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27화 (227/318)

8.

희정당에 다시 자리를 잡은 중신들의 얼굴에는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다. 시원한

콩국수에다 시원한 생과일 쥬스까지 곁들인 점심은, 우중충한 날씨와 짜증나는

회의로 지쳐가던 중신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오전에

있었던 회의가 주로 경제분야에 대한 보고와 점검이라고 할 수 있다면, 오후에

이어진 회의는 사회와 군사분야의 발전에 대한 보고와 점검을 위한 회의였다.

먼저, 내무부와 법무부, 상공부와 농림부, 보위부와 해양부, 법무부와 외무부의

보고가 있었다. 내무부에서는 조선 팔도의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대책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새롭게 내무대신으로 임명된 전 국방대신 김병국은, 보고를 통해

천군이 등장한 이래 꾸준히 시행해오고 있는 보위부의 '백성들의 보건 위생에 관한

안내문'과 매년 시행하고 있는 예방 접종, 그리고 조선 팔도의 각 감영이 있는

지방도시에 세워진 근대적 개념의 보건소와 의료기관의 신설 덕분에 조선의 인구가

폭발적인 증가세에 있다는 보고를 하였다. 내무대신 김병국은 현재 조선의

인구증가율은 매년 3.5%를 상회하는 수준이었고, 이러한 증가세로 볼 때 제 2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이 완료될 시점에는 10%대의 인구증가율을 기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았다. 사실 그동안 조선의 인구가 1천만에서 1천

5백만 사이를 오락가락했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크게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역병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였다. 한번 역병이 몰아닥치면 적게는 몇

천명에서 많게는 몇 백만명까지 목숨을 잃어야 했으니, 아무리 애를 많이 낳더라도

쉽사리 인구가 늘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보위부에서 실시하는

보건 위생에 대한 홍보와 계몽, 그리고 전염병에 대한 예방 접종이 꾸준히

시행되면서, 이제는 조선 땅에 전염병이라는 것이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그것은 바로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로 이어졌다. 더불어서 조정에서 인구

증가를 위하여 정책적으로 다산(多産)을 권장하고, 건교부에서 시행하는 상하수도의

보급이 조금씩이나마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2천만에 근접한 인구를 보유할 수 있었다.

법무대신 이세보는 그동안 준비했던 헌법(憲法)에 대한 재정과 근대적 개념의

사법체계의 조성에 대한 보고를 하였다. 김영훈과 천군이 도래한 이후, 전임

법무대신이었던 조두순의 주도로 대전회통(大典會通)의 편찬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근대적 의미의 헌법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없잖아 있었다. 그리고

기존 조선의 사법제도라는 것이 약간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지방 관헌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것을, 이제는 전문적인 사법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사법제도로의 개편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이르렀고, 그에 따른 준비를

법무부에서는 하고 있었다. 이세보의 보고를 받은 김영훈은 신 헌법의 재정과 공포,

새로운 사법제도에 대한 확실하고도 체계적인 준비를 명하였다. 지금 당장 신 헌법을

재정 공포할 수도 있었고, 새로운 사법제도를 출범시킬 수도 있었지만, 일단 모든

일을 내년으로 미루었다. 더불어서 올해 중반부터 개편될 예정인 의금부의 검찰로의

개편도 내년으로 그 시행과 출범을 미루도록 지시했다. 국제정세의 확실한 안정이

보장되고, 아울러서 국제사회로의 진출을 이룩한 연후에 신 헌법과 근대적

사법제도를 출범시키자는 게 그 시행과 공포를 미룬 이유였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러나, 김영훈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기에 이세보를 비롯한 조정 중신들의 의구심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농림대신 김인호는 농림도감(農林都監) 분원(分院)의 설치에 관한 내용과 왜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쌀과 감자 등 농산물에 관한 내용을 비롯한 식량 자급 정책에 대한

보고를 했다. 그동안 흥인지문(동대문) 밖 선농단 옆에 설치하여 조선의 농사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던 농림도감은, 지방 도시에 분원을 설치하여 좀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농사 기술과 신품종 작물의 보급에 주력하기로 결정하고 그 후보지를

물색하다가 최종적으로 전라도 나주에 농림도감 분원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설치되는 나주의 농림도감 분원에서는 삼남지방에 대한 농사 기술과 신품종 작물의

보급에 앞장서게 될 것이고, 기존의 농림도감은 기호 이북지방에 대한 지원을 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다는 보고였다.

상공부에서는 전임 상공대신이었던 박규수가 외무대신으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새로운 대신이 임명되었는데, 그가 바로 전 상공차관이자, 전 조선은행장인

엄기영이었다. 상공대신 엄기영은 보고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공장관리와 경영법을

도입함으로써 제품의 질과 제품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노무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하여 여러 대신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사실 엄기영이 도입한 공장관리와

경영법은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대표적 자동차 사(社)를 창립한 포드가

제창한 이론으로, 포드가 제창하고 실행했다고 하여 포디즘으로 불리고 있는

방식이다. 따로 일관생산공정을 통한 대량생산방식이라고도 불리는 포디즘은 사실

간단한 내용에서 출발한다. 먼저, 각 생산라인에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하여 원자재와

부품, 제품의 이동을 간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각 공정별로 세분화된 분업화를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컨베이어 벨트의 도입과 분업화가 이루어진 뒤에는 작업과

작업에 필요한 부품을 규격화하는 것이다. 이미, 신기도감에서 모든 공업용 기계의

부품에 대한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각 공장에서

사용되는 모든 부품까지 표준화, 규격화된 것은 아니었다. 이런 모든 과정을 차질

없이 각 공장에 도입하여 관리하게 만듦으로써 작업의 능률은 향상되었고, 더불어서

생산성도 증가되었다. 그리고, 작업능률이 향상되고, 생산성이 올라감으로써

덩달아서 상승한 것이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이었다. 좋은 물건과 제품이 많이

생산되어 많이 팔리게 되면, 그 물건과 제품을 만든 근로자들의 임금도 올라가는

것이 당연했고, 그렇게 올라간 임금은 고스란히 가계에 보탬이 되었고, 이렇게

가계의 보탬이 될수록 근로자들의 노동 의욕도 상승하게 마련이었다. 그것은 좀 더

높은, 좀 더 깊은, 문화적ㆍ경제적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되었으니, 다양한 계층에

다양한 경제적ㆍ문화적 혜택을 주고 싶어하는 조정의 시책에도 부합되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조선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불어서 도입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성과급제도였다. 성과급제도는 좀 더 많은 일을, 좀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해

내는 근로자들에게 별도로 지급되는 일종의 보너스를 말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근로자들의 생산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었고, 불량률이 적은 제품과 물건을 생산해낼

수 있었으니, 고용주나 근로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제도라고 할 수 있었다.

엄기영의 보고를 들은 김영훈의 크게 감탄하여 즉시, 전 사업장과 각 부에 이 일을

알리고, 이것을 좀 더 보완하여 시행하라는 명을 내렸고, 이때부터 조선의 모든

사업장과 조정의 모든 부에서 시행하기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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