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44화 (42/318)

39.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헌데, 오늘 입궐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사의(謝意)를 표한 장현덕은 오늘 낮에 김영훈이 입궐한 이유가 새삼스럽게

궁금했다. 마침 자신도 김영훈에게 보고할 사안도 있었으니,

"아- 마침 장 원장도 잘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장 원장을 부르려던 참이었으니."

김영훈은 장현덕에게 오늘 있었던 얘기를 하고 대책을 숙의(熟議)하기에 이른다.

김영훈의 얘기를 모두 들은 장현덕은,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를 보고드릴 참이었습니다. 요즘 부쩍 흥인군 이최응의

발걸음이 부대부인 민씨에게 쏠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사령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국혼의 문제를 흥인군이 부추긴 것 같군요."

장현덕의 이 말을 듣고 있던 한상덕은 약간은 다른 의견을 내 놓는다.

"제가 보기에 흥인군은 단독으로 그러한 일을 부추길만한 배포가 없는 인물입니다.

필시 또 다른 세력이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세력이라면...?"

"조사를 해 보면 금방 드러나겠지요."

한상덕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이렇게 대답을 하는데, 그것은 1년 동안 대정원을

이끌면서 조선 팔도 방방곡곡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훤히 꿰뚫고 있는 데에 따른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김영훈은 한상덕에게 흥인군의 모든 것과 흥인군이 접촉하는

모든 인물들에 대한 감시와 증거 수집을 지시하였고, 장현덕에게는 궐내의 동향과

부대부인 민씨에 대한 감시를 지시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에게 지시를 하면서도 김영훈은 마음이 편치 않았으니, 그것은 정적(

政敵)의 피를 자신의 손에 묻히고 싶지 않은 마음의 발로이기도 하였고, 괜한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켜 자칫 공포정치(恐怖政治)로 흐를 수도 있는 정국

상황의 변화에 대한 염려이기도 하였다.

사실 자신을 비롯한 천군이 조선 사회에 무사히 안착하고 개혁을 진행시킬 수 있었던

것은 운(運)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린 임금의 생부 흥선대원군이 김씨 일파의 손에 죽고 그 김씨 일파를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정권을 잡은 것은 실로 천행(天幸)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일 당시에 천군이

창덕궁 영화당에 주둔하지 못하고, 강화도나 다른 군영에서 발이 묶였다면 절대로

그와 같이 수월하게 정권을 장악할 수 없었을 것은 자명(自明)하였고,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조선을 서서히 바꿀 수 있었고, 그러한 결과로 약간은

자만심(自慢心)에 빠져있었는지도 몰랐다.

모든 일이 계획했던 대로 진행된 데 대한 타성(惰性)에 젖어 있었는지 몰랐다.

아니 그랬다. 자신을 비롯한 천군은 타성에 젖어 있었다. 그리하여 모든 일이

자신들의 뜻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樂觀論)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김영훈이 이런 생각을 하며 타성에 젖어 있던 자신을 추스르는데 장현덕이 뜻밖의

소리를 한다.

"사령관님, 실은 한 가지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응? 보고? 말해보세요? 무슨 보곤지."

또 할 말이 있었냐는 식의 응대(應對)에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끼는 장현덕이었지만

사안의 중대성으로 결코 볼 때, 결코 미룰 수는 없었기에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실은, 주상전하께서 총각을 면하신 것 같습니다."

"응...?"

"?"

김영훈과 한상덕은 무슨 얘긴지 갈피를 못 잡다가, 한 참이 지나서야 장현덕의 말을

알아 듣는다. 그런 문제에 약간은 둔한 김영훈보다는 한상덕이 재빨리 알아차린다.

"아니! 그럼, 주상전하께서 벌써 여자(女子)를 아셨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지밀 소속의 이 나인이라는 아인데, 주상전하께서 자주 침전에

부르십니다. 이미 지밀상궁인 안 상궁보다는 이 나인이 주상전하의 모든 시중을 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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