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41화 (39/318)

36.

"숙부께서도 숙모님과의 사이가 원만(圓滿)하신가요?"

얼굴에 짓궂은 웃음을 띄운 어린 임금이 이렇게 묻자 순간 얼굴이 빨개지는 김영훈과

그의 처 조씨다.

두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보며 웃던 어린 임금이 김영훈의 소매 자락을 끌며 한쪽으로

데리고 가는 게 마치 중요한 일이 있는 듯 했다. 그러면서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으니 과연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것일까.

"무슨 일이 있으시옵니까? 전하."

"쉬--- 목소리를 낮추세요."

"예, 전하...알겠사옵니다."

잔뜩 목소리를 낮춘 어린 임금이 이렇게 말하며 김영훈에게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는데,

"숙부, 실은 어머님께서 자꾸 국혼(國婚)을 서두르자는 말씀을 하십니다

."

"부대부인(府大夫人)께서요?"

"그래요, 숙부도 아시겠지만 돌아가신 아버님과 내무대신 김병학 대감과는 사이가

막역한 관계로 이미 그 집의 처자(妻子)와 과인은 일곱 살 때부터 사실상의 정혼(

定婚)을 하였답니다. 그리고 과인도 이미 그 집 처자(妻子)를 몇 번 보았고요,

그런데, 어머님께서는 아버님께서 돌아가시자,

김씨 집안과 국혼을 하는 것이 마땅치 않으신가 봅니다. 그래서 요즘 과인을 자주

찾으시면서 그 말씀을 자꾸 하십니다. 그리고...과인은 이미

..."

"이미, 무엇이옵니까?"

"아니에요, 아무것도..."

어린 임금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 말을 멈춘다.

김영훈은 그런 어린 임금이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부대부인 민씨 생각에 더 이상

신경 쓰지 못하고...

"부대부인께서는 누구를 국혼의 상대로 점찍고 계신지 혹시 짐작 가는 처자(妻子)가

있으시옵니까?"

어린 임금에게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묻는 것이 예(禮)가 아님을 아는

김영훈이었으나,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김영훈의 물음을 들은 어린 임금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마도 삼청동 아주머니를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애요."

"삼청동 아주머니라면...?"

"어머니의 친정 아저씨 민치록(閔致祿)의 여식(女息)이랍니다."

"아--, 그..."

하면서 말을 흐리는 김영훈이다.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원래 역사 속의 비운의 황후(皇后) 명성황후(明成皇后)임을

그때서야 깨달았으니, 참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는 얄궂게 흘러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김영훈이다.

김영훈이 이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어린 임금이 소리를 지른다.

"난 그 아주머니가 싫어요!"

깜짝 놀란 김영훈이,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하며 달래 보지만 어린 임금은,

"난 정말 그 아주머니가 무섭단 말이에요."

"고정하시옵소서, 전하. 신이 전하의 곁에 있는 한 그 누구도 전하를 헤치지

못하옵니다. 고정하시옵소서."

어린 임금이 이렇게 민치록의 딸 민자영에게 강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얼마나

싫으면 과인이라는 칭호를 쓰지 않고 시중(市中)의 말로

"나"라고 하겠는가.

민치록의 딸 민자영은 어린 나이에 생모(生母)인 해주오씨(海州吳氏)가 죽고 후취(

後娶)인 한산이씨(韓山李氏)의 손에 자라게 된다. 그러다 민자영이 여덟 살 되던

해에 생부(生父)인 민치록마저 세상을 뜨자 울적한 마음에 형부(兄夫)인 흥선의 집에

가끔씩 들르기도 하였는데, 그때 이미 어린 임금은 민자영의 날카로운 기세(氣勢)에

주눅이 들기 시작한다.

민자영은 어려서부터 유난히 총명하고 예쁘기는 하였으나, 어릴 적 마마를 앓은

후유증으로 살짝 얽은 곰보에, 생모와 생부를 일찍 여의고 계모(季母)의 손에

자라서인지 성정(性情)이 날카롭고 차가웠다고 한다. 그런

민자영이었으니, 유난히 심약하고 병약했던 어린 임금의 기억에 좋게 남을 리 없었다.

비록 민자영이 어린 임금보다 겨우 한 살뿐이 많지는 않았지만 촌수(寸數)로 따지면

이모(姨母)뻘이었다. 어쩌면 어린 임금의 민자영에 대한 강한 거부감도 촌수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었다.

김영훈은 할말을 잃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눈감고 있다가 코 베어

간다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김영훈이다.

한국 같으면 중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조카와 같은 나이의 어린 임금이었으니 아직

어린아이로만 생각했던 어린 임금에게서 국혼에 대한 얘기를 들은 것은 하나의 큰

충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34살인 자신도 겨우 지난해에 장가를 들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그 상대가 민자영이란 말인가.

흥선이 변을 당하고 청상(靑孀)이 된, 부대부인 민씨를 창덕궁의 대조전과 가까운

성정각(誠正閣)에 모신 게 바로 지지난해 섣달의 일이다.

그동안 어린 임금과 김영훈을 비롯한 천군은 지아비를 잃은 부대부인을 위해 정성을

다하여 섬기었으니, 참으로 그 정성이 갸륵하였다. 그런데 그런 부대부인이 아무도

몰래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을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전하께오서는 어찌하는 것이 좋겠사옵니까?"

"어머님께는 숙부와 상의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더 이상 말씀드리기는 곤란하다는 표정이다.

"그럼, 부대부인 마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시옵소서."

"어떻게요?"

"지지난해 승하하신 대행대왕마마의 상기(喪期)가 끝나는 올해 섣달 초파일에 다시

의논하자고 말씀드리시옵소서, 대행대왕마마의 대상(大祥)이나 무사히 마치고 나서

국혼을 의논하는 것이 법도(法度)에 합당하다고 말이옵니다."

"알겠어요, 숙부의 말씀을 진작 들어 볼 것을 괜히 과인 혼자 끙끙 앓았네요...

후후후."

김영훈이 이렇게 말하자 어린 임금은 그때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이제 겨우 열 네 살인 어린 임금은 아직은 또래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마음속의 시름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으나, 이제는 언제 그런 걱정을 했느냐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 어린 임금의 모습을 바라보는 김영훈의 마음이 편치 많은 않았으니

...

사실 당시 조선의 풍습으로 열 다섯 살이 되도록 성혼(成婚)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반가(班家)의 자제(子弟)들도 대부분 열 두어 살이면 성혼을

하는 게 관례(慣例)였으니, 하물며 한 나라의 국왕(國王)의 신분임에야 말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어린 임금이 보위에

오르게 된 것은 선대왕의 갑작스런 승하에 따름이었으니, 그 선대왕의 상기가 끝나기

전에 현 임금의 국혼을 치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36 개혁(改革)의 첫걸음...7

번호:4894  글쓴이:  yskevin

조회:842  날짜:2003/10/2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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