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52화 (252/318)

3.

밖에서 또 다른 장계가 도착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공친왕은 흠칫하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크게 터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친왕은 그 관리가

들어와서 내민 장계를 조심조심 펼쳐보았다. 놀랍게도 장계는 남몽고(南蒙古 내몽골)

에 주둔하고 있던 팔기주방 장군의 보고였다. 나쁜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공친왕의 눈이 갑자기 크게 부릅떠졌다.

"이, 이, 이... 이게 사실이더냐?"

"그, 그러하옵니다. 왕야."

묻는 공친왕이나 대답하는 관리나 모두 말을 더듬고 있었다. 공친왕은 너무도

어이없고 충격적인 소식에 말문이 막힌 것이고, 공친왕에게 장계를 내밀었던 관리는

그의 서슬 퍼런 반응에 놀라서 말을 더듬었던 것이다.

"북몽고(北蒙古 외몽골)에 주둔하고 있던 팔기군으로부터 소식이 끊긴지가 얼마나

됐는데 이제야 보고를 한단 말이야! 이제야!!!"

"송구하옵니다. 왕야."

애꿎은 관리만 뭐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당장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당장 직예총독(直隸總督)을 불러 오라! 지금 당장!"

"예. 왕야."

공친왕은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 판단했다. 가뜩이나 조선의 동북지방 진출, 그리고

방금 장계를 통해 안 호북성 형주부 강릉현의 소요사태로 정신이 없는데, 북몽고에

주둔한 팔기군의 소식이 두절됐다는 것은 단순한 연락두절로 볼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신유년(辛酉年 1861년)에 아라사(俄羅斯 러시아)의 공사관이 북몽고의

수도인 후레(지금의 울란바토로)에 세워진 후에는 아라사의 입김이 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에 편승해서인지 독립 움직임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는 지역이

바로 북몽고 일대였다. 그런, 북몽고에 주둔하던 팔기군으로부터 연락이 두절됐다는

말은, 그쪽에 대규모 소요사태가 일어났던지 아니면 북몽고의 독립을 외치는

불순분자들의 손에 북몽고 주둔 팔기군이 변을 당했다는 말뿐이 되질 않았다. 만약

북몽고의 팔기군이 당하고 북몽고의 오랑캐들이 독립이라도 한다면 그 정치적인

파장은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남몽고의 몽고족들은 이미 상당 부분

만주족화되었으니 별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북몽고는 사정이 달랐다. 여기까지

생각한 공친왕은 고개를 심하게 젓기 시작했다.

'아냐! 절대 그럴 리는 없어!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게지...'

사실, 공친왕의 반응은 절대 과잉반응이 아니었다. 북몽고 일대에서 가끔씩 독립

움직임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고, 그걸 억제하기 위해서 팔기군 일부를 주둔시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북몽고 주둔 팔기군도 다른 지역의 팔기군처럼 오합지졸(

烏合之卒)의 집합체나 마찬가지였다. 군사의 수도 적었으며, 무장 상태나 훈련

정도도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다행히 북몽고의 몽고족이 4부(部) 86기(旗)로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있었기에 빈약한 팔기군으로 그들의 독립 움직임을 억압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고 완전히 통일된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면 그러한 시도 자체는

근본적으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북몽고 주둔

팔기군의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소식에 공친왕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북몽고

주둔 팔기군의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것은 그 지역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변화의

조짐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공친왕이 이런 생각을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직예총독 이홍장(李鴻章)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의수(儀  이홍장의 호)."

"찾아 계시옵니까? 왕야."

"의수께서도 들으셨겠지요?"

"신도 방금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길입니다. 왕야."

이홍장은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대답했다. 그런 이홍장을 보며 공친왕이 물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북몽고에 주둔하고 있는 팔기군과 연락이

두절되다니요?"

"송구하옵니다. 왕야. 하오나 신이 생각건대 별다른 일은 아닐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별다른 일이 아니라니요? 지금 의수께서는 별다른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씀하시었소?

"

이홍장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공친왕이 발끈했다. 자신은 내심으로 불안하고

초조해서 안절부절을 못하는데 자신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직예총독이라는 자의

입에서 나온 별다른 일이 아니라는 소리는 자신의 부화를 돋구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이홍장은 공친왕이 언성을 높여도 차분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왕야. 고정하시고 신의 말을 좀 들어보시옵소서. 지금 계절상으로 엄연히

겨울이옵니다. 비록 삼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는 하오나, 아직까지 찬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는 겨울이옵니다. 북경이 이럴 진데 북몽고는 어떻겠사옵니까? 왕야.

북몽고는 지금 한 겨울이나 다름없을 것이옵니다. 신이 몽고지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오나 그곳이 북경보다는 월등히 겨울이 길고 춥다는 것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고로 북몽고 일대의 매서운 겨울 날씨와 폭설 때문에 군사들의 이동도

용이하지 못하여 잠시 연락이 두절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옵니다."

"음... 그런데 말이오. 의수."

"예. 왕야."

"아무리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와도 그렇지 어떻게 된 게 두 달이나 연락이 두절될

수 있다는 말이오? 그 점은 생각해 보시었소?"

"음..."

공친왕의 말에 이홍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기실, 두 달 정도 연락이 끊어진 것을

가지고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는가? 하는 생각을 했고, 남몽고의 팔기주방 장군이라는

자는 그동안 무엇을 했기에 이제 와서 이런 장계를 올려 왕야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뜩이나 황제대신 섭정을 하고 있는 서태후(西太后)의

견제를 당해 심기가 불편한 왕야에게 이따위 장계를 이제야 올리는 팔기주방 장군의

생각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홍장이 침음성을 삼키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공친왕의 말이 다시 들렸다.

"의수께서도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처지가 별로 좋지 못합니다. 안팎으로 우리를

견제하는 세력도 많을뿐더러 척정(滌正 증국번의 호)의 병세가 깊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실정이오. 이런 마당에 변방에서 소요라도 발생하게 된다면 우리를 노리는

태후 일당에게 공격의 빌미만 제공하게될 뿐이란 말이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소?"

"알겠사옵니다. 왕야. 신의 생각이 짧았사옵니다."

"의수께서는 무슨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북몽고의 사정을 소상하게 알아보세요.

아울러 호북성 형주부에서 발생한 소요사태에 대해서도 빠른 시일 내로 진정시키세요.

"

"형주부에서의 소요사태는 무엇이옵니까? 왕야."

이홍장은 아직까지 호북성 형주부 강릉현에서 벌어진 한족과 팔기군과의 충돌사태를

알지 못했다. 공친왕은 목소리를 죽여가며 그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친왕의 설명을 들은 이홍장은 낯빛이 하얘졌다. 각기 대륙의 중원과 북방에서

심상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지만, 자칫하면 두 사태로 인해 대륙이 또 한 번

소용돌이에 휩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공친왕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연유를 이제야 알 것 같은 심정이었다. 대륙의 중원과 북방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고 있는 이때, 자칫하면 지난 을축년(乙丑年 1865년)처럼 서태후

일당에게 탄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공친왕과 서태후는 신유정변(

辛酉政變 1861년)을 일으켜 이친왕(怡親王)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았었다. 그러다

서태후 일당의 경원을 당한 공친왕은 을축년(1865년)에 의정왕대신(議政王大臣)의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아직까지 권력의 중심부에 굳건히 발을 딛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언제 서태후 일당에게 팽(烹)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위치가 지금의

공친왕이기도 했다. 그러니 공친왕이 이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홍장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을 했다. 아까의 여유 있는 표정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왕야. 신 직예총독 이홍장. 왕야의 명을 신명을 다해 처리하겠사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내 의수만 믿겠소. 그리고, 봄이 되면 동북지방으로 출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오이다. 아시겠소이까?"

"명심하겠사옵니다. 왕야."

이홍장은 자신에게 맡겨두라는 듯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고는 공친왕에게

허리를 깊숙이 굽혔다. 그리고는 두 소매를 크게 떨치면서 밖으로 나갔다. 이홍장의

결연한 모습을 본 공친왕은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는 듯 싶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무언가 말로 할 수 없는 꺼림칙한 것이 남아있었다.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공친왕은 모르리라. 조선에서 외몽골의 독립을 위해 암암리에 지원하기 시작한 지가

어언 8년이나 지난 지를... 그리고, 조선에서 준비한 모종의 공작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