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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굳이 조선인 광부가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뭐 서양에서 도입될 선진
채굴기술을 습득할 목적이라니까 이해는 합니다만 100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을
데려갈 필요가 있을까요?"
전준호는 선우재덕에게 이렇게 볼멘소리를 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전준호의 이런
불만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수출할 상품을 적재할 자리가 모자라는 판국에
조선인 광부 100명까지 다음 선편으로 나가사끼에 이동시킬 것을 생각하니 암담할
뿐이었다.
물론 막부의 나가사끼 행정청 측에서 100명이나 되는 조선인 광부의 입국을 불허(
不許)할 일은 없겠지만 예정에 없던 입국이라 그에 따른 약간의 촌지(寸志)를
행정관에게는 전달해야만 하는 일은 어쩔 수 없었다.
비록 그 액수가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행정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다는 것이 싫은
전준호가 이렇게 불멘소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정에서는 쥬신상사에서 나가사끼 앞 바다의 하지마 섬을 매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선우재덕을 불러 다카지마 탄광이 시행할 서양의 발전된 채굴기술을 조선의
광부들에게 습득시킬 목적을 설명하고 협조를 부탁하였다.
선우재덕이야 천군 출신이었기에 당연히 승낙을 하였지만 전준호가 이렇게
볼멘소리를 하는 것은 그 인원이 당초 예상했던 몇 십 명 정도가 아닌 100명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사실 조정에서도 새로운 광산기술의 습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파견이라면 그렇게 많은
인원을 보낼 이유는 없었지만, 조정에서 노리는 것은 그 외에도 한가지가 더 있었다.
어차피 기술을 습득한 광부들은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어있지만,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고 남아 있는 광부들도 있게 마련이다.
그렇게 남아있는 광부들은 조선에 있는 처자식을 불러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고,
그렇게 하면 자연스러운 조선인들의 왜국 유입이 이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조정에서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차피 조선의 도약을 위해서는 왜국을 어떻게든 처리해야만 하는 조정에서는 왜국에
조선인 사회를 소리 없이 건설함으로써 나중의 일을 대비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항까지 두 사람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기에, 선우재덕과 전준호는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으며, 그래서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전준호는 선우재덕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는 표정을 보이자 다시 볼멘
소리를 한다.
"그리고 다카지마 탄광을 비롯한 하지마 섬에서 채굴되는 석탄의 전량을 조선으로
가지고 오라는 소리는 또 무엇입니까?"
조정에서는 쥬신상사에 또 하나의 지시를 내렸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하지마 섬에서
채굴되는 석탄의 전량을 구입한다는 통보였다.
전준호는 하지마 섬에서 채굴되는 석탄을 나가사끼에 기항하는 서양의 증기선에
판매한다면 비용면에서 있어서나 효율면에서 있어서나 훨씬 이득이 많을 것인데 왜
굳이 모든 석탄을 조선이 사용할 것이니 채굴된 석탄의 전량을 조선으로 운송하라는
것인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아! 그것은 내가 설명하겠네."
선우재덕은 전준호의 이런 불만의 소리에 자신이 그동안 전준호에게 설명하지 못한
것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부기장, 자네도 알다시피 조정에서는 지금 해주만에 대규모의 제철소를 짓고 있네."
전준호는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을 하며 선우재덕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선우재덕은 그런 전준호의 마음을 아는지 다시 말을 한다.
"그 제철소에서는 코크스(Coke) 제강법을 이용한 용광로(鎔鑛爐)를 설치하여 제철을
생산할 생각이라네. 그런데 거기에는 한가지 우리 천군의 기술자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네."
그동안 천군 출신의 철강기술자들과 과학자들, 그리고 건교부 소속의 공병중대에서는
해주만에 대규모의 제철소를 짓기로 하고 그 완성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조선에서 장갑함을 만들 기술이 충분하지만 장갑함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장갑함에 소용될 대규모의 철강제품이 아직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국에 세운 조그만 규모의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철을 한꺼번에 동원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동안 추진해 왔던 각종 신무기의 생산이나
철이 소용되는 여러 가지 산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철소의 건립을 서두르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온 천군 기술자들이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코크스의 생산이었다.
코크스 제강법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코크스라는 물질을 생산해내야 하는데 21세기의
한국에서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나 19세기의 조선에서 그 코크스를
생산하는데 한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선에서 채굴되는 석탄의 대부분이 무연탄(無煙炭)이라는 문제였다.
코크스는 강점결탄(强粘結炭)의 고온건류에 의해서 생기는 다공질(多孔質)
고체연료인데, 조선의 무연탄으로는 만들 수 없는 물질이었으니, 21세기 전(全)
세계의 모든 물건, 물품들이 수입되는 한국에서 온 천군 기술자들은 그 점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코크스와 철광석을 약간의 유연탄, 석회석 등과 함께 용광로에 넣고 쇳물을
녹여내는 이른바 고로법(高爐法)에 의한 냉연강과 양질의 고급철강 생산을 계획하고
추진하던 조선에서는 그동안 막대한 돈과 인력, 시간을 투자하여 건설에 매진하던
제철소가 한순간에 고철로 전락할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러던 차에 조선에서는 없는 점결성 강한 역청탄(瀝靑炭)을 생산해내는 다카지마
탄광이 있는 하지마 섬을 쥬신상사가 인수한 것은 그야말로 그동안의 그 모든 시름을
일거에 날려 버리는 쾌거와 같은 소식이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하지마 섬에서 채굴되는 질 좋은 역청탄을 모조리 구입하여
조선으로 싣고 와서 해주만에 짓고 있는 제철소에 공급하고 그에 따른 냉연강과
고급강 생산의 꿈을 이룰 생각이었다.
마침 전준호가 토마스의 조언으로 하지마 섬의 탄광을 개발할 목적으로 구입한
하지마 섬이 이런 복을 몰고 올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선우재덕의 설명을 들은 전준호는 그때서야 이해를 하게 되었고, 나가사끼에
돌아가면 하지마 섬을 매입하도록 조언한 토마스와 그런 토마스의 목숨을 구해
조선을 위한 큰 일을 하는데 기여한 정운두에게 크게 한 턱 낼 생각을 하고 있는
밖에서,
"나으리!"
하고 하인의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냐?"
"잠시 좀 나와보셔 야겠습니다요. 웬 젊은 처자가 전준호 나으리를 찾아왔습니다요."
"웬 처자가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