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28화 (228/318)

9.

상공대신 엄기영의 보고가 있은 후에, 보위대신 유홍기와 해양대신 이기동의 보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건교대신 김정호가 건교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여러 사업에 대한

보고를 했다. 이미 국무대신 김병학의 도로망 확충과 철도 노선의 건설에 대한

보고가 있었기에, 김정호는 지금 현재 시행되고 있는 사업 중에서, 건교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상하수도의 보급 사업에 관한 것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지금 저희 건교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 여러 가지가 있사옵니다. 국무대신

대감께서 보고한 전국적인 도로망 확충과 철도 노선의 건설, 교량과 저수지의 신축,

금광과 철광을 비롯한 광산의 개발 외에도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조선 팔도에 상하수도의 보급을 위하여 모든 총력을 기울이고 있사옵니다."

사실, 12부(部) 중 어느 부가 바쁘지 않을까 마는 그 중에서도 가장 바쁜 부를

꼽으라면 건교부를 꼽을 수 있었다. 전국 각지를 연결하는 도로망의 확충과 철도

노선의 건설, 저수지와 교량의 신축과 건설, 그리고 각지의 철광과 금광, 은광 등의

개발 등 건교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업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렇게

많고 많은 사업 중에서 지금 김정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은 다름 아닌

상하수도 보급 사업이었다. 상하수도의 보급은 조선 백성들의 보건 위생과도

직결되는 것이기에, 김정호 자신이 직접 챙기는 사업이었다. 특히 새로운 기술과

학문을 배우는 데 게으름이 없는 김정호였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후학에게 길을

열어줘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김정호였기에, 자신의 퇴임 이전에 그 완성을 보고

싶은 사업이 바로 상하수도의 보급 사업이었다. 상하수도 보급 사업 역시 지난

정묘년(1867년)부터 시행하기 시작해서 올해로 벌써 5년째에 접어들고 있는

사업이었다. 아직까지 전국의 부ㆍ군ㆍ현ㆍ읍ㆍ면 단위까지 보급이 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매달린 덕분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이고 있는 사업이기도 했다.

"처음 상수도를 보급할 때는 물을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백성들의

거부감이 상당하였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계몽과 홍보가 이루어졌고, 또한 그

편리성으로 인해 그런 거부감은 많이 희석되었다고 할 수 있사옵니다. 지금 전국의

상수도 보급률은 20%가 약간 넘는 수준으로, 시행 첫해에 5%도 안되던 것에 비하면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도 그 수준은 미미하다고 말할 수

있사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상하수도를 이용하는 백성들 대부분이 중류층 이상의

가정이옵고, 그 지역도 인구가 많은 도시와 군, 현에 편중되어 있는 실정이옵니다.

합하."

대대로 물을 물 쓰듯 해온 조선의 백성들에게 물을 돈을 주고 사서 먹는다는 것은

쉽게 친숙해지기 어려운 문제였다. 비록 그 편리성과 효율성이 인정된다고는 하지만,

쉽게 돈을 주고 비싼 물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김영훈이었기에 송구한 표정을 하면서 보고하는 김정호에게 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하수도의 보급은 상수도와는 달리 그 호응도가 상당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사옵니다. 특히 하수도의 경우에는 주거환경의 개선이라는 것과 맞물려

있었기에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그리고, 이미

전부터 시행해오고 있던 보위부의 '백성들의 보건 위생에 대한 안내문'과 정책

덕분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사업이 시행될 수 있었사옵니다. 합하."

"괜찮습니다. 고산자 대감. 어차피 상하수도의 보급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데, 그 정도의 성과에 실망해서야되겠습니까? 그 정도의 성과라면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송구하옵니다. 합하."

"헌데, 대감. 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한 가지 있어요."

"무엇인지요. 합하."

"지금 전국에 전기가 완전하게 보급된 것이 아니지요?"

"그러하옵니다. 합하. 도성 안이야 전차를 도입하면서 설치한 발전기 덕분에 어느

정도 전기의 보급이 이루어졌지만, 전국적으로 전기가 보급되기까지는 좀 더 시일이

지나야 할 것 같사옵니다. 합하."

"그런데, 상수도를 어떻게 운용할 수가 있죠?"

"무슨 말씀이신지...?"

김정호는 김영훈의 물음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전기와 상수도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런 물음을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제 말은 전기로 물을 공급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물이 각 가정에 공급될 수

있느냐는 하는 것입니다."

"... 아!..."

한동안 김정호는 김영훈이 질문한 것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러다

김영훈이 재차 설명하자 그때서야 알아듣는 눈치였다.

"합하. 상수도를 각 가정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단계를 거쳐야 하옵니다. 첫

번째로는 각 하천이나 제방에서 정수지까지 물을 끌어오는 것이옵니다. 이것을 저수(

貯水)라고 하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수된 물을 정수(淨水)하는 과정이 있사옵니다.

그리고 정수한 물을 급수지까지 보내, 그 급수지에서 상수도가 설치된 각 가정으로

공급하는 과정이 있사옵니다. 이것이 바로 급수(汲水)라는 과정이옵니다."

"음... 저수, 정수, 급수라..."

"그러하옵니다. 합하. 처음 물을 정수지로 끌어올 때와 물을 정수할 때 그리고, 그

물을 다시 급수지로 보낼 때만 전기가 필요하옵니다. 합하. 그리고, 급수지에서 각

가정으로 물을 급수할 때는 인공적인 기계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흘러가게 만드옵니다."

"... 아! 그래서 급수지가 산 위에 있는 것입니까?"

"그렇사옵니다. 합하."

김정호의 설명을 들은 김영훈은 그때서야 이해가 된다는 표정이었다. 지금이야

상수도를 공급하는데 전기의 힘을 이용하지만, 처음 상수도가 만들어질 때만

하더라도 전기라는 것이 없었기에, 순전히 자연의 힘으로 물을 각 가정에 공급해야만

했다. 그것은 일찍이 상하수도의 개념을 이해하고 사용하였던 고대 로마시대라고

해서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저절로 물이 각

가정으로 공급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급수지가 일반 도시나 가정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야 했다. 건교부에서는 이 점에 착안하여, 일반 평지에 있는

정수지에서는 발전기를 이용하여, 물을 끌어올리고, 다시 높은 곳의 급수지까지 물을

보냈지만, 급수지에서 각 가정으로 물을 보낼 때는 그냥 자연적으로 흘러가게끔 만든

것이다. 김정호의 설명에 이해가 가는지 김영훈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전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대 한국에서 왔으니, 그러한 사정까지 낱낱이 알 수

없었기에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했고, 그것은, 상수도의 원리에 대해서 잘 모르는

다른 중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건교대신 김정호의 보고가 있은 후에는 문교부에서 보고할 차례였다. 다른 부에서는

모두 대신이 나와서 보고를 한 것과는 반대로 문교부에서는 문교대신 최한기를

대신하여 새롭게 문교차관으로 임명된 최익현이 나섰다. 전임 문교차관이었던 천군

출신의 이창호는 지금은 오로지 연구와 각급 학교에서의 교수 활동에 매진하고

있었고, 또 본인이 그것을 원하였기에 독일에서 돌아온 최익현이 문교차관에 임명된

것이다. 최익현은 독일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눈을 떴음인지, 조선 사람 본연의,

머리를 길게 기르고 상투를 튼 모습이 아닌, 김영훈을 비롯한 천군과 같이 머리가

짧은 모습이었다. 다만, 중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망건을 두르고 관모를

착용하였기에 그것이 눈에 띠지 않을 뿐이었다. 사실, 최익현이 최초로 조선에서

독일에 유학한 100인에 선발되기는 했지만, 최익현과 조선인 유학생들이 독일에서

무언가를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단 지금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과학기술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천군이 있는 조선에서 다른

나라의 과학기술과 지식을 배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조정에서 인재들을 선발하여 유학 형식으로 독일에 내 보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조선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인재들의 머리를 트이고 시야를 넓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천군이 주도가 되어 조선의 개혁을 부르짖는다고 하더라도,

조선을 이끌어나갈 인재들이나 조선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의 변화를 직접 보고,

피부로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이렇게 유학한 학생들이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체험하면서 채득한 문화적인 충격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고스란히

그들이 성장하는 데 크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최익현이었다. 완고한 보수주의자요, 유학자인 최익현이 독일에 유학 명목의

시찰을 다녀온 후로는 주변 사람들이 달라졌다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개혁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천군에 대한 열렬한 지지로

표출되고 있었다. 굳이, 천군과 활발한 교류를 했던 스승 이항로의 유지(遺旨)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스스로 원하여 변화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합하. 신 문교차관 최익현 아뢰옵니다."

"오. 면암(勉庵) 영감. 오랜만입니다. 헌데, 혜강(惠岡) 대감께서는 어디 가시고

영감께서 말씀하십니까?"

"혜강 대감께오서는 지금 전라도 전주에 내려가신 관계로 신이 대신하여 나온

것이옵니다. 합하."

"혜강 대감께서 전라도 전주엘 가셨다구요?"

"그렇사옵니다. 합하. 전주에 세워지고 있는 국립도서관의 개관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것을 점검하기 위하여 내려가셨사옵니다."

"이런 정신을..."

김영훈은 전주에 세워지고 있는 국립도서관의 개관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신경을 쓰게 만드는 일이 많아서인지 그와

같은 보고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더불어서 전주에 내려간 최한기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기고 있었다.

지난 기사년(己巳年 1869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국립도서관은 장장 3년이라는 오랜

기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올해 가을이 가기 전에 완공을 볼 예정이었다. 외부는

조선의 전통 양식을 띠고 있지만 내부는 현대적 개념의 편의 시설을 갖춘 3층 짜리

국립도서관은 조정에서 추진 중인 지방도시의 활성화 차원에서 계획되어진 일이었다.

그동안 변변한 도서관이 없던 조선에서 최초로 지어지는 현대적 개념의 도서관이

바로 전주의 국립도서관인데, 여기에는 그동안 조선 팔도에서 간행된 모든 책을 총

망라하여 소장할 생각이었고, 또한 문교부 산하 박문국에서 발행되었거나 발행될

예정인 천군의 슈퍼컴퓨터에 수록된 모든 미래의 지식까지 발행하여 소장할

예정이었다. 물론 그러한 지식과 책은 일부 허가된 자들에 한하여 열람이 되게 될

것이지만, 일반 도서와 자료는 일반에게 개방하여 손쉽게 책을 빌려보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이번에 개관하는 국립도서관은 1차로 20만 권에

이르는 장서를 소장하고 열람시킬 생각이었고, 꾸준히 건물의 수와 보유 장서의 수를

늘려 최종적으로는 200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는 세계최대, 최고의 도서관으로 키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지방도시에도 규모는 작지만 도서관을 세울

예정이었다. 아울러 김영훈은 한지(韓紙)의 본 고장인 전주에 매년 전국적인

도서박람회를 열 생각이었고, 이것을 발전시켜 훗날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출판ㆍ도서박람회로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전주는 한지의 본 고장이기도 하지만, 조선조 4대 서고(書庫) 중의 하나인 전주

서고가 위치할 만큼 제반 여건도 성숙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자연재해가 거의 전무하다할 정도의 온전한 땅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점을 잊지 않고 있던 천군에서 조선 최초이자, 앞으로 세계적인 도서관으로 발돋움

할 것이 분명한 국립도서관을 전주에 짓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잠시

이렇게 전주에 세워지고 있는 국립도서관에 대한 생각에 젖어 있던 김영훈에게

최익현의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합하. 내년부터는 중등학교가 개교할 것 같사옵니다. 그리고 특수 영재 고등학교의

개교도 있을 것 같사옵니다."

"오... 그래요? 그것 정말 반가운 일이군요. 그럼, 이번에 개교하는 중등학교는 일반

학생들을 위한 중등학교입니까? 아니면, 지난번과 같이 영재를 위한 중등학교입니까?"

"중등학교는 일반 중등학생을 대상으로 문을 열게 되옵고, 특수 영재 고등학교는

여태껏 특수 영재 중등학교에서 교육 받아온 학생들을 위한 것이옵니다. 합하."

"그렇군요."

지난 정묘년(1867년)부터 전국 열 군데의 사범학교의 졸업생들이 배출되면서, 역시

초등학교가 전국에 세워지게 되었다. 처음 조선에 문을 연 초등학교는 조선 팔도에

모두 150군데였지만 매년 그만큼의 숫자가 더 개교를 하여, 지금은 모두 700여 개가

넘는 초등학교가 전국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중등학교도 각 도에 몇 군데가

생겼을 정도였다. 원래대로 한다면, 아직 초등학교 졸업생도 배출되지 않았을

시기였지만, 일부 초등학교에서 머리가 뛰어난 영재들이 일찌감치 월반하여 졸업을

하게 되었기에, 시범적으로 각 도에 몇 군데씩의 특수 영재 중등학교를 개교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이제 그 특수 영재 중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위한 특수 영재

고등학교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되는 날이 반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비록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등학교의 출범은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테지만,

이로써 조선은 초등학교 6년, 중등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의 근대적인

교육제도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을축년(乙丑年 1865년)에 처음 2년제 사범학교와

4년제 성균관대학교가 출범한 이래 8년 만에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확립할 수

있었으니, 실로 감개가 무량한 순간이었다. 김영훈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김영훈을 비롯한 천군이었기에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사립 중등학교도 출범할 것 같사옵니다. 합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누가 사립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뜻이라도 밝혔습니까?"

김영훈은 반색을 하며 물었다. 여태까지 조선의 교육이 관 주도의 관립학교가

유일하다시피 했는데 이제 사립 중등학교와 사립 고등학교가 설립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교육을 통한 사회계몽과 교육을 통한 국력 신장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고 볼 수 있었다. 최익현은 김영훈의 반색을 뒤로하고 차분하게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사립학교라고 부를만한 사교육 기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옵니다."

"그렇지요. 동학에서 운영하던 야학도 있었고, 또, 조정에서 퇴임한 원로들이나,

성균관대학을 졸업한 이들 가운데 일부가 세운 사숙(私塾)이 각지에 생겼었지요.

그것은 여(余)도 잘 알고 있어요."

"그렇사옵니다. 합하. 그러나 이러한 사숙들은 그 규모와 시설, 가르치는 교과목에

있어서 제대로 된 교육기관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사옵니다. 헌데, 이번에 동학과

쥬신상사, 그리고 몇몇 지방 유지들 중에서 사립 중등학교의 설립을 정식으로 우리

문교부에 청원하였사옵니다. 그래서 우리 문교부에서는 면밀히 검토한 결과 모두

열아홉 개의 사립 중등학교의 설립을 인가하기로 결정하였사옵니다."

"그래요? 정말 잘되었군요. 정말 잘된 일입니다."

김영훈은 최익현에게 크게 치하하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임금과 다른 부서의

중신들도 분분히 최익현에게 덕담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최익현이 비록 조정의

중신들에 비해 연배도 어리고, 직책도 낮다고는 하지만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미 작고한 기호학파의 거두 이항로의 직전제자라는 점도 있었지만,

문교대신 최한기와 함께 당금 조정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는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익현의 입에서 조선의 앞날에 서광을 비추는 것과 같은

교육의 발전상을 듣게 되었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임금과 섭정공

김영훈, 그리고, 여러 중신들의 이와 같은 치하와 격려를 받은 최익현은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김영훈은 최익현의 상기된 표정을 뒤로하고 다시 물었다.

"언뜻 듣기로는 이번에 우리 천군 출신 조선인 학자 몇 분이 독일의 명문 대학에

교수로 임명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영감."

"그렇사옵니다. 합하. 신이 거기에 관계하지 않았기에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으나,

신도 그렇게 들었사옵니다."

"그래요? 영감께서 모른다고 한다면 누가 알고 있습니까?"

"합하. 신이 알고 있사옵니다."

김영훈의 물음에 최익현이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자, 한상덕 대정원장이 나서며

말을 받았다. 김영훈도 대충 보고만 받았지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에 한상덕의

대답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매년 두 차례씩 100명에 이르는 인재들을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독일에 시찰을

보내는 것은 합하께옵서도 잘 알고 계실 것이옵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그 유학생들 틈에는 천군 출신의 학자와 요원들이 동행을 하였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실 것이옵니다."

한상덕은 김영훈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었다. 지금 회의석상에 있는

중신들은 유학 명목의 시찰단이 단순하게 세상의 변화를 느끼고 깨우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사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일 뿐이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유학생들에 포함된 천군 출신 학자나 요원들이 그곳에서 수행할

일이었다. 10명의 천군 출신 학자와 요원들은 각자 부여받은 임무가 따로 있었다.

일례로 학자들은 독일의 유명 대학에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잠입하여, 그곳 유명

교수의 제자가 되어 차츰차츰 실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임무를 띄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차츰차츰 실력을 인정받고 나서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과 이론의

일부를 논문형식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너무 뛰어난 과학적 지식을

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오로지 지금 시대 상황에 맞거나 약간 혁신적인 이론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명성을 쌓은 학자들이 조선으로 돌아와서

조선의 눈부신 과학적 발전을 선도했다고 선전할 생각이었다. 또한 일부 학자들이

일반 기업체에 고문이나, 이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그런 기업체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에 대한 일종의 신원보증을 전담할 예정이었다. 그래야만 천군이

미래에서 도래하였다는 것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동양의 미개한 소국에서 서양에서도 이루지 못한 엄청난

과학적인 발전을 이룩했다고 했을 때, 그것을 곧이 들을 서양인들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일부 몰지각한 종교인들이 외계인의 사주를 받았다거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이룩한 사회라는 선전, 선동을 할 우려가 있었다. 대정원의 공작은 그러한

시선을 피하기 위한 공작이었다. 김영훈과 한상덕은 이러한 공작이 알고 있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약간의 사전 정보 정도는

조정 중신들에게 알려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여, 김영훈이 묻고, 한상덕이

대략적인 상황만 보고하는 형식으로 알리는 것이다. 일종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중 다섯 분의 학자들이 최종적으로 교수 임용에 지원하였고, 그 중에서 세 분의

학자들이 독일 명문 대학에 정식 교수로 임용되었사옵니다. 그 분들은 앞으로 우리

조선을 대표하여, 서양에 우리의 발전된 과학기술을 전파하는 일에 앞장서게 될

것이옵니다."

"장한 일입니다. 정말 장한 일입니다."

한상덕은 쉽게 얘기했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찌어찌해서 독일의 명문 대학에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다닐 수는 있어도, 유명

교수의 눈에 들어 정식으로 연구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동양인이라는

것이 큰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다행히 조선의 압력을 받은 독일 정부의 중재로

어렵사리 유학하여 연구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고, 급기야는 교수로까지 임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시간이 장장 5년이 넘게 걸렸으니, 그동안 애를 쓰거나 공작에

참여한 학자들이나 요원들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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