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마상(馬上)에 있는 후쿠다 교헤이의 안색은 새벽부터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실패했다. 똥을 누지 못한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오늘은 분위기도
좋았고, 성공할 자신이 있었는데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새벽부터 출진 준비에
박차를 가하느라 정작 느긋하게 앉아 있을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만일
시간만 좀 더 주어졌다면 며칠을 못 보던 똥을 일거에 밀어내어 엄청난 배설의
쾌감에 몸부림 쳤을 것인데, 그 잠시의 시간이 항상 문제였다. 더군다나 이번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는 제대로 된 쾌변을 본 것이 언제인지 싶을 정도로 변비가 더욱
심해졌다. 이렇게 교헤이가 변비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부장(部將) 이토 슌스케였다.
"장군! 출진 준비 완료됐습니다."
"그래. 출발시키도록."
"알겠습니다. 전군(全軍) 출진하라!"
이토는 우렁찬 목소리로 전군을 독려하여 출진을 명했다. 무운장구(武運長久)
충군애국(忠君愛國) 진충보국(盡忠報國) 멸사봉공(滅私奉公) 등등의 장엄한 문구가
아로새겨진 커다란 깃발을 든 군사들이 앞장을 섰고, 그 뒤로는 죠슈번을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져 있는 깃발과 교헤이 가문의 깃발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교헤이를
필두로 1만에 이르는 선봉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뒤를 따랐다. 일부 무사들만이
말을 타고 있을 뿐 대부분이 보군이었다. 그리고 행렬의 중간에는 50문에 이르는
대포가 포함되어 있었다. 장엄한 행렬이었다. 비록 막부군의 정벌로 인해 급조된
군사들이었지만 가슴 뿌듯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선봉장인 교헤이의
찌푸려진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제기랄... 그놈의 변비만 아니었어도 한껏 멋을
부릴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아쉬워하고 있는 교헤이에게 이토가 다시
다가왔다.
"장군. 이제 히사노강(久野江) 계곡의 초입입니다. 척후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척후라...?"
"그렇습니다."
이토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던 교헤이는 뒤를 한 번 돌아봤다. 자신이 이끄는
1만 선봉군의 뒤로는 군타로가 지휘하는 1만 중군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 뒤로는
야마가타 군감의 2만이 넘는 대군이 있었다. 자신이 여기서 척후를 보내며
머뭇거린다면 야마가타는 물론이고 군타로까지 자신을 우습게 볼지도 몰랐다. 그리고,
설마 하는 생각이 교헤이의 머리 속에는 바리잡고 있었다. 지난 분로쿠(文祿)
게이초(慶長) 시대의 형편없었던 조선군이 달라졌으면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만심(
慢心)도 작용하였다. 비록 저들의 기술이 뛰어나 양식보총이라는 훌륭한 무기를
만들어 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기술이 뛰어나다고 군사력까지 뛰어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교헤이는 한순간 이토의 말처럼 척후를 보낼까 하는 생각도 하였으나, 이내 그
생각을 거두었다.
"아니다. 그냥 간다."
"... 예, 알겠습니다."
이토는 교헤이의 명령에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닫고 말았다. 이제 겨우
스물 다섯의 새파란 자신이 선봉장의 명령에 토를 달고 나서기에는 주제 넘는
짓이라는 생각이었다.
시모노세키 북쪽으로 통하는 히사노강 계곡의 초입에 접어들자 주변이
어두컴컴해졌다. 물론 아직 해가 완전히 떠서 온 세상을 밝게 비추기 전이었기에
주변이 어두운 것은 당연했으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어둠이었다. 뭐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을씨년스러운 그런 어둠이었다. 계곡 입구를 들어와
대략 10리 조금 넘게 들어왔을까? 교헤이는 이토를 불러 대포를 방열할 것을
지시했다. 앞에는 조선군이 구축한 것으로 보이는 방어선이 있었다. 일단 저
방어선에 철환(鐵丸) 맛을 보여준 후에 돌격을 해도 해야할 것이었기에 교헤이의
입에서는 신경질 섞인 호통이 튀어 나왔다. 아무래도 변비의 고통이 그를
신경질적으로 만든 것 같았다.
"뭣들 하느냐! 어서 서둘러라!"
이렇게 교헤이가 호통을 치면서 대포를 방열할 것을 지시하고 군사들이 말이 끌고
오는 대포를 차례로 방열하는 순간 재앙이 들이닥쳤다.
[빵! 빠바방! 빵! 빵! 빠방! 빵! 빵! 빠바방! 빵! 빵!]
[땅따다다다다다따당! 땅따다다다다다다당! 땅따따다다다다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총탄이 비 오듯이 쏟아졌고 그 빗발치는 총탄 세례에 단발마적인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군사들이 속출했다. 특히 대포를 조작하거나 운반하던
군사들에게 총탄 세례는 예외 없이 쏟아졌다.
"적이다! 피해라!"
"으악! 크악! 아악! 허억!"
처음 들어보는 총탄의 발사음에 정신이 번쩍 든 교헤이는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려고
시도를 했지만 이번에는 말이 광란을 일으켰다. 두 발을 하늘 높이 쳐 올린 말은
히히힝 하는 울음을 내지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교헤이는 필사적으로 말을
안정시키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총탄은 계속해서 그의
부하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빵! 빠방! 빠바방! 빵! 빠방! 빠바방! 빵! 빵!]
[땅따다다당! 땅따다다다다당당! 땅따다다다다다땅!]
[으악! 크악! 컥! 크억! 살려줘!]
[피요옹! 피요옹! 피요옹! 피요옹! 피요옹!]
군사들의 비명소리는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전혀 새로운 소리가-마치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증폭시켜 놓은 것 같은 소리가- 교헤이의 귀를 찢을 듯이
때리고 지나갔다. 후미에 따라오던 군타로의 중군과 야마가타의 본진 사이를 노린
포탄은 야마가타의 본진 선두 부분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떨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쏟아진 포탄 더미가 순식간에 삼백 자(尺)에 가까운 넓은 땅을
초토화시키며, 그 안에 운집해 있던 수많은 생령(生靈)들을 피 떡으로 만드는 광경은
교헤이의 얼굴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쓰러지고,
깨지고, 팔이 잘려나가고, 다리가 피 떡이 된 채로 널브러진 군사들 중에서 살아남은
군사들이 울부짖으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애절한 목소리로,
쥐어 짜낼 수 있는 가장 애절한 목소리로 살려달라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아비규환(阿鼻叫喚)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맙소사! 오! 부처님..."
그러나 조선군은 교헤이가 그렇게 넋이 나가 있을 정도의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귀를
찢을 것 같은 알 수 없는 포격음이 들리는 가 싶더니 이번에는 전방의 조선군
방어선에서 엄청난 총탄 세례와 알 수 없는 소구경 총포탄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빵! 빵! 빠바방! 빵! 빠방! 빵! 빠방! 빠바방!]
[땅따따따당다다다다당! 땅따다다다다다당! 땅따다다당!]
[퉁! 퉁! 투둥! 퉁! 투두둥! 퉁! 퉁! 투둥! 투둥! 퉁! 퉁! 투둥! 투두둥!]
[크억! 카악! 크아악! 으아! 아악!]
교헤이의 선봉 1만과 군타로의 중군 1만 군사들은 별다른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쓰러져가고 있었다. 간간이 총탄을 날리는 군사들도 보였지만 그런
군사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야 간신히 한 둘 보일 정도였고, 총탄을 한 발 날린
후에는 어김없이 피 떡이 되어 한 많은 인생의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계곡 양쪽에
매복해 있던 조선군이 총탄이 그들을 노리고 날아온 것이다. 삼면(三面)에서
날아오는 총탄과 포탄의 세례에 죠슈군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교헤이는 조선군 방어선에서 일제사격을 하는 것과 동시에 뜨거운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꿰뚫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총탄이 꿰뚫고 지나갔으리라
여겨지는 복부 한 복판에는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자신의 입에서
울컥하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선지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변비로
고생하던 선봉장 교헤이가 그 마지막 의식의 끈을 놓으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퇴하라! 후퇴하라!"
아직까지 살아남은 부장 이토가 외치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토의 외침과는 달리
죠슈군 선봉과 중군에 속한 군사들은 달리 후퇴할만한 곳이 없었다. 중군과 본진
사이에 비 오듯 포탄이 쏟아지고 있었기에 후퇴할 길이 없었다. 본진에 속한
군사들만이 엄청난 포화에 겁을 먹고 후퇴를 할 수 있었을 뿐 2만이 넘는 선봉과
중군, 그리고 일부 본진에 속한 군사들은 이렇게 고립되어 죽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