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86화 (186/318)

10.

죠슈번이 장악하고 있는 시모노세키(下關)는 왜국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 혼슈(本州)

의 가장 서쪽 끝에 있는 곳이다. 바다로 열려있는 시모노세키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시모노세키항은 막부 해군의 포격으로 그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막부의 2차 죠슈번 정벌이 시작되고 제일 먼저 포격을 받아 부서졌던

시모노세키항이었지만 어제의 포격으로 다시 한 번 파괴당해야 했다. 죠슈번의

해군은 전쟁 초기에 막부 해군에게 괴멸당했기 때문에 시모노세키 앞 바다에서 막부

해군을 몰아낼 수 없었다. 그저 막부군이 상륙하지 않는 것을 감사하게 여길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막부군이 드디어 시모노세키에 상륙했다. 엄밀히 말하면

막부를 돕기 위해 출병한 조선의 원군이었지만 어찌됐든 죠슈번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적군이었다. 사실 동양에서 해군이 제일 강한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왜국을 꼽을 수

있었다. 비록 재정이 열악해져 막부 제일의 증기선이었던 후지야마호와 화물선 한

척을 조선의 쥬신상사에 매각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왜국 해군은 막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1000톤에 육박하는 후지야마호와 동급의 군함도 세 척이나 있었고, 500톤이

넘는 군함도 상당했다. 양으로 따지자면 서양의 2류국 수준의 해군을 보유한 나라가

왜국이었다. 아니, 막부였다. 그런 막부에서 여태 시모노세키에 상륙하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약하디 약한 육군이 때문이었다. 해군이 동양에서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막강했지만 육군은 일개 번국을 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허약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달라졌다. 조선에서 온 원군이 시모노세키에 상륙해서 죠슈군을

양쪽에서 압박할 수 있었기 때문에 2차 죠슈번 정벌의 양상은 순식간에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선에서 출병한 제 1친위해병여단의 여단본부는 시모노세키항에 세워져 있었다.

아직까지 조선군이 사용할 탄약을 비롯한 보급품의 하역이 끝나지 않았기에 일단

시모노세키 외곽에 상륙교두보-시모노세키-를 방어할 외부방벽만 세워두었고,

시모노세키를 벗어나 본격적인 죠슈번 영역으로 진격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탄약을 비롯한 보급품의 하역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소이까?"

"이제 겨우 3할 정도의 보급품이 하역을 마친 상태이오이다. 여단장님."

"이런... 이런, 보급품의 하역이 이렇게 지연되고 있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오?"

"일단 보급품을 하역할 인부가 태부족이라 하더이다. 여단장님. 보급품의 하역은

순전히 막부에서 담당하겠다고 했는데, 막부에서는 시모노세키에 사는 왜인들을

동원할 생각이었다고 하더이다. 그런데 어제 막부 해군이 시모노세키를 다시

포격하고 우리가 상륙하자 시모노세키에 살고 있던 왜인들 상당수가 피난을 갔다고

하더이다. 이런 상태에서 막부의 군사들과 관리들이 시모노세키 곳곳을 뒤져

왜인들을 동원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의치 않은 모양이오이다."

"에잉... 그럼 언제쯤이나 모든 보급품의 하역이 이뤄질 수 있겠는가?"

"일단 막부 군함에 타고 있던 모든 승무원들을 동원하여 하역에 투입하고는 있지만,

빨라야 내일, 늦으면 모레까지는 하역을 해야할 것으로 생각되오이다. 여단장님."

군수참모의 대답에 양헌수는 짜증이 솟았다. 비교적 손쉽게 시모노세키에 상륙했지만

보급품의 하역이 늦어지고 있는 관계로 부대의 전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일단 여단의 예하 부대 모두를 시모노세키의 요소 요소에 주둔시켰지만,

양헌수의 마음에 드는 부대 배치는 아니었다. 군수참모에게 짜증을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지만 보급품의 하역작업이 끝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죠슈번의 육군이 지금쯤은 조선군의 시모노세키 상륙을

알아차렸을 것이고, 언제 시모노세키를 탈환하기 위해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보급품의 하역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은 어느 모로 보나 양헌수의 짜증을 부채질할 만

했다.

"어 대령."

"예, 여단장님."

"지금 상륙교두보의 외부방벽을 담당하고 있는 부대가 어 대령의 대대라고 했소?"

"그러하오이다, 여단장님."

"음... 그럼 외부방벽을 넘어서 정찰활동을 하는 부대는 아직 없소?"

"아니오이다. 여단장님. 1개 소대를 보내 정찰하라고 지시하고 오는 길이오이다."

"그렇소? 잘했소. 그리고 외부방벽에 대한 경계도 잘해야 할 것이오이다."

"알겠사오이다. 여단장님."

"... 음... 작전참모는 각 대대에 명령을 내려 오늘밤 야간경계에 만전을 기하라고

하게나. 경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 법이니까. 특히 야간경계는... 담당

구역에 대한 순찰활동도 철저히 하도록 각 대대에 지시하는 것도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여단장님."

지난 9월 강화도를 침공한 법국 군대를 물리친 공로로 친위천군 강화도연대는 제

1친위해병여단으로 승격 개편됐고, 해병여단의 모든 군관과 군사들이 일 계급씩

특진했다. 작전참모 강혁수도 이제는 특진하여 중령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춥다고 해도 야간에 함부로 불을 피우는 일이 없게끔 지시하도록.

이왕이면 불을 피우지 않는 것이 화재를 예방하는 첩경이지만 불을 피우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가급적이면 정해진 장소 이외에는 불을 함부로 피우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야..."

"알겠습니다. 여단장님."

시모노세키가 제주도와 비슷한 위도 상에 위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바닷가라서

그런지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도 상당히 쌀쌀했다. 어느새 계절은 겨울로

접어들었으니, 이제 병인년(丙寅秊 1866년)이 저물 날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지금이 벌써 12월에 접어든 한 겨울이고, 그래서 추운 겨울 날씨에 군사들이 불을

피워 자칫 화재라도 일어나는 경우에는 왜국에 출병하여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하지

못하고 그대로 조선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또한 죠슈번의

잔당들이 화공(火攻)으로 공격해올 수도 있었고, 그럴 경우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닐

것이다. 왜국의 가옥이라는 것이 조선과 마찬가지로 모두 나무로 지어진 목재

가옥이라는 점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조선의

가옥들도 목재로 지어졌지만 그래도 지붕이나 벽, 구들을 놓을 때 흙을 많이

사용하였으니, 왜국의 순수 목재가옥보다는 그런 점에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불을 피우지 않으면 상당히 추울 것이지만 이미 월동장구를 조선에서부터 챙겨왔고,

여단의 모든 군사들에게 지급된 상태였기에 크게 춥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작전참모."

"예. 여단장님."

"저들 죠슈군의 주력이 언제쯤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나?"

"지금 죠슈군의 주력은 히로시마(廣島)에서 막부군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고 하니, 우리 여단이 시모노세키에 상륙한 것을 아는 순간 회군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근거지인 야마구치(山口)가 지척인데, 야마구치를 포기할 수는

없겠지요. 저들이 회군하여 이곳 시모노세키까지 오려면 적어도 이틀에서 사흘은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틀에서 사흘이라... "

"그런데 앞으로의 작전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우리 원정군은 이곳 시모노세키에서 적의 주력을 기다릴 것이네. 겨울철인

지금 힘들게 군사들을 움직일 필요가 없지. 그리고 죠슈군의 주력을 무찌르고 난

후에는 더 이상 이번 전쟁에 개입하지 말라는 합동참모본부의 지시가 있었네. 그저

막부와 죠슈군이 알아서 싸우게 하라는 지시야. 내 생각도 합참과 다르지 않고."

김영훈이 지휘하는 합동참모본부에서는 해병여단을 왜국에 출병시키는 것으로 이번

전쟁에서의 개입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다른 나라의 일에 깊숙이 개입하는 일도

별로 모양새가 좋을 게 없으며, 그런 일로 조선의 군사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원치

않는 것도 이유의 하나였다. 어차피 죠슈군은 그 한계에 직면해 있었다. 해군의 도움

없이 오사카까지 진격할 수 없었고, 히로시마 인근에서 막부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진격이 멈춘 상태에서 쥬신상사에서 구입한 조선제 양식보총의 총탄도 거의

떨어져가고 있었다. 사실 막부에서는 조선이 죠슈번에 판매한 정확한 양식보총의

수와 총탄의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쥬신상사에서 죠슈번에 판매한

양식보총은 1만 정에 불과했고, 총탄도 200만 발에 불과했다. 일인당 200발 정도밖에

돌아갈 수 없는 총탄을 가지고 오랜 기간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죠슈번에서도 애초에 전쟁이 이렇게 장기화할 줄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고, 또,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난 이후에 양식보총의 총탄을 다시 구입하려는 생각을

했지만 막부 해군에 의해 바다길이 막힌 후로는 구입하고 싶어도 구입할 방법이

없었다. 만일 죠슈군의 이러한 사정을 막부에서 알아차렸다면 조선군의 출병을

요청할 일도 없었겠지만 불행히도 막부에서는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다. 하여,

초반의 열세를 만회하고자 허둥댄 나머지 조선군의 출병을 요청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고, 결국 북해도와 대마도, 유구를 영구 할양하기에 이른 것이다. 합참에서는

죠슈군의 주력을 한 번 정도 무찌르고 나머지는 막부에서 알아서 하게 하라는

내부방침을 정해놓고 있었다. 어차피 조선군이 따로 힘을 쓰지 않아도 죠슈군은

무너지게 되어있었다. 구식 전장식 소총을 보유한 나머지 죠슈군은 막부에서 알아서

하도록 맡길 생각이었다.

"여단장님."

"말하시오, 어 대령."

"여단장님의 뜻은 알겠사오나, 막부에서 우리 계획을 받아들이겠소이까?"

"어 대령이 우려하는 바를 내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일단 우리 여단에서 죠슈군의

주력을 무찌른 연후에는 저들 막부군이 알아서 승전의 영광을 차지하려는 욕심을

부리게 될 것이오. 주력이 무너진 마당에 그 뒤처리까지 우리 여단에게 맡겨 승전의

영광을 넘기려고 할 것 같소? 내가 볼 때는 우리의 이런 계획을 저들이 더 반길 것

같소만..."

"그럼, 죠슈군이 히로시마 전선에서 회군하지 않는다면 어찌합니까? 여단장님."

마군대대장 최현필 중령의 말에 양헌수는 별 걱정을 다한다는 표정이었다. 원래

강화도연대는 마군대대가 없는 순수 보병연대였다. 그러나 해병여단으로 승격

개편되고, 또 이렇게 왜국으로 조선 최초의 해외 출병을 하기로 결정되고 나서

친위천군의 1개 마군대대가 편입되었다. 마군대대장 최현필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령이었으나, 러시아로 잠입하여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온 공이 인정되어

이제는 중령으로 승진한 상태였다. 최현필은 왜국으로 출병하여 막부군을 돕는다는

것이 별로 탐탁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애 첫 전투를 치른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한 상태였다.

"하하하... 최 중령은 그것이 걱정이었던 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걸세. 죠슈군이 자신들의 근거지인 야마구치를 포기할 일은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없을 것이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면 그때 우리

여단이 진격하여 야마구치를 점령하고 그리고 막부군과 연합하여 죠슈군을 협공하면

될 걸세."

"그렇군요..."

어차피 시모노세키에 조선군이 상륙한 이상 죠슈군이 선택할 길은 몇 가지에

불과했다. 하나는 히로시마 전선에서 회군하여 조선군을 격파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막부와 강화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야마구치를 포기하고 히로시마 전선에 전력을

기울여 히로시마 전선을 강행 돌파하여 오사카까지 단숨에 밀고 들어가 막부군의

항복 내지는 강화를 끌어내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히로시마 전선에서 회군한

죠슈군이 야마구치로 돌아와 그곳에서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는 것인데, 그것은

전쟁의 주도권을 막부군이나 조선군에게 넘기는 것과 마찬가지의 선택이었다. 결국

죠슈군이 선택할 길은 첫 번 째 아니면 두 번째인데, 양헌수는 죠슈군이 첫 번째를

선택할 가능성에 무게를 더 두고 있었다. 그리고 막부에서도 이미 배수의 진을 친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었다. 조선군을 끌어들이는 조건으로 상당한 영토를 할양한

상태였는데 지난 번 1차 죠슈번 정벌과 같이 섣불리 강화를 하여 화를 자초할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하든 죠슈번을 지도에서 사라지게 만들 심산이었다.

"최 중령."

"말씀하십시오. 여단장님."

"군마(軍馬)의 관리도 각별히 신경 써야할 걸세. 특히 지금 같은 겨울철에 건초의

조달이 어려울 때일수록 특별한 관리가 필요할 것이야."

"알고있습니다. 여단장님. 저희 마군대대(馬軍大隊)의 군마는 일단 피난을 가서

비어있는 왜인의 가옥에 임시로 수용하고 있고, 군마에게 먹일 건초는 막부의

연락관이 조달한다고 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듣기로는

큐슈지역에서 건초를 운반해온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쪽 지역이 여기보다 훨씬

따뜻한 관계로 건초의 조달도 어렵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헌데, 최 중령은 항상 그렇게 무기를 휴대하고 다니는가? 불편하지는 않는가?"

"아닙니다. 여단장님. 이제 습관이 들어 잘 때도 품고 자야 잠이 오는 지경입니다."

"호-오, 그으래..."

"그렇습니다. 여단장님."

여단본부에서 이렇게 회의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최현필은 자신의 무기를 항상

휴대하고 다녔다. 일반적으로 지휘관이나 참모들이 회의석상에서는 개인화기를 잘

휴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현필은 자신의 마군대대 두 가지 제식 무기를

언제 어느 때든 항상 휴대하고 다닐 것을 군사들에게 강조하고 있었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대대장이었다. 마군대대의 제식 무기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조선군의

제식 소총인 한식보총이고, 또 하나는 근접전에 대비한 권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마군대대만의 제식 무기였다. 바로 편곤(鞭棍)이었다. 편곤 중에서도 마편곤(

馬鞭棍)이었다.

일반적으로 마군대대-기병대-는 창이나 검을 근접전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으나,

조선군은 검이나 창도 사용했지만 마편곤을 더 많이 사용했다. 처음 최현필이

마군으로 지원하고 나서 걱정한 것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말을 탄다는 것과

하나는 검이나 창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말을 타는 것이야 어떻게든 배우면

되지만 솔직히 검이나 창을 다루는 것은 자신이 없던 최현필이었다. 대한민국 최정예

부대인 특전사 출신이라고 하지만 그것만큼은 자신 없었다. 자신의 필생의 꿈인

전차부대의 지휘관이나 마찬가지인 마군대대장이라는 지휘를 한 때 포기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검술과 창술에 대한 자신감이 없던 최현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현필은 조선 마군의 무기는 서양의 기병대처럼 검이나 창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조선의 마군은 서양의 검기병(劍騎兵)이나 창기병(槍騎兵)처럼 검이나 창만

사용하는 기병대가 아닌, 검이나 창도 사용하지만 마편곤이라는 특이한 무기를 더

많이 사용하는 마군이었다. 최현필이 비록 특전사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창이나 검을

다루는데는 일반 조선군보다도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수련한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검이나 창의 실력이 몸에 배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마편곤이었다. 마편곤은 특별한 기술의 연마없이도

사용법을 익힐 수 있었다. 그저 있는 힘껏 휘두르기만 하면 되는 무기가 바로

마편곤이다. 그런 간단하고 무식한 이유 때문에 선택하게된 마편곤이었지만 이제는

마편곤을 선택한 것에 한 점의 후회가 없었다. 후회는커녕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자신이 지휘하는 마군대대의 모든 군사들도 이제는 대대장을 따라

마편곤을 사용하고 있었다. 본래는 검이나 창을 사용하던 군사들도 마편곤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마편곤의 성능과 위력에 만족하고 있었다.

마편곤은 원래가 조선 전통 무기가 아닌 외래 무기였다. 편곤은 원래 서융(西戎)이

사용하던 것인데 한나라 시대에 중국으로 전해졌고 조선에는 임진왜란 때 명군(明軍)

을 통하여 철편(鐵鞭)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 임진왜란 때 명군에 속해있던 달자(

子) 기병들이 이 편곤으로 왜군 보병 수천 명을 무찌르자 조선의 조정에서는 즉시

전화를 덜 입은 전라도 지방에서 이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편곤은 농부의 도리깨와

같은 구조이므로 농민 출신들의 병사들이 쉽게 그 사용법을 익힐 수 있었으며 특히

이런 종류의 타격 병기는 투구를 착용한 적에게도 효과적인 무기였다. 이익(李瀷)이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조총이 등장하니 궁노(弓弩)가 무용지물이 되고

도리깨[枷]가 등장하니 칼이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하였을 정도로 조선 후기에는

편곤이 중요한 무기로 자리를 잡았다.(*2)

편곤은 보군(步軍)이 사용하는 보편곤과 마군이 사용하는 마편곤으로 나뉘는데,

마편곤은 편(鞭)의 길이가 6척 5촌이고 자편(子鞭)은 1척 6촌이다. 모두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 황유(黃油)를 바르고 붉게 칠하며 그 끝에는 철수(鐵首)를 달고 이를

쇠고리로 연결한다. 상상을 해 보라. 키가 185Cm에 이르는 거한이 떡하니 말 위에

버티고 앉아 길이가 190Cm 넘고, 그 끝에 50Cm에 이르는 쇠도리깨를 휘두르는 모습을.

아마도 왜소한 왜인들이 그 모습을 본다면 당장 오줌을 지르고 말 것이다. 자신의

이런 모습을 상상만 해도 신이 나는 최현필이었으니, 항상 끼고 살밖에... 이런

상상을 할 때면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것처럼 기분이 황홀해지고, 섹스를 할 때와는

또 다른 황홀경에 도취되는 최현필이었다. 그러나, 그런 상상은 양헌수의 다음 말에

깨지고 만다.

"그런데 막부의 왜인들이 놀라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으이."

"놀라다니 무엇에 말이오이까?"

"우리 여단의 군사들을 보고 말이야, 이렇게 현대화된 군사들일 줄 저들이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일세."

"아... 저들도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상당히 놀란 눈치더이다. 특히 우리

군사들의 무기나 군장을 보고는 생판 처음 보는 것들이라 신기해하더이다."

"아마 그럴 것이야. 신기도감에서 있었던 무기시연회에서 우리가 쓰는 무기들을 처음

본 나도 놀랬는데, 저들이라고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요. 만일 우리가 죠슈번 군사들과 전투하는 장면을 보게되면 기겁을 할

것이오이다."

"그럴 것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우리가 보유한 무기나 장비 등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곤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할 것이야. 아니 그런가?"

"알겠사오이다. 여단장님."

"알겠습니다. 여단장님."

모든 참모들이 이렇게 대답을 하자 양헌수는 보급품의 하역이 지체된 시름이

다소나마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일반 왜인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모든 군사들에게 확실히 주지를

시켜야 할 것이야. 우리 여단이 일반 왜국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면 아무리

우리가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그 원정은 아니함만 못한 결과가 올 수 있으니.

모든 지휘관들은 이 점을 각별히 명심하여 군사들을 철저히 지휘 감독해 주시오.

모두들 아시겠소?"

"명심하겠사오이다. 여단장님."

"알겠습니다. 여단장님."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으니, 모두들 각자 맡은 바 직분에 충실히

임해주기 바라오. 그리고 작전참모는 우리 여단의 작전 계획을 막부에서 파견 나온

연락관에게 알리도록 하고, 통신군관은 우리 여단이 시모노세키에 무사히 상륙했다는

암호전문을 합참에 보내도록 하게나."

"알겠습니다. 여단장님."

"알겠사오이다. 여단장님."

"알겠습니다. 여단장님."

"충-성!"

"충성."

*이 글의 저작권은 작가 yskevin에게 있으며, 아울러 글에서 오탈자 및 오류, 또는

의견, 건의를 보내실 분들은 리플이나 감상, 비평란 또는 작가의 개인 전자우편

[email protected]이나 [email protected]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채택되신 의견이나 건의는 작가가 판단하여 글의 진행에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1)녹로는 토목이나 건축공사에서 활차(滑車-도르래)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데 쓰이던 기구의 일종으로 조선 후기에 성을 쌓거나 큰 집을 지을 때

사용하였다.

1796년(정조 20) 수원성곽을 쌓을 때에는 두 틀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의하면 틀의 크기는 세로 15자, 높이 10자이고

간목의 길이는 35자로, 8명이 둘로 나뉘어 얼레를 좌우에서 돌려 물건을 올리고, 줄

갈고리로 끌어서 원하는 자리에 옮긴 다음 다시 얼레를 늦추어 물건을 내리도록

한다고 하였다. 그 뒤 1803년(순조 3) 창덕궁 인정전(仁政殿) 재건공사 때 녹로를

활용하였다.

http://www.townzine.com/suwon/news/our/our/sung/ex_03.htm 이 곳으로 가보면

녹로의 그림을 볼 수 있다.

(*2)흔히들 조선의 마군(馬軍)이 검기병이나 창기병인 줄로 생각하기 쉬우나 조선

후기의 기병은 검기병이나 창기병이 아닌 편곤마곤(鞭棍馬軍)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위에 인용한 내용은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편곤(鞭棍) 편에 수록된 내용이다.

http://www.swords.pe.kr/docs/tongjiweapon/tongji.htm 이곳에 가면 자세히 살필 수

있다.

주인장이신 孤竹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__)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88 높은 산 깊은 골...5

케빈입니다. (__) 새해 복 많이 받으셨습니까?

지난 설 연휴에 저도 모처럼 푹 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은 내일 조판에

들어가면 모레나 글피 정도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배본은 알맞은 시기를

선택해서 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많은 독자 대감들께서 감상평을 보내주셨는데

아직까지 제가 답신을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일단 증정본에 대한 감상평 이벤트는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제가 책을 받아보려면 시간이 좀 더 있어야 하니

그때까지 이벤트는 계속하겠습니다. 여러 독자 대감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한 가지 수정된 사항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여러 번에 걸쳐서 청국과의 사대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언급을 했었는데,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조선이 크기 위해서는 최소

몇 년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냥 기존의 청국과 조선과의 관계로

이어나가는 걸로 수정하겠습니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불만이 있는 독자

대감들도 계시겠지만 어디까지나 글의 진행과 설정은 작가의 고유권한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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