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5화 (23/318)

20.

지금 김영훈은 부인 조씨(趙氏)가 기거하는 안방에 와 있었다.

지난 해 어린 임금의 명으로 국무대신 정원용을 책임자로 하는 천군 장가들이기

운동이 시행되었었고, 대부분의 천군은 하나씩 장가를 들게 되었다.

그것은 김영훈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김영훈의 배필로는 특별히 대왕대비 조씨의

친정 조카인 조씨(趙氏)가 낙점(落點)이 되었다.

김영훈을 비롯한 천군 대부분은 이런 식의 혼인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으나, 당시

조선의 사회상으로 볼 때 연애결혼은 꿈도 꾸기 힘들었으니 감수 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어린 임금이 친히 내린 어명이었으니 달리 사양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 김영훈의 앞에 앉아 있는 곱상한 얼굴의 조씨는 일전에 함경 감사로 부임한 전

대비전 승후관 조성하의 친누이 동생으로 올해 겨우 열 여덟 살 밖에 먹지 않았으나,

당시로서는 상당히 과년(瓜年)한 나이에 혼인을 한 것이었다.

"그래, 무슨 일이오? 부인."

자신의 이런 말에 자신이 닭살이 돋는 것을 느끼는 김영훈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여자를 사귈 때처럼 살갑게 대할 수도 없었다. 만약 그렇게 대했다간 천하의 난봉꾼

소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 같으면 어디 가서 원조교재를 한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은 나이 차였으니...

열 일곱 나이에 졸지에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자와 혼인한 조씨였으나, 나름대로

곱상한 얼굴에다 어려서부터 명문의 훈육을 받아서 그런지 맵시 있게 앉아 있는

모양새가 사뭇 기품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저..."

무슨 어려운 일이 있는지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조씨였다. 괜히

버선코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무슨 사단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모양이었다.

"말씀하세요."

남편의 거듭되는 채근에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 말을 꺼내는데,

"실은 일전에 친정에서 어머님이 인편(人便)으로 뭔가를 보내왔는데, 그것이..."

계속 말을 흐리는 조씨였다. 그러니 더욱 궁금해진 김영훈은

"그것이...?"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실은 서방님과 신첩과의 합궁(合宮) 날짜를 택일한 것이온데..."

간신히 말을 꺼내며 얼굴이 붉어지는 조씨였으나, 앞에서 지켜보는 김영훈이 더

무안했다.

조씨의 말인즉슨, 친정 어머니가 두 사람의 합궁 날짜를 잡았는데 오늘로부터 나흘

간이 가장 아이를 수태(受胎)하기 좋은 날이라는 말이었다.

지난 해 여름 혼인을 한 두 사람이었으나 아직까지 좋은 소식이 없었기에 애가 닳은

친정 어머니가 두 사람의 합궁 날짜까지 보내기에 이르게 된 것이니, 어찌 그런 장모(

丈母)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가 하는 후회의 마음도 드는 김영훈이다.

국사(國事) 다망(多忙)하다는 핑계로 어린 아내와 동침하지 못한 날이 벌써 며칠

째인지 몰랐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든 김영훈이 어린 아내의 손을 살며시

끌어당기며 말한다.

"미안하오, 부인. 여태 내가 당신에게 너무 소홀했소."

아이구, 닭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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