 마주쳐 ‘어딜 바삐 가는가’ 물어보니 ‘다른 궁에 소일거리 도와주러 가옵니다’ 하는 당돌한 대답을 들었다.
궁녀들도 일해야 승급하고 먹고살지. 주인처럼 밥버러지 신세 만들쏘냐. 눈빛이 고언하는 바, 한 치 틀림이 없어 율도 떨떠름히 승낙하고 말았다. 망설이지 않고 도도도 달려가는 뒤태가 제 살길 찾으러 간 지 꽤 오래된 듯해 그저 씁쓸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손수 제 몸 씻고 주변 살피던 나날이 오래되어 금침 갈거나 먼지 닦는 둥 가벼운 청소는 할 만했다. 문제는 밥이라. 율은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온종일 자느라고 식욕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이젠 이 아우가 있습니다. 교육받은 아랫것들을 형님 곁에 배치해 다시는……, 다시는 아무도 냉대하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율의 귓가가 달아올랐다. 녀석이 왜 그러는지 알겠다. 어수선한 침실을 보고 충격받았구나.
궁녀들은 어데 갔는가 없지, 형님은 머리 풀어헤친 채 평민 저리 가라 싶은 꼴이지. 여전히 냉대받고 있구나. 재빠른 눈썰미로 순간 계산 딱딱 끝냈을 터였다.
예전 같으면 이럴 때 정해진 듯 돌려주었던 대답이 있다.
“이 형님에겐 아우만 있으면 되지요.”
어린 동생이 당장 제 힘으로 바꿀 수 없음에 슬퍼하지 않길 바라는 답이었다.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진심이기도 했고. 저 때문에 근처 사람들까지 화를 입으면 그 무슨 죄인가.
아비에게 맞으면 저보다 더 크게 울어 주던 아이가 이리 자라 이제 저를 지켜 주겠다고 한다. 율은 그저 뿌듯하고 기뻤다.
하지만.
“난 괜찮아, 후야. 진짜 괜찮으니까 괜히 이곳에 마음 두지 않아도 돼.”
“……예?”
“넌 이제 명실공히 훨훨 날아오를 태자 전하야. 네 힘으로 번데기 시절 벗어나 자유로이 창공을 헤쳐 나갈 날이 도래했다구. 이를테면 여긴 번데기야. 하늘로 비상할 나비가 자꾸 빈집 들여다보면 어떻게 되겠니.”
좋게 봐 주면 효심이겠지만, 꼬아 보는 이들은 태자에게도 핏줄의 광증이 터졌노라 여길지 모른다.
남들 눈에 금율은 오로지 동생 덕에 목숨 부지한 떨거지 황자였다. 황궁에 도움 되는 것이라곤 없으며, 흠결 그 자체인 버러지.
신경 쓸 것 산더미인 태자가 구태여 버러지 황자를 잡고 있다? 계집도 사내도 아닌 것이 태자를 꾀었거나, 태자가 외양만 여문 맹탕이거나. 그리 여길 이가 점차 늘어날 건 자명했다.
네가 나를 신경 쓸수록 너도 나도 본의 아니게 서로의 발목을 잡는 관계가 되는 거야. 율이 말하는 바는 그러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다면 대놓고 떠나가라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이 아이가 제 품을 떠나던 그날도 숨어서 마음 졸였으니까.
허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시원섭섭할 뿐, 허전함은 옅었다. 그 허전함 채워 줄 사람 따로 있는 데다 그이야말로 저가 기댈 곳이므로.
증거로, 율은 냉정히 말해 더는 동생과 뭘 하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모자란 손에서도 훌륭히 자랐다는 기쁨만이 가득했다.
반면 태자는 율의 반응이 충격인 듯했다.
“형님…….”
잠깐 태자 전하 속내 좀 들여다볼까.
다정한 형님 손에 자란 태자마마, 어린 시절이나 작금이나 형님 전하만큼 아름답고 순한 이는 없다 신봉하고 있다. 또한 우리 형님, 온갖 핍박에도 금세 웃으며 어린 아우를 달래던 강인한 분이라 기억한다.
태자는 타고난 영민함으로 일찌감치 인과를 파악했다. 형님이 허구한 날 비교당하는 것. 그리하여 주먹 한 대 늘어난 원인 모두 제 탓이되 형님 목숨 부지하는 근원 역시 저라는 걸.
내 반드시 형님께 효심 다하리라. 반듯하게 자란 태자가 결심한 바는 당연한 이치였다.
그 마음 내내 간직하고 있다가 의무 마치고 돌아왔다. 못 본 새 형님은 더욱 아름다워지셨다. 이리 표현해도 될까. 마치 만개한 꽃처럼…… 기묘한 색기가 돌며 인상이 한층 진해졌다. 어둠 속에서도 오밀조밀한 눈 코 입이 또렷하게 들어올 만큼.
향기는 또 무엇인가. 주변에 피운 향도 없는데 코 간질이는 풀 냄새가 났다. 어디의 이름 없는 꽃인지…….
하여간 한때는 커다랬던 사람이 한참 작아져 포근해 보임 직했다. 금후는 저도 모르게 팔을 벌려 포옹했다. 품에 폭 안기는 체구며 사락거리는 머리칼이 보드랍고 또 안심되었다. 변함없는 우리 형님, 이제 정말 아우가 지켜 줄 수 있으리라 싶어서.
“난 괜찮아. 괜히 이곳에 마음 두지 않아도 돼.”
헌데 심히 아픈 말을 어찌 그리 해맑게 하십니까.
서글서글 웃는 얼굴엔 그늘도 없었다. 그런 말 할 거면 웃지를 말든지. 사람 마음 아프게…….
형님께 고하기 전이나, 태자는 뒤늦게나마 형님의 짝을 찾아 주려는 계획까지 구상하고 있었다. 형님 또래면 아이 한둘 있는 게 당연할 나이. 산목숨으로서 남들 누릴 것 전부 누리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절반, 저리 아름답기만 한 외양으로는 자생할 수 없을 테니 귀한 꽃 지켜 줄 울타리 찾아 곁에 세워 드릴 마음이 나머지 절반이었다. 그 과정에 일일이 간섭하여 완벽한 마음 붙이 구할 작정이었고.
물론 아우만 보고 아우만 아끼던 우리 형님, 다른 이에게 넘겨준다는 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아무래도 형님을 빼앗기는 기분 탓일 테지. 유치하게.
그래도…….
‘칼 한 자루 들지 못하는 분이 마냥 꽃 같은 외모로 이 궁에서 버틸 수 있을 리 없어.’
과거, 율이 목숨을 부지한 근간에는 태자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 형님 안위 지키는 바탕에도 태자가 있을 터였다. 그건 형님도 당연히 그리 여기실 줄 알았다.
이리 밀어내는 게 아니라.
잘 왔다, 후야. 너 왔으니 이제 숨통 좀 트이겠다. 챙겨 줘서 고마워……. 금후가 예상했고, 당연히 해 주리라 예상했던 반응은 그것이었다. 실로 그날을 위해 힘 얻었다. 우리 형님께 쓸 만한 버팀목 되고, 보은할 생각만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랬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꽃같이 아름다운 우리 형님. 사내로서 듬직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연약한 몸뚱어리를 인식하자, 결심이 한층 굳었다.
험한 일 당하지 않게 내가 지켜 줘야 해.
‘정 안 되면…….’
금후는 형님을 바투 안고 읊조렸다.
“저는 형님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
쾅!
어두컴컴한 밀실. 금원후는 온갖 짜증을 담아 벽을 찼다. 아무도 모르는 땅굴 전각에 홈이 움푹 팼다.
“네 이놈!”
“…….”
하…… 짜증 나. 그냥 엎어 버릴까.
태자가 돌아왔다. 측근 십 인을 매달고 암살자처럼 몰래 입성하였다고 한다.
금원후가 그 소식을 접한 건 율을 마지막으로 안았던 날이었다. 어여쁜 내 신부, 양물 두 개 받아들여 힘들고 지쳤을 터이니 밤새 앙탈 받아 주며 둥가둥가 따먹어야지. 야심 찬 계획 세웠던 그즈음.
대리 황자가 기거하는 지하궁에 대뜸 손님이 들이닥쳤다. 서룡국 재상 연훤과 황제의 측근인 송 내시. 대리 황자의 존재를 만들고 기르는 자였다.
금원후는 평소 남들 눈을 피해 분신을 앉혀 뒀었다. 이들 외에 밖을 지키는 놈들은 궁 안에 정확히 무엇이 들었는지 몰랐기에 가능했다.
황제의 액막이라느니, 천 년 묵은 요괴라느니 소문이 떠도는 모양이었으나 어쨌든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혹여나 입소문이 퍼질 걸 우려해 지키는 머릿수조차도 몇 두지 않았으므로 금원후에겐 전연 어려울 게 없었다.
그러나 연훤과 송 내시면 위험하다. 하나는 본래 ‘금원후’의 아비고, 또 하나는 ‘금원후’를 태자의 판박이로 가꾼 장본인이었다.
“게 있느냐.”
분신은 본신이 곁에 있어야만 자유 의지로 작동한다. 그게 아니고는 일일이 집중하여 명령을 내려야만 했다.
연훤이 말했다.
“태자 전하께서 환궁하셨다.”
“…….”
“군대는 볕을 피해 가동하라 하신 바, 측근들과 먼저 황궁 담 넘으셨다더군.”
“그렇군요.”
분신을 통해 대답하며, 금원후는 옷을 주워 입었다. 지금 떠나도 늦은 판에 안개로 색시 몸뚱이 사악 훑어 준다. 말라붙은 씹물 거두니 피부가 도로 보들보들해졌다.
이제 정말 가야 하는데…….
붙어 지내지 않았더라면 모를까, 눈 뜨고 감는 내내 색시 맛 장히 보았던 덕분에 금원후도 영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듭 보아도 애달픈 이, 가면 갈수록 많이 울어 곁에서 그 울음 막고 싶었다.
그는 색시 입술에 입 맞추곤 창밖 나무로 좆 모형을 뚝딱 만들어 냈다.
“흠. 얼추 비슷한가?”
빨리 돌아올 테니 잠깐만 이걸로 서방 삼으소.
계속 구멍에 좆 끼우고 있다 갑자기 빼면 허전함에 일찍 깰까 나름 고안해 낸 계책이다.
보지에 모형 마개 살살 끼워 두고서야 부리나케 튀어 나간 용이었다.
그는 두 영감의 시선이 잠깐 다른 곳으로 향하는 틈을 타 능숙하게 분신과 자리를 바꿨다. 대리 황자, 육신의 본업으로 복귀다.
어쨌든 태자가 돌아왔으니 해야 할 일은 하나.
“태자 전하 자라고 변하신 모습, 그대로 네게 담아야 한다. 네가 잘해야 우리 가문이 살아간다는 점을 명심 또 명심해라. 알겠느냐?”
금원후가 밀실에 갇히게 된 전말이다.
“자, 진정하고 다시 따라해 보거라. 전하께옵선 걸음걸이가 한결 당차고 늠름해지셨다. 발끝은 정면을 향하되 너무 높지 않고 보무당당한 군자의 걸음이시다.”
‘지랄이다, 정말…….’
저가 개소리 지껄일 때 눈 흘기던 색시 심정이 이랬나. 문득 율의 촉촉한 뺨과 입술, 젖은 보지와 샘을 상기한 금원후가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진짜가 등장했으니 가짜는 그림자에 묻혀 있어야 하는 신세.
알고 있고, 실제로 용에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지난 십수 년간 별생각 없이 맞춰 준 경험도 넉넉했다.
그랬던 것이 곁에 두어야 할 이가 생기자 만사 짜증스럽고 귀찮았다. 확 뿌리치고서 기분 좋은 몸이나 안으러 가고팠다.
‘진짜 확 없애 버려?’
좆 같은 사명 걷어 내는 방법, 실은 간단하다. 황위를 없애 버리면 된다. 이 계약을 아는 이가 남아 있지 않고 생성될 가능성이 소멸하면 사명도 자연스레 사라진다.
누군가는 이딴 제도가 처음부터 존재했노라 여길지 모르겠으나, 서룡대제 시절만 해도 없던 규율이었다. 애당초 그 당시에는 우두머리가 한 가계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비, 구름, 나무, 바람.
대제 치하, 용은 네 가신에게 힘을 나누어 줬었다. 각자 다른 힘을 전달받은 네 씨족은 서로 존중하며 화목하게 지냈다. 서룡은 그 조화를 갸륵히 여겨 일찍이 각 씨족의 핏줄을 중앙에 불러와 재앙에 대비하는 법을 가르쳤다.
“화마가 난동을 부리면 비로 덮고 땅이 진노하면 바람으로 달래라. 하늘이 고집을 부리면 나무로 버티되 나무가 괴로워하거든 구름이 지켜 주어야 한다.”
대제가 직접 가르친 네 후손은 배운 대로 도리를 다했다. 그해 재앙이 불이면 비의 가계가 대표가 되었고, 홍수가 나면 나무의 가계가 대표로 통솔하는 식이었다. 그리하여 대제가 본체로 돌아갈 즈음엔 나라의 체계가 부쩍 자리 잡힌 상태였다.
서룡은 대제 시절 직접 축조한 동굴 묘에 들어가며 네 가신에게 일렀다.
“이제 인간의 삶을 마치고 본신으로 돌아가니 만일을 대비하여 본체를 깨우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
그건 오직 서룡의 호의였다. 서룡은 제 임무를 훌륭히 마쳐 더는 그들에게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으로 지내면서 그도 인간의 감정에 물들어 버린 것인지 저를 도운 이들이 눈에 밟혔다.
“본신을 깨우려거든 대제의 묘에 술자의 피를 바치고 용의 진명을 세 번 호명하라. 상서로운 용(瑞龍). 그것이 본신의 참된 이름이라. 적합한 피는 본신께서 흠향하여 술자를 꿰어 볼 것이되, 부적합한 피는 용의 잠을 방해한 죄로 벌을 받을 것이다. 피를 제물로 호명한 것이매 그 벌은 피가 이어지는 한 응당 대물림되어 마땅하다.”
다만 용은 인간이 아닌지라 본체로 힘을 사용하려면 대가가 필요했다. 이는 상제가 만물을 구현하실 때부터 정해진 세상의 법칙. 특히 천제의 권속인 용은 인간에게 천제와 다를 바 없었으므로, 마땅한 인과가 발생하지 않으면 인간사에 깊숙이 개입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적합한 힘’을 가진 이가 ‘요청’하도록 하여 틈새를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도 용은 가신들이 일찍 찾아오진 않으리라 예상했다. 분수를 아는 이들은 항상 뒷일까지 짚어 내므로. 그들은 본신이 끼어들수록 치러야 할 대가도 적지 않음을 우려할 터였다. 더욱이 벌전을 한 번이라도 받으면 후대가 고생해야 한다고 하니 더럭 겁부터 집어먹었을 테지.
아니나 다를까 적막한 나날이었다. 섭섭함 반, 대견함 반. 용은 비로소 인세에서 마음을 거두고 긴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다. 순수했던 힘과 피가 혼탁해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피가 탁해진 만큼 시조 가신들의 의지도 옅어졌다. 시조의 의지가 흩어지자 그와 연결되어 있던 용의 힘도 자취를 감추었다. 인과는 자연히 소멸되었다.
그런 고로, 연씨족은 더 이상 가신의 가계라 보기 어려웠다. 그들은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 평범한 인간이 용을 부르려다 반동으로 벌을 받은 건 당연한 결과였다.
구름으로 얻은 금, 구름처럼 흩어지리라.
금원후, 아니, 본디 ‘연원후’인 자. 용이 계약한 인간의 선조가 받은 벌의 내용이었다.
맨 처음, 선조는 무시했다. 그러나 어떤 발악에도 가세가 기울자 후회하며 죽었다. 그 아들이 대를 이었다. 아비와 같은 전철을 밟았다. 그 아들도, 아들의 아들도.
몇 대가 지나는 동안 연씨족은 예전의 부귀영화는 꿈도 못 꿀 만큼 비루해졌다. 사람들은 귀한 목숨 여럿 버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금(金)’ 앞에서 연씨 핏줄은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이는 금은보화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했고, 황족을 가리키기도 했다. 어느새 한 핏줄로만 대를 잇는 황가의 성씨가 ‘금씨’였던 것이다.
재물도 관직도 얻을 수 없다. 살아 있는 연기나 다름없는 상태. 그게 벌의 본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꾀 많은 연씨 선조 하나가 어김없이 꾀를 냈다. 어차피 연기 같은 삶이라면 진정 연기가 되면 될 것 아닌가?
이른바 ‘대리 목숨’이다.
오늘날 다른 씨족의 피가 탁해지매 유일하게 근친혼을 이어 왔던 금씨만이 용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부작용을 피하고자 사촌뻘인 타 씨족의 피를 간간이 섞은 것이 계기가 되어 비와 구름, 나무와 바람이 한 핏줄에서 재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금씨가 오래도록 황위를 차지하게 된 연유였다.
연씨 선조는 문틈 새로 스며들듯 황제의 좁디좁은 귀에 보안의 취약점을 설파했다. 금씨는 대대로 손이 귀해 목숨 하나하나가 중했으므로 황제는 그 의견을 기껍게 받아들였다.
서룡이 계약자인 ‘금원후’에게서 피의 내력을 읽었을 당시, 어느 정도 제 탓이라 여긴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요컨대 이는 능력의 발현 여부로 인한 권력 집중 현상. 그러니 황족을 없애 본신이 내린 능력을 거두거나,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막거나, 계약의 주체를 없애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러면 이 해괴한 사명도 사라지겠지.
문제는 이곳이 서룡이 직접 만든 나라인 점이었다. 상제의 명을 받고 내려온 용이 지상을 상서롭게 일구었다는 증거였다.
그로 인해 서룡은 더더욱 이 땅의 미물을 함부로 해칠 수 없었다. 의도를 가지고 해하려면 명분이 필요했다. 특히나 상대는 용의 힘을 이어받은 황제.
열받지만, 용이 율을 아낀다고 하여 황제를 대뜸 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건 단지 편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각인자’라 하면 다르다. 용에게 여의주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 그렇기에 각인한 후 율이 얻어맞는다면 ‘어떤 인간이 내 반려를 괴롭혔다’는 명분을 내세워 벌하는 게 되었다.
서룡은 그런 이유로 율과 얼른 각인을 맺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인간 색시는 멍청해 빠져서 저 괴롭히는 놈들 죽여 달란 얘기를 안 했다. 말만 하면 다리를 걸거나 얼굴을 갈아 버리는 둥 ‘장난질’은 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율이 진정 제 반려 되는 날, 다시는 그 음험한 낯짝 들고 다니지 못하도록 지져 버리리라.
‘무슨 수를 쓰긴 해야겠어.’
색시 홀로 남겨 둔 서방은 초조하게 다짐했다. 벌써 하루 내내 못 봤다. 내 울보가 보고 싶었다.
***
금원후가 증발했다. 율은 심란했다.
태자가 돌아왔으니 그렇구나, 머리로는 이해했음이다. 그럼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지 않나. 율이 이해되지 않는 지점은 거기였다.
율은 꿈속 재회를 바라여 일부러 많이 잤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주변 시선이 험악해지는 건 개의치 않았다.
비 올 땐 그러려니 했건만, 태자 돌아오자 대놓고 방만해지는구나! 그리들 지껄이던데 저를 두고 떠도는 소문이 나쁜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그보다도 율은 제 서방 만나지 못한 상심이 더 컸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림자 목숨. 그리 잘난 사내도 그림자에서 못 벗어나니 연민이 닥쳤다.
“대리 황자 같은 거 하지 말지…….”
사실 그가 능력도 훨씬 좋은데…… 무려 용신인데.
‘무슨 계약 때문에 본 모습을 취하지 못한다고 했었지.’
그 계약은 황제랑 한 것일까?
일리 있다. 황제가 아니면 감히 누가 서룡과 계약할까.
안타깝다…….
‘황제와 계약한 거라면 우린 똑같이 황제에게 묶인 신세구나.’
율은 새삼 황제가 원망스러웠다. 고작 며칠인데 혼자 된 적막감이 괴로웠다. 연못에서 하염없이 기다려도 오지 않고…….
태자가 돌아와도 기쁘지 않아.
외로운 감정에 죄책감마저 더해진 나날이다. 태자를 두고도 기쁘지 않은 날이 올 줄이야.
“하아…….”
창을 꼼꼼히 닫아 두어 다른 의미로 낮밤이 구분되지 않았다. 서방 곁에 있을 땐 흠뻑 사랑받느라 날 가는 줄 몰랐었지.
율은 침상에 누워 의미 없이 바르작거렸다. 홀로 누우면 딱 차는 침상이 넓다 못해 광활했다. 오른쪽으로 뒹굴, 왼쪽으로 뒹굴. 심심해하는 아이처럼 굴다 문득 반상에 놓인 도자기에 눈길이 닿았다.
“…….”
속이 좁고 기다란 백자. 다름 아니라 흉물 숨겨 둔 자리다.
궁녀 아이들이 이 방 청소해 봤자 시늉만 할 뿐, 제대로 쓸고 닦지 않는 건 진작 알았다. 요즘엔 그마저도 그만둔 덕에 율은 두려움 없이 그걸 백자 속에 쏙 넣어 뒀었다. 마침 깊이며 길이가 딱이라 원래부터 모형 좆 넣어 두는 함 같았다.
율은 괜히 주변을 의식하여 곁눈질했다. 아무도 없지……?
슬금슬금 다가가 백자를 뒤집는다. 나무 좆이 율의 무릎으로 덜렁 떨어졌다.
“으…….”
다시 봐도 흉물이라. 생김 한번 역하다.
하지만 막상 만지면 반들반들하니, 모양이 흉할 뿐 잘 깎았음은 인정이다.
율은 누가 볼세라 얼른 그것을 옆구리에 숨겨 침상으로 뛰어들었다. 이 상놈, 나무토막을 서방이랍시고 꽂아 놓고 갔겠다?
그래! 너 없으면 누가 외로움 못 달랠 줄 알고?
반쯤은 오기다. 율은 침의를 훌렁 벗어 주변에 아무렇게나 널브려 놓았다. 사내 흔적 매단 속살이 뽀얗게 드러났다.
그,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하는 거냐?
자지와 보지를 동시에 달고서도 홀로 즐기는 법 알지 못하는 전하시다. 그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방 만나기 전에는 동생 곁에서 정결한 나날 보냈고, 서방 안 후에는 그가 주물럭대는 대로 휩쓸렸다.
율은 우선 가슴을 쥐어 보았다. 우리 서방님, 이곳 참 좋아하시지. 탱글탱글하니 맛이 좋다며 매 색사마다 빼놓지 않고 잡수시는 곳이다.
젖꼭지를 아프도록 깨물리고 빨린 기억이 강렬했다. 율은 자그만 돌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꼬옥 눌렀다. 허나 서방이 알려 준 쾌감은커녕, 이상하고 밋밋하기만 했다.
“이게 아닌가?”
흠…….
조금 주눅 든 율은 애무를 포기하고 막대 좆을 아래로 가져갔다. 딴 건 몰라도 보지 구멍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눈 감고도 찾았다. 보지 샘에 맞춰 모형 좆을 밀었다.
“아!”
이, 이게 왜 이러지?
대물 좆을 두 개나 처먹고도 좋다 하던 보지가 아팠다. 그냥 넣어도 물이 나오던 곳 아니었나? 그러나 지금은 막대 넣으려 하니 속이 말라서 버석하고 따가웠다. 도저히 서방 맞던 그 보지가 아닌 듯했다.
너 내 몸에 달린 내 보지잖아. 왜 이러는 거야?
한낱 자위조차 마음대로 안 되나. 율은 무릎을 세운 채 힘없이 음핵을 건드려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도 바싹 말라 말랑보들했다. 쾌감은 흔적도 없다.
“그래서 여기를 핥았나 보구나…….”
순진한 색시, 덕분에 하나 깨닫는다.
‘보지를 핥는다. 핥는다, 라…….’
혀를 길게 빼 앞보지, 뒷보지 할 것 없이 싹싹 빨던 서방이 아랫도리에 자리한다. 상상의 남편이었다. 율은 거기서 깨우침을 얻어 제 입 속에서 침을 떴다. 손가락 두 개를 열심히 적혀 아래로 가져갔다.
“아…….”
공알을 다시 만졌다. 동그랗고 심지 있는 살덩이를 빙글빙글 돌려 가며 쓰다듬으니 조금 전과 미약하게 느낌이 달랐다.
이거구나.
율은 침이 마르기 전에 손가락을 재차 쪽쪽 빨았다. 거길 만진 손가락을 빤다는 음란함에 속이 더웠다.
또…… 그놈이 어찌 만졌더라?
금원후는 손도 입도 잘 쓰는 놈이었다. 허릿짓을 하면서 살갗을 빨고 동시에 여기저기 만져 대 사람을 정신 놓게 하기 일쑤였다.
율은 감히 그 능란한 움직임을 따라 할 엄두가 안 났다. 눈 감은 율이 눈꺼풀 안에 그린 건 입맞춤이었다.
잡아먹을 듯한 입맞춤. 그리고 꽃에 얼굴을 묻는 듯했던 연한 접촉.
본능적으로 반대쪽 손을 가져가 혀를 뒤적였다. 츱, 츕……. 사내의 발치나마 따라가려 입 속을 괴롭히자 허리가 떨렸다.
“흣…….”
입 맞추고 싶어. 힘껏 안겨서 그 숨을 넘겨 받고 싶어.
커다란 손이 제 목덜미를 움켜쥐고서 혀를 들이밀 때. 그이의 타액과 숨이 왈칵 넘어와 내 숨통으로 내려갈 때. 온도가 있는 줄 몰랐던 호흡에 뜨거운 열기가 어릴 때. 그리하여 서방과 숨을 섞고 있다 이 몸으로 여실히 느낄 때.
율은 그때 가장 흥분했다.
“흐윽!”
상상만으로 온몸에 열이 돌았다. 율은 숨을 몰아쉬며 공알 만지던 손을 들었다.
손이…… 젖었어.
아래를 손바닥으로 훔쳤다. 밑을 스치는 대로 씹물이 묻어났다.
율은 보짓물을 떠 팽팽하게 발기한 좆에 발랐다. 마찬가지로 물 지리는 역할밖에 못 하는 곳이지만 저도 자지라고 빨딱 서서 욕망을 표했다.
사실대로 밝히면, 율은 앞을 만지기보다 보지를 빨리는 것이나 그 속을 푹푹 파이는 쪽이 더 좋았다. 워낙 거기에 길이 들어서일 수도 있고 속 벌어지는 쾌감이 강렬해서일 수도 있었다.
“아하악!”
보짓물 바른 음핵은 처음과 확연히 다른 기관이었다. 이제야 저가 알던 공알 같다.
자지와 공알을 동시에 비비자 밑이 오줌 싼 듯 젖었다. 율은 마침내 막대 좆을 손에 쥐었다. 어찌하면 되는지 알 것 같았다.
우선 서방이 하듯 좆 기둥에 보짓물을 바른다. 기둥을 보지에 딱 붙여 스윽스윽 문대 기둥이 충분히 젖도록 한다. 그런 다음 미끌미끌한 마찰을 이용하여 구멍에 진입하는 것이다.
율도 율이지만, 금원후도 한 번 지리는 좆물 양이 절대 적지 않았다. 율은 속에서 서방 받을 때 그가 오줌을 누는 건 아닌지 자주 헷갈리곤 했다. 좆집에는 씨받이만이 아니라 오줌통도 포함되는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오줌 받은 기억은 없다. 그가 제게 싸도록 괴롭히는 경우면 몰라.
“흐읏…….”
모형 좆이 보지 입구를 뚫고 쑤욱 들어왔다. 실물 자지에 비하면 무척 수월한 진입이었다.
이다음은 안다. 막대로 속을 마구 들쑤시면 된다.
그러나 율은 막대를 잡는 대신 간지러운 허리를 들썩이며 젖을 움켜쥐었다. 어째 이곳이 모자랐다. 서방이 하듯 말캉한 젖알 뭉개면서 부족한 쾌감 채우려 애썼다.
그럴수록 벌어지는 격차.
안 돼. 이걸로 안 돼…….
서방이 만지던 느낌이 아냐.
“후야…….”
눈물이 절로 뚝뚝 떨어졌다. 엄마 찾는 어린애일 적에도 이리 울어 본 적 없다. 나무 좆을 서방 삼은 제 처지가 처량했다. 몸이 어설프게 달아올라 온 구멍이 근지러웠다.
이 간지러움은 서방만이 해갈할 수 있는 것.
“으응……!”
길쭉한 좆이 오물오물한 통로 끝까지 들어왔다. 씹구멍이 기둥을 꽉 무는 게 느껴졌다. 너무 큰 좆보다 적당히 받을 만한 것이 속을 채우자 오히려 구멍의 움직임이 적나라하게 와닿았다.
오물오물 씹으며 정말 좆을 먹는구나……. 서방이 왜 좆 먹는다는 둥, 맛있냐는 둥 말했는지 알겠다.
게다가 뒷구멍,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뒷보지도 허전타며 아까부터 움찔거렸다. 좆 하나씩 끼고 다른 쾌감 느끼는 맛을 알아 버려 율은 어찌할 바 모르고 울었다.
“후야아…….”
원망스런 서방아, 너 지금 어디 있니?
푹푹팍팍. 나무 좆 박는 움직임이 갈수록 거칠어졌다. 하아앙, 아아앙……. 율이 절정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앓은 신음만 흘렸다.
지금이라도 서방이 튀어나와 푹푹 쑤셔 주었으면 했다. 놀려도 되니까. 갈보니 뭐니 아무 말이나 해도 되니까.
그리해도 종국엔 달게 입 맞춰 주는 사내임을 알기에.
율은 그 밤 오래도록 앓았다. 서방 없이는 절정에 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가 좆 꽂기만 해도 물을 질질 싸던 황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없었다.
***
며칠 뒤 저녁.
율은 호화찬란한 저녁상을 받았다. 정확히 태자를 위한 상이라. 평소 식욕이 적고 밥상 거르길 밥 먹듯 하는 율에겐 보기만 해도 더부룩한 광경이었다.
하물며 이 밥상, 오늘만이 아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마주했다. 이게 다 동생이 여기서 ‘형님과 함께’ 진지 들겠다 발언한 덕분이었다.
나타나라는 정인은 사라지고 오지 말라는 동생만 자꾸 찾아오네…….
딴에는 폐하 눈 피한답시고 주로 밤에 들르긴 하는데 율은 내심 의아했다.
‘왜 이리 들러붙지? 전쟁터에서 가족이 그렇게 그리웠나?’
금후가 예의 바르고 올곧은 녀석이래도 타인과 일부러 붙어 있으려 할 만큼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다. 만약 저가 모르는 모습이 생겼다 하면 그것은 밖에서 익혀 온 것이었다.
“형님, 드셔 보십시오. 육전이 부드럽습니다.”
“응……. 너도 많이 먹어.”
율은 떨떠름하게 그가 준 육전을 조금 떼 먹었다. 솔직히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율이 먹는 걸 보고서야 식사를 시작한 태자가 근심 어린 투로 말했다.
“여전히 입이 짧으셔서 걱정입니다. 태의는 뭐라 합니까?”
“어…… 아무 이상 없대.”
“아무 이상 없다고요? 확실합니까? 이리 말랐는데……. 태의에게 아우가 직접 소견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어, 어……. 상관없어.”
그러니까 이것도 이상해.
동생이 밥술 뜨다 말고 율의 팔뚝을 만지작거렸다. 또다시 심각한 표정이었다. 마치 못 먹고 못 입는 기아를 보는 듯한……. 저가 여러모로 푸대접을 받고 있긴 하다만 그런 눈빛은 처음이었다.
‘왜 저렇게 보지?’
안 그러던 애가 왜 이러느냔 말이야.
심지어 얼마 전에는 새벽녘에 와서 고요히 저를 내려다보고 있더랬다.
“으악! 너, 너 뭐 해?”
“……형님께서 잠자리 편안하신지 궁금하여서요.”
그 무슨 해괴한 답변이람.
스스로도 찔리는지 머지않아 돌아갔지만, 율은 그날만 돌이키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너무 놀라서…….
아무리 궁금하여도 그렇지 찾아오기엔 야심한 시각 아닌가? 시간이 시간인지라 분위기도 뭐라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기이했고…….
이런저런 걸 합치면 율은 동생이 예전처럼 편하지 않았다.
‘많이 자라서 그런 거겠지?’
완전한 사내로 장성하여서.
더욱이 그 아이, 이목구비 다듬어지자 아버님의 흔적이 어른어른 비쳤다. 원래 조금씩 보이곤 했으니 확고해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위축되는 면도 있으리라.
‘그러고 보면 원후에겐 한 번도 그러지 않았네.’
금원후와 금후는 얼핏 보면 무척 닮은 생김새였다. 그럼 마땅히 금원후에게서도 아버님을 비쳐 보고 움츠러들 만한데 그런 인식조차 못 했다.
무슨 차이일까. 곰곰이 더듬어 보던 율은 이내 답을 찾아냈다.
표정과 말투다.
금원후는 결코 아버님처럼, 금후처럼 말하고 행동하지 않으니까. 아예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이 더 강한 것이다. 우리 처음 마주칠 때 원후가 동생의 외양과 차이를 둔 점도 한몫했다.
‘하아……. 또, 또 금원후 생각.’
하여튼 중증이다. 틈만 생기면 서방 생각뿐이니.
“……입맛에 맞지 않으십니까?”
“응?”
“들지 않으셔서요.”
“아……. 아니야. 먹고 있어. 천천히 먹어서 그래.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드세요, 전하.”
태자가 피식 웃었다. 서방과 닮은 눈이 곱게 휘어져 율은 시선을 빼앗겼다.
“이제야 아우를 봐 주시는군요.”
응……. 네 얼굴에 내 서방이 있어.
수저를 아예 내려놓은 태자가 팔 한쪽을 밥상에 올리곤 턱을 괴었다. 곁눈질하는 곳, 단연 형님 전하 계신 쪽이다.
그의 눈동자가 문득 아련해졌다.
“전장에 있을 때 말입니다.”
율은 애써 밥 먹는 척하다 멈칫했다. 동생의 금안에 눈길을 딱 붙들렸다.
“형님이 그리웠습니다.”
그 말에 율도 수저를 놓고 말았다. 말투에 녹아든 감정은 결코 전장이 쉽지 않았음을 가리켰다.
“전장으로 떠날 적에 다들 그러더군요. 십만 정예 있으니 순식간에 적을 도륙 낼 거다. 한 해면 황궁으로 돌아가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저 사내 되는 과정이라 여겨라.”
“…….”
“첫 전투 때 삼만이 죽었습니다. 두 번째는 일만…… 세 번째는 오천. 네 번째, 다섯 번째…… 수는 줄어도 어김없이 사람이 죽더랍니다. 정예라는 군사들이요.”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감히 위로조차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만큼 동생이 괴로워 보였다.
율은 잠자코 그의 말을 경청했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병영은 경직되고 굳어 갔습니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워섬기던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곧 사람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죠.”
“그랬구나…….”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곳에서 그들은 저마다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피붙이라 하고, 어떤 이는 원수, 또 누군가는 소중한 이, 미련 남는 이……. 상대들이 참 다양하더군요.”
“…….”
“저는 형님,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여기서 의미 없이 스러지면 우리 형님도 아우 걱정에 뒤로 넘어가겠구나. 살아가야겠다.
“세상에…….”
율은 그의 고백에 넋이 빠졌다. 말하지 않아서 몰랐다. 그런 마음으로 버텼을 줄은.
그럼 유달리 살갑게 굴고, 밤중에도 쳐다보고 있었던 까닭은 갑자기 평온해진 현실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었던 걸까? 전쟁터에서 항시 곤두서 있었을 테니 적응기가 필요하다 하면 이해가 갔다.
“……고마워. 떠올려 줘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기특하고 고마웠다. 두 분 폐하나 정혼자도 있을 텐데 저를 생각해 주어서.
아이가 자라 효도하는 게 이런 기분일까. 율은 모처럼 설레어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율을 따라 입매를 올린 태자가 말했다.
“전에 형님께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는지 여쭈었을 때 괜찮다고 답하셨지요.”
“응? 응. 그랬지.”
“그렇다면…… 가정을 이루고 싶은 뜻도 없으십니까?”
“……엉?”
얼빠진 대답. 그러나 율에겐 그럴 만했다. 이 아이가 대체 전부터 왜 이러는 걸까?
“성혼하실 뜻이 있다면 혼처를 찾아 드리겠습니다. 폐하께서 마침 바라는 일 한 가지를 들어주시기로 하셨거든요. 저는 이걸 무조건 형님께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 아니. 후야. 난…….”
내겐 서방 삼은 이가 있어.
당당히 밝히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다.
율은 두 손을 내저었다. 진심으로, 동생이 제 뜻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난 정말, 정말로 괜찮아. 누가 나와 부부가 되고 싶어 하겠니. 게다가 폐하께서도 허락하지 않으실 거야. 너도 소중한 기회를 이리 날려 버리지 말고 좀 더 이로운 일에 써.”
“원하는 상대가 있다 하면 하실 겁니까?”
“뭐?”
“형님께서 개의치 않으신다면…… 제 후궁에 들일 수 있습니다.”
삐이이―.
기어코 과부하 걸린 머리통이다. 율은 심한 이명을 감지했다.
당황스러운 속도 모르고 금후가 연이어 말했다.
“저는 폐하로부터 형님을 보호할 요량입니다.”
“……뭐, 뭐?”
보호에 성혼이 왜 나와. 율은 그 인과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눈속임이나마 제 보호 아래 두면 폐하께서도 어쩌지 못하실 테니까요.”
조금은 오만하기까지 한 대답. 무슨 짓을 해도 황제가 저만은 손대지 않으리라는 자신감.
율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야 태자로선 나름대로 일리 있는 발상이겠다만…… 시혜적인 느낌에 속이 좀 답답해졌다.
실제로 태자는 이 방식 또한 은혜 갚는 길의 한 갈래라 여기고 있었다. 다시 뵌 우리 형님, 누이라 해도 될 정도로 곱다랗지 않던가?
누군가 지켜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아우 생각하여 그날엔 밀어냈다지만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당장 누굴 붙여 줄까 가늠해 봤더니 그것도 썩 석연치가 않은 거다.
만에 하나 무사히 성혼한다고 치자. 실은 그자가 형님에겐 질 나쁜 놈이면 어쩌나. 형님이 황실의 천덕꾸러기인 걸 모르는 자가 없으니 ‘제 덕에 팔자 핀 줄 아시오!’ 하고 으름장 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 형님은 남들 모르게 욕보여도 속으로 꾹 참을 거다. 이 착한 사람은 밖에다 제 식구 욕할 성격이 못 되니까.
이래저래 제하고 보니 제 울타리에 넣어 두는 것도 방법이란 결론이 도출됐다. 어차피 우리 형님이 유일하게 믿고 따르는 이가 저 아닌가? 태자 또한 형님을 가장 아꼈다. 겉으로 두르는 울타리의 이름이 달라질 뿐, 관계는 같았다. 아니, 이제는 저가 직접 나서서 형님을 보호할 수 있어 더 좋았다.
그리 생각하자 태자의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피었다.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형님과 저만 지내던 그때로.
율은 머리를 도리질 쳤다.
정말이지 미치고 팔딱 뛸 심정이다. 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더 환장할 노릇이었다.
태자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 또한 예상치 못했던 반응인 탓이다.
“어째서요? 싫으십니까?”
율은 그냥 여기서 해명할까 말까 머리 터지도록 고민했다. 동생이 이 이상 엉뚱한 계획을 세우는 걸 방지하고 싶은 한편, 황제의 진노가 우려되었다.
환장하겠네, 진짜…….
입이 있어도 왜 말을 못 하니.
“아, 아, 아무튼…… 나는 괜찮아. 정말이야. 어디 가서 그런 얘긴 하지 마. 폐하께서 아시면 경을 치실 거야.”
“…….”
“그리고 너도…… 정말 이곳엔 걸음을 자제하도록 해. 네 자리로 돌아가야지.”
“……혼란스러우신 듯하니 오늘은 일단 돌아가겠습니다.”
율은 울상을 지었다. 하나도 설득되지 않은 기색이었다. 무작정 부정해야 하는 처지가 스스로도 답답했다. 녀석이 그저 형님 말을 다소곳이 받아들여 주길 바랄 따름이었다.
율의 짐작대로 금후는 형님의 변명을 한 톨도 납득하지 못했다. 밖으로 나와 궁을 돌아보는 눈빛이 실로 씁쓸했다.
당연히 받아들이실 줄 알았는데……. 냉정히 말해, 형님이 처한 환경을 돌이키면 거절할 입장이 아니니까. 헌데 진심으로 밀어내니 모른 척했던 불안감이 차올랐다.
“형님은 정말로 저를 떨어뜨려 놓으실 작정이십니까……?”
그럼 이 헛헛한 마음은 어찌하나. 여태껏 해 왔던 노력은.
효심의 탈을 쓴 집착이 태자 전하의 불안한 결핍을 자극한다. 물론 제 심리의 정체, 명석한 태자 전하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금후는 장포 자락을 펄럭이며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수려한 미간에 어린 수심은 사라질 줄 몰랐다.
이후 얼마간 조용했다.
율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심하자 새삼 서방에 대한 원망이 차올랐다.
이 바보, 왜 날 혼자 두는 거야? 오지 마라 할 때는 악착같이 찾아와서 괴롭히더니, 실컷 사랑 주고서 혼자 두네.
“서방이라면서…….”
들리는 바에 의하면, 태자는 조만간 군대를 이끌고 개선문을 통과할 예정이라고 한다.
금후도 율더러 직접 예고했었다.
“뒤따르던 군대가 황도 인근에 다다랐다고 하더군요. 그들을 맞이하러 가야 합니다.”
덕분에 율은 고즈넉한 적막을 되찾았다. 이제 서방만 돌아오면 완벽한데…….
타박하지 않을 테니 얼른 돌아와 나 좀 안아 주었으면.
안아 달라는 말은 이중적인 뜻이었다. 말 그대로 단단한 품에 껴안아 달라는 의미와 다리 사이에 들어와 달라는 의미.
율은 금원후의 모든 것이 그리웠다. 흉물 자지조차도 보고 싶어 나무 좆을 다시금 기웃대는 실정이다.
그 이후 보지에 아무것도 안 넣어 봤냐고 하면 아니었다. 속이 너무 근지러운 날, 욕간 할 적에 몰래 손가락 한번 넣어 보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걸로는 속이 더 간지럽기만 했다.
‘걔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잠은 잘까?’
설마 잠도 안 재우고 가둬 놓는 건 아니겠지.
율은 제 서방이 꿈속에서조차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있으리라 믿었다.
그렇게 과부처럼 한숨 푹푹 내쉴 때다.
스륵.
장지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문을 등지고 앉은 율은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여전히 깊은숨만 뱉었다.
살금살금. 까치발로 다가간 사내, 뒤에서 가냘픈 몸뚱이 와락 낚아챈다.
“와앗!”
“내 색시, 서방 보고 싶었소?”
장난기 어린 음성. 다짜고짜 젖부터 주무르는 그이, 금율 전하 서방이다.
“너……, 너어……!”
당최 어디 있다 이제 나타났느냐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금원후는 저 알아서 율을 돌려 안았다.
“보고 싶었나 보구먼. 울지 마오.”
만나자마자 보지부터 따먹히기 싫으면.
상놈이 상놈답게 개소리를 지껄였다. 율은 귓가에 더러운 소리를 욱여넣고서야 서방이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주춤주춤, 팔을 들어 그의 옷자락 움켜쥔다. 너른 등 힘껏 껴안는다.
가슴 떨리는 내 낭군. 장히 보고 싶었단다.
그리웠단다…….
쪽쪽, 쪽. 금원후가 율의 귓가와 뺨에 연신 입술을 내렸다. 그런 다음 코를 묻어 깊게 냄새 맡았다.
“하…… 이 살 냄새 맡고 싶어 돌아 버리는 줄 알았지.”
“읏……. 처, 천천히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색시 살맛 그리워 딱 뒈지기 직전이었소.”
냄새를 맡는지 입을 맞추는지 헷갈리는 양상이었다. 율은 유순히 눈을 감고 서방이 주는 감각을 받아들이다 깜짝 놀랐다.
“으아앗!”
한참 목덜미와 어깨를 더듬던 이가 율을 밀어 다리를 허공으로 들친 것이다.
허리가 거꾸로 들려 거의 물구나무를 선 셈이 되었다. 남편 무릎에 등 지탱한 채 그의 손아귀에 양쪽 허벅지가 잡혔다.
그 상태로 금원후가 율의 가랑이에 얼굴을 붙였다. 정확히 보지 있는 곳에 코를 대고서 숨을 들이켰다.
“흐으읏……!”
미친놈, 미친놈!
“하아…… 씹. 아내 보지 내 맡으러 왔는데 왜 이리 옅어. 혼자 안 했소?”
옷 벗길 시간도 아깝다는 듯 그가 바지 위로 보지를 깨물고 핥았다. 마구 입질하는 개처럼 여린 살을 파헤치려 한다. 다만 안타깝게도 오늘 걸친 속곳이 두꺼운 천이라 입질만으론 안까지 닿기 어려웠다.
“자, 잠시 옷 좀…….”
찌익. 율이 서방 밀어내기 무섭게 침의가 조각났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서방 손길 몇 번에 보지 내민 알몸 처지다.
율은 황당했다. 눈 깜짝할 새 벗겨져서가 아니라 홀로 만졌을 땐 일일이 적셔 줘야 했던 보지가 벌써 축축했기 때문이었다.
“하앙!”
잘생긴 콧대가 공알을 눌렀다. 슥슥삭삭. 야무진 혀가 흐무러진 속살 더듬는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
서방 손길 닿으니 알겠다. 그가 개화시킨 몸, 그의 손에서만 온전히 피어나고 만족할 수 있음을.
그건 몸의 주인인 율조차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벌름대는 보지에 나무 좆 끼워 넣었다가 어찌되었던가. 몰래 손가락 넣고 나선 또 어떠했는가.
괴로웠다. 어설프게 달아오른 구멍을 그 무엇으로도 만족시킬 수 없어서.
“흐윽!”
후루룩! 익숙하게 속살 벌려 보짓물을 거둬 낸 그가 구멍에 혀끝을 밀어 넣었다.
“학!”
그러나 평소대로 휘젓지 않고 물러난다. 율을 얌전히 침대에 내려 주기까지 했다.
훌쩍이는 색시 빤히 바라보는 눈빛.
“왜, 왜애…….”
“내가 형님 보지 따먹은 게 얼만데 아직도 숫보지인 척을 하는지…….”
실로 어이가 없어 혀를 찬 서방이 선명하게 갈라진 보짓살에 혀를 파묻었다. 색시 처녀 따먹을 적에 그랬듯 질구 살살 빨아 먹고 물컹한 내벽 비비자 닫혀 있던 입구가 슬근슬근 풀어졌다.
아무리 좁은 조갯살이라 해도 그렇지, 매일 쑤셔 준 게 얼만데. 잠깐 주변이 번잡해 내버려 뒀기로서니 그새 닫혀?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화가 난다, 화가 나.
“이거 뭐, 노린 고기 잡았다 이거요? 동생 좆 먹고 싶어서 벌렁거리는 보지에 실컷 좆물 채워 줬더니 반기긴커녕 내외라.”
“흐으읏, 그, 그런 게 아니라―.”
철썩!
“아흣!”
“그런 게 아니면 뭐? 아둔한 보지는 맨날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아……!”
반가워하기만 해도 모자랄 판에 보지 매를 먹인 원후는 벌벌 떨며 제 구멍을 막는 손을 같잖게 내려다보았다.
이 조그만 손도 손이라고 가림막 역할을 하려는데 그야말로 우스웠다.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침을 뚝뚝 흘리는 구멍이 버젓이 보이건만 가리긴 뭘 가린단 말인가. 되레 모자란 척 사람을 꾀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작태였다.
그는 허약한 창살을 손쉽게 헤치고 말랑말랑한 속살을 마저 핥았다. 도로 좁아진 구멍만 아니면 색시 보지 맛은 여전히 극상이었다.
그거 몇 대 좀 맞았다고 보지가 금세 부어 통통해졌다.
금원후가 입아귀를 차게 비틀었다.
“씹보지면 씹보지답게 서방 맞을 준비가 진작 돼 있어야지.”
정녕 서방 삼으라 꽂아 놓고 간 물건은 쓰지도 않았단 말인가?
“흐윽, 미, 미안, 미안해.”
철썩!
세 번째 매가 당도했다. 율이 혼비백산하여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미, 미안해, 후야. 바, 바보 보, 보지라서. 다음부턴 잘……, 흐윽.”
“잘, 뭐요?”
“잘…… 벌려 놓을게…….”
이런, 또 울려 버렸군.
흐어엉……. 서럽게 훌쩍이는 얼굴은 서방의 좆 무더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더는 울리지 않겠다 다짐했던 것도 같은데, 씹 빨려서 우는 모양은 아무래도 꼴렸다.
그는 인심 쓴다는 듯 명령했다.
“그럼 다리 잡아요. 보지 검사 좀 하게.”
“으응…….”
“나 없는 새 다른 좆 집어 먹은 건 아니겠지?”
“아, 아니야!”
대경실색하여 파랗게 질린 몰골도 일품이고.
원후는 얇실한 팔이 그다지 굵기 차이가 나지 않는 다리를 고정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동그란 불알과 뒷구멍 사이, 보기 좋게 갈라진 좆집 입구가 살짝 벌어져 뻐끔댔다.
먹음직스러운 곳에 다시금 혀를 처박아 빨았다.
“흑!”
“하아…… 정말, 왜 닫혀 버린 거야. 속상하게.”
아까 혀끝만 조금 넣었는데 알겠더라. 겨우 벌려 놓은 속집, 앵돌아져 닫혔구나 하고.
이래서 굴 다듬을 땐 어디 가면 안 된다. 좆 세 개 꿀떡 삼킬 정도로 만져 놓고 나서야 놓아두든가 말든가 해야지.
이는 암컷의 심리와도 연관된 일로, 율이 그만큼 위축되었다는 방증이었다.
금원후는 서럽게 훌쩍대는 얼굴에 뽀뽀했다. 색사 중인지 색시를 달래는 건지 모호했다.
“어여쁜 내 색시, 울지 마오. 서방이 그대 두고 간 줄 알았소? 그리하여 구멍 닫아 버렸어?”
그대가 좋아하는 입맞춤, 넉넉히 뿌려 드리리다.
“미, 미안, 해.”
율이 숨을 할딱이며 사과했다.
“보, 보지 닫, 힌 줄 모, 몰랐어.”
그럴 수밖에.
율이 한 일이라곤 서방을 그리워한 것뿐이었다. 외롭다고 느꼈으되, 서방이 하루아침에 하늘로 솟았어도 이대로 끝은 아니리라 믿었다.
그게 다인데 구멍이 닫혔단다.
“난 한시도 널 내 서방이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화가 났지.”
“뭐, 뭐?”
용이 각시를 품에 담았다. 긴장한 몸을 보드랍게 쓰다듬으며 귀밑을 빨았다.
“본신에게 화가 났잖소. 돌아오긴 올까. 언제 올까. 외로운데 왜 혼자 둘까, 나쁜 용.”
시무룩한 색시 얼굴을 보면 각이 선다. 제 감정 잘 모르는 둔치라 그렇지, 율은 매우 솔직한 편이었다.
마음에 벽이 서면 미묘하게 어색해지고 내외한다. 몸을 웅크려 남 밀어내고 홀로 굴속에 숨으려 한다.
율의 속집 매일 맛보던 금원후로서는 특히나 그 변화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서서히 마음 닫고 있었소? 체념하였어?
평생 무언갈 욕심내 본 적 없는 이는 포기하는 데 익숙하다. 머리로는 내 것이다, 하였어도 아주 깊은 본심으로는 의심을 내버리지 못한다. 서룡이 율을 각시로 다듬을 때 반드시 고쳐야 할 버릇이었다.
하는 수 없지. 다시 가는 수밖에.
“연유 알려 주면 마음 푸려오?”
“으읏…….”
금원후는 율을 번쩍 들어 허벅지에 옆으로 앉혔다. 그리고 다리가 닫히기 전, 좁은 샘에 중지를 슬며시 미끄러뜨렸다.
우선 손가락 한 개.
“하앗…….”
“대리 목숨이 중하게 여겨야 할 일은 첫째도 베끼기, 둘째도 베끼기라오. 진짜를 가려 남들 눈 속여야 하니 진짜의 모든 걸 이 몸에 입혀야 하지.”
상체 받친 손을 기울여 젖통 쥐고 빡빡한 입구 살살 달래 뿌리까지 집어넣는다. 대물 두 개 받았던 과거가 거짓말처럼 손가락 하나로 내부가 꽉 찼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입구가 좁아졌을 뿐, 그간 용 좆물 흠뻑 씌워 놓은 전적 있어 육벽 자체는 쫀득쫀득, 탱탱했다. 잘만 달래면 금방 열릴 낌새였다.
“그러하니 대리 목숨 관리하는 자의 목적은 무엇이겠소? 그자의 할 일인즉 첫째도 기죽이기, 둘째도 기죽이기지. 교육 들어가면 그림자 짐승 놈 뻗대는 성질 고분고분해질 때까지 잠을 재우지 않는다오.”
서방이 꿈속에서도 증발한 까닭이다. 납득할 만한 이유였으나 율은 더욱 서러워졌다.
“……마, 많이 기다렸는데…….”
왜 꿈에서조차 나를 만나러 오지 않느냐고 원망했는데. 꿈에선 만날 수 있을 줄 알고 하염없이 잤는데.
“내 낭군이 보고 싶어서…….”
누구에게도 말 못 해 꽁꽁 감추고 있던 속내가 밝혀졌다.
율은 서방 품에 이마를 콩 박았다. 이마에 서방의 입술이 닿았다.
고개를 들자 마침내 제대로 자리 찾아온 입술, 서방의 숨이 밀려든다.
“흣…….”
전신이 짜르르 떨리다 힘이 쭉 빠졌다.
검지 한 놈 더 들어가오―.
틈을 놓치지 않는 서방, 아내 보지 구멍 다루는 데 신기 들린 손놀림이다.
율의 손가락 세 개를 합친 것보다 굵직한 놈이 구멍을 비집었다.
“하으으…….”
율이 거의 눕듯이 허리를 휘었다. 진주빛 피부에 촉촉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곧은 목덜미와 턱, 어깨 순으로 점점이 내려가던 입술이 멈춘 곳은 가슴 둔덕이 융기하는 지점이었다.
도드라진 빗장뼈와 볼록한 젖통 사이의 이음매. 갈라진 회음부뿐만 아니라 이곳도 양성체의 오묘한 지점이라는 걸 뉘가 알랴.
살집 없이 뼈가 움푹 불거져 판판한 부분은 사내의 직선. 그러다 서서히 융기하는 능선부터는 계집의 곡선.
금원후는 젖과 젖이 모이는 사이에 생기는 굴곡을 좋아했다. 풍만한 계집처럼 깊은 골은 아니어도 그곳에 얼굴 묻으면 여러모로 기분이 좋았다.
콩콩 뛰는 색시 심장 소리도, 보드라운 쌍알이 답례하듯 양 볼에 비비적대며 뽀뽀하는 행위도. 말랑한 촉감과 과실에서 날법한 달콤한 향은 구태여 말 보탤 것 없다.
“하아……. 좋은 냄새…….”
“흐윽!”
손가락이 세 개, 네 개, 순식간에 불어났다. 그때까지 색시 속 달랠 요량으로 느릿느릿 문질렀었는데 결국 급한 성질 못 이기고 푹푹팍팍 굴 파는 서방이다.
“읏, 흐윽, 아! 하악!”
율이 거친 손속에 진저리쳤다. 찰랑찰랑 차오르던 쾌감이 커다란 해일 되어 정신없이 몸을 휩쓴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물 뱉어 낼 참이었다.
“흐읍!”
급박하게 속 쳐 대던 손이 단숨에 빠져나갔다. 비어서 뻐끔거리는 구멍 차지한 것, 서방 입술이다.
금원후는 재빠르게 율을 내려놓고 거꾸로 엎드렸다. 좆 무더기가 색시 얼굴 덮든가 말든가 하얀 떡 같은 허벅지 벌려 안고서 보지를 흡입했다.
“흐으읏!”
핏, 피잇. 맑은 보짓물이 서방 입 속에 쏘아져 들어갔다. 입 주변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금원후는 정신없이 색시가 뿜어낸 물을 삼키느라 바빴다.
“그래. 내 그 염병할 곳에서 이것이 참말 마시고 싶었지. 뉘 색신지 씹물도 달단 말씀이야.”
“우웁……! 사, 살려―.”
“하아, 색시도 자지 보물 빨아 주오. 씹보지 오래 비워 두어 속 근지럽지 않았소? 원하는 만큼 무럭무럭 키워 보시오. 이 밤 다 가도록 못다 한 서방 노릇 할 것이니.”
그 말에 나른했던 정신이 확 깬다. 거대한 불알과 구렁이 같은 좆 세 개에 율은 질식할 것 같았다. 하물며 좆 키우긴 무슨, 이미 딱딱해져서 무거웠다.
색시 살려……!
살고자 버둥대는 움직임을, 금원후는 흥분해서 그렇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하, 좋소? 서방 입에 보지 맷돌 장하게 돌리는구먼.”
“으흡, 읍!”
적어도 통통하게 부푼 공알은 흥분한 흔적이 맞았다. 그가 입술 오므려 음핵을 쪽쪽 흡입하자 허릿골이 다 얼얼했다.
“하악……!”
“밑보지는 슬슬 열릴 듯한데 입보지도 열어 주오.”
입을 열 수 있어야 열어 주지……!
과장하지 않고 좆 세 개를 나란히 붙여 놓으면 율의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남았다. 좆 수건도 아니고 이게 무어냔 말이다.
좆 무더기로 얼굴 덮은 황자가 눈을 질끈 감았다. 기둥이 선액에 젖어서 얼굴에도 자연스레 남편 좆물이 묻었다.
“흑!”
금원후가 분홍빛 조갯살 벌려 재차 혀 진입을 시도했다. 잠시나마 손가락 네 개를 받았던 만큼 처음보단 수월한 진입이었다. 그러면서 제 허리 살짝 띄워 색시 입에 좆물 구멍을 쪽, 뽀뽀시켰다.
뭐든, 어떤 놈이든 색시 목구멍에 들어가거라. 숨통 뚫어 서방 냄새 묻혀 두거라. 색시조차도 그 냄새 지우지 못하도록.
“우읍!”
입보지 맛 즐기며 자짓물 쏴 붙일 사명 받은 놈은 가운데 자지였다.
서방은 보지 샘 깊숙이 혀를 파묻으며 좆 대가리로 색시의 혀를 느꼈다. 조그맣고 간지러웠다. 연한 살 따먹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흐……. 여기가 극락이구먼. 색시는? 색시는 어떻소?”
“……!”
율이 목구멍을 뚫을 듯 비비적대는 자지에 경악해 눈을 홉떴다. 그간 입술 찢어지도록 자지를 머금어도 귀두 갓 정도가 최선이었다. 헌데 그게 더 깊이 들어오려 목구멍 안을 툭툭 친다. 절로 오심이 일었다.
찰싹, 찰싹!
“읍! 으읍!”
사내 하체를 밀어내고 빼려 했으나 꿈쩍도 안 했다. 외려 이 징그러운 놈이 한층 성장한다.
율은 콧잔등에 남편 불알을 얹은 채 색색 힘겨운 숨을 내쉬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자. 진실로 이해 안 되는 건 제 몸의 반응이었다. 보지에 서방 혀 문 게 뭐라고 흉물 좆이 목구멍을 노리는 판국에 씹물을 졸졸 싸 대나.
와중에도 괴물 귀두가 혀를 짓누르며 입천장을 긁었다. 벽을 다져 색시 입 안이 말랑해지도록 비비적거린다.
“자, 잠깐! 잠깐마안!”
헉. 허억.
마지막 한 방을 남겨 두고 귀두가 입술 밖까지 물러났을 때.
율은 다가오는 좆을 피해 얼굴을 돌리며 소리쳤다. 서방 놈, 뒤집혀라! 안간힘 쓰며 사내 골반을 낑낑 민다.
무얼 하려 저러는고.
흥미가 돋은 서방은 잠자코 그가 하자는 대로 해 주었다. 천장을 보고 누워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색시 하는 짓 지켜본다.
율은 벌벌 떨리는 허벅지를 들어 남편 자지 더미 위에 걸터앉았다. 구멍마다 싸 댄 물이 넘쳐나 닿는 곳 전체가 축축했다.
“구, 구멍…… 열리면 되는 거지?”
“흐음?”
팔꿈치 세워 아내 하는 양 기다리길 잠시, 그가 드물게 놀라 상체를 세웠다.
“잠―.”
“……아……!”
율이 저가 빨았던 중간 자지를 잡아 구멍에 맞추었다. 그러고는 스스로 보지를 열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타박할 틈도 없다. 낭창한 허리 아프게 휘어질라, 금원후는 서둘러 율의 마른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조금씩, 또 조금씩 좆 기둥이 사라지며 하얀 아랫배가 부풀었다.
입방정 떨기가 특기였던 서방, 드물게 할 말을 잃었다.
“…….”
실로 음탕한 요부로다…….
때론 말보다 몸이 먼저 나간다.
퍽!
“하응!”
절반 남은 자지는 서방이 허릿심으로 뚫었다. 율이 등을 확 젖혔다. 일찌감치 서방 팔 안이라 침상 바닥으로 떨어지는 대신 탱글탱글한 제 젖통 동그랗게 튕기는 데 그쳤지만.
“하, 씹……. 아…….”
퍽, 쪽, 쯔읏, 쩍.
닫힌 보지 찢는 맛, 가히 머리 녹는 별미다. 아내 젖통에 걸신들린 입은 분홍 돌기 물고 쭉쭉 빨아 대기 바쁘다.
“아…… 아, 하앗!”
무엇보다 율이 적극적으로 허리를 흔들었다. 무릎을 쪼그려 앉아 접합부를 훤히 내놓고 ‘텅, 텅!’ 자지 못질한다.
뷰릇……. 소심한 갈보가 서방 갈구하는 행동에 성급히 좆물 흘리고 말았다. 그러고도 굵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마찰감이 좋아져 삽입만 훨씬 수월해졌다.
절경, 또 절경이다. 서방은 하릴없이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놀고 있는 좆이 자꾸 눈에 밟히는 탓이다.
너만 좆이냐, 나도 좆이다. 색시 보지 따먹고 싶은 건 너만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 아우성치는 자지들이 색시의 궁둥이를 때렸다.
“아앙…….”
“뒷보지 근지럽지 않소?”
이왕 따먹히는 거 다른 자지도 먹히고 싶다. 아내 결장 푹푹 쑤시고픈 욕심 눌러 참고 은근슬쩍 떠본다.
“하아…… 하악.”
“응? 색시야. 서방 좆 따먹으니 달디달지? 뒷보지로도 따먹으면 더 달 텐데……. 어떠하오?”
금원후는 율을 옆으로 비스듬히 눕혔다. 구멍 두 개가 잘 보이도록 다리 한 짝을 어깨에 걸쳤다.
“싫소? 싫으면…… 여긴 내가 따먹지 뭐.”
“하앙!”
푸욱. 색시의 쫀쫀한 뒷보지가 검붉은 살 막대 물었다. 극락 두 개가 합쳐지니 여기가 천상 위의 천상이라.
흡족하게 휜 눈매 가득 음흉한 욕심이 어렸다. 닫힌 구멍에 어찌저찌 두 개를 밀어 넣었다. 외톨이처럼 덜렁이는 한 놈, 고놈만 제집 찾게 해 주면 바랄 바가 없겠는데…….
속집 틈새 가늠하는 눈빛이 진지했다.
‘잘하면 들어갈 것도 같구먼…….’
문제는 앞보지냐, 뒷보지냐.
‘앞보지는 빡빡해서 아플 것 같고.’
뒷보지는…… 그러고 보니 여기에 두 개를 넣어 봤던가? 쫀쫀하니 불가능하진 않아 뵌다.
결정했다.
“흐으으!”
금원후는 양팔에 무릎을 한 짝씩 걸고 상체를 최대한 앞으로 숙였다. 접합부가 들리며 자지 못질이 찹찹찹, 잘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어잇차. 떡 찧는 소리 참으로 장하다. 그 떡집 떡 소리만 들어도 찰지지 않소.”
“하아, 아! 하으, 흐으윽!”
“내 친히 색시에게만 알려 주리다. 찰진 떡집, 실은 서방이 차린 곳이라오. 색시가 맛나다 하면 내 오늘로 그림자 노릇 그만두고 떡 팔려구. 우리 떡집 맛매 어떠한지 색시가 맛보고 평해 주시오?”
이놈, 원후야!
뱃가죽 뚫릴까 겁나 죽겠는데 고놈 입방정도 되살아나 색시 정신이 쏙 빠졌다.
바로 그것, 서방이 노린 점이다.
“아……! 아아……!”
꾸우욱.
저 홀로 남아돌던 외톨이 좆, 드디어 각시 속집 찾아 들어간다.
주먹보다 크게 벌어진 뒷구멍과 공알이 짓눌릴 정도로 커다란 자지 문 계집 구멍. 좆 세 개를 나누어 머금은 형상은 기괴하면서도 강렬했다.
“하…….”
이로써 오롯이 한 몸이 되긴 하였다. 늘 자지 한두 개 빼먹고 겉만 갉작이듯 속집 맛본 터라 가슴 한편은 내심 허전했던 게 사실이다.
조그만 궁둥이여도 방 두 칸이다, 이 말씀인가?
구멍 두 쪽 나누어 들어가니 좁은 집도 서방 받는 데 무리 없음이다.
“흐윽…….”
“색시야, 기특한 내 색시. 느껴지오? 본신이 그대 굴에 몸 뉘었소. 하하, 오물오물 잘도 먹지. 맛있소? 서방 맛매 어떠해? 나는……, 본신은 혀가 녹는 듯해. 본신이 흘린 자지 육즙까지 모두 마셔 주오.”
“흡……! 흐아앙!”
이윽고 율이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푸욱, 푹. 정액 띠 두른 좆 세 개가 내장을 눌렀다. 비늘 세워 통로 긁고 아내 보지 속 용굴 만들기에 심취했다.
금원후의 대물 자지는 본래 보지에 음모가 닿도록 박으면 결장까지 뚫곤 했다. 아내 내장에 좆 머리를 담그고 있는 게 좋아 곧잘 하던 짓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궁 통로와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너무 깊게 들어가진 않았다.
그보다는 구멍이 벌어지는 정도와 부피감을 익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하악! 아, 아……! 서, 서방, 흐윽!”
“서방 여기 있소. 괜찮아. 잘하고 있소. 쉬이……. 서방 붙잡으려오?”
아니나 다를까 울보 황자는 잔뜩 겁먹어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서방이 상체를 숙여 주자 벌벌 떨리는 팔로 목을 감는다.
만족감.
금원후가 율의 가랑이를 크게 벌린 채 진입했다.
―쾅!
퍽, 푹, 찌익, 쩍! 요란하게 끈적이던 소리는 물이 섞이자 조금 더 매끄러워졌다.
“아, 아! 아아앗!”
“흐으……. 쌍년, 결국 잘 받아먹을 거면서.”
그럴 거면서 이다지도 서방 속 태웠니.
보지 맞추는 게 뭐라고, 금원후는 그로 인해 심히 고뇌하는 나날을 보냈다. 제 대물을 문제 삼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인간의 형상을 취하며 본신은 모든 것을 최대한 작게 욱여넣은 상태였다. 최선을 다했으므로 나머지는 당연히 저 이외의 탓이었다.
굳이 하나 꼽자면 체구가 너무 작은 색시를 고른 점일까. 분신이 각시를 덮었을 때 위에서 구경하니 사내 몸에 완전히 가려 허연 다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잘못 잡으면 부러질 것 같은 다리.
그 다리 벌려 용신 담는다.
저 한 몸 챙기기도 버거운 몸 열어 서방 받아들이는 내 색시.
문득 용신의 좆이 아플 정도로 흥분했다.
“헉…….”
“……!”
사람 씹구멍이 어찌 이리 벌어질 수 있는고. 지나치게 내장을 눌린 율이 기어코 오줌을 지렸다. 끈적한 찰기가 섞인 걸로 보아 순수하게 오줌만 지린 것도 아니었다.
평소 같으면 대번에 앙탈 신음 흘렸을 텐데, 율은 그저 턱을 열고서 물이란 물은 모조리 흘려 댔다.
어김없이 용의 세로 동공이 발현했다. 각시를 응시하는 금안이 형형했다.
서룡은 뱃가죽에 아내 체액 묻히고서 정신없이 접문했다. 푸룩, 부르릇. 불알 텅텅 비도록 싸면서도 삽입을 멈추지 않는다.
“율…… 금율.”
“……흐윽!”
서방이 율의 이름을 불렀다. 율은 유일한 곁에 모든 마음과 몸을 내맡겼다. 내 이름을 불러 주는 이. 사랑스럽게 입 맞추고 품어 주는 이.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답니다.
“아아아……!”
혼자 된 내내 이렇게 살을 맞대고, 끌어안고,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안락해. 외롭지 않아.
더러운 몸으로도 율은 망설이지 않았다. 망설임 따위 모조리 사라졌다. 하나뿐인 서방을 갈구하며 손아귀에 붙잡느라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졌다.
“후야……. 가지……, 가지 마…….”
그림자 황자 그만두고 떡집을 차린다고? 그러자. 네가 떡을 만들면 내가 곁에서 도우마. 차라리 평범해지자. 이 궁 나가서 범부로 살자 해도 따라가겠다.
도망가고 싶다.
어느 때보다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 사랑 때문이라니. 나도 참 쓸데없이 감상적이지 않나.
한참 울면서 신음하던 율은 뜬금없는 상념이 너무 웃겨 쿡쿡 소리를 내었다. 신랑 품으로 도망치자 낭군이 이마에 쪽쪽 입 맞춰 주었다.
“가긴 어딜 가. 안 가오.”
그래. 그거면 됐어.
행복해.
***
장담한 대로 금원후는 밤이 깊도록 율의 곁을 지켰다. 심지어 며칠은 이곳에 처박힐 예정이라 했다. 태자가 자리를 비운 까닭이 까닭인지라 금원후를 관리하던 이들도 바빠져 당분간은 걸음 하지 않을 거라며.
율은 좋았다. 서방 품에서 그간 못다 한 어리광을 부리고 더러운 소리도 즐겁게 들었다. 갈보니 허벌 보지니 하는 소리가 반갑게 들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금원후가 등장한 시각은 초저녁도 안 된 시간으로, 실컷 배를 맞추고도 밤이 남아 있었다. 율은 그 여유마저도 좋았다.
“음?”
사방이 컴컴한 밤이었다. 등잔에 불을 켜 두고 노닥거리던 율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서방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왜 그래?”
“누가 오는군.”
“으, 응? 누가?”
“보면 알겠지.”
그는 서둘러 옷을 주워 입고 율에게도 새 침의를 입혀 주었다. 율도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물건이건만 그는 어디선가 척척 가져와 율을 입히고 먹이고 돌보았다.
인기척이 없어야 할 야심한 시각에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발걸음.
당최 누구란 말인가?
“본신은 여기 엎드려 있겠소.”
기실 안개로 분하는 편이 숨는 덴 확실하지만, 본능적인 경계심이 본신을 유지하라 일렀다.
“으응…….”
율은 떨떠름하게 수긍했다. 서방은 곧 침상 아래 엎어져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 행하는 바에야 저도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할 듯해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누구지.’
발길 뜸한 구석에 올 사람이라곤 서방 말고 없는데……. 장담하자니 퍼뜩 떠오르는 이가 한 놈 있다. 요즘 뻔질나게 요현궁 드나드는 녀석.
‘설마…….’
그 아이가 온 것일까?
‘얼마 전에 나눈 대화로 잘 타이른 줄 알았는데.’
“……형님.”
문에 비친 그림자를 확인한 율은 움찔했다.
아니나 달라 황자 전하 거처에 들이닥치신 분은 태자마마셨다. 얼굴 보기 껄끄럽기도 했거니와 율은 내심 의문이었다.
개선문 통과하여 부하들과 해후를 나누어야 할 이가 여긴 어쩐 일인고?
“……들어오렴.”
금후는 성장한 차림새였다. 무거운 옷 차려입고 제 거처엔 들르지도 않은 채 이곳에 바로 온 기색이었다.
“개선식은 잘 치렀니?”
“……예. 염려해 주신 덕분에.”
“으응……. 다행이다. 피곤할 텐데 쉬지 않고…… 이 시간엔 무슨 일이야?”
동생 모르게 서방 숨겨 놓은 건 둘째 치고, 율은 시간 가는 게 아까웠다. 거기 갇히면 잠도 안 재워 준다 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서방도 저가 보고 싶어 태자가 출타한 사이 도망 나온 신세였다.
태자가 돌아왔으니 그이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설령 위치를 알아도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차라리 몰라서 못 간다 했을 때가 나았지. 모른다는 이유를 대고서 서방을 원망할 수라도 있으니까.
그와 더불어 무엇보다 잘난 서방이 차가운 바닥에 마냥 엎드려 있어야 하는 꼴이 싫었다.
“응? 무슨 일인데?”
“……쭉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을?”
율은 다소 피곤한 낯으로 눈을 깜빡였다. 금후가 한 걸음 다가왔다.
“형님께서 저를 거절하셨던 날…….”
“아…….”
가장 나오지 않았으면 했던 화제.
‘하필 이럴 때.’
멈칫한 율은 찰나 뒤로 곁눈질할 뻔했다. 속으론 벌써 망조 체감하였다. 저가 들어도 오해할 법한 소린데 그놈이 과연 조용히 넘어갈는지.
어찌하면 이 녀석을 조용히 돌려보낼 수 있을까.
형님 전하 속 전혀 모르는 태자마마, 그 와중에도 저만의 감정에 빠져 있다. 가슴 앞섶을 쥐는 손과 고운 미간 찌푸린 얼굴이 누가 보아도 애달프다 할 만했다.
“아우가 판단하기로는, 다정한 형님께선 오직 아우가 잘못될까 그 걱정뿐이구나 하였습니다.”
“…….”
“형님, 저는…… 전쟁터에서 다시는 제 사람을 잃지 말자 결심했습니다. 아무리 강한 적이 와도 대항하자고,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설령 그분이…… 폐하라고 하셔도요.”
에그머니, 용신이시여!
누가 들었을까 겁난다. 율은 얼른 동생을 말리려 했다. 저 따위면 몰라도 고귀한 전하시면 누가 뒤를 밟았을지 몰랐다.
“형님.”
“…….”
“진정 두려워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 후궁에 기거해도 괜찮다는 제안을 거절한 사유가 달리 있다면 부디 알려 주십시오. 아우에게 한 번만…… 한 번만 기대 주시면 아니 됩니까?”
누가 봐도 태자는 과히 율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율의 눈에는 버젓이 보이건만 어째 태자만 모르는가.
태자마마 눈엔 단지 제 손아귀에 있던 것이 빠져나가는 모양 보일 뿐이다.
저가 돌아와도 묘하게 시큰둥하던 형님. 달리 취미도 없는 그가 저에게조차 관심을 두지 않은 건 혹여나 어디에도 미련을 버리고 삶을 포기한 건 아닌지, 저를 의식 밖으로 내버린 건 아닌지 불안해 죽을 참이었다.
“하아…….”
알아먹긴 뭘 알아먹어, 그럼 그렇지.
인생사 쉽게 나아가는 법이 없다. 율은 이마를 짚었다. 깊은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날 털어놓을 걸 그랬다.
“……내가 말하지 않았니? 나는 괜찮다고. 정말로 괜찮아서 그렇게 말한 거야.”
심히 난처하다. 실로 곤란했다. 지아비 숨긴 죄로 이 무슨 난리인가?
“부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폐하가 두려워서 그러는 거라면 설득하는 건 제가―.”
“아니야. 그러지 마.”
율은 놀라서 크게 뜨인 금후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했다. 일이 꼬여 몹시 유감이었지만, 이후 고난이 닥치더라도 아이의 오해는 풀어야 했다. 동생이 오해하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싫어. 내 울타리는 네가 아냐.
“폐하께 고하지 않아도 돼. 실은…… 내겐 은애하는 이가 있어.”
은애한다고, 그이에게 직접 말했던 적 있던가? 처음이라면 아쉬운 상황이다. 이렇게 멋없이 고백하고 싶지 않았다.
“……은애하는 이라 하셨습니까?”
“응. 그 사람은…….”
율은 동생의 면면에서 그이를 찾았다. 경악하여 둥그레진 눈 위로 능글맞게 휘어지는 눈매가 겹쳐졌다.
말하자.
“그 사람의 이름은…… 금원후. 네 대리 목숨이야.”
“대리 목숨……?”
역시 몰랐나.
놀랍게도 이름 석 자 밝혔을 뿐인데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율의 만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나와 참으로 어울리지 않니? 둘 다 숨어 사는 처지도 같고.”
그런데 그 사람, 나 같은 거랑 달리 참으로 씩씩하단다. 강인하단다. 내 지아비란다.
난 그를 의지해.
“그날 내가 숨긴 이름은…… 그이의 것이었어.”
태자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거참.”
답이 들려온 것은 율의 뒤쪽이었다. 율이 깜짝 놀라 돌아보자 금원후가 미묘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었다.
그가 능청맞게 웃었다.
“이리 뵙는군요, 전하.”
금원후와 금후.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사내가 서로를 마주하고 섰다.
율은 둘을 나란히 두고 보자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 둘을 보고 다들 쌍생아라고 해도 저만은 진짜 서방을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금원후가 의젓한 남편인 양 율의 어깨를 감쌌다.
“내자가 이리 말하는데 서방으로서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내, 내자?”
“그렇소. 우리끼리 서방 각시 하기로 하였거든. 꼬박 세 해가 지났지.”
“형님! 이자의―, 이 무엄한 자의 헛소리가 사실입니까?”
태자가 격노했다. 얼굴 전면이 시뻘게져서 부들부들 떠는 동생을, 율은 처음 목격했다. 내심 그렇게까지 화내리라 여기지 않았기에 더욱더 충격이었다.
율은 창백하게 질려 손을 내저었다. 동생이 저리 분노를 표하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후……, 아, 아니, 전하! 지고하신 태자 전하, 부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이가 법도에 서툴러 실수했습니다. ―후야, 왜 이래.”
경솔하게 굴지 마랍시고 서방을 붙들자 그가 웃겨 죽겠다는 듯 입꼬리를 귀까지 올렸다. 율이 여태 본 것 중에 가장 환한 미소였다. 동생만 없었어도 아마 폭소했으리라.
얘, 얘가 왜 이래?
“……‘후야’? 저이를 후야라고 부릅니까?”
너는 또 왜 그러고?
율은 태자의 낯선 표정이 무서웠다. 과장이 아니라 항상 따뜻하고 다정했던 눈빛이 회까닥 돌아 다 쓸어 버리고파 하는 광증이 느껴졌다.
“이, 이, 이름이 비슷하여서…….”
나만 보던……, 나만 아껴 주던 형님인데.
태자의 중얼거림은 지나치게 작아 인간의 청력을 벗어난 용만 잡아챘다.
“하하…….”
“감히…….”
말을 채 끝맺지 않은 태자가 율과 용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차마 율에게 성질내지 못하고 문짝을 부술 듯 젖혔다.
돌아 나가는 그 모습이 큰 난리를 예고하는 듯해 율은 아이를 쫓아 나가려 했다. 절반은 어릴 때 습관이었다.
허나 도착한 곳은 서방 품.
“앗!”
금원후가 놀란 색시 붙들어 품속에 가두며 태자 떠난 곳을 응시했다. 재미있다는 듯 웃었으나 깊이 들여다보면 몹시 차고 비웃음 가득한 상이었다.
그럼 그렇지. 너도 결국 용 되지 못한 미친 이무기 새끼구나.
가진 능력을 믿고 자만하여 미쳐 버린 존재. 용으로 태어났으나 미물로 격하되어 바닥을 기게 된 뱀 새끼.
용이 힘을 나눠 주었으므로 용신이 사라진 자리엔 그의 대리자가 용이라 불릴 법했다. 그러나 대리자는 대리자. 자신이 진정 용인 줄 알고 제멋대로 굴면 곤란하다. 애초에 광증 부리라고 허락한 힘이 아니었다.
저가 용인 양 힘 휘두르며 미친 짓 하는 놈은 황제뿐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색시가 착하디착하다 노래 부르던 자도 종국엔 제 아집에 사로잡혀 미치는 것을 보니, 이는 피가 너무 오래 고인 탓인가?
오만하고 같잖다. 나라에 망조가 들긴 하였다. 제 망상에 빠져 지금 뉘를 탓하는고?
어느새 세로로 갈라진 동공이 품에 쏙 들어온 색시를 응시했다. 찬기는 가셨으나 비웃음은 그대로였다.
“이것도 참…….”
다채롭게 어여쁜 쌍년이로다.
너는 어디가 어떻게 미쳤느냐. 남을 미치게 하는 것이 네 광증의 발현인 게냐?
금원후는 마른 두 팔을 힘껏 쥐었다. 율의 눈가가 벌써부터 울멍울멍했다.
“이 쌍년, 외롭다 서럽다 하더니 그새 서방질을 해?”
나름 죄지은 바가 있어 오늘 하루는 얌전히 서방 노릇 할까 하였더니…….
“뭐? 후궁? 하하, 후궁이라. 그래, 우리 색시 계집 보지 어디까지 보여 줬소. 다른 후야 좆 맛이 더 좋더이까? 이쪽은 세 갠데 저긴 어떠하였어?”
“아, 아니, 나는―.”
율이 억울한 듯 도리질 쳤다. 픽, 서방의 비웃음이 깊어졌다.
이 요망한 년 보소. 뭘 잘했다고 억울한 낯인가. 어이없고 열받는데 그 꼴도 예뻐 보이니 본신도 참 중증이지.
뭉게뭉게. 본신의 결계가 황자의 내실을 뒤덮기 시작했다. 금원후는 율을 그대로 침상에 눌렀다.
“내 갈보. 내가 파낸 내 보지. 이리 어여뻐서 어찌 혼자 두지. 아니 되겠소. 오늘로 본신 받아들이고 이 품에서 어미 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