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권-제57장 병거향남(兵車向南) (58/82)

제57장 병거향남(兵車向南)

「○평안 감사 윤훤(尹暄)이 치계하였다.

“방금 의주에서 온 사람이 와서 고하기를 ‘요병(遼兵)이 어젯밤에 의주(義州)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요동군 수만 병거가 다 적진에 있었으며 한의직이 수괴가 되었고 적세는 8만인인데 그 기세가 매우 거세다.’ 하였습니다. 청천강 이북은 형세가 지탱하기 어려울 듯하여 안주의 진위대 8천 7백 명을 이미 김완(金完)으로 하여금 이끌고 가 구원하도록 하였습니다. 평양은 진위대 9천 8백 명과 속병(屬兵) 3천여 명이 있어 이들로 군대를 나누어 성첩(城堞)을 수비하도록 하였고 또 주변에 있는 고을의 수령들로 하여금 각각 민병을 인솔하고 입성토록 하였습니다.”

이에 황상께서 각부대신에 입궐을 명해 방책을 논하셨다.

○平安監司尹暄馳啓曰: “卽刻出義州人來告: ‘遼兵昨夜攻陷義州, 而遼軍幾萬兵車, 皆在陣中, 韓宜直則爲首魁, 賊勢八萬, 而勢甚熾盛’ 云. 淸川以北形勢, 似難支撑, 故安州鎭衛軍八千七百名, 已令金完領率往救. 平壤則有鎭衛兵九千八百及屬兵三千餘名, 以此分軍守堞, 且令傍邑守令, 各率民兵入城” 云. 故皇上諭各部諸臣入闕, 論其方策.」

―《세조실록(世祖實錄)》, 101권,

태정(太禎) 28년(1616) 2월 21일 첫 번째 기사

1616년

태정(太禎) 28년 맹춘(孟春)

대한제국 심요도독부 성경 심양부.

오랜 세월에 걸친 권력 투쟁 끝에 결국 심왕부의 옥좌가 금양대군 김제의 손에 쥐어진 지도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왕좌에 오를 때 이미 장년(壯年)의 나이였던 그였다.

어렵사리 손에 쥔 권력은 지속적으로 도전받았다.

십 년을 넘게 끈 내전 끝에 결국 그는 요동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지만, 그사이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파이고, 몸은 늙어갔다.

무력으로 탈취한 권좌가 김제는 늘 불안했다.

내전 중에 황성부에 웅크리고 앉은 태정제와 정략적인 타협을 이루는데 그는 꽤 많은 공을 들였다.

그 끝에 공식적으로 책봉을 받고, 심양권지국사(瀋陽權知國事)라는 임시 칭호를 내던지고, 정식으로 심왕(瀋王)에 봉해진 뒤에도, 그의 불안증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앓는 이 같았던 누르하치를 영주로 쫓아내는 데 성공했고, 모피 무역에서 나오는 이윤은 국고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반왕(反王)의 기류는 사그라졌고, 가장 강력한 도전자였던 조카 김윤의 신병도 손에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제는 밤이면 잠을 편하게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모살(謀殺)한 형 예양대군과 그 가족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 저주를 퍼부어댔다.

그뿐 아니라, 마지못해 김제가 왕위를 습봉하는 것을 허락한 황성의 태정제도 호시탐탐 요동을 견제할 한 수를 노리고 있었다.

김제는 자신의 왕권이 마치 사상누각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전히 요동의 정국은 불안하기 짝이 없네. 때문에 과인은 침식을 잊은 지 이미 오래일세. 왕좌에 앉은 뒤로 국사는 돌보지 못하고 매일같이 적들과 싸우느라 시간을 허비해 왔네. 그러다 보니 이제 세월이 훌쩍 지나, 머리는 예전같이 총명하지 못하고, 몸 또한 날래지 못하게 되었네. 그러나 이대로 죽어, 화려한 금실로 치장하고 땅으로 들어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찬탈자의 오명을 덮어쓰고 왕위에 앉았던 것에 만족하고 세상을 뜰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과인은 요동을 황성의 손아귀에서 건져내기를 열망해 왔네. 내가 마지막으로 그 업적을 달성하고 죽는다면, 어느 누가 감히 과인을 세세토록 비난하겠는가.”

어느 날, 오랜 측근인 한의직을 내전으로 불러 김제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제는 한의직의 공적을 높이 사고 있었고, 그를 마음 깊이 신뢰했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한 것이 한의직을 관리들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도평의정의 자리에 앉힌 것이었다.

한의직 또한 김제의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 밤낮으로 그를 지근거리에서 수발하며 요동의 평정을 도왔다.

이제는 함께 늙은 두 사람은, 여전히 반정은 끝나지 않았다는 데에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요동이 진정으로 홀로 서는 날이야말로, 그들의 반정이 마무리 지어지는 날인 것이었다.

“지난 몇 년간 요동의 내정은 많이 안정이 되었고, 요동군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전하께서 뜻하신다면 언제고 압록강을 넘어 황성을 압박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에라도 결심이 서신다면, 십만 요동병은 전하의 명을 받들어 지체 없이 말발굽을 달릴 것입니다.”

한의직은 담담한 목소리로 김제에게 을렀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그의 풍채는 여전히 당당했고, 말에는 기운이 있었다.

급격히 늙어가는 김제와 다르게, 한의직은 여전히 언제고 말에 올라 전장으로 내달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꾸만 마음이 약해져 가는 김제를 옆에서 다독이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그가 당당하게 서 있어야, 김제 또한 늙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적자가 없고, 서자인 세자만이 내 뒤를 이을 수 있네. 안정된 나라를 물려주지 못한다면, 이를 트집 삼아 유약한 세자를 몰아내려고 하는 모리배들이 창궐할 걸세. 세자에게 병력을 맡겨서 공적을 세우도록 하고, 홀로 선 요동을 그놈이 물려받게 한다면, 어느 누구도 감히 치졸한 명분을 내세워 왕권을 위협할 수는 없겠지. 도평의정, 그대가 반드시 세자를 도와 이 일을 이루어주어야 할 걸세.”

지난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 일을 고민한 김제였다.

결심을 종용하는 한의직의 말에, 그 또한 확고한 의지를 담아 대답했다.

이제 겨우 스물인 세자는 그의 근심거리였다.

정실이었던 중전 오씨에게서는 아들을 얻지 못했고, 서자인 세자 홍(泓)만을 어렵사리 측실에게서 보았다.

그러나 이제 막 내전이 종식된 상황에서 김제 자신이 급서(急逝)라도 한다면, 서자인 김홍의 왕위 계승은 취약함을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명분이 필요했다. 자신의 원대한 꿈인 요동 독립을 김홍이 쟁취해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명분은 없을 터였다.

설사 세자 김홍의 능력이 그에 미치지 못해도 좋았다.

한의직이 옆에서 뒷받침해 준다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것이 김제의 계산이었다.

“신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세자 저하께 교지를 내려 대장군에 임명하시고 요동군의 군권을 주어 황제를 치게 하소서. 신이 그 바로 곁에서 봉명하여 대업을 보좌하겠나이다.”

한의직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내심 한의직은 속으로 한숨을 토해냈다.

세자 김홍과 그는 잘 맞지 않았다. 그간 부딪힐 일이 없긴 했으나, 세자는 한의직에 대해서 종종 경계심을 드러내곤 했던 것이다.

세자는 안정되고 집중된 왕권을 물려받길 원하고 있었고, 아버지의 곁에서 권세를 누리는 한의직의 존재는 꽤나 껄끄러운 것이었다.

한의직이라고 해서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세자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출정에 따라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출정을 계기로, 심왕 김제의 생각대로 세자가 자신을 중용해 주게 된다면 그로서도 나쁘지는 않을 일이었다.

“설사 우리가 황성부까지 경략하지는 못하더라도, 태정제의 휘하에는 아군을 몰아쳐서 심양까지 몰아올 병력이 없네. 적절히 군사력을 과시하여 황성부의 영향력을 공식적으로 끊어내는 것이면 충분하네.”

“유념하겠나이다.”

한의직과 전략을 논의한 심왕 김제는 다음 날 대전으로 중신들을 모두 불러 모아 거병을 선언했다.

“요동은 원래 중원에 속한 땅도 아니고, 삼한에 속한 땅도 아니라, 고래로 그 나름의 습속과 풍습을 지니고 있었다. 때로는 나라를 크게 일으켜 위명을 떨치기도 하고, 혹은 시일이 좋지 않아 주변에 종신하여 오기도 했으나, 요동의 기풍만은 세월의 풍침에도 죽지 않았다. 심왕부의 왕통이 이미 이백여 년을 내려왔고, 그간 때를 보아 몸을 웅크리고 있었으나, 이제는 나라를 세워도 가히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융성하게 되었다. 이에 거병하여 요동의 기치를 만천하에 떨칠 것을 명하니, 제신은 과인의 뜻을 받들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대업을 달성하는 데 진력을 다 하도록 하라.”

그간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지만, 여러 번의 숙청 끝에 요동의 관료계층은 심왕 김제를 지지하는 강경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황제에게 반기를 들겠다는 김제의 말에 감히 반대하고 나서는 자들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히려 이들은 이번 전쟁을 호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황성부의 입김이 사라진다면 요동은 새롭게 거듭나게 될 것이었다.

시대가 바뀔 때 권력을 한자리 차지하게 된다면, 그것을 후대로 물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였다.

나름대로 계산이 빠른 신료들은 심왕 김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종군(從軍)을 자청하고 나서기도 했다.

어차피 이번 원정을 전면전으로 비화될 것이라 받아들이는 이들은 없었다. 내지에 대한 전력의 우위를 확신하고 있었고, 태정제의 그간 행적을 보아 왔을 때 많은 손실을 각오하면서까지 요동과 내전을 불사할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병력을 동원해 평안도로 진입하는 순간, 황성에서는 이 일을 불식하고자 많은 조건들을 내걸 터였다.

이를 빌미 삼아 요동의 자치를 공인받고, 지금까지의 번왕의 체제를 벗어나, 국왕(國王)으로 나라를 세워 국호를 정하고, 종묘와 사직을 세우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였다.

“사저에 유폐한 김윤에게도 종군을 명하여 충성을 증명하도록 하라.”

김제는 이참에 아예 불안의 싹을 잘라 버리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태정제와 척을 지기로 결심한 이상, 김윤의 신변을 더 이상 보장해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전장에 내보내 전투 중 전사한 것으로 위장해 제거해 버린다면, 세자의 권력은 더욱 튼튼해질 터였다.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종친이 더 이상 없는데, 누가 감히 세자의 권위에 의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심왕 김제는 이번 출정을 모든 일을 정리할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그는 더 이상의 물러섬은 불안의 싹을 키울 뿐이라고 생각했다.

“세자도 모르게 이 일을 처리해야 할 걸세. 기회가 오면 믿을 만한 사람 몇으로 비밀리에 김윤의 숨통을 끊어야 할 걸세. 전투 중이라면 더욱 좋겠지. 그대 딸에게는 미안한 노릇이나…….”

심양의 성중이 출정 준비로 들썩이고 있는 동안, 김제는 한의직을 다시 남몰래 불러 김윤을 처치할 것을 단단히 다짐받았다.

김윤의 신병을 확보했을 때, 심왕 김제는 이 어린 조카에게 해완군(海婉君)의 군호를 내려줌과 동시에 한의직의 고명딸을 김윤에게 시집보냈었다.

한의직의 그늘 아래에 김윤을 두어, 감히 해완군 김윤이 꼼짝할 수 없게 하고자 하는 저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유에서였지만, 어찌 되었든 한의직은 김윤의 장인이 되었고, 심왕 김제가 이번 일을 미안하게 여기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김제로서는 사위를 죽이도록 장인에게 명하는 꼴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한의직은 확고한 어조로 심왕 김제를 안심시켰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유념을 거두시고 낭보를 기다리고 계시면, 신이 반드시 좋은 소식을 심양으로 보내겠나이다.”

한의직은 사위에 대한 애정은 전혀 없다는 듯, 냉정하게 심왕의 명을 받아들였다.

그 또한 딸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었으나, 정치라는 것이 매사 희생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대만 믿고 있겠네.”

한의직의 다짐을 받은 심왕 김제는 정식으로 종군을 명하는 교지를 김윤의 사저에 보냈다.

무장한 스무 명의 병력이 김윤의 집 문을 두드려, 명을 강제로 받게 하고서는 그 길로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말에 태워 병영으로 보냈다.

“몸 성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한의직의 딸이자 해완군 김윤의 처인 한연(韓淵)은 불안한 표정으로 남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뜻하지 않게 시집오게 된 그녀였지만 남편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었다.

딸에 대한 사랑을 거의 표현하지 않았던 아버지에 비해, 해완군 김윤은 그녀를 증오할 만한 상황임에도 늘 다정다감하게 부인으로써 그녀를 대해 주었다.

때문에 이 유폐된 생활 중에서도 부부의 금실은 좋았고, 그녀는 심적으로 남편과 뜻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심 아버지가 사위를 죽음의 길로 내몰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간 패업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심왕과 아버지 한의직을 떠올려 보면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위급 상황에 쓰라고 당부하며 급하게 병영으로 끌려 나가는 지아비에게 어렵사리 구한 권총 한 정을 품에 넣어주었다.

“이 총을 쓸 일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괜찮을 것이오. 반드시 다친 곳 없이 돌아오겠소.”

김윤은 부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사히 귀환할 것을 약속했다.

어린 딸과는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김윤은 그렇게 급하게 요동군 병영으로 호송되어 가, 그곳에서 바로 군장을 지급받고 출정에 합류할 것을 명받았다.

장교로 보임받긴 했으나, 그에게 주어진 것은 호위 군관 한 명뿐이었고, 지휘권은 내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둘러싼 감시 병력만이 그의 신세를 절감하게 해줄 뿐이었다.

“이번에 공을 세운다면 전하께서도 자네를 다시 볼 걸세. 반역자의 누명을 벗고 당당한 종친으로 국사를 거들 수 있을 것이라, 이 말일세.”

한의직은 사위를 불러 놓고 이렇게 을렀다.

그러나 말을 하는 한의직도, 듣고 있는 김윤도 그것을 믿고 있지 않았다.

한의직은 내심 김윤을 언제 처결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고, 김윤은 이 서슬 퍼런 장인의 눈동자에서 알 수 없는 경계심을 읽고 있었다.

“유념하여 반드시 전공을 세우겠나이다.”

김윤 또한 내심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압록강을 건너 전투가 심화되면 그는 탈주를 감행하여 제국군에 투항할 생각이었다.

그는 한시도 백부인 심왕 김제에 대한 원한을 잊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인 인양군 김율을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의 신세 또한 이리도 구차하게 만든 백부였다.

황성부로 도망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곳에 있는 외숙들과 태정제가 자신을 비호해 줄 터였다.

심양에서 감옥 같은 생활을 지속할 생각이 김윤에게는 추호도 없었다. 심양에 남은 사랑하는 처자식이 걸리긴 하지만, 김윤의 처와 딸인 동시에 한의직의 딸과 외손녀이니 아마 고초를 치르지는 않을 터였다.

“알겠습니다.”

서로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그것을 티낼 수 없었다.

김윤은 공손하게 장인에게 다짐을 하고서는, 감시 병력에 둘러싸여 다시 자신의 막사로 돌아왔다.

심양 성 밖의 너른 벌판 위로, 요동 각처에서 병력이 상경하여 집결하고 있었다. 거진 8만에 달하는 병력이 압록강을 넘어 내지로 육박하게 될 터였다.

김윤은 나부끼는 깃발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모르긴 모를 일이나, 역사의 거대한 흐름이 지금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이 노도 같은 흐름 속에서 김윤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지금 이 순간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1616년

태정(太禎) 28년 중춘(仲春)

대한제국 평안도 의주부(義州府).

제국 전체가 태양력인 건양력(建陽曆)을 받들어 시행하기 전, 정초(正初)는 곧 봄의 시작을 의미했었다.

한 해의 첫 달은 곧,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찾아오는 시기와 맞물렸다. 그러나 건양력의 시행으로 한 해의 시작은 좀 더 앞으로 당겨졌고, 설이 되고도 두 달은 지나야 파종기가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봄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겨울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 지속되었던 온난기가 끝나고 전 세계적으로 소빙기(小氷期)가 찾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농작물의 소출은 감수하고, 겨울은 좀 더 춥고 길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요동이나 내지나 할 것 없이 점차 사회적인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심왕 김제가 황성과의 결전을 결심한 데에는 이러한 요인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잖아도 요동은 내전으로 인구가 줄고, 농작물의 소출도 줄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자기 토지를 보유한 소농(小農)의 숫자는 격감했고, 이 빈자리를 호농(豪農)들이 대농장을 구성하며 매워 나갔다.

그러나 지역의 유지로 올라선 이러한 호농지주들은 소작인의 숫자가 줄어 농지를 경작할 인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고, 덩달아 기후가 한랭해져서 소출 또한 줄었다.

때문에 이 부담을 상쇄하고자 농업작물의 생산을 포기하고 목축을 하거나, 특용작물의 재배를 시도했다.

전체적으로 이들 지주들은 이를 통해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게 되었지만, 반대로 이제는 소작농들이 땅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생계 수단을 잃은 인구가 늘어난 데다가, 그나마 생산되던 곡물이 시장에서 거의 흔적을 감춤으로 인해, 요동은 전체적으로 식량을 자급하지 못하고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정으로 보내고 있는 세폐(歲幣)는 큰 부담이 되었고, 사회적 동요를 방지하기 위해 일자리 없는 유랑민들은 근심거리가 되고 있었다.

심왕 김제는 이러한 상황의 타개책을 산업의 촉진에서 찾기 보다는, 외부적 발산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었다.

일자리가 없는 젊은 청년들을 군대로 보내 싸움터에 내보내고, 이번 출정으로 세폐를 끊어 재정을 좀 더 확충시키려 했던 것이다.

요동을 독자적인 국가로 만들고, 정책의 자율권을 획득하겠다는 논리의 이면에는, 이렇게 자연 지리적 환경의 변화 또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식량은 명나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언제고 돈만 주면 사올 수 있었다.

명에서 곡량의 반출을 금하는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곡식의 수매를 책임지고 있는 관리들은 팔지 못해 안달이었다.

명나라 만력제의 치세 동안 명의 궁중정치는 완전히 엉망이 되었고, 때문에 명 조정의 환관들은 나라의 곳간을 제멋대로 털어서 요동에 팔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부정은 너 나 할 것 없었고, 오죽하면 곳간지기의 위세가 삼공(三公)을 누른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마음만 먹으면 요동에서는 장강 하류 강남에서 생산된 질 좋은 쌀을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수입해 들여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했다.

모피 무역으로 들어오는 돈만으로는 국가 재정에 날로 가중되어 가는 부담을 일소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여하간, 요동군이 압록강을 향해 출진한 1616년의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1월말에 출정해 2월에 압록강에 육박한 군대는 의주군 건너편에 둔영을 차리고 내지의 분위기를 정탐하기 시작했다.

압록강은 여전히 얼어 있었고, 언제고 마음먹으면 도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휘부는 내심 쾌재를 불렀지만, 병사들은 추위에 지쳐 가고 있었다.

북쪽의 사나운 겨울과 싸우는 데 익숙해진 요동군이었지만, 오랜 행군만으로도 동상자가 나오거나 부상자는 속출했다. 그만큼 그해 겨울 추위는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병사들이 추위에 지쳐 가고 있습니다. 차라리 어서 전투를 벌여 남쪽으로 내려가 따뜻한 잠자리와 먹을 식량을 조달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압록강의 도강 시기를 놓고 지휘부는 분열되어 있었다.

한의직은 당초 세자 김홍을 허수아비로 여기고 있었다. 그간 유약한 모습만을 보여 왔던 세자였다.

공훈을 쌓기 위해 전장에 나오긴 했지만, 그 공적을 직접 쌓을 능력은 세자에게는 없었다.

동궁에서만 지내온 그에게는 패기만 있을 뿐 충분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쌓아야 할 공적이라는 것이 사실은, 직접 쌓을 것이 아니라 한의직이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한의직뿐만 아니라, 심지어 심왕 김제도 그리 생각하고 세자를 전장에 보낸 상황이었다.

허니 세자로서는 안전한 장소에서 몸을 사리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자 김홍은 전장에 나오자마자 사람이 변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군을 장악해 지휘하기를 원했다. 때문에 한의직이 내어놓는 의견에 사사건건 번대하고 있었다.

김홍은 젊은 혈기로 자신이 직접 이 출정을 진두지휘하여 만족스러운 명성을 얻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는 노신(老臣)이라 할 수 있는 한의직의 존재가 부담스러웠고, 가급적이라면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을 때를 대비해서 한의직의 날개를 꺾고자 하는 생각이 심중에 있었다.

그것은 구체적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전장에서의 주도권을 한의직에게서 적극적으로 뺏어오고자 세자 김홍은 노력했다.

“안 되오. 병사들이 지친 상태에서 적을 기습한다면, 우리가 승전할 것을 장담할 수 없지 않겠소? 병사들에게 따뜻한 술과 음식을 내어주고 날씨가 풀리길 기다립시다.”

세자 김홍은 한의직이 도강을 결행하자고 제의하는 것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이참에 요동군의 환심도 살 계산이었다.

병사들이 지치고 힘들었을 때, 자신의 이름으로 술과 고기를 내어 준다면, 병사들은 세자 김홍을 칭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의직은 도저히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저하, 날씨가 풀리면 압록강이 녹습니다. 그때 도강을 하고자 하면 필히 두세 배의 노력을 필요로 할 것이고, 적들도 방비를 마치게 됩니다. 더군다나 강을 건널 충분한 뗏목을 구하지 못하면 묵직한 포들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적의 성새를 공략하기 위해서 대포는 필수적입니다. 설마 그걸 다 버리고 가실 생각이십니까?”

한의직과 요동군의 수뇌부는 세자 김홍을 필사적으로 설득하고자 했으나, 김홍은 요지부동이었다.

모자란 식량은 적진에서 노략하면 된다고 주장하며, 그는 남아 있는 식량을 모두 병사들에게 풀어주었고, 술까지 내어 잔치까지 벌였다.

이렇게 강 너머가 소란스럽게 되자, 처음에는 요동군이 그저 병력을 이동하는 것으로 여겼던 의주의 제국군 15진위대도 차츰 요동군의 움직임을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사실 의주의 제15진위대는 여러모로 강병이라고 하기는 힘든 군대였다.

오랜 세월 전 명과의 전쟁을 치른 뒤로, 2백 년의 세월 동안 이곳 평안도는 매우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요동의 존재는 이곳을 변경이 아닌 내륙으로 만들어주었고, 이곳에 주둔한 군대는 그 세월 동안 전투다운 전투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명과의 긴장 관계가 한창이던 1421년 창설된 15진위대는, 초창기에는 북방 정벌에 종군하여 그 명성을 휘날렸으나, 차츰 그 병력도 줄고 사기도 저하되어 군대라고 부르기 부끄러운 상황이 되어 있었다.

진서의 왜란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제국군의 주축은 삼남의 진위대들이 되었고, 북방의 전력은 지속적으로 감축되고 있었다.

요동이 내전을 겪는 동안, 정세의 불안함을 감지한 태정제는 지속적으로 이 북방 전력을 보강하고자 노력했고, 그 일환으로 뛰어난 장수인 이괄(李适)을 이곳 15진위대의 진위대장으로 부임시켰다.

그러나 이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15진위대는 보급 상태가 조금 나아진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만연한 병역 기피로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은 돈이 없고 교육을 받지 못한 하층 계급의 장정들뿐이었고, 자연스럽게 사기가 고취되지 않았다.

무기는 녹슬고, 총탄은 제때 보급되지 않아 무장 상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젊은 나이에 그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한 이괄은, 아직까지 완숙함이 부족해 진위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지 못했다.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유지들과 유착하고 있는 진위대의 군관들은 이괄의 개혁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판국이었다.

겨우 6천이 조금 넘는 15진위대의 병력 중에 당장 싸움이 일어나면 제 몫을 할 병사는 겨우 천 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괄의 판단이었다.

그런 와중에, 압록강 너머에서 수상한 낌새가 감지되자 이괄은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탐을 해 보니, 건너편의 요동군 병세가 거의 수만에 육박하는 것 같네. 이게 단순히 병력의 이동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야.”

이괄은 부관인 육군 부위(副尉) 임경업(林慶業)을 불러 놓고 나직이 말했다.

육군진무관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자마자 바로 이괄과 함께 15진위대로 배속된 임경업은, 이괄로서는 가장 신뢰하고 흉중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였다.

“참장님, 저들이 깃발을 치켜들고 건너편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벌써 열흘이 넘습니다. 아직 추위가 기승이라 강이 얼어붙어 있으나, 이제 곧 봄이 올 것은 자명할 것인데, 아직 도강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전투를 벌일 의지가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적의 지휘관이라면, 강이 얼어붙은 지금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의주성을 기습했을 것입니다.”

임경업은 당연하게도 논리적인 대답을 내어놓았다. 사실 요동과 내지의 사이가 갈수록 악화되어 가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황성과 심양이 서로 아귀다툼을 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었다.

이괄이나 임경업 또한 애초에 요동과의 전투를 상정하는 것이 힘들었고, 더군다나 설사 요동군이 의주성을 공격할 생각이라 해도, 상식적인 지휘관이라면 도강이 용이할 때 강을 건너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수상해. 전례 없이 병력을 강변에 집결시키지 않았나. 심왕이 미치지 않고서야 설마 강을 건너서 오기야 하겠냐마는…….”

이괄은 평소에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쁜 의심이라기보다는 매사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육감이 불길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데다가, 정황마저도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정초에 당연히 입경(入境)하여 의주를 지나 황성부로 올라가야 할 요동의 사절도 올해는 없었다.

반대로 그 연유를 묻고 질책하려 심양으로 가는 황제의 칙사가 황성을 출발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이다.

“이 무슨 소동인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병사들을 동원해 녹슨 철침이라도 강 둔덕에 묻어두도록 하고, 포신을 정비하고 보총 또한 언제고 쓸 수 있도록 병사들에게 지참시키게.”

이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니 최소한의 방비는 해두어야 했다.

확신 없이 임경업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이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우선은 그리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허나 너무 심려하지는 마십시오. 설마 심왕 김제가 그리 흉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찌 감히 황제에게 배역할 흉중을 품고 강을 건너겠습니까?”

임경업은 얼굴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이괄을 다독였다.

새파랗게 어린 부관에게 위로받는다는 사실에 잠시 부끄러워진 이괄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체면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 후방의 진위대들에게도 동태의 수상함을 상세히 적어 보내고, 가급적이면 황성의 조정에도 사실을 알리도록 하게.”

“안주의 제8진위대와 평양의 제10진위대에 파발을 보내겠습니다. 조정으로 올라가는 서계는 평양에 도착하면, 평양의 진위대장과 평양감사께서 판단해서 조치하실 겁니다.”

“그래, 일단 그렇게 해두도록 하지.”

“그보다는 이번에 또 명을 내리시도록 하면, 진위대의 군관과 병사들이 태만하게 나올 것입니다. 확실히 군령의 위엄을 이번 기회에 세우시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임경업의 말에 이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태함에 익숙해져 있는 15진위대의 군관과 병사들은, 이괄이 지나치게 군인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도 없는 대신 보급도 없는 이곳에서 무슨 사서 고생을 하냐는 논리였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들 중 요동군이 강을 건너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괄의 명에 투덜대면서도 군관과 병사들은 의주성의 방비를 보강하는 작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군기를 위반하는 자는 단호히 군령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엄포가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병기고에 보관된 무기들의 상태는 형편없었다.

전진 배치하기는 했으나, 녹슨 포는 과연 제몫을 할지 의문이었고, 사용 가능한 보총의 숫자는 병력 숫자에도 미치지 못했다.

혹여 적이 도강할 경우 기병들이 앞으로 나서지 못하도록 강둑에 묻어둔 철침은 숫자도 적고 녹이 잔뜩 슬어 제 몫을 할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괄로서는 지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려하는 일이 터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혹여 모를 사태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은 이괄뿐만이 아니었다. 강 건너편의 요동군 막사에 앉아 있는 한의직의 속도 점점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의주의 진위대 병력이 갑자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첩보는 당연히 한의직의 귀에도 들어오고 있었다.

더군다나 날씨가 풀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며 강이 녹을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혹여 때를 놓치면 예상치도 못했던 패전을 겪을 수도 있었다.

결국 고민 끝에 한의직은 세자 김홍을 무작정 찾아가 투구와 검을 김홍의 앞에 내려놓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세자 저하. 지금 도강하지 않으면 때가 늦습니다. 더 이상 곡량도 없을 뿐더러, 병사들은 점차 경계심을 잃어가고 있고, 강은 이제 곧 녹을 것입니다. 지금 건너가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신은 이만 지휘권을 내려놓고 성경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한의직을 경계하고 있는 세자였으나, 출정에서 한의직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그와 같은 노련한 장수가 없다면 사실 세자 혼자서 요동군의 수만 병력을 지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의직이 작정하고 도강을 재촉하자, 세자는 더 이상 발을 뺄 수가 없게 되었다.

“아, 알겠소. 경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로서는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지. 내일 새벽에 야음을 틈타 압록강을 건너도록 합시다.”

세자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한의직에게 얼버무렸다.

속으로는 한의직에 대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박력에 눌려 버린 것이었다.

“그리 알고 병사들을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신은 이만.”

한의직은 다시 투구와 검을 집어 들고 세자의 막사를 나섰다.

안에 남은 세자는 책상을 뒤엎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듣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한의직의 귀는 늙은 나이에도 아직 밝았다.

눈을 질끈 감으며 한의직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인 심왕에 비해 한참을 못 미치는 세자였다. 차라리 왕의 재목으로서는 사위인 김윤이 나았다.

생각이 그쯤에 미치자 한의직은 화들짝 놀라 한숨을 쉬었다. 자꾸 사위에게 정을 주어서는 안 되었다.

이번 출정 중에 자신이 명령을 내려 죽여야 할 사람이었다.

한의직은 멀리 보이는 압록강을 바라보며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예양대군을 지지하는 한씨 문중에서, 홀로 금양의 패기에 반해 그를 지지하고 집안과 연을 끊었던 한의직이었다.

금양대군의 명으로 북방 개척에 나서 초원과 삼림지대를 떠돌며 요새를 세우고, 무기를 팔고, 모피를 사들였었다.

그렇게 금양의 측근이 되어 반정을 도왔고, 내전에서도 금양의 수족이 되어 반군들을 뿌리 뽑는 데 앞장서 왔었다.

그 긴 세월 동안 한의직은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감정을 버리고자 노력해 왔었다. 냉철하게 사고하고, 대업을 최우선으로 삼고자 했었다.

그렇게 그간 자신의 손에 뿌려져 나간 피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자꾸 약해져 가고 있었다.

문득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음에서 치솟아 오르는 회의감을 억지로 누르며 한의직은 도강을 지휘할 장교들을 불러 모았다.

이미 걸어온 길이었다.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숭고한 척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한의직은 마음을 다시 단단히 추슬렀다. 의주를 공격하는 와중에 가능하다면 사위 김윤을 제거해 버릴 생각이었다. 더 이상 고민은 무용이었다.

“세자 저하의 명이 떨어졌소. 해완군 김윤을 선봉에 내세워 새벽녘 강을 건너겠소. 전군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시오.”

한의직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1616년

태정(太禎) 28년 중춘(仲春)

대한제국 황성부.

천 리를 달린 파발이 황성부의 서문인 돈의문(敦義門)으로 들어선 것은 2월 20일 밤의 일이었다.

오랜 기간 외부의 위협이 없었던 서북방면으로는 봉화 체계가 사실상 무너진 지 오래였다.

봉화를 올리면 쉽게 알릴 수 있는 사실을 평양감사를 거쳐 뒤늦게 파발이 도착하는 바람에, 황성부는 의주성이 요동군에 의해 공격당한 지 닷새가 지나서야 겨우 이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닌 밤중에 전혀 예기치 못했던 급보를 받은 황제는 깜짝 놀랐다.

침전에 들려던 차에 군부에서 궁내부를 거쳐 온 보고를 받은 태정제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대전으로 향했다.

내각회의가 긴급하게 소집되었고, 대신들이 황제의 부름을 받아 차례차례 입궐했다.

야심한 시각, 어둑한 대전에는 기름등이 내걸렸다.

어좌에 앉은 황제의 얼굴에는 짙은 수심이 길게 내려앉아 있었다.

“며칠 전 의주성이 함락되었다고 들었다.”

황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내관이 가져온 지도를 탁자 위에 펼치게 했다.

좌식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궁궐의 법도도 변천하여, 의례 중요한 회의는 탁자와 의자가 갖춰진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당금의 황제인 태정제는 입식을 매우 선호하는 편이었다.

지근거리에 앉은 내각 대신들은 좁은 탁자 위로 펼쳐진 지도를 물끄러미 보며 황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경들은 아무런 동요가 없구려.”

황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신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의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지 내각대신들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몽골이든 명나라든 의주를 치려면 요동군을 넘어서서 와야 하는데, 잘못된 소식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그들의 표정에 가득 담겨 있었다.

“요동군이 압록강을 건너서 의주를 쳤단 말이다. 이해들을 못하겠는가?”

황제가 답답하다는 듯 지도 위의 압록강을 가리키며 호통을 치자, 그제야 대신들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번졌다.

“요, 요동군이 말입니까? 어째서 그들이?”

“심왕이 무슨 이유로…….”

당황한 대신들은 애써 이유를 찾아보려 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아무리 황성과 심양의 사이가 틀어져 있다고 해도, 심왕은 대대로 황제의 번신(蕃臣)으로, 제국의 북방을 단단히 방비하고 있는 제국의 기둥 중 하나였다.

지난 200년간, 요동은 끊임없이 황성의 영향에서 멀어지려 시도해 왔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관계 자체가 무너졌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요동이 압록강을 넘어 황제에게 공공연히 도전해 왔다는 것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급변이 발생했다는 소리였다.

그만큼 황성에서는 요동 문제를 안일하게 보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심왕의 의중이야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우선은 적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방비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설마하니 제국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려고 군거를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감히 준동하지 못하도록 평안도에 꽉 붙들어 매어 놓은 다음, 처분을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담담하게 오고 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군부대신 장만(張晩)이 황제에게 읊조렸다.

“군부대신은 이미 보고를 들어 상황을 파악했는가? 그렇다면 왜 좀 더 일찍 짐에게 알리지 않았나?”

황제의 물음에 장만은 황공스럽다는 듯 몸을 숙였다.

황제는 손을 내저으며 장만에게 이야기를 계속해 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 뒤늦게 알기에 의주성은 이미 함락되었고, 급하게 소식을 들은 안주의 평양의 진위대가 움직여 북상해, 청천강에서 적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허나 적은 군대를 급박하게 움직이지 않고, 의주성을 점거한 채 의주진위대장 이괄을 잡아둔 채로 가만히 있다고 하옵니다.”

“짐 또한 그 사실은 보고를 받아 알고 있노라. 그래서, 군부대신의 대책은 무엇인가?”

“지금으로서는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적을 서북에 묶어두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폐하께서 윤허만 하신다면, 바로 강계와 해주 등에 주둔한 진위대에도 명해 적이 청천강을 넘지 못하도록 포위망을 짜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하라. 지금으로서는 별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이는군. 그리고, 재상.”

태정제는 고개를 돌려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재상 허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는 흰 수염이 무성한 늙은 허균은, 태정제의 부름에 공손히 읍했다.

“하교하십시오, 폐하.”

“심왕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고 이런 일을 벌였는지 우선 알아야 하겠다. 그대는 대신을 한 명 적진에 보내 이를 자세히 알아보고 오게 하라. 지금 상황에서는 내지의 병력을 모두 동원하여도 요동을 상대하기가 벅차니, 그간 군력 강화에 소홀했던 짐의 불찰이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허나, 지금은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때이니 우선은 희생 없이 전란을 끝낼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우선 아니겠는가. 강화할 수 있다면 조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오고, 반대로 적의 약점을 알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아 할 것이다. 섣불리 요동의 요구를 들어주었다가는 짐의 위엄이 훼손될 것이고, 조정을 가벼이 여기는 세력들이 필히 창궐할 것이니, 한 걸음마다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보내야 할 것이니라.”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까, 폐하.”

허균의 되물음에 태정제는 한참을 고민 끝에 한 사람을 지목했다.

“문부시랑 최명길을 보내도록 하라.”

1616년

태정(太禎) 28년 계춘(季春)

대한제국 평안도 의주부.

황성부가 갑작스러운 전란의 소식에 동요하는 동안, 요동군은 충분히 기세를 몰아 남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령한 의주성에 웅크리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괄이 의주성의 방비를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화력과 기동력으로 무장한 요동군은 압록강을 큰 손실 없이 도강한 뒤, 의주성으로 기습전을 감행해 대승을 거두었다.

의주성의 허술한 성벽은 요동군의 포격전에 손쉽게 무너졌고, 의주 진위대의 오합지졸들은 숫자에서도 훈련면에서도, 심지어 사기마저도 요동군에게 압도적으로 밀렸다.

진위대장 이괄은 분전했으나 결국 요동군에게 생포되었고, 남은 병력은 이괄의 부관 임경업이 간신히 수습하여 퇴각하였으나, 그 숫자는 겨우 수백에 불과했다.

이때까지는 요동군에게는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면, 의주성을 점령한 요동군은 기세를 몰아 평양성까지 육박했어야 했다.

좋은 무기로 무장하고, 지속적인 훈련을 받은 오동군은 안주나 평양의 진위대도 그다지 겁내지 않았다.

더군다나 기병 위주로 구성된 병력은 손쉽게 남쪽으로 가는 길을 뚫기에도 적합했다.

모든 정황이 요동군에는 좋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요동군은 며칠째 의주성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명목상의 지휘자인 왕세자 김홍과 실제 요동군을 이끌고 있는 한의직 사이에 갈수록 골이 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도강을 반대하며 압록강 너머에서 시간을 끌었던 세자 김홍은 막상 의주성이 함락되자마자 계획을 수정해 황성까지 진격해 황제를 생포하자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한의직은 심양에서 왕명이 떨어져도 그런 불가능한 군사 운용은 할 수 없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한의직이 사사건건 자신의 꼬리를 잡고 늘어진다고 느낀 세자는, 한의직을 파면해 다시 심양으로 쫓아내겠다고 으르렁거렸고, 한의직은 왕명을 받아 전장에 나온 이상, 자신은 모든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어떤 이유에서도 군권을 내려놓을 수 없다고 세자에게 도로 윽박질렀다.

이러한 대립이 쉽게 풀리지 않음에 따라 요동군의 수뇌부는 분열을 겪게 되었다.

세자는 남쪽으로 진격하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군관들을 다그치고, 한의직은 다시 그것을 막는 상황이 반복됨에 따라, 의주성에 주둔하고 있는 요동군 수만 병력은 하는 일 없이 앉아서 식량만 축내는 꼴이 되었다.

일이 이쯤 되고 보니, 한의직은 원래 지금 신경 쓰고 있어야 할 일에는 진전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사위 해완군 김윤을 처결하는 문제였다. 아니, 도리어 한의직은 김윤을 쉽게 죽이지 않는 방향으로 마음이 돌아서고 있었다.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한의직은 이제 장기적으로 세자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굴레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지금의 심왕인 김제가 반정을 일으킬 때, 한의직은 그 중심에서 김제와 함께하며 반정의 일등공신이 되었었다.

지금도 김제를 향한 그 충성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충성의 대상이 대를 이어 세자에게로 옮겨갈 수 있을지는 한의직 그 자신도 의문스러웠다.

세자는 무엇 하나 출중한 것이 없었다. 그저 범재(凡才)라면 그것대로 괜찮을 노릇인데,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을 닮아 행동만 앞섰다.

문제는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을 벌려 놓고, 그 뒷수습을 주위의 신하들이 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데에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동궁에서 조용히 있던 시절에는 그런 좋지 못한 성품이 잘 드러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구중궁궐이 아닌 전장에 나오자, 세자 김홍의 모난 성격이 그대로 요동군 전체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노련한 지휘관인 한의직은 세자 김홍의 명을 곧이곧대로 도저히 이행할 수 없었고, 병력 운용을 놓고 대립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세자가 왕이 될 재목이 아니라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어쩔 것인가…….’

한의직은 본디 유교적인 명분론과는 어떻게 재어보아도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반정으로 왕위에 올린 임금의 유일한 아들을 어떻게 해 볼 생각을 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세자는 결국 전쟁이 끝난 뒤 자신을 몰아내려 들 것이 분명했다.

전쟁에 진다면 그것을 명분 삼아 자신을 숙청할 것이고, 이긴다면 이긴 대로 왕위 계승을 굳힌 다음 천천히 자신을 고사시키려 들 터였다.

이미 세자와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히려 세자는 전쟁 전부터 자신에 대해서 권력의 앞길에 거추장스럽게 버티고 있는 방해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한의직이 사위인 해완군 김윤을 원래 계획대로 죽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왕권을 확립하는 데 지극히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던 김윤이었으나,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면 이야기가 달랐다.

만약, 만에 하나 세자가 없어진다면 왕위를 이을 자격이 되는 왕족은 해완군 김윤이 유일했다.

전대 심왕인 의민왕 김유에게는 아들이 넷이 있었다. 위의 세 아들은 정실 소생이고, 막내는 후실 소생이었다.

첫째인 김인은 그 성품이 모자라 결국 폐세자(廢世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력도 좋지 못해 후사도 없었다. 반정 전에 그는 일찌감치 숨을 거두었다.

둘째인 예양대군 김민은 의민왕이 진서로 출정하기 전에 최종적으로 세자로 봉하고 간 가장 적법한 승계자였다.

그러나 한의직이 섬기던 셋째 금양대군 김제가 반정을 일으켜 예양대군과 그 식솔을 모두 저승으로 보냈다.

막내인 인양군 김율은 이에 반발해 김제에게 각을 세워 대립했고, 결국 요동내전의 와중에 목숨을 잃었다.

결국 금양대군 김제는 왕권을 단단히 할 수 있었고, 심왕의 자리를 거머쥐게 되었던 것이다.

이 모든 피 튀기는 왕위 계승의 다툼의 결과, 왕위 계승의 자격이 있는 왕족은 금양대군 김제의 서자인 지금의 세자 김홍과 인양군의 아들로 인질이 되어 그동안 사실상 유폐되어 있던 해완군 김윤이 전부였다.

한의직은 당연히 출정 전까지 심왕의 명을 받들어 자신의 사위이기는 하나 왕실의 암 덩어리 같은 해완군 김윤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렇게 세자 김홍의 정통성을 부각시켜 대를 이어 섬기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떠받들려고 했던 세자 김홍이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을 내고 있었다.

한의직은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대안을 그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밤새 고민하던 한의직은 결국 마음을 굳히고 세자를 찾아가 병력을 움직이는 데 동의하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결심을 굳히려 간 길이었다.

그러나 세자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병권까지 내어놓으라고 한의직을 윽박질렀다.

한의직은 그 자리에서 청천강을 건너면 그때부터 모둔 병력의 지휘를 모두 세자에게 넘기겠다고 약조했다. 세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한의직은 복잡한 심중으로 막사를 나왔다.

그는 이때 이미, 그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진군하라, 내 병사들이여!”

의기양양해진 세자 김홍은, 다음날 바로 앞장서서 행군의 선봉에 서서는 병력을 지휘해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의직은 마지못해 종군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대로라면 청천강을 앞두고 주둔하고 있는 몇 개의 내지 진위대들에게 포위당하는 국면을 초래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한의직은 그런 실책을 세자가 저지르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이미 그의 마음은 세자에게서 완전히 돌아서 있었다.

대신 그는 해완군 김윤에게 실행하려 했던 계책의 대상을 세자로 바꾸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윤을 제거하려던 계획은 매우 비밀스럽게 이루어져야 했기에, 심왕조차도 이 일이 한의직의 측근 몇 명에 의해서 이행하라고 명했었다.

그 말은 곧, 한의직의 명만 떨어진다면 언제고 전장에서 표적을 제거할 내부의 적이 요동군 안에 포진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원래는 그 표적이 해완군 김윤이 되었어야 하겠지만, 한의직은 그 계책으로 세자를 제거할 생각을 굳혔다.

병력은 점차 남진하여 청천강의 유역에 이르게 되었다.

그간 한의직은 자신이 품은 의중을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세자의 명에 고분고분 따르는 태도를 보였다.

한의직은 어떤 의미에서 세자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셈이었다. 세자가 몸을 굽히고 들어온 한의직을 우대했다면, 세자는 비참한 마지막을 맞지 않아도 되었을 터였다.

그러나 세자는 오히려 기세등등해서 한의직을 완전히 파면할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이 말이 한의직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청천강을 마주하고 건너편의 안주 진위대와 평양 진위대의 연합 전력과 대치한 어느 밤, 한의직은 조심스럽게 막사로 해완군 김윤을 불러 포박했다.

“사위. 전투가 끝날 때까지 여기서 꼼짝없이 묶여 있어 주어야겠네.”

이번 전투를 도주할 적기로 판단하고 있던 해완군 김윤은 갑작스럽게 신병이 구속되었다.

한의직은 해완군이 일찌감치 도주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도주하려 할 경우 언제고 바로 제거해 버릴 좋은 명분이 되기에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계획에 사위 김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이상, 그 신병을 자신이 장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김윤의 신병을 장악한 다음, 한의직은 자신의 혈육이나 다름없는 측근 몇 명을 은밀하게 불러들였다.

“이번에 교전이 벌어지면, 세자가 전면에서 공격을 지휘할 것이다. 너희는 적군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전투의 혼란한 와중에 세자를 주살하도록 하라.”

한의직의 명을 받드는 이들은 모두 오래전 시비르한국까지 이르렀던 북방원정(北方遠征) 당시의 동료들이었다.

이들은 사실상 심왕을 섬긴다기 보다는 한의직의 의중만을 쫓는 가신들이나 다름없었다.

왕부에서 내려온 정식 직책도 없었고, 군속도 아니었기에, 한의직의 시중 자격으로 전장에 동행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세자를 제거하는 데 쓰기에 이보다 더 좋은 인물들은 없었다.

“세자가 죽는다면, 다음 대의 왕위를 이을 사람은 내 사위밖에 없다. 본디 뜻해서 가족의 연을 맺은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이것을 믿고 갈 수밖에 없다. 다만 세자는 어디까지나 전장에서 적군에 의해 전사한 것이어야 한다. 그대들이 한 치 실수 없이 일을 잘 처리해 줄 것으로 믿는다.”

한의직의 말에 측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의직만을 보고 따라온 길이었다. 한의직의 흉중에 있는 심계는 항상 헤아리기 힘든 것들이었다. 갑작스럽게 세자를 노리고 있다고 해도 이들 중에서 놀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일이 잘될 경우 사위를 왕으로 옹립하게 될 한의직의 편에 서 있는 것이 좋았다. 반대로, 세자가 왕위에 올라 한의직이 실각한다면 자신들은 끈 떨어진 연 신세나 다름없었다.

“죽음으로 임무를 완수하겠나이다.”

이들은 은밀하게 결의를 마치고 제국군 진위대의 무관복으로 위장하고 밤에 몰래 청천강 너머로 건너갔다.

그들이 확실히 건너간 것을 확인하자 한의직은 아직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지휘 계통을 이용해 청천강 너머로 발포하도록 명했다. 청천강 너머의 제국군에서는 이내 대응 포격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요동의 운명을 뒤흔들게 될 청천강 회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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