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95화 (195/318)

19.

"선장님! 또 쐈습니다.!"

[씨우웅! 씨우우웅!]

[펑! 퍼벙! 쏴아아아! 쑤아아!]

이번에는 제법 가까운 거리에 착탄한 포탄은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어내며 터졌다.

플라잉 클라우드호의 선장 아가일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창백하게 변했다. 쥬신호의

속도가 만만치 않게 나는 것 같더니 다시 포를 쏜 것이다. 더구나 대략 3인치 정도로

추정되는 쥬신호의 선미 주포는 어떤 폭약을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폭발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포를 쏠 때에 하얀 연기도 나지 않는 것이 이상했지만 지금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빨리 저들에게 근접해서 각각의 현측에 장착되어 있는

18문씩의 20파운드 주포로 불벼락을 퍼부어 주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렇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았고, 또한 나중에 무슨 문제가 발생할지 몰랐기에 지금 아가일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돌격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들이 무슨 폭약을 사용하는지는 몰라도 그 위력이 상당합니다. 선장님."

"나도 봤다네. 자칫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겠는걸......"

타륜(舵輪)을 붙잡고 있는 일등항해사 제이슨 커닝햄(Jason Cunningham)도 불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거의 돛대 높이만큼 치솟은 물기둥은 그대로 돌진하는 플라잉

클라우드호에 물벼락을 뿌렸다. 그리고 쥬신호의 주포에서 발사되는 포탄은 거의

아무런 연기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포탄이 발사되는 순간도 관측하기 힘들었다. 만일

마스트에 올라가 있는 견시수가 천리경으로 관측하여 알려주지 않았다면 포탄이

발사된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니,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 커닝햄이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 커닝햄은 사실

아가일 선장의 이런 해적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뉴욕 토박이 출신의 아가일

선장은 뉴욕항을 통해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갈취하거나 이민자들을 북부의 공장에

팔아치우는 인신매매를 하는 뉴욕의 폭력조직과 연계되어 있었고, 그렇게 끌려가거나

팔려 가는 이민자들은 주로 아일랜드계(係)가 많았다. 커닝햄 자신도 아가일과

연계된 뉴욕의 폭력조직에 의해 플라잉 클라우드호에 강제로 끌려오게 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고향인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대기근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머나먼 미국으로 이민 온 커닝햄도, 그렇게 참담한 경우를 당하여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아가일의 밑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아일랜드에서부터

배를 탔던 경험이 있었기에 아가일이 선주 겸 선장으로 있는 플라잉 클라우드호의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생활을

하면서 이제는 일등항해사의 자리에까지 올라 어느 정도 아가일의 신임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온갖 나쁜 짓을 도맡아 하는 아가일의 행태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를

증오하는 마음이 식은 것도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청국인을

파멸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것과 같은 아편 밀매를 하는 것도 나쁜 일 일진데, 한

술 더 떠서 멀쩡한 남의 배를 약탈하는 해적질까지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아가일의

이런 행위는 커닝햄의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가일의

행동에 반기를 들 수도 없었기에 커닝햄은 그저 속만 끓일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적어도 1500야드까지는 접근을 해야하는데......"

"1500야드까지 접근해도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

"우리 배의 주포는 모두 현측에 장착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포를 발사하기

위해 뱃머리를 돌리면 저들은 다시 도망칠 것이고......"

"이런!"

커닝햄의 말이 떨어지자 아가일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져 갔다. 해적질을 비롯한 온갖

나쁜 짓에 이골이 난 아가일도 그 점을 깜빡하고 있었다. 플라잉 클라우드호의 모든

주포는 현측에 장착되어 있었기에 주포를 발사하기 위해서는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뱃머리를 돌려야만 발사가 가능했다. 그것은 플라잉 클라우드호가 주포를 발사하기

위해 뱃머리를 돌리는 사이에 쥬신호는 또 다시 일정 거리를 도망칠 수 있다는

얘기가 되었으니 적어도 1000야드까지는 접근한 연후에 뱃머리를 돌려도 돌려야 어느

정도의 사격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칫하면 쥬신호에 포 한 방

쏴보지 못하고 이쪽이 당할 수도 있었다. 커닝햄은 이쯤해서 아가일이 포기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소리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가일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아가일이 마음을 돌릴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해적질을 하려는 마음을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커닝햄의 말이 떨어지자 아가일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져 갔다. 그러나 예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9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거금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데 그걸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최소한 아가일만은 그런 생각에서 헤어나올 줄 몰랐다.

"저들이 속도를 약간 늦춘 것 같습니다."

아가일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쥬신상사의 쥬신호는 20노트의

속도를 자랑하는 클리퍼선 플라잉 클라우드호의 속도를 무색하게 할 만큼 빠른

속도로 내빼더니 이제는 다시 속도를 늦추었다니 언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런 의구심이 경악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했다.

"또 발사했습니다!"

[씨우웅! 쓔웅! 쓩! 씨우웅!]

[퍼엉! 퍼벙! 퍼버엉! 꽈아앙!]

[우찌끈! 쿠궁!]

"피해라! 으악! 크악!"

약간 속도를 늦춘 이유가 궁금하던 아가일은 주신호의 선미에서 다시 네 발의 포탄이

날아오자 단숨에 그런 궁금증이 풀려버렸다. 쥬신호는 사격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부러 속도를 늦췄던 것이다. 그리고 아까는 단 두 발의 포탄을 발사하던

쥬신호는 이번에는 네 발의 포탄을 발사하였고, 그 중 한 발의 포탄이 플라잉

클라우드호의 첫 번째 돛대를 그대로 맞춰 부러뜨려 버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일부

선원들이 쓰러지는 돛대에 깔려 돌팍에 패대기쳐진 개구리 마냥 그대로 배가 터지며

뼈가 부서지며 아작 나버렸으며, 그렇게 쓰러진 돛대는 갑판을 때리고 엄청남 굉음과

함께 뿌연 먼지를 뿜어내며 배 안을 삽시간에 뒤덮었고, 그렇게 뿜어진 먼지는

플라잉 클라우드호를 안개 속에 휩싸인 뉴욕항처럼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돛대가

부러져 무너지면서 갑판에 위치한 타륜을 그대로 뭉개 버렸다. 다행히 타륜을 쥐고

있던 커닝햄과 커닝햄의 옆에 있던 아가일은 용케 피하기는 했지만 갑판에 그대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쥬신호의

다음 공격이 계속해서 그들을 노리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