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장관입니다. 사령관,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합하."
김영훈과 김종완을 비롯한 조정의 중신들과 해군 수뇌부는 지금 남양의 조선소 앞
바다에 정박하고 있는 아가멤논과 뉴 아이언사이드의 위용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풍백함과 시모노세키 앞 바다에서 헤어진 이순신함의 김종완은 법국함대를 격멸(擊滅)
하기 위해서 나가사끼 인근(隣近) 해역으로 남하했다. 그리고 김종완은 법국함대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특수수색대 대원 몇을 나가사끼 해안가로 잠입시켰다.
나가사끼에 잠입한 특수수색대 대원들은 조선공사관으로 가서 법국함대에 대한
정보를 구했다. 특수수색대 대원들은 조선공사관의 경비책임자 한성호로부터,
법국함대가 며칠 전에 식민지 코친 차이나에 발생한 문제 때문에 이동했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한 마음과 함께 귀대하여 이 사실을 사령관인 김종완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대원들의 보고를 받은 김종완은 아쉬운 마음에 조선으로의 귀환을 결심하고 풍백함과
아가멤논 뉴 아이언사이드의 예상항로로 북진하였다.
그리고 풍백함 등과 합류한 이순신함은 남양의 해군사령부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법국의 함대까지 격멸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법국의 함대는 코친 차이나로 귀환했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식민지 코친 차이나에서 발생한 문제 때문에 귀환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놈들까지 뜨거운 맛을 보여주었을 것인데..."
김종완은 법국함대까지 수장시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김영훈의 옆에 있던 한상덕은 김종완의 애통(哀痛)해 하는 표정에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한다.
"아닙니다. 사령관 대감."
"예...? 무슨 말씀이신지...?"
"4개국 연합함대를 모조리 수장시키고 쓸만한 함선을 나포했다면 바랄 나위 없이
좋겠으나, 그 뒷감당을 생각한다면 지금 정도가 좋습니다. 이미 영미 연합함대가
박살난 상황에서 저들이 느끼는 분노(忿怒)와 당혹감(當惑感)은 엄청날 것입니다."
"그렇지요?"
"대감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들이 어떤 인종(人種)입니까? 인종적 편견과 우월감이
하늘을 찌르는 인종이 아닙니까? 그런 저들에게 이 번 사건은 큰 충격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모든 함대가 완전히 수장되거나 사라진다면 동북아(東北亞)에 새로운
전운(戰雲)이 감돌 소지가 다분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조선도 거기에
휩쓸릴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지금처럼 그저 약간 놀라는 정도가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왜국에 대해서 저들의 압력의 강도가 더할 것입니다. 그러면
왜국은 자연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게 되면서 우리 조선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그 정도가 좋습니다."
"음... 그렇군요."
한상덕의 설명에 김종완은 이렇게 대답하고, 이번에는 김영훈이 김종완에게 묻는다.
"아가멤논과 뉴 아이언사이드의 개장작업(改裝作業)에 대한 준비도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이미 조선소의 책임자이신 최규철 제조(提調) 대감과 기술진들이 일차
승선하여 조사를 마쳤습니다. 다음 달부터 본격적인 개장작업에 들어가면 늦어도
내년 봄에는 모든 작업이 마무리 될 것입니다."
"함포는요? 함포는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함포는 신기도감 기기창의 기술자들이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풍백함에
장착했던 것과 같은 120mm 속사포로 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7인치 110파운드
주포를 개조하여 속사기능을 첨부하고, 풍백함과 같이 선수와 선미에 2문씩 장착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음... 만약 함수와 함미 2문씩 총 4문의 7인치 속사포로 개조한다면 연속사격(
連續射擊)에는 문제가 없겠습니까?"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엄청난 톤 수를 자랑하는 두 함이 그 정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지요."
김영훈이 이렇게 묻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미 진수하여 운용하고 있는 풍백함과 운사함에서는 회전식 포탑과 120mm
쌍열주포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1500톤급에 불과한 풍백함과 운사함에서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무장을 보유함으로써 공격력은 비약적으로 앞서갈 수 있었으나,
그에 따른 부작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연속사격이 힘들다는 것이다.
120mm 쌍열주포의 발사 시 발생하는 진동을 함체(艦體)가 견뎌내기가 힘들었다.
비록 주포 주변에 장갑을 두르고 리벳과 판 스프링, 그리고 주포에 장착된
주퇴복좌기(駐退復座機)로 충격을 흡수한다고는 하지만 연속사격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풍백함과 운사함에서는 순차사격밖에 할 수 없었다.
김영훈은 이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해군에 대해서 잘 모르는 김영훈은 김종완의 설명을 듣자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약간 머쓱해진 김영훈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아가멤논의 함장을 이원희 영감에게 맡겼다구요?"
"그렇사옵니다, 합하. 이원희 영감은 이미 풍백함을 지휘하면서 그 능력을 충분히
검증 받았으며, 조선수군 출신 해군사관들의 사기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사령관."
"죄송합니다, 합하. 합하께 미리 품신(稟申)을 했어야 할 일이거늘..."
"무슨 말씀을... 난 이미 해군에 관한 모든 전권을 사령관께 위임했습니다. 그만한
재량은 사령관이 행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 참! 최규철 제조 대감의 건의를
사령관도 알고 있습니까?"
"무슨..."
"잠수함 건조에 대한 건의 말입니다."
"아..."
남양조선소는 이미 3000톤급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선거가 두 개, 5000톤급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선거가 하나 완성되어 이제는 해주만의 제철소만 완공된다면
얼마든지 장갑함을 건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제철소도 늦어도 내년 여름이면
완공된다고 하니 조선해군에서 사용할 장갑함의 건조는 수월할 터였다.
김종완이 영미 연합함대를 무찌르기 위해서 시모노세키로 출정(出征) 했을 때,
남양조선소의 책임자인 최규철이 잠수함의 건조를 김영훈에게 건의하였다.
사실 최규철의 건의라기보다는 최규철의 부하직원인 이창훈의 건의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이창훈은 한국에서 대우조선 선박설계팀에서 근무하면서 209급 잠수함의
건조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는 조선분야의 전문가다. 이런 이창훈이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잠수함 건조의 필요성을 최규철에게 건의하였고, 최규철은 다시
김영훈에게 건의한 것이다.
최규철의 건의를 받은 김영훈은 관계기관에 그 건의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지시했고,
타당성 있는 건의라는 결과에 도달했다.
"사령관이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검토한 바로는 비용대 효과면에서는 충분히 타당성 있는 건의라고 생각하오만,
그리고 우리가 보유한 기술이면 21세기 수준의 잠수함은 불가능하더라도 2차 대전
당시 독일이 사용하던 U보트 정도는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고 하던데 사령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제가 함선이나 잠수함 건조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천군이 보유한
기술이나 지식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추진기관입니다. 석탄을 원료로
하는 증기추진기관이라면 잠항(潛航)시간의 한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디젤기관을 개발해야 하는데... 설사 디젤기관을 개발한다고 해서 그 연료인
경유나 중유를 구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김종완의 이런 우려는 당연했다.
잠수함을 만들기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지만 추진기관의 연료를 구하는 문제가
있었다.
증기추진기관이라면 석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연료수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대신 잠항시간이 극히 짧았다. 아무리 좋은 증기기관이라도 기껏 4시간에서 6시간
정도 밖에 잠항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김종완이 걱정하는 디젤엔진은 과연 21세기
한국에서조차 제대로 된 자동차용 디젤엔진 하나 못 만드는 실정에서 과연 선박용
디젤기관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설사 디젤기관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 연료를 어디서 구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러나 김종완이 몇 가지 간과한 사실도 있었는데, 먼저 선박용 엔진과 자동차용
엔진은 기술의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사실 자동차용 엔진은 자동차의 특성상 작고 가벼운 엔진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닌 정말 기술 집약적인 분야다.
반대로 선박용 엔진은 자동차용 엔진에 비해서는 훨씬 수월한 분야였는데 21세기
세계최고의 조선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에서 온 천군 기술자들에게는 선박용
디젤기관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디젤기관에 사용할 연료는 이미 지금 시대에도 나오기 시작했는데, 지금 세계
최고의 산유국인 미국에서는 여러 정유회사가 등화용(燈火用)으로 등유를 수출하고
있는데,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가솔린과 중유 같은 경우는 쓰임새가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괄시를 받고 있었다. 이 가솔린이나 중유를 왜국에서 수입하여 쓰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김영훈의 설명을 들은 김종완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김영훈은 계속해서 말한다.
"제가 보고를 받기로는 잠수함은 일반 선박을 건조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용도 훨씬 저렴하구요."
"비용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잠수함의 건조기간이 함선에 비해 짧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해주만의 제철소만 완공되면 우리 조선은 잠수함까지 생산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지금부터 천천히 만든다고 하면 내년이 가기 전에 제대로 된 잠수함이
나오겠죠..."
"그렇게되면 엄청난 전력이 될 겁니다. 합하."
"그렇지 않구요. 충분히 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김영훈은 잠시 말을 멈춘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다시 말한다.
"참, 이번에 나포한 아가멤논과 뉴 아이언사이드의 이름을 새로 명명(命名)
해야겠는데 무슨 좋은 이름이 있습니까?"
"아가멤논과 뉴 아이언사이드의 이름이라...?"
"사령관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어차피 개장작업이 완료되려면 시간이 있으니...
나는 해군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할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합하."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아가멤논과 뉴 아이언사이드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비록 해적질로 탈취한 함선이라 해도 이제는 당당히 조선해군의
주력함선으로 자리 매김 할 함선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