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47화 (45/318)

42.

최시형의 아침은 뒷간에서 시작된다.

아침 일찍 잠자리를 털고 일어난 최시형은 우물가로 가서 조그만 표주박

바가지에 물을 한 가득 담아 가지고 뒷간으로 향한다.

어려서부터 치질(痔疾)로 고생하던 최시형은 그동안 뒷간에 가는 것이 인생 최대의

고역(苦役)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천군을 만나고 나서 사정이 달라졌다.

정확히는 보의부에서 내린 '백성들의 보건(保健) 위생(衛生)에 대한 안내문'으로

해서 달라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인생 최대의 고역이 이제는 배설(排泄)의 쾌감을 마음껏 만끽하는 장소로 변한

것이다.

치질을 앓는 사람이 뒷간에 앉아서 그 놈이 나올 때까지 당하는 고통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그리고 그 뒤처리에서 생겨나는 고통도 역시 모른다.

지난날의 최시형이 그랬다.

찢어지고 부르튼 괄약근(括約筋)을 그놈이 삐집고 나오는 순간, 참았던 신음이

동시에 터지고, 뭔가 큰일을 했다는 성취감과 함께 밀려오는 아픔도 비례하여 커진다.

이어서 철푸덕하고, 그놈이 떨어지는데 가랑이 사이로 얼굴을 디밀고 밑을 쳐다보면

예외 없이 피 묻은 그놈이 웃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 같으니, 좀 안 아프게 나오면 어디가 덧나나.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아픔의 시작에 불과 했으니, 이제 그 놈을

배설했으니 그 뒤처리가 남았다. 허리춤을 뒤져 준비한 나뭇잎을 꺼낸다. 오늘은

그래도 나뭇잎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가장 좋은 것은 옥수수의 껍질이나 수수깡의

껍질을 벗긴 것이지만 그런 것들이 없을 때는 나뭇잎도 괜찮다. 준비도 안 했는데

불시에 그놈의 소식이 오는 경우엔 나뭇잎은 고사하고 한쪽에 매달린 새끼줄만이

유일한 뒤처리의 수단이다. 이럴 때는 정말이지 죽고만 싶다.

엉성하게 매인 노란 새끼줄에, 마치 애새끼가 벼름빡에 발라 논 코딱지 마냥 누렇게

말라붙어 있는 그놈의 흔적. 저 놈이 언 놈 밑구녕에서 나온

놈인지 모른다. 하루가 묵은 놈인지 한 달이 묵은 놈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 중에는

자신의 밑구녕에서 나온 놈도 있으리라.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절로 눈살을 찌푸리며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일어선다.

두 손은 바지춤을 움켜쥐고, 한 발 또 한 발 조심스레 내 딛는 발걸음은

행여나 밑에 달라붙은 그놈의 흔적이 궁뎅이 양쪽 골짜기에 엉겨 붙을까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누런 그놈이 엉겨붙어 있는 자리를 피해 새끼줄을 가랑이 사이에 오도록

하고 그 위에 서서히 주저앉는다. 그놈의 흔적이 묻어있는 밑에 조심스럽게 새끼줄이

닿는 것을 느낀다.

이제 고통의 시간이다.

그렇지 않아도 쓰라린 밑이 마치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진 듯 화끈하다.

마치 율동을 하듯 허리를 앞뒤로 움직인다.

앙다문 입술은 저절로 벌려지고 고통의 신음은 커져만 간다. 으----악----

마치 상처받은 사자가 최후의 일격을 사냥꾼에게 맞으며 울부짖듯 그렇게 울부짖는다.

저절로 욕이 튀어나온다. 으아---썅. 씨팔---으-아---

간신히 새끼줄을 이용한 뒤처리를 하고 고쟁이를 올리지만 그래도 그놈의 찌꺼기는

괄약근 구석구석에 남아 최시형의 신경을 건드린다.

최시형이 이렇게 치질로 고생한 이유는 너무나 어이없게도 간단했다.

경주 황오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열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게 되어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고, 그러다 보니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물론 먹는 것도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최시형이 열 일곱 살 되던 어느 날 아침부터 뒷간에서 일을 보려고 앉아

있는데 그날따라 그놈의 나옴이 영 더뎠다. 아무리 힘을 주고 애를 써도

그놈은 어디가 막혔는지 나오질 않았다. 한 동안 용을 쓰자 드디어 그놈이 나왔는데,

일단 시원했다.

이마의 땀을 대충 소맷자락으로 훔치고 엉거주춤 새끼줄로 가 주저앉았는데 이상하게

아팠다. 허벌나게 아팠다. 고개를 가랑이 사이로 넣고 보니 밑이 피범벅이었다. 알고

보니 밑이 빠진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

억샌 새끼줄 위에 앉아서 앞뒤로 진퇴운동(進退運動)을 했으니 가뜩이나

빠진 밑이 완전히 헤어진 짚신 꼴이 되었다.

그 뒤로 치질은 최시형의 고질이 되었다. 아니 불치의 병이 되었다.

별 짓을 다 해 보았다. 그러나 신통치 않았다. 치질에 좋다는 말린 솔잎을 태워서 그

연기를 환부(患部)에 대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괜히

불알에 난 털만 홀라당 태웠을 뿐이다.

이런 일들을 나이가 들면서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스무 해가 넘도록 하였으니 정말 그

처절했던 고통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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