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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공, 운동, 지식, 마법
깜짝 놀란 시황은 당황해서 손을 놔버렸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황과 찬미의 눈이 마주친다.
“쓰레기 새끼.”
무표정한 얼굴을 한 찬미의 입에서 역겨운 벌레를 본다는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어요.”
시황은 자신이 실수한 건 맞았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사과했다.
“꺼져, 버러지 같은 놈.”
잘못한 건 맞지만 찬미의 말에 약간 욱했다. 분명 실수한 건 맞고 사과까지 했는데 이렇게 욕먹어야 하나 싶었다.
“제가 실수해서 큰 민폐를 끼친 건 맞는데 말이 좀 심하신 거 아닌가요?”
“됐으니까 그냥 꺼지시라고요.”
이전 같았으면 그냥 죄송하다 하고 갔겠지만 지금은 이런 모욕적인 언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여자가 연약해서는 아니었다. 시황은 강한 남자한테도 약하지만 여자한테는 더 약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171cm에 B컵, 여기에 예쁜 얼굴을 가진 여자와도 말을 하면서도 꿀리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게 이렇게 표면으로 나온 것이다.
“이봐요.”
시황이 불렀지만 찬미는 그냥 무시한 채 자전거에서 내려 탈의실로 가려고 했다.
이대로 마무리 짓게 되면 진짜 자신이 의도적으로 나쁜 짓을 한 거 같아 빠르게 찬미를 쫓아 간 시황이 찬미의 어깨를 붙잡으려 한 순간 갑자기 찬미가 기분 나쁜 얼굴로 멈춰서는 몸을 뒤로 돌렸다.
“당신, 어?”
“어?”
시황은 갑자기 멈춰선 찬미 때문에 자신도 멈추려고 했지만 몸이 의지처럼 되지 않았다. 이건 관성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자동차가 달리다 브레이크를 꽉 밟아도 바로 멈춰 서지 않고 제동거리가 있는 것처럼 시황도 관성 때문에 빠르게 걸음을 옮기다 갑자기 멈추려 하니 멈춰지지 않은 것이다.
이대로는 있으면 그대로 부딪칠 거 같아 팔을 벌려 찬미를 안아버렸다. 덕분에 한두 발 주춤거리고 멈춰 설 수 있었다.
시황은 이게 정말 현실일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 생겼다. 평소답지 않게 엎어진 것도 그랬다.
“야! 놓으라고!”
시황이 껴안자마자 화가난 듯 얼굴이 달아오른 찬미가 크게 외쳤다.
헬스장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이쪽을 쳐다본다.
“죄,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시황을 찬미가 밀쳐낸다.
“너 이러려고 아까부터 자꾸 나 훔쳐봤지? 너 같은 성추행 범은 자지를 잘려버려야 돼.”
아까 전에는 짜증난다는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화가 난 듯 고함을 쳤다.
“아까 전에 훔쳐본 거 아닙니다. 제가 잘못한 건 맞는데 오해하시네요.”
“내가 너 같은 놈들 한두 번 본줄 알아?”
“네? 제가 쳐다봤다고요? 왜요? 별로 예쁘지도 않은 얼굴, 제가 왜 쳐다봐요?”
시황은 옛날부터 그랬다. 남이 자신을 비난하거나 욕하면 그걸 참지 못하고 정중한 척 하면서 내용은 비비꼬며 상대를 약 올리는 식의 화술을 썼다.
“뭐? 하, 지금 네 면상은 생각하고 말하냐? 개미핥기처럼 생겨가지고.”
안 그래도 화가 났는데 시황이 비꼬면서 말하니까 찬미가 욱하면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너무 말이 심하신데요?
시황도 슬슬 화가 났다. 얼굴에 대해 안 그래도 콤플렉스가 심한데 개미핥기라니? 입 나오면 개미핥기인가?
“너 지잡대 다니지? 하는 짓거리 보면 뻔하지.”
“네?”
“흥.”
찬미도 말하고 이건 좀 심했다고 느꼈는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코웃음 치고는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시황은 속에서 끓어올랐다. 겨우 실수, 비록 그게 털이 없는 음부를 보는 조금 곤란한 실수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모욕을 줄 줄이야!
“너 절대 가만 안 둔다.”
찬미가 들어간 탈의실을 뜨거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찬미는 몰랐겠지만 시황은 당하기만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서 전설의 리그를 할 때도 자기를 욕하면 그 보복으로 일부러 적에게 죽어주는 등의 행동을 했던 것이다.
여자 탈의실을 뚫을 듯이 쳐다보는 시황을 보며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마치 변태를 보는 듯한 그런 시선들이다.
“아아, 최악이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까 헬스장에서 있던 일이 계속 생각났다. 순간 엎어지면서 찬미의 바지를 내려버린 건 자다가 갑자기 생각나 이불을 차버릴 만큼 부끄러운 일이었다.
시황이 고통스러워하면서 한숨을 내쉬자 걱정이 된 아루가 시황에게 손을 가져가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면서 한마디 말을 건네려는 큰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너무 부끄러워 주춤주춤거리기만 하고 쉽사리 손이 시황에게 닿지 않았다.
“왜? 아루야?”
“아, 아닙니다. 오빠.”
아루가 자꾸 움찔움찔하자 시황이 쳐다보며 말하자 아루가 갑자기 당황해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제 섹스 이후로 아루가 자꾸 자기를 피하는 거 같아 시황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어제 아파서 자기를 피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제 아팠지? 미안해.”
시황이 다가와 아루를 안자 갑자기 아루가 시황을 살짝 밀어 낸다.
“어?”
“아앗! 주인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아루가 밀어내자 시황의 당황했다. 아루도 순간 크게 당황해서 주인님이라고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나 잠깐 쉴게.”
“아…….”
시황이 괜찮다면서 침대에 가버리자 아루는 안타까운 소리를 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제 이후로 시황을 보기만 해도 부끄러워져서 자꾸 의식하는 건 기본이고 눈이 마주치거나 시황의 손이 몸에라도 닿으면 심장이 터질 거처럼 두근거렸다.
시황은 오늘 아루의 기분이 안 좋은가 라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찬미를 골탕 먹일지 고민했다. 이런저런 방법이 수없이 떠오르다가 문득 그 여자를 자신에게 반하게 만드는 게 제일 큰 복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반해서 그녀가 고백할 때 냉정하게 차버리면 그 보다 통쾌할 건 없을 거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다. 아까 잠깐 대화를 해본 바로는 그녀는 자신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가진 거 같았다. 개미핥기라고 표현한 거 보면 말 다 한 거 아니겠는가?
지금의 시황은 자랑할 게 전혀 없었다. 학벌이 좋지도 않았고 돈이 엄청나게 많지도 않았다. 얼굴이 잘생기고 몸이라도 좋으면 미남계라도 사용하겠지만 지금 얼굴과 키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이렇게 잘난 게 없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뭔가 자랑할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유일하게 하나 있는 건 케즈론의 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지만 이것도 자신이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닌 그저 운 좋아서 얻어 걸렸을 뿐이었다.
“흐음.”
취미도 없고 특기도 없다. 얼굴도 못생겼고 집도 가난하다.
“정말 없구나.”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졌다. 26년 살면서 잘난 거 하나 없다니, 뭔가 분하고 답답했다.
케즈론의 유산을 받았지만 참으로 수준 떨어지게 사용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좋은 물건들이 가득한데 어떻게 이정도 수준으로 밖에 못쓰나 싶다.
이런데 어느 여자가 자신하고 사귀려고 할까?
“제기랄.”
시황은 침대에 누운 채로 저번에 산 책을 책을 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지식을 쌓고 운동을 하고 내공을 모으는 것 뿐이었다.
경험치를 모아 3레벨의 유산을 받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
시황은 찬미가 고마웠다. 그렇게 몸소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게 해줬으니 말이다.
독서를 하고 나름 자기가 정한 시간이 되자 권법서를 보면서 형(形)을 익혔다. 아직까지는 책을 보면서 동작을 따라할 수준밖에 안 됐던 것이다.
저녁에는 엘프 주 탕에서 피부 미백에 신경 썼고 바로 유산으로 받은 화장품을 아루와 함께 얼굴에 꼼꼼히 발라 주름 개선과 잡티 제거를 했다.
그리고 다시 독서를 하다가 10시가 되면 음양합일공을 위해 아루와 섹스를 한다.
두 번째 섹스인지라 아직까지 아루는 쾌감보다는 고통이 조금 더 큰 거 같았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덜 아픈지 미소를 지으면서 끊임없이 시황의 입술을 갈구했다.
비슷한 하루가 이어졌다. 아침에는 운동장에 가서 축기를 하고 시간이 되면 헬스장에 간다. 그리고 자신을 경멸하듯 쳐다보는 찬미를 보며 꼭 반하게 말거라는 다짐을 되새겼다.
오후에는 은지와, 민영, 효주와 만나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팀플레이를 했지만 별 다른 일 없이 전에 정한 대사만 영어로 다 바꾸고 끝이 났다. 어차피 다음 주에 은지와 밥을 먹기로 해서 크게 급한 건 없었다.
시험기간이긴 했지만 당연하다는 듯 시험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발전에만 신경 쓴 채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화요일.
영어회화 시험을 어떻게 겨우 끝내고 집에 와 독서를 하면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지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시황아!]
지영의 목소리가 약간 들 떠 있었다.
[누나 무슨 일 있으세요?]
[전에 네가 준 화장품 말이야. 이거 또 있어?]
드디어 시황이 기다리던 입질이 왔다.
화장품을 바른지 3, 4일이 지나면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얼굴에 있던 잡티와 주름이 싹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피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주름과 잡티 개선효과가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것이다.
[네? 왜요?]
시황은 저번처럼 무식하게 날뛰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패는 항상 끝까지 숨겨야 한다는 걸 그 때 깨달았으니까.
[아는 언니가 이 화장품 사고 싶다고 해서 전화했어. 전에 우리 시황이가 화장품 팔 거라고 누나한테 말했었잖아.]
[아……. 그렇군요. 그런데 이거 비싸기도 하고 엄청 구하기도 힘든 거라서 아무한테나 막 팔수는 없거든요. 제가 누나니까 공짜로 준거에요.]
[어머, 그러니?]
지영은 시황의 말에 기분 좋은 듯 웃었다.
[네. 그래서 확실한 사람들한테만 팔고 싶거든요. 애초에 수량이 몇 개 없기도 하구요.]
[걱정 마. 시황아. 같이 일하는 언니인데 나랑 엄청 친하거든. 내가 보증할게.]
[그래요? 그럼 누나만 믿고 팔게요. 그 분하고 언제 만날까요?]
[언니가 지금 당장이라도 사고 싶다는데 우리 시황이는 시간이 어때? 괜찮아?]
[음, 잠시 만요.]
시황은 시계를 봤다. 밤 7시다.
오늘 시험 칠 거 다 치고 이제 그다지 할 건 없었지만 할 일 없이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스케쥴을 체크하는 척 했다.
[안 되니?]
[지금 시험기간이긴 한데 누나 부탁이고 하니 잠깐은 괜찮아요. 어디서 볼까요?]
조심스럽게 묻는 지영의 말에 시황은 시험이라 바쁘지만 누나 때문에 나간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어머, 그래? 미안하네. 다음에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줄게.]
[괜찮아요. 누나.]
[고마워. 시황아, 그러면 학교 앞에 있는 카페에서 볼래?]
[네. 알겠어요. 지금 나갈게요.]
[응. 조금 있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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